105화
8. 거짓말쟁이
무경은 잠든 하윤을 향해 속삭이듯 말했다.
“……왜 나를 그렇게 속였어?”
하지만 깊이 잠든 하윤은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무경은 하윤을 깨우지 않았다. 오히려 커튼 사이로 스민, 이른 빛 한 줄기가 그에게 닿지 못하도록 몸으로 가로막았다.
정신없던 하루는 그날로 끝이 난 줄 알았는데, 이제 와서 생각하면 그날로부터 시작이었다.
그날 있었던 일이 무경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홀로 수치스러워 열이 올랐다가, 또 홀로 겨울을 맞은 듯이 춥고 초라해졌다가. 또 용암이라도 치솟듯 머리가 뜨거워지고 깨질 것 같다가, 또 불안과 초조로 배 속이 서늘해져 온 장기가 쪼그라드는 것 같았다.
사실 어느 정도 익숙한 수치심이었다.
무경은 스무 살이 되기도 전에 폭주 중에 느끼는 안도감에 중독되었었다. 폭주 중에만 자신이 상실한 존재가 바로 곁에 있는 것처럼 느꼈으니까. 폭주 중에 느꼈던 안도의 끝자락을 쥐고서 깨어나면 도리어 지독한 허무함을 느끼면서도 지금까지 그 안도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동거인인 까닭에 자주 보일 수밖에 없었던 김하윤은 무경이 느끼는 허무함의 방아쇠였다. 그의 존재가 방아쇠를 당기면 현실이 그를 두들겼다. 짧은 찰나에 천국에서 지옥으로 처박히고, 무경은 그때마다 모멸과 수치에 벌벌 떨었다.
요즘 느끼는 수치심은 그때의 수치심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꽤 긴 시간 동안 능력을 고출력 상태로 유지하느라 문제가 생겼던 것 같았다. 고출력을 유지하느라 뇌에서는 신체 상태를 폭주와 비슷하게 인식했고, 귀가 후 김하윤을 다 씻기고 나자 긴장이 풀려 뒤늦게 내내 폭주 상태였다는 것을 느낀 것은 아닐까.
이를테면 의식이 있는 폭주 상태였다는 말이다.
‘힘은 이미 다 쓰고 왔기 때문에 폭주 후반 상태와 비슷했겠고.’
무경은 자신의 폭주가 성냥팔이 소녀의 성냥 불 같은 존재라고 생각했다. 불안정한 정신이 스스로를 위해 가장 좋았던 순간을 끌어와 자신을 달래는 것이라고 말이다. 운동 중에 아드레날린을 분비하는 것처럼.
다만 기억이 온전치 않아 환상조차 온전하지 못한 것이라고.
‘만약에 그게 환상만이 아니었다면.’
자신이 환상을 김하윤에게 덧씌웠었다면.
‘내가 김하윤을…….’
무경은 자신이 환상 속에서 어떻게 안도감을 얻어 냈는지 어렴풋이나마 알고 있었다. 상실한 존재의 부재를 보상받고자 자신이 얼마나 그를 갈구했던가. 그를 얼마나 애절하게 끌어안고 입 맞춰 숨을 나눴던가.
“…….”
천천히 숨을 들이켰다. 속으로 스미는 공기에 칼날을 달아 놓은 것만 같았다. 고작 한숨 내쉬는데도 속이 자꾸만 따끔거렸다. 동시에 울분이 치솟았다. 김하윤이 자신을 속이지만 않았어도. 그러지만 않았어도 자신이 이렇게 오랫동안 죄를 저지르지 않았을 텐데.
“대체 왜 그랬냐고.”
몸을 흔들며 따져 묻고 싶었으나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도리어 김하윤이 듣고 깰까 봐 스스로 입을 틀어막았다.
‘전부 다 김하윤이었을까?’
자신이 겪었던 모든 순간이 김하윤이었을까? 혹 김하윤에게 했던 것처럼 다른 사람에게 하진 않았을까? 그도 그럴 것이 김하윤은 자신의 조각이 아니니까.
하지만 그 느낌을 자신이 어떻게 착각할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이미 김하윤을 착각하지 않았던가.
그렇게 귀하고 소중하던 것이 고작 김하윤이지 않았던가.
무경은 거친 소리를 내며 곧장 화장실로 향했다. 꼴사납게 변기를 잡고 헛구역질을 했다. 그러나 아무리 해도 개운해지지 않았다. 무경은 문에 몸을 기댄 채 숨을 골랐다. 아무리 욕설을 뱉어도 분함이 가시지 않았다.
옷을 벗고 몸을 씻기 시작했다. 김하윤을 안았던 팔과 다리, 조금이라도 더 붙으려 비볐던 몸, 그리고 그에게 닿았던 입술까지. 살갗을 벗겨 내기라도 할 기세로 몸을 씻었다. 그렇게 한다 한들 자신이 깨끗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랬다.
“……씨발, 진짜.”
이 복잡한 마음은 언제쯤 가라앉을까.
무경은 정신없이 집 안을 서성이다가 다시 김하윤의 머리맡에 섰다. 머리끝에 겨우 닿을 것 같던 빛의 선은 어느새 김하윤 몸을 반절 넘게 가로지르고 있었다. 무경은 김하윤의 목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날과 달리 이번에는 가로막는 것 없이 거의 앞까지 갈 수 있었다.
그러나 무경은 손끝이 김하윤의 살갗에 닿기 직전에 손끝을 구부렸다. 욕이 혀끝에서 맴돌았다. 대체 왜 자신을 속였느냐고 왜 자신을 이런 진창에 처넣어서 더럽혔냐고 소리치고 싶었으나, 동시에 자신이 안다는 것을 밝히고 싶지 않았다.
자신의 치부를 그 누구에게라도 감추고 싶었다. 그러다 보니 갑갑함은 배로 불어났다. 무경은 한숨과 함께 김하윤에게서 멀어졌다. 시간을 보니 슬슬 출근을 준비해야 할 때였다.
‘더는 생각하지 마라. 제발, 생각하지 마.’
더는 김하윤의 생각에 매몰되어선 안 된다. 생각하니까 또 생각하는 것이다. 무경은 자신을 타이르며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겨우 떨쳐 내고 출근 준비를 마쳤을 때, 김하윤의 휴대전화에서 알림음이 들렸다.
“…….”
무경은 반사적으로 휴대전화를 집어 들었다. 어제 가만있으라던 말을 어기고 김하윤이 사 온 물건이었다. 몸도 성하지 않으면 쉬기나 하지. 백수가 휴대전화를 쓸 일이 뭐가 있단 말인가. 무경은 당장 휴대전화가 없으면 난리가 나는 현대인들을 무시하며 김하윤의 휴대전화 잠금을 풀었다.
익숙한 번호들을 찍어 넣었으나 잠금이 풀리지 않았다. 삼 회 정도 실패한 무경은 아예 김하윤에게 다가갔다. 그러곤 자신의 기척에 잠에서 깬 김하윤에게 잠금을 풀라고 시켰다.
‘대체 뭘 하려고.’
무경은 하윤의 휴대전화를 샅샅이 뒤졌다. 전화번호부, 통화 기록, 사진첩, 쌓인 메신저의 내용 등. 바뀐 번호를 확인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러고는 휴대전화 속에 넣을 만한 위치 추적기를 생각했다.
자기의 행동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조금도 생각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진작 이런 생각을 하지 못했다는 것이 아쉬웠다.
‘그래, 쓰러질 정도로 아팠어도 다음 날 직접 나가서 사 올 정도면 내내 붙들고 있겠지.’
그러던 중에 김하윤이 며칠 집을 비우겠다고 말했다. 본가에도 가고 자기 집에도 갔다 오겠노라고. 마뜩잖았으나, 무경 또한 적당한 시기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김하윤과 거리를 두고 생각을 정리할 필요가 있었으니까.
‘그리고 어차피 김하윤은 돌아올 거니까.’
김하윤이 가겠다는 두 곳은 그가 있을 만한 장소가 아니었다.
그런데도 막지 않은 건 그래도 밥은 잘 먹겠지 싶어서였다. 물론 본가에 잠시 들리고 주야장천 자취방에 가 있는다면 이야기는 달라지겠지만.
‘거긴 아무것도 없잖아.’
하윤의 자취방에는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 그러니까 거기엔 오래 있지 않을 거야.’
김하윤이 직접 했던 말 그대로 청소나 하고 올 것이다.
‘아, 청소.’
비쩍 곯아 버린 몸으로 자취방 바닥을 닦는 김하윤의 모습을 떠올리자 기분이 언짢아졌다. 몸도 성치 않으면서 청소는 무슨.
“…….”
무경은 손을 맞잡은 채 힘을 주었다. 또 이상한 생각을 했다. 생각하는 당시엔 이상한 줄 모르다가 빠르면 한 박자 뒤, 늦으면 반나절 뒤에서야 이상한 줄 아는 그런 생각.
◇◇◇
그 이상한 생각 중에는 하윤을 직접 본가까지 데려다주겠노라는 것도 끼어있었다. 당시 무경은 김하윤이 조금이라도 일찍 집을 떠나는 게 싫었다. 김하윤이 능력을 되찾은 것은 알았지만 자신이 데리러 온다고 생각하면 의식적으로나마 멀리 나갔다가 오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
멀리 가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그만큼 피곤할 테니까.
혹 나갔다 오더라도 데려다주는 동안에 물어나 볼 수 있겠지.
그렇게 생각하자 자신이 했던 생각이 그리 이상하다고 생각되지 않았다. 그저 조금 충동적인 것이겠거니, 쓰러진 김하윤의 모습을 보고 그답지 않게 아량을 베푼 것이겠거니 했다. 아무래도 김하윤은 아직 상태가 좋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그게 시작이었다.
무경은 김하윤을 본가에 데려다준 뒤 자신의 옛집으로 돌아갔다. 다른 건물을 올린 지 오래라 예전 모습은 찾아볼 수도 없었다. 무경은 건물 관리를 핑계로 이곳을 찾았으나 정작 건물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차에서 내리지도 않은 채, 주차장에서 대각선으로 보이는 오래된 아파트를 바라보았다.
김하윤이 모친에게 등을 맞았을 땐 당장이라도 튀어 나갈 듯이 움찔거리다가, 아주 예전처럼 밥을 먹을 때는 홀린 듯이 모든 감각을 집중했다.
‘그럴 만도 하지. 그래, 그럴 만도 하지.’
무경은 김하윤이 제대로 먹는 걸 본 지 꽤 오래되었다. 요즘엔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싫어하는지도 몰랐다.
하윤은 예전이라면 가장 먼저 젓가락을 댔을 음식을 먹지 않았다. 눈치를 보는 것일지도 몰랐다. 다치고 연락을 하지 않아 혼쭐이 났었으니까. 연락하지 않은 것은 전적으로 무경의 잘못이었으나 하윤은 오히려 그것을 다행이라고 했다.
만약 소식을 들었다면 많이 걱정했을 테니까. 또 없는 시간을 쥐어짜느라 힘들었을 테니까. 그 말을 듣는 순간에 무경은 정말 이상한 감정을 느꼈다. 가슴속을 누군가 숭덩 벤 것처럼 허전하고, 또 아프고. 그리고 김하윤이 자신이 아닌 그들을 신경을 쓰는 게 싫었다.
‘나를 봐야지, 나만 봐야지.’
무경은 이번엔 자신이 이상한 생각을 한다는 것을 눈치챘다. 그래서 곧장 변명을 댔다.
김하윤의 가족들이 그랬던 것처럼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지는 법이다. 무경은 하윤이 정말 싫지만 그래도 곁에 묶어 둘 것이다. 그래야 자신이 저지른 죄를 상기하고 아파할 테니까. 또 무경은 김하윤이 죄책감이 더는 무뎌지지 못하도록 감시해야 했다.
‘저번처럼 또 그렇게 되면 안 되니까…….’
무경은 하윤에 대한 미움을 곤두세웠다. 그러나 미움은 연약한 종이로 만든 듯이 날카롭게 벼른 끝을 얼마 세우지 못하고 팔랑거렸다.
그사이 하윤의 가족들은 하윤에게 이부자리를 내주었다. 김하윤은 예전에 자던 자리에 이불을 깔고 잘 준비했다. 무경은 그제야 밤이 깊었음을 인지했다.
하윤은 리모컨을 쥐고서 TV를 보다가, 조금 멍청한 얼굴로 웃었다. 무경은 저도 모르게 하윤의 얼굴을 따라 웃다가, 그게 못내 어색하게 느껴져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 이것 또한 그럴 만하지.’
하지만 그럴 법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어색함이 지워지지 않았다. 무경은 손끝으로 핸들을 두드리다가 다시 고개를 쳐들었다. 얼마 멀지 않은 곳에서 김하윤은 눈을 감고 있었다. 잠든 지 알 수는 없었으나, 불편해 보이지는 않았다.
잠을 방해하는 요소가 없다면 그는 얼마 안 있어서 잠이 들 것이다.
“…….”
무경은 문득 김하윤이 집에 돌아오지 않겠다고 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을 했다. 소파 위도 아니고 바닥에 이불 한 장 깔고 자는 것인데, 가뜩이나 자신이 잘못 걷어찬 바람에 허리가 아플 게 분명한데.
그런데도 김하윤이 너무 편해 보여서 걱정이 됐다.
‘이틀, 늦으면 사흘.’
김하윤은 금세 돌아올 것이다. 이틀 그까짓 거 눈 몇 번 깜빡이면 되는 것 아니던가. 사흘 그까짓 것 이틀에서 조금 더 기다리면 될 것 아니겠나. 하지만 그게 나흘이 되고 닷새가 되면…….
그러다가 한 주가 가고 몇 주가 가고 한 달이 가다가 몇 달이 가다가, 또 그게 일 년이 되어 버리면?
‘그러면 나는?’
잊고 있던 오랜 불안이 다시금 머리를 들이밀었다.
그것은 김하윤이 자신을 두고 떠나 버리는 것이었다.
문득 언젠가 꿨던 김하윤과 집에서 술래잡기하던 꿈이 생각났다. 김하윤이 능력을 쓰면 그는 늘 김하윤을 따라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무경은 김하윤의 능력이 싫었다.
“……?”
무경은 숨을 크게 들이켰다. 이어지던 생각이 순간 흩어지고 의문이 떠올랐다.
그런데 그게 김하윤이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