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화
머리가 돌아가지 않았다. 그냥 김하윤의 집 안을 뒤덮은 어둠처럼 머릿속이 새까맣기만 했다.
머리를 연거푸 쳐 보기도 했으나 딱히 소용은 없었다.
“하윤아. 하윤아, 정신 좀 차려 봐. 왜 이러고 있어.”
내내 지독하게 미워하던 김하윤. 감히 행복할 수 없고 괴로워야 하는 김하윤. 지금의 모습이 무경이 정의한 김하윤의 모습에 가장 적합한 상태였으나 무경은 받아들이지 못했다. 감당할 수 없는 일을 마주한 것처럼 당황하고 겁에 질렸다.
“김하윤. 일어나 봐. 김하윤!”
어깨를 짚긴 했으나 감히 흔들지 못했다. 무경은 소리 높여 하윤을 부르다가 도리어 자신의 목소리가 사정없이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
무경은 입술을 깨물었다. 영문도 알 수 없이 솟구치는 감정을 내리누르려 무경은 연신 목을 꼴깍였다. 어떻게든 삼켜 보려 했으나 어느 순간엔 목을 꼴깍일 수도 없었다. 그의 움직임을 따라 별 의미도, 별 가치도 없는 미지근한 액체가 바닥으로 후두두 떨어졌다.
무경은 조심스레 하윤의 뺨을 감쌌다. 얼굴에 말라붙은 핏자국이 그의 손끝에 바스러졌다. 기억이 존재하는 나이부터 고도의 훈련을 받았음에도 지금은 아무 소용이 없었다.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그 순간에 하윤의 숨결이 그의 손등을 간질였다. 미약하긴 하지만 숨을 쉬고 있었다. 무경은 조심스레 하윤의 목덜미에 손을 얹고, 가슴팍에 귀를 기울였다. 심장이 뛰고 있었다.
‘당연하지. 숨을 쉬고 있는데.’
심장이 뛰니까 숨을 쉬었겠지. 무경은 멍청해진 자신을 나무라며 하윤의 상태를 살폈다. 몸 여기저기 긁히고 붓긴 했지만 부러진 곳은 없었다. 찔린 곳이 있긴 했으나 내장을 다친 것도 아니었다.
“괜찮아, 괜찮아. 다 괜찮을 거야.”
무경은 하윤에게 하는지, 자신에게 하는지 불분명한 말을 중얼거렸다. 상태가 안 좋기는 하지만 팔다리가 다 붙어 있었다. 팔다리가 떨어지거나 괴사하진 않았으니 이대로 에스퍼 전용 병원에 데려가기만 하면 다 나을 수 있었다.
무경은 하윤의 가슴팍에 잠시 얼굴을 묻고 흐느낌을 쏟았다.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도 모른 채 다시 고개를 들고 몸을 일으키려 했다. 그러나 몸을 일으키는 것조차 자신의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몇 번을 사정하고 욕을 지껄인 뒤에야 겨우 벽을 짚고 일어날 수 있었다.
“……병원에 가자, 하윤아.”
하윤을 달래듯 속삭이던 무경은 염동력으로 하윤을 공중으로 띄우려 했다. 그러나 생각과 달리 하윤은 공중으로 떠오르지 않았다. 다리에 힘이 풀린 것처럼 능력도 그런가 싶어 다른 물건을 띄워 봤으나 하윤을 제외한 다른 물체는 문제없이 띄워졌다.
그러다가 문득 그가 오랫동안 ‘잊고 있던 게’ 떠올랐다.
‘멍청하긴, 김하윤한텐 능력을 쓸 수 없잖아.’
무경은 젖은 얼굴을 쓸어내리며 자신을 나무랐다. 그러곤 다시 바닥에 주저앉아 하윤을 조심스레 끌어안았다. 아직 몸에 제대로 힘이 들어가지 않아 걱정스러웠다. 일어나 가다 하윤을 놓칠 것만 같았다.
무경은 숨을 고르며 힘주어 몸을 일으켰다. 자신이야 바닥을 굴러도 상관없었으나 ‘김하윤’은 그래선 안 됐다.
◇◇◇
김하윤의 집을 찾아올 때보다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정신이 없었다. 무경은 김하윤의 보호를 요청하기는 했으나 능력을 되찾은 것에 관해서는 묵인했다. 당사자인 김하윤이 의식이 없는 상태라는 것을 떠올렸기 때문이었다.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도 파장이 클 텐데 의식이 없는 상태라면 어떻게 흘러갈지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 물론 도중에 검사로 밝혀질 수 있었으나, 무경은 하윤의 능력인 ‘문지기’가 매우 희귀한 능력이라는 것에 희망을 걸었다.
다만 능력이 돌아온 것을 밝히지 않아 에스퍼 전용 병원에 입원시키는 게 어려웠는데, 이 점은 에스퍼 관련 사건이라는 점을 강조해 해결할 수 있었다. 여차하면 에스퍼들이 김하윤을 노릴 수도 있으니 그에 대응할 수 있는 시설이 필요하다는 주장이었다.
어찌어찌 입원 치료를 받았으나 정작 김하윤은 좀처럼 깨어나지 않았다.
의사 말로는 별도의 조치가 필요 없고 관으로 영양을 공급하고 충분히 쉬게 해 주면 일어날 것이라는데 좀처럼 믿을 수가 없었다. 이미 무경 역시 의사의 진단과 비슷한 생각을 했음에도.
“…….”
어쩌면 비슷한 말을 이미 몇 번 들었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진단받은 뒤 김하윤은 자리를 털고 일어나긴 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쓰러졌다.
이러다가 정말 못 일어나게 된다면.
‘아니.’
그럴 일은 없었다.
무경은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을 지우기 위해 애썼다. 이게 다 박건영이 허튼소리를 했기 때문이었다. 그놈이 김하윤이 죽을 것 같다는 말만 안 했다면 자신이 이렇게 동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무경은 박건영을 탓하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이미 시간은 퇴근 시간을 훌쩍 넘겼고, 김하윤이 깨어나지 않은 지는 사흘이 지난 즈음이었다.
무경은 집 대신 하윤이 입원해 있는 병원으로 향했다. 일반 병동이라면 면회가 제한된 시간이지만 에스퍼들을 대상으로 한 병원에다 일인실에 입원해 있어 시간에 구애받지 않았다.
익숙하게 병실을 찾아간 무경은 문 앞에서 잠시 멈춰 섰다. 이상하게 요즘 김하윤의 병실에 들어갈 때마다 가슴이 요란하게 술렁였다. 무경은 크게 숨을 내쉬며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갔다.
아직 잠들어 있는 김하윤의 얼굴을 확인한 손에 들고 있던 짐을 내려놓았다. 그런 다음 손과 얼굴을 깨끗이 씻고 난 뒤에야 하윤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김하윤은 입원하기 전 얼굴보다 지금 안색이 훨씬 나았다. 물론 몸에 난 상처들을 생각하면 입원 전이 낫겠지만 말이다.
무경은 손을 뻗어 김하윤의 뺨에 자신의 손등을 갖다 댔다. 뺨을 살짝 누르곤 손을 떼어 이마를 가리고 있는 머리칼을 쓸어 넘겼다.
“이만큼 잤으면 이제 일어나야지. 언제까지 잘 거야.”
툭 내뱉었으나 평소같이 날 선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정신을 차리지도 못하는 환자한테 날을 세울 수 없어 그런가 싶다가도, 이전을 생각하면 딱히 환자라고 봐준 적이 없었다. 오히려 그런 마음이 들수록 모질게 굴었으니까.
‘확실히 요즘 좀 내가 이상하기는 한데.’
요즘 무경은 평소라면 하지 않을 이상한 행동을 곧잘 하곤 했다. 잠든 김하윤 앞에서 목소리가 흐물흐물해진 것도 그 이상 중 하나였다. 문제는 병실을 들어가기 전이나 나온 뒤에는 이를 의식하면서 김하윤 앞에선 깡그리 잊어버리거나 경각심을 느끼지 못했다.
‘그리고 지금도.’
이상하다고 생각만 했다. 사실은 이상하지 않은 것처럼.
더는 김하윤을 미워할 필요가 없는 것처럼.
무경은 하윤의 어깨를 움켜쥐었다. 마른 어깨가 조금 낯설게 느껴졌다. 관계할 때 빼고는 김하윤에게 닿지도 않으면서, 그때마저도 어깨를 움켜쥔 일이 없었으면서. 무경은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도 하윤에게서 손을 떼지 않았다.
어깨를 움켜쥐고 있던 손은 어느새 팔뚝으로, 팔목으로 내려갔다. 그러나 상처가 그득한 손은 차마 만지지 못하고 가까이서 손끝만 까딱였다. 미동도 없는 하윤을 가만히 바라보던 그의 몸통 아래로 손을 밀어 넣었다.
일으키려던 참이었으나 무경은 곧장 하윤을 일으키지 않았다. 가슴으로 맞닿은 신체의 온기에 굳은 것처럼 가만히 있다가, 등을 받치고 있던 손을 조였다. 바짝 몸을 붙이고 숨을 죽이자 그제야 하윤의 소리가 들렸다.
심장이 뛰는 소리, 숨소리, 살아 있는 소리였다. 무경은 천천히 고개를 돌리다가 하윤의 목덜미에 닿을 듯 가까운 곳에서 멈췄다. 가슴이 쿵쿵 뛰고 배 속이 서늘해졌다. 어릴 때도 느끼지 않았을 것 같은 죄책감이 밀려들었다.
이러다가 김하윤이 깨어나면 어쩌나 싶다가, 오히려 깨우려 그랬노라는 변명을 떠올렸다. 무경은 아예 하윤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었다. 얼굴과 맨 살갗을 비비다가 하윤의 등을 어루만졌다. 무경은 아주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일어나 봐. 내가 지금 너 만지고 있잖아.”
그러나 하윤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대로 영영 깨어나지 않을 것만 같았다.
‘이깟 걸로 김하윤이 어떻게 죽어.’
무경은 자신을 비웃었다. 너무나 멍청한 생각이었다. 뼈가 부러져 내장을 찌른 것도, 팔다리가 끊어져 쇼크가 온 것도 아니다. 비록 몸에 남은 상처가 많았으나 어디까지나 회복 가능한 상태였다. 적절히 조치했기 때문에 죽으려야 죽을 수 없었다.
무경은 확인차 김하윤의 얼굴을 응시하다가, 이내 코웃음 쳤다. 마침내 의심을 지워 낸 무경은 익숙하게 김하윤의 수발을 들기 시작했다. 다시금 그를 안아 들었다. 김하윤은 염동력으로 들기 어려웠으므로 자신에게 기대게 하는 수밖에 없었다. 무경은 의식이 없어 축 늘어진 김하윤을 조금의 어려운 기색 없이 능숙하게 다뤘다.
옷을 갈아입히고 염동력으로 띄운 물방울을 이용해 몸 구석구석을 꼼꼼하게 닦았다. 깨끗한 새 옷으로 갈아입히며 동시에 침구를 갈았다. 간병인에게 도움을 받아도 될 부분이었으나 첫날 한번 시도했다가 도무지 참을 수가 없어 그날 이후로 그가 직접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건 보안 문제도 있고.’
무경은 자기 행동에서 또다시 이상을 발견했으나 곧장 반박했다. 김하윤의 보호를 위해 에스퍼 전용 병원에 입원시켰으니 위험 요소를 줄이려고 노력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그러기 위해서 하윤의 수발을 드는 건 자신이 감수해야 할 아주 작은 문제라고.
또한, 이 주장을 확고히 하려 김하윤의 가족들에겐 연락하지 않았다. 김하윤의 상처는 심하기는 하지만 목숨에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었고 에스퍼 전용 병원에 입원한 만큼 민간인의 출입이 어려웠다.
괜히 그쪽에서 일반 병원으로 옮겨 간호하겠다고 하면 일이 꼬인다.
게다가 무경은 그들이 손쉽게 하윤을 데려가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김하윤한테 아무것도 해 줄 수도 없고, 해 주려고도 하지 않으면서.
‘방 한 칸 주지도 않을 거면서. 기준이 그 새끼는 머리 굵어졌다고 건방지게 굴고.’
무경은 평소엔 의식하려고 하지 않았던 하윤의 말을 떠올렸다.
‘불러 놔 봤자 또 김하윤 속만 긁을 거야.’
정말 목숨이 경각에 달했다면 무경 또한 김하윤의 가족들에게 연락했을 것이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김하윤은 죽을 정도로 심각한 상처를 입은 게 아니었다. 어쩌면 민망하게 왜 연락했냐고 다른 의미로 원망할지도 몰랐다. 그러니 괜히 연락해서 뺏기고 싶지 않았다.
‘그래, 죽을 상처는 아니야. 앞으로 고생을 좀 할 뿐. 절대 죽을 상처는 아니야.’
무경은 거듭 중얼거리며 하윤의 환자복 매무새를 다듬었다.
‘당연하지. 김하윤이 죽을 리가 없으니까. 죽으려면 진작 죽었지.’
무경은 어느새 또 이불 밖으로 삐죽 튀어나온 하윤의 손을 잡아 살뜰히 살폈다. 무슨 짓을 했는지 손이 엉망이었다. 첫날엔 손도 못 대 볼 정도였지만 사흘이 지나자 어찌해 보려는 시도는 할 수 있었다. 물론 겨우 사흘이 지났을 뿐이라 할 수 있는 것은 얼마 없었지만.
‘그냥, 어쩌다가 높은 곳에 갔다가 미끄러진 거야.’
왜 몇 번이고 집에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는지는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이를 떠올리는 것만으로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무경은 깊어지려는 생각을 끊으려 하윤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깊이 숨을 들이켜자 김하윤의 체취와 병원 냄새가 섞여서 났다.
이전이라면 진절머리가 났겠지만, 지금은 병원 냄새가 묘한 안도감을 줬다. 김하윤의 상태가 갑자기 나빠지더라도 바로 조치가 되겠구나 싶어서였다. 자신이 당황해서 아무 생각을 못 하더라도 여기는 대신 생각해 줄 사람들이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