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화
시설을 벗어난 뒤 무경은 간단한 보고서와 함께 김희원의 선물을 제출했다. 곧이곧대로 전해 줄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다.
다만 무경은 연구원들이 시료를 위해 선물 일부를 잘라 내는 모습을 지켜보며 손바닥을 긁었다. 김희원이 만든 목조각품은 직관적으론 뗀석기 같았는데, 잘 봐주면 반달이나 새 몸통 부분 같았다. 목조각품을 본 연구원들의 의견도 분분했다.
모양을 보고 말하는 게 아니라 그냥 되는대로 던지는 말이 많았다.
반달, 고구마, 뱁새 몸통, 펭귄 등등.
김하윤이 본다 한들 뭔지 알아나 볼까 싶었다.
‘뭐냐고 물으면 직접 물으라고 하는 수밖에.’
“소령님. 손바닥 괜찮으십니까? 벌레라도 물리신 건가 해서요. 필요하시면 약을 갖고 오겠습니다.”
부하가 건네는 말에 무경은 자신이 아직도 손바닥을 긁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괜찮다며 대충 얼버무리고 자리를 피했다. 하지만 괜찮다는 말을 한 것과 달리 아직도 손바닥이 거슬렸다. 꺼림칙하고 아주 더러운 것을 맨손으로 만진 기분이었다.
무경은 긁고 또 긁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중에도 신호에 설 때마다 긁었다. 해소되지 않는 가려움에 짜증이 일기 시작하더니 나중에는 걷잡을 수가 없었다. 심장이 온몸을 두드리듯 거세게 뛰고 귀가 일순 먹먹하더니 이명이 들렸다.
폭주의 징조였다.
의도적으로 폭주할 때는 마른걸레 짜듯 버겁던 것이 이번에는 둑이 터진 것같이 막기 어려웠다. 금방이라도 사방으로 터져나갈 것 같은 힘을 제어하며 무경은 차를 돌렸다. 집 근처에 아직 공사에 들어가지 않은 공터가 있었다.
무경은 그곳에 차를 대고서 입안에 약을 밀어 넣었다. 무경은 무중력 공간 같이 허공에 떠오른 소품들을 보다가 핸들에 얼굴을 묻었다.
목을 꼴깍일 때마다 땀방울이 똑똑 떨어졌다.
‘집에 가야 하는데.’
이미 너무 늦은 시간이었다.
‘기다릴 텐데.’
자꾸만 서재의 사진이 떠올랐다. 김하윤과 닮은 김희원이 케이크를 앞두고 있던 모습도 생각났다. 무경은 천천히 숨을 골랐다. 괜히 생각에 매몰될 필요가 없었다. 진정해야 했다. 그러나 생각과 달리 자꾸만 숨이 흐트러졌다.
‘이대로는 갈 수 없어.’
핸들을 쥔 손의 마디가 희어질 때 쯤, 휴대전화가 울리기 시작했다.
김하윤이었다.
무경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아니, 받을 수가 없었다.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안 될 것 같았다. 무경은 계속 이어지는 통화음을 들으며 눈을 감았다.
약효가 드는 중인지 잠시 눈을 감는 것만으로 정신이 아득해졌다. 그러다가 이따금 억지로 눈을 떴다. 눈꺼풀이 발발 떨렸으나 개의치 않았다. 오로지 눈을 떠서 주변을 확인했다.
혹시나 늘 그랬던 것처럼 그 애가 자신의 곁을 지키고 있을까 봐.
그러나 차 안엔 무경만 있을 뿐이었다.
가끔 걸려 오는 김하윤의 전화만 아니라면 그는 완벽한 침묵 속에 잠겨 있었다.
무경이 어느 정도 몸을 가눌 수 있게 되었을 무렵에는 어느새 하루가 끝나려던 때쯤이었다. 무경은 계속해서 걸려 오는 하윤의 전화를 그저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적당히 좀 하지. 할 말이 있으면 그냥 문자로 하면 될걸. 그러나 막상 걸려 온 전화를 끊어 버리지도 않았다. 결정을 내리지 못한 엄지손가락이 휴대전화 화면 위에서 까딱였다.
“……!”
그러던 중에 잘못 눌러 전화를 받고 말았다. 무경은 바뀐 화면에 아차 싶어 전화를 끊으려 했으나 도리어 그 모습이 이상해 보일까 봐 망설였다.
한편 하윤은 말이 없었다. 그렇게 걸던 전화를 받았음에도 무경을 부른다거나 하지 않고 그저 침묵을 고수했다. 무경은 희원과 대치했을 때처럼 휴대전화를 노려보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결국 김하윤이 먼저 입을 열었다.
[……무경아, 생일 축하해.]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왜 그러는지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온 내장이 쥐어짜이는 것만 같았다. 꼭 심한 죄책감을 느끼는 사람처럼.
무경은 자신도 모르게 입술을 짓씹었다.
[내가 괜히 온다고 말을 꺼내서 불편했겠다.]
김하윤 말이 맞았다. 누가 반길 줄 알고 생일 핑계를 대고 집에 찾아오려고. 무경은 애써 미움을 쥐어 짜내다가 기운을 뻗어 냈다. 선 형태로 뻗어져 나간 기운은 익숙한 길을 따라 올라갔다. 어느새 집에 다다른 기운은 김하윤의 존재를 읽어 냈다.
분명 차 시간이 늦으면 먼저 가라고 했는데 아직도 집에 있었다. 미련하게. 연락이 닿지 않으면 적당히 하다가 돌아갔었어야지. 사람 불편하게 버티고 있을 게 아니라.
‘재우는 수밖에 없겠다.’
마음 같아선 그냥 네 집으로 가라고 보내고 싶었으나 인도적인 차원에서 그럴 수 없었다. 무경은 핸들을 잡으며 신음을 삭였다. 입술이 제 마음대로 삐죽거리고 곤두섰던 신경이 누그러들었다. 김하윤이 이어 말한 말이 아니었다면 금세 진정하고 집으로 들어갔을 것이다.
[너무 늦은 것 같아서 난 먼저 집에 가는 중이야. 내가 신경 쓰여서 못 오는 걸까 봐 전화 남긴 거야.]
그런 거짓말에 누가 속을까 봐. 무경은 비웃음을 삼켰다. 일대의 교통편은 다 운행을 종료했다. 허가서를 발급받은 사람이 아니라면 이 시간에는 통행이 제한되었다. 무경이 데려다주거나 혹은 무경의 차를 빌려서 김하윤이 직접 운전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꼼짝없이 첫차 운행을 기다려야 할 터였다.
‘그게 아니면…….’
문득 떠오른 생각에 무경은 눈을 부릅떴다.
‘그게 아니라면 직접 이동하든가.’
이전 날에 세상에서 도려내듯 사라졌을 때처럼 능력을 사용해 이동하거나. 무경은 몸을 뒤로 젖혔다. 그제야 맨눈으로 자기 집이 보였다. 그가 보내 놓은 기운이 김하윤의 발치를 감았다. 과연 김하윤은 확실히 능력을 되찾았을까?
이번에도 사라진다면 혹 아닐 수도 있다는 약간의 가능성조차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건강하게 잘 지내. 희원이한테도 안부 전해 줘. 이제 끊을게.]
“…….”
전화를 끊고 나서 하윤은 바쁘게 움직였다. 그리고 무경은 하윤을 몇 번 놓쳤다. 무경은 황급히 집으로 돌아갔다. 집으로 향하는 걸음걸음이 그날 아침과 닮아 있었다.
집 안에 들어가자 음식 냄새가 남아 있었다. 무경은 기운으로 방 안을 훑으며 얼굴을 쓸어내렸다. 이제 더는 빼도 박도 할 수 없었다. 김하윤의 능력이 돌아온 것을 확실하게 확인했으니까.
거친 숨이 쏟아지고 머리가 어지러웠다. 무경은 비틀거리다가 소파를 짚었다.
음식 냄새처럼 누군가 누웠던 흔적이 남아 있었다. 무경은 소파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말로 형용하기 어려운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
이대로 김하윤을 가만둘 수 없었다.
물론 아직도 김하윤이 능력을 되찾았다는 것을 밝히는 데에는 회의적이었다. 그러나 이전처럼 관리해선 안 됐다. 연구소에서는 김하윤의 신원이 확실하다는 점을 들어 모든 데이터를 느슨하게 확인하고 있을 테니까.
하지만 박건영이 했던 말대로 무경에겐 김하윤의 일까지 맡을 여유가 없었고, 일종의 국가공무원인 탓에 행동에 제약이 있었다.
그러나 박건영에게는 죽어도 일을 맡기고 싶지는 않았다.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누군가에게 김하윤을 맡긴다는 게 무경에겐 너무나 이상한 일같이 느껴졌다. 당연히 자신이 맡아야 했다.
무경은 김하윤의 보호와 정보 수집을 강화를 요청한 뒤 어제와 같은 방법으로 김하윤의 소재를 파악했다. 자신이 직접 맡지 못하는 동안 이 정도는 해야 마음이 놓일 것 같았다.
김하윤은 이 시간이면 회사에 있을 것이다.
‘영업직이라 밖에 있을 수도 있겠지만.’
뻗어 낸 기운이 김하윤의 회사에 도착할 때쯤 무경은 휴대전화를 꺼내 들었다. 김하윤에게 전화를 걸었으나 그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바빠서 전화를 못 받을 수도 있으니까.’
예전에 나타난 고등급 괴수 때문에 김하윤의 회사 내 배치도를 알아 둔 것이 도움이 됐다. 무경은 하윤의 자리였던 곳을 확인했으나 김하윤을 발견하지 못했다. 사무실과 건물을 샅샅이 뒤져도 김하윤의 기운은 느껴지지 않았다. 자리 또한 텅 비어 있었다.
무경은 재차 김하윤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한참 울렸으나 전화를 걸기까지 걸린 시간에 비하면 보잘것없었다. 무경은 인내심 있게 김하윤이 전화를 받을 때까지 기다렸다. 그러나 김하윤은 전화를 받지 않았고 나중에는 전화는 아예 전원이 꺼졌다는 안내음을 뱉었다.
‘받아. 제발, 좀 받아.’
홀로 겨울을 맞이한 것처럼 한기가 느껴졌다. 무경은 차가워진 손끝을 말아 쥐었다. 무경은 이어 김하윤의 회사로 전화했다. 업무 때문에 김하윤을 찾는 것처럼 묻자, 오늘 퇴사했다는 말이 돌아왔다.
‘퇴사했다고?’
김하윤은 독립 겸 회사 가까운 곳으로 가기 위해 이사를 했다. 회사를 그만둘 생각이었으면 그딴 곳으로 이사할 필요가 있었을까?
‘그때 있었던 일 때문일까.’
무경은 이전에 만났을 때 부었던 하윤의 뺨을 떠올렸다. 회사에서 어떤 문제가 있었던 걸까? 그래서 홧김에 회사를 그만둔 걸까?
‘그럼 어디에 갔지?’
무경은 하윤의 집으로 기운을 뻗었다. 그러자 놀랍게도 하윤의 기운이 느껴졌다. 누군가 세게 쥐고 있던 심장이 놓인 것처럼 안도감이 밀려들었다.
그러나 마음을 놓기 무섭게 김하윤이 다시 사라졌다.
“…….”
김하윤은 계속해서 자취방에서 사라졌다가 나타나기를 반복했다. 그 주기가 빠를 때도 있었고 느려질 때도 있었다. 김하윤이 사라질 때마다 온몸의 털이 삐죽 섰다. 온 신경이 곤두서 작은 소리에도 소스라치게 놀랐다.
무경의 주변의 가벼운 금속과 플라스틱은 그의 능력의 영향으로 모양이 변형되다 못해 찢어졌다. 스스로 기관 격리를 고민하다가 퇴근 시간이 되자마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아침에 늦은 만큼 일이 쌓여 있었으나 그런 걱정거리 따위는 무경의 머리에 들어오지 못했다.
어떻게 운전해서 도착했는지 기억이 없었다. 무경의 신경은 하윤의 자취방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가 차를 끌고 나와 일반 도로로 나왔을 때, 사라졌다가 나타나길 반복하던 김하윤이 마침내 움직임을 멈췄다가, 중간쯤 왔을 때 다시 사라졌다.
그 순간 무경은 도무지 견딜 수가 없어서 괴성을 질러 댔다. 그 와중에 사고를 내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무경은 곧장 차에서 내려 하윤의 자취방으로 향했다. 건물 입구에 다다를 때까지도 김하윤은 자취방 안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막 계단을 오를 때, 그때 다시 자취방에 나타났다.
‘제발, 제발, 제발!’
키패드를 앞에 뒀을 땐 손이 덜덜 떨렸다. 또 그새 사라질까 봐 겁이 났다. 그래, 더는 부정하지 못할 만큼 겁이 났다.
‘씨발!’
당연하게도 무경은 키패드의 비밀번호를 몰랐다. 입술을 짓씹은 채 속으로 온갖 욕설을 내뱉었다. 이대로 부숴 버릴까 생각하다가 문득 손이 가는 대로 번호를 눌렀다.
“……!”
열릴 리가 없는데 문이 열렸다.
하지만 놀랄 틈이 없었다. 무경은 곧장 열린 문 안으로 들어갔다. 좁은 현관에 서자 센서 등 불빛이 방 입구를 밝혔다. 흙으로 엉망이 된 방 한가운데 자리한 김하윤의 다리가 잠시 보였다가, 센서 등이 꺼지며 다시 어둠에 잠겼다.
안에 들어가야 하는데 발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씨발……. 씨발!”
욕을 하고 주먹으로 때려도 도무지 움직여지지 않았다. 결국, 무경은 넘어지듯 방 안에 들어가 하윤에게 기어갔다. 어두워 보이지 않아도 다 알 수가 있었다. 고작 어둡다고 해서 자신이 김하윤을 알아보지 못하는 건 말이 안 됐으니까.
“김하윤.”
무경은 하윤의 뺨을 톡톡 두드렸다. 그러나 김하윤은 축 늘어져서 미동하지 않았다. 무경은 겁에 질려서 숨만 헐떡였다. 거칠어진 숨에 울음이 따라붙었다. 무경은 저도 모르게 짐승같이 흐느끼는 소리를 내다가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