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화
김하윤의 집으로 올라가는 길은 김하윤이 겁준 것과 달리 그리 어렵지 않았다. 무경은 군인이었고 한계에 다다른 상태에서 고강도 훈련을 받는 일도 잦았다. 조금 어질어질한 상태에서 비탈길 올라가는 정도야 식은 죽 먹기보다 쉬웠다.
그러나 김하윤의 집으로 가는 길이라는 명제 때문이었을까. 평소엔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던 도심의 오염에 그의 신경을 건드리고, 인내심을 쥐어짰다.
버젓이 쓰레기 무단투기 금지라고 쓰인 담벼락 아래 쌓인 쓰레기봉투, 하수구 틈새로 불쑥 튀어나오는 팔뚝만 한 쥐, 그리고 그런 쥐를 노리고 튀어나오는 길고양이. 거기에 미처 지워 내지 못한 각종 오물과 실시간으로 가래침을 뱉고 있는 행인까지.
한여름에 들들 끓는 아스팔트 길 위를 포복할 때도, 혹한기에 땅을 파고 들어가 잠을 잘 때도 멀쩡했던 비위가 지금 뒤집힐 것만 같았다.
그중 가장 싫었던 건 김하윤 집 비밀번호 패드에 남아 있는 담배 자국이었다. 그냥 담배를 피워선 있을 수 없는, 어떤 용도로 담배를 들이대다 남은 자국.
비위가 뒤집히다 못해 가슴이 쿵쿵거리더니 조금 더 있자 귀가 먹먹했다. 입안이 바짝바짝 말라 마른침만 계속 꼴깍거렸다.
“…….”
“잠시만!”
무경의 상태를 알지 못한 김하윤은 후다닥 먼저 집에 들어갔다.
“잠시만, 내가 말할 때까지 들어오지 마. 거기 잠시만 서 있어!”
무경이 벽에 기대 몸을 지탱하는 사이, 김하윤은 좌우를 바쁘게 오가며 집을 치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쓸모없는 짓이었다. 중문이 없어 이미 훤히 다 봤기 때문이었다.
“아휴, 하필 안 치운 날에.”
김하윤은 바닥에 떨어져 있는 옷과 맥주캔, 생수병을 한 아름 안더니 좌측 작은 방으로 들어갔다. 그 안에서 또 바쁘게 부스럭거린 다음 다시 밖으로 나와 점검하듯 주변을 둘러보더니 그제야 무경을 집 안으로 들였다.
“후우, 들어와.”
짧은 사이 바쁘게 움직인 탓일까. 김하윤의 이마에 땀이 맺혔다. 무경은 김하윤을 힐긋 바라보다가 집 안으로 들어갔다.
현관과 얼마 차이도 없는데 꼴에 집 안이라고 느낌이 조금 달랐다. 어쩐지 익숙한 향기가 무경을 반겼고 덕분에 낯선 공간임에도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다. 무경은 천천히 방 안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사실 아까 서서 다 봤기 때문에 둘러볼 것도 없었다. 방 안은 현관까지 다 합쳐 여섯 평이 될까 말까 했다. 그리고 그 작은 방 안에 냉장고와 침대, TV와 전자레인지, 그리고 그것들이 놓인 선반까지 다 들어가 있었다.
일반인 치고 큰 키인 김하윤과 에스퍼 중에서도 키가 큰 편인 무경이 함께 서 있자 집 안이 꽉 찼다.
가슴이 갑갑하고 숨이 턱 막혔다.
더 좁은 공간에 있을 때도 이런 느낌을 받은 적이 없었다. 무경은 당혹스러움을 감추며 방 좌측에 있는 미닫이문을 열었다. 그 안에서 부스럭거린 것으로 보아 다른 방이 있겠거니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무경의 생각대로 공간이 있긴 있었다. 작은 싱크대 하나와 성인 남성 하나 서면 끝일 공간이.
‘이게 끝인가?’
혹 자신이 발견하지 못한 문이 있나 싶어 벽을 슬쩍 더듬어도 봤으나 정말 그게 끝이었다.
“…….”
“아, 혼자 있을 땐 괜찮은데 너 오니까 좁네. 일단 거기 앉아.”
김하윤은 자리를 턱짓하며 앉을 자리를 알려 주었지만, 무경에겐 거기가 거기였다. 다른데 앉고 자시고 할 공간이 아니었다.
의심의 끈을 아직 놓지 못했던 무경은 앉는 척하며 벽을 슬쩍 두드렸다. 마침 빈 소리가 났다. 다른 공간이 있는 게 틀림없었다.
“크흠, 빈 소리 나는 건 가벽이라서 그래.”
“가벽?”
“원래는 방 두 개짜리 방이었는데 사정이 있어서 반으로 나눴다더라. 규제 풀렸을 때 한 거라 법에 걸리지도 않고. 뭐, 지금은 모르겠지만.”
무경은 말을 하는 대신 자기 얼굴을 쓸어내렸다.
“가벽이면 방음이 안 되잖아.”
“덕분에 룸메이트 있는 것처럼 살지 뭐. 근데 그것 말고는 괜찮아.”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뒤통수가 얼얼했다. 진짜 그게 괜찮냐고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다. 아니, 어쩌면 김하윤은 제게 시위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네가 나가라고, 나가라고 재촉하고 쫓아낸 탓에 이런 곳에서 산다고.
“야, 내가 너희 집 가라고 그랬지. 너 고생한다고.”
“…….”
“네가 자초한 거야. 아니면 지금이라도 갈까? 나 옷 벗기 전에 빨리 말해.”
“……지금 가면 시간이 늦잖아. 너 내일 출근 어떻게 하려고.”
“그게 내가 할 말이야. 둘 중에 누가 어렵겠냐? 네가 우리 집에서 출근하는 거랑 내가 너희 집에서 출근하는 거.”
저는 차가 있어 괜찮다고 하기엔 내일 상태를 장담할 수 없었다. 위를 세척하지 않는 이상 어지러움이 계속될 수 있었으니까. 반면 김하윤은 차가 없어도 익숙한 길이었다. 요 한 달을 제외하면 입사할 때부터 다닌 길이었으니까.
무경이 대답하지 않고 버티자 결국 포기한 건 하윤이었다.
“나 그냥 씻는다. 번복하지 마.”
무경은 대답 대신 고개를 까딱였다. 이를 본 하윤은 고개를 젓다가 옷을 벗기 시작했다. 무경은 여태 같이 산 세월이 무색하게 당황했다. 애써 태연함을 가장하며 시선을 돌렸다.
김하윤이 욕실에 들어가고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린 뒤에야 무경은 참았던 숨을 천천히 내 쉬었다.
‘돌겠군.’
그 잠깐의 틈을 타 후회가 밀려들었다. 왜 저답지 않게 억지를 썼을까. 조금 전 자신의 행동을 곱씹어 보자 나오는 건 한숨밖에 없었다. 그러나 후회해 봤자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물론 염동력의 소유자인 무경은 쏟아 낸 물쯤은 가볍게 주워 담을 수 있었으나…….
“…….”
그러려면 김하윤에게 아쉬운 소리를 해야 했다. 그럴 수는 없었기 때문에 무경은 이만 단념하기로 했다.
이미 흐트러질 대로 흐트러진 자신의 옷차림새를 훑어보다가, 당장 벗을 수 있는 옷은 벗었다. 무경은 벗은 옷은 대충 개키며 재차 김하윤의 방을 둘러보았다. 좁긴 했지만 그래도 있을 건 다 있었다.
무경은 괜히 세탁기와 싱크대 선반, 그리고 옷장을 열어 보았다. 당연하게도 사람 그림자 하나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옷이…….’
김하윤의 옷이 이렇게 적었던가? 무경은 예전 집에서 김하윤의 옷가지가 차지하던 공간을 떠올렸다. 제 옷에 비하면 원래도 적긴 했었다. 더군다나 김하윤은 해가 지나면 지난 옷가지들과 짐을 정리하곤 했으니까.
그래도 그때는 한 칸을 차지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정말 적은 양의 옷만 들어 있었다. 혹 옷이 더 있나 싶어 옷장에 붙은 서랍장을 열었으나 그곳은 양말과 속옷 몇 벌이 들어가 있을 뿐이었다.
무경은 문득 김하윤이 제게 덮어 주었던 낡은 겨울 코트를 떠올렸다. 아침저녁으로 쌀쌀한 바람이 불기는 했지만 이제 완연한 봄에 접어들었다. 그런 시커먼 겨울 코트를 입을 정도는 아닌 날씨였다.
‘집에 있는 옷들이 낡아서 아예 새로 살 생각일 수도 있지.’
하지만 그렇다고 생각해도 옷이 적었다. 무경은 작년까지만 해도 하윤이 잘 입던 봄옷을 떠올리다가 이마를 짚었다.
‘생각해서 뭐 하게.’
옷이 있든 말든 김하윤 사정이었다. 자신이 상관할 바가 아니었다. 무경은 아무 미련 없다는 듯이 옷장 문을 닫았다. 하지만 상관없다고 생각한 것과 달리 시선은 주방이 있는 쪽방을 향했다.
적어도 거기엔 그가 알아서 처분하라고 했던 식기들이 있을 것 같았다.
“…….”
그러나 무경의 예상과 달리 김하윤이 집에서 썼던 식기들은 보이지 않았다. 밥그릇 하나 냄비 하나 보이지 않았다. 사은품으로 받았나 싶은 플라스틱 컵 하나 외에는.
이사 온 당일이라면 이해할 수 있었겠지만, 김하윤은 이 집에 산 지 한 달이 다 되어 가고 있었다. 보다 못한 무경은 주방 한구석에 자리한 플라스틱들을 뒤적였다. 죄다 맥주 아니면 생수통밖에 없었다.
‘여름도 아닌데. 이러니까 내가 마음을 못 놓지.’
편하게 해 주려고 해도 그럴 수가 없었다. 잠깐 안 봤다고 그새 이렇게 살이 빠져 버리지 않았나. 싫다고 해도 한동안 곁에 두고 꼬박꼬박 챙겨 먹여야겠다.
다짐하듯 고개를 주억거리던 무경은 자신의 생각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지금 내가 무슨 생각을.’
아직 약 기운이 남아서 정신이 없는 게 분명했다. 무경은 거칠게 얼굴을 쓸어내리고 그것도 모자라 살짝 뺨도 쳤다. 그러나 아직 꿈을 꾸는 듯 머릿속이 조금 멍했다.
그때 욕실 문이 발칵 열리고 속옷 차림의 김하윤이 밖으로 나왔다. 욕실이 좁은 탓에 제대로 닦지 못했는지 나온 뒤에야 몸 여기저기를 닦았다.
“너도 씻어. 좀 좁긴 한데, 그래도 못 씻을 정도는 아니야. 아니면 오늘은 좀 참고 내일 아침 일찍 사우나라도 가든가.”
무경은 하윤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대로 김하윤과 둘이 있는 것보다 어디라도 들어가는 게 낫다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막상 욕실 안으로 들어오자 나오는 건 한숨밖에 없었다.
“…….”
변기와 세면대가 바짝 붙어 있고, 세면대 위에는 샤워기가 매달려 있었다. 무경은 고등학교 수련실에 붙어 있던 샤워실을 떠올렸다. 그곳엔 변기는 없었고 세면대와 샤워 시설만 있었지만 딱 요만 했었다.
추억의 공간을 떠올렸기 때문일까. 뭔가 생각날 듯 말 듯 속이 간질거렸다. 그러나 뚜렷하게 떠오르는 게 없었다.
무경은 세면대 거울에 비친 자신을 피하듯 고개를 돌렸다. 마침 고개를 돌린 곳에 김하윤이 꺼내 놓은 듯한 새 칫솔이 보였다. 무심코 칫솔을 집던 무경은 칫솔이 있던 선반 아래 놓인 반지를 발견했다.
흠집이나 뭐나 김하윤이 죽고 못 살던 그 반지가 맞았다.
빼놓은 지 좀 시간이 지난 것인지 반지 밑에는 물 마른 자국이 남아 있었다.
‘집에선 빼놓지도 않았는데.’
당연했다. 이렇게 벗어 두고 다녔으면 진작에 자신이 버렸을 테니까. 무경은 가볍게 웃으며 반지를 집어 들었다. 그냥 척 봐도 김하윤에겐 몇 치수는 큰 반지였다. 그리고 김하윤은 이 헐거운 반지를 줄이지도 않고 고집스레 끼고 다녔다.
무경은 손가락 사이에 반지를 넣고 이리저리 돌리다가, 아예 반지를 껴 보았다. 검지는 첫 번째 마디에서 걸렸고 중지도 중간에 걸렸다. 네 번째 손가락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쑥 들어갔다.
자신의 왼손 네 번째 손가락에 들어간 반지를 보자 기분이 묘했다. 무경은 들키기라도 한 양 서둘러 반지를 빼내려 했다. 꼭 들어맞는 탓에 잘 빠지지 않았다. 손가락 주변이 벌겋게 되고 나서야 겨우 빼냈다.
문득 잔뜩 기대감에 부풀어 어딘가로 향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편지가 가득한 가게에 갔다가, 또…….
‘어디를 갔었는데.’
무엇을 했는지, 그걸로 무엇을 하려고 했는지.
늘 그렇듯 기억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