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화
새벽으로 접어든 시간. 늦은 귀가를 한 무경은 집 앞에 서서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과로한 탓인지 머리와 몸이 무겁게 느껴졌다. 느릿하게 눈을 끔뻑이던 그는 한숨과 함께 문에 이마를 기댔다.
“…….”
그저 문을 열고 들어가기만 하면 되는데 그게 몹시 힘든 일처럼 느껴졌다. 무경은 연거푸 한숨을 내쉬다가, 눈을 질끈 감고 나서야 겨우 문을 열었다.
익숙한 냄새가 먼저 그를 맞았다. 숨을 들이켜던 무경은 습관처럼 자동센서에 환하게 밝아진 바닥을 눈으로 쓸 듯 바라보았다. 아무것도 없었다. 무경은 정지 버튼이 눌린 것처럼 몸을 굳혔다가, 이내 삐걱거리는 몸짓으로 신발을 벗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센서등이 꺼지자 집 안은 다시 어둠으로 물들었다.
무경은 긴 숨을 뱉다가 소파 위에 겉옷을 던졌다. 오랜만에 집에 들어와서일까. 오늘따라 유독 집이 어색하게 느껴졌다.
‘너무 안 들어왔나.’
무경은 눈을 질끈 감은 채 자신이 집에 드문드문 들어오던 때를 되짚었다. 구로 사거리에서 정신계 괴수가 나타났던 날. 아니, 그로부터 며칠 뒤였다. 김하윤이 이틀간 죽은 듯이 잠들었다가 깨어난 뒤였어야 하니까.
그날 무경은 하윤의 출근을 말리려 했다. 병원도 갔었어야 하니까. 그런 의도였으나 다소 거친 목소리를 냈다. 김하윤의 팔을 잡았는지, 어깨를 잡았던지 그런 건 자세히 생각나지 않았다. 그저 폭력을 예감해 웅크린 김하윤의 모습만 뇌에 박힌 듯 선명하게 기억났다.
이미 더 잔인하게 군 적이 많음에도 그 모습이, 이미 상처와 멍으로 얼룩진 얼굴이 떠오르자 도저히 얼굴을 마주할 수가 없었다.
마침 일도 많았기 때문에 일을 핑계로 김하윤을 피했다. 김하윤이 말했던 대로 지하철 승강장에 나타났다던 김희원의 흔적도 찾았어야 했으니까.
무경은 김하윤의 말했던 대로 개봉역 승강장 CCTV 화면을 확인했다. 김하윤이 말한 이들이 화면에 언뜻 비치긴 했으나 그야말로 언뜻 비친 게 전부라 김희원이라고 특정할 수 없었다. 좀 더 확실한 증거를 위해 조사해 보려고 할 때, 연쇄 납치사건이 터졌다.
초인특수관리청에서 관심을 가지며 본격적인 수사에 들어가게 되었고, 은신처 습격 뒤에 사건의 규모가 예상보다 더 컸던 바람에 무경에게도 일이 밀려들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김희원의 소식도 알게 되었지마는, 정황이 정황인지라 접근할 수가 없었다.
십 년 만에 나타난 김희원은 모든 것이 의심스러웠다. 사라질 당시의 행적은 물론 사라진 후의 행적, 또 김득철의 인형을 자신의 아버지라고 생각하며 끔찍이 여기는 것 또한 그랬다. 거기에 텔레포터라는 능력까지 더해지니 믿는 게 도리어 이상해질 지경이었다.
이 수상한 존재로 인해 거의 잊혔던 십 년 전의 사건이 상기되고, 국가 소속 에스퍼들은 물론 국가 운영에 필요한 주요기관은 긴장하기 시작했다. 십 년의 세월이 흐른 만큼 그들은 더 강력해져서 사회를 혼란 속에 빠트리며 기존 체제를 전복시킬 것이라 예상했기 때문이었다.
각 기관이 서둘러 전담 팀을 꾸리는 데 동의했으나, 서두른 것이 무색하게 인선에서 정체되었다. 십여 년간 저희 할 짓 다 하면서도 잘 숨어 있던 놈들이었다. 누가 눈을 감아 두고 숨겨 준 게 분명했다.
최대한 쓸 만하면서도 의심스러운 놈들을 제하고, 그 와중에 알력 싸움을 빠트리지 않다 보니 시간과 일이 늘어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가까스로 인선이 정해졌지만 이미 일이 한가득 쌓여 있었으므로 아무리 처리해도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김하윤은 연쇄 납치사건이 막 특수관리청으로 이관될 무렵에 대뜸 집을 나간다고 말하더니, 무경이 김희원의 소식을 접한 날에 아예 집을 나갔다.
‘차라리 잘됐지.’
김희원의 생존 소식을 듣고 난 뒤에 김하윤이 집에 있었다면 자신은 또 하윤에게 괜한 원망을 쏟아 냈을지도 몰랐다. 우리가 구하지 않았기 때문에 희원이가 그 꼴을 당한 것이라고.
‘잘 나갔지.’
그러나 생각과 달리 아직도 집을 나가겠노라고 말하던 김하윤이 미웠다. 당시 순간적으로나마 배신감을 느낀 것 같기도 했다.
어처구니없게도.
무경은 한숨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염동력으로 거실 불을 켜고 집 안에 있는 문이란 문은 활짝 열었다. 아무도 없는 것을 두 눈으로 확인한 후에야 다시 불을 끄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복잡한 마음도 이제는 정리될 것이다. 김희원이 돌아왔다. 그러니 이제 모든 것이 원래대로 돌아갈 것이다.
침대에 눕자 더는 이길 수 없을 만큼 고단함이 밀려들었다. 무경은 저를 집어삼키려는 수마 앞에서 연약한 숨을 내쉬었다.
‘날이 밝으면 드디어 희원이를 만난다.’
무경이 맡은 업무 위치상 김희원을 만나야 하기도 했고, 둘이 표면적으론 동창이라는 점 덕분에 비교적 빠르게 면회 허가가 나왔다. 다만 만일을 대비하여 직접 마주할 수는 없었고 특수 벽을 앞에 두고서 제한된 시간 내에 면회를 마쳐야 했다.
또 면회 장면은 소리가 포함된 영상으로 남겨야 했다. 상부에서 정한 입회인을 대동하는 건 아주 소소한 덤이었다.
하지만 어떠한 불편을 감수하고서라도 무경은 희원을 만나고 싶었다. 아니, 만나야만 했다.
자그마치 십 년의 기다림이었다. 누군가에겐 짧은 세월일 수도 있으나 무경에겐 억겁같이 긴 세월이었다. 희원이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알 수 없었을뿐더러 그에 관한 기억을 잃어 추억할 수조차 없었다.
그러나 아주 가끔 옛날 기억이 떠오를 때가 있었다. 기억이 온전치 않은 그에게는 그것이 망상인지 기억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김하윤에게 물어 그런 일이 있기는 있었다고 하면 무경은 그것을 기억으로 분류했다.
기억 속의 자신은 그 애가 너무 소중하고 귀해서 혹여 자신이 잘못 안으면 바스러질까 봐 늘 겁이 났다. 그래서 그 애가 밥을 잘 먹지 못하고 쉽게 잠들지 못하고, 또 덥다며 자신을 밀어낼 핑계를 주는 여름이 싫었다.
하지만 반대로 그 애를 따라다니며 챙길 수 있어서 좋았고, 쉽게 잠들지 못하는 그 애를 업고 집 안과 마당을 서성이는 시간이 좋았다. 벌레를 쫓아내려 초저녁부터 마당과 집 안 곳곳을 돌아다니며 힘을 펼치는 수고도 달게 느껴질 뿐이었다.
그 와중에 밀어내는 거야 늘 그랬으니 새삼스럽지도 않았다.
그 애도 알고 있듯이 그들은 영원히 함께할 운명이니까.
스무 살이 되면 지긋지긋한 암시를 벗어 낼 것이고 그 애도 더는 암시를 핑계로 저를 밀어내지 못할 것이다.
스물일곱이 되면 이제 ‘그걸’ 하기 무르익은 때일 것이다. 아니, 어쩌면 이미 했을지도 몰랐다. 그렇게 된다면 캡슐 속에 넣어 둔 건 그저 어릴 적 추억거리로 남을 것이다. 물론 그것도 나쁘지 않았다.
일찍 하기만 한다면야.
그 애를 제 곁에 묶어 놓기만 한다면야 두려울 것이, 무서운 것이 있겠는가.
그러기 위해서 무경은 그 애가 좋아하는 것만 하려 노력했다. 그 애가 기다림의 시간 동안 운명에 지쳐 순응하거나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기껍게 받아들이길 바랐으니까.
하지만 몇 번이고 과거로 돌아간다 해도 똑같이 했을 것이다. 자신이 어떻게 그 애에게 나쁘게 굴 수 있단 말인가. 그것은 당연히 순종할 수 없는 운명이었다.
‘그래, 내 운명.’
나의 조각.
김하윤의 도움이 필요치 않은 한 개의 기억과 하나의 확신. 그것은 그 애가 자신의 조각이라는 것이었고 그 애는 김하윤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무경은 무거운 눈꺼풀을 뜨고서 이불을 그러쥐었다. 빈 옆자리를 바라보다가 몸을 웅크렸다.
‘김하윤은 보면 바로 알 수 있다고 했어.’
그때 문득 내내 생각하지 않으려던 생각이 기어코 머릿속을 비집고 나왔다.
“…….”
만일, 내일 만나는 김희원이 진짜 김희원이라면 자신이 지금껏 스스로 폭주를 유도하며 좇은 건 대체 누구란 말인가.
그토록 생생했는데, 그토록 애틋했는데. 자신은 정말로 신기루를 좇은 것일까. 단 한 번도 실제에 닿지 못한 것일까.
무경은 답을 찾지 못한 채 가물거리는 눈을 감았다. 생각을 더 잇고 싶지 않았다.
무경은 이유 없는 불안과 불쾌감에 황급히 눈을 떴다. 시야가 잡히기도 전에 황급히 옆자리를 더듬다가, 아예 몸을 일으켜 침대 밑을 확인했다.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자 이번엔 휴대전화를 켰다.
아직 졸음이 떨어지지 않은 눈으로 메시지 함에 들어온 메시지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간단히 내용만 확인하고 화면을 내리다가, 이내 그중에서 하윤이 보낸 메시지를 찾아냈다.
김하윤은 집을 나간 뒤부터 무경에게 아침저녁으로 문자를 보냈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퇴근할 때. 그리고 무경은 여태 하윤의 문자에 답장하지 않았다. 일방적인 인사와 시시껄렁한 자기 일상 이야기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무경은 흐릿한 시야를 다잡기 위해 눈을 비볐다. 그래도 아직 흐려 눈에 힘을 바짝 주고는, 하윤이 보낸 문자를 계속 바라보았다. 그답지 않게 답장을 보내보려 손가락을 움직였으나, 이내 몇 자 적지 못하고 지워 버렸다.
‘이제 김하윤이랑은 거리를 둬야 해.’
현재 흘러가는 상황상 김희원이 특수관리청의 감시에서 벗어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했다. 피노키오의 일도 해결되어야 하고 희원이 받았을 세뇌를 푸는 것도, 세뇌를 풀고 난 뒤의 재활도 중요했으니까.
무경은 최대한 김희원이 떠나기 이전의 환경과 자리를 만들어 주고 싶었다. 그러려면 김하윤의 협조가 필요했다. 셋의 기억을 유일하게 보존하고 있는 게 김하윤이기 때문이었다.
김희원의 옆에 두기 위해선 김하윤의 마음을 정리시켜야 했다. 희원에게 괜한 말을 할 수도 있지 않은가.
‘일단 조만간 만나서 주의 줘야…….’
그러나 생각과 달리 손가락이 움직이지 않았다. 김하윤의 시시껄렁한 일상을 외우듯 보다가, 그 사이에 있던 어느 질문을 보고 표정을 굳혔다.
[희원이는 찾았어? 이제 만났어? 만났으면 어땠어?]
간신히 닫아 놓은 상자가 터지듯, 순간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무경은 휴대전화를 집어 던지며 거친 숨을 토해 냈다. 분명 눈을 뜨고 있는데도 눈앞이 캄캄하게 느껴졌다. 무경은 허리에 손을 올린 채 눈을 빠르게 깜빡였다.
“……후우.”
화낼 필요가 전혀 없는 일이었다. 주제넘긴 하지만 김하윤 또한 김희원의 소식이 궁금하긴 했을 테니까. 더군다나 김하윤은 김희원을 직접 보지 않았던가.
무경은 거칠게 얼굴을 쓸어내린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곤 거실 한가운데 서서 텅 빈 집을 무감하게 둘러보다가, 이내 도망치듯 준비를 마치고 집을 나왔다.
면회 장소에 도착하자 입회인이 미리 도착해 있었다. 무경은 입회인과 짧은 인사 나눈 뒤 다시 침묵했다. 짐짓 태연한 척했지만, 가슴이 목 밖으로 튀어나올 것처럼 요동쳤다.
무경은 떨리는 마음을 다잡아 보려 희원의 이름을 구명줄처럼 속으로 되뇌었다.
‘김희원. 김희원. 희원아.’
그러나 너무 오랜만이어서 그런지 어느 것 하나 입에 붙지 않았다. 입술의 움직임이 낯설 지경이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자 안내처에서 무경과 입회인의 신분을 확인했다. 이어 담당 공무원에게 연락을 넣어 줬고 얼마 안 있어 둥그렇게 생긴 공무원이 내려와 그들을 안내했다.
무경과 입회인, 그리고 담당 공무원은 건물 내 으슥한 곳에 자리한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엘리베이터에는 층을 가리키는 버튼 대신 위와 아래를 가리키는 버튼 단 두 개밖에 없었다. 공무원이 아래로 가는 버튼을 누른 뒤 입회인과 간단한 안부를 주고받았다.
말이 끝나고 난 뒤에도 엘리베이터는 계속해서 아래로 내려갔다.
텔레포터들은 구속이 어려웠다. 특히나 텔레포터들 중 점퍼는 더더욱 답이 없다는 평이 많았는데, 일종의 포털을 만들어 공간을 잇는 텔레포터들과 달리 점퍼는 저 혼자 공간을 뚫으며 움직였다. 물론 그런 만큼 몸에 부하가 걸려 정신이든 육체든 쉽사리 망가졌지만.
다행스럽게도 김희원은 점퍼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텔레포터인 탓에 그를 구속하기 위해선 특수한 장소가 필요했다. 담당 공무원은 이른바 [문]이 없는 공간이라고 했는데, 정작 그 의미는 설명하지 못했다.
그저 대단한 인사들이 개발에 참여했고 당시 꽤 많은 예산이 투입되었었노라고 자랑했다. 무경이 사전에 찾아보기론 개발자 명단 중에 서이주의 이름이 있었다. 같은 문지기이니 문지기를 억압하는 공간을 잘 만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과 과연 그런 공간을 만들었을까 하는 생각이 동시에 떠올랐다.
‘어차피 일반인이나 관련 능력자가 아니면 확인하기 어려운 사실이니.’
더군다나 문지기들 중에서도 이곳을 실제 볼 수 있는 자가 몇이나 되겠는가. 윗선에서도 비슷한 생각을 했던지 현재 김희원은 체내 칩이 삽입되어 있었다. 그의 이십사 시간은 낱낱이 기록되고 의료진 외에는 누구도 접촉할 수 없었다.
‘오늘부터 의료진 외의 접촉자가 늘겠지만.’
무경의 상념이 이어지던 중에 엘리베이터가 멈췄다. 나름 오랜 기다림이었을까.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담당 공무원과 입회인이 서둘러 튀어 나갔다. 무경은 느긋하게 걸음을 옮기며 주변 환경을 확인했다.
그로서는 [문]이 어떤지 느낄 수 없었다. 그저 텅 비어 보이는 복도와 달리 생각보다 많은 장치가 들어가 있는 공간이라는 것. 또 그런 것치곤 조용하다는 것 정도만 느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