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화
6. 거짓말쟁이와 피노키오
저녁 여덟 시가 막 넘은 시간.
불과 몇 주 전에 도심 한복판에서 경급 괴수가 나타나 수많은 사상자와 부상자가 발생했으나, 이조차 금요일 밤이라는 특수 조건을 이기지 못했다. 하윤은 집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다가 거리에 가득한 사람들을 보며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회사 주변과 군부대 근처에는 연일 추모 집회가 이어지고 있었다. 사람들은 신속하게 대응하지 못한 정부와 군 관계자들을 질타하며 보상을 요구했다.
그 과정에서 작전에 참여했던 군 소속 에스퍼들의 대응능력 부족을 꼬집었는데, 조만간 고위 관계자를 불러 청문회를 열어도 이상하지 않을 기세였다.
그리고 그 가운데 무경이 있었다.
무경은 작전 후 다른 에스퍼들과는 달리 현장에 남았다. 괴수 사체의 정리 및 그 아래 매몰된 시민 구조가 목적이었는데, 원활히 정리된 괴수 사체 정리와 달리 구조된 시민이 없었다. 당시 괴수와 직접 접촉된 인원 모두 사망하였기 때문이라고 발표했지만, 관련 단체들은 사망 판단이 지나치게 이르며 섣불렀다고 지적했다.
괴수 사체를 확보하는 과정에만 몰두하느라 골든타임을 놓친 것을 덮으려 하는 게 아니냐는 것이었다.
관계자들과 무경은 곧장 부정했지만, 워낙 많은 사상자가 나온 탓에 여론은 쉽사리 수그러들지 않았다. 덕분에 무경은 몇 주가 지나도록 제시간에 퇴근하지 못했다.
‘무경인 그렇다 치고 나는 뭐냐.’
일반인 김하윤도 퇴근 환경에 있어선 무경과 별반 다를 바 없었다. 물론 이쪽은 취재니 뭐니 하며 언론사로부터 시달리진 않지만, 야근이 연일 이어지고 있었다.
그래도 오늘은 금요일이라고 조금 일찍 마쳤다. 은근히 회식하길 바라는 부장의 시선을 피하느라 얼마나 애썼는지 몰랐다. 그 와중에 박 대리의 갈굼을 견뎌야 하기도 했다.
‘그 새끼는 요새 왜 날 그렇게 못 잡아먹어서 난리야.’
하나 실수했다 하면 과거의 케케묵은 이야기까지 끄집어냈다. 오늘만 해도 그랬다. 점심을 먹고 자리로 돌아가던 중에 거래처에서 휴대전화로 전화가 왔다. 통화하고 갔더니 요새 정신이 빠져서 은근슬쩍 꾀를 부린다는 둥, 기본이 안 됐다는 둥 온갖 잡소리를 늘어놓으며 사람을 괴롭혔다.
‘복귀 날 무경이 쓰러져서 늦었던 걸 아직도 끄집어내고.’
보다 못한 과장이 박 대리를 말렸지만, 능력이 돌아온 하윤은 그게 말리는 시늉일 뿐이라는 것을 알았다. 둘이 담배 피우러 가서 하는 소리를 화장실에서 엿들었기 때문이었다.
박 대리는 하윤이 그날 이후로 묘하게 건방져져서 자신을 선배 취급도 안 한다고 과장에게 토로했다. 실제 하윤이 건방져졌다기보단 그날 이후로 묘하게 좁아진 자신의 입지를 되찾고자 희생양을 만들려는 수작이었다.
‘사람이 자리에 안 보인다 싶으면 까고.’
일반적인 시각에선 영 헛짓 같겠지만, 이 회사 안에선 묘하게 통했다. 박 대리가 평소에 워낙 입을 잘 털어 놓는 바람에 그가 못난 짓을 해도 힘들어서 그랬겠거니 하며 안쓰러워하는 윗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 새끼가 문지긴 줄 알았는데.’
필요할 땐 사라지고, 윗선이 찾으면 또 바로 튀어나온다. 진짜 문지기인 하윤도 타이밍을 맞추기 어려운데 일반인인 그가 어떻게 해내는지 늘 신기하기만 했다.
‘좆같기는 한데 이제 금방인데 뭐.’
늘 그렇듯 곧 끝난다는 기대가 현재를 견디게 해 주었다. 게다가 덕분에 한 가지 더 알게 된 게 있었다.
‘그놈들이 무경이한테 접근하게 하려면 혼자 두는 편이 좋아.’
요즘 무경은 너무 바빠 정신이 없어 보였다. 야근도 외박도 잦아 얼굴 보기가 힘들었다. 자신이 알려 주었던 곳을 제대로 조사나 했을지 의심스러웠다. 더군다나 무경이 군인인 탓에 그가 직접 말해 주지 않는 이상 하윤은 그에게 무슨 일이 있는지 알기 어려웠다.
문틈으로 엿볼 수도 없었다. 군에 있는 다른 에스퍼들이 눈치챌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무경인 아직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김희원에 관해서 무경은 아는 게 없었다. 무경이 아는 것들은 김하윤이 지어낸 거짓말뿐이었다. 그러니 암만 저와 이야기하는 게 싫더라도 무경은 하윤에게 물어야 했다.
‘아무래도 아직 마주치지 않은 것 같은데.’
그들 나름대로 접근을 시도하는 중이겠지만 하윤은 그들이 좀 더 속도를 내 주길 바랐다. 그래서 자리를 마련해 줄 생각이었다.
‘내 흉내를 내겠다면 내가 없는 편이 움직이기 편할 테니까.’
하윤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입김이 까만 밤에 잠시 얼룩지다가 금세 사라졌다. 코트를 여미며 몸을 까딱이던 하윤은 이내 휴대전화를 꺼냈다. 지도 앱을 열어 위치를 확인한 다음 다시 걸음을 재촉했다.
하윤은 회사에서 버스로 삼십여 분 걸리는 거리에 위치한 주택가에 서 있었다. 저녁 기준으로 삼십 분이 걸렸으니 아침에 움직이려면 오십 분쯤 걸릴 터였다. 멀다면 멀지만, 버스 하나로 한 시간 안에 움직일 수 있으니 서울 기준으로 가까운 편이었다.
하윤은 다소 늦은 시간에도 환하게 불을 밝히고 있는 부동산 공인중개 사무소를 응시했다. 바깥에 붙은 광고지에 다소 놀라운 가격이 적혀 있다 보니 쉽사리 들어갈 수가 없었다.
‘없으면 그냥 나오면 되는데.’
이런 일을 겁내는 자신이 우스웠다. 하윤은 작게 신음을 내며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저, 영업 몇 시까지 하세요?”
“아, 그건 걱정하지 마시고 일단 들어오세요. 일 마치고 지금 퇴근하시는 거세요?”
“예에.”
“커피? 녹차?”
“아, 밤이라. 괜찮습니다.”
“아, 카페인. 그럼 율무차나 쑥차 어때요? 내 거 타는 김에 타는 거니까 부담 갖지 말아요.”
“그럼 율무차…….”
중개사는 금세 하윤의 앞에 율무차가 담긴 종이컵을 내밀었다. 고소하고 달큼한 냄새에 꽁꽁 언 몸이 녹는 기분이 들었다.
“어떤 걸 보러 오셨나?”
“원룸…….”
“혹시 이 근처에 사세요?”
“아니요. 집은 여기가 아니에요. 회사 때문에 좀 옮기려고요.”
“하기야 지금 퇴근하니 좀 먼 곳이면 출퇴근이 부담스럽다 그렇죠?”
“예, 좀.”
“월세는 얼마 정도 생각하고 있어요? 선호하는 유형은? 뭐, 버스 정류장이랑 가까우면 좋다 아니면 조금 오래되어도 좋으니까 넓은 방이 좋다 그런 거.”
“적당히 교통 좋고 적당히 오래되고, 방은 넓으면 좋고 그렇죠.”
“그러면 월세는 적당하지 않을 텐데?”
중개사는 킬킬 웃다가 컴퓨터 앞으로 갔다. 하윤이 했던 말에 음을 붙여서 중얼거리더니 몇 군데를 수첩에 옮겨 적었다. 그러곤 잠시 전화 통화를 하더니 열쇠를 챙겨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어나시죠.”
“지금 집을 보러 가나요?”
“월세 원룸은 사람들이 빨리 들어왔다가 나가고 하니까 사람 살 때 방 보여 주고 그런 거 안 해요. 아예 나갔을 때 싹 정리하고 보여 주지. 피차 피곤하잖아, 안 그래요?”
방에 관해 잘 모르는 하윤은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만 끄덕였다. 그러고 얼마 안 지나 세 군데의 방을 보고는 방을 구하는 게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저 좋은 방을 구하는 게 힘든 것일 뿐.
점점 중개사의 이만하면 괜찮은 방이라는 말을 신뢰할 수 없어질 때쯤, 하윤은 낡은 건물 하나를 보고 걸음을 멈췄다.
‘문이 많네.’
신기하리만치 문이 많은데, 한곳에 모여 있었다. 가끔 그런 곳이 있긴 했는데 예전에 서이주에게 들었던 말을 떠올리자면 사람 살기에 좋은 곳이 아니었다.
이른바 터가 안 좋은 곳으로 사람이 편하게 지내기 힘든 데다 운이 안 좋으면 단발성 게이트와 겹칠 수도 있었다.
‘선생님이라면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매물이군.’
하지만 하윤은 문이 많든 적든 불편을 겪지 않는 사람이었다. 오히려 만일을 대비해 문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았다.
하윤은 앞서 걸어가고 있는 중개사를 멈춰 세웠다. 그러고는 문이 많은 방을 가리키며 매물이 있는지 물었다. 중개사는 하윤이 가리킨 곳을 보고 낯을 굳혔으나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아 저기도 있지. 있는데, 앞에 보여 준 방에서 고르는 게 나을 건데. 아 물론 저 건물도 그리 나쁘지 않아. 내가 예에 전에 한번 봤는데, 괜찮았던 기억이 있거든. 잠시만 기다려요. 집주인한테 빈방이 있는지 내가 한번 물어볼게.”
방을 구하는 건 어렵지 않다. 다만 좋은 방을 구하는 게 어려운 일이었다. 하윤은 자신이 일전에 생각했던 말이 정말 맞았노라며 탄식을 금하지 못했다.
중개사는 오래전에 봐서 기억이 잘 안 난다는 투로 이야기했지만, 집주인과 통화 하는 걸 엿듣자면 또 그런 건 아닌 듯했다. 그러고는 방을 보여 주며 열심히 연막을 쳤다. 사람이 살지 않은 흔적이 오래되었음에도 나간 지 얼마 안 됐다는 둥 그리 넓지 않음에도 혼자 살기엔 넉넉하다는 둥 말이다.
어쨌거나 이미 마음이 기울어져 있던 하윤은 다음 날 방을 계약했다. 주변 시세보단 조금 저렴한 월세라는 게 그나마 위안이 되었다.
방은 오랫동안 비어 있었던 만큼 상태가 좋지 않았다. 하루라도 빨리 방을 채우고 싶었던지 주인이 먼저 바닥과 벽지를 새로 해 주기로 했다.
방이 준비될 동안 하윤은 무경의 집에서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해마다 정리해 얼마 없다고 생각했는데 예상과 달리 여기저기서 하나둘 튀어 나왔다.
당장 쓸 필요는 없지만 버리긴 애매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오래된 휴대전화와 각종 충전기 선, 미처 사진첩에 꽂지 못한 사진들. 비닐도 뜯지 않은 문구류나 명절 선물로 받은 곽에 든 양말, 그리고 타임캡슐에서 발견한 안경이 들어 있던 목함.
하윤은 반사적으로 목함을 열었다. 안에는 안경의 잔해와 열쇠, 그리고 쪽지가 있었다. 하윤은 그중에서 쪽지를 집어 들었다.
그러곤 익숙한 서이주의 필체로 쓰인 글을 읽었다.
[나머지는 안에. 그리고 필요할까 봐 여분의 안경을 남겨 둔다. 조심해서 잘 써.]
‘……나머지는 안에.’
하윤은 서이주가 말한 안이 자신의 공간을 말한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그러나 아직 그 안으로 들어갈 수 없어 확인할 수가 없었다. 정말 자신의 예상대로 공간 안에 서이주가 남긴 물건이 있다면 그건 대체 무엇일까.
‘그 공간 안에 선생님이 나 몰래 뭔가를 숨길 수 없는데.’
공간을 열 수 있는 사람이 하윤밖에 없었다. 공간을 열려면 하윤과 함께 있어야 하는데다 그곳은 뭔가를 숨길 수 있는 공간이 아니었다. 엄폐물이 없기 때문이었다. 뭔가를 뒀으면 자연히 하윤이 알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내가 봤는데 대수롭지 않았거나, 아니면…….’
하윤은 이번엔 열쇠를 집어 들었다. 열쇠엔 견출지가 붙어 있었는데, 견출지에는 익숙한 숫자가 쓰여 있었다.
‘신발장에 있던 표시.’
하윤은 안경 틈새로 문을 볼 수 있게 되자 집 안 곳곳에 남아 있던 표시를 죄다 지워 버렸다. 왜 그랬는진 모르겠으나 당시에는 그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표시는 지웠지만, 열쇠가 어딜 가리키는지는 조사하지 않았어.’
다른 곳들과 다르게 열쇠가 가리키는 위치는 이상하게 보지 않았다. 왜 그랬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내가 왜 그랬을까.”
그 어떤 표시보다 열쇠가 가리키는 곳이 어딘지가 가장 궁금했을 텐데.
하윤은 열쇠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입술을 깨물었다.
‘선생님이 공간 안에 뭘 남겼는지도 모르고, 열쇠에 남은 표시가 어딘지 알아보지도 않았다. 혹시 선생님의 의도가 들어간 건가?’
미성년자일 당시 서이주는 하윤과 무경에게 암시를 걸었다. 본인도 간단한 암시는 걸 수 있었으나 무경에게 통하지 않아 전문가를 불렀었다. 그리고 하윤 또한 그 전문가에게 암시를 받았었고.
‘그랬었는데.’
이상하게 확신을 할 수가 없었다. 다른 것들을 배제하고 정말 서이주가 제게 암시를 걸었다면 의도가 있을 것이다.
‘그게 뭘까. 선생님은 대체 내게 뭘 바라셨던 걸까.’
이건 혹시 서이주의 실수가 아닐까. 자기 자신을 비롯하여 남편과 아들이 워낙 똑똑하다 보니 세상사의 기준이 거기에 맞춰져 있는 것이다. 그러니 한번 가르쳐 주면 전부 기억하는 줄, 알아들은 줄 알았을 것이다. 남의 집 아들인 하윤은 다른 줄 모르고.
“…….”
하윤은 열쇠를 주먹 속에 감추듯 그러쥐었다. 다시금 공간을 열어 보려 시도했으나 여전히 어딘가 걸린 것처럼 열리지 않았다.
작게 욕설을 중얼거리며 크게 숨을 들이켰다. 대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현관으로 다가가 신발장 문을 열어젖혔다.
하윤이 엶과 동시에 그 안에 벽인 척하고 있던 문이 덜컹 열렸다. 현관 조명이 문 너머를 비췄다. 하윤은 굳은 얼굴로 안을 바라보기만 할 뿐 넘어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문을 열자 지문 인식장치가 달린 일반 문이 나왔다.
하윤은 별 망설임 없이 지문 인식장치에 손을 갖다 댔다. 지문을 읽어 낸 장치에 초록색 불이 들어오고 잠금장치가 풀리는 소리가 들렸다.
하윤은 마른침을 꼴깍이며 문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