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화
평소라면 이틀쯤 잠들지 않는 것 정도야 우스운 일이었다. 그저 눈이 살짝 건조한 느낌이 들고 말 터였다. 그러나 무경에게 요 이틀은 마치 심한 열감기에 걸린 것 같았다. 기운이 없어 졸음이 쏟아지지만 힘겨워 잠들지 못하고, 또 간신히 잠들었다가 또 괴로워서 깨는.
미칠 노릇이었다. 잠들려고 할 때는 깼다가, 아예 잠들지 않으려고 하니 어느 순간에 잠들어 있었다.
무경은 이틀 동안 그를 괴롭히던 악몽도 없이, 정말 까맣고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그러다가 불현듯 잠에서 깬 건 거실에서 들리는 김하윤의 목소리 때문이었다. 이를 깨달은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다 못해 현기증이 돌았다.
‘어떻게?’
서둘러 눈에 보이는 붕대를 잡아당겼다. 다급한 손놀림에 끝에 지어 놓은 매듭이 덜렁 올라왔다.
붕대를 푸는 것도 눈치채지 못했고, 잠긴 문이 열리는 소리도 눈치채지 못했다. 심지어 무경은 만일을 대비하여 문 앞에 자신의 기운을 깔아 두었다. 김하윤이 그곳을 밟았다면 자신이 눈치채지 못할 리 없다.
하지만 예상과 다르게 무경은 눈치채지 못했다.
식은땀이 등을 타고 쭉 내려갔다.
‘내가 그렇게 깊이 잠들었다고?’
그간 한 훈련이 무색했다. 누가 무경을 죽이기로 작정했으면 아주 손쉽게 목적을 이뤘으리라.
“…….”
무경은 침대에서 일어나 방 문손잡이를 돌렸다. 텅! 하는 소리와 함께 잠금이 풀렸다.
‘정말 미쳤군.’
소리를 내지 않으려 조심스럽게 움직였음에도 소리가 컸다. 그리고 무경은 이조차 듣지 못했다.
‘잠금이 지금 풀리는 걸 보면 나간 뒤에 다시 잠가 둔 건가.’
도저히 믿기지 않아 지금이 꿈속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무경은 요 이틀 사이 생생한 꿈을 몇 번이고 꿨다.
그러나 거실로 나가자마자 무경의 기대는 산산이 부서졌다. 후덥지근할 정도로 난방한 방과 달리 조금 서늘하게 맞춰 둔 거실 공기에 실감이 났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 누군가와 전화하는 김하윤 또한 그랬다.
꿈이라기엔 너무나 생생한 모습이었다. 씻고 나와 젖어 있는 머리칼과 희고 얼룩진 얼굴, 단추를 잠그다 만 셔츠까지.
내내 죽은 것같이 잠들어 있던 사람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생기가 넘쳤다.
문득 가슴이 울렁이다가, 목이 뜨거워졌다.
“너……!”
무경은 하윤을 향해 성큼 다가갔다. 이제는 괜찮냐고, 어디 아픈 곳은 없느냐고. 이틀간 죽은 듯이 잠만 자서 무서웠노라고. 동시다발적으로 떠오른 생각들이 서로 뒤엉켰다. 덕분에 말을 바로 잇지 못했다.
그사이, 무경을 발견한 하윤은 그를 멈춰 세웠다. 두 손을 싹싹 빌었다. 무경이 얼떨결에 멈춰 서자 잠시만 조용히 해 달라고 입을 뻥긋거렸다. 그러고는 저는 신경 쓰지도 않은 채 획 몸을 돌리더니 멀찍이 떨어졌다.
웃고 신음하고, 때로는 곤란해하며 입술을 잘근거리기도 했다. 영상통화도 아닌데 연신 고개도 꾸뻑이고 몸을 꼬기도 했다.
묘한 불쾌감에 배 속이 꼬이는 것만 같았다.
요 이틀 동안 제 속을 뒤집어 놓고는 아침이 되자마자 멀쩡한 낯짝으로 서 있는 게 아니 꼽기 때문일까.
아니면 잠을 설친 와중에 특유의 거슬리는 목소리를 들었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나는 김하윤의 목소리를 싫어하니까.’
무경에겐 김하윤의 존재 자체가 거슬리는 존재였다. 눈이 닿는 곳에 있기만 하면 어디에 있든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또 귀에 들리기만 하면 어떤 소리가 뒤섞여 있든 김하윤의 목소리를 집어낼 수 있었다.
걸음걸이, 팔을 흔드는 모양, 특유의 시선 처리. 혹은 숨소리와 숨죽여 몰래 웃는 소리, 저를 ‘무경아.’ 하고 부르는 소리 등.
“…….”
어쩌면 지금은 둘 다일 수도 있었다. 잠을 못 잔 중에 잠을 못 자게 한 원흉이 뻔뻔하게 아침부터 목소리를 높이고 있으니까.
그래, 그래서 불쾌했다.
무경은 그렇게 결론지으며 김하윤을 바라보았다. 김하윤은 여전히 무경이 불쾌한 줄도 모른 채 여전히 통화를 이어 갔다. 꼭 무경이 없는 사람인 것처럼 굴었다.
그래서 어쩐지 가슴 한구석을 크게 베어 낸 기분이 들었다.
무경은 거칠게 숨을 들이켰다. 그러곤 자기의 생각을 부정했다. 악몽을 꾸며 잠을 설친 탓에 마음이 복잡해서 그런 거라고 자위했다.
‘멀쩡하잖아. 이제 신경 쓸 필요 없어.’
멀쩡한 것을 확인했으면 됐다. 본래 오늘 김하윤이 일어나든 일어나지 않든 간에 날이 밝는 대로 병원에 데려갈 참이었다. 이제야 겨우 검사 자리가 난 것도 있고, 이대로 더 잤다간 없던 문제도 생길 판이었으니까.
그러나 무경의 걱정과 수고가 무색하게 김하윤은 멀쩡히 일어나 씻고 움직이고 있었다. 무경은 이제 하윤이 다시 쓰러져 잠들든 말든, 통화를 온종일 이어 가든 말든 신경을 쓰지 않기로 했다. 그러나 발이 붙은 것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김하윤이 통화를 끊고 저를 봐야만 한다는 고집이 섰다.
“예, 예에. 잊지 않고 연락하겠습니다. 아하하, 예,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가르침 감사합니다.”
대화를 듣고 있자니 대화 상대가 누구일지 대충 예상이 되었다.
‘직장 상사겠지.’
하지만 김하윤의 태도는 영 적응이 되지 않았다. 웃는 건 그렇다 쳐도 아직도 계속 굽실거리고 있었다. 김하윤은 제게도 곧잘 비굴하게 굴었으나, 다른 사람에게까지 이럴 줄은 몰랐다. 솔직히 말해 무경은 조금 놀랐다.
‘왜 저렇게까지 하지?’
대체 뭘 했기에 저렇게 굽신거려야 한단 말인가.
“……회사 사람이야?”
“어어. 내가 연락이 없어서 오늘 출근하는 날인 거 알려 주려고 연락하셨대.”
“…….”
“왜?”
김하윤의 물음에 무경은 입을 다물었다. 묻고 싶은 게 여럿 있었다. 하지만 그걸 물어도 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아니야. 묻지 않는 게 나아.’
김하윤의 일이었다. 아마 물어도 싱거운 대답이나 돌아오고 말 것이다. 그런데 자꾸만 묻고 싶었다. 고작 출근하는 날인 거 알려 주려고 건 전화에 그렇게 굽신거렸어야 했느냐고, 혹시 다른 관계가 있느냐고.
무경이 대답을 미루자 하윤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무경의 침묵을 알아서 해석한 것인지 김하윤은 휴대전화를 들고서 베란다로 나가려 했다. 가슴이 철렁이고 눈앞이 새하얗게 느껴졌다.
무경은 반사적으로 베란다 문을 걸어 잠그고 김하윤이 열지 못하게 방해했다. 문을 열지 못한 김하윤은 의아한 얼굴로 무경을 바라보았다.
무경은 김하윤이 전화 통화를 하러 나가려는 것인 줄 알면서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한 박자 늦게 가슴이 두근거렸다.
‘시발.’
무경은 일단 김하윤을 베란다 가까이 가지 못하게 하기로 했다. 더군다나 아직 끝내지 못한 본론도 있었다. 김하윤을 자리에 앉히고서 무경은 넌지시 물었다.
“너, 방에서 어떻게 나왔어?”
“뭘 어떻게 나오긴. 그냥 나왔지?”
“그러니까 대체……!”
“무경아, 미안한데. 내가 조금 바빠서 그런데 나중에 말하면 안 될까? 아니, 말할 것도 없는 것 같긴 한데.”
“네가 왜 바쁜데?”
“야, 오늘 출근하는 날이라고 전화까지 왔는데 그럼 집에서 가만있겠냐? 출근해야지. 서둘러야 해. 그 전에 과장님이랑 부장님한테 전화도 해야 하고.”
미치기라도 한 걸까? 무경은 출근을 운운하는 김하윤의 말에 어처구니가 없었다. 김하윤은 그냥 밤잠 자고 일어난 사람처럼 굴고 있었다. 그러나 김하윤은 이틀여를 정말 시체처럼 잠들어 있었다.
숨도 쉬는 둥 마는 둥 한 탓에 무경은 몇 번이고 김하윤의 코밑과 가슴팍에 귀를 기울여야 했다. 혹시나 죽었을까 봐.
지금도 김하윤의 낯빛은 썩 좋지 않았다. 창백한 데다가 뺨과 목이 멍으로 얼룩덜룩했다. 쓰러진다고 해도 전혀 이상치 않았다. 때마침 김하윤도 숨이 찼는지 숨을 헐떡였다.
더는 신경 쓰지 않기로 했으나 그러기가 힘들었다.
“……밥은?”
무경의 물음에 하윤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소리 없이 웃었다. 크고 동그랬던 눈이 아래위로 접히며 호선을 그리고, 한일자를 그리던 입꼬리가 올라갔다. 내리깐 속눈썹이 두어 차례 팔랑였다.
무경은 저도 모르게 손끝을 말아 쥐었다.
“네가 이런 말을 할 때가 다 있네.”
“먹었냐니까.”
“씻기 전에 간단하게 먹었어.”
“집에 음식 냄새가 안 나는데?”
무경이 이렇게 물었을 때 하윤은 곧장 먹었다고 대답했지만, 실제 그 말 그대로 먹은 적은 얼마 없었다. 김하윤은 아쉬운 소리를 할 때만 곰살맞게 굴었고 저는 김하윤이 그렇게 굴 때마다 속절없이 넘어갔다.
‘익숙한 거짓말인데.’
겨우 이틀 앓았을 뿐인데 살이 훅 빠졌다. 입 짧아지는 여름보다는 낫겠지만 아파서 빠진 살이니 다시 찌우긴 힘들 것이다. 골치가 아팠다. 무경은 이마를 문지르며 자연스레 냉장고에 있는 음식들을 떠올렸다. 그중에서 뭘 줘야지, 뭘 더 준비해야 할지 생각하던 그는 화들짝 놀랐다.
‘내가 왜?’
자신이 김하윤을 두고 왜 이런 생각을 하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순간 찬물을 뒤집어쓴 것만 같았다.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
아까 전부터 꿈인지 생시인지 헷갈리더니 지금도 그런 모양이었다. 무경은 눈을 감은 채 천천히 숨을 골랐다.
“무경아, 어디 아파?”
김하윤은 열을 재려는 듯 무경을 향해 손을 뻗었다. 막 눈을 뜨려던 무경은 제게 다가온 김하윤의 손을 뿌리쳤다.
“손대지 마.”
“……나는 그냥 네가 안 좋아 보여서.”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넌 그냥 내가 묻는 거나 대답해!”
“…….”
“밥은?”
무경은 다시 처음부터 물었다. 하윤은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대답했다.
“아까 씻기 전에 두유 마셨어.”
“그게 밥이야?”
“어차피 다른 건 안 들어가.”
“차라리 그럴 거면 먹지 말지. 병원 가서 검사해야 하는데.”
“병원은 안 가려고.”
“뭐?”
“병원 안 가.”
“…….”
“나 멀쩡해. 갈 필요 없어.”
“개소리하지 말고 준비해. 이틀 만에 겨우 자리 난 거야.”
“나 안 간다구.”
“김하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김하윤은 소파에서 멀어지며 셔츠 단추를 채우기 시작했다. 굳은 표정 때문에 낯빛이 더 파리해 보였다.
“김하윤!”
곧장 김하윤을 뒤쫓은 무경은 그의 어깨를 잡아 돌리며 벽에 붙였다. 힘이 다소 들어간 탓에 김하윤은 쿵 소리와 함께 벽에 부딪혔다.
“……!”
무경의 다리와 엉키며 다리에 힘이 풀린 김하윤은 바닥에 그대로 주저앉았다. 무경은 반사적으로 염동력을 썼으나, 그의 염동력은 김하윤을 지탱하지 못했다.
예전처럼 손아귀를 벗어나 쑥 떨어지는 느낌에 무경은 거칠게 숨을 들이켰다. 그 소리를 다르게 받아들인 김하윤은 손을 들어 머리를 감쌌다.
무경은 천천히 물러났다. 자신의 손이 사정없이 떨리고 있다는 것을 인지한 순간, 눈앞이 캄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