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화
몸이 끝없이 가라앉았다. 하윤은 자신의 낙하가 언제까지 계속될지 감조차 잡히지 않았다. 그저 끝이 오면 아득했던 낙하만큼 자신이 산산이 조각나겠거니 생각할 뿐.
자신의 상태에 어떠한 의문도 갖지 않았다.
그러다가 문득, 정말 어처구니없게도 회사 생각이 났다.
‘아, 출근.’
출근. 한국에 사는 현대 사회에게 있어 가장 슬픈 단어가 아닐까. 물론 하윤 본인이 한국에 사는 한국 국적의 현대 사회인이라 그런 것일 수도 있었다.
특히나 창호 회사의 특성상 괴수 출현 후에 특히 일이 밀렸다. 안전의식이 가장 높아질 때가 이때였다. 재난 지역은 이전보다 안전하게 복구해야 했고, 직접 피해를 보지 않은 다른 지역에서도 경각심을 가지고 노후된 안전장치를 교환하거나 새로 추가하곤 했다.
대목이라면 대목이었다.
그래서 안전장치와 관련된 회사들은 재난이 있을 때마다 기민하게 움직였다. 협회에서는 언론사나 국회의원은 물론이고 여러 단체에 로비하여 여론을 조작했다. 물론 시기가 시기인 만큼 관련 내용이 거론될 수밖에 없기도 했지만.
협회가 움직이는 동안 각 회사는 치열한 홍보전을 펼쳤다. 대형 커뮤니티에 경쟁 업체의 안전장치가 망가진 영상을 은근슬쩍 올린다든가, 홍보가 아닌 척 홍보 글을 올렸다.
피를 튀기는 각축전이 예상되는 만큼 영업사원인 하윤도 준비해야 했다. 바쁜 짬을 나눠서 홍보 교육도 받아야 할 것이고, 고객 관리도 해야 했다.
물론 회사원도 사람인 만큼 해산 명령이 떨어지고 하루나 이틀여의 휴가를 줄 것이다. 무리해서 일하다 몸에 문제라도 생기면 큰일이니까.
‘그런데 얼마나 시간이 지난 거지?’
회사가 준 하루나 이틀여의 시간이 벌써 끝난 건 아닐까? 더군다나 하윤은 휴대전화를 갖고 있지 않았다. 불안감이 밀려들자 어느새 끝없던 낙하가 멈췄다. 그야말로 도중에 멈춘 것이라 하윤이 예상했던 대로 곤죽이 되지는 않았다.
불안은 곧 불편으로 바뀌었고 하윤은 작금의 상태가 매우 갑갑하게 느껴졌다. 아주 심한 가위에 눌린 것만 같았다.
‘아니, 내가 이 마당에 회사 생각을 해야 해?’
죽으면 다 끝 아닌가. 그러나 애석하게도 계속 낙하했다면 모를까, 지금 죽을 것 같지는 않았다.
문득 그렇게 죽으면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하냐며 나무랄 상사의 얼굴이 스쳤다. 특히나 박 대리는 이 틈을 타 자신의 실수를 하윤에게 덮어씌울 것 같았다.
‘아, 진짜.’
아. 아아! 하윤은 속으로 소리를 질렀다. 너무 실감이 나는 탓에 소름이 돋았다. 그 순간 내내 움직이지 않던 몸이 움직였다.
하윤은 발끝과 손끝을 꼼지락거리다가 발을 움직였다. 오른쪽 다리는 무거우나마 움직여졌으나, 왼쪽 다리는 어디 묶인 것처럼 제대로 움직여지지 않았다. 한참을 애쓰다 보니 등에 땀이 흥건해졌다.
땀을 흘리자 무겁게만 느껴지던 눈꺼풀이 저절로 열렸다. 하윤은 느릿하게 눈꺼풀을 떨다가 누군가가 절 안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
하윤은 곧이어 그 사람이 무경이라는 것을 깨닫고 입술을 짓씹었다. 이마에 맺혀 있던 식은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불안으로 가슴이 세차게 뛰었다. 무경은 아직 깊이 잠들어 있는 중이었다. 하윤은 숨조차 내쉬지 않은 채 무경의 팔과 다리를 조심스레 떼어 냈다.
‘이건 뭐야.’
무경의 다리를 떼어 내다가, 하윤은 자신의 왼쪽 발목에 묶인 붕대를 발견했다. 붕대는 올가미 형태로 묶여 있었고, 반대편은 무경의 손에 걸려 있었다.
‘대체 이걸 왜.’
하윤은 떨떠름한 눈빛으로 무경을 힐끔거리다가 붕대를 벗었다.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다리가 꺾일 뻔했으나, 나동그라지기 전에 샛길을 열어 자연스럽게 방 바깥에 있는 욕실로 넘어갔다.
욕실 거울에 비친 모습을 보고는 천천히 숨을 들이켰다. 얼굴이 얼룩덜룩했다. 입가는 터져서 딱지가 앉아 있고, 양 뺨은 멍으로 얼룩덜룩했다. 눈가와 콧등에도 긁힌 흔적이 있었고 이마엔 커다란 밴드가 붙어 있었다.
“…….”
눈가와 콧등, 그리고 이마는 힘을 되찾은 그날 제 분을 이기지 못해 바닥에 머리를 박다가 생긴 상처였다.
‘뺨이랑 입술은 왜.’
곰곰이 생각하다가, 이내 입가가 터진 이유가 생각났다.
‘아, 빨아 주다가 터졌겠다.’
그러나 뺨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집에 돌아와서 씻을 때 없던 상처였다. 그렇다는 말은 집에 온 뒤에 생긴 상처라는 뜻이었다.
‘맞은 기억은 없는데.’
거울을 자세히 보려고 몸을 숙이던 하윤은 일순 현기증이 돌았다. 중심을 잃고 비틀거리다가 바닥에 주저앉았다.
세상이 빙글빙글 도는 것만 같았다.
‘갑자기 일어나서 그런가.’
삐걱거리는 몸을 생각하면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하윤은 벽에 몸을 기댄 채 어지러움이 가시길 바랐다.
빙글빙글 돌던 세상이 멈추고, 컴컴하게 보이던 세상이 본래대로 보일 때쯤 하윤은 허기를 느꼈다. 이제 허기지다 못해 속이 아팠다. 하윤은 냉장고 속으로 이어지는 샛길을 열었다. 냉장고 안에서 두유를 꺼낸 하윤은 허겁지겁 두유를 마시기 시작했다.
두유의 냉기에 머리가 울렸으나, 당장 허기는 달랬다. 빈 팩을 옆에 두다가 하윤은 문득 웃음을 터트렸다. 그제야 자신의 힘이 돌아왔음을 실감했기 때문이었다.
‘진짜 돌아왔네.’
“……하필 제일 좆같을 때.”
제일 필요했을 때 사라지고, 제일 필요 없을 때 돌아오고.
물론 돌아오니 좋긴 좋았다. 괴수도 잡고 앉은 자리에서 냉장고도 뒤질 수 있고.
‘공간을 못 열긴 하지만.’
하윤은 공간에서 봤던 금색 구체를 떠올렸다. 구체는 완전하지 않았다. 하윤이 몇몇 곳을 억지로 맞추고 나서야 그나마 구체 구실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뒤에 힘을 쓸 수 있었다.
‘몸이 아팠던 건 구체의 조각을 억지로 밀어 넣었기 때문일까?’
하지만 그 명제가 성립하려면 공간에서 구체를 볼 수 있었던 건 실제여야 했다.
‘그러면 왜 지금은 들어가지 못하지?’
하윤은 곰곰이 생각했다.
‘조건이 있었나?’
그럼 그 조건은 무엇이었을까. 자신은 사무실 안에서 뭘 했길래 조건을 맞출 수 있었던 것일까. 딱히 생각나는 게 없었다.
‘사무실 내가 아니라 바깥에서 원인이 있었을 수도 있지.’
하윤은 괴수의 어마어마하던 증식 속도를 생각했다. 일대 도로를 점거하다 못해 지하로 스며들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정신착란을 일으키는 기체를 생성해 내기도 했다.
‘아, 그건가.’
일대로 퍼진 기체는 건물 내부로 스며들었다. 건물 전체에 차단막이 내려가 있기는 했으나, 일 층 화장실 등 일부 차단막이 손상된 곳이 있었다. 그곳을 통해 기체가 들어왔고 기체에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이상행동을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또 단순히 환각을 봤다고 하기엔 능력이 돌아왔잖아? 그게 아니면 내가 정신적인 문제로 여태 능력을 사용하지 못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그래서 환각을 보다가 그 부분이 해소가 됐고…….’
“으이그, 김하윤.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냐.”
하윤은 답답한 마음에 자신의 머리를 퍽퍽 내리쳤다. 생각하면 할수록 마음이 갑갑해졌다. 명확하게 답이라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윤은 길게 한숨을 내쉬며 생각을 마무리했다.
‘몰라, 일단 돌아온 거.’
능력을 쓸 수 있으면 좋은 거고, 없어져도 이제 별로 아쉽지도 않았다.
‘또 없어지면 없어지는 거지.’
하윤은 회사와 이어지는 샛길을 만들었다. 통로를 통해 조심스럽게 사무실 내부를 살폈다. 아직 출근한 사람이 없어 사무실 안이 컴컴했다.
청소했는지 바닥이나 벽도 나름 말끔했다. 아예 얼룩이 져 지울 수 없었던 것들만 빼면 어떤 일이 있었는지 생각지도 못했을 것이다.
하윤은 벽과 바닥을 훑어보다가 이내 자신의 책상을 찾았다. 그리고 그 위에는 그가 찾던 것 중 두 가지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안경이랑 휴대전화는 있고. 지갑은 없나?’
그러나 이내 얼마 들지 않은 지갑이긴 하지만 눈에 보이게 책상에 두었을 리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갑은 출근한 뒤에 알아보기로 한 하윤은 안경과 휴대전화를 챙겼다. 예상했던 대로 안경은 반쯤 박살 나 있었고 휴대전화는 방전되어 있었다.
가볍게 몸을 씻은 하윤은 곧장 휴대전화를 충전시켰다. 방전된 지 오래된 탓에 충전 표시조차 바로 뜨지 않았다. 하윤은 셔츠에 팔만 꿴 채 초조한 얼굴로 휴대전화를 바라보았다. 이윽고 어느 정도 충전이 되었던지 휴대전화가 켜졌다.
‘삼 일이나 지났네.’
괴수가 출현했던 날로부터 삼 일이나 지나 있었다. 불안이 밀려들었다. 확인하지 않은 메시지 수를 보자 한숨부터 나왔다. 하윤은 메신저 앱을 작동시켜 회사 단체방을 가장 먼저 확인했다. 빠르게 화면을 위로 올렸으나 이번 주 일정에 관한 말은 따로 보이지 않았다.
그냥 수고했고 푹 쉬고 출근하자는 등의 말밖에 없었다.
‘그냥 현장에서 공지하고 말았나.’
“……아니, 현장에 없는 사람도 있었을 텐데 너무한 거 아니냐.”
예를 들면 김하윤 같은 사람 말이다.
‘다른 사람은 모르겠고.’
하윤은 이어 통화 목록을 확인했다. 목록에는 어쩐 일로 무경이 남아 있었는데, 한번이 아니라 여러 번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잘못 건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별일이 다 있네.’
무경의 목록 뒤에는 회사 전화번호와 부장님 번호가 남아 있었다. 하윤은 시계를 바라보면 아주 작게 신음했다. 연락하긴 해야 하는데 이 시간에 해도 되는지 염려되었다. 아니, 사실은 그냥 걸기 거북했다.
‘아, 하기 싫어.’
그때 때마침 박 대리로부터 연락이 왔다.
“아, 받기 싫어.”
하지만 안 받을 수가 없었다.
“예에, 대리님.”
[김하윤, 살아 있냐?]
“아, 생각해 주신 덕분에 괜찮은 것 같습니다.”
[야, 넌 인마. 살아 있으면 재깍재깍 연락해야지. 다들 걱정하잖아.]
“아, 그으. 진짜 죽다 살아났습니다. 진짜 이틀 내리 잤어요. 일 층에 있을 때도 번호표 받고 대기만 하다가, 병상 없으니까 해상 명령 떨어지면 집에서 대기하라고 그러더라고요.”
[안 그래도 그렇다고 하더라. 그래도 뭐, 그중에선 상태 괜찮았으니까 집 가라고 했겠지. 지금 뭐, 멀쩡히 집까지 왔네.]
“귀소 본능이란 게 있나 봅니다. 하하. 진짜 어떻게 집에 왔는지. 그 뒤로 침대에서 뻗었는데, 눈 뜨니까 조금 전이더라고요.”
[그럼 병원 아예 못 갔겠네? 몸은 어때? 어지럽거나 그래?]
“조금 그렇긴 한데, 움직이다 보면 괜찮겠죠. 대리님은요? 몸은 괜찮으셨습니까?”
[몸이야 다행히도 괜찮은데, 그날 엄청 시달렸다. 시달렸어. 더 쉬어야 하겠는데 회사는 아니라고 하고. 돌겠다, 돌겠어.]
“허어.”
[일단 출근하는 거로 알고 있는다? 아, 그리고 부장님이랑 과장님께 연락드리고.]
“두 분 다요?”
[그래, 기본이지 인마. 기본! 넌 무슨 놈이 기본도 안됐냐? 아, 내가 진짜 진짜 참선배다. 참선배. 누가 이런 거 삼 년 차한테 가르쳐 주냐? 기본도 안 된 새끼 그냥 깨져 보라고 말도 안 하지. 네 사수만 해도 어? 그놈이었으면…….]
“아하하. 아휴, 그냥 제가 부족해서죠.”
하윤은 박 대리가 눈앞에 있는 것처럼 연신 고개를 꾸뻑이며 비위를 맞추기 위해 애썼다. 그때 벌컥 문 여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를 따라 뒤돌자 무경이 흉흉한 기세로 서 있었다.
“너……!”
무경이 소리를 지를 것이라 예상한 하윤은 곧장 두 손을 모아 싹싹 빌었다. 무경이 멈춰 서는 것을 확인한 하윤은 잠시만 조용히 해 달라고 입을 뻐끔거렸다. 그런 다음 무경으로부터 몸을 돌린 채 최대한 멀찍이 떨어졌다.
박 대리는 아침부터 어디서 깨지고 왔는지 오늘따라 말이 많았다. 자기 자랑 반, 맞장구쳤다간 역으로 휘말려서 정치질에 당할 만한 함정도 늘어놓고 아주 골고루 했다.
“예, 예에. 잊지 않고 연락하겠습니다. 아하하, 예,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가르침 감사합니다. 넵, 예! 들어가십시오. 예엡, 나중에 뵙겠습니다. 예에엡.”
전화를 끊고 나자 힘이 쭉 빠졌다. 그저 전화만 받았는데 반나절 시달린 기분이었다.
“……회사 사람이야?”
“어어. 내가 연락이 없어서 오늘 출근하는 날인 거 알려 주려고 연락하셨대.”
“…….”
“왜?”
어쩐 일로 자신의 일을 궁금해하나 싶었다. 하윤은 역시나 돌아오지 않는 대답에 어깨만 으쓱였다.
‘시끄러워서 그냥 물었나 보지 뭐.’
통화 소리가 잠결에 거슬렸나 보다. 판단을 내린 하윤은 최대한 조용히 베란다로 이동했다. 그러나 누군가 잡은 것처럼 거실 문이 열리지 않았다. 단둘이 사는 집이라 범인이라 의심할 만한 사람은 하나밖에 없었다.
하윤은 무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무경은 떨떠름한 얼굴로 하윤을 바라봤다. 그러고는 앉으란 듯이 소파를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너, 방에서 어떻게 나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