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화
환한 빛이 커튼 틈새로 쏟아졌다. 깍깍거리는 새소리가 들리다가, 얼마 안 있어 세찬 매미 울음소리가 이어졌다. 무경은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은 채로 커튼만 살짝 들쳤다. 구름 하나 없이 맑은 하늘이 언뜻 보였다.
오늘도 무진장 더우리라는 생각에 한숨부터 나왔다.
느릿하게 자리에서 일어난 무경은 아직 잠에 빠져 있는 □□을 바라보았다. 퉁퉁 부은 입술을 바라보다가 슬며시 그의 어깨를 쓸어내렸다.
“□□아, 아침이야. 이제 일어나야지.”
무경은 □□을 향해 작게 속삭였다. 사실 그는 □□을 지금 깨울 생각이 없었다. 여름이라 해가 일찍 뜨기도 했고, 오늘은 백진하도 서이주도 없었다. 아침 준비를 하려면 저는 조금 서둘러야 했지만, □□은 자신이 준비하는 동안 조금 늑장을 부려도 괜찮았다.
그저 이건 깨우긴 깨웠노라는 명분에 불과했다.
미동도 없는 □□을 보며 무경은 작게 웃었다. 그 소리에 잠이 깼는지 □□이 돌연 몸을 뒤척였다. 그러다가 눈도 뜨지 않은 채 무경에게 물었다.
“몇 시야?”
“여섯 시.”
“……일어나야 하네.”
말만 일어나야 한다고 하지 일어날 생각이 없었다. □□은 누워서 팔만 위로 쭉 뻗었다. 무경은 □□의 두 뺨을 쓱쓱 비비고 어깨와 팔, 그리고 다리를 쭉쭉 늘리듯 주물렀다. □□은 무경의 손길을 따라 두 팔과 다리를 쭉쭉 뻗었다.
“으으음.”
자느라 말려 올라간 반바지에 흰 허벅지가 드러났다. 무경은 자연스레 □□의 다리를 주물렀다. 주무르고 있었으나 사실 주무르는 게 주목적이 아니었다.
‘이것 봐.’
전에 만졌던 것보다 살이 느껴지지 않았다. 웃옷이 올라가며 납작한 배가 일부 보였다.
“…….”
무경은 여름이 싫었다. 여름은 신경 쓸 게 특히 많았다. 그중에 하나가 □□의 식욕이었다. □□은 여름만 되면 식욕이 뚝 떨어졌다. 특히나 아침이 제일 심했다. 더위에 노출될 시간도 아닌데 왜 그러는지 아직도 이해할 수 없었다.
‘김□□은 조금만 신경 안 쓰면 살이 빠져.’
운동량은 많은데 그만큼 먹어 주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무경이 챙기지 않으면 어느새 살이 쑥 빠져 있었다. 하지만 여름은 신경을 써도 빠지기 일쑤였다. 무경은 자연스레 □□이 아침에도 잘 먹는 반찬들을 떠올렸다.
‘냉장고에 재료가 있던가……? 아, 그건 만들 수 있겠다.’
모친인 서이주는 그렇게까지 □□의 체중을 신경 쓸 필요 없다고 그를 곧잘 나무랐다. 덩치도 산만 한 놈을 바람 불면 날아가랴, 쥐면 꺼지랴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밥이야 어련히 배고프면 알아서 먹을 것이라면서.
하지만 무경은 서이주의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 덩치가 산만 하다는 것은 백진하나 저한테나 어울리는 말이었지 □□은 아니었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저가 쭉쭉 밀어 놔서 키만 조금 컸지 속 빈 강정이나 다름없었다.
게다가 피부도 흰 데다 조금만 힘을 줘도 멍이 잘 올라왔다. 물론 여기서 조금만 힘을 준다는 건 무경이나 백진하의 기준이었지 일반인 기준은 아니었다. 그들이 조금만 힘을 주면 누구나 멍이 잘 올라올 것이었다.
하지만 무경은 다른 사람들은 관심이 없었다. 어차피 □□과 자신은 한평생 붙어살 것이기 때문에 □□은 그의 기준 아래 살아야 했다. 더군다나 무경은 여태 □□을 힘껏 안아 본 적이 없었다. 물론 그것도 □□은 죽겠다고 아우성을 쳤지만.
결론을 내자면 무경의 기준에 □□은 너무나 작고 여린 데다가 말랐다. 지금도 안을 때마다 덜컥덜컥 겁이 날 때가 있었다. 하물며 여기서 더 빠진다면 손조차 대지 못하리라.
‘차라리 여기서 이십 센티쯤 더 크고 근육질이면 좋겠어.’
무경은 눈을 가느스름하게 뜬 채 □□을 훑어보았다. 그의 시선에서 뭔가를 느꼈는지 □□은 내내 감고 있던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왜?”
“너 살 빠졌어.”
“정말? 아니야, 안 빠졌어.”
상황을 모면코자 □□은 무경을 향해 웃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무경은 물러날 생각이 없었다.
“이럴 때만 웃지. 이리 와 봐.”
무경은 슬금슬금 도망가려는 □□을 낚아챘다. 길이가 무색하게 달랑 들렸다.
“하나도 안 빠졌지?”
□□은 저가 불리할 때만 곰살맞게 말을 걸었다. 그 점이 얄미우면서도 귀여워서 뭐라고 할 수가 없었다. 사실 뭐라 해도 들을 것 같지도 않았다. 그냥 집에선 밥 한술이라도 더 먹이고 학교에선 틈틈이 간식 사다가 입에 넣어 주는 수밖에.
더군다나 무경은 그런 수고가 싫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에는 □□을 옆에 끼고 있을 수 있으니까. 요즘 □□은 딴생각을 하고 있어 감시가 필요했다.
‘어차피 평생 같이할 거니까 연애는 다른 사람이랑 하고 싶다나 뭐라나.’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자신이 살아 있는 한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지금은 금제 때문에라도 하윤이 말하는 친구로 남아 있지만, 금제가 풀리는 삼 년만 지나면 그것도 끝이었다.
무경은 □□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안고 있던 □□을 위로 올렸다. 동시에 고개를 숙여, □□이 방심한 틈에 그의 배에 숨을 불어 넣었다. 요란한 소리와 함께 □□이 질색하며 침대로 떨어졌다.
“아아악!”
고작 삼십 센티 높이에서 떨어졌을 뿐인데 □□은 처절한 비명을 질렀다. 어딘가 잘못되었는가 싶어 무경은 곧장 □□의 상태를 살폈다.
“□□아? 장난치지 마. 나 무서워.”
□□은 움직이지 않았다. 무경은 □□을 짚었던 손을 내려다보았다.
“……□□아?”
손에는 벌건 피가 흥건히 묻어 있었고, 어느새 주변은 방 안이 아니었다. 무경은 아스팔트 길에 이상한 자세로 누운 고깃덩어리와 그것이 떨어졌을 곳을 찾아 고개를 들었다.
익숙한 건물과 익숙한 난간을 본 순간, 무경은 꿈에서 깨어났다.
“……!”
무경은 곧장 오른손을 들었다. 그의 오른손에는 압박붕대가 묶여 있었고, 붕대의 반대편 끝은 김하윤의 발목에 묶여 있었다. 벗었다가 낀 흔적 없이 그가 묶어 둔 그대로였다.
“씨발.”
무경은 거칠게 얼굴을 쓸어내렸다. 지나치게 선명한 꿈이었다. 꼭 진짜 있었던 일같이 생생했다. 재잘대던 목소리도, 웃음도 비명도. 모든 게 선명했다. 비록 깨어난 뒤엔 어떤 목소리인지 생각나지 않고, 생생했다는 느낌만 남았을 뿐이지만 그것만으로도 가슴이 거세게 쿵쾅거렸다. 심장 소리를 따라 머릿속도 펄떡이는 것만 같았다.
기분 나쁜 열기가 느껴진다 싶더니 몸에 땀이 흥건했다. 무경은 몸을 일으켜 김하윤을 내려 보았다. 희멀겋던 김하윤의 얼굴이 얼룩덜룩했다. 밖에서 다친 것도 있고 무경이 하윤을 깨우려다 만든 상처도 있었다.
김하윤은 키와 덩치가 무색하게 멍도 잘 들고 뼈대도 그리 굵지 않았다. 원래도 잘 먹지 않아 마른 편인데, 요 며칠 새 아예 먹지 않으니 뼈만 남은 것 같았다.
“김하윤.”
그리고 그 며칠 사이 무경은 같은 일을 반복하고 있었다. 김하윤은 곤히 잠든 채 일어나지 않고, 저만 혼자 불안에 떨다가 악몽을 꿨다. 악몽은 점차 선명해져서 꿈 특유의 느낌도 없었다. 꿈에서 깬 뒤에도 귓속에 소리가 남은 것 같았다.
덕분에 회복을 위해 이틀여의 시간을 받은 게 무색하도록 무경은 그사이 눈에 띄게 초췌해졌다.
“일어나.”
무경은 잠든 김하윤을 흔들었다. 그러나 김하윤은 그가 흔드는 대로 흔들릴 뿐 눈을 뜨지 않았다. 격앙된 무경과 달리 숨소리도 크게 나지 않았다. 무경은 이를 악물고서 하윤을 흔들다가 이내 안아 일으켰다.
“제발 좀 일어나라니까!”
제게 별로 무거운 무게도 아닌데 이대로 놓칠 것만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덜덜 떨리는 손끝에 힘을 주고는 무경은 다시 하윤을 깨웠다. 목소리가 잠겨 생각만큼 크게 나오지 않았다.
그날 새벽, 무경의 오랜 바람에 덤덤히 대꾸한 김하윤은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꺼냈다. 그가 지하철 승강장에서 김희원을 봤다는 것이었다.
무경은 하윤에게 잘못 본 것이 아니냐고 물었다. 그러나 하윤은 모포를 둘러써 표정 하나 보이지 않은 채로 고개를 저었다. 그러고는 김희원이 [문]을 열고 나왔노라고 말했다. 자신이 아무리 힘을 잃었어도 [문]이 주는 특유의 느낌을 모르진 않노라고.
그곳에 [문]이 있었고 김희원이 그걸 열고 나왔고 또 샛길을 열었노라고.
그리고 네가 봐도 단번에 알아볼 수 있는, 옛날 그 모습 그대로였노라고 대답했다.
[열차를 탄 다음에야 봐서 쫓아갈 수가 없었어. 건너편으로 넘어가는 순간에 이미 사라질 것 같아서, 열차 칸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뒤쫓았어.]
[그렇게 떨어져 있었으면 잘못 볼 수도 있는 거잖아.]
[무경아, 문을 열었다고 했잖아.]
[…….]
이어 김하윤은 알 수 없는 말을 뱉었다. 숫자와 알파벳이 섞인 말이었다.
[샛길은 문과 문 사이를 비집고 트는 건데, 그러면 연 사람의 흔적이 남아. 무경아, 옛날 그 느낌이 나. 옛날에 희원이가 연 문이 그랬어. 걔, 희원이야. 희원이 맞아.]
김하윤의 말을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이대로 한껏 기대했다가 또 허탕만 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또…….
무서웠다.
그리고 또 화가 났다.
[김희원이 살아 있어. 찾아, 무경아.]
김하윤은 쐐기 박듯 말하고는 무경에게 손을 뻗었다. 모포로 가린 탓에 헛손질만 했으나 무경은 잡혀 줄 마음이 없었다. 김하윤의 손길을 피하듯 뒤로 물러나자 김하윤도 금세 포기했다.
[진짜야. 거짓말 아니야.]
그러나 무경은 의심을 거두지 않았다. 그렇게 중요한 이야기라면 왜 자신에게 바로 말하지 않았단 말인가. 그랬다면 자신을 진창에 처박는 더러운 짓도 하지 않았을 것이고, 여태 잘 묻어 두고 있던 바람을 꺼내지도 않았을 것이다.
무경은 하윤을 탓했으나 속 깊은 곳에서 치밀어 오르는 혐오감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김희원의 생존을 확인한 것만으로도 기쁜 일이었다. 열 일 제쳐 놓고 곧장 그를 찾을 생각부터 해야 하는데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그는 분명 김하윤의 말을 들었을 때, 두려워했다. 백무경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아니, 있어선 안 되는 일이었다.
김하윤은 어딘가 고장 나 버린 기계처럼 자신이 있었던 지하철 역사와 위치를 반복해서 말했다. 무경이 얼떨결에 따라 말하자 그제야 말을 멈췄다. 그러고는 테이블에 머리를 기대고서 잠이 들었다.
이번에는 아무리 깨워도 일어나지 않았다. 소리를 지르고 흔들어도, 뺨을 때리고 물을 부어도 축 늘어진 채 일어나지 않았다.
열이 나는 것도 아니었다. 어디 아픈 곳이 있으면 신음이라도 할 텐데 그렇지도 않았다. 이마를 찧은 흔적으로 보아 뇌진탕이 있었나 싶다가도, 아직 해제 명령이 떨어지지 않은 건물에서 빠져나와 지하철을 타고 집까지 온 것을 보면 멀쩡한 것도 같았다.
그래도 혹시 몰라 병원으로 데려가려고 했으나 병상이 없어 일단 집에서 지켜보고 상황이 심각해지면 그때 입원 절차를 밟기로 했다.
의료체계가 정상적일 땐 있을 수 없는 일이나, 지금은 비상이었으니 따를 수밖에 없었다.
또 무경은 후속 처리를 맡은 후배에게 하윤이 말한 지하철역 승강장을 비롯한 역사의 CCTV 영상을 부탁했다.
그날 저녁 후배에게 부탁한 영상이 메일로 들어왔고, 하윤이 말한 시간에 승강장에서 김희원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출현하는 영상 또한 확보했다. 그러나 그 [문] 때문인지 화면이 일그러져 인물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단지 머리칼의 모양이나, 안경을 썼다는 점. 휠체어를 미는 것으로 보아 동행이 있다는 점뿐이었다. 옷차림이 복고풍이라는 것을 제외하면 특색 있는 구색이 없었다. 보는 순간 자신이 그를 알아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만큼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김하윤이 필요했다. 자신에겐 없는 김희원에 관한 기억이 있는 김하윤이. 김희원에게 보인다고 생각하면 김하윤을 당장 어딘가에,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 처박고 싶었지만 멀리서 확인만 하게 하면 괜찮지 않겠나 싶었다.
그러나 한시가 바쁜데도 김하윤은 이틀째 깨지 않았다. 덕분에 백무경은 이틀 동안 제대로 잠들지 못했다. 물건 떨어지는 소리라도 들리면 소스라치게 놀래고, 자신이 잠든 사이 김하윤이 일어날까 봐 불안해서 자다 깨기를 반복했다. 급기야 붕대로 김하윤의 발목과 자신의 손목을 연결하기까지 했다.
저 모르는 사이 일어난 김하윤이 창밖으로 뛰어내릴 것 같았다. 그날은 아니라고 했으나, 그다음 날부터는 모르는 일 아닌가.
“……빌어먹을 김하윤.”
이제는 싫어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암만 그가 끔찍하더라도, 그토록 죽길 바랐어도 진짜 죽어서는 안 됐다. 모순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아니, 어쩌면 이제는 차라리 인정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사실 백무경이 꽤 오래전부터 김하윤의 죽음을 두려워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