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하윤은 잊고 있던 오래된 습관을 떠올렸다. 중간중간 문밖을 나와 CCTV에 모습을 비추는 게 그것이었다. 알리바이를 만들기도 하고, 적을 교란하기도 하고. 서이주는 길거리에 CCTV나 블랙박스가 없는 시절에도 이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습관이 될 만큼 집요하게 교육했다. 십 년의 공백이 무색하게 툭 튀어나올 정도로.
‘선생님.’
하고 싶은 것도 생각할 것도 많았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울고 싶기도 했고, 끝없는 허기에 뭐라도 입안에 집어넣고 싶기도 했다. 또 한편으론 마무리 짓지 못한 생각들을 정리하고 싶었다. 공간에서 봤던 깨어진 황금 구체, 이제야 돌아온 능력. 게다가 문을 여닫을 수 있음에도 공간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 또 승강장에서 본 김득철과 자신의 옛 얼굴을 한 사람 등.
그러나 몸은 자꾸만 잠을 자려했다.
집에 들어오자 더욱 심해졌다. 하윤은 결국 밥 먹는 것도 우는 것도 포기한 채 간단하게 씻기만 했다. 바닥에서 자면 잤지, 이 상태론 침대에서 잘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어찌어찌 씻고 옷도 갈아입고 핏물과 진물이 나오는 이마엔 큰 반창고를 붙였다.
최선을 다해 최소한의 준비를 마친 하윤은 그야말로 베개에 머리가 닿자마자 기절하듯 잠이 들었다.
그렇게 얼마나 있었을까. 도무지 자신의 힘으론 깰 수 없다 싶었던 잠이 설게 깼다.
익숙한 기운과 함께 몸이 불쑥 들렸다. 절박하게 양어깨를 움켜쥐는 힘에 하윤은 익숙하게 폭주한 무경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평소같이 그를 끌어안고 얼렀다.
비록 오늘 하루가 고단했지만, 그렇게 나쁜 일은 없었노라고.
괜찮았다고 속삭이며 무경을 도닥였다. 등을 도닥이고 싶었으나 팔이 들리지 않았다. 달래 줘야 하는데 졸음이 너무 미친 듯이 쏟아졌다. 잠깐이라도 생각을 놓칠 때면 어김없이 잠이 들었다.
스스로 깜짝깜짝 놀라며 잠을 깼으나, 온전히 깬 게 아니라 그런지 눈꺼풀도 제대로 뜨지 못했다. 그저 귀만 조금 열려서 무경이 씩씩거리는 것만 들었다.
그러다가 조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평소랑 달리 무경이 저를 마주 안지도, 그렇다고 몸 여기저기를 지분거리지도 않았다. 물론 그런다고 받아 줄 수 있는 상태는 아니었다. 불안감이 스쳤으나 다시금 무력하게 잠들어 갈 때쯤, 무경이 뭐라 하는 말이 얼핏 들렸다.
“……넌 날 불행하게 해.”
“…….”
“네가 다 망치고 있어. 네가. 김하윤 네가.”
하윤은 무경의 말을 듣는 순간, 자신이 예전에 자신이 한 고백을 들킨 줄 알았다.
‘맞아, 내가 다 망쳤어. 내가 모든 걸 다 엉망으로 만들어 버렸어. 그래서 너도, 그래서 나도 불행한 거야.’
그러나 가장 불행한 것은 자신이 불행을 초래한 것으로도 모자라 불행을 끊을 방법을 모른다는 것이었다. 하윤은 자신이 사라진 뒤에 시간이 무경의 불행을 무디게 만들어 주길 바랐다. 세상 모든 것에 그러하듯이.
드문드문 상념을 이어 가던 하윤은 무경에게 밀쳐져 침대에 넘어간 뒤에야 온전히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그제야 무경이 말을 한다는 것을, 폭주한 상태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아.’
침대에 밀쳐진 충격으로 머리가 징 울리며, 식은땀이 났다.
아픈 것과 별개로 무경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이해가 갔다. 정신계 괴수와 전투하는 과정에서 정신이 들쑤셔진 것이리라. 그래서 미움을 상기했는지도 몰랐다.
‘그럼 오늘 밤은 그냥 넘어가지 않겠구나.’
얌전히 자기는 글렀다. 이를 예감하자 가슴이 불안으로 두근거렸다. 하윤은 자신의 상태를 숨기기 위해 무경에게 말을 걸었다. 자다 일어난 탓에 자신이 생각해도 쓰잘데기 없는 말만 튀어나왔다.
그러다가 무경의 신경을 거슬렀을 땐 그냥 자신의 입을 꿰매고 싶었다. 아무 쓸모가 없었다. 하지만 무경이 왜 그렇게 거슬려 했는지는 알지 못했다. 그저 자신이 숨 쉬는 것조차 거슬려 할 테니 뭔갈 건드렸겠거니 할 뿐.
깊이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별 의미 없을 테니까. 관계하자는 것도 그랬다. 전투로 쌓인 스트레스도 스트레스고 지금, 이 상황에 절 마주한 것도 스트레스일 것이다. 이래저래 쌓인 걸 푸는 방식일 뿐이었다.
‘그래, 차라리 다른 데 가는 것보단 이게 낫지.’
하윤은 익숙하게 준비한 뒤 무경의 욕구를 풀어 주기 시작했다. 몸이 늘어져 버거웠으나 그래도 참을 만했다. 여기까지는 평소에도 있을 법한 일이었다. 그리고 하윤은 무경이 이럴 때마다 잘 넘겨 왔었다.
“차라리 그때, 죽어 버리지.”
“…….”
“가끔 그렇게 바라. 오늘도 그렇고.”
그때 죽지.
무경이 암만 자신의 목을 조르며 우악스레 자신의 목구멍을 쑤셨어도, 그 한마디만 안 들었으면 이번에도 잘 넘겼을 것이다.
그득 찰 때까지도 잘 버텨 내며 넘치지 않았던 눈물이, 단 한마디 더 받았다고 속절없이 넘쳐흘렀다. 슬프지도 않으면서, 화가 난 것도 아니면서.
그저, 그저 넘쳐흘러서.
‘이제 이 정도는 잘 참잖아.’
불행이 불행을 부른다는 말은, 평소엔 견뎌 낼 일을 견뎌 내지 못해 불행으로 만들어 버리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물론 견딜 수 있는 횟수를 다 제해 버리는 바람에 더는 견디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남들에게나 본인에게나 마지막 남은 횟수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이전에도 견뎠으니 이번에도 견뎌 내야 할 뿐.
하윤은 자신에게 윽박질렀다. 이대로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면 기껏 쌓아 온 것들이 무너질 것만 같았다.
‘아무것도 생각하지 마. 아무것도. 슬프지도 않고 화가 난 것도 아니잖아.’
천을 뒤집어쓰고 있는 덕분에 무경의 얼굴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잠깐 딴생각을 하면서 삭이기만 하면 됐다. 할 수 있었다. 마침 TV 소리도 들렸다. 하윤은 목구멍과 입을 한껏 벌린 채 TV 소리에 집중하려 애썼다.
그러나 자신이 죽길 바랐고, 오늘도 그랬다는 무경의 말이 어찌나 그렇게 선명하게 들리던지.
“…….”
이대로 놓으면 자신이 무너질까 봐 안간힘을 다해 잡고 있던 무언가가 끊어졌다. 그러나 겁냈던 것과 달리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다. 새삼스럽게 무너지거나 절망하지도 않고 또 더 슬프거나 하지도 않았다.
그저 머리나 몸이 차갑게 느껴질 뿐이었다.
“그럼 그때 반지 찾겠다고 뛰어내렸을 때 말리지 말지.”
무경은 하윤이 얼마나 많은 그때를 버텨 왔는지 몰랐다. 비단 반지를 따라 난간을 뛰어오르던 순간뿐만 아니라, 더 많은 그때가 있었다. 날이 좋거나, 나쁘거나, 혹은 그냥 아침에 일어날 때나 잠들기 전이나.
바늘을 삼키듯 억지로 참아 넘겨야 했던 때가 얼마나 많았는지 몰랐다.
하윤의 왼손 엄지가 반지를 찾아 분주히 움직였다. 가까스로 손끝에 걸린 반지를 확인하듯 힘주어 긁었다.
“그러게. 그럴걸.”
하윤은 무경의 말에 습관적으로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짧은 후회가 밀려왔다. 그러다가 문득 자신은 왜 그렇게 생일날 앞에 죽니, 뒤에 죽니 고민했나 싶었다. 바라는 대로 최대한 일찍 가 줬으면 됐는데.
하지만 다시 돌아간다 해도 하윤은 버텼을 것이다. 눈앞에 있는 무경이 아닌, 자신이 사랑했던 무경을 위해서. 그가 나중에 너무 많이 섭섭해하지 않도록.
그때 무경은 지금 뛰어내리겠냐고 물었다. 염력으로 문이라도 열어 줄 것 같은 말에 하윤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오늘은 안 될 것 같아. 너무 힘들었거든.”
그 순간에 하윤은 김득철과 어린 날의 자신의 모습을 하고 있던 사람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가 열었던 샛길이 어디로 통하는 곳인지도.
그리고 그것을 어디서 봤는지도.
‘김희원의 집.’
새로운 초능력자 같은 걸 만들어 낸 게 아니었다. 그래, 그럴 수가 없었다. 하윤은 자신의 모습을 뒤집어쓴 게 누구인지 알아차렸다.
‘김희원.’
마냥 헛소리 같던 제 가정이 맞았다면? 김득철이 김응을 죽이고 어떠한 목적을 위해 어린 김희원의 옆에 김응의 인형을 둘 때, 김희원의 머리를 만졌다면?
김희원이 납치가 아닌, 제 발로 김득철에게 걸어갔다면? 그들과 김희원이 한패라면?
그렇다면 김희원은 왜 자신의 모습을 뒤집어쓰고 있었을까?
하윤은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어느새 눈앞에 문이 열렸다. 하윤은 뒤집어쓴 모포가 아니라 무경의 뒷모습을 응시했다.
‘어쩌면 그놈들이 내 거짓말을 알고 있는지도 몰라. 무경이 날 잊어버린 건 무경이를 예전부터 아는 사람이라면 다 아는 거고.’
김희원, 김득철, 백무경. 하윤은 속으로 천천히 그들의 이름을 곱씹었다.
‘내 거짓말을 알고, 또 무경이를 노린다면. 그래, 그렇다면…….’
그렇다면 김희원이 자신의 모습을 흉내 내고 있는 게 말이 됐다. 하윤은 결론을 낸 순간 자신이 간 뒤에도 무경이 혼자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잘하면 무경의 바람도 들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예전에 무경은 지금 이 자리에 티끌 하나 상하지 않은 김희원을 데려 놓으면 자신을 덜 미워하겠노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저는 자신의 목적을 이루고, 그들은 그들의 목적을 이루고. 무경은 또 그의 바람을 이루고. 아귀가 척척 맞아떨어졌다. 하윤은 당장 맞아떨어진 것만 생각하기로 했다. 다른 건 생각할 여력조차 없었다.
결론을 내리자 어떻게 전해야 하나 고민했던 말이 아주 수월하게 나왔다.
“무경아, 희원이 살아 있는 것 같아.”
다행이었다. 모든 게.
하윤은 몹시 기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