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화
“…….”
머릿속에 눈이 내린 것만 같았다. 온통 희고 차갑다가, 또 영문을 알 수 없는 뜨거운 무언가가 가슴에서부터 치솟아 하얗던 곳을 진창으로 바꾸었다.
‘내가 방금 대체 뭘 본 거야.’
보고도 믿을 수가 없었다. 하윤은 얼굴을 천천히 쓸어내렸다. 지금의 자신과는 다른, 십 년 전의 김하윤이었다. 하지만 또 곱씹자면 또 완전히 그랬던 것 같지는 않았다. 자세한 것은 기억나지 않지만, 귀 모양은 확실히 달랐다. 아마 다시 마주쳐서 자세히 본다면 다른 점을 더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정리하자면 곱씹었을 땐 자신이 아니지만, 얼핏 보기엔 십 년 전 자신의 모습과 똑같았다. 그 사람이 십 년 전 김하윤의 모습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요즘은 끼지 않는 안경이나 옷은 물론이고 머리 모양도 그랬다.
하윤은 지하철 출입문 유리창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지금의 자신은 안경도 없고 머리나 얼굴 꼴도 말이 아니었다. 싸구려 정장에 셔츠는 코피로 범벅되어 엉망이었다. 그러나 가장 못 봐줄 건 피곤과 짜증이 그득한 눈과 표정이었다.
“…….”
하윤은 안경이 없는 것을 봤으면서도 습관적으로 안경을 올리려 눈가를 더듬다가 손을 늘어트렸다.
“후…….”
하윤은 눈을 감고 긴 숨을 내쉬었다. 그때 문득, 스치듯 봤던 노인이 생각났다. 노인의 생김새를 떠올리던 하윤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고 목울대가 연신 오르내렸다.
노인은 미라같이 살이 바짝 말라 있었다. 살은 색이 어둡고 검버섯이 피어 있었으며, 주름져 있었다. 머리칼은 숱이 적었는데, 심한 곱슬머리인지 짧게 잘랐음에도 구불거렸다. 게다가 시력이 안 좋은 듯 안경을 끼고 있었다.
“…….”
하윤은 이어 떠오르는 누군가의 얼굴에 황급히 눈을 떴다.
‘……제페토, 김득철.’
만약 노인이 그때 그 김득철이라면?
‘십 년이 지났으니 이제 쉰다섯.’
그는 마흔다섯 무렵에도 오십 대 중후반같이 보였었다. 본인의 능력을 사용할 때 일어나는 부작용 때문이었다.
‘그 꼴이 되었다면 또 능력을 사용했다는 거고.’
그렇다면 어디에다가 능력을 사용했을까?
하윤은 다시 시선을 들었다. 유리창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며, 오늘 마주친 청년을 떠올렸다.
김득철은 새로운 초능력자를 만들고자 했다. 오래전부터 미궁을 연구하던 연구소에 잠입하여 문지기들의 정보를 수집하여 문지기들을 죽이고 곡옥을 빼앗았으며, 인형을 만들어 살인을 은닉하기도 했다.
그뿐 아니라 문지기가 아닌 다른 초능력자들도 납치하여 산 채로 심장 등의 장기를 적출했다. 그러면서 생긴 시신을 은닉하는 과정에서 꼬리가 잡히고 말았으나, 그야말로 꼬리만 잡힌 것이라는 의견이 팽배했다.
그도 그럴 것이 제대로 된 진상규명도 없고 피노키오 일당이 어떻게 되었는지도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다.
‘진짜 살아 있었구나.’
멀쩡히는 아니지만, 아직 숨을 붙이고 있었다.
‘새로운 초능력자를 만들어 내는 데 성공했다는 걸까?’
김득철이 만들었던 팔찌와 그간 정보를 토대로 생각해 봤을 때, 김득철과 그가 속한 조직의 우두머리는 문지기를 만들고 싶어 했던 것 같았다.
미궁의 문을 자유자재로 여닫는 대단한 문지기. 그러나 문지기는 억지로 곡옥을 취한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었다. 그래서 김득철이 ‘만들려고’ 했었을 것이다.
‘원래 그런 놈들이 자기가 못 한다고 하면 미쳐서 달려들잖아.’
인형은 곡옥이 있어도 문을 열지 못한다. 하지만 그는 분명 문을 열고 나왔다. 하윤은 그 청년을 김득철이 만들어 낸 새로운 초능력자로 가정해 보기로 했다.
그런데 왜 만들어진 문지기는 김하윤의 옛 모습을 하고 있는가.
‘씨발, 하나도 모르겠네.’
“개빡치네 진짜.”
생각이 더는 이어지지 않았다.
‘미친놈들 생각을 내가 어떻게 알아. 알 리가 없지. 모르는 게 당연하지.’
혹시 그날 문을 닫은 게 자신이라는 것을 아는 걸까?
‘안다면 내가 지금 이렇게 살아 있을 수 없을 텐데.’
하윤은 피식 웃었다. 스스로를 피노키오 어쩌고 하는 놈들이었고, 문을 닫은 게 김하윤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자신은 아무리 김하윤이 능력을 잃었다고 할지언정 가만두지 않았을 것이다. 피를 뽑든지, 정액을 채취하든지 김하윤의 데이터를 남길 것이다.
데이터를 기반으로 인공수정을 하여 아이를 만들든가, 아니면 김하윤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새로운 문지기를 찾을 것이다. 초능력자는 유전될 가능성이 컸고, 특히나 문지기들은 피를 타고 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서이주가 하윤을 더 신기해하지 않았던가.
백번 양보해서 종마로 쓸 것도 아니면 문지기의 능력에 관해서 실토하게라도 했을 것이다. 어디 문지기가 흔한 능력이던가. 더군다나 당시나 지금이나 김하윤의 보호자는 김하윤을 그들에게서 보호하지 못했다. 더욱이 형제같이 자란 백무경 또한 기억을 잃고 그와의 관계를 일절 부정하는 중임에야.
이보다 잡기 좋은 때가 어딨단 말인가. 그야말로 김하윤이 제철이었다.
‘그런데 안 잡았다?’
너무 제철이라 흔해서 언제든 잡을 자신이 있었던 걸까, 아니면 몸을 사리기 위해서였을까.
‘그것도 아니면 아예 날 모른다는 건데.’
다른 사람은 몰라도 김득철이 자신을 모른다는 건 말이 안 됐다. 하윤은 김득철 앞에서 능력을 사용한 적이 있었다. 그가 백진하의 시신으로 만든 인형으로 하윤과 무경을 공격했기 때문이었다.
‘김득철은 모를 수 없다. 하지만 지금은 꼭 모르는 것처럼 굴잖아.’
하윤은 조금 전 본 김득철의 모습을 떠올렸다. 만약 그날에 그렇게 다쳤다면?
그로 인해 김득철 또한 무경과 똑같이 기억이 불안정하다면?
‘그날 마지막까지 김득철을 상대한 건 무경이었고, 이후 폭주했다. 괴수의 힘이 미치기 전인지 후인지는 불분명하지만.’
김득철은 인형을 만드는 데 도가 튼 사람이다. 하지만 완전히 똑같이 만들지는 못한다. 대신 사람들에게 그렇게 보이도록 할 수 있다.
하윤은 예전에 서이주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사람들에게 그렇게 보이도록 한다.’
하윤은 이어 김희원의 아버지를 상기했다. 김희원이 이전에 살던 집, 화재, 그리고 그 안에서 발견된 시신.
‘시신을 인형으로 만들어 부릴 때는 나무 패 같은 걸 밀어 넣었는데, 그렇다면 사람들에게 그렇게 보이도록 하려면…….’
생각을 잇던 하윤은 미간을 찌푸렸다. 뭔가 중요한 걸 놓친 기분이 들었다. 뭘 놓쳤을까. 곰곰이 생각하던 하윤은 김득철이 완전히 똑같이 만들지는 못한다는 말을 곱씹었다. 똑같지 않다는 게 능력을 말하는 것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김희원의 아버지, 김응은 능력을 잃은 뒤에도 의심을 사지 않았다. 연구소엔 퇴직했다 치지만, 그의 아들인 김희원은? 한평생 살아온 아버지가 그렇게 바뀌었는데 왜 의심하지 않았지?’
물론 김희원과 한 마디도 나눠 본 적 없는 사이지만 부친이 부친이 아니라면 신고를 하지 않았을까? 물론 신고를 할 수 없는 상황이었을지도 모르고 어린 나이라 자연스레 받아들였을 수도 있었다.
‘그렇게 보이도록 한다.’
하지만 암만 생각해도 정신을 건드렸을 가능성이 컸다.
어쩌면 이것 또한 김희원의 납치와 관련이 있을 수도 있었다. 이미 김득철에게 정신이 세뇌된 상태였다면 납치도 수월했을 테니까.
‘만약 그날에 김득철이 무경의 머리도 건들려고 했었다면?’
무경은 뛰어난 염동력의 소유자였다. 그 말인즉 정신력이 강한 편이었고 김득철이 암만 뛰어난 정신계 능력자라도 쉽사리 건드릴 수 없었을 것이다.
‘격렬하게 싸우는 중에 정신계 능력을 쓰는 것도 힘들었을 거고.’
최소한 제압된 상태에서 능력을 써야 했다. 무경은 무경 나름대로 저항했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폭주했을 수도 있었다.
‘그 과정에서 무경이도 김득철도 다쳤다면. 그래서 기억이 섞인 것이라면.’
부상을 입은 채로 그들은 정신계 괴수의 공격에 노출되었다. 부상이 악화되었으면 악화되었지 나아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말도 안 돼.”
‘이렇게 흘러갔으면 나에 대한 기억이 없다고 생각할 순 있는데.’
그럼 대체 왜 김득철의 휠체어를 밀던 그놈은 자신의 모습을 하고 있던 걸까.
‘기억이 엉킨 거지 나를 알고 있던가, 아니면 다른 쪽에서 내 정보를 수집했다거나.’
결론이 나지 않았다. 이건 어디까지나 하윤의 가설에 불과했다. 맞는지 아닌지 확인조차 거치지 않았고 거칠 수도 없다. 하윤은 한숨을 내쉬며 출입문에 머리를 기댔다. 마침 출입문에 기대지 말라는 안내문이 흘러나왔다. 하윤은 다시 눈을 부릅뜨며 문에서 몸을 뗐다.
‘이걸 무경이한테 말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말 안 하기엔 중요한 일이고, 말하기엔 뭐라고 말해야 할지 막막했다. 김득철이 살아 있었노라고. 누군가 그를 휠체어에 앉혀서 데려가고 있었노라고 그렇게 말해야 할까?
‘아, 담배 피우고 싶다.’
피우지도 않는 담배가 간절했다. 그거라도 태우면 이럴 때 좀 나았을까. 하윤은 담배를 대신해 긴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 어떤 결론을 낸 것도 아닌데 몸의 한계가 찾아왔다. 가만히 서 있기만 할 뿐인데 다리가 사정없이 흔들렸다. 이대로 그냥 바닥에 드러눕고 싶었다. 어차피 사무실 바닥에 뒹굴다가 복도에 누워 있기도 하지 않았는가.
매우 구미가 당겼으나 마지막 남은 인내심으로 거슬러왔던 길을 다시 돌아갔다. 열차 칸 사이에 들어가 맞은편에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를 확인한 하윤은 열차 문을 열며 그 사이에 있던 [문]을 열었다.
열차의 문과 [문]이 열리자, 열차 문 너머로 열차가 아닌 캄캄한 길이 나왔다. 하윤은 그 사이로 망설임 없이 몸을 던졌다.
열렸던 문이 다시 스르륵 자연스럽게 닫히고, 창은 다시금 아무도 없는 열차 칸을 비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