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화
“이야, 일반인 됐다더니 신수가 훤하네.”
새로운 수다거리를 찾은 병건은 하윤의 일행을 보며 쯧쯧 혀를 찼다.
“어이쿠, 어이쿠, 옆에 좋아 죽는다.”
“…….”
“인생은 저렇게 살아야 해. 약삭빠르게 치고 빠지고. 능력도 어중간했는데, 차라리 일반인 된 게 잘됐지. 저 새끼 이쪽 초중 나와서 군대도 안 가지? 그럼 뭐 일반고 간다고 꼴아 먹은 시간은 티도 안 나겠네. 누군 좆빠지게 현장에서 구르다가 뒤지기 십상인데.”
병건은 동의를 구하듯 무경에게 안 그러냐? 하고 되물었다. 평소 저도 그렇게 생각했었지만, 병건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 동의하고 싶지 않았다. 무경에겐 좆빠지게 구른다던 병건이나 하윤이나 별반 차이가 없었다.
그러나 병건은 자신이 우위에 있다고 생각했던지 자꾸만 무경의 동의를 구했다. 그러다가 무경이 대답하지 않자 김하윤이 능력을 잃은 그날에 관해 궁금해했다. 진짜로 김하윤이 저를 가족같이 여기던 가족들을 버리고 탈출하다가 과도하게 힘을 쓰는 바람에 능력을 잃은 것인지 등.
“그런 거면 진짜 천벌은 있어? 그치?”
“신호 바뀌었는데, 출발이나 하지.”
“앗, 네넵.”
조금 전과 달리 날카로워진 무경의 기색을 읽었는지 군인은 룸미러로 무경을 힐끔거렸다. 그러고는 기어를 잡았다. 비상 버튼과 호출기를 누르기 좋은 자세였다.
그것을 본 무경은 좌석에 편히 몸을 기댔다. 몸에 붙여 준 측정장치가 살짝 거슬렸다. 무경은 손끝으로 장치를 톡톡 건드리다 이내 창으로 고개를 돌렸다.
곧잘 자의식 중이나 무의식적으로 폭주를 유도하는 초능력자치고 무경은 대부분의 일에 무던한 편이었다. 단 하나, 김하윤에 관한 일을 제외하고는.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러한 사실을 몰랐다. 무경을 밀착관리 중일 관리청에서도 김하윤과 접촉하는 것만 알지 그가 무경의 신경을 얼마나 거스르는지는 알지 못했다.
김하윤과의 접촉은 주로 집에서 이뤄졌고 이제는 예전같이 곤죽으로 만들지도 않았다.
‘그런데 진짜 왜 웃었지?’
무경의 머릿속으로 수줍게 웃던 김하윤과 그를 만지던 손들의 모습이 자꾸만 반복되었다. 암만 생각해도 웃을 일이 전혀 아니었다.
자신을 추켜세워 주던 말이 좋았나?
아니면 그 사람들의 손길이 좋았나?
‘좋았다……?’
무엇이 좋았든 간에 거슬리기는 매한가지였다. 무경은 제 앞에서 곧 죽을 듯이 비실거리면서 멀쩡히 일상을 영위하는 김하윤도 싫었다.
‘네가 감히.’
네가, 그리고 내가 언제까지 버티나 보자.
김하윤이 꼴같잖은 친구 놀이를 하자고 들러붙기 시작했을 때부터 무경은 그러한 마음으로 살았다.
스스로 그에게 화풀이한다는 인지가 있음에도 고장 난 감정은 정도를 모르고 쏟아졌다. 하지만 김하윤은 굴하지 않았고, 외려 뻔뻔하게 굴었다. 암만 쏘아붙이고 밀어내 나동그라지게 만들더라도 다음 날이면 아무 일 없다는 양 저를 찾아왔다.
그러고는 궁금하지도 않은 자신의 이야기를 주절거리다가, 이따금 먹이를 주듯 옛 추억을 말했다. 그리고 그럴 때는 갈구하는 눈으로 저를 바라보고는 했다. 김하윤이 자신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감이 잡히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심하게 거슬렸으나 무경은 김하윤의 눈빛을 추궁하지 않았다. 이에 관해 상기하는 것만으로도, 입에 올리는 것만으로도 불쾌했으니까.
하지만 김하윤이 때때로 보이는 감정을 무시할 뿐, 무경은 항시 김하윤을 향한 증오를 날카롭게 갈았다. 조그만 틈이라도 보이면 과하다시피 공격했다.
김하윤이 항상 불행하길 바랐으니까.
하지만 감정이란 것은 소모품이라 암만 날카롭게 벼르더라도 무뎌지고 사라지기 마련이었다. 매번 김하윤을 향해 미움을 날카롭게 벼르는 무경 자신도 느끼는 바였고, 제게 절절하게 구는 김하윤의 감정도 그러할 것이 자명했다.
무경은 자신이 왜 그렇게 김하윤의 일상에 동요했는지 이유를 깨달았다.
김하윤은 자신의 앞에서만 빌빌거렸을 뿐 다른 곳에선 이미 일상을 되찾았다. 당장에야 죄책감과 정의해 주고 싶지 않은 감정 때문에 붙어 있지만, 그 감정이 얼마나 가겠는가.
김하윤의 세상이 넓어지면 넓어질수록, 더 많은 사람을 만나면 만날수록 김하윤이 김희원과 자신에게 갖던 감정 또한 흐려질 것이다.
언젠가는 김하윤이 저를 향해 바라는 것을 다른 누군가에게 찾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김희원과 자신은 김하윤의 세상에서 점점 멀어지다가 마침내 배제되고 말 것이다.
무경은 그렇게 되길 바라지 않았다. 김하윤은 김희원의 삶이 빼앗기는 데 동조했다. 그러므로 평생을 김희원에게 미안해야 했으며 행복하게 살아선 안 됐다.
그러기 위해선 김하윤은 자신의 처지를 다시금 되새겨야 했다. 때마침 집에 돌아온 그에게 김하윤이 같이 살아도 되겠느냐며 헛소리를 늘어놓았다.
김하윤의 말을 미친 소리라고 생각하면서도 잘되었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괴롭더라도 김하윤을 곁에 옭아매어 김하윤이 죄에서 달아나지 못하게 되길 바랐다.
김하윤이 한술 더 떠 같은 침대에서 자겠다고 하는 건 계획에 없었지만.
결론적으로 말해 김하윤과 두 계절을 지냈지만, 생각보다 최악으로 치닫진 않았다. 김하윤이 생각보다 더 자신의 습관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끔찍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무경은 잠결에 김하윤의 존재를 김희원의 존재로 착각하는 일이 종종 있었다. 게다가 김하윤 또한 종종 착각했다. 그 때문에 무경은 김하윤에게 주의를 주었는데, 김하윤은 잘 듣는 척하다가도 가끔 제게 손을 댔다.
더군다나 잠결엔 실수인지 고의인지 알기 어려웠다. 낯선 기척에 소스라치게 놀라 저도 모르게 몸을 움직이게 했다.
그날도 그랬다.
무경은 제 등을 끌어안는 손을 자연스레 받아들이며 손을 포갰다. 몸에 새겨진 습관같이 돌아누워 마주 끌어안으려던 찰나 소스라치게 놀라 잠에서 깼다. 그러곤 눈앞에 김하윤이 있는 것을 보고 저도 모르게 떨쳐 냈다. 그 과정에서 손등으로 김하윤의 코를 쳐 버리고 말았다.
제법 큰 소리가 나고 김하윤이 코를 쥔 채 몸을 일으켰다. 벙벙한 얼굴을 보는 순간, 무경은 숨을 헉 들이켰다.
아까 놀란 것 때문인지 가슴이 철렁였다. 급히 방을 나가 방 바깥에 있는 욕실로 향했다. 곧장 옷을 벗으며 찬물을 뒤집어썼다. 김하윤의 손이 닿았던 곳을 발갛게 달아오를 때까지 문질러 닦았다.
‘기분 나빠.’
암만 문질러 닦아도 김하윤의 손이 닿았던 감촉이 떨어지지 않았다. 무경은 속으로 욕을 되뇌었다. 온몸이 뻣뻣해질 때까지 찬물을 뒤집어쓴 뒤에야 겨우 욕실 밖으로 나갈 생각이 들었다. 물기를 대강 훑어 내고 서둘러 옷을 갈아입었다. 이 자리를 벗어나야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시계를 차며 방문을 나오자 베란다 창틀에 서 있는 김하윤이 보였다. 십일월 하순에 접어든 날씨는 창문만 열어도 차고 세찬 바람이 불었다. 바람 때문인지, 희멀건 얼굴 때문에 새벽 어스름이 어린 탓인지 김하윤은 파랗게 질린 얼굴을 하고 서 있었다.
떨어지기라도 할 양 방충망 가까이 바짝 붙었다가, 아래를 보고선 형편없이 비틀거렸다. 무경은 채 열지도 않은 방충망을 보며 기가 차 웃었다.
‘죽을 생각도 없으면서…….’
저 깜냥에 뭘 하겠는가 싶었다. 아마 자신이 죽으라고 하더라도 김하윤은 죽지 않을 것이다. 무경은 자신이 암만 쏘아붙여도 다음 날이면 멀쩡한 얼굴로 인사하던 김하윤을 떠올렸다. 예전에는 그가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으나, 지금에 와선 생각을 정정했다.
김하윤은 뻔뻔한 놈이었다. 쉽게 목숨을 내던질 리 없었다. 아무것도 듣거나 겪지 않은 것처럼 무시하거나, 이전처럼 도망가 버릴 것이다.
‘이전처럼?’
무경은 문득 떠오른 말을 되뇌다가 이내 외출 준비를 마쳤다. 김하윤과 같이 있고 싶지 않았다. 거기에 자신이 있으니 김하윤이 베란다에 나가 시위하듯 행동하는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문을 닫고 밖으로 나간 순간부터 김하윤이 베란다에서 떨어지는 모습을 상상했다. 상상 속의 김하윤은 파랗게 질린 발등으로 난간을 밟고 올라서서 아래를 보다가, 미련 없이 아래로 몸을 던졌다.
거꾸러트린 자세 때문에 머리가 먼저 바닥에 닿았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머리가 깨어지고 몸 안의 붉은 피가 밖으로 쏟아졌다.
그러나 출근할 때 스치듯 본 화단엔 아무것도 없었다. 무경은 자신이 너무나 바랐기에 그런 상상을 했노라고 생각했다.
그래, 너무나 바랐던 일이었다.
무경은 하윤이 차라리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으니까.
그토록 바랐던 일인데, 온종일 뭔가 떨어지는 소리만 나면 흠칫거리며 놀랐다. 집에 돌아와서도 건물 입구 쪽 화단부터 훑었다. 뭔가 이상한 자국이 없는지 둘러보다가, 집 베란다 방충망이 열려 있는 것을 알아차렸다.
이상하게 눈앞이 컴컴하게 느껴졌다. 무경은 서둘러 집으로 올라갔다. 문을 열자마자 평소와 달리 냉기가 느껴졌다. 아래에서 봤던 대로 베란다 창문이 방충망까지 활짝 열려 있었고 그곳에서부터 찬바람이 사정없이 들이닥치고 있었다.
무경은 서둘러 창문을 닫고 안방 문을 열었다. 김하윤이 없었다. 학교에서 안 돌아왔거나, 집에 갔을 수도 있었다. 아니면 친구들과 약속이 있었을 수도 있고, 그게 아니더라도 다른 용건 때문에 귀가가 늦어졌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얼마든지 그럴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무경은 온 집 안 방문을 열어 재꼈다. 하윤이 벗어 놓고 간 피 묻은 셔츠를 주워 든 채 주방을 서성였다. 아침을 먹은 흔적이 있나 없나를 살피다가 불현듯 집 안이 텅 비어 있다는 사실에 불안을 느꼈다.
익숙하고도 익숙하지 않은 감각이 느껴졌다. 초조하고 불안하고, 온몸이 바짝바짝 마르다 못해 찢어지는 것만 같았다. 손톱 거스러미같이 잡힐 듯 잡히지 않고 조금씩 조금씩 살갗을 찢어 가다가 어느새 제법 깊이 살을 뜯어내 통증을 느끼는 것처럼.
견딜 만한 불안이 이따금 가슴속을 뜨끔거리게 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에 숨이 가쁘고 손끝과 발끝이 말리기 시작했다. 폭주의 징조에 무경은 평소와 달리 견뎌 내려 애썼다. 무경은 자신이 김하윤을 이만큼이나 신경 쓴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안 돼. 이래선 안 돼.’
김하윤한텐 아무것도 주지 말아야 했다. 무경은 자신이 가진 것을 그 누구에게도 빼앗길 수 없었다. 그 상대가 김하윤이라면 더더욱.
무경은 폭주를 가까스로 막아 냈다. 하지만 밤이 늦도록 김하윤은 돌아오지 않았다. 이상하게도 무경은 움직일 수가 없었다. 짐승이 심한 고통을 앓아 조금이라도 통증을 견뎌 보려 몸을 둥글게 마는 것처럼, 그저 식탁 의자에 앉아 현관문만 바라보았다.
끔찍한 시간이 지나고 날이 밝았으나 김하윤은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전화나 문자 한 통 보낸 것도 없었다. 그러다가 정오가 지날 무렵에서야 실실 웃는 얼굴로 집에 돌아왔다.
“어? 집에 있었네? 오늘 쉬는 날이야?”
무경은 평소와 같이 절 보는 김하윤의 얼굴에 기가 찼다. 벼락같이 화를 내려다가 그러고 싶지 않아 입을 다물었다.
“무경아?”
“…….”
무경아. 김하윤이 제 이름을 부르는 순간 뜨거운 무언가가 울컥 치솟아 올랐다. 이어 속이 울렁이고 머리도 어지러웠다. 무경은 곧장 화장실로 달려갔다. 변기를 잡고 몸을 숙였다. 구역질이 치밀어 견딜 수가 없었다.
한바탕 게워 내고 나자 그제야 정신이 들었다. 그리고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도 알아차렸다. 무경은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가 내쉬었다.
“……정신 차려.”
자신은 김하윤에게 무엇도 주지 않아야 했다.
그래야 돌아올 김희원에게……, 그래야 □□□에게……, 그래야…….
“…….”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머릿속이 새하얗게 느껴졌다. 무경은 두 손에 얼굴을 묻은 채 스스로를 다그쳤다. 하지만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에겐 아무것도 없다는 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