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화
무경은 기본적으로 김하윤의 말을 믿지 않았다. 물론 이전에 김하윤이 한 말대로 그를 믿지 않으려면 모든 것을 믿지 않아야 하지만 또 그럴 수는 없었다.
김하윤이 하는 말은 목소리나 얼굴을 마주하고 있을 때 들으면 제법 그럴싸하게 들렸다. 그러나 반대로 김하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거나 얼굴을 보고 있지 않으면 그 말의 허점이 보였다. 김하윤은 거짓말을 자주 했다.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 거짓인지 알 수 없게 사실과 거짓을 섞어 말했다. 물론 무경은 알아서 걸러 듣고 있었다. 김하윤이 말하는 김희원에 관해서는 듣고 저와 김하윤의 관계는 걸렀다.
김하윤에게서 듣는 예전 관계는 허무맹랑한 게 많았다. 자신이 업어 줬다느니, 가방을 들었다느니. 지금 자신이 기억을 잃었다고 얕은 수작을 쓰고 있었다. 아마도 계속 이런 식으로 말해 자신이 그 이야기에 익숙해질 때쯤 떨어지는 콩고물이라도 주워 먹으려고 그러는 것일지도 몰랐다.
하기야 능력을 잃은 김하윤은 특출난 구석이 없었다. 공부도, 체술도 능숙하지 않았고 또래보다 키가 크긴 했지만, 또 계속 클 것 같진 않았다. 이제 막 자라기 시작하는 놈들한테 곧 추월당할 게 뻔했다.
본인은 능력을 잃기 전만 해도 모친이 혀를 내두를 만큼 뛰어났었노라고 잘난 체를 했지만, 실제 평가는 무난했다. 그러니 재활 훈련을 그만둔다고 했을 때도 주변에서 별달리 말리지 않았을 것이고.
별 볼 일 없다고 해도 초능력이 있다는 것과 없다는 것은 크나큰 차이가 있었다. 그렇다면 김하윤은 과거를 잊지 못해서 초능력자인 제 곁을 기웃대는 걸까.
무경은 식사하느라 여념이 없는 김하윤의 머리를 보며 문득 그와 닮은 것을 생각했다.
‘거머리.’
딱 그런 모습이었다.
거머리는 가만있어도 징그럽지만, 퉁퉁 불어 있는 모습이 수배는 더 징그러웠다. 남의 몸에 바짝 달라붙어 양껏 피를 빨아 마셨기 때문이었다. 무경은 김하윤을 앞에 두고 퉁퉁해진 거머리를 짓이기는 상상을 했다.
“인제 그만 가.”
“…….”
“가라니까.”
“……아직 밥 다 안 먹었잖아. 밥 다 먹으면 갈 거야.”
자신이 뭐라고 하든지 상관없다는 양 김하윤은 식사를 계속했다. 수저 움직이는 소리가 분주했으나 음식은 더디게 줄어들었다. 무경은 몸을 뒤로 젖힌 채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다 잠시 뒤 자리에서 일어난 무경은 김하윤의 밥그릇이 그다지 줄지 않은 것을 확인했다. 시간을 끌고 있는 게 분명했다. 작게 한숨을 내쉰 무경은 무표정한 얼굴로 반찬 접시를 집어 김하윤의 국그릇 위에 뒤집었다. 접시 위에 있던 반찬이 국 위로 후두두 떨어졌다.
“너 뭐 하는 거야. 하지 마! 야!”
“…….”
무경은 몇 가지 반찬을 더 똑같이 국에 쏟은 뒤, 뒤로 손을 뻗었다. 염동력으로 새 숟가락을 꺼낸 무경은 김하윤의 남은 밥을 마찬가지로 남은 국 위에 넣고 말기 시작했다. 반찬 접시를 밀고 식탁에 걸터앉은 무경은 염동력으로 김하윤의 다리와 어깨, 그리고 팔을 짓눌러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쨍그랑-.
김하윤의 손에서 떨어진 숟가락이 바닥에 나뒹굴었다.
무경은 손으로 하윤의 턱을 붙잡았다.
“벌려야지. 얼굴에 상처 남는 거 싫다고 했잖아.”
“…….”
김하윤은 말없이 무경을 올려다보았다. 하지만 무경은 물러나지 않았다. 그는 하윤의 코와 입을 동시에 막았다. 숨이 가빠진 하윤이 손바닥 사이로 가쁜 숨을 뱉었으나 무경의 손을 밀어내지 못했다.
김하윤이 손 밑에서 버둥거리며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르자 그제야 손을 떼어 주었다. 김하윤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헐떡거릴 때 무경은 다시 그의 턱을 잡았다. 무경은 벌어진 하윤의 입 사이로 밥을 떠낸 숟가락을 밀어 넣었다.
반절도 채 들어가지 못하고 밑으로 우수수 떨어졌다. 입에 들어간 것도 사레가 들린 하윤이 그대로 뱉어 냈다. 그러나 무경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국그릇이 다 빌 때까지 계속해서 하윤의 입에 밥을 밀어 넣었다.
“이제 가도 되겠네.”
그릇이 비자 식탁 위의 모든 그릇을 싱크대로 옮겼다. 식탁 위를 가볍게 닦아 낸 다음 무경은 손을 씻기 시작했다. 김하윤의 턱을 만졌기 때문이었다.
염동력을 풀어 주자마자 달려들 것으로 생각한 김하윤은 의외로 조용했다. 김하윤은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벌게진 눈으로 주방 한구석을 노려보았다. 그러다가 무경이 손을 다 씻고 돌아설 때, 잠긴 목소리로 물었다.
“너 내가 그렇게 싫어?”
김하윤의 질문에 무경은 코웃음을 쳤다. 너무나 당연한 걸 묻고 있었다.
“그래.”
무경은 김하윤의 책가방을 식탁 위로 던졌다. 책가방은 그대로 식탁 위를 지나 하윤의 품 안으로 떨어졌다. 김하윤은 반사적으로 손을 뻗어 책가방을 받아 냈다. 그러고는 그게 구명줄이라도 되는 양 바짝 힘주어 끌어안았다.
“그럼 어떻게 하면 덜 싫어할 거야?”
김하윤의 말을 듣는 순간 무경은 속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치솟아 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것을 무어라고 해야 할까. 분노? 아니면 경멸?
“김희원을 여기에 털끝 하나 안 다친 채로 데려와. 그럼 너 싫어하는 거 그만둘게.”
그래, 그거면 되었다. 그때는 김하윤을 미워할 이유도 없었다. 더는 김하윤과 상종하지 않을 테니까.
‘그날’ 이후 무경은 부모님은 물론이고 □□ 또한 잃어버리고 말았다. 기억은 뒤죽박죽이 되어 어떤 것을 잊었는지도 알지 못했다. 그런 와중에 상식이 남아 있다는 건 정말 큰 다행히 아닐 수 없었다.
그런 중에 나타난 김하윤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는 무경이 잃어버린 □□을 알려 주었다. 이 또한 불행 중 다행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김하윤이 □□을 구하지 않고 절 찾아왔다는 것을 알기 전까지는.
물론 능력이 변변찮은 김하윤이 김희원에게 갔다 한들 김희원을 찾을 순 없었을 것이다. 더군다나 중간에 미궁의 문도 열렸다. 당시에 김하윤이 김하윤 나름의 선택을 했다는 것을 알지만 머리로 아는 것과 가슴으로 느끼는 것에는 차이가 있었다.
종종 자신의 일상에 김하윤이 섞여 있는 것이 익숙하게 느껴질 때가 있었다. 무경은 그럴 때면 김하윤이 자신이 잃어버린 모든 존재의 자리를 빼앗은 것처럼 느껴졌다.
상실감, 분노, 절망, 슬픔, 어디로 향해야 할지 모르는 복수심이 유일하게 무경의 사정을 이해하고 슬픔을 공유하는 김하윤을 향했다. 자기 자신도 화풀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멈출 수 없었다. 어쩌면 김하윤이 뻔뻔스레 받아 내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치졸하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무경은 그저 김하윤이 미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특히나 그의 존재는 가만히 있기만 해도 무경의 신경을 자극했다. 암만 멀찍이 있어도 홀로 세상에 섞이지 않는 존재처럼, 이질적으로 튀어 느끼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었다.
더군다나 김하윤은 ‘그날’ 이후로 무기력증에 시달리던 무경의 신경을 곧잘 긁었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잘 긁을 수 있는지 신기할 지경이었다.
얼마 전의 일만 해도 그랬다.
상실은 마음을 좀먹고, 좀먹은 마음은 육신을 쇠약하게 만들었다. 그날 무경은 폭주의 조짐을 느꼈다. 그러나 또 그렇게 심한 정도는 아니었다. 무경은 학교에 연락 후 측정기를 부착한 채 자가 격리를 선택했다.
그러다가 문득 휴대전화를 들었다가 저도 모르게 통화를 누르고 말았다. 왜 그랬는지는 몰랐다.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몸에 밴 행동인 것만은 분명했다. 자신이 전화한 상대를 보고 놀라서 끊기는 했지만, 또 막상 그 이름을 보자 희원의 이야기라도 듣고 싶었다.
너무 보고 싶었으니까.
가까스로 참아 낸 채 무경은 소파에서 몸을 뉘었다. 방에서 홀로 있고 싶지 않았다. 무경은 잠들기 전까지 □□과 함께 있던 순간을 떠올렸다. 뒤섞이고 흐려진 기억에 제대로 기억나는 것은 없었다.
그저 얇은 이불 아래 다리와 다리가 엉키던 것, 손을 잡던 것 등이 생각났다. 그리고 나직이 자신을 부르던 목소리도. 물론 누군지 알 수 없게 뭉그러진 소리로 떠오를 뿐이었지만.
그리움에 사무쳐 세상 온갖 것이 서럽게만 느껴지던 중에 무경은 □□의 꿈을 꿨다. 눈앞이 컴컴하기만 해 김희원인지 아닌지 불분명했으나, 자신이 내내 그리워하던 상대라는 것만 알았다.
아, 찾았다. 찾았어. 드디어 너를 찾았다.
무경은 기쁨에 소리쳤다. 하지만 그의 기쁨과는 달리 이상한 소리만 나왔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을 찾았다는 것만이 중요했다.
안도감이 밀려들자, 서러움과 화가 치밀어 올랐다.
‘도대체 어딜 갔다 온 거야. 내가 한참 찾았잖아. 너 잃어버린 줄 알고 내가 얼마나 걱정한 지 알아? 그사이 이상한 놈이 네 자리를 빼앗으려고 했지만 나는 꿈쩍도 하지 않았어.’
무경은 □□을 꽉 끌어안았다. 안고 있어도 이대로 사라질 것만 같아 불안했다.
‘이제 못 가. 나 이제 너 어디에도 못 가게 할 거야. 나 너무 무서웠어. 그리고 지금도 많이 무서워. 네가 또 사라질까 봐.’
무경은 자신의 공포를 고백했다. 이 또한 웅웅거리는 소리로 새어 나갈 뿐이었으나, 그게 무어 중요하겠는가. 무경은 □□가 도망가지 못하도록 꽉 끌어안았다. □□가 힘들다고 볼멘소리를 내었지만, 응석을 부리듯 어깨에 얼굴을 비볐다.
‘참을 수 없어서 그래. 너무 많이 참았어.’
그래도 이제는 괜찮아질 것이다. 오늘만 봐주면 됐다. 이제 □□가 돌아왔으니 차차 나아질 것이다.
‘아, 진짜 다행이다. 진짜 다행이야. 정말 끔찍했어.’
정말 끔찍했다고 중얼거리는 순간, 그 소리가 이제까지와 달리 생생하게 들렸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무경은 황급히 눈을 떴다.
“……어?”
있어선 안 될 얼굴이 그 자리에 있었다. 김하윤. 정체를 속으로 되뇐 순간 소름과 함께 온몸의 피가 다 빠져나간 것만 같았다. 놀란 무경은 자신이 간절히 끌어안고 있던 하윤을 털어 내듯 걷어찼다. 그러나 자신이 걷어차인 것처럼 얼떨떨했다.
뒤통수가 얼얼하고 가슴이 쿵쾅거렸다. 너무 놀란 탓일까. 몸이 덜덜 떨렸다. 무경은 그제야 자신이 꿈을 꾸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씨발.’
무경은 재빨리 기운을 퍼트려 집 안에 있는 사람을 확인했다. 그러나 느껴지는 것이라곤 김하윤과 저밖에 없었다.
김하윤을 김희원인 줄 알고 끌어안고 있었다는 것을 재차 상기하자 수치심이 밀려들었다. 얼굴이 화끈거리고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마치 벌레처럼 짓이겨진 기분이었다.
‘내가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내가 대체.’
무경은 얼굴을 거칠게 쓸어내렸다. 자신이 뭘 했는지, 그리고 김하윤은 왜 여기 있는지 알 수 없는 것들이 너무나 많았다.
‘찾았다고 생각했는데.’
드디어 찾았다고 생각했는데 꿈일 뿐이었다. 얼떨떨함이 가시자 화가 치솟기 시작했다. 김하윤을 김희원이라고 착각하고 끌어안고 있던 것부터, 함부로 집 안에 들어온 김하윤에게까지.
무경은 가까스로 하윤에게 왜 여기 있는지 물었다. 김하윤이 주절주절 이유를 늘어놓았으나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당장 하윤을 치워 버리고 싶었다.
우악스레 잡아당겨 가며 끄집어내려 했으나 김하윤은 격렬하게 저항했다. 무경은 이대로 김하윤을 찢어 죽이고만 싶었다. 몇 번이고 목에 손을 뻗으려 했으나 이상하게 쥐어지지 않았다. 그나마 타협한 게 옷깃을 숨 막히게 잡아당기는 게 고작이었다.
겨우겨우 내보내고 난 뒤 무경은 밀려드는 모멸감에 괴로워했다. 그리고 배는 더 불어난 미움과 슬픔과 상실감이 그를 갉아 댔다.
김희원이 그리운 만큼 김하윤이 너무나 미웠다. 김희원이 돌아올 수 없다면 김하윤도 죽었으면 했다. 그러나 그런 그의 바람과 달리 김하윤은 멀쩡히, 아무 일 없다는 양 제 눈앞에 얼쩡거렸다.
하지만 자신이 미우냐 묻는 하윤의 물음에 네가 죽길 바란다는 말을 아꼈다. 그가 맥락 없이 반성 없이, 자신이 분풀이같이 뱉는 말에 욱해서 죽을까 봐서였다.
김하윤은 제겐 절절매지만, 희원의 이야기를 할 때면 별다른 거리낌이 없었다. 죄책감도 그리움도 찾아볼 수 없었다.
김하윤은 희원이 제자리로 돌아올 때까지 미안해야 했다. 대신 제 옆에 있으니까 당연한 일이었다. 만약, 아주 만약에 희원이 돌아올 수 없다면 그때야 자신이 지은 죄의 무게를 통감하고 삶을 마감해야 했다.
김하윤은 행복해선 안 된다. 즐거움을 느껴서도 안 됐다. 적어도 제 눈앞에서만은 그래야 했다. 무경에게 이미 하윤은 그 어떤 죄를 지은 죄인보다도 더한 죄를 짓고 있었다. 이전이라면 다르게 생각했을지도 몰랐으나 지금의 무경으로선 김하윤에 관해 이성적인 판단이 어려웠다.
그저 그가 미울 뿐이고, 매 순간 불행하기를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