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화
그날 집에 들어갔을 때 하윤은 단단히 혼날 각오를 했었다. 마음대로 학원도 빠졌고, 밤늦게까지 연락도 안 되었고 또 옷도 몸도 엉망이었으니까. 그러나 하윤의 부모님은 하윤을 크게 나무라지 않았다.
길 가다 시비가 붙어서 드잡이질하다가 이렇게 되었다는 변명을 믿은 건 아니었다. 괜히 다그치다가 엇나갈까 걱정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하윤에게 그저 믿는다는 말을 남겼다.
한마디 말에 불과했지만, 말을 들은 순간부터 가슴이 무거웠다. 아마 계속 그들에게 많은 것들을 비밀로 해야 할 일들이 많기 때문이었으리라.
어찌 되었든 부모님과의 일이 일단락되었기 때문에 하윤은 무경에게 패기롭게 외친 것처럼 서이주를 찾기로 했다.
하지만 단서가 부족했다. 무경의 집에서 찾아낸 표식 중에서 그날 서이주가 움직였던 문이 있으리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다른 곳도 더 살펴봐야 했다.
이를 짐작했던 것인지 무경은 하윤에게 다음 날 곧장 움직일 것을 종용했다.
‘뚝딱하면 되는 줄 아나 봐. 이 인정머리 없는 새끼. 사람들이 다 자기 같은 줄 알지.’
쌍욕이 목 끝까지 올라왔으나 정작 욕을 들을 사람은 앞에 없었다. 결국, 하윤은 이불을 뒤집어쓰고 핸드폰 불빛에 의지해 메모를 정리했다. 무경의 집에서 찾은 표식이 몇 개 없었기 때문에 쓸 만한 게 없었다. 그나마 의심 가는 게 하나 있어 그 위치를 중심으로 지도와 로드뷰를 뒤졌다.
아침 해가 뜨고 가족들이 일어날 때까지 뒤졌지만 확신이 가는 곳은 없었다. 겨우 세 곳 정도를 꼽았지만, 아닐 가능성이 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미적거릴 순 없었다. 하윤은 가족들이 집을 나서길 기다렸다가 바쁘게 움직였다.
학원 가기 전에 세 곳을 모두 가봐야 했다. 재빠르게 움직이면 세 곳을 가고도 한 곳을 더 갈 수 있을지도 몰랐다.
하윤은 무거운 마음, 무거운 몸, 바쁜 마음을 가지고 무경과 다시 만났다. 둘은 인사도 대화도 하지 않았다. 버스에 올라타서도 좌석이 텅텅 비어 있음에도 서로 반대 좌석에 앉았다. 그러다가 겨우 말을 한 것은 내릴 곳이 다가왔을 때였다.
하윤은 바깥을 바라보느라 여념 없는 무경에게 이만 내려야 한다고 말했다. 무경은 여전히 대답하지 않았지만, 하윤은 그 한마디 뒤로 무경에게 말을 붙였다.
“학교는 어떻게 하고 왔어? 너무 쉬면 출석일수 모자랄 텐데. 아, 넌 상관없나?”
“…….”
“하기야 그만두고 싶어도 그만 못 두는 곳이니까.”
“…….”
“날이 흐리다. 바람은 어제보다 덜 부는데, 그래도 이런 날이 더 추운 것 같아.”
그렇게 한참 말을 걸자 마침내 무경이 입을 열었다.
“입 좀 다물어.”
“…….”
영 자신이 없었지만, 하윤은 첫 번째 장소로 이동하던 중에 기시감을 느꼈다. 그리 높지 않은 상가 건물들과 빌라가 이어지고, 골목에선 파란 포터 트럭이 들어오고 있었다. 하윤은 걸음을 멈춰 선 채로 고개를 돌렸다.
‘뭐야 이거.’
분명 자신이 짚은 장소가 아니었다. 그곳으로 가는 도중이었으니까. 그런데 이상하게 여기가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확신이 든 순간 하윤은 달리기 시작했다.
미궁의 출현 빈도는 나라의 경제 성장에 크나큰 영향을 끼쳤다. 이전엔 미궁의 출현을 대처 불가한 특수 재난으로 취급했지만 에스퍼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들을 보다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시작하면서 어느 정도 대처 가능하다는 인식이 퍼져 있었다.
물론 이는 예전과 비교했을 때의 일이고 정도가 심하면 피해 정도를 측정하기 힘들어지지만 말이다.
이렇듯 에스퍼들의 수와 질은 국력에 영향을 끼쳤다. 그렇기 때문에 국내 에스퍼들의 해외 유출을 특히나 경계하며, 반대로 해외의 에스퍼들의 적극적으로 유치하려 했다.
그 과정의 일환으로 국내 에스퍼들 간의 혼인을 적극적으로 장려하기도 했다. 가정이라는 뿌리를 두면 따로 움직이기 힘들어지기 때문이었다. 물론 덕분에 통째로 옮기는 경우가 있기도 했지만 말이다.
에스퍼 관리의 기본 수칙은 탄생은 축복하되 죽음은 철저하게 소명한다. 물론 한국은 에스퍼들의 죽음에 그렇게까지 적극적이진 않았지만 대신 법적 절차는 복잡하게 해 놓았다.
때문에 정식 사망 선고를 받지 않은 에스퍼들의 경우 사망신고가 어려워 장기실종자로 처리되는 경우가 많았다. 유산이나 각종 채무관계가 얽혀 피해를 입는 경우가 종종 발생했지만, 나라에서는 따로 지침을 바꾸지 않았다.
그래 봤자 에스퍼들은 국가 전체인구 중 한 줌에 불과했고, 장기실종된 에스퍼들의 경우 살아 돌아와 항소하는 경우가 드물었다.
진짜 죽었거나, 다 버리고 다른 나라로 갔거나.
미궁에서 쏟아진 괴수를 처치하느라 사망한 경우엔 국가에서 막대한 보상금을 지원했다. 그 때문에 삼사십 년 전만 해도 나라에서는 실종사건 중 실제 사망 되었으리라 추정하는 경우엔 적극적으로 소명하지 않기도 했었다.
하윤이나 무경은 지금도 그럴지도 모른다는 소리를 어릴 때부터 듣고 자랐다. 서이주와 백진하는 그들의 죽음을 항시 준비했고 다른 에스퍼들 보다는 대비가 잘 되어 있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상황이 닥치자 상황이 묘하게 돌아갔다.
‘그날’ 이후 백진하의 시신이 확인되지 않았음에도 사망 처리가 된 것에 반해 서이주의 경우 하윤의 증언이 있었음에도 실종으로 처리되었다. 적극적으로 찾지도 않았다. 평화에 젖어 있던 서울에 미궁이 열리는 바람에 피해가 커서 아직 처리하지 못했다고 볼 순 있겠으나, 유가족에겐 미적거리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꼭 이대로 종결 내고 싶지 않다는 듯이.’
자신 없어 하던 것과 달리 하윤은 그날 서이주와 마지막으로 만났던 장소를 찾아냈다. 스스로도 어떻게 찾았는가 싶을 지경이었다. 무경의 집에서 찾아낸 단서가 너무나 작았다. 하윤은 그때 동네에서 대피 명령이 떨어지지 않고 일상을 영위하고 있었던 점을 미뤄 일정 지역을 소거하고, 맞은편 건물에서 살던 사람의 말투로 또 몇 지역을 소거했다.
물론 그 사람이 타지에서 살다가 어떠한 사정으로 이사 온 것일 수도 있었으나, 사안이 급해 세세한 것은 따지지 않기로 했었다. 그리하여 지역을 좁히고 예전에 살던 집에서 봤던 눈에 익은 문의 도착점을 짚고, 학원에 가기 전에 갈 수 있는 지역으로 범위를 좁혔다.
그 뒤에 실외기 옆에서 몸을 웅크리며 살폈던 주변을 떠올리며 그곳과 흡사한 골목을 위주로 살폈다. 밑에서 본 게 아니라 위에서 흘깃 내려다본 게 전부라 로드뷰로는 확정할 수 없었다. 제 나름대로 이것저것 해 보긴 했지만, 어찌 보면 순전히 끌리는 곳을 고른 것이다. 하지만 그런데도 찾아냈다. 아마 서이주가 살아 있었다면 하윤이 하는 모습을 보며 기가 막혀 했을 것이다. 배운 것은 다 어쩌고 저러고 있느냐고 말이다.
외부에 남았던 흔적은 비 등에 사라졌으나, 구석진 보일러실 안은 다행스럽게도 온전히 보전되어 있었다.
그동안 보일러가 잘 작동해 들어올 일이 없었던 모양이었다. 무경은 현장을 보며 여러 곳에 전화를 걸었다. 담당 변호사, 유가족 보상금을 담당하는 공무원, 현장에 조작이 없는지 함께 현장을 확인할 사람 등등.
미리 어떻게 행동할지 예행연습이라도 하고 온 것 같았다.
사람들이 도착할 때까지 무경과 하윤은 주변을 살피고 경계했다. 하윤은 그럴 필요까지 있을까 싶었으나 무경이 하기에 그냥 따라 했다.
그렇게 네 시간 같은 한 시간 반이 지나고 사람들이 하나둘씩 도착하기 시작했다. 입회인이 올 때까지 무경은 다른 사람들이 현장에 들어가지 못하게 막았고, 하윤이 이해하기 어려운 말들을 줄줄 쏟아 냈다.
본격적인 조사가 시작되었고, 하윤은 이전에 했던 말 그대로를 증언했다. 무경의 변호사와 입회인은 과다출혈로 사망할 만한 흔적이라며 사망 사실을 주장했고, 담당 공무원은 그래도 혈흔만으로는 모른다는 태도를 고수했다.
‘그래도 모른다.’
하윤도 정말 그러기를 바랐다. 혹시라도 서이주가 살아 있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도 그녀가 죽은 걸 확실하게 아는 사람은 하윤 본인이었다.
그래도 변호사는 희망적인 말을 했다. 대재난 상태에 있었으므로 이 정도 흔적이면 참작될 것으로 추정한다고. 실질적인 보상금 지급은 좀 나중에 될 수 있다는 말을 덧붙였지만, 그 말은 그냥 흘려들었다.
서이주의 실종으로 처분하기 어려운 재산을 제외하더라도 무경은 이미 물려받은 재산이 많았다. 처분하지 못하는 부동산은 직접 쓰면 되기도 했다. 그곳들만큼 문으로부터 안전한 장소가 없기도 했으니까.
또한, 무경 본인이 마음만 추스르면 얼마든지 먹고사는 덴 지장 없었다. 누가 뭐라고 해도 그는 매우 뛰어난 에스퍼였으니까.
그런데도 무경이 사망신고에 열을 내는 것은 서이주의 장례라도 치르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어쩐지 초췌해 보이는 무경을 보며 하윤은 약속을 운운하거나 위로를 하지도 않았다. 그저 무경의 팔을 아주 살짝 톡 치고는 그대로 돌아서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서울로 돌아가는 길에 하윤은 서이주가 마지막에 남겼던 말을 떠올렸다. 결혼기념일에 서해로 가고 싶다던 그 말이. 하지만 생각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밤을 지새운 것도 지새운 것이고 몸도 원래 좋지 않았다. 거기에 긴장이 풀리자 기절하듯 잠들고 말았다.
자신의 세상은 없어졌는데, 바깥세상은 멀쩡하게 돌아가고 있다.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리고 그중 가장 끔찍한 건 지금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였다. 무경은 신경을 바짝 곤두세운 채 현관을 바라보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반갑지 않은 얼굴이 불쑥 튀어 나왔다.
어머니 서이주의 마지막 흔적을 찾은 뒤, 김하윤은 매일 무경을 찾아왔다. 무경은 김하윤이 집에 오는 걸 무시로 일관했으나, 김하윤은 그러한 무경을 무시했다. 손이나 능력을 써 보기도 하고 폭언을 쏟아 내도 당장 그날만 찝찝한 눈으로 바라볼 뿐, 다음 날이면 아무 일 없다는 양 다시 얼굴을 내밀었다.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자존심이라는 게 없는 걸까. 아니면 그만큼 제게 얻어 갈 것이 있다는 것일까.
무경에게 김하윤은 영원히 이해할 수 없는 미지의 생물에 가까웠다.
늘 불쾌하고, 어딘지 모르게 수상하고, 근처에 존재한다는 것만으로 신경이 곤두섰다. 그런데도 완전히 치워 버리지 않은 것은 그런 끔찍한 김하윤일지라도 필요가 있기 때문이었다. 거기다 일전에 뱉은 말이 있어 쳐 낼 수도 없었다. 그저 김하윤이 제풀에 지쳐 쓰러지길 기다리는 수밖에.
“야, 오늘 밖에 진짜 바람 많이 불더라. 미세먼지도 심하고.”
김하윤은 무경의 집을 제집처럼 활보했다. 전기 포트에 물을 올려 따듯한 차를 우려내고는 무경에게 너도 마시겠냐고 물었다. 무경은 대답하지 않은 채 돌아서 거실 소파에 앉았다. 방으로 갈까 싶었으나 이내 그만두었다.
방으로 갔다간 또 쫓아올지도 몰랐다.
무경은 불현듯 떠오른 기억에 리모컨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플라스틱의 결합이 어그러지는 소리가 났으나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관심도 없는 TV 화면만 들여다보았다.
그사이 김하윤은 냉장고를 뒤지기 시작했다. 식사할 때가 되어 배가 고프다는 게 이유였다. 그러다가 식탁을 돌아보고는 무경에게 말을 걸었다.
“어? 밥 차리다가 말았네. 야, 같이 먹자. 여기에 밥이랑 국만 푸면 되네.”
식사는 무경이 차린 게 아니었다. 집안일을 도와주시는 분이 챙겨 놓고 간 것이었다. 거기에 김하윤의 말대로 밥과 국만 푸면 되었는데, 무경은 먹을 생각이 없었다. 그러니 김하윤이 먹든 말든 상관없었으나 김하윤이 부엌에 서서 움직이는 게 적잖이 거슬렸다.
음식 냄새가 나는 것도 싫었다. 아니, 김하윤의 존재를 인지하게 하는 모든 것이 싫었다. 문이란 문은 다 열어젖힌 무경은 김하윤의 맞은편 자리에 앉으며 물었다.
“그만 좀 하면 안 돼?”
“뭘?”
“……이런 거.”
“쩨쩨하게 밥 좀 먹는다고 그러냐.”
김하윤은 무경이 뭐라고 하든지 상관없다는 양 입안에 밥알을 욱여넣었다. 수저 달그락거리는 소리도 거슬리고, 김하윤이 먹는 것도 거슬렸다. 그의 존재 자체가 거슬렸기에 모든 것이 곱게 보이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무경은 하윤이 밉고 끔찍했다. 마음 가는 대로 했으면 김하윤은 이 자리에 살아 숨 쉬고 있을 수가 없었다.
“밥 이야기가 아닌 거 알잖아. 이 돼먹지도 않은 짓거리 대체 왜 하는 거야?”
“말했잖아. 너랑 친구니까.”
“말 나온 김에 묻자. 대체 왜 나랑 친구 하려는 거야?”
“하려는 게 아니라 이제 친구야.”
“…….”
친구 같은 소리 하네.
무경은 솟구치는 화를 삭이기 위해 눈을 감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사이 하윤은 씹고 있던 밥을 꼴깍 삼키고선 마저 대답했다.
“내가 친구 안 하면 넌 혼자잖아. 그래서 그랬어. 널 혼자 둘 수 없으니까.”
무경은 식탁 다리를 걷어찼다. 식탁 위의 식기들이 크게 흔들렸다. 반동 때문에 국그릇에 담긴 국이 넘쳐흘러 김하윤에게 쏟아졌다.
“아 뜨거!”
김하윤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려다가 다시 주저앉아 무경을 쏘아보았다. 무경이 고개를 옆으로 까딱이자 곧장 고개를 숙였다. 김하윤은 화가 좀 나긴 했던지 홀로 씩씩거리다가 이내 다시 수저를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