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화
문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
고로 문을 열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이 또한 어느 정도 예상한 바였다. 하윤은 침착하게 현실을 받아들였다. 오히려 하윤은 자신이 이렇게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그날 하윤은 자신이 평소엔 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한 힘을 썼다. 후유증이 따르는 것도 당연했다. 에스퍼들이 전투 중 능력 이상을 발휘했을 때 나타나는 가장 일반적인 증상이었다.
충분한 휴식을 취하여 내외상을 치료한 다음, 꾸준히 재활 훈련하면 회복 가능하다는 것도 배워서 알고 있었다.
하지만 평생 보이던 것이 보이지 않게 되자 불안하고 초조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만약 이대로 영영 힘이 돌아오지 않는다면 선생님을 찾아올 수 없는데.’
백진하의 시신은 수습하지 못했지만, 서이주의 시신은 비교적 온전하게 보전했다. 물론 그것도 공간을 열 수 있어야 가능한 일이겠지만.
‘너무 안달 내지 말자, 다 괜찮을 거야.’
다 괜찮을 것이다. 괜찮지 않은 일들이 너무나도 많이 있었지만 그런데도 다 괜찮을 수 있을 것이다. 하윤은 갈수록 크기를 더해 가는 불안을 달랬다.
그러는 사이 퇴원일이 확정되었고, 하윤이 퇴원하던 날에 무경이 깨어났다. 그가 깨어나리라곤 생각 못 했지만, 퇴원일에 맞춰 미리 면회 허가를 받아 두어 곧장 보러갈 수 있었다.
하윤은 불필요한 방호복도 기껍게 걸쳐 입었다. 오랜만에 그를 볼 생각을 하자 마음이 복잡했다. 기쁜 마음이 앞섰다가, 무거운 마음이 기쁨을 억눌렀다. 하지만 보지 않는다는 선택지는 없었다.
하윤은 안내받은 대로 얌전히 대기실에서 기다렸다. 그러나 암만 기다려도 들어오라는 신호음이 들리지 않았다.
‘혹시 호출하는 걸 까먹은 건가?’
하윤은 혹시 열렸을까 싶어 대기실 문을 잡았다. 흔들어 보자 아직 잠겨 있었다. 그때 뭔가가 깨어지는 소리와 함께 비상벨이 울리기 시작했다. 깜짝 놀란 하윤이 뒤로 물러난 순간, 잠겨 있던 문이 활짝 열렸다.
“……!”
문 사이로 익숙한 사람이 걸어 나왔다. 저와 비슷하게 침대에 묶여 있었던지 발목에 침대와 연결된 줄이 달려 있었다.
다른 점이라면 부드러운 천이었던 저와 달리, 특수 장치가 달린 줄이라는 것과 아직 침대에서 풀어내지 못해 침대를 그대로 달고 있다는 것이었다. 대신 그 침대는 공중에 떠 있었고, 바닥엔 그가 흘린 피가 점점 떨어져 있었다.
꼴이 말이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하윤이 그를 알아보지 못할 순 없었다.
“무경아!”
하윤은 무경을 바락 불렀다. 링거를 잡아 뜯었는지 팔에서 피가 나고 있었다. 하윤은 서둘러 다가가 왜 이랬느냐는 말과 함께 그의 손을 잡으려 했다. 그러나 무경은 옆으로 몸을 돌리더니 다가온 하윤의 목을 잡아 그대로 벽에 처박았다.
“……읏!”
하윤은 놀라 눈을 부릅떴다. 무경은 대련 중에도 이렇게 절 우악스레 잡아채지 않았다. 하윤은 무경의 손을 잡아떼려 했으나 무경의 손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숨을 쉴 수가 없었다. 하윤의 얼굴이 시뻘겋게 변하다 못해 파랗게 될 때쯤 무경은 하윤에게서 손을 뗐다.
그러나 그가 손을 뗀 것과 동시에 하윤의 몸이 뒤로 붕 날았다. 숨이 트임과 동시에 던져졌기 때문일까. 하윤은 곧장 대응하지 못했다. 그대로 떨어진 뒤 데굴데굴 구르다가 낙법 비슷하게 흉내 냈으나 이미 늦은 뒤였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통증이 밀려들었다. 머리를 찧어 골이 울렸다. 하윤은 본능적으로 몸을 웅크리며 기침을 토했다.
“백무경 너, 너어!”
암만 환자라고 하지만 용서할 수 없었다. 하윤은 이제 곧 무경이 자신을 알아보리라고 생각했다. 그러곤 깜짝 놀라리라. 벌벌 떨며 호들갑 떨 모습이 안 봐도 눈에 선했다.
그러나 무경은 계속해서 앞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하윤은 이를 악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분명 아직 잠에서 덜 깬 게 분명했다. 하윤은 숨을 고르며 무경을 향해 달려갔다.
“야!”
그 순간 빨간 레이저 포인터가 벽면을 스쳤다. 하윤은 즉시 몸을 돌려 벽면 뒤에 숨었다. 미처 지워 내지 못한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며 숨을 헉 들이켰다. 그때, 다른 엄폐물 근처에 몸을 웅크리고 있는 간호사를 발견했다.
호출 벨을 눌렀는지 병동엔 비상사태를 알리는 붉은 빛이 번쩍거리고 있었다. 방금 호출이 울린 것치곤 경호팀이 빠르게 출동한 셈이었다.
하윤은 다시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이제는 총성 대신 타격음이 이어졌다. 하윤은 슬쩍 옆을 보고선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백무경 이 미친놈이.’
침대를 왜 들고 다니나 했더니 침대로 총알을 막거나 경호원을 밀치고 있었다. 경호팀에게서 빼앗은 총기들을 염동력을 이용해 뒤로 휙휙 던져 대고 있었다.
암만 무장했다고는 하나 능력이 없는 일반인이었다. 무경이 암만 미성년 에스퍼라곤 해도 처벌을 피할 순 없었다. 이제 막 병상에서 일어난 놈이 어쩌려고 이런 짓을 저지른단 말인가. 애가 바짝 탄 하윤은 또다시 무경을 불렀다.
“백무경 이 미친놈아! 그만둬! 집에 안 갈 거야?!”
하윤의 외침에 무경은 걸음을 멈춰 섰다. 바닥에 내려온 침대가 무경의 움직임을 따라 비명을 지르듯 삐걱거렸다.
벌건 비상등이 점멸하며 무경을 비췄다. 무경은 하윤을 향해 돌아서며 머리를 쓸어 올렸다. 적의가 가득한 눈빛에 하윤은 마른침을 꼴깍이며 손을 그러쥐었다.
“이제 집에 가야지.”
무경이 그를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가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하윤은 뒤로 물러나고 싶었다. 그러나 가까스로 발끝에 힘을 주고 견뎠다. 하지만 점점 몸을 지탱하는 것이 버겁게 느껴졌다.
하윤은 자꾸만 아래로 내려가려는 몸에 놀라 눈을 깜빡였다. 자신을 누르는 힘을 믿을 수가 없어 자신의 어깨와 무경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거짓말.’
무경은 염동력으로 하윤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하윤이 연 문은 무경을 통과시키지 못했다.
그것은 서로가 서로의 조각인 탓에 힘을 사용하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물론 꼼수가 있어 다른 사물을 간섭시키는, 이를테면 입고 있는 옷을 움직인다거나, 통과되지 못하는 문을 이용해 디딤판을 만들어 주는 것은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무경의 힘이 제게 닿고 있었다.
‘말도 안 돼.’
하윤은 현실을 부정했다. 그러나 부정을 거듭하는 순간에도 무경은 그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기다란 복도를 반쯤 왔을 때, 하윤은 이미 몸을 구부리고 있었다. 이마에서 흐른 땀에 턱에 맺혀 아래로 뚝뚝 떨어졌다.
달아나야 한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하윤은 반사적으로 문을 찾았으나 그 어떤 문도 하윤의 부름에 답하지 않았다.
하윤은 양 허벅지에 손을 짚고 다시 몸을 일으켰다. 숨이 헐떡거렸다. 가까스로 고개를 든 하윤은 무경을 바라보았다. 복도를 반쯤 왔던 무경은 거기서 움직이지 않았다. 그저 아무 말 없이 하윤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
하윤은 처음으로 무경이 무서웠다. 숨을 쉬는 것도 잊은 채 그와 대치하다가 돌연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머릿속이 새빨갛게 느껴지고 온몸의 털이 삐죽 섰다. 하윤은 곧장 몸을 돌려 피하려 했다.
그러나 위험을 피하지 못했다.
“……!”
퍽 하고 깨지는 소리와 충격, 그리고 그 뒤를 따른 통증과 함께 하윤은 정신을 잃었다.
“일시적인 기억장애입니다.”
에스퍼 간의 폭력사태를 중재하기 위해 센터에서 파견된 변호사는 덤덤하게 무경의 상태를 알렸다.
“…….”
막 노을 지기 시작한 누런 볕이 병실에 스며들고 있었다. 하윤은 제 손등 위를 어른거리는 빛을 피해 손을 움츠렸다. 겨우 퇴원했다 싶었는데, 이전보다 더 상태가 나빠져 다시 입원하게 되었다.
조금 움직였다고 찢어진 곳이 따끔거렸다. 하윤이 상처를 의식하지 않으려 애썼다.
“정신계 괴수의 공격에 노출되어 기억이 온전치 않습니다. 당장 그날의 기억도 불분명하고요. 특히 김하윤 군에 관한 기억이 없습니다.”
변호사는 말을 골랐다. 마땅한 말을 찾지 못했는지 가져온 가방을 뒤져 무경의 증상에 관한 의사소견서를 보여 주었다. 하윤은 소견서를 열심히 읽었으나 도통 알아먹을 수 없었다. 아니, 그냥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았다.
“정확히는……. 기억 속 하윤 군을 하윤 군과 매치하지 못합니다.”
“…….”
“하윤 군의 기억이지만 하윤 군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생각나지 않는 다른 누군가라고 인식하더군요.”
하윤은 천천히 숨을 들이켰다가 조심스레 내쉬었다. 속에 가시가 가득해서 잘못 내쉬었다간 그대로 찔릴 것만 같았다.
“……그런 게 어디 있어요.”
의사 소견서도, 변호사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세상이 온통 이상한 말들만 쏟아내고 있었다. 하윤은 자신이 다른 세상에 온 것만 같았다.
“글쎄요. 아직 모든 표본을 수집하진 못했으나 이번 괴수의 공격에 노출된 이들 대부분이 후유증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증상을 보이기도 하고요. 무경 군도 그중 하나겠지요.”
하윤이 멍하니 바라만 보자 변호사는 난처하다는 양미간을 찌푸렸다. 그러다가 소견서를 몇 장 넘겨 주었다.
“염동력도 일종의 정신계열인 만큼 다른 정신공격에 대해 방어도가 높다는 건 알고 있지요?”
하윤은 잠자코 고개를 끄덕였다.
“괴수가 정신에 침투를 시도하고 방어하는 과정에서 기억에 혼선이 생겼고,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일그러진 기억을 보완하려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일그러진 채로 완전하게 말이죠.”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어요.”
참으려고 했으나 눈물이 속수무책으로 쏟아졌다. 변호사만 없었다면 당장 이불에 얼굴을 박고 통곡하고 싶었다.
“그래도 치료받으면, 그러면 괜찮아 지는 거죠?”
하윤은 다른 건 다 모르겠고 일시적인 기억장애라는 것만 떠올렸다. 일시라고 부를 만큼 짧길 바랐다. 물론 그것도 받아들이기 힘들었으나 돌아올 수 있다는 게 중요했다.
“현재 무경 군은 자신의 기억에 문제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
“관련 치료를 희망하지 않습니다. 아마도 크게 효과도 없을 거고요.”
하윤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기억도 제대로 못 하면서 왜 문제가 없다고 생각해요? 치료를 받아야죠! 왜 안 받는데요! 왜.”
하윤은 찢어지는 듯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걔가 미성년자라 돈이 없을까 봐 그래요? 아니에요. 걔네 집 돈 많아요. 선생님이 말해 줬었어요. 잘못되면 어떻게 돈 찾으면 되는지 그런 거. 무경이 걔도 다 안다구요!”
“그런 게 아니라.”
“어른들이! 걔가 뭘 안다고 지가 원하는 대로 하게 둬요. 애가 아프면 어른들이 달래서라도 고쳐 줘야지. 그렇잖아요!”
자신의 말이 사리에 맞는지 아닌지 분별할 여유가 없었다. 하윤은 변호사의 옷자락을 쥐고 흔들었다. 진정하라는 말을 연거푸 쏟아냈으나 들리지 않았다. 듣고 싶지 않았다.
“하윤 군의 기억을 제외하곤 증상이 없습니다. 일상생활을 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고요. 현재로서는 무경 군을 치료할 방법도 없습니다.”
하윤은 무심결에 숨을 들이켰다가, 움직임을 멈췄다. 숨을 잘못 내쉬는 바람에 속에서 돋아난 가시에 무방비하게 찔렸다.
“그럼……. 그럼 어떻게 해요? 치료가, 안 되면. 그럼 어떻게 해요?”
아픈데 치료를 못하면 나을 수가 없지 않은가. 하윤의 질문에 변호사는 난색을 표했다.
“무책임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시간에 기대는 수밖에 없습니다. 무경 군은 뛰어난 에스퍼이니 스스로 기억을 다잡을 수도 있고, 아니면 우연한 계기로 기억이 재정립될 수도 있습니다.”
무경이 스스로 기억을 다잡거나 우연한 계기를 맞이하여 기억을 되찾을 수 있으므로 그의 증상에 일시라는 말이 붙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할 경우엔 일시가 일평생이 될 수도 있었다.
어처구니가 없으면 웃음이 난다더니, 딱 그 말이 맞았다. 말이 나오지 않아서 헛웃음이 났다. 어떻게 백무경이 자신을 알아보지 못한단 말인가.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어떻게 생긴단 말인가.
하윤은 계속 웃다가 미간을 찡그렸다. 웃는 게 너무 괴롭게 느껴졌다. 소리 없이 울음을 삼키다가 결국 또 방울방울 눈물을 떨어트렸다.
“가족 같은 사이였던 만큼 무경 군도 하윤 군을 몹시 아꼈던 모양입니다. 지금은 비록 하윤 군을 인식하지 못하지만, 특수병동에선 하윤 군의 말이 그를 떠올리게 한 모양입니다.”
내가 한 말이니까 내 말로 알아듣는 거지. 하윤은 변호사의 말을 속으로 반박했다. 하지만 변호사는 다른 결론을 냈다. 이번 폭력사건은 한참 예민할 상태의 무경을 민감한 키워드로 자극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또한, 무경의 부모가 서울 미궁 사건으로 사망하고 행방불명되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왜 이 말을 꺼내는지 의도가 빤했다.
하윤은 현재는 능력을 쓸 수 없었다. 그러나 아직 본격적인 재활 훈련에 들어가지 않았고 영구적인 능력 소실로 판명 나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은 에스퍼로 분류되어 있었다. 전투계와 비전투계 간이라고 해도 에스퍼 간의 폭력사건과 에스퍼와 비에스퍼 간의 사건은 처벌 강도가 달랐다.
변호사가 구구절절 무경의 상태를 늘어놓은 것은 하윤에게 좀 참으라고 달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김하윤 군은 백무경 군이 안정될 때까지는 일정 범위 내 접근이 불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