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원 라스트-11화 (11/162)

11화

“빨리 갔다 왔네.”

“어어. 곧 점심시간이라서 그런지 매점에 애들이 별로 없더라고.”

아마 알아서 비켰을 게 분명했다. 그러든 말든 무경은 최성한을 향해 고개를 기울였다.

“저기.”

“어? 어어?”

“거슬려서 그런데 좀 비켜 줄래?”

최성한은 바쁘게 고개를 끄덕이며 뒤로 물러났다. 그사이 하윤은 무경이 종류별로 사 온 빵 중에 자신이 먹을 빵을 찾았다.

“천천히 먹어. 다음 시간 개인 수련시간으로 바꿔 놨어.”

전투계의 경우 몸 상태에 따라 충동을 자제하기 힘들어지는 경우가 있었다. 이러한 점을 보완하기 위해 홀로 제어할 수 있는 시간을 신청할 수 있었다. 그 시간에 별관에 마련된 개인 수련장에서 알아서 힘을 빼고 오는 것이다.

물론 수면 등의 이유로 악용되는 사례가 있어 당일 신청 시 잘 허가해 주지 않았다. 그러나 교무실의 적극적인 지지를 받는 백무경에겐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별관으로 이동해 전용 수련장에 들어간 무경은 염력으로 CCTV의 각도를 미세하게 조절했다. 그는 사각지대에 매트를 깔고 하윤을 앉혔다.

“다른 애들이랑 너무 친하게 지내지 마. 나 질투나.”

“야, 그게 친하게 지내는 거냐? 시비 거는 거지.”

“무시하면 되잖아. 봐줘 놓고는.”

“아직 잘 모르잖아.”

하윤은 무경의 뺨을 손으로 문질렀다. 질투 난다고 했던 말 그대로 교실에 막 들어왔을 때 무경의 눈은 살벌하게 번들거렸다. 하윤은 무경의 눈이 그렇게 번들거릴 때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평소에 순하고 착실해 보이는 것과 달리 무경은 이따금 과격하게 굴 때가 있었다.

“뭣도 모르는 새끼들. 김하윤이 뭐라도 해 줬으면 내가 소원이 없겠다.”

“…….”

“아니면 내가 해 줘도 되는데. 어때? 허락 좀 해 줘 봐.”

“그래서 그게 뭔데.”

무경은 대답 대신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하윤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빵 봉지를 쥐었다. 막 빵 봉지를 뜯으려고 할 때, 무경이 바짝 몸을 붙였다.

“하윤아, 나 젤리 또 먹고 싶어.”

“……안 되겠다. 너 돈까스 먹으러 가자.”

하윤은 빵을 내려놓고 무경의 손목을 잡고 일어나는 시늉을 했다. 무경은 키득거리면서도 몸을 떼지 않았다. 오히려 하윤을 끌어안고 귓가에 속살거렸다.

“너.”

“나 지금 그 생각밖에 안나.”

“너 이러려고 나 여기 데려왔지.”

“아니, 너 재우려고.”

“불순한 의도가 느껴지는데.”

“젤……으음.”

헛소리 못 하게 하려면 입을 막는 게 최선이었다. 하윤은 무경의 목을 끌어안고 입 맞췄다. 그러나 혀를 섞지는 않았다.

미친 듯이 날뛰는 충동을 가까스로 가라앉힌 뒤, 하윤은 무경의 허벅지를 베고 누웠다. 모자란 잠도 보충하고 간식도 먹으려고 했던 목적과 달리 하윤은 휴대전화를 켰다. 막 인터넷 창을 띄우자 포털사이트 메인에 속보가 떠 있었다.

연쇄 납치 살인사건의 배후로 추정되는 단체를 검거했으며, 단체의 리더 김 모 씨를 주범으로 보고 추적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

하윤은 고개를 돌려 무경을 올려다보았다. 무경도 마침 같은 생각이었는지 하윤과 눈을 마주했다. 동시에 두 입술이 열렸다.

“이 기사.”

“입 한 번만 더 맞추면 안 돼?”

“……어, 안돼.”

“한 번만. 그럼 집 갈 때까지 안 조를게.”

무경은 하윤의 귓불을 만지작거리며 속삭이듯 말했다. 손끝이 살살 귓불을 차는 움직임이 지난 새벽녘을 떠올리게 했다. 하윤은 무경의 손을 치우며 그를 노려보았다. 무경은 이어 다리를 살짝 흔들었다.

답지 않은 무경의 앙탈에 하윤은 피식 웃었다. 할까 말까 고민하다가 휴대전화를 내밀었다. 무경은 손끝으로 하윤의 휴대전화를 밀었다. 하윤은 밀린 척 손을 옆으로 물렸다가 다시 무경의 눈앞에 갖다 댔다.

“……뭔데.”

“연쇄 납치 살인사건 배후 단체를 잡았다는데?”

그제야 무경의 눈동자가 움직였다. 하윤은 그가 읽은 것을 확인한 뒤, 다른 기사를 뒤적였다.

그 잠깐 동안 살이 더해진 기사들이 몇 개 더 올라왔다. 하윤은 그중 뉴스 동영상을 선택해 재생했다.

[경기도 양평에서 에스퍼들을 납치 살해한 무장단체 피노키오 일당들이 검거되었습니다. 경찰은 단체를 조직한 제페토 김득철의 구속영장을 신청하고, 초인특수부대와 협력하여 추적 중입니다. 검거한 일당의 증언에 따르면 김득철은 납치한 에스퍼들의 신체를 모아 새로운 에스퍼를 만들기 위한 실험한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현장 보도 만나 보시죠.]

영상 한쪽에선 김득철이라는 사람의 몽타주가 함께 떴다. 흰머리가 제법 난 곱슬머리에 덥수룩한 수염, 뻐드렁니와 툭 튀어나온 입. 체격은 그 나이대 평균으로 수염만 깎아 버리면 어디서 본 것 같은 흔한 생김새가 되리라.

실제로는 알아보기 어렵겠다고 생각하며 하윤은 쯧쯧 혀를 찼다.

“어휴, 미친 새끼. 어째 이럴 것 같더라니. 이런 미친놈들은 왜 잊을만 하면 나오냐?”

하윤은 쯧쯧 혀를 찼다.

“어디서 꼬리가 잡힌 거래?”

“아직 거기까진 확실히 안 나왔어.”

“줘 봐.”

무경은 하윤의 휴대전화를 가져가 기사들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하윤은 옆에 붙어 무경이 보는 기사를 함께 구경했다. 추적에 에스퍼들이 동원되었으니 제페토 김득철은 금세 잡힐 것이다.

“이래서 닉네임이든 가명이든 멀쩡한 거로 지어야 해. 뉴스 나올 때 보면 닉네임 옆에 나이랑 본명이랑 같이 뜨잖아. 제페토 김득철 사십오 세 이러니까 이상하잖아.”

“TV에 안 나오면 되잖아. 나쁜 짓 안 하고.”

“그거야 그렇긴 하지.”

무경은 하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러곤 쓰으읍 입소리를 냈다. 꼭 하윤이 나쁜 짓을 안 하고 살긴 어렵겠다 생각하는 모양새였다. 하윤은 억울한 마음에 무경을 향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나 괜히 대꾸했다가 도둑이 제 발 저린다는 소릴 들을까 봐 말았다.

“잡히고 단축수업 끝날까? 아니면 이제부터 그냥 끝날까?”

“글쎄. 잡히고 나서 하는 게 좋은데. 안 그래도 미친놈인데 잃을 것마저 없어 봐.”

“못다 이룬 꿈을 위해 순순히 잡혀서 나중을 기약할 수도 있잖아?”

“죽인 사람이 몇인데. 거기다 에스퍼에 대부분이 미성년자니 가중처벌은 피할 수 없을 거고. 양형받으면 죽을 때까지 지하 방공호에 갇히는 건데.”

“정부에서 저놈 연구결과를 흥미로워하면? 막 죽은 척 빼돌려서 연구를 계속하라고 하면?”

“우리 하윤이 영화를 많이 봤구나.”

무경이 놀렸으나 하윤은 계속해서 말했다.

“아니면 추적망 피해서 도망치면?”

“어른들이 알아서 하겠지. 그러라고 이놈들 연봉에 세금 때려 넣는 거잖아.”

무경은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야, 수습해야 하는 어른들 중에 아저씨랑 선생님이 계시니까 그러지. 걱정도 못 하냐?”

“쓸모없는 걱정이니까 그러지. 넌 나나 걱정해.”

“나, 뭐?”

“그래.”

골이 난 무경의 모습에 하윤은 헛웃음을 터트렸다. 무경이 왜 웃느냐고 물었으나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하윤은 몸을 일으켰다. 하윤은 무경과 코 닿을 거리에서 멈추고선 그를 향해 물었다.

“지금 이런 짓 저런 짓 다 하면 나중엔 뭐 할래? 학생이면 학생답게, 건전하게 굴어야지.”

“일단 아무거라도 시켜 줘 봐. 시켜 주고 말해.”

“하지도 못할게.”

무경은 반박하듯 하윤을 향해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러나 하윤이 먼저 뒤로 물러나 그를 피했다. 하윤을 무경을 향해 요리조리 피하다가 돌연 그의 목에 팔을 둘렀다. 무경은 하윤이 달아날세라 그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대신 더 다가오진 않고 순순히 눈을 감았다. 하윤은 눈을 감은 무경의 모습을 살펴보다가 마주 눈을 감고 입 맞췄다. 보드랍고 따듯한 입술이 겹치고 숨결이 뺨을 간지럽혔다.

허리를 끌어안은 무경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하윤의 몸을 바짝 당긴 무경은 하윤이 입술을 떼려 해도 계속 따라왔다. 나직이 한숨을 내쉰 하윤은 눈을 반쯤 뜨며 물었다.

“너 대체 입술 언제 뗄 거야?”

“계속 이러고 있을래.”

“웃기고 있네.”

하윤은 무경의 팔을 때렸다. 세게 때리진 않았지만 제법 매서운 소리가 났다. 무경은 입술을 떼지 않은 채 아프다고 웅얼거리다가 하윤을 바라보았다. 워낙 가까운 거리라 오히려 눈을 마주하기 힘들었다.

결국, 하윤이 먼저 눈을 감았다. 눈싸움에서 승리한 무경은 작게 웃으며 하윤의 입술을 잘근거렸다.

“하윤아.”

“…….”

“하윤아.”

“왜.”

“나 아직 고백하면 안 돼?”

“안 돼, 하지 마.”

“왜.”

“난 아직 네가 친구였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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