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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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 규칙은 간단했다. 쉽게 설명하자면 술래잡기 같은 놀이처럼 구성된 훈련이었다.
세 개의 팀이 서로 경쟁하며, 다른 팀의 구성원 중 한 명이 가지고 있는 신호 발신 장치를 파괴하면 승리한다. 그리고 훈련 결과는 에스퍼들의 실적에도 일부 반영된다.
예상은 했지만 팀에 인원수가 많은 체드와는 다른 팀이었다. 붉은 팔찌를 찬 것은 체드네 팀이었고, 푸른 팔찌를 찬 사람이 다섯 명, 그리고 초록색 팔찌를 받은 애쉬는 오로지 단독 구성원이었다.
‘인원이 너무 차이 나는 것 아닌가.’
애쉬는 저 다섯 명 중 누가 신호 장치를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없었지만 이 팀은 구성원이 애쉬뿐이기에 노려질 대상도 그뿐이었다.
나인은 잠시 생각하다 이유가 있으려니 하고 고개를 돌렸다. 경쟁에서 가장 불리할 애쉬 본인도 따질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인다. 그는 손목에 꽉 끼는 팔찌를 만지작거리다 눈살을 찌푸렸다.
“이거 나인이 대신 낄래요? 영 성가신데. 걸리적거려서….”
“…….”
따질 생각은커녕 그냥 아무 생각도 없어 보인다고 하면 과언일까.
함께 자동차를 타고 이동하는 동안 블루 팀이 작전 회의를 하는 소리가 본의 아니게 들렸다. 저들 딴에는 소곤거린다지만 인원이 많아 그런지 유독 잘 들리는 톤의 목소리가 있었다.
훈련에서 상대 팀의 가이드는 그들이 상대할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 체급이 맞는 에스퍼들끼리 경쟁하라는 의미였다. 하지만 규칙에 언급되지 않았을 뿐 가이드를 공격하거나 납치하는 것은 자유였다.
만일 훈련 도중 가이드가 조금이라도 다친다면 가이드를 보호하지 못한 에스퍼가 대신 불이익을 받는다. 그것 때문에 저 팀은 가이드는 어딘가에 숨겨 두고 에스퍼들끼리만 나서려는 모양이었다.
‘다 들린다니까…….’
나인은 남의 작전을 훔쳐 듣고 반칙을 하고 싶지는 않아 이 이상으로는 듣지 않기로 했다. 애쉬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을 것이다. 일부러 창문을 열고 자동차 엔진 소리에 맞춰 토기를 삼키던 와중 차가 멈추어 섰다.
블루 팀을 길 위에 내려 주고 난 뒤 차 안에는 애쉬와 나인, 두 사람만이 남았다. 내내 토기를 억누르느라 창밖만 보고 있던 나인은 애쉬에게는 좋은 생각이 없는지 궁금했다.
“애쉬….”
그는 이제야 옆자리를 돌아보며 말을 걸려다 꾸벅꾸벅 졸고 있는 애쉬를 보고 입을 다물었다. 이 상황에 자고 있다니…. 아무래도 집사님은 애쉬에 대해 몰라도 너무 모르고 있었다.
‘뭐, 저 사람이 불면증이 있다고? 예민하다고?’
어거스트는 애쉬를 무척 걱정하며 나인에게 잘 부탁드린다는 말을 몇 번이고 전했다. 하지만 나인이 보기에는 영 아니었다. 그는 어거스트에게 이 사람은 당신이 걱정할 정도로 상태가 나쁘지는 않다고 말해 주고 싶었다.
‘불면증일 리가!’
포장되지 않은 도로 위를 달리느라 마구 덜컹거리는 데다 사람까지 우글거리던 차 뒷자리에서 고개까지 꾸벅거리며 졸고 있는 꼴을 집사님이 봐야만 했다. 무신경한 것에도 정도가 있지.
또 구역감이 올라왔다. 욱. 나인은 멀미 때문에 입가를 틀어막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십여 분을 달려 두 사람이 내리게 된 곳은 숲속 어딘가였다. 작은 오두막 앞에 둘을 떨어뜨려 둔 차는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빨리 와요.”
잘 졸다 깨서 컨디션이 최상인 애쉬가 얼굴이 창백해진 나인을 보고는 재촉했다. 애쉬가 먼저 기지개를 켜며 오두막 문을 박차고 들어갔다.
‘어지러워….’
나인은 땅이 마구 흔들리는 듯한 느낌을 이겨 내며 그의 뒤를 비척거리면서 따라갔다.
오두막의 입구에서부터 나무 냄새와 매캐한 연기 냄새가 섞여서 났다. 안에 들어가 보니 대충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한쪽 벽면에는 몸을 감쌀 만한 보호 장비구들과 침낭들이 걸려 있었고 책상 위에는 훈련용 무기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다만 훈련에 실제 무기를 사용할 수는 없었기에 탄창 내부의 총알은 모두 에스퍼 대항 페인트탄으로 바뀌어 있었고 칼에도 금속류 대신 잘 휘지 않고 단단한 고무로 된 날이 달려 있었다.
애쉬는 나인이 처음 듣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준비된 에너지 바만 주머니에 가득 챙겨 넣었다. 낡은 배낭에 침낭을 매달고 물이나 각종 도구들을 챙긴 그가 그대로 먼저 뒤돌아섰다.
“무기는 안 챙겨요?”
나인은 애쉬의 소매를 붙잡고 물었다. 그는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나인이나 많이 챙겨요. 덤벼드는 놈들 다 쏴 갈겨 버리든가요.”
농담인 줄 알았는데 진심이었다. 그는 정말 아무것도 챙기지 않고 오두막을 나섰다.
“……?”
정말? 진심으로 그냥 가겠다는 거야? 주위를 둘러보다 가장 큰 장총을 덥석 집어 든 나인이 그 뒤를 따라 뛰어나갔다.
만만한 게 총이었다. 사실 가장 눈에 띄는 곳에 놓여 있기도 했고. 애쉬는 나인이 들고 있는 총을 못마땅하게 바라보다가 말했다.
“내려놔요. 위험하니까.”
“그래도….”
애쉬는 잠시 뜸을 들이다 이제야 생각났다는 듯 작은 탄성과 함께 말했다.
“아, 참. 당신도 사격 배웠다고 했었죠.”
“아니, 네?”
“배운 적 있다면서요.”
“……그, 이건 제가 쓰던 거랑 생긴 게 좀 달라요.”
나인은 놀라서 손까지 저으며 말했다. 그러나 애쉬는 그런 태도를 겸손 떠는 것 정도로 생각하는지 뜻을 꺾지 않았다.
“총이야 구조가 다 비슷하죠. 제대로 배워봤다니까 됐네요. 그건 위험한 것도 아니니까 괜찮으면 한번 쏴 봐요. 실력 좀 보게.”
“……지금요?”
영 내키지 않아 머뭇거리는 나인과 달리 애쉬의 태도는 강경했다.
“다른 차원으로 돌아갈 때에도 반드시 게이트를 통해야 해요. 통로형 게이트는 정신만 똑바로 차리면 그렇게 위험하지 않지만 다른 유형 게이트와 중첩이라도 되면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거든요.”
“…….”
“그러니 실전처럼 생각하고 해 봐요.”
나인은 조금 망설였다. 물론 사격술을 배운 적이 있다는 말은 거짓말이 아니었다. 마나를 다루지 못하니 다른 방법으로라도 스스로를 지키는 방법은 익혀 둬야 한다며, 나인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안 배워 본 호신술이 거의 없었다. 사격도 그것들 중에 하나였다.
정확성을 대폭 높여 저격에 적합하도록 개조한 마법 총도 있었지만 나인은 쓸 수 없는 종류였기 때문에 그는 화약이 들어가는 총기를 다루는 법을 배웠다. 하지만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이 정도면 별로 안 멀죠?”
애쉬가 오두막 앞에 굴러다니는 빈 깡통을 주워다 근처 바위 위에 놓고 살짝 밟아 세웠다. 그의 말대로 많이 멀지는 않은 거리였다. 초보자라도 충분히 맞힐 만한 거리인 데다 표적의 크기도 작지 않다.
“…….”
이제 와서 못 하겠다고 빼는 것도 없어 보였기에 나인은 못 이기는 척 총을 어깨 높이로 들어 올렸다. 그가 사용하던 것과 조금 달랐지만 작동 원리는 얼추 비슷한 듯했다. 장전한 총의 총구를 정확히 표적에 맞춘 나인이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그리고 그대로 방아쇠를 당겼다.
탕!
커다란 소리가 나며 나무 위에 숨어 있던 새들이 푸드덕 날아 도망갔다. 노란색 페인트탄은 표적에서 한참 떨어져 있는 나무의 줄기에 보란 듯이 묻어 있었다. 나인도 애쉬도 할 말을 잃었다. 이 정도면 잘 쐈다고 격려해 주기에는 표적과 위치가 너무 동떨어져 있었다.
“…….”
“…….”
민망함을 감추기 위해 입술을 꾹 말아 문 나인은 총의 각도를 달리해 한 발 더 쐈다. 탕! 이번에는 총알이 하늘 위로 날아갔다. 탕, 탕! 세 번째, 네 번째도 마찬가지다.
분명 표적의 위치는 같은데 총알이 상하좌우로 무척 자유분방하게 날아갔다. 그에 비해 총을 잡은 나인의 표정은 더할 나위 없이 진지하다. 이 광경을 보고 있던 애쉬도 어이가 없는지 헛웃음만 내뱉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
“…….”
사실 제국에서 제일간다는 명사수도 결국 나인을 포기했다. 스무 발을 쏘면 열아홉 발이 빗나갔다. 남은 한 발은 과녁의 정중앙에 맞았다. 총이 이상한 게 아닌지 실험을 해 본 사격 선생님의 것이었다.
나인은 사격에도 전혀 재능이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나인은 그나마 명중률이 높았던 방법을 써 보는 쪽을 택했다. 총구 끝이 표적에서부터 왼쪽, 60도 각도로 돌아갔다. 에너지 바를 우물거리며 나인의 형편없는 실력을 구경하던 애쉬에게로 시선이 향했다. 애쉬는 지금부터 나인이 무슨 짓을 하려는지 예상조차 못 하는 듯 눈을 멍하게 끔뻑이고 있었다.
표적 변경. 나인은 한쪽 다리를 뒤로 빼고 자세를 잡은 뒤 총을 똑바로 들었다. 철컥. 자신을 향해 총을 장전하는 소리에 그제야 이상한 것을 느낀 애쉬가 입을 벌리기도 전에, 나인이 방아쇠를 당겼다. 총알이 빠르게 날아갔다.
깡!!
더 이상 표적이 아니게 된 깡통에 맞은 페인트탄이 팍 터졌다. 깡통은 물론이고 바위까지 노랗게 뒤덮었다. 그것은 애쉬에게서 꽤나 떨어진 거리에 있었다.
‘꼭 맞히려고 하면 안 맞고 다른 걸 겨눌 때만 명중하더라니까….’
눈을 감고 쏘는 것도 방법 중 하나였다. 전혀 엉뚱한 표적에 총알이 명중한 광경을 확인한 나인은 앞으로 살면서 절대 총은 손에 들지도 말아야지 하고 생각했다. 실은 그의 사격 선생님도 제발 나인에게 세상을 위해 다른 길을 찾아보라며 손을 싹싹 비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