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상한 나라의 가이드 (50)화 (50/63)

#50

“나한테는 허락받을 필요 없이 손잡고 싶으면 잡아도 돼요.”

그가 농담조로 속삭이며 잡힌 손을 살짝 흔들어 보였다. 그 말이 조금이나마 긴장을 풀어 줬다. 나인은 심호흡을 하며 숨을 깊게 탁 내쉬고는 고개를 붕붕 가로저었다.

애쉬를 붙잡은 건 그가 생각하는 이유 때문은 아니다. 나인은 애쉬를 끌고 그나마 사람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좁은 골목으로 몸을 날리며 그와 동시에 주머니 속에서 마도구를 꺼냈다.

“이런 으슥한 곳에서 나한테 뭘 하려고요.”

애쉬는 그새를 못 참고 또 헛소리를 시작했지만 나인은 그와 의미 없는 입방아를 찧을 생각이 없었다. 그 대신에 그는 애쉬의 손바닥을 펼쳐 그 위에 반지를 올려 두었다. 순간 말을 잃었던 애쉬는 잠시 생각하다 물었다.

“프러포즈는 좀 이르지 않나요?”

헛소리가 점점 늘어난다. 아주 한숨이 절로 나오는 말이었다.

“그런 뜻 아니니까 일단 껴 봐요.”

“맞는 데가 없는데….”

반지를 손가락에 껴 넣고 빼기를 반복하다 말고 애쉬가 투덜거렸다. 나인의 검지에 무난하게 들어가는 반지는 애쉬의 왼손 새끼손가락에 겨우 맞을 정도로 작았다. 안타깝게도 저 아티팩트에는 소유자의 손가락 크기에 맞게 반지 사이즈가 조절되는 마법은 걸려 있지 않았다.

두 사람이 함께 골목을 빠져나오자 막무가내로 카메라부터 들이밀던 사람들이 애쉬를 그냥 지나쳐 갔다. 애매한 얼굴로 그를 올려다보는 이들도 이내 고개를 저으며 시선을 돌렸다. 인파가 흩어진다. 애쉬는 갑자기 변한 사람들의 태도에 나인을 돌아보았다. 나인은 자랑스럽게 말했다.

“어때요? 쓸만하죠?”

“…….”

소유하고 있으면 존재감이 흐려지는 아티팩트였다. 사람들은 아티팩트를 낀 애쉬를 조금 덜 인식하게 될 것이다. 제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애쉬는 반지를 낀 손을 쫙 펼쳐 굳이 한 번 더 확인했다. 생각한 것보다 훨씬 마음에 드는 듯했다. 나중에 돌려 달라고 하기 미안할 정도였다.

특수 아티팩트 덕에 두 사람은 인파가 붐비는 거리를 자유롭게 지나다닐 수 있었다. 대낮의 거리는 나인에게도 참 낯설었다. 늘 일을 마치고 저녁 늦은 시간이 되어야 외출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밤에 보는 풍경과 낮의 거리는 무척 달랐다. 훨씬 활력 있고 사람도 더 많다.

그런데 나인은 자신보다 더 들뜬 얼굴로 여기저기를 휙휙 둘러보는 애쉬 때문에 비교적 침착해 보였다.

애쉬는 나인을 전자 제품 매장으로 끌고 와 내부를 둘러보게 해 주었다. 하지만 나인도 그렇고 애쉬 역시 이런 쪽에는 문외한이었기에 그냥 가장 최근에 나왔다던 기종을 추천받아 사는 것으로 빠르게 쇼핑을 마쳤다.

“가져요.”

어디서 연락 수단 마련하라는 말을 들었나? 나인은 사양 않고 그가 내민 휴대폰을 냉큼 받았다. 그리고 고개를 꾸벅 숙여 감사 인사를 했다. 자신이 사 달라고 한 적은 없었지만 고마운 건 고마운 것이었다. 계약서에 휘갈긴 사인을 보고 눈을 들어 나인과 애쉬를 번갈아 본 점원이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렇게 신기해요?”

휴대폰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나인에 애쉬가 웃으며 물었다. 그야 당연한 일이었다. 유독 생각나는 사람도 있었다.

‘나중에 집에 가져가서 숙부님께도 보여 드려야지.’

마력으로 작동하는 아티팩트와 달리 이런 전자 제품은 공학에 가까운 물건이었다. 나인은 그의 숙부님이 이 광경을 보신다면 잠시나마 눈을 빛내지 않을까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는 마력을 잃기 전 마도공학을 연구하던 마법사이자 공학자였다. 마도공학은 생겨난 지 십 년도 되지 않은 학문이라 개척할 게 많다고 들떠 하시던 게 기억이 났다. 그가 나인에게 지겹도록 말해 준 게 있었다.

‘십 년 후에는 마법이 더 이상 마법사들의 전유물이 아니게 될거다, 나인.’

마법을 공학과 접목시켜, 마법이 더 이상 누구에게도 생소하지 않도록 일상에 더욱 널리 퍼뜨리는 것이 그의 목표였다. 그렇게 열정적이던 숙부님에게 마력 폭주가 일어나 그의 인생이나 다름없던 학문을 모두 앗아 갔으니 얼마나 상실감이 클까 싶었다.

‘슬슬 마력 회로 연구도 실마리를 잡을 때가 됐는데….’

참고로 전에 주문했던 발광 버섯의 효소는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산소와 효소가 결합하면 빛을 낸다고 했던가. 회복 물약의 원래대로 돌아가려는 성질 때문에 효소가 산소와 결합하는 과정을 방해하는 것 같았다.

나인은 또 한 차례의 실패를 기반으로 생체 촉매는 안 될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 재료 찾기 여정은 또다시 0으로 돌아온 것이다. 착잡한 기분에 나인은 한숨만 푹 내쉬었다.

찰칵.

고민으로 한껏 진지해져 있던 와중, 눈앞에서 카메라 셔터음이 들렸다. 나인이 고개를 들자 새로 산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던 애쉬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연락처 저장하려고요.”

“…….”

나인은 원래 연락처를 저장할 때에 얼굴 사진이 필요한가 보다, 하고 생각했다. 그가 다른 휴대폰을 들어 스스로 본인의 얼굴 사진까지 찍었으니 이상하게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애쉬는 휴대폰 두 개를 번갈아 만지작거리다 먼저 은색 휴대폰을 나인에게 내밀었다.

지이잉. 손바닥 안의 휴대폰이 길게 진동했다. 애쉬가 전화를 걸어 온 것이다. 휴대폰 화면에 살짝 미소 지은 채 재수 없는 표정을 짓고 있는 애쉬의 얼굴이 가득 찼고 상단 가운데 ‘애쉬❤’라는 이름이 가득 찼다.

나인은 표정에 미동조차 없이 전화를 끊고 연락처에 단 하나뿐인 이름을 찾아 빨간 하트를 지웠다. 애쉬도 그 꼴을 뻔히 봤는데 딱히 뭐라고 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그날 대여섯 번이나 그 짓을 반복했는데도 빨간 하트는 물건이 집을 찾아오는 괴담처럼 계속 그의 이름 뒤에 붙어 있었다.

해가 저물기 시작했다. 붐비는 식당의 테라스 자리에 앉은 애쉬는 즐거워 보였다.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이렇게 밖에서 자유롭게 나다닌 건 처음이라고 그가 말했다.

확실히 그렇다. 그 짧은 순간에도 자신은 숨이 탁 막혔는데 평생 그런 시선을 받아 오며 살았을 애쉬가 나인은 조금 존경스럽게까지 느껴졌다.

지이잉. 징.

나인은 짧게 여러 번 진동하는 휴대폰을 바라보다 고개를 들었다. 애쉬는 바로 맞은편에 앉아 있었다. 갑자기 목소리가 안 나오는 상황은 아닐 테고….

[애쉬]

>(이모티콘)

화면 속에서 이상한 닭 대가리 캐릭터가 허리를 구십 도로 접으며 연신 고마워했다. 말로 하면 될 것을, 굳이 메일로….

[애쉬]

>뭐 먹을래요?

“저, 글은 읽을 줄만 알고 쓸 줄은 모르는데요. 눈앞에 있는데 왜 자꾸 메일 보내요?”

“한번 해 보고 싶었어요.”

“안 해 봤어요?”

“누구 말대로 전 이런 거 같이 할 만한 친구가 없어서요.”

그는 나인이 옆에 있는데도 굳이 전화를 걸어 쓸데없이 통화료를 낭비했고 처음 가져 본 휴대폰을 한참 만지작대기도 했다. 들뜬 모습이 역력했다. 불쌍해 죽겠네. 나인은 애쉬를 상대조차 해 주려 들지 않던 에스퍼들을 떠올리며 미간을 희미하게 찌푸렸다.

‘아니, 솔직히 지들 성격도 애쉬 못지않게 이상하면서…. 그냥 이상한 애들끼리 같이 좀 놀아 주면 어디가 덧나나.’

그 와중에 애쉬는 뭐라도 답장을 받고 싶은 눈치다. 불쌍해. 계속 자신을 힐끔대는 걸 보니 불쌍해서 뭐라도 해 줘야 할 것 같았다.

나인은 괜히 화면을 들여다보며 기계를 만지작거리다 대충 그림 같은 게 나열된 창을 보았다. 그 가운데 음식 그림이 모여 있는 것을 발견한 나인이 아무거나 선택해 전송 버튼을 꾹 눌렀다.

애쉬가 화색을 띠며 곧바로 답장을 보냈다.

[애쉬]

>알았어요

사실 나인은 아무거나 시켜도 아무 상관 없었는데 애쉬는 눈을 빛내며 메뉴판을 열심히 들여다보고는 그림과 똑같이 생긴 닭다리구이를 주문했다.

“그런데 오늘 쉬는 날도 아닌데 나와 있어도 되는 거예요?”

“우리가 쉬고 있으니 쉬는 날이죠.”

“…….”

그는 당당했다. 그냥 땡땡이를 치고 있다는 소리를 저렇게 당당하게 하고 있었다. 나인은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나중엔 원하지 않아도 눈코 뜰 새 없이 바쁠걸요. 게이트 배정되면 그땐 진짜 지옥이에요. 비수기에 안 바쁠 때 많이 즐겨 둬야죠.”

“다른 에스퍼들도 이렇게 할 일이 없어요?”

“몰라요.”

“……그럼 누가 알아요.”

못 믿겠다는 눈초리에 애쉬는 고개를 갸웃했다.

“훈련 스케줄은 본인이 알아서 잡는 거예요. 원하지 않는다면 아예 안 해도 아무 상관 없어요.”

“아예 안 한다고요?”

“실전에서 실수하지 않으면 아무 상관 없잖아요?”

“실전이 뭔데요?”

“게이트 작전을 말하는 거예요. 난 게이트 투입 요원이니까.”

아, 맞다. 그랬지. 잠깐 잊고 있었다. 몸값이 어마어마한 에스퍼인 주제에 나인이 아는 애쉬는 늘 한가해 보였으니 말이다.

“실전에서 실수하면 어떻게 되는데요?”

“죽어요.”

그는 너무나도 담백하게 무서운 소리를 하고 있었다.

“그러니 훈련을 하는 거예요. 그마저도 실전에서 한 번 실수하면 끝이지만.”

“그럼 당신도 좀 해요.”

“나 아직까지 살아 있잖아요. 그러니 내가 얼마나 능력 있는 에스퍼인지 감이 와요?”

이건 또 무슨 논리일까. 나인은 애쉬를 떨떠름하게 바라봤다. 그 말이 진실이라면 훈련 가기 싫다고 꾀병을 부리던 환자들도 없어야 하는 게 맞았다. 그 사람들은 뭔데, 그럼? 나인의 속내를 읽은 건지 애쉬가 한마디를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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