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상한 나라의 가이드 (12)화 (12/63)

#12

2. 마력 폭주

사람 마음이 이렇게 손바닥 뒤집듯 쉽게 변하는 것이라는 것을 나인은 생전 처음 알았다.

‘죄송해요.’

그는 제 실종으로 인해 자신을 걱정할 모든 이들에게, 전해지지 않을 사과의 말을 속으로 중얼거렸다.

물론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은 여전히 변함없다. 보고 싶은 사람들도 많고 낯선 환경도 싫었다. 게이트가 열린다면 뒤도 안 돌아보고 집에 돌아간다는 쪽을 택할 것이었다.

……하지만 적어도 일이 년은 돌아가는 게이트가 열리지 않아도 좋다는 소리였다. 어차피 센터 측에서도 당장 열릴 가능성은 드물다고도 했고.

나인은 어쩌면 신이란 게 정말 존재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게 아니라면 딱 적절한 시기에 자신을 이런 곳으로 보내 줄 리가 없지 않은가.

그가 밖에 나가기보다 센터에 남기로 결심했던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는 게이트가 생겨난다면 가장 빠르게 소식을 접할 수 있는 곳이 이곳, 각성자 관리 센터라는 것이었다.

적재적소에서 써먹을 만한 정보를 얻는 것은 무척 중요하다. 아는 사람 한 명 없는 곳에서 믿을 데라고는 자신밖에 없었으니 있을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했다.

그리고 둘째는 에스퍼라 불리는 마법사들에게 있었다.

보호 장갑 하나 끼지 않고, 심지어는 아티팩트를 통한 마나 우회조차 없이 푸른 화염을 다루는 여자를 보고 경외감이 든 게 가장 큰 이유였다.

‘대단해.’

가슴이 두근거렸다. 자연계 능력을 매개체도 없이 다룰 수 있는 마법사는 세상에 없었다. 그럴 수 있는 존재는 오직 초월자인 용뿐이라고, 나인은 그렇게 알고 있었다.

자연계 마법사들의 존재는 귀하다. 가장 자연에 가깝고 순수한 마법일수록 마나가 제멋대로 날뛰는데, 웬만큼 강인한 마법사가 아니라면 능력 자체를 발현시킬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무기 없이 전쟁터에 나가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

마찬가지로 아티팩트 하나 없이 마법을 구현할 줄 아는 존재는 어디에도 없다. 용을 제외하고. 용의 신체는 온통 마법으로 구성되어 있었지만 인간의 몸은 마법이란 강대한 힘을 담기에는 나약하기 그지없었다.

마력은 인간이 함부로 설명하기 힘들 정도로 강대한 힘이지만 그만큼 시전자에게도 무리가 간다. 말하자면 양날의 검인 셈이었다. 그래서 마법사들은 마나에 해를 입지 않도록 언제나 힘을 수용할 장신구들을 주렁주렁 착용하고 다녔다.

그게 바로 아티팩트였다. 그렇기에 능력 있는 마법사들은 유독 화려한 차림새로 길을 다닌다. 장신구의 수가 그 사람의 힘을 증명해 주는 거나 다름없었으니까.

선대의 유명한 대마법사조차 인어의 눈물이라 불리는 마석으로 완드를 제작해 그것을 매개체로 삼았다. 마도구 없이 마나를 몸에 담았다가는 차마 입에 담을 수조차 없을 정도로 끔찍한 꼴로 죽음을 맞게 될 것이다.

‘하지만 분명 플로라는 맨손으로 불을 다루고 있었어.’

이곳의 마법사. …아니, 에스퍼들은 매개 마도구를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 그 말은 곧 그들은 오직 스스로의 몸을 그릇으로 능력을 다룬다는 소리가 된다.

‘인간의 신체가 마나를 감당한다고?’

나인이 알던 개념이 순식간에 붕괴했다.

플로라라는 이름의 화염 에스퍼의 귀는 뚫은 자국 하나 없이 깨끗하기만 했다. 일부러 회의 이후 그녀에게 말을 붙여 매개 아티팩트나 정령석을 지니고 있지 않은 것을 직접 확인했다.

플로라는 목걸이도, 반지도 착용하고 있지 않았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훈련 중에 장신구를 차고 있으면 거슬리고 귀찮기만 하단다.

‘어떻게 인간이 마도구 하나 없이 자연 원소를 다룰 수 있는 거지?’

자연계 마법사의 존재는 기록상에서는 확인할 수 있었지만 실제로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플로라의 말로는 불을 다루는 에스퍼는 그리 드문 케이스가 아니란다. 이 세계는 도대체 어떻게 된 곳이기에 불을 다루는 마법이 흔하다는 건지. 나인의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재능은 전혀 없지만 나인은 여전히 마법이 좋았다. 고집이라고 손가락질당해도 무시할 수 있었다. 다른 길은 쳐다보지도 않았을 정도로 그는 마법이란 학문에 심취해 있었다. 마나도 운용하지 못하는 주제에 굳이 아카데미에서 마법학부에 진학했던 이유도 이에 있었다.

아카데미에서 그의 소속은 마법학부로, 좀 더 세분화해서 본다면 그의 전공은 치료 마법과 수식학이었다. 나인이 특히 두각을 드러내는 곳은 수식학 쪽이었다.

‘어떻게 계산 속도가 이렇게 빠르죠? 아쉽네요. 나인 학생이 마나만 운용할 수 있었더라면 정말….’

교수들은 늘 아쉬워했다. 나인은 비록 마나를 다루지는 못했지만 이론 수업의 성적만큼은 늘 상위권을 유지했을 정도로 개념 이해만큼은 완벽한 수준이었다. 학부생 수준답지 않게 마법 수식을 자유자재로 응용하고 마법진 구현마저 꼼꼼하고 완벽했다.

성격도 좋고 교우 관계도 원만했던 나인은 만인의 편견을 뛰어넘고 학년 대표 자리를 꿰차기도 했다. 비마법사가 마법학부의 학년 대표가 된 것은 아카데미 설립 이래로 처음 있는 일이었다.

마법 수식의 간략화를 연구하는 히아크라 교수는 나인에게 졸업 후 제 밑에서 좀 더 연구해 보지 않겠느냐며 제안을 건네기도 했다. 그러나 나인은 그에 대한 대답을 잠정 보류했다.

히아크라 교수에게는 졸업 이후 사설 병원의 약제부에서 선배를 돕기로 했다는 이유를 댔지만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나인, 마탑에서 나온 전령이 마력 과부하에 대해 할 얘기가 있다며 이걸 네게 전해 달라고 하던데. 확인하면 빨리 연락 달래.’

비밀리에 이미 선약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엘로윈 황가는 14대에 거쳐 제국을 통치해 온 가문이었다. 강력하고 지혜로우며, 사람 같지 않게 아름다운 외모를 타고난 사람들. 그런 황가에 뒤따르는 소문들 가운데에는 엘로윈에 저주가 걸려 있다는 소문이 있었다.

황족들은 유독 강력한 마력을 지니고 태어난다. 지니고 태어난 재능이 각성해 정식으로 마력을 다룰 수 있게 되는 나이가 6세. 마력을 다루는 방법은 학습하기 나름이지만 타고난 그릇의 크기는 그 누구도 엘로윈을 따라오지 못했다.

전쟁의 시대에 그들은 선두에 서서 강력한 마법으로 군을 직접 지휘했으며 약탈자들의 싹을 꺾어 둠으로써 제국의 기반을 다졌다.

그러나 그러한 힘은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타고난 힘이 강력하면 강력할수록 그들은 단명하는 일이 잦았다.

‘마력 과부하.’

다른 말로는 마력 폭주. 그들을 가장 높은 자리까지 올려 준 황실의 피가, 핏줄에 흐르는 강대한 마법의 힘이 주인을 해쳤다.

가진 힘이 너무도 강대한 이들은 대부분이 쉰을 넘기지 못하고 절명했으며, 운이 좋아 살아남게 되더라도 더 이상 마법을 사용할 수 없게 된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망가진 몸은 자연적으로 회복되지도 않았다.

평생, 영원히, 다시는 마력을 다룰 수 없게 된 것이다.

‘나인. 나는…… 네가 참 부럽구나. 이런 힘이라면 타고나지 않는 편이 나았어.’

현대에 와서는 나인의 숙부가 그러한 마력 과부하의 희생양이 되었다. 그는 마도공학을 연구하는 마법사이자 공학자로, 어린 나인에게 마법의 역사를 직접 가르치기도 했을 정도로 그 학문에 대한 열정이 어마어마한 사람이었다.

제 전부였던 것을 잃고 반쯤 폐인이 된 숙부님은 눈 밑이 푹 꺼진 채로 술을 입에 달고 살았다. 아예 처음부터 없던 것과 있었다가 없어지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였다.

나인은 어렸을 때부터 마력 과부하의 위험성과 선대의 비극을 수도 없이 듣고 자랐다.

마탑은 마법의 정점이자 수많은 대마법사들을 배출해 낸 학문 기관이다. 원래 같았더라면 황가의 돌연변이이자 비마법사인 나인은 문턱조차 밟을 수 없었을 테지만 연구의 주제가 주제인 만큼 마탑에서도 황족의 협조가 필요했을 것이다.

나인은 황족의 피를 제공해 주기로 했다. 이번만큼은 특별히 마탑의 연구에 참여하는 것을 허락받았다. 졸업 전에 잠깐 황성에 돌아가서 형님들에게 이에 대한 협조를 요청해 볼 생각이었는데…….

‘말을 꺼낼 분위기가 아니었지.’

다들 피곤해 보였다. 체체가 귀찮게 굴지만 않았어도 이런 곳에 떨어질 일은 없었을 텐데. 나인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기에 에스퍼들의 사례는 나인에게 특별하게 보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들은 틀림없이 이 연구에 도움을 줄 수 있었다.

‘도대체 그 사람들은 체내에 마력 회로가 어떻게 짜여 있는 거야?’

만일 그들처럼 인간의 몸에 마나를 담을 수 있다면. 마법사가 아티팩트 하나 없이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면!

마법의 역사가 순식간에 뒤집히게 되는 것이다. 마법사들은 더 이상 마도구에 의존하지 않을 것이며 어쩌면 마력이 없는 사람들 또한…….

만일 에스퍼라 불리는 사람들로부터 무언가를 알아낼 수만 있다면 절망에 빠진 숙부님을 구할 수도, 미래의 위험으로부터 가족들을 지킬 수도 있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당장 집에 돌아가고 싶던 마음이 눈 녹듯 사라졌다.

지금은 때가 아니었으며 나인은 누구보다도 간절했다. 그는 여기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최대한 모두 해 보고 난 뒤에 돌아갈 생각을 해도 늦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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