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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나라의 가이드 (10)화 (10/63)

#10

“나인 씨, 죄송한데 뭐 하나만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방금 전 화염 에스퍼를 말리던 남자가 넌지시 말을 건넸다. 곤란한 기색을 숨기지 못하고 테이블만 빤히 바라보던 나인은 그제야 시선을 들어 남자를 마주 보았다.

“뭔데요?”

“아까부터 궁금했는데 당신네 차원에는 마법이라는 게 실존하는 겁니까?”

나인은 그 말에 대답 대신 화염 에스퍼를 힐긋 바라보았다.

‘저기도 있지 않나, 마법사…. 그건 왜 묻는 거지?’

나인은 이들이 왜 이런 질문을 하는지 의아해 고개를 갸웃했다.

“마법이야… 있죠?”

말꼬리를 올리며 경계하는 태도에 남자는 보다 부드러운 태도를 취하며 말했다.

“별건 아니고 그냥 참고하려는 차원에서 묻는 거니 경계 안 하셔도 됩니다. 아까 전에도 플로라에게 마법사가 어쨌다느니 하는 이야기를 꺼내셨지 않습니까.”

불을 다루는 여자의 이름이 플로라인 모양이었다. 눈이 마주치니 여자가 나야, 하고 말하며 장난스레 웃는다. 나인도 어색하게 마주 웃어 줬다.

“혹시 당신도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겁니까?”

“…….”

그 말에 나인은 곧장 대답하지 못하고 멈칫했다. 시선이 희미하게 흔들렸다.

“나인 씨?”

아. 뒤늦게 정신이 돌아온 나인이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아뇨. 저는 못 써요.”

다른 황족들은 개나 소나 다 있는 재능의 부재가 서러워 어렸을 적에야 잉잉 울던 때도 있었지만 다 지난 이야기였다. 이젠 이런 말도 딱히 상처가 되지는 않았다.

나인은 마법사가 아니다. 하지만 나인은 마법사가 아닌 제 모습도 사랑하는 방법을 배웠다. 주위 사람들의 덕이었다. 마력의 부재에도 불구하고 그는 충분한 사랑을 받으며 자랐고 결핍을 딛고 일어서는 방법을 자연스레 취득했다.

선선대 황실에서는 황위를 가지고 유혈 사태까지 벌어졌다는데, 나이 차가 많이 나는 형님들을 비롯해 가까운 주변인들은 나인을 마냥 아껴 주기만 했다. 느리고 둔감한 꼬마였던 나인이 이렇게 반듯하게 성장하게 된 데에는 주변인들의 덕이 아주 컸다.

그들은 마력의 부재에 대한 말은 꺼내지도 않고 나인을 귀여운 동생으로, 아들로, 친구로. 그저 있는 그대로 대해 주었다. 나인 본인도 그것을 잘 알고 있기에 더더욱 자신을 아껴 주는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고 싶었다.

“……집에 가고 싶다.”

나인이 풀 죽은 목소리로 작게 중얼거리자 회의장 내부가 온통 고요해졌다. 그 누구도 섣부른 위로의 말을 꺼내지 않았다.

이후의 회의는 나인의 소재를 논의하는 게 전부였다. 나인은 이제야 손님방인 줄 알았던 방이 왜 이리 작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각성자 관리 협회.

줄여서 각성자 센터라고 불리는 이곳은 마법사 시종 여럿을 거느리는 귀족의 저택이 아니었다. 오히려 이곳의 마법사들이 모여 일과 연구를 하는 학문 기관과 비슷한 것 같았다. 그렇다면야 환경이 그렇게 열악했던 이유도 이해가 간다.

‘단체 생활을 하는 곳이 다 그렇지, 뭐.’

어차피 나인이 재학하던 아카데미의 기숙사도 썩 쾌적한 환경은 아니었다. 방음도 영 엉망이었고. 기숙사 옆방을 쓰던 놈이 밤에 코를 골면 베개로 귀를 막고 억지로 잠을 청해야 했으니 말은 다 한 셈이었다.

센터장은 공간미아 관리 프로그램에 따라 센터 밖 가까운 곳에 나인의 거처를 마련해 이후 일자리를 구해 적응을 돕는다는 방법을 제안했지만 나인이 거절했다.

“혹시 여기는 남는 일자리가 없나요?”

“예?”

“잡일이라도 좋아요. 청소든 요리든… 뭐든 시켜만 주신다면 열심히 해 볼게요. 여기 남아서 일하고 싶습니다.”

나인이 간절하게, 그러나 동시에 의욕적으로 말했다. 그는 잠시나마 이 차원에 머무는 거라면 가장 차원의 본질에 가까운 곳에 머물고 싶었다.

그래서였다. 나인이 이 낯선 곳에 떨어진 원인은 게이트 때문이며, 그 게이트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는 곳도 바로 이곳이었으니까.

환경에 적응을 하든 다시 돌아갈 대비를 하든, 이곳만 한 장소가 없다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판단을 내린 근거는 충분했지만 나인이 제 머릿속에 든 모든 걸 구구절절 설명하지는 않아서인지 사람들은 나인의 결정에 다소 놀란 듯 보였다.

“아니, 아니요, 밖에 나가서도 당신이 충분히 적응을 할 수 있게 도울 겁니다. 이곳은 각성자들이 실제로 생활하기도 하고 훈련을 받는 곳이기도 해요. 당신 같은 민간인이 지내기에는 너무 위험….”

“어떻게 안 될까요? 전 여기가 좋은데.”

“…….”

그냥 괜찮기만 한 것도 아니고 무려 좋단다. 어떤 일이라도 좋으니 각성자 관리 센터에 남고 싶다는 나인의 말에 사람들의 표정이 이상해졌다. 원래 같았더라면 안 된다고 단호하게 거절을 해야 하는 게 옳았지만 공간미아는 끈질기게 말꼬리를 잡고 늘어졌다. 멍해 보이는 얼굴로 쓸데없이 고집까지 셌다.

“그, 글쎄요. 전례 없는 일이라. 검토는 한번 해 보겠습니다.”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시선을 교환하던 이들은 나인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해 회의를 해 보고 이후 통보해 주겠다며 말을 얼버무렸다.

* * *

사람들은 대부분 에스퍼의 존재를 경외하거나 혹은 역으로 껄끄러워한다. 자신들과 아예 다른 존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히, 히익. 괴물…!’

특히 공간미아들은 이능에 대한 개념을 이해하지 못해, 도움을 주려는 에스퍼를 두려워하다 혼절까지 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

그런데 눈앞의 공간미아는 각성자들을 꺼리기는커녕…. 회의가 끝난 뒤에도 에스퍼의 곁에 붙어서 순진한 얼굴로 그들의 이능을 착취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순수한 신체 힘만으로 이걸 박살낸 거라고?”

두꺼운 테이블이 깔끔하게 동강나있는 꼴을 보고 나인은 들뜬 태도를 숨기지 못했다. 테이블을 박살낸 장본인인 에스퍼가 심드렁하게 말했다.

“너도 직접 봤잖아.”

“다치지도 않았네.”

“신체 강화형 에스퍼라니까. 이런 걸로 다치면 민간인이랑 다를 게 없잖아.”

“혹시 강화 가능한 범위가 어떻게 돼? 전신에 적용이 가능한거야? 뼈에는 무리가 안 가? 충격을 흡수하는 구조는 따로 마련이 돼있는 건가? 아, 그럼 만약 망치로 내려치면….”

“…….”

“농담이었어. 그냥 만져 봐도 돼?”

푸른 눈동자가 호기심에 젖어 쉼 없이 반짝였다. 잔뜩 들떠 종알거리는 걸 보니 아까 전 우울해 보이던 사람과 동일인이 맞나 의심까지 될 정도였다. 단단한 팔을 만지작거리며 감탄하는 나인을 보고, 플로라가 말했다.

“이런 거 처음 봐요? 거기도 마법사? 뭐 그런 거 있었다면서요.”

“아, 네. 마법사야 있기야 했는데….”

“그런데?”

“…사실 전 전공이 그쪽이기도 했으니까 흔히 보기야 했죠. 아직 졸업은 못했지만. 원랜 다음 달 졸업 예정이었거든요.”

나인이 민망한 듯 뺨을 긁으며 말을 덧붙이자 플로라가 물었다.

“전공이 뭔데요?”

“마법학부요.”

“…….”

“아, 그중에서도 치료 마법과 수식학을 전공….”

“뭐야, 그럼 마법사고 뭐고 그냥 발에 차였겠구만!”

성격 파탄자 플로라가 신경질적으로 중얼거리며 발로 책상 다리를 뻥 찼다. 커다란 소리에 놀란 나인이 눈을 끔뻑이자 그녀는 고개를 가까이 들이밀며 나인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며 빈정댔다.

“그런데 이렇게까지 신기해할 일인가? 너 지금 누구 놀려?”

갑자기 표정을 딱딱하게 굳힌 여자가 신경질적인 말투로 물었다. 왜인지 눈빛에서도 불꽃이 튀는 듯했다. 나인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그녀의 말에 반박했다.

“달라요! 자연계 마법사는 그냥 마법사가 아니니까요….”

“뭐라는 거야?”

“특히 불의 원소는 가장 다루기 힘들다고 여겨져 기록에도 딱 한 명밖에 없었어요.”

나인은 뺨까지 발갛게 붉힌 채 에스퍼의 손을 둥글게 감싼 불덩이에서 시선을 떼어 내지 못했다.

“놀리지 않았어요. 절대 그런 게 아니에요. 전 정말 진심으로 당신이 대단하다 생각한다고요.”

“…….”

혼자 찔려 급발진한 플로라는 그제야 좀 민망해했다. 그녀는 화를 낸 데 대한 사과 대신에 불길을 더 키워 주었다. 그러자 나인은 영혼이라도 내다 팔 것처럼 들뜬 모습을 감추지 못했다.

“아, 만지지 마요. 나한테라면 몰라도 당신에게는 뜨거울테니까.”

“신기해서요.”

“…마법 같은 게 있는 데서 왔다면서 이딴 게 신기하다고요?”

“기적이잖아요. 이런 건 저도 처음 본단 말이에요.”

칭찬에 약한 그녀의 표정이 헤벌쭉해졌다. 암만 봐도 거짓으로 띄워 주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호기심에 반짝거리는 푸른 눈이 싫지는 않았지만 이렇게까지 칭송받을 이능은 아니라 생각한 그녀가 뺨을 멋쩍게 긁었다.

“좀 쑥스럽네…. 여기선 좀 흔한 능력이라.”

그리고 그렇게 쓸모있는 이능이 아니라 등급이 높아도 취급은 썩 좋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플로라는 알게 모르게 열등감이 있었다.

“말도 안 돼요. 이런 대단한 능력이 흔하다고요?”

나인이 눈을 휘둥그레 뜬 채로 소리를 치자 플로라는 입매를 꿈틀거렸다. 그녀의 이능을 대단하다고 올려쳐 준 사람은 나인이 처음이었다. 별것도 아닌 말에 이렇게까지 기뻐도 되는 건가 싶기도 했다. 칭찬 싫어하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사방이 각성자투성이인 센터에서 이능을 가지고 칭찬받을 일은 아주 드물었다. 더군다나 이곳, 11지부는 아주 괴물 같은 놈들이 수두룩하게 널렸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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