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3화 (4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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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태어나서 부모님을 만나 지금까지 거듭된 불운을 겪어왔다.

 청산가리 사건이 알려진 후 그분들을 뵈었을 때 너무 속상해하셔서 마음이 아팠다.

 그분들의 친자식인 동생에게는 언제나 미안한 마음이라서 늘 서먹하게 대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에프시티의 한 입양센터에서 자랐다.

 문 앞에 버려진 갓난아기의 손목에는 생일 날짜 하나만 달랑 적혀있었다. 센터 직원들은 나를 고아원에 보내지 않고 바로 센터에서 양육했다. 등록 첫날부터 입양 문의가 많았기에 금방 내보낼 줄 알았던 아기는, 갓난아기들이 겪을 수 있는 질병을 차례차례 다 겪으면서 입양 기회를 모두 놓쳐버리고 어영부영 세 살이 되었다.

 이름 없이 세 살이 되어 병원비만 축내는 아기에게 입양 문의를 한 분들은 어느 교육자 부부였다.

 자식을 갖고 싶었던 40대 부부는 입양 대기아 목록을 보다가 동그란 눈의 남자아기를 보고 마음을 결정지었다고 한다.

 절차는 빠르게 진행되었고 나는 그분들에게서 이라라는 이름을 얻었다. 셋, 넷, 다섯 살까지 3년 간 애기답게 실컷 울고 불며 초보 부부를 괴롭히며 행복한 나날을 보냈는데, 불행은 예기치 못하게 찾아왔다.

 다섯 살에 오러 검사를 통해 소울 오러 유저로 정식 등록을 했다. 꽤 어린 나이에 A급으로 발현한 나를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집안에 오러 유저가 한 명도 없었던 양부모님은 처음에는 순수하게 기뻐하셨지만, 점점 사람들의 검은 손길에 피곤해하셨다.

 어느 날 양어머니 쪽 친척이 어댑터를 데리고 찾아왔다. 처음으로 어댑터의 오러를 안에 들이고 무척 혼란스러웠다. 어댑터가 돌아간 뒤 안절부절 못하는 나를 양어머니께서 안고 달랬다. 양아버지도 큰 손으로 등을 쓸어주며 안심시켜주셨다. 칭얼거리며 그분들의 품에 파고들었던 기억이 선명하다.

 내가 파양을 당했던 건, 소울 유저의 능력 때문이다. 나는 사람들의 마음과 감정 상태를 읽을 수 있었고, 많은 어린 소울러들이 그러하듯이 조절하는 방법을 몰랐다. 어댑터를 마주친 뒤 얼마 안 되어 먼 친척이 찾아와 나를 연구소에 들이자는 얘기를 하고 있을 때였다. 아버지 품 안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나는 떠오른 감정을 얘기했다. ‘저 사람 거짓말을 하고 있어요. 아버지를 싫어해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어요.’ 실제로 그 사람은 나를 나이트(능력을 이용해 타인에게 봉사하는 소울 유저 중 음지에서 활동하는 소울 유저. 성매매도 속한다)로 팔아치우려는 속셈을 가지고 있었다. 현명하신 양부모님은 그 자를 경찰에 넘겼으나 나는 오러 유저 보호법 대상에 속하지 않았고, 실제로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 자는 약 한 달 만에 출소했다.

 그리고 곧바로 양아버지를 찾아와 보복 상해를 가했다.

 식칼이 내장을 피한 덕분에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그러나 그분의 마음은 치료하지 못했다.

 보복해오리라고 누가 예상했을까. 살해당할 뻔했다는 상처는 낫기 어렵다. 그 상처와 두려움은 영원히 극복하기 어려운 것이다.

 나도 그 사실을 너무나 잘 안다.

 나를 볼 때마다 떠올리셨을 것이다. ‘이 아이만 없었어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양아버지가 퇴원하는 날, 나는 파양이 결정됐다.

 소울 오러 유저임을 모르고 입양했으므로 파양 절차가 까다롭지도 않았다.

 센터로 돌아온 날을 추운 겨울이었다. 양부모님은 나를 주차장에 내려놓고 그대로 떠났다. 나는 눈바람을 맞으며 잠시 서 있다가 센터로 돌아갔다.

 다 내 탓이었다. 나만 없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다.

 「네가 그 자를 소울 오러의 능력으로 자극했기 때문에 양부가 칼에 찔렸다는 사실이 드러나면 다시는 아이돌 생활을 할 수 없겠지.」

 신동우의 협박은 저열하다.

 사실이기 때문에 더욱더.

 지끈 지끈한 심장을 꾹 참을 때였다.

 “이라야, 괜찮아? 아까부터 말이 없네.”

 문이 형의 목소리가 상념을 깨웠다.

 눈을 뜨니 멤버들이 걱정스러운 눈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풀메이컵을 하고 첫 곡 의상인 슈트를 갖춰 입은 멤버들은 모두 반짝반짝 빛이 났다.

 “야, 긴장했냐? 까짓것 첫 소절 음이탈 내버려. 너 내면 나도 편하게 좀 내게.”

 “맞아. 너 한 번도 음이탈 낸 적 없는데 이번에 팬서비스겸 내 줘.”

 한새와 문이 형은 농담으로 내 긴장을 덜어주기 위해 노력했다.

 “형, 저도 떨려요. 손잡아 주세요.”

 인이어를 만지작거리던 야단이가 하는 말이었다. 그 손은 내게 오기 전 제이에게 붙잡혔다.

 “지금 긴장 안 한 사람 없어. 아마 팬들도 우리만큼 떨리겠지. 너무 걱정하지 마.”

 검은 슈트에 앞머리를 올리고 진한 눈썹을 내보인 제이는 겉보기에는 쿨한 흑표범 같았으나, 자꾸 입술을 축시는 행동에서 긴장이 읽혔다.

 “나 멀쩡해. 삑사리도 안 낼 거고. 오히려 나보다 형이랑 너네가 더 긴장한 것 같은데?”

 나는 가볍게 웃으며 멤버들을 둘러보았다.

 이 콘서트가 멤버들과 함께하는 마지막 무대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은 여전히 마음을 무겁게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더 밝은 미소를 그렸다.

 사고를 치고 버림받은 나를 선택해준 지금의 부모님과 하나 뿐인 동생도 보고 있을 것이다. 권수한도 어딘가에서 나만큼 떨려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오늘을 위해 피땀 흘려가며 노력했다. 멤버들을 위해서라도 나를 위해서라도.

 “잘하자, 다들. 평생 잊지 못할 순간이 될 테니까.”

 멤버들은 너나할 것 없이 그래!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긴장과 설렘 속 활짝 꽃핀 멤버들의 모습이 반짝반짝 빛이 나서 내 마음에도 비슷한 감정이 차올랐다.

 “와아아아아!!!”

 “꺄아아!!”

 함성 소리가 고막을 찢을 것처럼 컸다. 스탠딩과 좌석을 꽉꽉 매운 팬분들은 우리가 등장하자 지붕이 떠나가라 소리쳤다. 문이 형이 진정하라고 입을 열자 더 커졌다. 첫 콘서트인 만큼 모두 흥분 상태였다. 좀처럼 함성이 수그러들지 않아 시작을 못하자 결국 제이가 마이크를 잡았다.

 “조용. 우리 인사하고 나서 다시 소리 질러.”

 그에 다시 함성이 순식간에 커졌다가 급속히 줄어들었다. 제이의 카리스마에 눌린 걸까.

 순서대로 인사를 했다. 내가 마지막 순서로 인사를 마치자 정말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의 함성이 터져 나왔다. 스탠딩석에서 벌써 뽑혀져나가는 팬분이 보였다. 첫 곡은 시작도 안 했는데..

 단체곡 3곡 후 야단, 문이 형, 한새, 제이, 나 순서로 개인 무대를 한다.

 야단이는 저번 활동 때 호평 받았던 모래 퍼포먼스를 준비했다. 나는 배경으로 모래사막을 만들어줬다. 사실 모셔너도 환상을 만들 수 있어서 내 도움은 크게 필요 없고, 나는 디테일한 부분에만 신경썼다.

 문 형과 한새는 엔돌핀 앨범 수록곡을 편곡해서 무대를 선보였는데, 둘다 노유저이기 때문에 나와 제이가 무대에 환상을 넣었다.

 푸른 펌머리에 하늘거리는 의상을 입은 문이 형과 어울리도록 바다 풍경을 만들었다. 마치 맑은 날 바닷가에서 바라보는 느낌이 들도록 햇빛에 반짝이는 물결에 하늘이 반사된 푸른 바다를 그렸다. 제이는 딱 기분 좋을 만큼 살랑거리는 바람을 관객석 쪽에 일으켰다. 문 형의 솔로곡은 가벼운 안무를 곁들인 밝고 경쾌한 곡이다. 청량한 목소리에 무대 뒤의 나도 기분이 좋아졌다.

 한새는 문이 형과는 반대로 뒷골목을 연상시키는 무대를 펼쳤다. 스포티룩의 여자댄서들과 꾸몄던 문 형과는 달리 한새는 문신을 한 껄렁껄렁한 남자댄서들과 함께 했다. 비 오는 뒷골목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 빗줄기 환상을 만들어냈다. 제이는 본인의 솔로무대를 준비해안 했으므로 나 혼자 했는데 연습했던 대로 적재적시에 성공적으로 만들어내서 내심 안도했다.

 제이는 검은색 아슬라 공국의 정실 도복을 입고 등장했다.

 나는 넋을 잃고 보았다. 제이의 독무, 군더더기 없으면서 단호하고 힘 있는 검술을 볼 때마다 이렇게 넋을 잃는다. 모셔너라고 다 제이처럼 할 수는 없다. S급이라 하더라도 제이만큼 압도적일 수 없는 건 마찬가지다. 제이의 검무는 환상을 극소수로 사용했다. 바람을 일으키거나 검을 공중에서 움직이는 모션을 제외하고 환상은 넣지 않았다. 그래서 더 대단하다.

 제이가 독무를 마치자 관객석에서 환호가 터져 나왔다.

 제이가 우리 멤버라는 게 자랑스럽다.

 한새랑 문이 형도, 우리 막내 야단이도.

 같은 팀이어서 자랑스럽다. 뿌듯함 그 이상으로, 친구들과 한 무대를 만들어나갈 수 있다는 게 새삼 감동적으로 느껴졌다.

 가슴이 벅차올랐다. 빨리 공연하고 싶다. 무대에 올라가고 싶다. 같은 무대에 오르고 싶다는 감정이지만 두려움이 컸던 데뷔 전과는 달랐다. 무대에 서기 전 이런 기분을 느끼는 건 처음이다.

 내가 아이돌이 하고 싶다고 처음으로 생각했을 때. 그때가 떠올랐다. 아이돌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을 때가.

 제이의 무대가 끝나고 멤버들이 무대 위에 모였다. 나도 올라갔다.

 “우리 제이 무대 어떠셨어요, 여러분?”

 멋있다, 섹시하다 등의 함성이 잠시 있고, 멤버들은 각자 무대에 대한 코멘트를 했다. 나는 너무 멋있어서 짜증났다고 말했는데, 제이는 내 멘트를 듣고 흐뭇하게 웃었다.

 “어, 근데 이라야. 너 옷이 왜 달라졌냐?”

 문 형이 대본대로 물었다. 나는 폼이 넉넉한 얇은 흰색 스웨터에 진청바지를 입고 있다.

 내가 준비한 무대는 노래다. 안무 없이, 오러 없이. 수록곡 두 곡을 편곡해 5분 남짓의 노래를 만들었다. 얼른 부르고 싶다.

 “오잉, 제 옷이 바뀌었네요. 왜 바꼈지?”

 “네가 그걸 물어보면 어떡해. 옷은 귀여워가지고. 베이비펌에 흰 스웨터 입히니까 막대할 수가 없네.”

 “저는 이라 형이 왜 갈아입었는지 알 것 같아요. 우리 눈에서 눈물 진하게 뽑으려는 거죠?”

 “하하, 사실 우리 모두 다 알잖아. 그렇죠, 여러분?”

 한새가 팬분들을 향해 외쳤다.

 “자, 이제 남은 사람 누구죠?”

 “이라!!”

 “이라요!!!!”

 팬분들의 목소리가 너무 간절해서 웃음이 터졌다. 진짜 귀여워.

 “자, 그럼 이라의 노래를 다 같이 들어볼까요? 저도 연습할 때 들었는데, 장난 아니고 이백 번은 들었거든요? 근데 그때마다 울어요.”

 “아, 오버하지 마.”

 “진짜라니까? 나중엔 막 전주만 흘러나와도 눈물이 나더라고. 약간 파블로프의 개처럼.”

 “맞아요, 형. 제이 형이 우는 모습도 봤어요. 어? 거짓말 아닌데 팬분들 안 믿으시네요.”

 “들으면 믿게 되겠지. 그런데 노래가..”

 이제 슬슬 노래 전주가 흘러 나와야 하는 타이밍이었는데 아무 반주도 들리지 않아서 우리는 다 같이 스태프를 보았다.

 “노래가 늦게 나오네요?”

 “그러네. 감독님 뭐하세요.”

 “잠시 사고가 있나 봐요. 팬분들 조금 진정하시구요. 물론 진정이 안 되겠지만.”

 흘러나오지 않는 음악에 멤버들도 당황해 하고 스태프도 우왕좌왕 했다. 음향 사고인가..

 “꺄아아아아!!”

 긴장감을 추스를 때 갑자기 엄청난 환호 소리가 들려서 어깨까지 들썩할 정도로 놀랐다. 멤버들도 깜짝 놀란 얼굴이었다.

 “안녕, 팬여러분. 오랜만이에요.”

 유진이 형이 해사한 미소로 손인사를 하면서 걸어 나오고 있었다.

 메이크업을 하지는 않았다. 옷차림도 정장 슈트였다. 핸드 마이크를 들고 있었다.

 “유진이 형?????”

 “형이 어떻게 여길 오셨어요???”

 얼어붙은 나만큼 멤버들도 모두 놀란 상태였다.

 “놀랐지? 엔돌핀 콘서트인 만큼 참여하고 싶어서. 너희들한테 비밀로 하느라 애먹었어.”

 “와, 생각도 못했어.”

 티 내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멤버들에게서 어색하고 미묘한 감정이 읽혀졌다.

 “여섯이서 무대에 서다니 대박이다. 얼른 와, 형. 가운데에 서.”

 한새녀석은 진심으로 반기고 있었다.

 문이 형이 내 어깨를 툭툭 치며 속삭였다. 일단 네 솔로 무대는 뒤로 미루자는 말에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다. 유진이 형이 등장했으니까 이제 팬들의 관심은 모두 그에게 향했을 것이다. 이 분위기에서 노래를 부르면 야유를 받을지도 모른다.

 “오랜만이야. 나온다고 미리 연락 좀 주지.”

 “하하, 깜짝 놀래키고 싶어서. 작전이 성공했네.”

 우리는 유진이 형과 인사를 나누었다. 다들 웃는 얼굴이었지만 제이는 시니컬했다. 원래 그런 캐릭터라는 게 참 부러웠다.

 나는 유진이 형이 내 반응을 살피고 있음을 알았다. 내 표정이 지나치게 어색하지 않았기만을 바란다.

 “데뷔했을 때가 생각나네. 이렇게 큰 공연장에서 단독 콘서트를 여는 게 소원이었는데.”

 유진이 형은 넓은 무대와 가득 착 객석을 보면서 웃음 지었다. 언뜻 아련해 보이고, 부러워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형은 콘서트라도 좀 해본 다음에 그만두지 그랬어.”

 “그럴 걸 그랬나. 혹시 우리 데뷔곡도 불러? 나 아직 춤 기억하는데.”

 “에이, 2년도 안 됐는데 당연히 기억해야지. 게다가 형이 만든 안무잖아.”

 “안무 엄청 어려웠죠. 제이 형은 순식간에 외웠지만, 전 외우는데 사흘은 걸렸어요.”

 “넌 일찍 익힌 편이지. 나랑 한새는 일주일 넘게 걸렸어. 어, 팬분들 막 웃는데 안무 엄청 어려웠던 거 아시죠?”

 “그때 기억난다. 내가 문이 알려주고, 제이가 한새 알려줬잖아. 일대일 전담 마크로.”

 “나도 형한테 배우고 싶었어. 제느 새끼 무서워서.. 우리 데뷔전 리얼리티에서 제가 제이한테 혼나는 짤 모음 누가 만드셨던데. 그거 만든 분 여기 와계시면 얼굴 좀 봅시다.”

 팬들이 꺄르르 함성을 동반한 웃음을 터뜨렸다. 조명이 켜진 상태라서 팬분들의 표정이 하나하나 다 자세히 보였다. 너무 행복한 웃음을 얼굴 전체에 띠우고 있었다.

 “나도 너 가르쳤으면 제이처럼 혼냈겠지. 우리 문이라서 다행이지.”

 “꺄아아!!”

 유진이 형이 한 마디 할 때마다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너무나 즐거워 보이는 모습에 나는 혹시라도 내 목소리가 들어갈 까봐 마이크 볼륨을 줄였다.

 자리를 비켜주는 게 나을까.

 그들만의 추억에 나 같은 걸림돌은 방해일 것이고.

 나도 떠오른다. 회사에서 엔돌핀을 처음 기획할 때는 내가 멤버였다. 그러나 유진이 형이 자신이 하고 싶다고 해서 내가 빠지게 되었다. 함께 연습하며 웃고 떠들던 나날들을 나는 바로 옆에서 지켜봤다. 그때의 추억은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저 구경꾼에 불과한 나도 그랬으니까.

 지금 콘서트에서 그때를 회상하는 일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유진이 형이 진짜 엔돌핀의 멤버이고.. 이 자리에 이라 같은 건 빠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도 안다.

 지켜보고 있을 부모님과 민이는 속상해할지도 모르겠다. 나중에 그냥.. 다 대본이라고 말해야겠다.

 나는 팬들이 원래의 엔돌핀을 편히 눈에 담게 하기 위해서 뒤로 두어 걸음 물러났다. 아예 조명을 벗어나는 것도 좋을 것 같아서 옆으로 비껴서기도 했지만 조명이 계속 따라와서 가만히 있었다.

 ‘너 어디 가.’

 제이가 날 발견하고 입 모양으로 물었다. 난 그냥 웃어보였는데, 그러자 제이는 눈썹을 무섭게 일그러뜨리더니 성큼성큼 걸어와 내 손목을 잡았다.

 제이는 자기 마이크를 손으로 막고 물었다.

 “너 마이크 껐어?”

 “어.. 어떻게 알았냐?”

 “왜? 네가 왜 꺼?”

 “방해만 되니까..”

 “하.”

 제이가 거친 숨을 내쉬었다. 난 안절부절 못했다.

 “너 얼른 가운데로 가. 너 때문에 나 시선 받잖아.”

 “씹, 개소리하지 마. 네가 주인공인데 왜 피해.”

 “아니야. 주인공은..”

 함성이 줄어들고 있어서 마음이 불안했다. 팬들이 우리를 보고 무슨 일인지 궁금해 하고 있었다. 유진이 형과 멤버들도 이쪽을 보고 있었다. 어리둥절한 한새의 표정에 난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웃어보였다.

 “왜 그래? 멀찍이 떨어져서.. 무슨 일 있어?”

 “이라가 마이크 볼륨을 꺼버렸네.”

 “어? 이라야. 너 마이크 껐어? 왜 꺼??”

 맙소사.. 눈치 안 보는 제이랑 눈치 없는 한새의 합작품이었다. 문이 형과 야단이의 표정이 눈에 띄게 굳었다. 유진이 형은 정말로 의아해하는 듯한 얼굴을 만들어냈다. 팬들 사이에서 웅성거림이 심해졌다.

 원년 멤버가 돌아온 타이밍에 마이크를 꺼버린 새 멤버.

 이 사실이 어떤 식으로 비쳐질지는 뻔했다.

 난 표정 관리도 못할 만큼 절망스러웠다. 마지막일 수도 있는 엔돌핀의 콘서트를 내가 다 망쳤어..

 “이라야 노래해!”

 순간 조용해진 관객석에서 누군가 외쳤다.

 “이라 노래해!”

 “이라야!”

 “이라!”

 그리고 그 외침이 퍼져나갔다. 나는 팬들을 보았다.

 팬들이 아래에서 뭔가를 꺼내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어수선해지더니 어느새 다들 손에 똑같은 피켓을 들고 있었다.

 [이라야 너를 좋아해 사랑해]

 노란색 배경에 동글동글 귀여운 폰트로 써진 피켓이었다.

 그걸 정말 한 명도 빠짐없이 모두가 손에 들고서 내 이름을 외치고 있었다.

 믿을 수 없는 일에 눈만 깜박이자 제이가 손목을 놔주며 속삭이듯이 말했다.

 “팬들이 너 몰래 준비했어. 원래 지금 들기로 한 게 아니었는데, 다들 이 타이밍이라고 생각했나 보지.”

 다른 아이돌 그룹이 공연할 때 팬들이 이런 이벤트를 해주는 영상을 본 적이 있다.

 나는 꿈꿔보지도 않았다.

 눈을 한번 감았다 떴다. 눈물이 주르륵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팬들은 나의 눈물을 보고 더욱더 난리가 나서 뭐라 뭐라 크게 외쳤지만 뒤섞여 들리지 않았다. 그래도 알 수 있었다. 나를 생각해주는 마음이 느껴졌다. 애정이 고스란히 전해지고 있어서.. 나는 울면서 웃었다. 해괴한 표정이었을 텐데도 환호성은 짙어졌다. 지금 이 순간 팬들의 앞에 유진이 형은 없었다. 그리고 내 앞에도 유진이 형의 팬은 없었다.

 나를 원하고 있는 것이다. 내 노래를.

 나는 무대 중앙을 보았다. 싸늘하게 굳은 표정의 고유진이 서 있었다.

 내 자리야.

 나는 중앙을 향해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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