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9화 (40/50)

00040 6 =========================

(연참입니다)

 오늘 엄마가 민이의 학원 교습을 뒤로 미룰 수 없어서 이지비디로 돌아갔다. 난 공항 내에는 안 들어가고 주차장까지만 배웅 나갔다. 권수한이 차로 왔다갔다 해줬는데 그동안 우리는 서로 사적인 얘기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이라야, 언제까지 권 선생 댁에 있을 작정이냐? 그, 치유가 아직 안 끝났나.”

 아빠는 계약 해지 일을 마무리하기 위해 혼자 남았는데, 호텔 앞에서 헤어지기 전에 은근히 같이 지내고 싶다고 어필하셨다.

 “아, 맞다. 이제 아빠 있는 데로 갈게. 나라도 아빠 조식 챙겨줘야지.”

 넓은 호텔에 외로움 많이 타는 분을 혼자 둘 수도 없고.. 권수한 마주하기도 껄끄러워서 이 참에 아파트를 나오려고 했다.

 “안 돼. 넌 좀 더 치유 받아야 해. 아버님, 이라가 자주 치유를 받기 위해서는 어댑터와 가까운 곳에 있어야 합니다. 또한 호텔은 보는 눈이 많아 자유롭게 왕래하기도 불편할 겁니다.”

 권수한이 얼음장 같은 목소리로 반대하지 않았다면 말이다.

 대체 이 사람은 나랑 뭘 하자는 건지 모르겠다.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싸늘함을 담아 노려봤지만 권수한은 가자, 하며 나를 차에 태웠다.

 돌아가는 길에 나는 창 밖 풍경을 바라보며 많은 생각을 했다. 아니, 사실은 한 가지 생각밖에 안 했다.

 권수한에게서 느껴진 호감은 동정이었을 뿐이다..

 다시금 떠올리자 심장이 전기에 감전된 것처럼 찌릿했다. 내가 무의식중에 신음을 흘리자 권수한이 바로 반응했다.

 “왜 그래. 어디 아파? 답답해?”

 “..괜찮아요.”

 “얼굴색이 안 좋군. 바람이라도 쐬고 가지.”

 권수한은 갓길에 멈춰 섰다. 사람들이 지나다니고 있어서 창문은 조금만 열었다. 문득 예전 생각이 났다. 권수한의 차에 토해버렸던 날, 이비틱 강의 넘실거리는 물결을 바라보며 했던 생각들..

 그때와는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난 권수한을 바라봤다. 걱정으로 물든 얼굴, 저런 눈을 하니 나로서는 착각할 수밖에..

 “형, 역시 전 아빠랑 호텔에서 지낼게요. 날 찬 사람이랑 같이 사는 건 힘들어요.”

 “..너는 날 좋아하는 게 아니야. 오러 유저는 치유 받을 때 어댑터에게 자연스럽게 호감을 느껴. 네 진정한 마음이 누구에게 있는지 다시 한 번 잘 생각해.”

 코웃음이 나오는 말이었다. 내가 내 마음 하나 제대로 모를까봐.

 내가 대답을 하지 않자 권수한도 입을 다물었다. 난 다시 창가로 고개를 돌렸다.

 지잉.

 그때 핸드폰이 울렸다. 권수한의 것이었다.

 “...잠깐 기다리고 있어.”

 권수한은 품에서 폰을 꺼내 발신자를 확인하더니 밖으로 나가버렸다.

 빈 차 안의 적막이 오히려 편했다.

 하아.. 복잡한 한숨을 내뱉는데 내 폰에서도 진동이 느껴졌다.

 발신인은 진호 형이었다. 통화를 누르는 찰나 차 문이 벌컥 열렸다.

 “이라야.”

 그답지 않게 흥분한 얼굴의 권수한은 꽤 빠른 어조로 내게 전해주었다.

 청산가리 범인이 붙잡혔다는 소식이었다.

 스물다섯 살이었다. 나보다 세 살 많은 누나팬이었다.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고급 학생 남동생이 있는 단란한 4인 가족의 맏딸이었다.

 나는 그들을 만나러 가지 않았고, 아빠만 서둘러 향했다.

 범인의 부모님은 우리 아빠의 다리를 부여잡고 울면서 빌었다고 한다.

 스물다섯이면 미래를 잃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 아니냐고, 결국 이라가 먹은 것이 아니니 실질적으로는 아무 피해도 없는 거라고, 한번만 봐달라고 무릎 꿇고 부탁했다고 했다.

 물론 아빠가 용서해줄 리가 없다.

 하필 엄마가 출국한 날에 터져서 엄마가 다시 오겠다는 걸 말리느라고 힘들었다. 범인의 얼굴 한번 봐야 성이 차겠다고 말씀하시길래 적극적으로 말렸다. 난 그 자의 얼굴을 본 걸 너무나 후회하고 있기 때문에.

 내가 알게 된 시각과 비슷한 시간부터 기사가 올라왔다. 인터넷의 신상털이는 순식간에 이뤄졌고, 난 범인이 어느 학교를 나와 어느 동네에 살고 있는 어떤 성격의 사람인지도 알게 됐다. 바라지 않던 바였다. 가해자의 사정 따위 생각해주고 싶지 않았다.

 정신없이 시간이 흘렀다.

 기자들이 망원경 카메라로 찍고 있어서 며칠간 현관문 밖으로 발도 못 내밀었다.

 그동안 가해자 가족은 내게 꾸준히 만남을 요청했고, 나는 꾸준히 거절했다.

 범인은 내게 손으로 종이 한 가득 편지를 써서 보냈다. 나는 읽으려고 몇 번 시도했으나 자꾸 글자가 지렁이처럼 꿈틀거려서 읽을 수가 없었다.

 “읽고 싶지 않으면 읽지 마. 억지로 읽을 필요 없어.”

 “아뇨.. 아니에요. 읽고 싶은데, 글자가 안 읽혀요. 뭐지.. 나 난독인가.”

 “읽고 싶어?”

 “네. 뭐라고 썼는지 알고 싶죠, 당연히.”

 “읽어줄게.”

 권수한은 담담한 어조로 편지의 내용을 읽었다.

 진심으로 반성하고 있으며 다시는 그런 짓 하지 않겠다는 내용이었다.

 그게 전부였다.

 그때 내 허무함과 허탈함은 도저히 말로 설명할 수 없다.

 난 권수한을 통해 내 뜻을 전달했다.

 [난 당신 때문에 반려동물을 잃었고, 앞으로 평생 섭식장애에 시달려야 해요. 이 트라우마는 평생 나아지지 않겠죠.]

 그렇게 두 문장이었다.

 그 뒤로 범인의 가족이 내게 만남을 요청하는 일은 없었다.

 난 나가지 못하는 며칠간 여론을 살폈다. 의외로 살인미수죄로 강력히 처벌하라는 여론이 우세했는데, 권수한은 이게 당연하다는 반응이었다.

 오히려 이런 반응을 보고나니 내 증오감은 다소 가라앉았다. 내 개인적인 용서와는 별개로 법원에서 마주치기도 싫었고, 계속 이런 일로 대중 사이에 회자되고 싶지도 않아서 합의해줄까도 생각했다. 솔직히 얼마나 내가 싫었으면 그런 일을 벌였을까도 싶고..

 어차피 나는 범인이 밉다기보다는 무서웠던 거다. 정체를 모르니까. 범인은 누구라도 될 수 있었고, 언제든 나를 해할 수 있었다. 어느 날 식당에 갔는데 조리사로 있을까봐, 어느 날 빵집에 갔는데 제빵사로 있을까봐 그것이 두려웠을 뿐이다.

 내 생각을 권수한에게 전하자 그는 잠시 나를 복잡한 눈으로 보더니 곧 냉정하게 답해줬다.

 “넌 합의를 해 주고 싶어도 못해줘. 범인은 아주 무거운 처벌을 받게 될 테니까.”

 “왜요?? 피해자가 원하지 않아도요?”

 “네가 상급의 소울 오러 유저이기 때문이지.”

 그제야 나는 이해할 수 있었다.

 지금 그 사람은 아이돌을 살해하려 한 안티팬이 아니라 오러 유저를 살해하려 한 노유저로서 긴급체포된 것이다.

 긴 싸움을 예상하며 마음을 졸였으나 오러 유저 보호법으로 인해 아주 간단하게 해결하게 됐다. 내가 얼떨떨해 있는 사이 일은 척척 진행되어 이제 내일 내가 오러 등급 재측정만 마치면 끝난다.

 너무 순탄해서 얼떨떨했다. 내일을 위해 일찍 잠들기 위해 침대에 누웠지만 전혀 잠이 오지 않았다.

 순수하게 기뻐하지 못하는 날 대신해 아빠랑 엄마가 얼마나 기뻐하셨는지.. 여기저기서 축하 메시지가 쏟아졌는데, 아마 멤버들이 부모님 다음으로 기뻐했던 것 같다.

 그 다음은 단연코 팬 분들이다.

 팬카페는 청산가리 범인이 잡힌 후 아주 뒤집어졌다. 특히 유진이 형이 함께 거론되며 싸움판이 되었다.

 나는 범인이 유진이 형의 팬인지 궁금했는데, 기사를 보고 알았다. 고유진 개인 팬페이지도 운영하고 있는 골수팬이었다. 그 사실이 알려지고 유진이 형은 빠르게 성명을 냈다. 정치인으로서의 첫 의무라 생각하고 이번 사건을 계기로 한 아이돌 보호 법규가 제정되는 데에 힘쓰겠다고.

 사실 나는 S가 아니라서 오러 유저 보호법 대상에 들기 어렵다. 역대 보호법 대상이었던 오러 유저 중 A는 날 제외하면 미성년자였던 한 명밖에 없다.

 진호 형의 말로는 내가 오러 유저 보호법을 받게 된 데에 정계 인사들의 입김이 있었다고 하니, 아마 유진이 형이 날 도와준 게 아닐까 싶다.

 그리고 제이도...

 제이는 내게 한통의 메시지를 보냈다.

 [그동안 널 돕지 못해서 미안했어. 이제는 네 마음이 편해졌으면 좋겠다.]

 제이는 자신의 마음을 거절한 내게 이런 메시지를 보내며 어떤 심정이었을까?

 미안하지만 내 마음은 전혀 편해지지 않았다. 그건 다른 이유 때문이다.

 폭풍처럼 휘몰아쳐간 며칠간 생각보다 큰 충격을 받지 않고, 제정신을 붙잡을 수 있었던 이유는, 머릿속이 다른 문제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다.

 우습게도 8개월이나 날 힘들게 했던 청산가리 범인보다...

 끄으응.

 나는 침대 위를 데굴데굴 굴러서 벽에 붙었다. 벽에서 뿜어져 나오는 차가운 온기에도 두통이 가시지 않았다. 진호 형이 사다준 약도 다 떨어졌는데.

 정말 우스운 일이지만, 청산가리 팬 때문에 8개월간 잠도 못 자고, 밥도 제대로 못 먹고, 피해망상에 시달리는 그 갖은 고생을 겪어놓고서 지금 내 머릿속을 지배하는 건 전혀 다른 문제다.

 ‘날 좋아하지 않는다. 권수한은 날 동정할 뿐 결코 좋아하는 게 아니다.’

 이 사실에 비하면 청산가리 범인 따위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청산가리 범인은 이제 잡혔고, 해결된 문제라서 그런 걸까? 아니면 내가 권수한을 생각보다 너무 많이....

 정말 많이....

 머리가 아프다. 눈앞이 노래질 정도로 어지러워서 손톱 끝으로 관자놀이를 꾹 눌렀다.

 권수한의 손길이 이마를 쓸어줬으면 좋겠는데, 이 넓은 침대 위에는 나 혼자 뿐이다. 날 좋아하지 않는다면 잘 때는 왜 내외하는 거야? 권수한의 행동은 인지부조화, 딱 그거다.

 「너는 날 좋아하는 게 아니야. 오러 유저는 치유 받을 때 어댑터에게 호감을 느끼지. 네 진정한 마음이 누구에게 있는지 다시 한 번 잘 생각해.」

 권수한은 그때 자신의 표정이 어땠는지 알까.

 난 그 사람이 그렇게 애달픈 눈을 할 수 있는지도 처음 알았다.

 그래서 나는 마치 희망고문 당하는 사람처럼, 아직도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자꾸 오만한 생각이 든다. 정말로 나를 좋아하는 게 아닌가 하는...

 오러 유저 보호 법규의 최종 관문은 오러 등급 재측정이다. 나는 오러 핸디(등급 측정 도구 중 하나)를 착용하면서 잡념에 휩싸여 있었다.

 이 측정에서 A이상을 받으면 그대로 법규가 적용된다고 한다.

 그럼 정말 끝이었다.

 일이 진행되는 동안 아무런 걸림돌도 없었다.. 대중은 내편이었고, 가해자의 가족도 항소하지 않고, 회사의 방해도 없이 아주 순탄하게 범인을 감옥에 집어넣을 수 있었다. 시간이 오래 걸리거나 절차가 까다롭지도 않았다.

 이렇게 쉬운 일이면 난 혼자서 왜 그 고생을 해야 했던 걸까.

 오히려 묵직한 돌이 가슴을 누르고 있는 것 같았다.

 권수한은 내 우울한 표정의 이유를 나름대로 해석하고서 위로를 해줬다.

 “범인은 대면할 일 없어. 넌 소울 오러 유저인 피해자로서 보호를 받을 거야.”

 “알아요. 감사하긴 한데, S도 아닌 저 같은 게 이런 법의 덕을 보는 게 뭔가 죄송해서.”

 “스스로를 비하하지 마. 왜 또 갑자기..”

 권수한은 놀란 얼굴을 했다. 왜 경악하는지 의아해서 고개를 갸웃하자 그의 표정은 괴롭게 일그러졌다.

 “너는 보호받아야 하는 소중한 사람이야. 다시는 ‘나 같은’ 이라는 말 쓰지 마.”

 권수한은 늘 내게 듣기 좋은 달콤한 말만 해준다. 내가 이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었던 건 유진이 형과 제이 덕분이다. 두 사람이 없었다면 이렇게 쉽게 끝나진 않았을 것이다.

 어쨌든 쉽게 해결할 수 있으니 기뻐해야 맞는데, 자꾸 응어리가 생긴다.

 대체 나는 날 위해서 뭘 해왔던 걸까.

 범인을 잡으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고, 대체 뭘..

 “모르겠어요. 제가 너무 바보 같아요. 아니, 솔직히 호구 맞잖아요. 왜 혼자 참고 있었는지 이해가 안 돼요.”

 그 긴 시간 동안 왜 혼자서 병신처럼. 뭘 위해서 견디고 있었는지 이해가 안 된다.

 내가 왜 그랬지..? 어린애도 그렇게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라야.”

 권수한은 내 옆에 앉았다. 그는 내 어깨를 감싸 안아 주었고, 그제야 내 몸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는 걸 알았다.

 “너는 어댑터에게 지배당하고 있었어. 네 탓이 아니야.”

 “신동우 말하는 거예요? 그 인간이 어댑터라는 건 알아요. 가끔 저를 오러로 조종하려고 했다는 것도 아는데, 저는 다 의식하고 있었는 걸요. 그 사람이 어댑터라는 사실도, 아 지금 내 안에 오러를 흘러 넣고 있구나, 라는 것도 다 알고 있었고. 이건 그냥 제가 호구처럼 가만히 앉아 당해준 거죠.”

 “어댑터의 무서움을 전혀 모르는군.”

 권수한은 거의 한숨처럼 한탄하듯이 말했다.

 “어댑터는 오러 유저의 의식 자체를 지배할 수 있어. ‘이건 나의 판단이다’라는 생각을 갖게끔 만들 수 있다는 뜻이다.”

 “생각... 자체를요?”

 “그래. 네 생각이라고 여겼던 것들은 다 신동우가 집어넣은 생각이야. 그러니까 괜한 자책하지 마.”

 “믿을 수가 없네요. 완전 눈 뜨고 코 베이는 수준이네.. 신동우는 제가 알기로 F밖에 안 되는데요.”

 “등급이 낮아도 그렇게 무서운 능력이지..”

 권수한은 내 등을 어루만졌다. 나는 그에게 온전히 몸을 기댔다.

 그런가.. 내 억울함은 범인도 아니고, 나 자신도 아니고, 신동우에게서 보상받아야 하는 걸까. 그 자에게 지배당해서 혼자 앓았던 시간을 어떤 수로 보상받을 수 있을까. 어댑터 보호 프로그램 하에 있는 신동우를 증거 없이 고발했다가는 오히려 내가 감옥에 가게 될 것이다.

 삐이-

 생각에 잠겨 있는 동안 측정이 끝났는지 핸디의 알람이 울렸다. 측정기에서 손을 빼자 걷어 올렸던 소매를 권수한이 차분히 내려주었다. 손목 부분에 남은 핸디 입구의 붉은 자국을 보고는 속상한 듯이 손가락으로 조심스럽게 문질렀다. 나는 그런 사소한 손길에서도 기대를 갖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