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3화 (3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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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에 권진호가 내 사이즈의 옷가지들을 바리바리 싸들고 다시 왔다. 내가 권수한의 침실 옷장에 옷들을 걸어놓고 있을 때 권진호와 권수한은 둘이서 거실 구석에서 뭔가를 속닥거렸다. 잠시 후 권진호가 내일 다시 오겠다고 인사하고 진짜 나갔고, 권수한이 나를 불렀다.

 난 연노랑 후드집업 하나에 팔을 꿰다가 그의 부름을 듣고 거실로 나갔다.

 “이라야. 작년 그 일, 검찰 쪽에서 수사를...”

 “검찰이요?”

 “...옷, 마저 입지.”

 TV를 켜고 리모컨으로 뭔가를 조절하던 권수한은 날 발견하고는 웃는 건지 찡그린 건지 애매한 얼굴이 되었다. 곧 평소의 침착함을 되찾았지만, 어쨌든 난 후드집업을 마저 입었다. 엉덩이 윗부분을 살짝 덮는 길이에 폼이 낙낙하고 모자도 달려 있다. 모자를 써봤는데 길이 조절도 가능하고 여러모로 마음에 들었다. 주머니에 병아리 그림이 있는 게 흠이긴 한데..

 찰칵.

 병아리 팬분이 생각나서 조금 우울해지려는 찰나 사진 찍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들어보니 권수한이 폰카를 찍고 있었다.

 찰칵, 찰칵.

 침착한 얼굴로 연사했다. 난 어이가 없어서 물었다.

 “뭐해요?”

 “동생 보내주려고. 그 놈이 사왔으니까 인증샷 같은.. 그런 거.”

 “아, 고맙다고 전해주세요.”

 난 서비스로 히~ 웃으면서 포즈를 취했다. 찰칵 소리를 기다리느라 입가가 경련할 때쯤 동영상이란 걸 눈치 챘다. 에이, 씨..

 한 5분 후에 권수한은 날 옆에 앉히고 본론에 들어갔다. 검찰이 청산가리 사건을 수사하기로 했다는 소식이었다.

 난 나도 모르게 피식 웃어버렸다.

 “작년 일인데 어떻게 잡아요. 쿠키가 남아 있는 것도 아닌데.”

 “잡을 수 있을 것 같다. 네 팬들이 협조를 해준 덕분에.”

 난 벼락이라도 맞은 듯 놀라서 눈을 깜박였다. 나를 보며 권수한은 은은한 미소를 띠었다.

 “해명문 이후로 백여 개의 동영상이 올라왔더군. 그날 팬사인회의 모습을 다양한 각도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찍은 영상들이야. 진호가 복사본을 가지고 와서 지금 보려고 하는데.”

 “팬들이 찍은 직캠 영상 말하는 거예요?”

 “그래.”

 “..저, 전 들어가 있을게요. 피곤해서.. 일찍 잘래요.”

 “...그렇게 해. 네가 원하는 대로.”

 권수한이 TV와 연결해서 캠 영상들을 재생했다. 나는 침실로 도망쳤다. 갑자기 몸이 더워져서 후드집업을 벗고, 침대에 누워 이불을 발로 한 이십 번 정도 차다가 일어났다. 그리고 침대 협탁에서 옷장까지 이십 번 정도 왕복하다가 슬그머니 문을 열었다.

 TV 화면 가운데에 내가 있었다.

 -야, 야. 비켜봐. 애기 안 나오잖아.

 소란스러운 소리 속에서 이 캠을 찍고 있는 사람으로 추정되는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비켰어. 이제 나와?

 -응! 어떡해, 너무 귀여워.

 친구랑 함께 있는 건지 다른 목소리도 있었다. 영상은 내게 초점이 맞춰 있었다. 합류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은 초기.. 당시의 나는 지금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다. 다크서클은 없었고, 볼살도 제법 있었다. 옆자리의 제이와 서로의 매직을 빼앗거나 매직을 얼굴에 칠해버리려는 등 연신 장난을 치면서 웃고 있었다.

 저 때도 엄청나게 욕먹고 있었지만 죽이려고 할 정도로 싫어하는 줄은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아, 존나 제이라 떡밥 터진다.

 -야, 어떡해. 이라 물 마셔.

 -흐어엉어어어엉

 -애기 물 마셩 흐어어엉

 -오구오구 목말라쪄.

 목이 말랐는지 영상 속 나는 생수 뚜껑을 열고 꿀꺽꿀꺽 물을 들이켰는데, 동시에 여기저기서 막 흐엉엉 하는 희한한 소리들이 들렸다. 캠 찍는 사람도 그 친구들도 무슨 어린 애기가 용케 물 마실 때 우쮸쮸 해주듯이 앓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이구 애기 손가락에 매직 묻어써요 으으으응 제느한테 따까달라구해여 애기야

 -씨발 눈 깜박여 존나 귀여워! 미쳤나봐

 -흐엥 이라 눈 깜박이는 것 좀 봐. 아 졸귀탱

 영상 속 나는 얼탱이 빠진 얼굴로 다음 차례 팬을 기다리고 있을 뿐인데..

 너무 민망해서 나는, 잠깐 달아오른 볼을 주무르다가 본격적으로 구경하기 위해 권수한 옆에 슬그머니 자리 잡았다. 권수한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 것 같다.

 쿠키를 건넨 사람을 찾는 건 그에게 맡기고 나는 팬분들에게 집중했다. 대부분 귀엽다고 난리였다. 소매를 만지작거리는 거 보고 귀엽다, 머리를 흔드는 것도 귀엽다, 매직을 쥔 손가락이 귀엽다, 테이블 위에 올려진 팔꿈치가 귀엽다.. 이러다 아주 숨 쉬는 것도 귀엽다 할 판이었다.

 -애기 들숨날숨 귀여워 어뜨케 흐어어어어엉

 풋.. 난 웃음을 터뜨렸다. 동시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내게 팬이 있었구나.

 맞아, 있었어..

 저때는 아직 팬사이트도 들어갈 때였고, 편지도 다 읽어볼 때여서 알고 있었다. 날 싫어하는 많은 사람들 속에서도 응원을 전해주는 고마운 분들이 계시다는 걸. 저 때는 알고 있었는데..

 언젠가부터 나는 내게 팬은 없다고만 생각하게 된 걸까.

 코끝이 매워져서 나는 눈물을 참기 위해 침을 삼켰다. 목 안쪽부터 귓구명까지 따끔거렸다.

 그때 갑자기 화면이 비정상적인 움직임을 보였다

 권수한이 갑자기 되감기를 눌렀다.

 “왜요??? 범인 있었어요??”

 난 깜짝 놀라 화면을 노려봤다. 머리 위로 하트 모양을 만들고서 헤실헤실 웃는 내가 있었다. 제이에게서 사인 받고 있는 저 사람이 설마..

 “아니, 잘못 봤군.”

 권수한은 화면 속의 나를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그리고 다시 얼마쯤 재생하다가 또 되감기를 했다. 그때 8개월 전의 나는 마이크를 잡고 강아지 성대모사를 하고 있었다.

 권수한은 내가 내 앞의 팬을 올려다보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갸웃할 때 세 번째로 되감기했다. 그는 잘못 봤다는 변명조차 하지 않고 냉철하고 진중한 표정으로 내 모습을 감상했다.

 편집 없이 팬사인회 처음부터 끝까지 담은 영상들이라서 하나가 한 시간 이상이었다. 난 하나를 다 보고 두 개째를 시작할 때 깜빡깜빡 졸았는데 문득 일어나보니 침대 위였다. 허.. 수면제가 숙소에 있어서 오늘 잠잘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이불도 가슴까지 잘 덮고 쿨쿨 자고 있었다.

 난 아직 졸린 눈을 비비며 침대를 내려갔다. 침실 문은 아주 살짝 열려 있었고, 거실에서부터 빛이 새어 들어왔다. 권수한은 아직 TV를 보고 있었는데, 가까이 다가가니 목소리가 들렸다.

 “그래... 43분에서.... 사이에.....”

 누군가와 통화 중인 것 같았다. 문을 더 열면 끼익 소리가 날 것 같아서 가만히 있었다.

 “...모자 쓴..... 이라 앞에...”

 내 이름이 중간에 끼어 있다. 무슨 얘기를 하는 거지? 궁금하긴 한데 너무 졸렸다. 나 나름 불면증 있는 예민한 아이돌인데 권수한 침실에 수면제 같은 거 뿌려놓았나.. 내가 알아야 하는 일이면 어련히 얘기해주겠지 싶어서 그냥 다시 자기로 했다.

 이튿날 권수한이 공항에 우리 가족을 마중 나갔다. 그동안 나는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정확히는 팬카페의 ‘to 이라’ 게시판을 들락날락 했다. 들어갈까? 읽어볼까? 내가 상처받지 않을 수 있을까? 이젠 팬을 그만두겠다는, 그런 글밖에 없는 건 아닐까? 얼른 이라를 퇴출시키고 고유진을 불러오라는 글이 있으면 어떡하지?

 침실은 너무 넓었고, 방음이 잘 되는 집은 너무 조용했고, 내 머릿속은 고민과 혼란으로 가득 차서 고여 있는 눈물을 내보내려고 난리였다. 사실 울고 싶은 마음은 없는데, 진짜 울고 싶지 않는데 자꾸 눈물이 나오려고 해서 짜증났다.

 그 와중에 사장님은 계속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다.

 [니가 애들꼬셨니? 계약해지가장난인줄알아?]

 [이런식으로나온다면 우리도 생각이있어]

 권수한 오면 이거 다 보내줘야지.

 딩동.

 혹시 몰라 메시지를 캡처하고 있는데 조용한 집 안에 벨 소리가 들렸다. 권수한이라면 그냥 열고 들어올 텐데 누구지? 일단 아파트 현관 번호는 알고 있다는 소리인데. 난 조심스럽게 인터폰을 들고 누구세요, 했다.

 “이라 군, 일어나 있어요?”

 권진호였다. 나는 달려가서 문을 열어줬다. 권진호는 양손 가득 뭔가를 바리바리 사들고 들어오며 나를 보고 활짝 웃었다.

 “형이 낮잠 자고 있을지도 모른댔는데 일어나 있었네요.”

 “밤에 넘 많이 자서 잠 안와요. 권수한 씨는 지금 공항에 갔는데.”

 “응, 알아요. 이라 군 부모님 모시고 집에 올 거라고 한 상 차려놓으라고 하더라구요.”

 “아, 진짜요?? 도와드릴게요.”

 음식 재료들을 주방에 가지고 가는 권진호의 뒤를 졸졸 따라갔다.

 “이라 군은 제발 쉬고 있어줘요. 자, 혹시 퍼즐 좋아하면 퍼즐 하고 있을래요? 450피스짜리 사왔는데.”

 “말 놓으세요, 진호 형. 이라라고 부르세여.”

 “.......”

 정확한 나이는 모르지만 분명 나보다 형은 확실하니까 그렇게 말하자 갑자기 바리바리 사들고 온 것들을 꺼내던 손길을 멈췄다.

 그리곤 날 빤히 보더니 갑자기 급하게 핸드폰을 꺼냈다.

 “다, 다시 한 번 말해줄래요?? 다시 한 번,”

 난 그 핸드폰의 화면에 떠오른 ‘녹음 중’ 표시를 한번 보고는 푸후후 웃었다.

 “진호 형, 말 놓으세요. 이라라고 불러요.”

 진호 형은 울 것 같은 얼굴로 활짝 웃었다. 나도 마주보고 웃었는데, 아마 형과 똑같은 표정이었을 것이다.

 엄마는 날 보고 놀란 눈으로 좀처럼 말을 잇지 못했다. 아빠랑 민이도 마찬가지였다. 의아해져서 고개를 갸웃하자 엄마가 나를 와락 껴안았다.

 엄마는 울고 있었는데, 날 껴안은 채 뒷목이나 어깨, 손목뼈 등을 만지작거려서 그 이유를 짐작했다. 화면에서는 실물보다 살집 있게 나오니까.. 엄마랑 아빠를 반 년 전에 마지막으로 봤는데, 그때는 이만큼 살이 빠진 상태가 아니었다.

 나는 엄마에게 안겨서 어색하게 손을 허공에 들었다. 엄마랑 아빠가 마음 아파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다. 이 분들을 걱정시켜드리고 싶지 않다. 씁쓸하게 생각하다가 권수한과 눈이 마주쳤다.

 권수한은 우리 가족을 천천히 살펴보고 있었다.

 진호 형이랑 같이 거실에 식사를 차려놨는데, 엄마 울음 그치길 기다리느라 다 식어버렸다. 진호 형은 부랴부랴 다시 데웠고 그동안 부모님은 내 앞에서 사장님 욕을 엄청나게 했다. 범인에 대한 욕도 간간히 했지만 사장님 욕이 월등하게 많았다.

 식사 하는 동안 내 앞으로 반찬 그릇이 몰렸다. 성장기 민이 앞에는 풀떼기밖에 없었다. 민이는 그사이 키가 많이 컸다. 나보다도 1, 2cm 더 큰 것 같은데 엄마아빠 닮아서 통통한 지라 몸집은 거의 2배였다.

 내가 민이에게 슬쩍 반찬 그릇을 밀자 민이는 날 보고 코웃음을 치고는,

 “형이나 많이 처먹어.”

 했다가 아빠한테 한대 맞았다.

 아빠는 다리몽둥이를 부러뜨리겠니 뭐니 하셔도 날 장난으로라도 때린 적은 한 번도 없으셨는데 말이다.

 식사를 마치고 진호 형은 이제 일해야 한다며 돌아갔다. 근무 중간에 왔던 걸까.

 권수한은 민이를 데리고 서재로 자리를 피해줬다.

 아빠는 내가 맞은편에 앉자마자 바로 말씀하셨다.

 “집에 네 방 만들어 놨다. 혼자 살고 싶으면 경치 좋은 곳으로 구해주마. 우리 갈 때 같이 가게 짐 싸.”

 아빠 안에서는 이미 확정된 일인 듯 했다.

 “이지비디 안 갈 건데..”

 “네가 또 억지 부릴 줄 알았지. 이제 뭐하고 살려고?”

 아빠의 물음은 날 놀라게 했다. 이제 뭐하고 살 거냐니.. 당연히 나는..

 나는 인터넷을 하지 않아서 사람들 반응을 모른다.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더 이상 아이돌을 할 수 없는.. 그런 반응인 걸까? 권수한은 여론이 내 편이라고 했는데.

 왜 아빠는 아이돌을 관두는 게 당연한 것처럼 얘기하는 걸까.

 “난 내 아들 목숨 위협하는 직업으로 둘 생각 없다. 이렇게 깡말라서는.. 네가 고민 걱정 티내는 성격은 아니라지만 그런 큰일을 우리에게 숨기다니 아주 괘씸해가지고. 더 이상은 절대 허락 못해. 때려치우고 집에 돌아와!”

 아빠는 나름대로 날 걱정하고 계시다는 걸 안다. 그 걱정의 표현이라는 것도. 본래부터 반대하셨던 아빠니까 이번에야말로 작심하고 오셨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아빠 말이 맞아. 아이돌이라는 게 얼마나 힘든 건데. 가장 쉽게 대중의 표적이 되는 직업이 바로 아이돌이야. 네 성격으로는 못해. 이쯤 겪어봤으면 알잖니.”

 엄마는 철부지 어린애를 달래듯이 말했다. 허벅지 위에 놓인 내 손이 부들부들 형편없이 떨렸다. 난 고개를 푹 숙였다.

 “범인은 잡힐 테지만, 나쁜 사람이 또 저지르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고. 이라야, 이제 우리랑 돌아가자. 응? 섭식장애에 트라우마라니.. 네 성격으로 아이돌은 무리야.”

 “독극물이 아니더라도, 욕먹는 거 다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연예인 하는 거야. 정신력이 보통 이상이어야 해.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야.”

 “바꿔서 우리가 모르는 사람한테 독 들어있는 음식 받았다고 생각해봐. 너라면 걱정 안 되겠니? 게다가 그 트라우마 때문에 살 빠지고 고생하는데, 너라면 안 말리겠어? 제발 우리 좀 생각해줘, 이라야. 엄마아빠는 네가 걱정돼 죽겠다. 너무 걱정돼.”

 “네 엄마 기사 보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엄마 마음 찢어지게 계속 고집 피울 셈이야? 당장 아이돌 그만두고 엄마아빠 따라서 집에 들어 와!”

 엄마의 목소리는 울음기에 젖어 들어갔고, 아빠는 끝내 호통을 쳤다. 난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부모님을 너무 이해한다. 하지만 나는..

 나는 아이돌이 하고 싶은데.

 “어머님, 아버님.”

 고개를 번쩍 들었다. 우리끼리 얘기하라고 거실을 양보하고 서재로 들어가 있던 권수한이 나왔다.

 서재문이 닫히기 전에 민이가 심란한 얼굴로 이쪽을 보고 있는 게 보였다. 부모님도, 엄마는 울먹울먹하고 아빠는 화가 나서 얼굴이 붉어지셨다. 나도 아마 형편없이 일그러져 있을 것이다.

 “끼어들고 싶지 않았지만, 어댑터로서 말씀드리겠습니다.”

 권수한만은 늘 그렇듯 냉정하고 침착했다. 그는 차분하게, 저벅저벅 걸어 와서 내 옆에 앉았다. 그리고 내 떨리는 손등 위에 손을 얹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이라의 트라우마와 팬 공포증은 치료가 필요한 수준이 맞습니다.”

 “그, 그렇죠? 그러니까 빨리 아이돌 관두고..!”

 “그런데도 8개월 동안, 사람들이 너무 무섭고, 음식도 먹을 수 없고, 이렇게 앙상하게 말라가면서도, 계속 버티고 견뎠습니다.”

 권수한과 내 눈이 마주쳤다.

 그의 차가운 얼굴에, 눈빛만은 너무 다정하고 따뜻해서..

 심장이 이상한 기분에 움찔하자 겹쳐진 손을 더 강한 힘으로 쥐어왔다.

 그는 찰나의 눈 마주침으로 내게 더 없는 안도감을 부여하고, 다시 냉철한 눈으로 부모님을 보았다.

 “그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

 “이라가 8개월 동안, 그 끔찍한 시간을 견딘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

 그야 당연히 하나다. 당연해서 대답하지 못하시는 것이다.

 ‘아이돌을 그만두고 싶지 않아서.’

 부모님의 표정이 마치 비극적인 이야기를 들은 것처럼 무너졌다. 난 그 모습을 더 보고 있을 수가 없었는데 그런 기분이 들자마자 권수한이 말했다.

 “잠시 나가서 저와 따로 이야기를 하시죠.”

 그의 목소리는 반론은 허용하지 않는다는 듯이 단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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