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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마지막 스케줄은 잡지 인터뷰였다. 간단한 화보 촬영 후 짧은 인터뷰가 진행되는 평범한 스케줄이었는데, 평범하지 않은 것이 하나 있었다. 오늘 컨셉트는 ‘강아지와 아이돌’이었다.
“아, 시발. 존나 귀엽네. 우리도 숙소에서 강아지 한 마리 키우자.”
“키우진 못하지만 진짜 귀엽긴 귀엽다. 얘는 종이 뭐랬지?”
“장모치와와요. 이라 형이..”
야단이가 말을 하다 말고 내 눈치를 봤다. 나는 괜찮다는 뜻으로 슬쩍 미소 지어 보였다.
끼잉.. 낑
이제 6개월 정도 됐을까 싶은 애기 장모치와와가 야단이의 커다란 손 안에서 애교를 부렸다. 진짜 귀여워.. 애기 이름은 체리라고 했다. 너무 귀여워서 사진도 찍고 동영상도 촬영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한새랑 문이 형은 SNS에도 올렸다. 제이는 체리한테 관심 없고 시크했다.
“이라, 넌 쟤 안 만지냐? 왜 멀리 떨어져 있어.”
“어.. 별로 노관심이라.”
“관심 겁나 충만해 보인다. 가서 좀 만지고 놀아줘.”
“아니, 됐어.”
체리는 귀여웠지만 그래서 나는 외면했다. 그래봤자 촬영할 때는 만지고 물고 빨고 핥고 다 해야 했다. 너무 애기라서 피곤해할 것 같은데.. 최대한 빨리 끝내야겠다.
제이랑 투샷을 찍는데, 제이가 갈아입은 옷이 강아지 털이 많이 묻으면 안 되는 옷이라서 내가 안았다. 이렇게 작은 강아지를 안아보는 게 너무 오랜만이라서 폼새가 약간 어색해졌다.
“무겁냐?”
“무거울 리가. 이런 조그만 애기인데.”
“너도 조그매서.”
“이 새끼가 진짜.”
확 째려보자 피식 웃었다. 그 미소가 또 너무 근사해서 툴툴거리며 체리만 고쳐 안았다. 체리의 조약돌 같은 까만 눈동자랑 눈이 마주쳤다. 막 낑낑거리길래 난 “웅웅, 왜에??” 하면서 눈을 깜박이며 물었다.
“..크크큭..”
머리 위에서 낮은 웃음소리가 들렸는데 제새끼임이 분명하니 무시했다.
옷을 다섯 벌은 갈아입은 것 같다. 묘하게 제이랑 투샷이 많았던 기분인데.. 아무튼 평소라면 힘들었을 촬영이 체리랑 함께하니까 즐거웠다.
촬영을 마치고 인터뷰 할 시간이 되었다. 한새는 체리를 무릎 위에 올려놓고 인터뷰했다. 난 자꾸 체리한테 시선이 가려는 걸 막느라 힘들었다. 끔벅끔벅 조는 모습이 진짜 사랑스러웠다.
근황과 앨범 소개 등등 평범한 인터뷰를 평범하게 진행하고, 뒤이어 ‘강아지와 아이돌’ 컨셉에 맞는 질문이 나왔다.
“엔돌핀 분들은 강아지 키워본 적 있어요?”
문이 형과 야단이가 있다고 대답했다. 나는 가만히 있었다. 문이 형과 야단이의 반려견에 대한 얘기가 끝났을 때, 에디터가 내게 물었다.
“어, 근데 저희가 조사를 좀 했는데, 이라 씨 인스타에 강아지 사진들은 뭐에요? 저희는 이라 씨 반려견인 줄 알았거든요.”
“...아, 그게.”
질문은 내게 들어왔는데 한새가 당황하며 대답하려 했다. 제이는 나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아이돌의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제 반려견 맞아요.. 말랑이라고. 귀엽죠?”
“역시 맞네요. 어쩜 이름도 귀여워라. 장모치와와죠? 몇 살이에요?”
“다섯 살이에요. 살아 있었으면 올해 여섯 살이네요.”
“아.. 죄송해요. 몰랐어요.”
에디터는 잠시 당황하더니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디가 아팠나요?”
“..먹을 걸 잘못 먹었어요.”
내 목소리는 의도와는 다르게 너무 건조하게 흘러 나왔다.
멤버들은 말랑이가 무지개 다리를 건넜다는 사실은 알지만, 그 이유는 모르고 있었다. 나는 멤버들도, 이 잡지 인터뷰를 보게 될 엔돌핀의 팬들도 이제는 그 이유를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목을 두어 번 가다듬고 말을 이어갔다.
“제가 한 눈 판 사이에 먹어서는 안 되는 걸 먹었어요. 너무 건강했는데, 어떻게 손 쓸 틈도 없었어요. 그치만 말랑이가 떠날 때는 너무 슬펐는데, 지금은 고통이 없는 곳에서 행복하게 지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저를 내려다보면서 지켜주고 있을 거라고.”
인터뷰는 훈훈하게 끝났다. 에디터는 재차 사과했고, 멤버들은 어깨를 토닥이며 위로해줬다.
숙소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나는 말랑이 생각을 했다.
예체능 학교를 다니느라 16세부터 자취했는데, 내가 너무 외로워 하니까 친구가 한번 키워보라며 분양해줬다. 처음에는 임시였는데, 딱 일주일 지나니까 도저히 못 돌려주겠어서 함께 살기로 했다.
안 된다는 걸 조르고 졸라서 숙소에도 데리고 들어왔다. 말랑이는 내 친구이며, 가족이었다. 데뷔를 결정짓고 너무 힘들었던 시기도 말랑이가 있어서 버틸 수 있었다. 끊임없는 루머와 악플에 혼자 무릎을 껴안고 울고 있으면 말랑이가 발가락을 핥으며 위로를 해주고는 했다.
너무 순식간이었다. 작별 인사할 틈도 주지 않았다. 간단히 샤워하고 나오는 사이 말랑이는 쿠키 조각들 사이에서 거품을 문 채 죽어 있었다. 말랑이는 날 살리고, 나 때문에 죽었다. 다시는 애완동물을 키우지 않을 것이며 절대로 나 자신도 엔돌핀의 팬들도 용서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었는데, 지금은 잘 모르겠다. 엔돌핀의 팬들은 날 죽이려고 했지 말랑이를 죽일 생각은 없었을 것이다.
숙소에 말랑이를 굳이 데리고 오겠다고 떼 쓴 것도 나이고, 말랑이가 닿을 수 있는 곳에 쿠키를 놔둔 것도 나이고, 청산가리 쿠키를 받아온 것도 나이고, 애초에 내 존재가 그런 쿠키를 제작하게끔 한 것이므로 지금은 다 나 때문인 것을 안다. 말랑이한테 너무 미안하다.
“이라야.”
숙소에 도착해 옷을 갈아입는데, ‘이라’라고만 부르던 제이가 문 밖에서 갑자기 다정하게 ‘이라야’ 해서 닭살이 피어올랐다. 난 문을 열고는 과장되게 부르르 떨었다.
“왜 그렇게 닭살 돋게 불러? 죄 지었냐?”
“..꼭 그렇게 반응해야겠냐.”
진지한 눈을 하고 있던 제이는 신통 다 깬다는 얼굴로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제이는 문을 닫고 들어와 내 침대 위에 걸터앉았다.
“아까 인터뷰 할 때 힘들었을 텐데 잘해줘서 고맙다.”
“아니.. 별로 안 힘들었어.”
“...내 앞에서 괜찮은 척 하지 말라고 했잖아.”
제이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바뀌었다. 눈빛이 가라앉더니 무시할 수 없는 위압감이 풍겨져 나왔다. 아마 다른 사람들이었다면 넵, 죄송합니닷 했겠지만 난 제이 앞에선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행동할 수 있다.
“그럼 뭐 어쩌라고. 네 품에 안겨서 울리?”
“차라리 그렇게 해.”
“미쳤냐?”
“예전엔 그랬잖아.”
말문이 턱 막혔다. 그렇게 오래 전도 아니라서 모르는 척 할 수도 없었다. 말랑이가 떠나고 나서 진짜로 나는 제이의 품에 안겨서 엉엉 울었으니까.
“..너 어디 나가?”
제이는 이제야 내 차림새를 발견한 듯 물었다. 권수한이랑 약속이 있어서 외출 복장을 하고 있었다.
“어, 동창이랑 약속. 너도 나가서 친구 좀 만나고 그래. 오늘처럼 스케줄 빨리 끝나는 날 약속 잡아야지 안 그럼 언제 놀려고?”
“저번에 그 동창인가보군.”
“..맞는데.”
어떻게 알았지?
제이가 내 팔을 끌어당겼다. 제이의 손이 팔뚝과 팔꿈치, 손목을 지나 손에 다다랐다. 제이의 손은 단단하고 뜨거웠다. 내가 좋아하는 온도였다. 난 손을 빼려 했지만 제이는 더욱 힘주어 잡아왔다. 눈이 마주쳤다. 사로잡힌 것처럼 꼼짝하지 못했다. 거리가 너무 가까웠다. 내가 고개를 돌리자 제이는 턱을 붙잡고 저를 보게 했다.
“왜, 뭐.”
“너 오늘 한 끼라도 제대로 먹었어?”
시발, 이 새끼는 이런 분위기에서 꼭 먹는 얘길 해야 하나.
“가서 저녁 먹을 거야. 야, 그 말 하려고 분위기 잡았냐?”
“이번 주말에 쉴 때, 같이 나가자.”
“어딜 나가.”
“...예전처럼.”
제이의 눈빛에 씁쓸함이 감돌았다.
“같이 쇼핑도 하고, 영화도 보고, 오락실도 가고, 맛집도 찾아다니고. 데뷔하고부터 바쁘다는 핑계로 같이 안 나간 지 오래됐어.”
“.......”
“예전에는 같이 자주 놀러 갔었는데.”
‘왜.. 언젠가부터.’
제이의 마지막 말은 거의 들리지 않을 만큼 작았다. 나는 하고 싶은 말이 머릿속에 흘러 넘쳐 입술을 달싹였지만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심장이 지끈거려 가슴을 누르고 싶은데 손이 잡혀 있으니 참았다. 대신에 내 마음과 반대되는 말을 했다.
“그래, 주말에 나가자. 멤버들이랑 같이 당일치기 여행도 좋겠네.”
내 목소리는 나 스스로가 듣기에도 형편없이 떨렸다. 제이는 맥 빠진 웃음을 지었다.
“오늘 몇 시에 올 거야.”
“모르겠어. 늦을지도 몰라.”
“밤 10시에 TV 볼 수 있어?”
“..TV? 갑자기 왜.. 아, 피플제이? 너 나오는 거?”
“어.”
“그거 오늘 해? 왜? 일주일 후에 하는 거 아니었어?”
“내가 사고를 좀 쳐서. 빨리 방송 내보내고 싶어서 똥줄이 탔을 거다.”
제이가 미소를 지었는데 진짜 미소가 아니라 무슨 흉계를 꾸미는 미소 같기도 하고 분위기 탓인지 여전히 씁쓸해 보이기도 했다.
“같이 보고 싶었는데 네가 약속이 있다니까.”
“...볼 수 있으면 볼게.”
씁쓸해하는 제이는 보고 싶지 않다. 카리스마 있고 위압감 넘치고 강한 모습만 보고 싶다. 때때로 불같은 성격이 튀어나오더라도, 이런 가라앉은 모습보다는 낫다.
우리 서로 이런 모습을 보려고.. 이런 상황을 만들려고 그때 우리가 그런 선택을 한 건 아니었잖아.
숙소 앞 사거리에서 권수한을 만났다. 저번에 탔던 차랑은 다른 종류였다. 조수석에 타자마자 급히 물었다.
“사과주스에는 뭐가 들어있었어요?”
“안전벨트.”
“무슨 독이었어요? 설사약 이런 거 아니고 그냥 꽥 하는 독극물이었어요?”
“...안전벨트 매.”
“아씨..”
난 투덜거리며 대충 매고 ‘됐죠?’하는 눈으로 쏘아봤다. 권수한은 한숨을 쉬며 꼬인 안전벨트를 풀고 다시 매줬다. 그리고 천천히 차를 출발시켰다.
“이제 말해줘요. 뭐가 들어있었어요?”
“뭐 먹고 싶은 거 있나?”
“아까부터 놀려요, 아저씨?”
“...아저씨?”
“내가 얼마나 궁금할지 알면서 얼마나 알고 싶은데. 얼마나 알고 싶어서 며칠 잠도 못 잤는데..”
“안다. 그래도 먹고 얘기해.”
툴툴댔지만 권수한은 단호했다. 차가 도로를 천천히 달렸다. 매니저 형보다 운전이 조심스럽다. 차종류가 처음 봤을 때랑 두 번째 봤을 때랑 오늘이랑 다 다르다. 토했던 차는 어떻게 했을까? 몇 번 마주친 적은 없지만 이 사람 성격에 나한테 물어내라고 하진 않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뭐가 먹고 싶나.”
“우동이여.”
“이왕이면 밥을 먹지.”
“뭐야. 왜 물어봤어요.”
“갈비찜이랑.”
“내가 뭐 갈비찜에 환장한 줄 아나.”
“미역국도 잘 먹던데.”
“알았어요. 그냥 결정한대로 가요.”
권수한은 짧게 웃었다. 난 창 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노을로 물들어가는 하늘은 쓸쓸해보였다. 지나가는 차들도 사람들도 건물들도 다 외로워보였다. 폰 화면을 켰다. 단톡방이 쉴 새 없이 반짝이고 있다. 엔돌핀 단톡방, 데뷔 동기들 단톡방, 동창들 단톡방, 연습생 동기들 단톡방.. 하나하나 하릴 없이 읽고 [ㅋㅋㅋ] 같은 의미 없는 문자나 보내고 있을 때쯤 목적지에 도착했다.
주차장에서 내렸을 때는 어디 식당 주차장인가 했는데 전혀 아니었다.
“마트????? 왜 마트에요?? 왜??”
푸드 코트라도 가는 건 아니겠지? 어안이 벙벙해서 권수한을 쳐다보자 권수한은 능숙하게 카트를 미는 것이다.
“내 집에서 직접 만들어 먹을 거야.”
“권수한 씨네 집이요?? 요리도 해요? 요리 잘해요??”
“너랑 나, 둘이서 함께 만들 거다.”
“허...”
내가 자취 경력이 꽤 되긴 하지만 요리는 못 한다. 다 사 먹거나 본가에서 엄마가 해 준 거 먹거나 다른 사람이 사 준 거 먹거나 했지..
벙 쪄서 눈만 깜박거리는 사이 권수한은 지갑과 장바구니를 챙기고 마트 카트를 끌었다. 앞서 가다가 내가 따라가지 않자 뒤돌아보고는 턱만 까딱했다. 난 어리벙벙한 상태로 뒤를 졸졸 따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