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화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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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컴백하고 처음으로 라이브 무대가 잡혔다. 하늘에서 펼치는 스카이싱잉 스테이지였다. 엔돌핀이 실력파 그룹이라는 점을 어필하기 위해 3S(sky, sea, sand) 무대는 컴백할 때마다 매번 두 번 이상은 해오고 있다. 아마 이번엔 모래바람이 컨셉인만큼 샌드싱잉을 많이 하게 될 것이다.

 “이라야.”

 윈디슈즈를 착용하고 있는데 용준이 형이 조용히 불렀다. 형은 난감한 표정이었다.

 “라이브 앱 악플러를 찾았는데.. 14세밖에 안 된 중급학생이다. 부모님께서 간곡히 선처를 부탁하시고.. 어린애가 뭘 알겠니?”

 “아, 중급이에요? 그냥 반성문만 받고 넘어가죠. 잘 모르고 쓴 걸 테니까.”

 “넌 언제나 어른스럽구나. 그런데 제이는 강경대응하라고 자꾸 그래서 말이야..”

 제이가 자리를 비운 사이를 노렸구만.

 “그놈한텐 내가 말할 테니까 걱정 마세요, 형.”

 “..그래. 너한텐 늘 고맙고.. 미안하다.”

 용준이 형이 머쓱하게 떠나고 슈즈를 마저 착용했다.

 「혐이라 퇴출해라」

 14이라고? 14살 중급학생이라고. 헛웃음이 나왔다. 그러나 사실 나이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안다. 14살이 아니라 18살이었어도, 22살이었어도, 30살이었어도, 40살이었어도. 60살이었어도. 나이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사장님과 용준이 형한테는 아직 최수한의 얘기를 꺼내지 못했다. 이유는 나도 잘 모르겠다. 얘기할 시간도 충분했는데 그냥 말하기 싫었다.

 최수한은 어제 [네 번호 맞나]라는 톡을 보내왔다. 새벽 3시에. 난 [잠이나자세요ㅗ]라고 답장했다. 그랬더니 [이 시간에 답장한다는 건 너도 안 자고 있었다는 거군] 했다.

 새벽에 안 자고 뭐한 건지. 일도 없나. 녹화할 때 S급 어댑터라고 소개했으니 분명 유명하긴 할 텐데.

 생각난 김에 검색이나 해봐야겠다 싶어 폰을 들었다. 오랜만에 포털사이트에 들어가 이름을 검색해봤는데 나오지 않았다. 다른 포털에서도 프로필 등록이 안 되어 있었다. S급 어댑터인데 왜 안 나오지? 의아하게 화면을 보는데 제이가 다가왔다.

 “뭐하냐? 네가 웬일로 인터넷을 다해?”

 “야, 최수한 유명한 어댑터라고 하지 않았냐?”

 “최수한?”

 “그 어댑터 의사 말이야.”

 “..최 수한?”

 “며칠 전에 같이 녹화했잖아. 기억 안 나? 제이 네 두뇌운동이 심히 걱정스럽다 이 형님은.”

 “..기억은 나는데.. 그 의사가 왜?”

 “검색했는데 연예인하고 변호사만 나와서. 별로 안 유명한가봐.”

 “.......”

 제이는 미간을 구겼다.

 “그 인간을 왜 검색해보는데?”

 궁금하니까, 라고 대답하면 왜 궁금하냐는 질문이 돌아올 것 같았다.

 “아니, 그냥.”

 “야, 엔돌핀 녹화했던 어댑터는 최수한이 아니라 권수한이지.”

 “으억.”

 눈새한새가 내 등을 짓누르며 불쑥 끼어들었다. 갑자기 상체가 굽혀져서 좀비 같은 소리를 내버렸다

 “권수한으로 검색해봐. 멍충아.”

 “권 씨였어? 그래서 안 떴었구나. 시발, 근데 등은 왜 눌러?”

 “이라야, 이 형님은 네 뇌세포가 심히 걱정되는구나.”

 “이라 누르지 마라.”

 제이가 조용히 명령했고 한새는 자연스럽게 그 말을 따랐다. 난 한새놈이 아직도 얹고 있는 팔을 탁 쳐냈다.

 “기억 못할 수도 있지, 새끼야.”

 “허어. 이게 다 밥을 안 먹어서 그래. 밥을 안 먹으니까 영양소가 부족해서 기억력이 떨어지는 거야. 이제 곧 아이돌 최초 치매돌이 탄생하겠어. 추카추카추!”

 “별 개소리를 정성들여 한다. 걍 그 어댑터 성이 권이든 최이든 노관심이라 그래.”

 “푸흡. 노관심인데 왜 그 무거운 폰을 들고 삼백 년 만에 검색까지 해보냐?”

 “야, 슈즈나 신어. 문이 형! 이 새끼 아직 슈즈도 안 신었어여!”

 한새놈을 내쫓기 위해 문 형을 불렀다. 문이 형은 도깨비처럼 눈을 떴고 한새는 날 원망스럽게 보고는 떠났다.

 묵묵하게 보고 있던 제이가 옆에 앉았다.

 “너랑 아는 사이라는 동생이랑은 연락됐고?”

 “응.”

 “왜 검색해봤어?”

 “그냥.”

 “.......”

 “걍 몇 살인지 보려고 검색해봤어. 왜 그렇게 보냐.. 넌 뭐 사람 이름 검색 한 번도 안 해본 사람처럼...”

 제이의 강렬한 시선 앞에 쭈굴쭈굴해졌다. 제이는 내 머리를 헤집었다. 그렇다고 표정을 푼 것도 아니었다. 우리는 눈을 마주쳤다. 스타일리스트 누나가 이라 머리 망가지면 어떡하냐며 달려올 때까지, 제이의 손은 내 정수리 위에 올려 있었고, 우리는 말없이 눈만 마주쳤다.

 저 솔로 플레이어의 무대가 끝나면 엔돌핀의 차례다. 무대에 오르기 전 가볍게 몸을 풀었다. 이미 풀었지만 긴장감 해소 차원에서다. 허리에 손을 얹고 뒤로 굽히자 검을 만지고 있던 제이와 또 눈이 마주쳤다. 제이는 피식 웃으며 다가왔다.

 “스트레칭 하냐. 도와줘?”

 “..어.”

 제이는 검을 허리에 꽂고 내 등을 눌러줬다. 꾹꾹. 손바닥의 단단한 굳은살이 옷 아래로도 느껴졌다.

 “몸이 굳었네. 이거밖에 안 굽혀져?”

 “이 정도면 엄청 유연한 거거든? 다 모셔너 같은 줄 아냐.”

 “손가락이 땅에 안 닿으면 굳은 거 맞아, 멍청아.”

 “아씨, 한새도 그렇고 왜 자꾸 멍청이래. 내 뇌세포 기죽이지 말아줄래???”

 “저기, 이라 씨, 제이 씨.”

 스태프로 보이는 사람이 쭈뼛거리며 다가왔다. 난 허리를 바로 세웠다. 제이의 손은 계속 내 등에 얹혀 있었다.

 “여동생이 오늘 견학 왔는데.. 엔돌핀 팬이라고 한번만 만나보고 싶다고 해서요. 싸인 한 장만 해주시면 좋겠는데.”

 제이는 대답이 없고 난 재빨리 용준이 형과 문 형을 찾았는데 다들 한새한테 붙어 있었다. 슈즈 안 신고 게으름 피우다가 이제서야 부랴부랴 신느라..

 “네, 괜찮은데 멤버들이 다 저쪽에 있네요.”

 “아, 그게 지영이가 딱 두 분 팬이라고 하네요.”

 “우리 둘이요..?”

 “오라고 하시죠. 사진도 찍어줄 테니.”

 “감사합니다! 애한테 공부도 열심히 하라고 한 마디만 부탁드릴게요!”

 왜인지 제이가 묘하게 기분이 좋아진 투로 허락했다. 스태프는 고마워하며 뒤쪽을 향해 “지영아, 이리 와.”했다.

 아까부터 기웃거리던 여자아이가 상기된 얼굴로 헐레벌떡 뛰어왔다.

 “오빠들 진짜 좋아해여...허어엉. 오늘 반 친구들이랑 학교 숙제 때메 우연히 왔는데 우연히 오빠들 와서 넘 좋아여.. 신기해여..”

 “하하, 진정해요.”

 귀여워라. 여자아이는 엔돌핀 클리어파일에다 사인 요청을 했다. 생활 기스가 나 있는 걸 보니 진짜 팬인 모양이다. 제이가 먼저 사인해주고 나도 옆에다가 사인했다. 오빠가 부탁한 공부 열심히 하라는 말도 잊지 않고 덧붙였다.

 “이거.. 오빠들 볼 줄 몰라서 급하게 사왔어여.. 변변찮은 거라 죄송해여..”

 “뭐가 죄송해요. 고마워요. 잘 마실게요.”

 스태프가 “변ㅋ변ㅋ찮댘ㅋㅋㅋㅋ”하면서 배를 잡고 웃었다. 여자아이는 친오빠를 매섭게 째려보다가도 우리를 보면 표정이 흐물흐물해졌다. 진짜 귀엽다.

 여자아이가 변변찮게 준비해 왔다는 선물은 음료였다. 직접 만든 게 아니라 편의점에서 파는 과일 주스, 제이는 포도고 나는 사과였다.

 마침 목이 말랐던 나는 바로 빨대를 톡 꽂아 마시려고 했다.

 “맛있어 보인다.”

 “야, 왜 뺏어 가. 넌 포도 있잖아.”

 “나 줘.”

 제이놈이 갑자기 안 하던 짓을 했다. 아까부터 쿨하게 있더니 갑자기 얼굴을 들이밀고 내 사과주스의 빨대를 탐낸다. 제새끼가 나보다 키가 큰지라 속수무책으로 주스를 헌납할 상황에 이르렀다. 이 자식이, 왜 자기 팬 앞에서 안 하던 미친 짓을 하고 그래?

 “안돼요!”

 순간 여자아이가 비명처럼 날카롭게 소리 질렀다.

 “사과주스는 꼭 꼭 이라 오빠가 먹어야 돼요. 제이 오빠는 먹으면 안돼요!”

 나는 멍해졌다. 제이의 입술이 내가 들고 있는 사과주스의 빨대에 닿으려다가 멈췄다.

 “나는 왜 안 돼?”

 “사과는 이라 오빠한테 좋은 거란 말이에여~~ 제이 오빠 욕심쟁이야.”

 “큭큭, 알았어.”

 제이가 가볍게 웃으며 멀어졌다. 내 어깨를 누르던 팔도 사라졌다.

 “.......”

 나는.. 팬을 다시 자세히 보았다. 교복을 입고 있는.. 중급학생인듯 했고.. 얼굴에 여드름이 스트레스이겠다 싶었고.. 상기된 두 볼.. 귀여운 어린 팬의 외면 뒤로 어두운 그림자가 보였다. 두 눈에는 뱀이 도사리고 있는 듯했다. 똬리를 틀고 앉아 먹이의 빈틈을 노려 목을 물려는 독사.

 심장이 세차게 뛰었다.

 하마터면 속을 뻔했어.

 손이 덜덜 떨렸다. 저렇게 귀여운 모습으로 가장해서, 친오빠까지 끌어 들여서, 나를 죽이겠다고..

 “애들아, 가자! 앞무대 끝났어.”

 마침 앞 무대가 끝났다. 스태프가 이제 그만 폐 끼치라며 동생을 데리고 떠났다. 아이는 떠나는 순간까지 해맑게 웃고 있었다.

 제이는 내 주스까지 용준이 형한테 맡겼다. 나는 형에게 사과주스 버려야 한다고 조용히 속삭였다. 형은 의아한 얼굴이었다. 자세히 설명할 틈 없이 무대에 올라갈 시간이 됐다. 나는 멍한 상태로, 박수갈채를 받으며 하늘로 날아올랐다.

 현실은 5층 높이의 허공이지만 노래 속 배경은 모래사막이기 때문에 처음부터 끝까지 모래의 환상을 만들어내야 했다. 나는 A급이지만 이런 야구장 크기만 한 돔을 가득 메울 수 있다.

 전주가 시작되는 동안 모래를 펼쳐 결계 바깥 객석을 제외한 공간 전체를 사막으로 만들었다. 황량한 바람도 넣어주고, 타오르는 햇빛과 아지랑이.. 소울 오러가 급격히 빠져나가 벌써 숨이 찼다. 이건 체력 문제가 아니다.

 내 옆에서 제이는 메마른 선인장과 이번 타이틀곡의 키워드인 사막도마뱀을 만들었다. 제이는 힐끗 나를 보고 눈으로 괜찮으냐 물어왔다. 나는 웃어 보였다.

 〈나는 모래 속에 묻힌 자, 길 잃은 이들의 영혼.〉

 문 형의 첫 소절이 시작됐다. 멤버들의 가사에 맞춰서 환상을 펼치는 건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사과주스를 머릿속에서 떨쳐내기 위해 노력했지만 쉽지 않았다.

 노래하고 춤을 추고 소울 오러를 펼치는 모든 순간마다 관중의 환호가 따랐다. 하늘을 날아다니며 사람들을 보았다.

 저들 중에 있을지도 모른다. 나를 죽이기 위해 청산가리를 넣은 쿠키를 들고 팬사인회에 찾아온 사람은 여고생이었다. 그 팬사인회에서 내게 선물을 준 사람은 모두 어린 여자팬이었다. 사과주스를 준 그 아이처럼.

 ‘엔돌핀 내 즐거움’ 피켓을 흔드는 저 교복 입은 소녀일지도 모른다. 무아지경으로 소리치는 양갈래 머리 팬일지도 모른다. 맨 앞줄에서 카메라를 들고 소리 없이 모든 장면을 기록하는 팬들 중에 한 명일 수도 있다. 몰래 내 윈디슈즈를 망가뜨려놓고 조용히 내가 추락하는 장면을 기다리는 것이다. 분명 그럴 것이다. 저기 봐. 카메라 렌즈가 내 동선을 따라다니잖아. 입가에 미소도 짓고 있어. 내가 떨어지기를 기다리고 있는 거야.

 “...?”

 순간 윈디슈즈가 무거워졌다. 오른쪽 윈디슈즈에서 출력되던 오러가 사라지는 게 느껴졌다.

 “이라!!!!”

 고함이 들렸다. 착각이 아니었다. 균형을 잡지 못하는 바람에 허공으로 천천히 떨어지고 있었다. 관중의 환호가 비명으로 바뀌었다. 내가 눈을 몇 번 깜박하자 내 허리를 감싸는 단단한 무언가가 느껴졌다.

 “이라!! 정신 차려. 괜찮아??”

 “...제이.”

 “네 슈즈가 고장 난 것 같다. 일단 무대는 중지야. 내려가자.”

 제이는 침착하게 말했다. 자신의 슈즈의 전원을 끄고 모션 오러를 발동시켜 나를 안은 채 바닥으로 착지했다. 난 사막의 환상을 거두고 멍하니 제이의 팔을 붙잡았다. 손이 어쩔 수 없이 조금 떨렸는데, 제이도 느낀 건지 작게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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