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화 (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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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은 진짜 맛있게 잘 먹었다. 특히 미역국이 최고였다. 배가 딱 기분 좋게 불렀다. 이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이라 잘 먹더라. 이거 방송 나가면 팬들이 미역국 많이 보내주겠다. 대게찜이랑.”

 문 형의 말에 잠깐 굳었다가, 양치질을 핑계로 웅엉웅엉 답했다. 형은 양치나 마저 하라고 머리를 톡톡 쓰다듬어 주고 나갔다.

 “.......”

 갑자기 구역질이 나서 치약 거품을 우욱, 다 뱉어버렸다. 물로 몇번 헹구고 얼굴 세수까지 했다. 대기실 바로 옆에 붙은 화장실이라 누가 갑자기 들어올지 모르니 일단 안쪽 칸으로 들어갔다. 변기 뚜껑을 덮고 그 위에 앉았다.

 손발이 차게 식었다. 물에 젖은 앞머리를 쓸어 올렸다.

 팬을 생각하면 기분이 곤두박질친다.

 다시 구역질이 일어서 재빨리 변기 뚜껑을 열었다.

 “우웩...  웩.”

 변기를 붙잡고 먹었던 것들을 쏟아냈다. 눈물이 찔끔 나왔다. 변기 물을 내리고 휴지로 얼굴도 벅벅 닦고 잠시 심호흡을 하다가 나왔다.

 헉, 시발.

 문 열리는 소리도 없었는데 한 사람이 들어와 있다.

 하필이면 날 싫어하는 어댑터 의사였다. 난 눈치 보면서 세면대로 향했다.

 “볼 때마다 변기를 붙잡고 있군.”

 팔짱을 낀 채 문가에 기대어 있던 의사가 말했다. 토하는 걸 다 들었나 보다.

 “볼 때마다라고요?”

 “그래. 네가 토하는 모습이 벌써 네 번째야.”

 “.......”

 저 차가운 시선이 익숙하게 느껴졌다. 불현듯 뮤비 촬영장 뒷풀이 고깃집이 생각났다. 그때 그 사람이었구나.

 “기억이 났나?”

 “고깃집은요. 나머지는 기억이 안 나네요. 토를 하도 많이 하고 다녀서.”

 이 새끼, 뭔데 반말이지? 짜증을 다스리면서 세면대 앞에 섰다. 겁에 질린 듯한 창백하고 마른 소년이 앞에 서 있었다.

 어푸어푸, 찬물로 세수를 하고 상의로 대충 닦았다.

 “범인은 찾았나.”

 “.......”

 잘못 들었나? 거울을 통해서 의사를 쳐다봤다.

 “네?”

 “범인은 찾았냐고 물었다.”

 “무슨 범인요?”

 “청산가리.”

 “.......”

 그대로 얼어붙었다. 사신의 낫이 바로 목가에 드리워진 것 같았다.

 그 일을 아는 사람은 나와 매니저 용준이 형, 사장님, 청산가리를 검출했던 국과원 직원뿐이다.

 그 외는 범인밖에.. 없다...

 사시나무 떨듯 몸이 떨렸다. 의사는 키가 컸고, 나는 마르고 힘이 없다. 의사가 내 복부를 발로 차고, 머리통을 화장실 벽에 부딪친다. 상아색 타일에 붉은 핏물이 흐른다. 의사는 구두 굽으로 핏물을 밟고, 내 머리채를 질질 끌고 나간다. 바깥에는 환호하는 엔돌핀의 팬들이 있다.

 드디어 해냈어. 이라가 죽었어!!

 물론 내 상상이다. 의사는 그저 냉정하고 차가운 얼굴로 내 대답을 기다리고 있다. 난 거울을 통해 보는 걸 관두고 뒤돌아서서 똑바로 바라봤다. 여기서 내가 주춤거리면 절대로 안 될 것 같았다.

 “최수한 씨, 당신이 그 일을 어떻게 압니까.”

 “..권수한이다. 최수한이 아니라.”

 “어떻게 아는 거냐구요.”

 “권진호가 내 동생이야. 술 마시고 털어놓더군. 불쌍한 아이돌이 있다고.”

 권진호는 국과원 연구원이다.

 난 잘게 부서진 쿠키 조각을 끌어 모아 울면서 매니저 형을 불렀고, 매니저 형은 사장님한테, 사장님은 국과원에 맡겼다. 사흘 후 돌아온 답변은 ‘독극물이 함유되어 있다, 경찰에게 넘기겠다’라는 내용이었고, 사장님이 우리끼리 처리하겠다며 만류했다. 누구에게도 알리지 말라고 신신당부와 더불어 돈도 쥐어준 것으로 안다. 나도 직접 전화를 걸어 외부에 알리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약속을 어겼군요.”

 “그 녀석은 계속 기다렸어. 한 아이돌이 겪은 비참한 일이 뉴스에 나오기를. 하지만 일주일이 지나도, 한 달이 지나도 나오지 않았지. 범죄자를 잡았느냐고 네 그룹의 사장에게 물어봤으나 잊어달라는 답변만 돌아왔다. 양심의 가책을 느낀 동생이 내게 털어놓기 전까지는 완벽한 비밀이었어.”

 “..동생 분께는 죄송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머리가 아프다. 관자놀이 부근을 송곳으로 쿡쿡 찌르고 있는 것 같다.

 “또 그런 위협을 받은 적이 있나?”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아주세요.”

 “수사 중이긴 한 건가.”

 “이제껏 비밀로 지켜왔으니 계속 조용히 해주세요.”

 “범인이 누구인지는 알고 있나.”

 “평화로운 지금을 들쑤시지 말라는 말입니다.”

 「간신히 평화로워졌어. 괜히 들쑤시지 말자.」

 나는 사장님께 들었던 말을 그대로 읊었다. 두통이 심해져 눈앞이 깜빡깜빡할 정도였다.

 “저는 다 잊었습니다. 그 후로는 한 번도 독극물이 든 음식물을 받은 적 없고.. 다 괜찮아졌어요. 지금은 그냥 똥 밟았다 생각하고 있다구요. 우리 그룹도 회사도 그런 더러운 일이 계속 따라다니지 않길 바래서 숨기려고 한 거예요. 더 이상의 잡음은 싫어요. 그러니까 그쪽도 그 일은 잊으세요.”

 두통이 심해져 귀에 이명까지 들려왔다. 화가 난 듯이 눈을 감았다가 얘기가 끝나고 눈을 떴다. 머리가 지끈거려 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꾸욱 누르며 권수한을 바라봤다.

 “이봐. 너는.”

 냉정한 표정이 조금 깨어져 있었다. 그가 당황하기도 하는 사람이라는 걸 알려주듯 미간에 주름도 져 있었다.

 “널 죽이려고 했던 사람을 내버려두겠다고?”

 “.......”

 여기가 방송국 화장실이란 걸 잊을 정도로 한기가 몰아쳤다. 나는 이 한기를 알고 있다. 이 한기의 이름은 공포, 언제나 나를 따라다니는 차가운 칼날이다.

 숙소에 돌아가 베개에 피곤한 머리를 뉘일 때도, 엄마와 통화를 하며 콩나물 가격에 대한 얘기를 할 때도, 무대 위에서 노래를 부르고 방송에 나와 바보처럼 웃을 때도, 항상 나를 따라다녀 되새기게 하는 극한의 두려움.

 나를 죽이고 싶어 하고, 실제로 죽이려 했던 사람이 바깥에서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있다고.

 그 사람은 방송국에 들어올 수도 있다. 회사에 들어올 수도 있다. 도로변을 거닐 수도 있고, 음식점에 들어갈 수도 있다. 어쩌면 숙소에 숨을 수도 있다. 그 사람은 방송국 직원인 것처럼, 회사 직원인 것처럼, 음식점 직원인 것처럼 속여서 몰래 나를 죽이려고 할 수 있다. 얼마든지 그럴 수 있다. 그 자는 자유롭다. 그 살인미수범은 바깥에서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있다.

 8개월 동안 한 번도 이 공포에서 벗어난 적이 없었다. 아마 평생 나를 옭아맬 것이다. 공포를 일으킨 범인은 평생 잡히지 않을 테니까.

 “네, 전 용서하기로 했고, 이제 다 잊었,”

 “거짓말을 잘도 하는군.”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권수한은 기가 차단 한숨을 내뱉더니 외투에서 휴대폰 하나를 꺼냈다. 순간 모든 대화를 녹음하고 있었던 건가 섬칫해졌는데 그는 키패드 창을 열어 내게 내밀 뿐이었다.

 “번호 입력해.”

 “왜요.”

 “안 하면 아는 기자에게 전하겠다.”

 “.. 지금 협박해요?”

 “그래.”

 권수한은 다시 냉정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네 토하는 모습을 네 번이나 우연히 본 사람으로서, 이 정도 협박은 해야겠군. 어서 입력해.”

 한숨이 나왔다. 걸려도 이런 인간한테 걸리냐. 내 인생 왜 이러지..

 어쩔 수 없이 번호를 입력했다. 머릿속으로는 용준이 형이랑 사장님한테 이 일을 어떻게 전하지 고민하면서.

 “이라.”

 그때 화장실 문이 열렸다. 시발, 깜짝이야. 나도 모르게 욕지거리가 튀어나왔다. 문이 잠겼던 것도 아니니 당연히 누군가는 들어올 수 있었다. 괜히 혼자 찔려 심장이 연못가에 뛰쳐나온 잉어처럼 퍼덕퍼덕 뛰었다.

 “여기서 뭐해.”

 들어온 사람은 제이였다. 제이는 놀란 내 얼굴과 냉정한 의사와 내가 손에 쥐고 있는 휴대폰을 차례대로 보았다. 그리고는 순식간에 의사와 내 사이에 섰다.

 “권수한 선생님, 이라에게 무슨 볼일입니까.”

 촬영 내내 날 노려본 일로 이미 내 안티로 도장 찍혀있는지라 제이의 목소리는 무척 딱딱했다.

 “내 동생과 아는 사이여서 인사를 좀 했지. 이라, 마저 해라.”

 난 얼른 손가락을 움직여 번호를 찍어줬다. 의사는 폰을 건네받고 바로 전화를 걸더니 신호음을 몇번 듣고 끊었다.

 “내 연락은 받는 게 좋을 거다. 그럼 다음에 보지.”

 의사는 내게 욕 나오는 인사를 남기고서 제이의 저 뜨거운 시선 따위 느껴지지 않는 듯 차갑게 무시하고 유유히 떠나갔다.

 언제나 예의바른 제이는 그에게 고개 까딱 하나 하지 않았고, 나가자마자 화장실 문을 탁 닫고 가까이 다가왔다.

 “너무 늦어서 와보니 저 자식한테 잡혀 있었던 거냐. 저 시발놈이 뭐라고 지랄했어?”

 “아니.. 동생이 진짜로 나랑 아는 사이더라고. 옛날에 연락 끊긴 놈이라서 연락처 준 거야.”

 “옛날? 언제. 고급? 멜타고? 국립시?”

 “더 옛날, 있어. 넌 몰라. 그리고 알면 뭐하려고, 새끼야.”

 “촬영 중엔 널 왜 노려봤던 건데.”

 “몰라. 오랜만에 보니까 긴가민가해서 그렇겠지. 야, 가자. 다들 기다리겠다. 이러다 스케줄 늦으면 안 되는데.”

 제이의 팔을 잡아 이끌려 했는데 바위처럼 단단해서 1mm도 안 움직였다.

 “힘자랑 하냐?”

 쏘아보자 제이는 도리어 절 잡고 있는 내 손목을 붙잡았다.

 “저 의사 위험한 느낌이 와. 절대 연락 받지 마. 동생 연락처만 받고 무시해.”

 “뭐야 그게. 언제부터 점쟁이가 됐어?”

 “이라. 제대로 대답해.”

 “...안 그래도 그러려고 했어.”

 “그래. 가자.”

 내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딱딱한 목소리가 조금 풀어졌다. 나 또한 제이의 걱정에 기분이 좀 풀어졌다.

 제이의 크고 단단한 손은 여전히 내 손목을 잡고 있다. 이 녀석의 쓸데없이 예리한 부분에 스트레스받기도 하지만, 역시 대부분은 기분이 좋다. 계속 이 정도 선에서 날 걱정해줬으면 좋겠다. 팬의 선물을 버리러 새벽에 일어나는 모습은 다 잊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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