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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모션 오러에 좋은 음식들부터 나왔다. 엔돌핀의 자랑스러운 S급 모셔너 제이와 C급 모셔너 야단이가 열심히 먹으면서 이건 어떻고 저건 어떻네 평가해줬다. 먹고 직후의 모션 오러는 어떻게 달라지는지도 보여줬는데, S급 정도 되면 영향이 미세한듯 했고 야단이의 경우에는 확실히 좀 더 강해진 게 느껴졌다. 근데 사실 소울 오러는 먹자마자 바로 영향을 받는 반면, 모션 오러는 효과를 알려면 하루는 지나야 한다고 했다.
다음은 소울 푸드였다. 엔돌핀에는 나 하나 있는지라 내가 음식들을 독점할 수 있다. 후후.
“이라 씨는 A급이죠?”
“네! 맞습니다.”
“이야, 멤버 중 셋이 오러 유저인데 그 중에 S와 A가 있다니 괜히 단기간에 탑아이돌이 된 게 아니네요. 사실 C급도 다른 그룹 가면 최고등급인데 말이죠.”
“하하..”
나는 엔돌핀의 인기에 도움 준 게 없다. 고유진이 만들고 간 자리에 숟가락만 얹어놨을 뿐이다.
먼저 과일들이 나왔다. 사과, 딸기, 자두, 석류 등등이었다. 이왕이면 고기를 먹고 싶은데. 본격 먹방은 2부부터라고 대본에 나와 있었다.
“소울 푸드는 붉은색 과일이 많네요, 선생님?”
“예. 인류 유사 이래로 우리의 신체에 학습되어진, 붉은 과일을 보았을 때 느끼는 감정이 소울 오러를 풍성하게 만들어 줍니다.”
빨간색이라는 색깔이 주였던 거구나..
모션 오러는 음식의 영양소가 주인 반면 소울 오러는 색깔이 주라는 게 뭔가 신기했다. 갑자기 떠오른 궁금증에 냉미남 의사쌤한테 물어봤다.
“그럼 같은 사과여도 초록색 사과는 효과가 없어요?”
“...풋사과는 이라 씨처럼 완성되어진 소울 오러에는 영향을 못 줍니다. D급 이하 초기 단계에 필요한 과일입니다.”
“아, 그렇구나. 신기하당~~”
의사쌤이, 이름이 뭐였지? 아, 최수한의 목소리에서 얼음이 뚝뚝 떨어지는 것 같았다. 눈빛도 강렬한데, 제이처럼 깊고 아득하다기보다는 손이 베일 듯한 차가운 강렬함이다. 그래서 눈이 마주치자마자 감탄하는 척 웃으면서 피했다.
그 후로도 촬영 내내 최수한은 나한테 매서운 눈빛을 보냈다. 대체로 모든 사람들한테 차갑기는 했는데 유독 날 볼 때가 많았다.
솔직히 지금의 나는 약간의 피해망상이 있을지도 모르는 상태라 착각일 수 있으니 쉬는 시간에 멤버들에게 물어봐야겠다. 너네가 보기에도 나한테만 개 같은 게 맞냐고.
“야, 너 그 의사랑 아는 사이냐? 내내 너만 노려보고 있던데.”
물어보기도 전에 답을 얻었다. 대기실에 들어오자마자 한새가 물어서 나도 궁금증이 풀렸다.
나를 싫어하는 게 맞구나.
어쩌면 유진이 형의 팬이었을 수도 있겠다.
“너 뭐 그 의사한테 죄진 거 있냐?”
“모르겠는데. 처음 봐.”
“그래? 그럼 너한테 왜 그러지.”
“냅 둬. 노관심. 밥이나 먹어라.”
오늘도 조공 도시락이 왔다. 야단이네 팬사이트에서 들어온 도시락이다. 멤버별로 손편지도 붙어 있었는데 고맙고 미안하게도 내 것도 있었다.
주메뉴는 양식을 좋아하는 야단이를 위한 햄버그스테이크였다. 윤기가 반지르르 흐르는 게 맛있어 보였지만 뚜껑을 덮었다.
“또 안 먹게?”
제이놈이 기다렸다는 듯 물었다. 오늘은 다행히 적당한 변명 거리가 있었다.
“계속 먹방 있으니까 안 먹으려구.”
“그렇군. 나도 나중에 먹어야겠어.”
제이도 뚜껑을 닫았다.
“아, 맞네. 이따 먹방 있지 참.”
“아...”
문 형이 맛있는 스테이크를 앞에 두고 고민했다. 한새도 잠시 고민하더니 곧 상큼하게,
“너네가 굶으니까 우리는 먹어도 되겠다. 형, 야단아. 우리는 먹자!”
했다. 푸흐흐, 한새다운 결정이다.
사실 문 형이랑 한새는 오러 유저가 아니라서 많이 먹진 못할 테니 지금 먹어두는 게 맞았다.
웃고 있는 와중에 제이가 내 도시락을 가져가 자기 거랑 같이 박스에 넣었다.
그러더니 뚜껑에 붙어있는 스티커를 떼려고 했다. 우와.. 식겁해서 한걸음에 달려갔다.
“야, 왜 떼. 스티커 붙여놔.”
“뭐 하러 붙여. 둘 다 입도 안 댔는데.”
“아, 걍 놔두세요. 님 거랑 내 거랑 헷갈리면 안 되니까.”
최대한 심각하지 않은 척 말꼬리를 늘어뜨리며 제새끼의 손에서 도시락을 빼냈다. 사실 내 건 그냥 내 가방에 넣고 싶은데..
“네 것만 내용물이 다르냐? 이거 기분 나쁘네.”
어, 달라. 내 거엔 독이 들었을지도 몰라. 널 살리기 위해서란 말이야.
“야, 삐지지 마라. 이 형님이 원래 독점욕이 좀 있어.”
웃으면서 넘어가고 싶은데 잘 웃어지지 않았다. 그때 우리의 눈새님과 문 형이 밥 먹다 말고 끼어들었다.
“저 새끼 은근 식탐 있단 말이야. 자기 건 나누려고 하지도 않고. 겉보기에 말랐으니 안 먹겠거니 하는데 지 건 다 잘 챙기잖아.”
“아니, 도시락에 진짜로 이라 말랐다고 팬들이 은근히 양을 더 넣는 거 아냐?”
“하하, 별 생각을 다하네. 문 형까지 왜 그래. 밥이나 처먹어요, 다들. 야단이 봐, 노관심 정신으로 열심히 먹고 있잖아.”
“..대화는 다 듣고 있는데요, 형.”
“..어, 말 시켜서 미안. 맛있게 먹어.”
왠지 막내한테는 애들한테 하듯이 막말할 수가 없다. 한새가 야단이랑 자기들한테 대하는 태도가 너무 다른 거 아니냐고 버럭버럭했다.
난 귀 파는 시늉을 하며 놀리다가 빠른 손놀림으로 박스를 닫아버렸다. 뭐 이 정도면 제새끼도 굳이 스티커를 떼려 하진 않겠지. 슬쩍 제이를 보자 생각에 잠긴 흑표범이 박스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진짜 무시무시하게 잘생기긴 했다.
“용준이 형, 우리 도시락 안 상하게 냉장고에 넣어놔야 할 것 같아요.”
“...그래, 내가 넣어둘게.”
용준이 형은 다행히도 내가 무슨 말 하는 지 눈치를 챘다. 형이 도시락을 가져가고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
제이와 눈이 마주쳤다. 제이의 눈빛은 너무 깊다. 아까의 의사처럼 서늘하다기보다는.. 뜨겁다. 난 뭘 야려보냐는 듯 으쓱하며 고개를 돌렸다.
촬영이 재개됐다.
전반부는 과일과 채소였으니 먹방이라 할 수 없다. 후반부가 진정한 먹방이다. 육식 오오 육식. 차려진 음식들을 보고 침을 삼켰지만 내 설레발이었다.
“일반적으로 오러에 좋다는 요리들인데요. 모션 쪽은 육지짐승, 소울 쪽은 해산물류가 많네요.”
..MC선배님의 말이 맞았다. 돼지고기, 닭고기, 소고기는 야단이와 제새끼가 먹고, 난 해조류랑.. 게, 광어.. 이게 뭐야..
먼저 모셔너 놈들이 먹방을 시작했다. 오러유저가 아니라 조금밖에 음식이 주어지지 않은 문 형과 한새는 벌칙 받는 기분이라며 엄살을 피웠다. 야단이는 아까 도시락 하나를 다 먹고도 성공적인 먹방을 했다. 성장기라 그런가.
제이는 삼겹살을 상추에 싸먹는데도 무슨 CF 같다는 칭찬을 들었다. 내가 보기에도 그랬다.
드디어 소울푸드를 먹을 차례다. 과일을 제외하면 오늘 첫 끼라서 배고픈 나는 물고기도 맛있게 먹을 준비가 되어있다. 웬만하면 고기이길 바랐지만 말이다.
“소울 오러는 모션과 달리 시식 직후부터 효과가 생깁니다. 전후를 비교해서 보여드리겠습니다.”
먹기 전 냉미남 의사와 손을 잡아야만 했다. 대본에도 있는 내용이었다. 의사가 앉아있는 자리에 내가 찾아갔다.
스튜디오를 가로지르자 곳곳에서 웃음이 터졌다.
“쿡, 쿡. 이라 씨, 뛰어가는 거 병아리 사진 생각나네요. 조르르. 귀여워요.”
“후후후, 선배님도 그 짤 보셨군요. 유명한 이라 병아리 짤이죠.”
“우리의 자랑입니다!! 크하하.”
“네? 그게 뭔데요?”
난 처음 듣는 거라 고개를 갸웃했다. MC 선배님은 인터넷을 뜨겁게 달군 사진인데 그걸 당사자가 모르냐며 놀라 했다.
“이라는 인터넷 안 해요. 아예 요금제부터가 한 달 데이터가 300mb이던가.”
“와, 진짜요? 300이면 전 반나절도 안 돼서 다 쓸 텐데. 게임 같은 것도 안 해요?”
“쟤는 폰으로 카톡밖에 안 해요. 게임도 안 하고, SNS도 안 하고, 인터넷도 안 하고.. 고전시대 사람이라니까요.”
하하하, 스튜디오에 웃음이 퍼졌다. 난 “에이~ 아이돌로서의 철벽이라고 생각해주세엿~~” 하며 능청을 떨었다.
나도 데뷔 초까지는 인터넷 정도는 했었다. 엔돌핀 기사들도 다 클릭하고, 팬사이트도 돌아다녀봤다. 언제부터 인터넷을 안 했던 건지는 나도 모르겠다.
“나중에 방송으로 보시면 되겠네. 지금 자료화면 나가고 있을 거예요.”
“아, 진짜요? 뭐야. 막 이상한 거 아니에요? 오늘 끝나면 바로 찾아봐야겠어요!”
“굉~~~~장히 귀여운 거니까 걱정 마세요.”
푸흐흐.
사람들이 사진을 떠올린 듯 동시에 웃었다. 제이까지 근사하게 웃음 지었다. 진짜 나만 모르나 보다. 아, 안 웃는 사람 한 명 더 있다. 내 앞의 의사. 이 사람은 웃어본 적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얼음장이었다.
잠시간의 웃음이 지나가고 다시, 나는 어댑터 의사에게 손을 맡겼다. 그는 앉아있고 나는 서있는데, 나보다 시선이 위라서 조금 올려다보아야 했다. 늘씬하고 하얘서 핏줄이 더욱 도드라지는 손이 다가와 손가락을 얽혔다.
힘주어 맞잡고 오러를 흘려보냈다. 다른 사람에게도 보이도록 의사와 나 사이의 공간 위쪽에 동그랗게 구체로 만들어 띄었다. 어댑터가 아닌 이상 다른 이들에겐 다 제각각 다른 형체로 보일 것이다. 이걸 어댑터가 새로 형체로 만들면 모두에게 똑같은 모습으로 보이게 되는데 나는 그걸 볼 수가 없다.
“.......”
새로 형체를 만들어 준 후 크기가 어떠네, 색깔이 어떠네 설명해야 할 의사가 맞잡은 손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선생님, 이라 씨의 오러 어떤가요?”
“..가늘군요.”
“네?”
“손가락이 말랐군. 뼈밖에 없는 것처럼.”
스튜디오가 조용해졌다. 그건 아주 무례한 말이었지만 난 아이돌이기 때문에 헤실헤실 바보처럼 웃었다.
“말랐어도 오러는 튼튼해여. 제 오러 어때요?”
의사는 싸늘하게 날 내려다보았다. 싫어하는 사람의 오러를 평해줘야 하는 어댑터도 참 극한직업이다 싶었다.
한번 오러를 흘러 보내면 계속 잡고 있을 필요가 없어서 손을 빼려고 하니 강한 힘이 잡아왔다. 차가운 얼음이 박힌 것 같아 빼내지 못했다.
의사는 손가락을 얽힌 상태로 형체를 만들었고, 일차적인 평이 끝난 후에도 놓지 않았다. 누가 봐도 이상한 모습이었다.
“자, 이제 이라 씨의 소울 푸드 시식을 해볼까요?”
의사는 당황한 MC 선배님이 직접 말하고 나서야 놔주었다. 나도 당황했다. 이 사람은 나이도 많은 인간이 사사로운 감정을 촬영 중에 다 드러내고.. 철이 덜 들었나.
해산물로 이루어진 음식들은 생각보다 맛있었다. 홍합탕과 대게찜, 광어물회.. 들깨미역국과 전북죽.. 특히 미역국이 아주 취향이었다. 흰 쌀밥을 미역국에 말아먹으니 천국이 따로 없었다.
“와, 잘 드시네요~~~~ 이렇게 잘 먹는데 어떻게 그렇게 말랐어요?”
“혹독한 다이어트를 했어요, 하하.”
“이라는 잘 안 먹다가 한번 먹을 때 많이 먹더라구요. 원래 촬영할 때는 안 먹는데 오늘은 잘 먹네요. 엄청 맛있나 봐요.”
“엉, 엄청 맛있어. 어마어마하네요. 요리하신 분 얼굴 뵙고 싶을 정도에요.”
“쟤, 저러고 저녁 굶는다에 한 표.”
“나도 한표.”
멤버들은 구분을 못한다. 내가 무작정 촬영 중엔 안 먹는 줄 안다. 멤버들 도시락 먹을 때 난 편의점에 가기도 했는데. 얘기한 적이 없으니 당연하다.
식전과 식후의 오러는 작은 차이가 있었다. 어댑터 의사의 설명으로는 딱딱하고 뾰족뾰족했던 표면이 둥그래졌다고 한다. 둥그런 게 더 좋은 건가? 궁금증이 일었다.
“딱딱하면 안 좋은 거예요?”
“..소울 오러는 감정 상태를 기본으로 합니다. 경직됐던 감정이 식사를 하고나니 부드러워진 겁니다. 당신의 소울 오러는 제가 본 오러 중에서도 가장 경직되어있더군요.”
“아..하. 그렇군영...”
의사의 목소리는 북극 얼음 동굴에 부는 칼바람처럼 쌀쌀했다. 스튜디오 분위기도 찝찝하게 식었다. 괜히 물어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