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화 (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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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 너네 뭔 얘기를 그렇게 심각하게 하냐?”

 다행히 한새가 끼어들었다. 한새 별명은 눈새다. 눈치 없는 새끼.

 “메컵 끝났냐?”

 “어. 야, 권제이. 다음 너 차례야. 근데 너 무슨 이라 잡아먹을 것처럼 본다? 눈빛이 너무 강렬한 거 아니냐?”

 한새는 능글맞게 웃으면서 제이랑 내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앉았다. 그 덕에 제이가 아니라 내가 쭈그려 들어버렸지만 어쨌든 고마웠다.

 “그래, 무슨 얘기 중이었는데 수상한 기류가 흘렸어?”

 문 형이랑 야단이도 다가왔다. 그 말 없는 야단이도,

 “싸운 줄 알았어요.”

 했다.

 “엥, 별 얘기 아니었는데 왜 갑자기 관심집중 되지? 형, 아무것도 아니었어. 그냥 팬사인회 전엔 긴장된다는 얘기였어. 형은 안 긴장돼?”

 “아, 맞아. 되게 기분 좋은 긴장감이지. 공연 할 때랑은 약간 다른 그런 게 있어.”

 “너무 가까이에서 보니까 더 살 떨려. 난 어젯밤부터 못 잤어.”

 “전 스케줄 잡혔을 때부터 떨렸어요.”

 문 형이 상냥하게 웃으며 공감을 표해주자 한새랑 야단이도 열심히 공감해줬다. 분위기가 조금 가벼워져서 다행이다. 난 가볍게 웃으며 제이를 쳐다봤다.

 역시 제이는 이런 상황에서는 하던 주제를 계속 이어가지는 않았다. 주제를 이어가면 불리한 건 나였기에 다행이었다.

 “확실히 지금 할 얘기는 아니었지. 나중에 다시 해.”

 대신에 날 툭 치고 가볍게 심장을 떨어뜨려놓고는 메이크업 받으러 유유히 떠났다.

 “저 새끼 왤케 분위기 잡냐?”

 “그러게 말이다.”

 “팬사인회 긴장 얘기 한 거 맞아? 제이 얼굴이 너무 심각해서.”

 “맞는뎅. 저 새끼 좀 이상하네. 그보다, 우리 이제 30분 남았어. 한새랑 형은 긴장 어떻게 풀어? 팬사인회 후배한테 한 수 좀 가르쳐 봐. 야단이도.”

 헤실헤실 웃으며 다른 화제로 전환했다. 눈새 한새는 금방 따라왔고 문 형은 수상해 했지만 캐묻지 않았다. 야단이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

 아마 멤버들도 알고 있겠지. 저 눈치 없는 한새도 어느 정도는, 내가 팬을 무서워한다는 걸 알 것이다. 그 이유가 팬들한테서 미움 받기 때문이라는 것도 알 것이다. 멤버들도 그게 당연하다고 여긴다는 걸 나는 안다.

 엔돌핀의 메인소울러이자 메인보컬 고유진이 불가피하게 팀을 탈퇴하면서 보컬이 가능한 소울유저인 내가 합류하게 되었다. 엔돌핀은 1050년 10월에 데뷔했고, 51년 6월에 유진이 형이 탈퇴했으며, 나는 그달에 바로 합류했다.

 막 합류 기사가 뜨던 그 시기 팬들의 분노는 상상을 초월했다. 차라리 메보 없이 가자는 청원이 사이트마다 올라올 정도였다. 나도 S급 소울유저였다면 반발이 덜했을까. S급이 떠난 자리에 A급이 온다는 건 당연히 싫었을 것이다.

 내가 고유진을 몰아냈다는 루머가 사실처럼 퍼졌다. 유진이 형이 직접 SNS에 글을 올려 해명해도 믿지 않았다.

 유진이 형은 8개월 차에 그만 뒀는데, 나도 이제 8개월째이다. 형이 활동한 시간을 앞지르게 됐지만 아마 팬들의 마음은 영원히 얻을 수 없겠지. 그건 나의 것이 아니다. 고유진의 것이다.

 그들의 아이돌의 자리를 차지한 내가 미움 받는 것은 당연하고, 그렇기 때문에 멤버들도 나에 대한 괴롭힘을 웃어넘기거나 모르는 척 넘어가고는 하는 것이다.

 지금처럼.

 “아~ 이게 웬일이에요. 가장 인기 많은 사람이.”

 “푸하하하, 이라. 뭐야. 크크크.”

 팬사인회 전 이벤트로 맨 앞줄 다섯 명을 불러서 원하는 멤버와 짧은 게임을 하는데, 나만 선택받지 못했다.

 멤버들은 인기 많은 네가 웬일이냐며 웃음을 터뜨렸고 팬들 사이에서도 웃음이 터져 나왔다. 촬영 온 작가님과 감독님들도 웃고 계셨다. 나는 가슴 한복판이 지끈지끈 거렸지만 8개월 경험을 쌓았다고 간신히 웃음 지을 수 있었다.

 “아, 이러면 우리 엄마는 나 진짜로 인기 없는 줄 안단 말이에요. 다시 해, 다시 해~ 저기 내 플카 든 분도 있는데.”

 “방송은 가식 없이 가야죠. 크크크. 형, 빨리 게임 진행해.”

 한새가 웃으면서 문 형의 진행을 재촉했다. 나 빼고 게임할 수는 없기 때문에 마지막으로 올라온 여고생 팬(범사마공쥬님이라는 플카를 들고 있었다)이 나와 짝이 되었다. 공쥬님의 얼굴은 울상이었다.

 작가님의 신호로 게임이 시작됐다. 제이, 한새, 문, 야단의 순서로 진행되는데, 첫 번째로 나선 제새끼가 팬의 어깨에 손을 두르고 다정하게 셀카를 찍었다. 곳곳에서 야유와 환호가 터져 나왔다.

 제이가 게임을 동안 나는 공쥬님을 달래야 했다. 리액션은 다른 멤버들에게 맡겨두고 공쥬님에게 속삭였다.

 “미안. 제이 싸인 받아다줄게요.”

 “난 셀카 찍고 싶단 말이에요..”

 “제이 게임 끝나면 부탁할 테니까 힘내요.”

 “..오빠, 제이 오빠랑 친해요?”

 “응, 친해요. 꼭 찍게 할게.”

 “많이 친해요..?”

 “많이 친하니까 걱정 마.”

 라고 말하자마자 아차 싶었다. 팬들은 고유진을 쫓아내고 들어온 내가 멤버들과 친한 걸 싫어한다. 공쥬님의 표정이 웃는 것도 아니고 우는 것도 아닌 애매한 표정으로 변해서 더 후회했다. 그렇다고 그렇게 친한 건 아니라고 갑자기 부인할 수도 없는 일이고. 하여튼 내 입이 방정이다. 항상 말조심해야 하는데. 괜히 제이한테 불똥이 튀진 않겠지?

 “알았어요. 그럼.. 셋이 같이 찍어요.”

 “응, 그래요.”

 가슴이 콕콕 찔리지만 일단 웃는 낯으로 끄덕였다.

 게임이 이어졌는데 1등은 제이팀이 했다. 꼴찌는 문 형팀이고 우리팀은 의외로 2등을 했다. 공쥬님이 생각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한 것이다. 1등 상품이 멤버가 소원 하나 들어주기 같은 거라서 그런 듯했다.

 “압도적인 점수로 1등하신 제이팀의 팬분, 제이에게 리퀘할 기회를 드립니다. 소원 말해주세요~”

 “꼭 제이 오빠여야 해요?”

 “앗, 제일 좋아하는 멤버가 제이 아니었어?”

 “맞는데... 소원은 다른 오빠한테 부탁하고 싶어서요.”

 빨간 코트를 입은 팬이 돌연 나를 쳐다봤다. 재미있게 관람하고 있던 나는 갑자기 시선이 마주쳐 깜짝 놀랐다.

 그 팬은 ‘영원한유진’이라고 적힌 플카를 들고 있었다.

 “이라 오빠가 ‘오인의 약속’ 한 소절 불러줬음 좋겠어요!”

 “와아아아!”

 “꺄아악!”

 환호가 쏟아졌다. 팬들은 큰 소리로 박수를 치고 있었다. ‘오인의 약속’은 유진이 형의 솔로곡이다. 난 한 번도 이 노래를 불러본 적 없었다. 내가 감히 건드릴 생각조차 안 했다.

 “오오, 이라 버전의 ‘오인의 약속’ 궁금하네.”

 “소원 괜찮다~~~”

 한새는 휘파람까지 불면서 바람을 잡았다. 나는 방송 카메라와 팬들, 멤버들을 번갈아 보았다. 문이 형이 그윽하게 미소 짓고 있고, 야단이는 눈을 초롱초롱 빛내고 있었다. 한새는 시끄럽게 수선을 피웠고.. 제이는.. ..저 미간의 주름은 뭐야. 대놓고 못마땅해 하고 있다.

 나도 유진이 형 노래 건드리기 싫거든? 일종의 성역인 거 안다. 그래서 지금까지 커버하지 않은 것이다.

 “빨리 해, 빨리 해!”

 “불러줘! 불러줘!”

 짧은 시간에 많은 고민을 했다.

 못 불러야 할까? 끝내주게 잘 불러야 할까?

 어떻게 해야 욕을 덜 먹을 수 있을까.

 하지만 답은 찾지 못했다. 고민할 시간이 많았어도 내가 욕 먹지 않을 방법 따위는 찾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포기하고 입술을 열었다. ‘오인의 약속’이 음울한 노래라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이거 제가 만든 쿠키에요. 오빠, 바닐라 쿠키 좋아한다고 해서..”

 “집에서 담근 무화과 잼이랑 유자차도 갖고 왔어요.”

 팬사인회에서는 많은 종류의 선물을 해준다. 손편지, 인형, 생활용품 등등. 가장 많은 종류는 바로 음식이다. 오늘도 직접 만들었다는 과자나 빵 등을 한아름 선물 받았다.

 “고마워요. 잘 먹을게요.”

 난 활짝 웃으며 대답한다. 인형처럼, 기계처럼.

 팬사인회가 끝나고 매니저 형들이 숙소 거실에 멤버 이름이 적힌 박스들을 옮겨주었다.

 제이는 혼자 세 박스를 받았고, 다른 멤버들은 꽉 채운 두 박스이다. 나도 두 박스이긴 한데 한 박스는 널널하다. 내 박스에 담긴 물건들을 하나 허나 살피는데 한새가 요란하게 좋아한다.

 “오, 새로 나온 진동 휠이다! 이거 갖고 싶었는데 어떻게 알았지?”

 “야, 네가 좋아요 눌렀잖아.”

 “크크, 그렇지. 역시 어필을 해줘야 돼. 어, 문 형 그 신발 ㅇ사 한정판 돌핀 시그니쳐 no.5잖아요. 전세계에 100개밖에 없는 건데!”

 “그래? 조금 부담스러운데..”

 “야, 야단이도 돌핀5 받았네.”

 “네.. 감사하네요.”

 “똑같은 게 제이도 있어. 앗, 나도 있다. 이거 팬들이 우리 다 구해다 줬나보다.”

 그 말에 내 박스를 봤다. 여기 보고 저기 봐도 난 없었다.

 “우리 팬들은 다 능력자인가 봐. 신고 인증샷 찍어서 올리자.”

 “호들갑 좀 떨지 마라. 시끄럽게. 이라, 넌?”

 제이가 반갑지 않은 관심을 표한다. 나도 운동화가 하나 있긴 한데 멤버들 거랑은 다르다. 들어서 보여주자 제이는 대수롭지 않게 수긍한다.

 “하긴 네 사이즈는 구하기 어렵지.”

 글쎄. 과연 사이즈 탓일까 싶지만 그냥 나도 어쩔 수 없다는듯 끄덕였다.

 하지만 너도 나도 알지. 이건 나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팬들의 의견 표출임을.

 멤버들 모두 알면서 모르는 척 하고 있지.

 “야, 어차피 같은 브랜드고 같은 팬일 테니까 너도 그냥 신고 찍어. 빨리.”

 “지금?”

 “지금!”

 한새가 재촉해서 우리 다 운동화로 갈아 신었다. 한쪽 발씩 중앙에 모으고 인증샷을 찍었는데 나만 품번이 달라서 무척 민망했다.  혼자 다른데도 멤버들은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고 평범하게 넘겼다.

 우리 중 SNS를 열심히 하는 두 멤버, 한새랑 문 형이 바로 올렸다. 두 사람은 곧 팬들 반응 보느라 휴대폰에 빠졌다.

 에휴.

 속으로 한숨을 쉬고 박스를 마저 살폈다. 손편지들이랑.. 옷이랑.. 뭔가 조그만 장식용품이 많았다. 역시 제일 많은 건 음식들이다.

 이 중에 과연 진짜 먹어도 되는 음식이 있을까?

 솔직히 난 모르겠다. 엔돌핀의 팬사인회인데, 엔돌핀의 팬들은 날 미워하니까.

 두 볼을 붉히며 오빠 좋아해요 하던 귀여운 팬들도 사실 날 싫어하겠지. 그 아이가 준 과자 속에는 면도날이 숨어져 있을 거야. 많이 먹고 살 쪄, 다정하게 말해온 누나팬이 준 빵에는 농약이 들어있겠지. 첫 팬사인회 때 받은 바닐라 쿠키처럼.

 어째 선물 포장을 뜯을수록 마음이 가라앉는다. 옆에서 제이는 ㅇ브랜드 헤드셋을 꺼내들고 있다. 귀여운 분홍색 카드가 달려 있었다. 제이는 카드를 구김 하나 가지 않게 조심스럽게 들고 읽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생각했다.

 내가 꿈 꿨던 아이돌 생활은 이게 아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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