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아이를 완전하게 붙잡다.
어느 날처럼 아이는 아침부터 하는 일 없이 지루하게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
검술 스승인 강희왕이 색욕에 눈이 획하고 돌아가버린 강연왕에게 신혼이라는 구실로 저택에 끌려가 일주일째 수업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연말을 앞두고 있어 아이의 글공부 스승들은 연말정산을 하느라 정신이 없어 뜻하지 않은 방학이 시작되고 말아 아이는 지루하게 하루를 보낼 수 밖에 없었다.
어린 아이였다면 정원으로 나가 뛰어 놀았을 텐데 이제는 철이 들어서 그런 것도 하지 못하고 서고에서 가져온 책만 읽고 있는 것이 아이의 지루함을 그나마 덜어주는 방법이었다.
아이는 지루함을 더 이상 못 참겠는 지, 손에 쥐고 있던 책을 아무렇게나 던지고는 벌떡 일어나 방을 나섰다.
어릴 적, 아이의 호기심을 자극하던 정원은 이제 지루함만 주고 있어 아이는 새로운 놀이감이 필요했다.
매일 아이의 호기심을 자극하던 정원이 외면당하고, 아이가 가지고 싶다는 이유로 황제가 손수 잡아온 호랑이마저 외면당하게 되었을 때, 아이는 결심한듯 황제가 집무를 보고 있는 궁을 향해 달려갔다.
아이는 연말정산을 위해 이리저리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는 대신들을 물끄럼히 바라보며 자신과 놀아달라고 마구마구 신호를 보냈지만 바쁜 대신들은 아이와 놀아줄 시간이 없었다.
얼른 연말 정산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서 새해를 맞이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게으르게 연말 정산을 끝내지 못하면 황제가 벌을 내린다는 핑계로 휴가를 내어주지 않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백성이 행복하게 되려면 대신이 고단해야한다는 말을 손수 알려주는 친절한 황제였기에 대신들은 발바닥에 땀이 나도록 뛰어다닐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아이는 대신들이 자신과 놀아주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알게 되었는 지 아쉬운듯 처량하게 대신들을 바라보았다.
“어떻하지?”
“황후폐하께서 심심하신가봐?”
“쉿! 조용하고 얼른 서류 처리하게나”
“....으....황후폐하께서 이렇게 애처롭게 쳐다보고 계신데....”
“참게나. 우리 목숨은 하나라구”
“황후폐하 죄송하옵니다”
대신들이 아이가 모르게 속닥거리고 있는 사이 아이는 다시 한번 대신들을 뒤돌아보고는 기운 빠져서 어깨가 축 늘어진 상태로 터덜터덜 걸어가고 있었다.
대신들은 아이가 보이지 않자 긴장하고 있던 몸을 풀고 한숨을 내쉬었다.
“....휴....”
“황제폐하께서 하명하시지 않으셨다면.....”
“떼끼 이사람아. 황제폐하께서 보통 분이신가? 입조심하게!”
“맞네. 자네도 아시다싶이.....”
한 대신이 몸을 낮추고 목소리를 아래로 깔며 은밀하게 말하였다.
“황제폐하께서 황후폐하를 얼마나 많이 아끼시는 가”
“그렇지”
“내가 애용하는 물품을 만드는 대장장이에게 들은 이야기인데....”
“....음....그 모조 성*를 만들어준 그 전설의.....?....”
“그렇네. 그 전설의 대장장이가 말해준 거네. 황제폐하께서 은밀하게 부르셨다고 하네”
“정말인가?”
“그렇다네. 황후폐하의 10살 생신때 정조대를....”
“헉!!!”
더 이상 말하고 듣는 것이 두려웠는 지 대신들은 후덜덜 떨면서 모른척하고 서류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아직 어렸던 10살의 어린 황후가 정조대를 차고 있는 모습이 눈앞에 어른거리면서 자신들의 집에서 방긋 웃으며 뛰어노는 아이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아무리 세상에서 가장 높은 위치에 앉아있다하더라도 부럽지 않았다.
자신의 아이는 순진하게 웃으며 사랑을 받고 자랄 것이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어머니나 다름 없는 어린 황후처럼 황제에게 길들여지는 것이 아닌....
그렇게 황제가 아이에게 선물해준 정조대 때문에 대신들이 두려워하는 사이 아이는 황제가 집무를 보고 있는 궁의 중앙에 도착하였다.
황제의 집무실 앞에는 전국 각지에서 올라오는 서신과 서류들을 들고 있는 내관들이 줄을 서고 있는 데, 그것들은 연말 정산을 위한 것이었다.
평범한 사람들 같으면 한 달 동안 처리하여도 기진맥진 할 만한 양의 서류들을 금방 처리하는 능력을 가진 황제 덕분에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고 하여도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질릴만큼인지라 아이는 많은 서류에 압도당해서 선듯 황제가 있는 집무실로 들어갈순 없었다.
아이가 압도당해서 서있는 사이 아이가 온 것을 발견한 내관이 큰소리로 외치며 절을 하였다.
“황후폐하. 만세 만세 만만세!!!”
내관 하나의 외침에 모든 내관들과 나인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 절을 하였다.
아이는 끄덕이는 것으로 자신에게 절한 내관과 나인들에게 평신(平身)하는 것을 윤허하였고, 내관들과 나인들은 평신(平身)하여 잠시 멈추었던 일들을 다시 시작하였다.
내관들과 나인들의 외침에 황제는 자신의 어린 황후가 자신의 집무실 앞에 당도하였음을 알게 되었다.
평소 황제의 집무실을 아니 찾던 아이가 갑자기 찾아오자 황제는 아이가 찾아온 이유가 궁금해졌다.
최근 뜻하지 않은 방학으로 인해 하루종일 가만히 책만 보고 있다는 것만 알았지만 지루하게 지내고 있다는 걸 모르는 황제는 아이가 자신의 집무실로 들어오는 것을 느끼고 있으면서도 모른척하며 서류만 보고 있었다.
황제의 신경이 아이에게 집중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티내지 않아 아이는 황제가 자신에게 집중하고 있는 지 모르고 있었다.
지금 아주 많이 바쁘기에 자신이 온 것조차 모르고 있다고 생각한 아이는 조심스럽게 발 소리를 줄이고는 살금살금 황제에게 다가갔다.
아이가 앞에 섰음에도 모른척하는 황제는 곁눈질 하여 벼루 안에 있는 먹에 비춰진 아이가 장난기 어린 눈빛으로 자신을 보고 있는 것을 보았다.
아이는 황제가 자신이 왔음을 모르고 있다고 생각하고는 황제를 놀래켜주고 싶었다.
속으로 하나둘셋이라고 세면서 놀래키려고 하는 데, 갑자기 황제가 고개를 들었다.
“왔으면 얼른 내 무릎에 앉아야지 거기서 무엇을 하는 게냐”
“....힝....”
“놀래켜주려고 한게냐?”
시치미를 뚝떼며 아이에게 말한 황제는 아이가 자신의 곁으로 다가오자 얼른 아이를 품에 안고는 자신의 무릎 위에 앉혔다.
그리고는 옷이 가리고 있지만 확실하게 차고 있다는 것이 느껴지는 정조대로 인해 황제는 흐뭇한지 아이의 엉덩이를 다독임을 가장해서 쓰다듬고 있었다.
“그래. 무엇 때문에 온게냐?”
“형아. 나 심심해”
“우리 연이가 심심하다고?”
“응!! 나 밖에 나가고 싶어”
강연왕과 강희왕이 혼례식을 치룰 때에 아이는 무척 나가고 싶어했었다.
하지만 날파리가 꼬일까봐 두려운 황제는 아이가 궁 밖으로 나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고 그 덕분에 아이는 두사람의 혼례식을 볼수가 없었다.
다음에 궁 밖으로 데려가 준다는 약속을 받아냈지만 궁 밖으로 데려갈 생각이 없는 듯이 소식이 없는 황제로 인해 아이의 발만 동동 굴러질 뿐이다.
황제는 아이가 궁 밖으로 나가고 싶다고 말하자 은밀하게 아이의 엉덩이를 쓰다듬던 손을 멈추고 아이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렇게 나가고 싶은 게냐?”
“웅”
아이는 황제의 말에 얼른 끄덕였다.
그러자 따스하게 미소를 짓고 있던 황제의 얼굴이 차갑게 식으면서 집무실의 내부온도가 내려가기 하기 시작했다.
싸늘해진 황제의 표정을 보고 아이는 주눅이 들어버렸다.
“....형아가....나가게 해준다고....”
“그래서 나가고 싶다는 게군?”
“....아니....그게....”
황제는 아이가 제대로 말을 잇지 못하자 품에 안고 있던 아이를 떼어내었다.
“나가거라”
아이는 황제가 자신을 떼어낸 것이 충격적인데, 싸늘한 목소리로 쫒아내려고 하자 겁에 질려 황제를 쳐다보았다.
“조신하게 있지 못하고 나가고 싶어 하는 황후는 필요 없다”
황제의 말은 아이에게 상처를 주었다.
그저 한번만 밖으로 나가서 구경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책에서 나오는 세상이 궁금했을 뿐인데, 황제가 자신을 내치려고 하자 두려웠다.
아이는 황제에게 손을 뻗었지만 황제는 잔인하게 아이의 손을 내쳤다.
“나가지 않겠다는 게냐? 아니면 나가겠다는 게냐? 확실하게 말하거라”
아이는 자신의 손을 내쳐버린 황제로 인해 슬퍼졌다.
누구보다도 의지했던 자가 내치는 것은 어느 누구라도 견디기 힘든 일이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이의 세상은 황제가 만들어준 것이며 황제가 아니고서는 이루어진 것이 하나도 없었기에 내쳐짐으로 인한 그 충격은 더더욱 클 수 밖에 없다.
“네 스스로 나가기 싫다면 끌어내려주랴?”
-도리 도리 도리 도리
아이는 필사적으로 고개를 도리짓하였다.
그리고는 황제의 옷자락을 잡고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아이의 입은 굳어버려서 열리지 않았고, 몸은 버림받을 까하는 두려움에 사로잡혀서 미친듯이 떨리고 있었다.
황제는 아이가 자신에게 버려질까봐 두려워하며 매달리는 것을 즐기고 있었다.
이렇게 내치는 척을 하지 않으면 아이가 자신에게 완벽하게 길들여졌음을 확신하지 못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럼 어떻게 해주랴?”
아이는 황제의 말에 눈물을 흘렸다.
황제는 아이의 눈물에 마음이 짠해졌지만 차갑게 식은 표정을 바꾸지 않았다.
“.....시러....흑.....시러요....우아아아아앙!!!!”
아이가 울기 시작하자 황제는 그제서야 확신 하였는 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아이는 완벽하게 황제에게 길들여졌으며 새장이 없다고 하여도 날아갈수 없다는 것을....
“이리 오너라”
황제는 아이에게 다정하게 손을 뻗어주었다.
아이는 자신에게 뻗어진 다정한 손이 거둬질까 싶어 얼른 붙잡았다.
“황후는 함부로 밖으로 나가선 안된다. 알겠느냐?”
-끄덕 끄덕
-찰싹!
“제대로 대답하거라”
황제의 커다란 손이 엉덩이를 내려치자 아이는 아픈지 울쌍을 지었다.
황제는 아플게 분명한 엉덩이를 쓰다듬어주며 다시금 물었다
“조신하게 있어야 착한 황후다. 알겠느냐?”
“네!!”
그렇게 아이는 완벽하게 황제에게 속한 자가 되어버렸다.
새장이 사라져도 날아가지 못할 정도로 길들여 져버린 어린 새.
그 것이 아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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