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진정한 소년이 되다.
영인왕(永仁王)의 유품이 수도에 도착하였다.
처참했던 전쟁의 흔적을 담은 유품들은 제대로 관리가 이루어지지 않아 녹 쓸고 부셔졌지만 영인왕(永仁王)을 뜻하는 인장만은 사라지지 않아서 그것이 영인왕(永仁王)의 유품인 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영인왕(永仁王)을 죽음에 이르게 했던 상처를 보여주는 자국을 보며 선황제는 조용히 눈물을 흘렸고, 그의 곁에 있던 선황비는 그를 위로했다.
“연아. 아가. 이리오거라”
선황비는 선황제를 위로하면서 아이를 불렀다.
슬픈 분위기에 적응을 잘 못하고 낯설고 두려워서 황제의 뒤에 서서 황제의 옷자락을 잡고 있던 아이는 조심스럽게 선황비에게 다가갔다.
물론 황제의 옷자락을 잡은 손을 놓지 않고 있어서 황제도 아이의 뒤를 따라갔지만 말이다.
“네 아버지의 유품이다”
“아빠?”
“그래. 영인왕(永仁王) 전하”
아이는 조용히 영인왕(永仁王)의 유품들을 바라보았다.
황제는 아이가 그것을 만질 수 있도록 아이를 이끌었고, 아이는 조심스럽게 영인왕(永仁王)의 유품을 손으로 만지기 시작했다.
단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하고, 그저 영전 앞에 놓여 진 그림으로만 보았던 친아버지였지만 피가 이어진 사람이기에 그리웠었다.
단 한 번도 만나지 못하고 잃어버린 것이기에 아이는 마음이 아파왔다.
“형아. 나 이거 가져도 돼?”
영인왕(永仁王)의 유품은 모두 그의 능(陵)에 부장품으로 들어갈 예정이었지만 하나정도는 가져가도 된다는 듯이 황제는 끄덕였다.
아이가 집은 것은 영인왕(永仁王)이 생전에 애용하던 검이었다.
선황제가 직접 하사한 검의 날에는 용이 승천하는 그림이 새겨져 있으며 검을 감싸고 있는 검 집에는 영인왕(永仁王)을 뜻하는 화려한 꽃이 새겨져 있었다.
소중한듯 품에 영인왕(永仁王)의 검을 안은 아이는 조금이라도 영인왕(永仁王)의 온기를 느끼기 위해 눈을 감았다.
아이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나인들은 훌쩍이기 시작했고, 선황비 또한 조심스럽게 눈물을 흘렸다.
조금 우울했던 아침이 지나고, 그 우울함이 오후까지 지속되는 가운데 아이는 혼자 황후전의 한 방에서 앉아있다.
아이의 손에는 낡은 검이 들려져있고 그것을 쓰다듬는 아이의 손길은 다정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유모는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며 조용히 물러났다.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마음을 다스릴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조용히 생각하던 아이는 검을 조심스럽게 들어 검 집에서 꺼내었다.
-스르릉
타인의 손을 탔음에도 불구하고 검이 검 집에서 나오는 맑은 소리가 울려 퍼져 대장장이가 영혼을 다하여 만든 명검이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날이 잘 벼려있는 검신을 보던 자신의 얼굴이 비춰지는 것에 아이는 자신을 바라보았다.
황후전에서 자신의 친아비가 무엇을 했는 지 조차 모르던 어린 아이는 이제 사라지고, 그가 어찌 죽었는 지 알게 된 소년의 모습이 비춰지고 있었다.
복수를 생각하기도 전에 이미 대상을 잃어버린 소년은 자신이 가진 것을 지키고 싶었다.
어느 누가 그것을 해하려고 하면 최선을 다해 그것을 지키고 싶었다.
자신이 모르는 사이에 잃어버리고 그것을 그리워하는 것은....
“....하아....”
괴로운 한숨이 아이의 입에서 나오고, 그것을 들어줄 이가 없는 것이 어쩌면 불행일지도 모른다.
“아이고~!! 강연왕(鋼鍊王) 전하!! 들어가시면 안되옵니다~~”
“시꺼~!! 들어가야한단 말이닷!! 비켜랏!!”
“강연왕(鋼鍊王) 전하!! 조금만 기다려주십시오. 고하고 나서....”
-벌컥!!
“황후조카님!! 날 따라와~~!!”
강연왕(鋼鍊王)의 갑작스런 등장에 아이는 화들짝 놀라 강연왕(鋼鍊王)을 바라보았다.
강연왕(鋼鍊王)은 산적과 대적할만한 커다란 등치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재빠른 몸짓으로 아이의 앞에 섰다.
그러고는 안색이 좋지 않은 아이의 손을 덥썩 잡아 아이를 방에서 이끌어 황가 식구들만 이용하는 전용 연무장으로 향하였다.
황제가 아이에게 검술을 가르쳐 주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 다는 말을 듣게 된 강연왕(鋼鍊王)은 아이를 단련시키기 위해 연무장으로 데려온 것이다.
아무말 없이 데려온 것이라 산적이 이쁘니 하나를 납치하는 상황과 매우 흡사해져서 연무장으로 오는 동안 스쳐지나간 나인과 내관들에게 웃음을 주었지만 말이다.
“숙부님. 아파요. 놔주세요”
“아! 미안”
강연왕(鋼鍊王)은 아이의 손목에 붉게 손자국이 나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미안하다는 듯이 목덜미를 긁으며 사과했다.
붉게 손자국이 난 아이의 손목은 저녁 무렵이면 멍이 들 것이 분명했다.
자신의 반려가 상처 입으면 무시무시한 사신이 된다고 소문난 황제가 생각난 강연왕(鋼鍊王)은 부디 그가 모른척하고 넘어가길 바라였다.
황제가 강연왕(鋼鍊王)에게 항의하면 자신의 이복동생인 강희왕(江熙王)이 하극상을 벌인 자를 응징한다며 칼을 휘두를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겉모습은 유순한 학자인 강희왕(江熙王)은 이름만 들어도 적군들이 슬금슬금 피해갈 정도로 독하면서 강한 검사였다.
강희왕(江熙王)의 부대에 포로로 잡힌 적군이 제발 본국으로 보내달라면서 자신들의 군사기밀까지 선듯 내밀 정도였던 그 사건은 강희왕(江熙王)의 독함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강희왕(江熙王)의 독함을 매일 깨닿고 있는 것은 강연왕(鋼鍊王)이었는 데, 남들은 강희왕(江熙王)이 동생이니 강연왕(鋼鍊王)이 일부러 져주는 지 알고 있다.
사실은 자신의 등치보다 반토막이나 다름없는 강희왕(江熙王)이 강연왕(鋼鍊王)보다 훨씬 센데 말이다.
아무리 강연왕(鋼鍊王)보다 강희왕(江熙王)이 강하다고 말을 하여도 믿는 사람은 없었다.
그 덕분에 강연왕(鋼鍊王)이 남들이 있든 없든 상관없이 강희왕(江熙王)에게 맞고 사는 것일지도 모른다.
“여기 멍들어도 강희왕(江熙王)에게 말하지 마라. 응?”
“네”
지난번 강연왕(鋼鍊王)이 볼래 황후전에 쳐들어와서 아이와 놀았을 때, 서류를 다 처리하지 않고 갔다며 강희왕(江熙王)에게 뚜드려 맞는 장면을 아이는 목격했었다.
비오는 날 먼지날리듯 맞고 있는 강연왕(鋼鍊王)에게 동정심을 품은 아이는 그의 등을 토닥여주었다.
“절대 말 안할게요”
“정말?”
“약속할게요”
아이의 말에 헤벨쭉 웃은 강연왕(鋼鍊王)은 아이를 번쩍 안아 들어 올려주고는 “하하하”하고 웃으며 말하였다.
“사내끼리 약속하는 거다~”
“사내끼리 약속하는 건데 저도 약속하면 안되겠습니까? 형님”
“헉!!!!!!!!!!!!!!!!!!!”
뒤에서 들려오는 강희왕(江熙王)의 목소리에 강연왕(鋼鍊王)은 후덜덜 떨기 시작했다.
오늘 새벽 일찍 일어나서 서류를 처리하여서 밀린 것 하나 없고 강희왕(江熙王)에게 혼날 일이 없지만 이상하게도 강희왕(江熙王)의 갑작스런 등장은 강연왕(鋼鍊王)에게 두려움을 주었다.
마치 배불러서 사냥할 생각이 없는 육식동물이 나른하게 낮잠을 즐기려고, 초식동물이 쉬고 있는 곳에 턱 하니 등장했을 때, 자신을 해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두려워하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씨익! 형님! 연무장에 오셨으니 오랜만에 몸 좀 풀어볼까요?”
“자...잘못했어!!”
“무엇을요? 오늘 서류 다 처리하시고 오신 걸로 알고 있는 데요”
강연왕(鋼鍊王)은 후덜덜 떨면서 오늘만은 제발 맞지 않고 숙소로 돌아가길 원하였다.
씨익 웃는 자신의 이복동생이 매번 두렵지만 같은 곳에 부임하고, 함께 다니니 미칠 노릇이었다.
“황후폐하. 검술 수업은 내일부터 해도 되겠습니까?”
“형아가 허락했어요?”
“네”
아이는 자신을 지키고 싶다며 황제에게 검술을 배우고 싶다고 하였다.
그동안 반대하던 황제는 아이가 어느 정도 자란 상태이고, 교양수업으로서 기본적인 것을 가르치는 것 뿐이니 허락을 한 상태이다.
물론 아이가 나라를 지키는 장수가 되고 싶다는 장래 희망을 가지고 있는 지 꿈에도 모르지만 말이다.
“형아한테 얼른가서 고맙다고 해도 되나요?”
“네”
“숙부님 내일 뵐게요”
“안녕히 가십시오”
다정한 미소를 지은 강희왕(江熙王)이 아이를 배웅하는 사이를 틈타 강연왕(鋼鍊王)은 도망가기위해 슬금슬금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형님. 거기서 멈추시지요”
“헉!!”
“제가 매번 말하지 않았습니까. 황후폐하와 친견하실 경우 예를 갖추시라구요”
강희왕(江熙王)의 뒤에서 어둠의 기운이 날리기 시작하자 강연왕(鋼鍊王)은 본격적으로 도망가려고 했다.
하지만 강희왕(江熙王)이 더 빨랐다.
“다음에도 이런 하극상이 벌어지면 어떻게 한다고 했죠?”
“....하하하.....어떻게 한다고 했더라....;;;;;;....”
“씨익! 아시지 않습니까”
강희왕(江熙王)이 노골적이게 강연왕(鋼鍊王)의 목덜미를 쓰다듬자 강연왕(鋼鍊王)은 하늘을 바라보며 속으로 울부짖었다.
강희왕(江熙王)에게 목덜미를 제대로 잡히자마자 바닥에 엎어치기 당한 강연왕(鋼鍊王)은 그날도 어김없이 비오는 날 먼지날리듯 열심히 맞았다.
“끄아악!! 항복 항복!!!”
-퍽 퍽 퍽 퍽 퍽 퍽 퍽 퍽
“제가 하극상은 용서하지 않는 다고 했습니다!!!”
-퍽 퍽 퍽 퍽 퍽 퍽 퍽 퍽
과격한 매타작 소리가 연무장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때리는 것도 힘든지 강희왕(江熙王)은 이마에 고인 땀을 훔치면서 강연왕(鋼鍊王)을 자근자근 밟아주었다.
“다시 한번 하극상을 벌이면 죽는 다고 말했죠!!”
-퍽 퍽 퍽 퍽 퍽 퍽 퍽 퍽
“.....미....미안~~~!!!!”
“말 안 듣는 짐승은 이렇게 패라고 했습니다!!!”
-퍽 퍽 퍽 퍽 퍽 퍽 퍽 퍽
강연왕(鋼鍊王)에게 있어서 체면이 구겨질 만큼 맞는 것이라 아무도 없는 연무장에서 맞는 것이 다행이겠지만 사실 불행이었다.
누구하나 말려줄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강연왕(鋼鍊王)은 언제 철이 들어서 동생에게 매 맞지 않게 될 런지 누가 알까?
저기 하늘에서 날아다니는 까마귀가 알까?
아니면 한가롭게 떠다니는 구름이 알까?
“살려주~~”
“닥치고 반성하세욧!!”
-퍽 퍽 퍽 퍽 퍽 퍽 퍽 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