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어린황후-25화 (26/42)

04. 연이는 공부중

천재는 선천적인 뛰어난 두뇌와 후천적인 확실한 교육으로 만들어진다.

만약 선천적으로 뛰어난 두뇌를 가지고 있다 하여도 확실한 교육이 없다면 뛰어난 두뇌를 썩히는 것과 다름이 없으며, 뛰어난 두뇌가 없다 하여도 확실한 교육이 있다면 얼마든지 천재를 만들 스승을 만들 수 있다.

아무도 못 만나게 하고 자신만 차지하려는 욕심이 있는 황제라도 아이의 선천적인 두뇌를 썩히기가 아까웠는 지 대신들 중에서 뛰어나고 청렴한 자들을 아이의 스승으로 삼았다.

아이의 스승으로 내정된 대신들은 아이가 황후라는 지위에 앉아있음에도 제자로서 예를 갖추길 바라였고, 아이는 스승을 청하기 위한 예를 행해야했다.

내궁 깊숙한 곳에 계셔야하는 지엄하신 분이라서 출궁하여 스승이 될 대신들의 집으로 가 제자로 삼아주길 청한다는 예를 친히 갖출 수는 없었지만 대리인을 통하여 예물을 스승이 될 대신들에게 보내었다.

황제의 명령이 있다면 예식도 없이 그냥 제자로 있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스스로 원하여 정식으로 그들의 제자가 되었다.

그것이 아이의 나이 11살 때의 일이었다.

14살이 된 지금 아이는 스승들의 마음을 흡족하게 할 정도로 많은 지식을 습득했으며, 아이의 생활 습관이 하나하나 바뀌는 것에 스승들은 감동하였다.

매일 같이 뛰어노느라 바빴던 아이는 차분히 앉아서 책을 읽을 줄 알게 되었고,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는 것에 기뻐할 줄 알게 되었다.

그것에 크게 만족하는 바로 황제였다.

아이가 혹시라도 황궁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는 사이 누군가와 눈이 맞을 까 걱정을 했었는 데, 아이가 차분히 앉아서 공부만 하고 있으니 눈 맞을 시간도 없지 않겠는 가.

황제는 아이의 호기심을 끊임없이 자극하여 공부를 시키도록 명하였고, 스승이 된 대신들은 그러한 명이 없다고 하여도 아이에게 끊임없이 지식을 전수하였다.

“오늘 공부를 너무 많이 하셨으니 옛날 이야기 하나 해드릴까요?”

“옛날 이야기?”

“네”

아이의 스승 중에서 가장 나이가 적으며, 황제의 오랜 친구인 우대신 하율 장계석의 물음에 아이는 기뻐하였다.

14살이 되었음에도 옛날이야기를 좋아하는 아이였다.

지금은 많이 자라서 스승의 무릎 위에서 들을 수는 없지만 잘 듣기 위해 스승의 곁에 앉은 아이는 눈망울을 초롱초롱 빛내며 그의 이야기가 시작되길 바라였다.

“불과 얼마전의 일입니다. 아국(我國)의 변방에는 언제나 아국(我國)에 침입하려는 이방민족들이 많았죠. 아국(我國)은 물이 풍부하고 날씨가 좋아 2모작도 가능한 나라여서.....”

아이는 계석의 이야기를 놓칠세라 집중하여 듣고 있었다.

아이의 스승은 아이에게 이야기로나마 아이의 아비가 얼마나 용맹한 사람이었는 지 알려주고 싶었다.

“영인왕(永仁王) 전하는 용맹하신 분입니다”

“영인왕(永仁王) 전하? 아빠?”

“예. 아기씨의 친부이신 그분은 황족이심에도 선방에 서셨죠. 그리고 다친 동료들을 놔두고 가시는 분이 아니셨습니다”

계석의 말에 아이는 크게 기뻐하였다.

언제나 영정에 바쳐진 그림만으로 보던 친부였다.

그런 친부에게 그리움만 가지고 있던 아이는 누군가에게 자신의 친아비가 칭찬받고, 그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으니 기뻐하는 것은 당연했다.

“엄마는?”

“영인왕비(永仁王妃)마마는 뵌적이 없습니다”

아이는 한 번도 본적 없는 어머니에 대해 그리움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녀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는 사람이 없어서 안타까웠다.

그런 아이의 마음을 알아차린 계석은 아이를 위해 영인왕(永仁王)에 대한 이야기를 더 많이 해주었다.

“나도 아빠처럼 용맹한 장수가 될 수 있을 까?”

아이의 질문에 계석은 대답해 줄 수 없었다.

대부분의 황족들은 가장 힘든 곳에서 나라를 위해 싸우고 있지만 지엄하신 나라의 어머니인 아이가 그들처럼 변방으로 가서 침입자를 막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만약 황후가 아니었다면 갈수 있었는 지는 모른다.

하지만 황후라는 지위에 앉은 것은 절대로 변하지 않은 사실이었기에 계석이 대답하지 못하는 건 당연했다.

혹시라도 아이가 자신의 아비 영인왕(永仁王)처럼 전쟁터로 나가겠다고 할까 싶어 계석은 아이의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리기로 했다.

“아기씨. 황후전의 정원에 자라고 있는 꽃의 종류가 몇 개인지 아십니까?”

계석은 아이의 호기심을 자극할 만한 이야기를 했지만 아이는 어느새 꿈을 꾸고 있었다.

아버지처럼 용맹한 장수가 되어서 이 나라를 지키는 꿈을....

그 꿈이 이루어질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이루어 질 수 있을 지 기약이 없는 꿈을 아이가 꾸는 시각과 같은 시각.

퇴청하기 전에 오후 조례를 하고 있는 대신들은 긴장으로 인해 땀을 흘리고 있었다.

식은땀조차 흘리다 못해서 이제는 땀이 바닥에 뚝뚝 떨어질 정도까지 위기에 처한 대신들은 황제가 한마디라도 좋으니 입을 열어주길 바라였다.

입청한 아침부터 퇴청해야할 지금까지 한마디도 안하고 싸늘함만 지닌 황제의 모습에 대신들은 다시 한번 피의 숙청이 일어나지 않을 까 두려워했다.

4년 전, 있었던 피의 숙청은 전국적으로 행해진 것이며, 그로인해 죽은 자들이 수천이었기 때문이다.

기생충처럼 살아가던 소수의 황족들까지 제거되었을 정도로 철저하게 행해졌던 피의 숙청은 대신들에게 있어서 악몽과도 같았다.

조금이라도 연줄이 닿은 자가 피의 숙청을 당하면 자신도 당할까 싶어 두려움에 떨었기 때문이다.

두려움에 떠는 대신들 중에서 가장 두려움에 떠는 자는 좌대신 계백이었다.

그는 사직서를 쓰고 낙향하리라 마음을 먹었지만 그것을 황제가 허락해줄지 의문이었다.

감히 자신의 여식이 황제의 눈에 들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것도 후회스럽고, 자신의 여식이 함부로 입을 놀리도록 놔둔 것 또한 후회스러웠다.

하지만 이미 벌어진 일을 되돌릴 수는 없었다.

“그대들 스스로 처리하겠는 가? 아니면 짐이 직접 처리하겠는 가? 그대들이 선택하게”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말이 떨어지자 대신들은 더더욱 머리를 조아렸다.

“좌대신 계백”

“예. 폐하”

떨리는 목소리로 답한 좌대신 계백은 올 것이 왔다는 것을 알고는 식은땀을 잔뜩 흘렸다.

“그대의 여식이 내 사랑스런 황후의 생일 연회를 망쳤다네”

“....통촉하여주시옵소서....”

“통촉으로 될 일인가?”

이미 차려진 먹이를 눈 앞에 두고 있는 황제는 배부른 야수처럼 나른하게 말하였다.

자신의 사랑스런 황후를 모욕한 여자를 잊지 않았기에 자신의 앞에서 엎드려서 덜덜 떨고 있는 자가 하찮게 보였다.

그동안 그토록 말 하였는 데도 귀하디 귀한 자신의 아이를 상처 입히는 자가 있으니 황제가 화나지 않는 다면 이상한 것이다.

“한번 말해보게. 그대의 여식이 귀하디 귀한 황후에게 모욕한 이유를...”

“.....부디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통촉이란 말은 그만하고, 어서 말해보게. 그대의 여식은 말을 너무 많이 하던데, 그대는 한 마디도 제대로 못하는 겐가?”

“....폐....폐하....”

“그대가 나라일을 하고 있는 게 이상할 정도군”

이제 확실하게 드러난 황제의 진심이다.

좌대신 계백은 사직서를 써서 낙향하는 게 아니라 파직당하고 유배를 갈 것이라는....

자신의 가문을 일으켜보고 싶었던 좌대신 계백은 자신의 꿈이 좌절 된 것을 알게 되었다.

여식의 입단속을 못해서 유배를 가게 될 좌대신 계백을 보며 대신들은 더더욱 자신의 가솔들을 단속해야겠다고 결심하였다.

한 사람의 입놀림 때문에 가문을 망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높은 자리에서 대신들을 내려다보던 황제가 자리에서 일어서서 집무전을 나서자 대신들은 조심스럽게 쉬던 숨을 크게 내쉬었다.

혹시라도 좌대신 계백이 자신들에게 도와달라 요청할까봐 대신들은 황급히 집무전을 나섰고, 좌대신 계백은 자신의 여식을 탓하며 집으로 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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