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어린황후-23화 (24/42)

02. 갑자기 등장한 라이벌?

올해로 14살이 된 아이를 위해서 황제는 연회를 크게 열었다.

평소 연회를 열지 않는 황궁인지라 일 년에 한번 있는 이번 연회는 크게 연다고 해도 내탕금을 낭비하는 것은 아니었다.

평소 연회를 많이 열었다면 내탕금 낭비라고 하며 탄핵을 받을 일들이지만 그렇지 않아서 간만에 있는 연회는 대신들에게 기다려지는 휴식이기도 했다.

황제가 솔선수범해서 황국에서 연회를 많이 열지 않다 보니 대신들은 스스로 자제하였고, 그 덕분에 낭비하는 자들이 없어 나라가 안정한 것은 당연했다.

불과 14년 전 만해도 외부에서 침입하는 이방민족으로 인해 전쟁을 하느라 한동안 비어있던 국고는 어느새 꽉 채워져 낭비가 필요할 만큼 넘쳤다.

“나 이거 싫어!”

“아기씨께서 이것을 꼭 하셔야하는 걸요”

“무겁단 말이야”

아이는 고집을 부리며 보석으로 한껏 치장되어 있는 장신구를 거부했다.

화려하고 아름다워서 누구나 탐낼만한 장신구인데, 아이는 무겁다는 이유로 거부하고 있어 답답한 것은 아이를 치장하는 유모와 나인들 뿐이었다.

아이가 아름답게 치장해야 황후전의 체면이 선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는 거부의 표시로 침방 나인이 몇날 몇일동안 밤을 새워서 수를 놓은 화려한 옷만 입은 채 연회장으로 향했다.

“아기씨~”

유모가 장신구를 들고 아이를 따라가 보았지만 아이는 한번 결정한 일은 절대 번복하지 않을 정도로 고집이 센지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평소 검소한 황제의 교육 덕분인지 아이는 보석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물론 황제는 사랑스런 자신의 아이에게 퍼주고 싶어 안달하지만 말이다.

아이가 치장하느라 시간이 많이 걸려서 황제가 먼저 연회장으로 입장하였다.

가족과 함께 참석한 대신들은 황후가 곁에 없어서 싸늘한 황제를 보며 자세를 바로하며 예를 갖추어 절을 하였고, 황제는 그들을 그저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황후가 곁에 없다면 황제는 자신의 눈에 거스르는 자의 목을 단번에 벨 수 있는 자였다.

“좌대신 중에 뇌물을 받는 자가 있던데....”

황제의 말이 떨어지자 대신들은 모두 긴장하기 시작했다.

특히 좌측에서 집무를 보는 자들은 더더욱 긴장했다.

그들 중에 누가 뇌물을 받아서 황제의 심기를 건드렸는 지 몰라도 자수해서 광명 좀 찾으라고 속으로 외치고 있었지만 자신이 뇌물을 받았노라고 고하는 대신은 없었다.

“뇌물은 받은 자는 스스로가 무엇을 하고 있는 지 알고 있겠지?”

“통촉하여주시옵소서”

“통촉이란 말 하지 말고 그대들이 스스로 찍어내라”

사랑스런 황후의 탄신일이기 때문에 황제는 그들 스스로 해결하도록 했다.

황제가 나서면 얼마큼 커다란 숙청이 될지 알고 있는 대신들은 뇌물을 받은 자를 원망하였다.

매해 모든 대신들이 모이는 연회가 시작되면 대신들은 황후가 황제와 함께 입장하기를 원했다.

황후와 입장한 황제는 황후에게 무언가를 해주느라 바뻐서 대신들에게 신경을 쓰지 않기 때문이다.

조하 때에는 황후가 한번도 참석한 적이 없어서 대신들에게는 스트레스 성 위염까지 다시 돋구게 만드는 시간이었는 데, 연회에서까지 이렇게 괴롭히니 대신들은 죽을 맛이었다.

차라리 변방으로 가서 국경을 지키고 싶다고 요청하고 싶을 정도로 말이다.

“황후 폐하 납시오!”

송내관의 음성이 천상에서 내려온 선녀의 목소리보다 더 고울 수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대신들은 황후를 반겼다.

처음 만났을 때에 너무 어렸던 황후는 이제 아름다운 소년이 되어서 그들의 앞에 서있고, 황제의 곁에 앉아있음에도 전혀 꿀리지 않는 기품을 지니고 있어서 대신들은 감동하고 있었다.

정식적으로 황후의 스승으로 알려진 대신은 손에 꼽히고 있는 데, 그중에서 하나는 아국(我國)에서 가장 학식이 높고 고귀한 인품으로 유명한 이였다.

스승을 잘 선택한 덕분에 어린 황후가 황제와 달리 따스한 성품을 가지게 될수 있었다며, 스승을 향해 감사하지 않는 대신들이 없다는 게 황궁에서의 일반적인 여론이었다.

언제 싸늘했냐는 듯이 겨울을 물리친 봄 장군 마냥 따스해진 황제는 자신이 귀하게 여기는 어린 황후가 착석할 때까지 시선을 떼지 않았다.

긴 옷 때문에 착석하다가 넘어지면 어쩌나 걱정하는 황제의 시선을 느낀 황후는 착석하자마자 황제를 보며 살며시 웃었다.

그리고는 조그마하게 황제가 들릴 정도로 말하였다.

“형아. 배신자”

“누가 배신자라는 게냐”

“치....나 치장하기 싫었는 데....”

“치장하니 예쁘지 않느냐”

“형아 눈에만 이뿌면 된다며?”

황후의 말에 황제는 미소를 지었다.

황제의 눈에만 예쁘면 되는 것은 당연했다.

그런데 문제는 자신의 눈에 예쁜 것은 타인의 눈에도 예쁘다는 것이다.

마음에 들지 않은 이유가 있었지만 황제는 못 마땅함을 드러내지 내지 않았다.

두 사람이 닭살 대화를 나누는 사이, 그 대화를 들을 수 있는 것은 옆에서 시중드는 나인과 내관들 뿐이라는 게 다행일지도 모른다.

연회장에서 펼쳐지는 황제의 팔불출 행각에 매년마다 자신이 잘못했나 싶어서 앓아눕는 대신들이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눈물을 뿌리거나 사직서를 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아이는 그 말을 끝으로 기품 있는 태도를 유지하며, 자신이 좋아하는 달달한 요리를 먹기 시작했다.

황후가 아직 어린 아이 였을 때에는 늙은 재상의 무릎 위에 앉아있어도 손자 같아서 귀엽게 볼 수 있겠지만 지금은 어느 정도 자라서 철없이 굴면 안되었기에 몇 년간 배운 기품 있는 태도를 흐트러뜨리지 않았던 것이다.

보일듯 말듯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이 좋아하는 달달한 음식을 먹고 즐기던 아이는 갑자기 한 여인이 자신들 앞에 서자 호기심을 보였다.

“황제폐하! 소녀 폐하의 아이를 낳고 싶습니다”

한 여인의 외침에 어느 누가 간 큰 소리를 하냐며 연회장이 웅성거림으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음악마저 멈춘 상태라 웅성거림은 더더욱 커져만 갔고, 황제는 자신이 썩은 물을 덜 제거했냐는 생각에 살기를 풀풀 날리기 시작했다.

황제의 살기에 기가 눌린 대신들은 입을 다물었고, 연회장을 가득 채우던 웅성임은 사라져 바늘이 떨어지는 소리까지 들릴 수 있을 정도로 조용해졌다.

황후가 곁에 있다면 살기와 냉기를 날리지 않던 황제였다.

그런 황제가 살기를 날리기 시작한 것에 눈치 없는 여인은 자신의 말이 받아들여질 것이라는 듯이 고개를 치켜들고 있었다.

“그대는 누구?”

조용함을 깨고 한 사람이 여인에게 누구인지 물었다.

여인은 자신에게 질문한 사람이 자신의 연적이 될 황후라는 것을 알고는 그 질문을 무시하고 황제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황후의 질문을 무시해버린 행태에 여인의 아비를 포함한 모든 대신들은 여인이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개나 소나 씨받이 하려고 난리군”

황제의 싸늘한 말에 여인은 기가 죽었지만 이대로 물러설 수는 없었다.

월하노인이 자신에게 정해준 반려가 황제라고 굳게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월하노인이 남자와 남자를 부부로 이어줄리 없다고 생각해 자신이 당연하게 황제의 총애를 받는 여인이 될수 있다 생각했다.

게다가 누가 뭐라고 해도 용자를 낳은 여인이 황제의 총애를 가장 많이 받으며, 미래에 영광을 얻는 것이 당연한 것이었다.

“그대가 누구인지 물었네”

황후의 온화한 말에 여인은 황제로 인해 죽었던 기를 살리며 대답했다.

자신이 누구인지 알려야지 황제가 자신을 알아봐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여인은 황제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좌대신에 속한 아비의 직위와 이름을 말하였다.

“좌대신이라....가지가지 하는 구만”

가득이나 좌대신 쪽에서 뇌물 수수혐의가 있으니 알아서 처리하라고 말한 황제였다.

황제에게 찍혀있는 상태인데 좌대신 쪽에서 철없는 여식이 나왔으니 눈이 캄캄한 것은 좌대신들이었다.

“그럼 그대가 용정을 받아서 용자(龍子)를 잉태하겠다는 게요?”

“당연합니다. 황후마마”

“그대가 어찌 용자를 낳겠다는 건지 말해주겠소?”

“황후마마께서는 사내니 그런거 몰라도 됩니다. 이건 여인이 할 일이지 사내가 해야할 일이 아니거든요”

폐하도 아닌 마마라고 낮게 부른 여인은 당연하다는 듯이 건방지게 말하여서 더더욱 황제의 분노를 사고 있었다.

그것을 모르는 것이 여인에게 있어서 불행일지도 모른다.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자이니 자신이 아이를 낳아야한다고 건방진 말을 하는 여인을 내려다보며, 언제나 따스했던 황후의 표정이 굳어버렸다.

“그대는 한가지 모르는 것이 있네”

하도 어리버리 해서 스승인 재상의 속을 많이도 썩혔던 어린 황후는 재상의 피땀어린 교육을 받았다.

그렇기에 남들 앞에서는 어린 아이의 행동을 보이지 않는 황후는 황제에게 배운 싸늘한 모습으로 여인에게 말하였다.

“그대보다 낮은 이가 이곳에 있다고 생각하는 가!”

조용히 말하기만 하고 아직 어린 나이인지라 웃는 것이 귀여운 황후를 얕보았던 여인은 황제와 다름없는 기백을 가진 황후의 모습에 놀라 주저앉고 말았다.

“좌대신 계백!! 그대는 자녀 교육을 어떻게 한 게야!! 예를 갖추지도 못하는 여식을 데려와서 지엄하신 황궁을 우롱하는 겐가!!”

철없는 여식을 잘못 교육시키고, 여식이 황제의 후궁이 되어 총애를 받을 수 있다는 마음을 조금이나마 품은 좌대신 계백은 황후의 호통을 받기 시작했다.

좌대신 계백은 황후가 아직 어리니 조금 우숩게 보았을 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여식이 방종한 행동을 함에도 불구하고 나서서 제지하지 않았었던 것이라고 연회장에 있던 눈치 빠른 자들은 그렇게 판단했다.

어린 황후는 평소에는 따스하지만 화가 나면 어느 누구보다 무서운 존재였던 영인왕(永仁王)의 핏줄 답게 그를 많이 닮아있었다.

황제는 귀하디 귀한 자신의 어린 황후가 자신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하는 모습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어린 황후는 이제 황제가 나서지 않아도 스스로 방어할 능력이 생긴 것이다.

“좌대신 계백!! 나를 우롱한 그대를 잊지 않겠소!!”

즐거워야할 연회는 어느새 파탄이 나버렸다.

분노한 황후가 연회장을 나서자 대신들과 가족들은 황급히 황제께 절을 하고 황제의 처분만을 기다렸다.

좌대신 계백은 자신의 집안이 다시 일으켜지기도 전에 풍비박진하게 생겼다고 한탄하고 있는 사이 분위기 파악 못하고 입을 놀리고 있던 좌대신 계백의 여식만이 황제의 시선을 받고 있는 것에 기뻐할 뿐이다.

“짐은 주제 파악 못하는 것들을 싫어 한다”

한바탕 피바람을 예고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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