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연이의 생일 연회
초야까지 치룬 황후는 베일에 쌓여 있는 존재였다.
태어나자마자 황궁에 들어오게 된 황후는 황궁 가장 깊은 곳인 황후전에서 선황후의 손에 키워졌고, 2살이 되면서 혼례를 치루었기 때문이다.
매수해둔 나인과 내관들은 돈을 돌려주면서까지 황후에 대해 묻는 것을 자제해달라고 부탁했으며, 그들의 뒤에 황제가 있음은 당연했다.
황궁으로 출퇴근 하는 이들은 황후가 어떻게 생겼는 지 조차 모르고 있는 데, 연무장에서 훈련을 받는 무관들은 황후를 지킨다는 명분하게 어린 황후와 친견할 수 있었다.
권력의 중심이 아닌 그저 황후전을 채우는 존재로만 여겨지면서 어린 황후는 대신들의 기억에 잊혀지게 되었고, 어린 황후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는 이들은 점차 사라지게 되었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황제가 초야를 치룬다는 발표를 하게 되고, 황제의 후계자에 대한 상소가 올려지게면서 잊혀졌던 황후가 표면으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암살 미수 건수가 점점 늘어나면서 황제가 직접 나서 황후의 암살을 기도한 자들을 처벌하고, 권력과 탐욕에 물들어있던 공신들의 후손들을 철저하게 제거하면서, 황후전은 대신들의 관심을 집중적으로 받게 되었다.
황후가 태어나기 전에 이미 의절을 당한 황후의 외가가 황제로 인해 초토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폐서인이 되지 않은 황후는 10살 생일을 맞이하여 공식석상에 오르게 되었다.
황제는 자신의 황후가 10번째 생일을 맞이하여 크게 연회를 벌인다고 알리고는 대신들과 그 가족들을 초대하니 참석하라고 말하였다.
황후가 처음으로 대신들 앞에 서게 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 어떤 존재일지 대신들은 궁금했다.
대신들의 궁금증이 가득한 가운데 황제의 명령 하에 모든 것이 완벽하게 준비된 연회는 황후전이 아닌 황제전에서 치러지게 되었다.
황후전은 대신들이 사사로이 들락날락 거릴 수 있는 곳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대신들과 그들의 가족들은 황제전에서 치러지고 있는 연회장에서 정갈하게 차려진 음식을 먹으며 아직 도착하지 않은 황제와 황후를 기다렸다.
-탕! 탕! 탕!
갑자기 음악이 끊지가 황제의 최측근인 송내관이 대리석 바닥을 막대기로 세 번 치는 소리가 연회장 곳곳에 울려 퍼졌다.
“황제폐하 납시오!”
송내관의 말에 대신들과 그들의 가족들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신들의 눈에 익숙한 황제가 들어오자 황제를 처음 보는 대신들의 가족들은 감탄의 탄성을 질렀다.
특히 대신들의 여식들이 감탄의 탄성을 많이 질렀는 데, 그녀들은 황제의 눈에 띄고 싶었는 지 튀는 행동을 할 뻔하다가 아비들에게 제지당하였다.
후궁전의 후궁들이 흘린 피가 강을 이룰 정도였다고 소문이 들릴 정도로 황제는 후궁들을 모두 제거 하였는 데, 자신들의 여식마저 그런 꼴을 당할까 싶어 제지한 것이다.
-탕! 탕!
“황후폐하 납시오!”
황제가 자리에 착석하자 송내관은 황후의 도착을 알렸다.
대신들과 그들의 가족들은 전혀 알려지지 않은 황후가 어떤 존재인지 궁금해서 기대가 가득한 표정으로 상석을 바라보았다.
“형아!!!!”
황후를 상징하는 봉황이 수놓아져있는 붉은 비단옷을 입은 어린 아이가 황제를 향해 달려가자 충성심이 대단한 몇몇 대신이 나서 아이를 제지하려고 했다.
그러자 그림자 호위가 대신을 막아서고 아이는 어느 누구의 제지 없이 상석에 앉은 황제 앞에 도착했다.
“형아! 당과가 없어졌져!!”
“헉!”
황제의 옷자락을 잡으며 아이가 말하자 모두들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대신들과 그들의 가족들이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하든 말든 상관없이 아이는 황제의 무릎위로 낑낑거리며 올라갔다.
“아침에 당과산(山)있었져!! 그런데 없어!!”
“그래?”
“웅!! 근데 당과 어디쪄?”
아이의 물음에 황제는 다정하게 아이의 엉덩이를 다독여주며 대답했다.
“연이 네가 다 먹지 않았느냐”
“아니야. 나 안먹었져!!”
“형아가 봤는 데? 연이가 다 먹는 거”
사실 아이의 이빨이 썩을 까봐 산더미처럼 쌓여있던 당과는 황제의 묵인하에 유모가 치워버린지 오래다.
아이는 연회를 참석하기 위해 옷을 갈아 입던 중 당과가 사라진 것을 알아차리고는 황제에게 당과가 사라졌음을 이르러 달려온 것이다.
난생 처음으로 치루는 생일 연회는 이미 아이의 머릿속에서 사라진지 오래였다.
아이의 주된 관심은 오직 당과였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과일과 꿀에 절인 대추도 곧잘 먹었지만 지금은 당과만이 최고 순위로 올라져 있었다.
아이가 좋아하는 것들의 순위를 보면 황제와 당과는 이미 동급이었다.
“아니야! 연이 안 먹었져!!”
아이는 안 먹었다고 항변해보지만 황제는 모른척하며 시치미를 뗐다.
그러한 두 사람의 모습은 정식으로 예를 갖춰야하는 대신과 그들의 가족들 앞에서 적나하게 공개되고 있었다.
아니, 황제가 사실은 팔불출이며 보모와 동급이라는 사실이 드러나게 된 것이다.
“나중에 또 만들어주마”
“언제?”
“내년 네 생일날”
“정말?”
“그래”
아이는 내년 생일에 당과산(山)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사라져버린 자신의 당과를 잊어버리고 말았다.
이렇게 단순한 아이니 황제가 아이를 꼬시는 것이 쉬운 것일지도 모른다.
“....아....하례는 되었다. 그냥 착석하라”
황제가 귀찮다는 듯이 말하자 대신들은 눈앞이 캄캄해지면서 두려움마저 느꼈다.
자신들이 알고 있던 황제와 너무도 달라서, 혹시라도 자신들의 꼬투리를 잡으려고 하나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더더욱 예를 갖추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가족들과 함께 상석에 있는 황제와 황후에게 절을 올렸다.
“황제폐하 만세 만세 만만세, 황후폐하 만세 만세 만만세”
커다란 소리가 연회장을 가득 채우자 아이는 놀란듯 눈물을 글썽였다.
이래서 황제가 하례를 포함한 모든 예를 갖추지 않아도 된다고 한 것이었다.
“....우....우....”
아이의 울음소리가 시작될 조짐이 보이자 황제는 가까이에 있는 과일을 하나 집어 아이의 입에 넣어주었다.
아이는 과일의 달콤함에 울려고 했던 것을 잊은 채 과일의 단맛을 즐겼다.
“하나 더 주랴?”
“웅!!”
아이는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크게 끄덕였고, 황제는 아이의 웃음을 보며 기분이 좋아 아이가 좋아할만한 것들을 입에 조금씩 넣어주었다.
마치 어미새에게 먹이를 받아먹는 것처럼 입을 벌리고 황제가 주는 음식들을 받아먹던 아이는 자신들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이들의 시선을 느끼고는 그들에게 시선을 주었다.
“안녕? 베시시”
아이가 웃으며 인사를 하자 대신들은 하얀 모래석상이 되어버렸다.
황제는 아이의 귀여운 인사가 대신들에게 향한 것이 마음에 안 들었지만 오늘은 자신의 귀여운 황후의 탄생일이니 봐주기로 했다.
기분 좋은 날이기에 화낼 필요 없이 즐기는 것이 좋지 아니한가?
대신들이 하얀 모래석상이 되어 풍화되는 것을 무시한 황제와 어린 황후는 닭털을 있는 대로 풀풀 날리며 그날 연회를 즐겼다고 한다.
연회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간 대신들은 황제의 낯선 모습에 자신들이 무엇을 잘못했나 고민하거나 몸살이 걸려 침대에 누워있었다는 것은 그저 후문일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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