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어린황후-17화 (18/42)

17. 썩은 물을 제거하다

이 나라에는 제국을 건국하는 공신의 후손라는 존재들이 있다.

그들은 공신의 후손이기에 얻는 해택들이 많았으며, 의무적으로 전쟁터로 나가야하는 다른 귀족 가문들과 달리 의무적으로 전쟁터로 나갈 필요가 없었다.

전쟁터로 나간다는 것 외에는 다른 것들은 다른 귀족들과 같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썩은 물이라고 은연중에 그런 칭호를 받는 이유가 있었다.

공신의 후손들은 그들이 공신의 후손이란 이름으로 행한 악행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몇몇 황제들은 그들의 여식들을 자신의 후궁이나 황후로 삼았고, 그만큼 세력이 모이면서 황제를 향해 함부로 말을 할 정도로 힘이 생겨버린지라 황족이지만 피가 옅은 이들은 공신의 후손들에게 굽신 거리는 경우가 있었다.

아주 가끔 있는 자들이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황족은 황족들 사이에서 밥버러지라고 칭해지는 데, 그들은 공신의 후손들의 개 노릇을 하기도 해 경멸의 대상이었다.

선황제는 썩어버린 그들을 제거하는 데 앞장섰지만 완전히 제거하는 데 무리였다.

책사로서 전쟁터로 간 적이 있는 선황제는 직접 검을 들고 싸울 수 있는 무관이 아니어서 공신의 후손을 제거하는 데에 조금 난관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대의 황제는 다른 것이다.

자신의 외숙부를 따라 어릴 적부터 전쟁터를 누볐고, 자라서는 직접 선봉에 서서 전쟁을 승리로 이끈 적도 많았다.

황제를 중심으로 모인 무장과 깨어있는 문신들은 썩은 물을 제거하기 위해 8년이란 세월을 준비하였으며, 황후 암살 미수건을 들어 모든 것을 진행하기로 했다.

“황후의 외가도 있으나 모두 처리하도록”

“예! 폐하!”

어린 황후 송연에게는 외가가 있었다.

그 외가는 명목상의 외가였으며, 영인왕(永仁王)이 살아있을 때부터 경계하던 곳인지라 황후가 태어날 당시 이미 절연한 상태였다.

송연이 황후가 되었을 때에도 아무런 도움조차 주지 않았을 정도로 완전히 인연이 끊긴 상대인지라 황제는 안심하고 그들을 칠수 있었다.

사실 자신이 아끼는 황후가 그 외가를 알고 있다면 제거하는 데 어려웠었을 것이다.

하지만 절연한 이상 어려움 없이 제거할 수 있었다.

황제와 뜻을 함께한 무신과 문신들이 정해진 수순대로 자신이 맡은 임무에 충실하여 공신의 후선들을 하나하나 쳐내고 있는 사이, 황제는 후궁전 앞뜰에서 후궁들을 모두 모았다.

황제를 위해 전국에서 모아둔 여자들이 조금이라도 더 시선을 끌기 위해 화려하게 수놓은 옷과 보석들로 치장한 채로 황제의 앞에 섰다.

황제는 백성의 세금으로 화려하게 치장한 후궁들을 보자 이맛살을 찌푸리고 말았다.

화려하게 치장한 후궁은 자신의 나라에게 하나 도움 되지 않는 이들이었다.

그중에서 단 한사람 황제의 눈에 들어오는 이가 있었다.

아니, 그녀는 후궁전에서 황제에게 안긴 적이 있는 여성이었다.

그녀는 바로 후궁전에서 가장 높은 지위에 앉아있으나 있는 듯 없는 듯이 조용히 지내는 향화귀비였다.

“이제 시작이옵니까? 폐하”

“그대는 뭔가 아는 것 같군”

“아녀자가 무엇을 알겠사옵니까. 그저 자그마한 지식일 뿐이죠”

송구하다는 듯이 황제의 앞에 예를 갖춘 향화귀비는 황제가 무엇을 할 것인지 알고 있었다.

이 자리에 모인 후궁들은 황제의 명령 하에 모두 제거 될 것임을....

향화귀비 또한 황제의 명령을 피할 수 있는 명분이 없었다.

어린 황후에게 암살자를 보내기 위해 돈을 모은 자들중 한사람이 바로 향화귀비의 아비였기 때문이다.

어리석은 짓이라고 그토록 말하였고, 어린 황후에게 위협을 가하지 말라고 아비를 설득했지만 향화귀비의 아비는 여식의 말을 듣지 않았다.

결국 향화귀비의 집안도 황제의 손에 모두 제거 될 것이 분명했다.

“다음 생에서는 황제폐하를 모시지 않아도 되옵니까?”

-끄덕

향화귀비는 황제의 끄덕임에 안심한듯 황제의 앞에서 절을 한 후, 자신의 처소로 향했다.

그녀는 그렇게 존재감 없이 후궁전에서 살았던 것처럼 조용히 생을 마감했다.

“향화귀비의 장례는 따로 치루도록. 시신에 흠짓하나 내선 안된다”

“예. 폐하”

향화귀비의 조용한 죽음이 있는 때에 황제는 곁에 시립한 무사들에게 명을 내렸다.

후궁들을 모두 제거하라고....

하나라도 살려두어선 안된다고....

사실 황제는 후궁들을 살려두어 노비로 팔려고 했지만 탐욕에 찌든 그녀들이 제대로 노비 생활을 할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훗날에 노비로 있다가 아름다움으로 장수를 꾀어내어 베개머리 송사를 벌여 나라를 해할 수 있기에 황제는 모두 제거하는 것을 택했다.

황궁 밖에 도성에서는 공신의 후손 3대가 멸함을 당하는 사이 황궁 내부에서는 공신 후손의 여식들이 죽어나갔다.

그들이 흘린 피는 바닥에 흘러 마르지 않고 웅덩이 같이 고여 갔으며, 그들이 지른 비명은 삼일이나 계속되었다.

“....네....네가!!!”

“죄송합니다. 아버님”

“내 아들이란 놈이 어찌!!”

그는 영빈의 오라비이이며 세도가의 자손이였다.

그러나 아비가 남의 부인을 빼앗아 첩으로 삼고, 백성들의 피를 쥐어 짜내어 집안을 부풀리는 것을 보고 실망하여 전쟁터에 나갔다가 우연하게 규하의 수하가 되었다.

규하는 그림자 호위를 키우는 자이며 그림자 호위대의 대장이었기에 존경하는 그를 위해 자신 또한 그림자 호위가 되었다.

규하가 다른 누군가를 사랑하지 않았다면 자신의 마음을 고백했겠지만....

“제 손으로 끝내야할 것 같아서 왔습니다”

“내가 쉽게 죽을 줄 아느냐!! 나를 죽인다고 해도 우리 집안은 건제할 것이다!!”

“아닙니다. 아버님. 저희 집안은 이제 끝났습니다”

타인의 손에 아비를 잃는 것보다 자신의 손으로 끝내는 것이 나을 듯 싶어 그는 자신의 집안을 직접 치게 되었다.

“자결하십시오”

“내가 왜 자결해야하는 것이냐!!”

“공신의 후손으로서 부끄럽지 않게!!! 스스로 자결하십시오!!!”

아들의 말은 더 이상 아비의 귀에 들리지 않았다.

권세와 부귀영화를 탐하는 자가 어찌 그런 말이 들리겠는 가....

아들의 씁쓸한 마음은 아비에게 전해지지 않았다.

결국 그는 각오하였던 대로 자신의 손으로 끝내야만 했다.

아비의 심장을 단번에 검으로 찌른 그는 숨이 끊어진 아비를 침상에 누이고 조용히 이불을 덮었다.

“다음 생에서는 악한 짓을 하지 마십시오. 아니, 제 아들로 태어나 주십시오. 그리하시면 제가 꼭 바른 길로 인도하겠습니다”

아비를 죽인 그는 어미도 죽이기 위해 방을 나섰다.

“마님! 어서 피하십시오. 황제께서 보내신 군사들이 곧 도착하옵니다”

화려하게 치장한 방에서 시녀들이 호들갑을 떨며 여인을 피신시키려고 했다.

하지만 여인은 시녀들의 호들갑에도 가만히 앉아있었다.

“도련님!! 도련님께서 말씀해주십시오! 네? 마님께서.....헉!!”

혹시 몰라 여인의 아들을 기다렸던 여인의 유모는 온몸을 피로 적시고 있는 그를 보고 놀라 뒤로 한걸음 물러서고 말았다.

“어머니”

“결국 네가 그 더러운 아이에게 붙었구나!”

“아기씨를 그렇게 말씀하지 마십시오”

“그 계집이 몸뚱아리로 내 정인을 꼬인 것처럼 그 더러운 아이도 그랬겠지!!”

여인은 아직까지도 영인왕(永仁王)이 자신을 사랑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모두 자신의 이복 여동생이 몸으로 영인왕(永仁王)을 가졌다 생각하였다.

그래서 이복 여동생을 미워하고 또 미워했고, 그녀의 아이를 죽이고 싶을 만큼 미워했다.

“제발 정신차리십시오!! 영인왕(永仁王)께서는 어머니를 사랑한 적 없습니다!!”

“아니다! 그분께서는 나를 신부로 맞이하신다 그랬어!!”

“그분께서는 절대로 어머니를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어린 아이였을 때 그가 본 영인왕(永仁王)은 자신의 부인을 너무도 사랑하였다.

자신의 아비어미와 다르게 진정으로 사랑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것 같은 부부였다.

그는 영인왕(永仁王)의 부인이자 자신의 이모인 영인왕비(永仁王妃)가 알려준 따스함을 기억하고 있기에 자신의 어린 사촌을 지키고 싶었다.

“어머니는 미쳤습니다”

“누가 미쳤다고 하는 게냐!!”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집착입니다!!”

그는 이제 집착의 사슬을 끊어버리고 싶었다.

황족이란 신분에 눈이 멀어서 영인왕(永仁王)를 사랑하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어머니를 집착의 사슬에서 벗어나게 해주고 싶었다.

“기다리십시오. 저도 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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