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그림자 호위와 황후
어느날 갑자기 자신을 화살로부터 구해준 복면을 쓴 이를 아이는 찾고 있었다.
그가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형아처럼 따스한 손을 가져서 아이는 그가 좋았다.
정원에 있는 호숫가에서 만났었기에 아이는 매일 호숫가에 가서 기다렸지만 그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는 황제의 명을 받아 아이를 지키는 그림자 호위였기 때문이다.
“형아. 어디있어?”
아이는 정원을 돌아다니 자신을 구해준 이를 찾았다.
“숨기놀이?”
아이는 그가 나타나지 않자 숨기놀이 하자는 걸로 알고는 작은 몸을 나무 사이에 난 틈으로 들어가 숨겼다.
그 모습을 그림자 속에서 지켜보던 호위들은 아이를 구해주었던 그를 바라보았다.
나무 틈 사이에서 나오지 못하고 질식할 경우가 있는 지라 아이를 꺼내오라는 듯이....
그는 빛에 드러나선 안되는 자이기에 함부로 나설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림자 호위들의 눈치에 어쩔수 없다는 듯이 아이의 앞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형아!!”
아이는 그가 나타나자 숨기놀이를 하는 것도 잊은 채 그에게 달려가 다리를 붙잡았다.
작은 아이의 고사리 같은 손이 다리를 잡자 그는 아이가 다치지 않도록 살며시 떼어내며 아이와 시선을 맞추기 위해 아이를 안아 올렸다.
“형아”
아이는 그의 품이 좋은 듯 그의 어깨에 얼굴을 비볐다.
아이의 행동에 주변에서 아이를 보호하는 그림자 호위들은 식은땀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아이를 향한 자신들의 주군이 가진 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동료인 자가 어리석은 선택을 해서 생명을 잃지 않길 바라면서 그림자 호위들은 묵묵히 침묵을 지켰다.
아이가 정원에서 놀고 있는 사이, 몇일 동안 기운이 없는 아이를 바라보았던 유모는 황제가 오지 않아서 그런 줄 알고 황제를 아이 몰래 찾아갔다.
“폐하. 아기씨께서 폐하를 많이 기다리십니다”
암살자까지 보내어 아이를 암살하려던 것을 알게 된 황제는 썩어있는 고인 물을 완전하게 제거하기 위해 쌓인 서류를 처리하느라 아이를 만나지 못했다.
밤에는 아이가 잠든 후에야 황후전에 들었고, 낮에는 아이가 깨기도 전에 황후전을 나섰기에 아이가 황제를 못 만난 것은 당연했다.
황제는 아이가 잘 있는 지 보았지만 말이다.
매일 시시때때로 아이의 안부를 규하에게 듣고 있고, 아이가 좋아할 만한 것들을 보내주지만 아이가 외로워한다는 것을 황제는 모르고 있었다.
황제는 어린시절 연무장에서 무술을 연마하고, 어린나이부터 외숙부를 따라 전쟁터를 돌아다녔던지라 보통 어린 아이에 대해 잘 몰랐다.
어린 아이가 혼자 있으면 외로움을 느끼는 줄....
“바쁘시겠지만 한번만 황후전으로 납시어 주실 수는 없으시옵니까?”
“아이가 나를 찾던가?”
“예. 폐하”
황제는 아이가 자신을 찾는 다는 말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 미소를 지었다.
자신만 아이를 찾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기뻤기 때문이다.
아이를 더 애태우기에는 황제가 아이를 더 보고 싶었다.
황제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유모는 기쁜듯이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황제를 안내했다.
“송내관”
“예. 폐하”
“아이가 좋아하는 것들을 가져오게”
“예. 폐하”
황제는 당과에서 독약이 나온 이후, 독이 들어가면 썩는 과일들을 주로 먹고, 당과는 어쩌다가 주는 지라 당과를 가져다주면 반길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렇게 좋아하는 당과를 많이 먹지 못하고 자제해야하는 게 불쌍하다고 생각했기에 나중에 고인물을 처리하면 아이가 기뻐할 일을 해주려고 마음먹었다.
태어난지 얼마 안되어 황궁으로 들어온 이 후, 한 번도 황궁을 떠나본 적이 없는 아이를 한번이지만 밖의 세상을 보여주는 것도 좋겠지....
“그 많은 황금을 퍼부었는 데도 실패한 것이냐!!!”
“죄....죄송하옵니다”
“황제의 그림자 호위가 있어서 실패했다는 말은 핑계란 말이다!!”
분노하고 있는 여인 앞에서 절을 한 채 죄송하다고 사죄하고 있는 이들은 여인을 도와 암살자들을 포섭한 자들이었다.
평민이지만 뒷골목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이들은 여인에게 약점 잡힌 것들이 있어 여인을 도우고 있다.
사실 그들은 이 나라의 황후가 여자든 남자든 상관하지 않았다.
자신들의 생활터전인 뒷골목이 안전하고 돈만 잘 벌린다면 만족하고 있었다.
그런데 탈세와 인신매매를 하여 불법 매춘 업소를 만든 것이 탈이 되어 여인을 도우게 된 것이다.
“다른 암살자는 없나 한번 알아보게”
“알겠사옵니다”
“한번 더 실패하면 기회가 없다는 걸 잘 알고 있겠지?”
“물론이죠”
“나가보게”
약점만 잡히지 않았다면 여인과 동조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이를 갈며 생각하고 있는 이들이 여인이 나가라고 하자 조용히 방에서 물러났다.
그들은 이제 뒷골목에서 암살을 한번도 실패한적 없는 암살자를 골라야 할 것이다.
그림자 호위 무사들조차 막아내지 못하는 암살자가 얼마나 있을 지는 모르겠지만.....
암살자가 황후를 암살하는 것을 실패했다는 것에 크게 분노하였던 여인은 뒷골목의 사내들이 나가자 방안에 있는 것들을 부수며 쌓인 울화를 풀었다.
공식적인 연회는 물론이고 황제가 참석하는 어느 자리에도 나타나지 않는 뒷방의 황후라고 생각하며 비웃었던 것이 과거인 것만 같아 여인은 화가 났다.
자신의 여식이 후궁전에서 칭송받으며 사가에까지 그 칭송이 전해지는 것에 만족하였으나 여인은 자신의 여식이 황제의 총애를 받아 황태자를 낳길 원하고 있었다.
동생이 영인왕(永仁王)과 혼례를 치루지만 않았더라면 자신이 황실의 사람이 되었을 것이며, 황후를 낳은 고귀한 어미가 되었을 거라고 생각하는 여인은 죽은 동생이 더더욱 미워졌다.
기루에서 온 기녀의 여식인 동생의 아름다움은 집안 식구들의 선망을 얻었으며, 호색한 아비도 그 아름다움을 사랑하여 동생을 여인으로 보지 않고 딸로 인정하였다.
호색하지만 아비인지라 자신도 아비의 사랑을 받고 싶었다.
하지만 동생은 모든 것을 가져가버렸다.
아비의 사랑은 물론이고 사랑하는 이였던 영인왕(永仁王)마저도.....
그래서 더더욱 동생의 아이가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은 것이다.
이제 곧 있으면 10살 생일을 맞이하는 그 아이를.....
여인은 진심으로 증오하고 있었다.
증오의 대상이 사라져 갈 길을 잃은 증오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아이에게까지 미쳐 버린 것이 불행의 시작일지도 모른다.
“어머니께서 그 더러운 아이에게 암살자를 보내신다구요?”
“예. 영빈마마”
“아버지. 지금은 무리입니다”
“그림자 호위 때문이라면 걱정마십시오. 그들을 이길수 있는 암살자가 있다하더이다”
“그래요?”
후궁전의 다른 방들에 비해 수수한 방은 영빈의 처소이다.
영빈은 황제의 후궁중에서 두 번째로 높은 서열을 가진 자이며, 황후전의 주인인 송연의 사촌 누이이도 하다.
그녀는 화려하게 자신을 치장하며 끊임없이 서로를 투기해서 황제에게 내침 받는 후궁들을 보고는 몸을 낮추고 정숙하게 행동하였다.
그렇기에 대신들에 의해 영빈이라는 칭호를 받게 된 것이다.
그녀의 위에는 향화귀비가 있지만 그녀는 형식적인 간택에서 황태자비가 될 뻔했지만 황제의 선택으로 인해 후궁전에 들어간 여인이었다.
향화귀비가 후궁에서 가장 높은 여인임에도 정치에 관심이 없어서 공식적인 자리에도 참석하지 않고 조용하게 있다보니 영빈의 존재가 더더욱 두드러질 수밖에 없었다.
“오라버니께서는 뭐라 하시더이까?”
“그 녀석은 글러먹었습니다. 영빈마마”
“그게 무슨 말이옵니까?”
“그놈이 글쎄 신(臣)보고 몸을 낮추고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말 하더이다”
서럽다는 듯이 말하는 영빈의 아비는 다시금 투덜거리며 영빈에게 쏟아내었다.
영빈은 자신의 오라비가 자신의 편을 들어주지 않는 듯 싶어 화가났지만 침묵하였다.
자신이 황후가 되면 오라비가 자신의 손을 들어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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