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화 (완)
결혼식이 끝나고 둘만의 시간이 된 후부터 태서는 강세헌에게서 조금도 떨어지지 못했다. 욕실에 따라 들어와 직접 씻겨 주고 안아서 침대에 내려 주고…….
그 능숙함이 편해서 가만히 있었더니 그가 제 목을 향해 입술을 들이밀 때도 무방비하게 있다가 뒤늦게 발을 동동거렸다.
“잠깐만.”
태서가 제 목을 빨아 들이는 강세헌의 뒷머리를 잡아 옆으로 밀어 냈지만 소용없었다. 그를 밀어 내지도 그렇다고 제가 벗어나지도 못한 채 버둥거리는 게 고작이었다.
“목 좀 그만 놔줘요.”
그가 집요하리만치 목에 매달리는 바람에 화끈한 통증이 느껴졌다. 제 페로몬 샘 근처를 배회하는 건 알겠는데 이러다가 제 목이 남아나질 않겠다. 태서가 몸을 비틀어 그에게서 겨우 빠져나오자마자 손을 뻗어 다가오지 못하게 경계했다.
“잠깐만요. 페로몬 잔뜩 풀게요. 그러니까…….”
목은 그만 놔달라는 의미에 강세헌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타협이 되었으니 태서는 다시 그에게 다가가 엉거주춤 위로 올라갔다.
“갑자기 움직이면 안 돼요.”
혹시 모르니 제 목을 보호하기 위해 그를 누른 건데 덕분에 자세가 뒤바뀌어 강세헌이 아래에서 올려다보는 꼴이었다.
강세헌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던 태서가 혀를 내밀어 제 입술을 핥았다.
‘어느 방향에서 보든 다 잘생겼네.’
점점 끓어올랐던 흥분이 형체가 잡힐 것처럼 뚜렷해지는 와중에 약속한 페로몬을 뿜어냈다. 이곳은 둘뿐이니까 조절하지 않고 마음껏 내보냈다.
‘집이었으면 환기도 시켜야 하고 윤서도 있어서 조심스러웠는데 여기는 상관없잖아.’
“큭, 태서야.”
강세헌이 강하게 느껴지는 페로몬에 숨을 멈췄다.
“왜요? 싫어요?”
태서가 순수한 얼굴로 되물었다가 무엇을 느꼈는지 곧 음흉한 미소를 지어 왔다.
“싫은 게 아니었네.”
제가 앉은 곳에서 여실히 느껴지는 반응을 알아챈 것이다.
“그럼 형도 원하는 만큼 페로몬을…… 읍.”
순간 앞이 까맣게 물들며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 정도로 강한 페로몬에 정신이 아찔해져 버렸다.
‘페로몬이라는 게…….’
제대로 뿜어내면 이렇게 되는구나. 히트 사이클에 들어섰을 때처럼 정신을 차리기 힘들었고 그만큼 제 모든 게 예민해져 버렸다. 페로몬을 맡은 것만으로 강세헌과 닿은 곳이 달아오르고 말 못할 곳에서 축축함이 느껴졌다.
“형도 지금까지 참아 온 거예요?”
“윤서가 있었으니까.”
태서와 같은 생각이었던 강세헌은 그동안 많이 참아 왔다는 걸 페로몬으로 드러냈다.
“진작 이렇게 호텔로 올 걸 그랬어.”
방 안에 떠도는 공기가 전부 페로몬으로 바뀌어 버린 듯 농밀해져 버렸다.
“그러게요. 그동안 너무 참고만 살았어요. 그러니 이 좋은 걸 몰랐지.”
집에서는 언제 분위기가 깨질지 모르는 상황이 많았다. 강세헌을 끌어안고 진한 키스를 나누다가 윤서가 갑자기 울음을 터트려 멈춘 적도 있었고 분위기를 잡을라치면 잠에서 깬 윤서의 옹알이가 들려왔다.
“윤서에겐 미안하지만 아빠들의 사정이 있으니까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이런 시간을 가지면 좋겠어요.”
“어떤 시간?”
강세헌의 장난스러운 물음에 태서가 웃었다. 굳이 말로 듣고 싶다면 못 해 줄 것도 없었다.
“마음껏 페로몬을 흘리고 마음껏 상대방을 탐할 수 있는 시간.”
태서가 강세헌을 향해 고개를 숙였고 막 입이 닿기 전에 속삭였다.
“달아오른 거 다 가라앉혀 주세요.”
강세헌이 태서의 뒷머리에 손을 얹더니 그대로 입술을 부딪혀 왔다.
***
침구의 부드러운 감촉이 온몸을 감싸 왔다. 눈을 감은 채 침대를 쓸던 태서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낯선 공간이 느껴졌다. 어떻게 된 건지 둔한 머리를 억지로 깨워서 생각해 보니 어제 결혼식이 끝나고 바로 호텔로 온 게 떠올랐다.
뻑뻑한 눈을 비비며 상체를 일으키다가 멈칫하고 말았다.
“나 방금 내 허리로 움직인 거 맞지?”
허리에 힘이 안 들어가서 일어나기가 힘들었다.
“괜히 형을 유혹해 가지고, 내가 내 무덤을 팠지.”
유혹인지 도발인지 아무튼 밤새 시달려 부들거리는 몸으로 겨우 허기진 배를 채우고 기절하듯 잠들었다.
“형은 어디 간 거지.”
태서가 하품하며 제 몸을 내려다보았다. 온몸이 울긋불긋하게 물든 게 놀랍지 않은 광경이었다.
“그렇게 물고 빨았는데 아무 흔적이 안 남는 게 더 이상하지.”
“무슨 혼잣말을 그렇게 해.”
“둘째가 생기기 전에 잡아먹히는 건 아닌가 걱정했어요.”
태서가 대자로 드러누웠다. 제 몸이 어떤지 보라는 뜻이었지만, 강세헌이 슬금슬금 위로 올라오는 걸 보고 슬그머니 제 가슴을 가렸다.
“진짜 잡아먹으려는 거 아니면 그만해야 하는 거 알죠? 저 몇 시간 못 잤어요.”
“일곱 시간을 말하는 거라면 몇 시간이긴 하네.”
“그러니까요.”
그렇게 말한 태서가 강세헌의 목뒤로 손을 둘러 깍지 꼈다.
“그런 의미로 저 좀 일으켜 주시면 안 돼요?”
“일으켜 달라고?”
“허리에 힘이 안 들어가요.”
그래서 아까 일어나려다 말았다.
“이거는 전적으로 형이 맡아서 도와줘야 합니다. 원인이 당신이니까 빨리 나 책임져 주세요.”
“아예 안아서 들어 줄까?”
“그것도 좋겠네요. 그럼 저 저기 소파에 가서 앉고 싶어요. 야경 보고 싶거든요.”
안아 줄 거라면 저기까지.
태서가 자리까지 지정해 주니 강세헌이 어렵지 않게 그를 들어 올려 소파에 내려 주었다. 허리에 쿠션을 대어 주고 담요를 덮어 주고 나니 태서가 천천히 몸을 기울여 그에게 기대 왔다.
“아 좋다.”
태서가 길게 숨을 내쉬며 더욱 몸을 기대어 왔다.
푹신한 소파에 앉아 강세헌에게 기댄 채 보는 야경은 너무도 아름다웠다. 검은 바탕에 불빛들이 만들어 낸 그림을 감상하던 태서가 담담하게 말해 왔다.
“저요.”
윤서를 돌보면서 생각해 둔 바를 꺼냈다.
“마지막 학기를 끝내면 바로 호텔 일 배우려고요.”
많이 고민했다. 진로를 꼭 호텔로 잡을 필요는 없었다. 준비해서 강세헌이 일하는 회사에 지원서를 넣을 수도 있고 아니면 윤서를 키우는데 더 많은 시간을 보내도 좋았다.
“부모님이 호텔 물려받으라고 했을 때는 확신이 없었어요. 잘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더 커서 무작정 알겠다고 못 하겠더라고요.”
투자 설명회에 나갔던 것도 어디까지나 피곤한 강세헌이 잠깐 눈 붙일 수 있는 기회라서 참석했다.
“부담스럽다고만 생각해서 거절하려고 할 때 형이 생각났어요. 우리가 만나고 인연을 쌓은 곳이 호텔이잖아요. 다른 사람에게도 저와 같이 소중한 운명을 만들어 줄 기회라고 생각하니까 하고 싶어졌어요. 그래서 제대로 된 후계자가 되어 보려고요.”
“기특하네.”
강세헌은 짧은 대답으로 태서의 결정을 응원해 주었다.
“마지막 학기 성적도 잘 받을 거고 또 호텔 공부도 열심히 해야 하니까 미리 부탁드립니다. 많이 도와주세요. 윤서도 잘 봐주시고요.”
“걱정하지 마.”
태서가 고개를 들어 강세헌의 볼에 입을 맞췄다.
“참, 한수가 우리 결혼식이 좋았나 봐요. 자기도 나중에 그렇게 하고 싶다는데요? 아까 헤어질 때 신혼여행 어디로 가냐고 물어봐서 그냥 호텔에 머물 거라고 하니까 왜 그러냐고 물었어요.”
태서가 잠시 입을 다문 사이 강세헌이 태서를 깊게 끌어안았다.
“내가 피곤할까 봐 호텔에서 쉬자는 거 아니었어?”
“저만 죽어날 뻔했는데 형 걱정을 어떻게 하나요.”
태서가 고개를 저었다. 제 몸에 돌덩이를 얹어 놓은 게 누군데…….
“그럼 윤서 때문에?”
“아, 그렇죠. 윤서가 있었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새끼인데 왜 생각 못 했지.
어쨌든 틀렸다.
“당장 다른 데 볼 여유가 없어서 가자고 못 하겠더라고요. 아니, 그 오래되고 웅장한 건물이나 예술품을 앞에 두면 뭐 해요. 머릿속은 온통 형으로 가득 차 있을 텐데 뭐가 보이겠냐고요.”
“그럼 내가 웅장한 예술품이 되어 줄게.”
“……그렇게 말을 붙여 버리면 이상해지잖아요.”
태서가 몸을 뒤로 젖혔다가 순간 허리에 힘이 빠져 완전히 넘어갈 뻔한 걸 강세헌이 잡아 줬다.
“왜 그렇게 넘어가려던 거야.”
“형한테서 거리를 벌리려다 보니까 그랬어요.”
강세헌이 허리를 끌어안아 제게 바투 붙였다. 그 탓에 그의 어깨에 입술이 부딪힌 태서가 손을 들어 제 입술을 매만졌다.
사람의 몸이라 따뜻하긴 한데 그거 말고는 단단해서 돌덩이 같다고 생각한 것만큼 얼얼한 통증이 느껴졌다.
“형 제 입술을 얼마나 더 붓게 만드시려고…….”
“미안해.”
강세헌이 고개를 기울여 태서의 입술을 어루만져 주었다. 실상 키스를 하는 것과 다름없어 태서가 가만히 있다가 눈을 감았다.
부은 입술을 달래 주기 위해 혀를 내어 핥는 강세헌이 강아지처럼 느껴져서 웃음이 나왔다.
태서의 기분 좋은 웃음소리에 강세헌이 두 팔을 벌려 끌어안았다.
“태서야. 살다 보면 언제나 네게 완벽한 사람으로 비치진 못할 거야. 보행기 높이를 조절 못 한 모자란 남자가 될 수도 있고 때론 멍청하게 굴 때도 있겠지.”
보행기는 지금 생각해도 웃겼다. 부모님한테 보행기 샀다고 보여 주면서 알게 된 사실에 강세헌과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그런데 왜 강세헌은 스스로를 모자란 남자라고 말하는지…….
“어떤 모습이든 널 향한 마음만큼은 완벽한 알파가 될 거야.”
태서가 강세헌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내가 사랑하는 건 완벽한 형이 아닌 그냥 강세헌이에요. 사랑해요.”
강세헌의 눈동자에 기쁨이 차오르는 걸 본 태서가 환한 미소를 지었다.
에필로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