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화
“소문이 뭐가 어떻다고…….”
태서가 사이드 미러에 비친 박한수를 보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소문에 신경 쓰고 살았으면 자기는 진즉 이 학교를 그만뒀어야 했다. 그러나 지금의 태서는 제가 죽느냐 사느냐가 중요해서 그깟 소문은 코웃음 한 번 치고 넘어갈 수 있었다.
태서가 창문에서 몸을 바로 하며 등받이에 제대로 등을 비볐다. 앞을 보고 어디를 가는지 뒤늦게 살펴봤다.
“왜 그러는데?”
핸들을 돌리던 강세헌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태서에게 향했다가 앞으로 돌아갔다. 잠깐이지만 태서의 입술이 불만으로 삐죽이는 걸 봤다. 강세헌의 물음에 태서는 안전벨트를 만지작거리다 어깨를 으쓱였다.
“뭐, 별거 아니에요. 그냥 어디에나 있는 유명세로 인한 불편함?”
“나랑 무슨 사인지 물어봐?”
태서는 한껏 삐뚤어진 마음에 강세헌에게 이르듯이 말했다. 그런데 생각 외로 받아치는 강세헌의 대답에 태서가 그를 돌아보았다.
뭐 이런 뻔뻔한…….
“왜 그렇게 봐? 나 알아보고 하는 말 아니었어?”
“맞아요. 맞긴 맞는데 어떻게 바로 형이라고 생각하지?”
유명세로 인한 불편함을 곧장 강세헌 제가 원인이라고 받아들이고 있는 게 기가 찼다.
“형 진짜 뻔뻔하네요. 아무리 그래도 내가 다니는 학굔데 내가 더 유명할 수 있잖아요. 왜 자연스럽게 형이라고 생각해요?”
“너는 기껏해야 과에서 유명한 정도겠지. 나는 대학교를 넘어서 나라에 알려진 얼굴이고.”
“와…….”
틀린 말은 아니었다. 강세헌은 바로 알아차리지 못한 자신이 이상할 정도로 유명인이었다. 연예인은 아니었지만, 상당한 외모에 능력을 갖춘 기업인이라는 수식어들이 그를 가만 놔두지 않았다. 물론 그의 어마어마한 배경 역시 한몫했지만.
“어제 벤치에 잠깐 앉아 있었는데도 날 알아보는 애들이 대부분이더라.”
어제 강세헌은 태서와 앉아 있던 그때를 떠올렸다. 태서와 대화를 나누지 않을 때 앞을 바라보고 있으니 그를 알아본 대학생들이 중간에 멈춰 서는 걸 자주 발견했다.
태서와 다르게 강세헌은 정확하게 다른 이들의 시선을 알아챈 것이다. 그 안에는 강세헌은 모르는 태서의 친구, 박한수도 있었다.
“뭐라고 말이 도는데?”
강세헌의 태연한 반응에 태서도 반쯤 포기한 채 다시 앞을 돌아봤다. 자기가 자기 유명하다고 말하는 게 이상하긴 했지만 그게 사실이라니 더 따질 수도 없었다.
“어제 우리 본 사람 중에 박한수라고 있는데 걔가 말해 주더라고요. 형이랑 무슨 사이냐고요.”
“그래서 너는 뭐라고 했는데?”
“음…… 이상하다고?”
태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정말로 그냥 흘려듣기엔 이상해서 건넨 반응에 강세헌의 눈동자가 다시 힐끔 그를 바라보았다. 그 타이밍에 맞춰 태서가 강세헌을 돌아봐 둘의 눈이 마주쳤다. 태서가 그에게 보란 듯이 자신을 가리켰다.
“나는 베타잖아요.”
“너 오메가잖아.”
“지금이야 오메가로 발현했지만, 대외적으로는 베타잖아요. 저 발현한 거 알아보는 사람도 형밖에 없어요.”
얼마 전 미래랑 소개팅할 때도 그랬고 자신이 오메가로 발현한 걸 알아채는 사람은 없었다. 거기다 임신까지 해서 페로몬도 안 나오니 딱히 제가 발현했음을 밝히지 않고 있었다. 굳이 그들에게 제 정보를 풀어야 할 이유도 없었고 말이다.
“나는 베타 남자, 그리고 형은 알파 남자인데 왜 어울린다는 이야기가 도는 걸까요.”
태서의 의문에 강세헌은 바로 알겠다는 듯 대수롭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
“사람들이 날 보고 무슨 사인지 궁금했을지 몰라도 결과적으로 널 궁금해 하는 거네.”
“저요?”
“네가 잘생기고 예뻐서 자꾸 시선이 가는 거지.”
강세헌에게로 향하던 화살이 제게 돌아오니 태서가 눈만 크게 뜬 채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잘생기고 예쁜 게 무슨 상관이라고요.”
강세헌이 자신의 유명세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만큼 태서도 외모에 관한 것만큼은 크게 부정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랑 잘 어울린다는 거잖아.”
“그러니까 결과적으로 제 외모가 큰 영향을 미쳤다?”
“틀린 말은 아니지.”
그제야 태서가 다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하긴 제가 좀 괜찮긴 하죠. 솔직히 나니까 그런 소문이 나는 거긴 해요.”
그렇지 않으면 윤태서가 강인혁을 좋아한다는 소문이 지속될 리가 없었다. 그 이면엔 태서가 서다래를 괴롭혔던 것까지 더해져서 그렇지만 일절 신경 쓰지 않았다.
이러나저러나 태서 자신이 잘났다고 하니 더 파고들지 않는 투였다. 신호에 걸려 잠시 정차한 사이 그 반응을 전부 지켜본 강세헌이 웃음을 참으려 살짝 제 입술을 깨물었다.
“이제 궁금한 건 다 풀렸어?”
“네. 그래도 역시 소문이라는 건 좋은 게 아니네요. 쓸데없이 귀찮기만 하고요. 이래서야 어디 얼굴 들고 다니겠어요. 뭐만 하면 다 소문이 나 버리니 원…….”
이래서 유명한 것도 문제야, 혀를 차는 태서를 보던 강세헌이 결국 입술 새로 비집고 나오는 웃음을 막지 못했다. 짧았지만 웃음기가 역력한 그 소리에도 태서의 자기 잘난 말은 멈추지 않았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이후로도 태서의 자기 잘났다는 말을 귀가 아프게 듣던 강세헌이 곧장 핸들을 옆으로 꺾었다. 대화를 하며 가다 보니 어느새 목적지에 다다르고 있었다.
“일단 밥부터 먹자.”
지금 태서를 막으려면 밥이 최고였다.
***
태서가 부른 배를 두드리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드러냈다. 원래도 강세헌과 함께라면 어떤 음식을 먹어도 잘 들어갔다. 그의 페로몬이 있으면 입맛이 돌았는데 음식도 상당한 수준이다 보니 늘 적정량 이상 먹어 버리곤 했다.
“계속 이렇게 먹으면 살 엄청 찔 거 같은데.”
만족했던 것도 잠시 태서가 제 배를 살포시 어루만지며 걱정스러운 마음에 중얼거렸다. 어제 강세헌과 만난 탓인지 아침도 제법 잘 먹고 나왔는데 지금도 한껏 양 차게 먹고 말았다. 이러다가는 임신이 아니라 그냥 살 때문에 배가 나올 것만 같은데…….
“이번엔 또 무슨 불만이야.”
뒤따라 나온 강세헌이 태서의 옆에 섰다.
“불만이라기보단 걱정이요. 밥을 너무 많이 먹어서 소화 좀 시켜야겠어요.”
여기서 집까지 걸어가기엔 무리고 적당히 걷다가 중간에 택시를 탈까? 이런저런 생각에 빠진 태서가 강세헌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덕분에 잘 먹었어요. 그럼 저는 이제…….”
“카페 갈래? 여기 근처에 괜찮은 데가 있는데.”
방금도 밥 많이 먹어서 걱정이 한 움큼인 태서에게 강세헌은 같이 걷자고 말하지 못할망정 카페를 가잔다. 태서는 제 걱정을 그냥 흘려 버린 건가 싶어 강세헌을 빤히 바라보다가 대답했다.
“……네.”
오늘까지만 먹자.
***
집에 돌아온 태서가 젖은 머리를 말리며 침대에 풀썩 주저앉았다. 머리를 탈탈 털고 있으니 옆에 던져 둔 핸드폰에서 진동이 울려 왔다.
“여보세요.”
[씻었어?]
“네.”
태서가 거울에 비친 제 얼굴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다고 강세헌이 볼 수 있는 건 아닌데도 태서는 고개를 크게 움직여댔다.
[카페 어땠어?]
“나쁘지 않았어요. 분위기도 좋았고, 스콘이 진짜 맛있던데요?”
[다음에도 갈까?]
“음…….”
태서는 만족스러웠던 디저트의 맛과 다르게 망설였다. 그의 길게 늘어뜨리는 말꼬리에 강세헌은 가만히 기다려 주었다.
“다 좋은데 사람들이 많아서 또 가기는 망설여지네요.”
그제야 태서가 왜 망설였는지 알아챈 강세헌이 소리 내어 웃었다. 그 웃음은 핸드폰을 타고 태서에게까지 넘어왔다. 오늘 둘이 바에 나란히 앉아서 디저트를 먹는 동안 굉장히 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둘에게 집중되었다. 그들은 같이 온 동행인과 귓속말을 중얼거리면서도 눈은 태서와 강세헌에게서 떨어트릴 줄을 몰랐다.
“이것도 다 강세헌의 유명세 때문인가.”
[아니, 네가 잘생겨서.]
“역시 그게 문제였네.”
태서가 바로 제 탓이라고 받아 버리며 침대에 누워 버렸다. 아침부터 수업 듣고 강세헌과 어울려서 그런지 몸이 피곤해졌다.
오늘 집에 오면 뭘 하려고 했더라 생각하는 와중에 태서가 자꾸 손에 힘이 빠지려는 걸 억지로 쥐었다.
“사람 없을 때 가는 거면 괜찮을 거 같기도 하고요.”
사람들의 시선이 불편한 거지 스콘은 맛있었다. 가끔 강세헌이 먹여 주던 케이크도 제법이었고.
[그래, 또 가자.]
강세헌의 부드러운 목소리를 들으며 태서가 얕은 하품을 했다.
“형은 들어갔어요?”
[그렇지. 이제 씻으려고.]
“늦었네요.”
[급한 결제 건이 하나 있어서 그걸 보느라.]
“아 맞다. 형은 바쁜 회사원이었지.”
[그래. 너는 한가한 대학생이고.]
강세헌의 놀리는 말투에 태서의 입술에 힘이 들어갔다.
“대학생도 바쁘거든요? 매주 과제에 치이고 수업에 치이고 할 건 얼마나 또 많은데…….”
[그랬어? 그걸 다 해내고 대단하네.]
강세헌이 금방 꼬리를 내리고 받아 주자 태서의 목소리도 누그러졌다. 세상의 모든 대학생이 얼마나 위대한데.
“……열심히 일하는 회사원도 대단하다고 해 줄게요.”
[고맙네.]
서로 대단하고 멋진 존재라는 칭찬이 몇 마디 오가는 사이 태서의 눈이 점점 초점을 잃어 가고 있었다. 결국 말똥하게 떠 있던 눈이 반쯤 감기더니 다시 억지로 뜨이기를 반복했다. 그러나 그런 노력이 무색하게 태서의 눈꺼풀은 아까보다 더 아래로 내려왔다.
[그런데 아이는? 집에서 열심히 생각해 본다며…….]
“그게…….”
무슨 대답을 하려고 했더라.
멍해진 정신으로 뭐라 중얼거리던 태서의 눈이 감겨 버렸다. 그와 동시에 그의 손이 아래로 뚝 떨어졌다.
태서의 손에서 침대로 나동그라진 핸드폰이 두어 번 구르더니 화면이 위로 향한 채 멈췄다. 천장을 향해 드러난 화면에서는 여전히 강세헌과의 통화가 이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뿐, 핸드폰에서는 그 어떤 말도 들려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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