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왜, 왜 그래.”
“조 바꾸지 마.”
“갑자기?”
“네 말이 맞아.”
하나만 생각하고 둘은 생각하지 못했다. 강인혁과 서다래가 자기를 불쾌하게 여기며 괜히 못난이 취급당할 게 싫었다. 그런데 왜 반대로 그렇게 할 생각은 못 한 거지?
“내가 그동안 까칠하고 못되게 굴었을 거야.”
“그, 그렇지.”
“그러니까 이번에도 그렇게 해도 다 날 이상하게 보지 않겠지?”
“그렇긴 한데 딱히 추천하고 싶진 않네. 너 그동안 서다래 많이 괴롭혔어.”
“누가 서다래 괴롭힌대?”
태서가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찼다.
“강인혁.”
“…진짜 걔한테 그렇게 군다고?”
“강인혁 안 좋아한다고. 걔한테 마음 없다고. 그런데 이렇게 말해도 아무도 안 믿어 주잖아.”
“그거야…….”
“그러니까 보여 주겠다고.”
모든 고민이 해결되고 나니 홀가분해진 태서가 아메리카노를 들이켰다. 몸속을 시원하게 내달리는 차가운 감촉에 저절로 미소 지었다. 방금도 강인혁의 말에 상당히 기분이 가라앉았던 참이었다. 강인혁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티를 한껏 내 줘야지.
태서는 신이 나서 케이크까지 푹푹 떠먹었다. 원래 단 거 좋아하지 않는데 이 몸은 잘 맞는 건지 오늘따라 케이크도 꽤 괜찮았다. 마카롱도 쫀듯하니 맛있고.
신나게 간식을 먹고 아메리카노로 달아진 입 안을 개운하게 헹굴 때였다. 다시금 아까 강인혁과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그런데 아까 강인혁이 페로몬을 뿜어냈단 말이지.’
서다래가 괴롭다는 듯 가슴을 움켜잡은 거로 봐서는 태서를 공격하는 페로몬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태서는 강인혁의 페로몬을 느끼지 못했다. 그마저도 페로몬을 깊이 생각하지 않을 정도로 신경 쓰지 못하고 살아서 강인혁이 페로몬을 뿜을 것도 생각 못 했다.
‘진짜 이상하네.’
집에 돌아가서 검색해 봐야겠다고 생각하며 태서는 다시 포크를 들었다.
***
집으로 돌아온 태서는 곧장 의자를 빼서 앉았다. 노트북을 켜 인터넷 창을 연 태서는 자판에 손을 대기 전 목을 이리저리 꺾었다.
“오늘도 종일 검색하겠네.”
윤태서가 되고 검색이 일상화가 되었다. 제가 살던 세상과 비슷하지만 조금씩 다른 게 있었다. 남들에게 물어보기엔 유치원생도 안 물어볼 만할 질문인 거 같고 그렇다고 아는 척 살기엔 답답하고. 태서 개인적인 정보도 전부 알지 못하는 마당에 세상을 전부 꿰고 있다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그래도 몸에 감각이 남아 있어서 다행인가.”
제 영혼이 들어왔지만 윤태서라는 몸에 남아 있는 게 있어서 그 영향을 제법 받았다. 예를 들어 어디든 데려다주는 기사의 존재를 낯설어하지 않는다거나 호텔이 익숙하다는 그런 것들. 그것마저 당신은 누구세요? 절 어디로 데려가시는 거죠? 내가 왜 호텔을……. 이랬다면 진짜 답 없었을 텐데.
“검색이나 하자.”
태서는 키보드에 손가락을 올리며 고개를 들었다.
페로몬이 없어요, 페로몬을 느끼는 방법 등등 쳐 봤다.
“페로몬이 없어요…… 이건 병원을 찾아가라 소리가 대부분이고 페로몬을 느끼는 방법…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라고?”
마우스를 이리저리 굴려 가며 검색해 보는데 썩 성에 차는 게 없었다. 하긴 냄새를 맡는 방법을 물어보는 것과 다를 게 없었다.
“이런 게 아닌데. 뭐로 검색해 봐야 하지?”
태서는 제 상황을 천천히 되짚어 봤다. 기본적으로 베타가 페로몬을 못 느끼는 건 당연했다. 그러나 지금 제게 벌어진 일이 전부 사실이라면 오메가가 되었으니 페로몬을 느껴야 하는데 역시나 이전과 큰 차이가 없었다.
“강세헌의 반응으로 봐선 날 속이는 것도 아닌데…… 그럼 내가 반쪽짜리 오메가라도 됐나?”
반쪽짜리 오메가…… 그런 종류가 있을까? 곰곰이 생각하던 태서가 다시 강세헌을 떠올렸다. 그때 맡았던 냄새. 그러니까 강세헌과 있으면 자꾸 신경 쓰이던 그 냄새가 향수가 아니라 페로몬이라고 가정한다면 자신이 아예 페로몬을 못 맡는 건 아니었다.
물론 어디까지나 그게 페로몬이라고 할 때. 계속 엉켜 드는 생각 속에서 태서가 답답하다는 듯 제 머리카락을 헤집었다.
“다시 생각해 보자, 오메가인데 페로몬을 못 느낄 수… 있나요?”
그러고는 막 돋보기 검색 버튼을 누르려고 할 때였다.
“태서야.”
집에서 일하시는 분 외에 특별히 찾아오는 사람이 없어 방문을 열어 놨던 태서가 옆을 돌아보았다. 문가에 서 있는 제 부모님, 윤석훈과 김미경이었다.
“오셨어요?”
“오늘 시간이 남아서 잠깐 들렀어. 뭐 하고 있었니?”
“저는…….”
태서가 노트북을 들여다보았다. 오자마자 한 거라고는 검색 조금 한 게 다다.
“그냥 이것저것 검색해 보고 있었어요.”
“궁금한 게 있으면 한 비서에게 물어보지.”
한 비서는 현재 태서의 운전 업무를 봐주는 남자였다. 처음엔 그나마도 기사인 줄 알았던.
“어, 그 정도로 친하진 않아서.”
물어볼 것들이 너무 이상해서 그런 거지만 태서는 대충 말을 돌렸다. 그러자 윤석훈이 잠시 태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에 어딘가 안쓰러움이 담긴 것도 같은데? 싶어서 태서가 멀뚱히 있으니 윤석훈이 시계를 보았다.
“아직 시간이 이르긴 하지만 같이 저녁 먹을래?”
태서도 윤석훈을 따라 시계를 보았다. 5시 반, 확실히 이른 시간이긴 하지만 태서는 괜히 제 배를 매만졌다. 아까 간식을 많이 먹었는데도 허기진 느낌이 들었다.
“먹어요.”
태서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윤석훈에게 다가갔다. 그러나 윤석훈이 태서의 어깨에 팔을 두르며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오늘 수업은 어땠니?”
윤석훈의 다정한 음성이 점점 멀어지는 동안 김미경이 못 말린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이이도 참, 빨리 나가 봐야 한다면서.”
원래는 서류만 들고 바로 나가려고 했다. 그런데 굳이 태서의 방으로 올라오더니 아들이 혼자 있는 게 짠했는지 갑자기 밥을 먹었냐고 물어 왔다.
“한 시간 정도 후에 출발할 거예요. 일정 다시 조절해 줘요.”
김미경이 비서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조율하고는 방문을 닫으려 손을 뻗을 때였다. 방금까지 태서가 앉았던 의자와 아직 화면보호기가 켜지지 않은 노트북이 보였다.
대학생이니 과제를 할 수도 있지만, 김미경 또한 어쩔 수 없는 엄마인지라 불쑥 호기심이 들었다. 살짝만 볼까 하는 마음에 슬쩍 노트북의 화면을 훔쳐본 김미경의 눈빛이 달라졌다.
***
다시 호텔로 돌아가는 차 안, 윤석훈은 아까와 다른 아내의 분위기에 태블릿을 내려놓았다.
“당신 왜 그래요? 아까도 내내 말이 없더니 어디 몸이 안 좋아요?”
김미경이 창문에 비친 윤석훈과 눈이 마주치자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저녁 식사 내내 태서의 얼굴을 보기만 할 뿐 제대로 된 말 한 번 걸어 보지 못했다. 어딘가 복잡한 눈빛을 띠던 김미경이 남편을 돌아보았다.
“태서 말이에요.”
“태서? 우리 태서가 왜요?”
윤석훈은 식사 내내 잘 웃던 태서를 떠올리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까 우리 가기 전에, 하아 글쎄 태서가 노트북에 뭐라고 검색했는지 알아요? 오메가인데 페로몬을 못 느낄 수 있냐고 써 놨더라고요.”
김미경의 말에 윤석훈의 표정이 가라앉았다. 알파-오메가인 자신들의 형질에 비해 태서는 아직 베타였다. 특히나 어릴 때 한 검사에서는 오메가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했는데 아직 형질의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다.
“그 검사를 해 보는 게 아니었나 봐요.”
배 속에 있을 때 아이의 성별이 뭔지 궁금해하는 만큼 태어나고 나서는 어떤 형질을 띠게 될지 궁금하기 마련이었다. 그러나 현재의 의료 발전으로는 부모의 형질과 페로몬 반응 정도를 통해 형질 가능성을 점치는 정도였다.
“태서도 점점 조급하겠죠?”
김미경이 제 아들의 고민을 엿본 것만 같아 착잡한 마음을 추스르지 못했다. 한창 오메가로 발현할 시기에도 아무 반응이 없는 아들은 부모에게 괜찮다고 해 왔다. 자신은 그저 조금 늦을 뿐이라고 그렇게 말해 왔다.
점점 나이가 차고 이젠 발현할 가능성이 확연히 낮아졌다. 그래도 아무 말이 없기에 제가 베타인 걸 받아들였나 싶은데 그게 아니었다. 오히려 태서는 제가 오메가라는 허황한 환상마저 하는 것 같았다.
“아직 늦지 않았어요.”
윤석훈이 김미경의 손을 잡아 제 다리 위로 올렸다. 그녀의 작은 손을 토닥여 주며 윤석훈이 조곤조곤하게 말해 왔다.
“조금만 더 기다려 봅시다.”
“그래도… 태서가 혼자 속 끓이고 있을 걸 생각하면 마음이 아파요. 그 아이는 줄곧 제가 오메가가 될 거라고 생각하는데……. 당신 기억나요? 태서가 어서 오메가가 되어 인혁이와 결혼하고 싶다고 했던 거.”
집에 놀러 온 인혁을 보고 첫눈에 반했는지 그날 저녁 태서가 김미경의 품에 안겨 그렇게 말했었다.
-의사 선생님이 인혁이는 알파가 된댔고 저는 오메가가 된다고 했어요. 엄마, 저 오메가가 되면 인혁이랑 결혼할래요.
벌써 십 년이나 지난 과거였지만 김미경은 그날의 기억이 여전히 생생했다.
“그런데 오메가가 되지 않으니까 그렇게…… 자기가 벌써 오메가가 된 건 아닌지 생각하는 게 너무 불쌍해요.”
결국 김미경의 눈가에 눈물이 맺혀 왔다. 윤석훈 또한 김미경의 슬픔이 전염된 듯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어느 순간 차가 호텔 앞에 멈췄지만, 기사는 아무 말 없이 둘을 기다렸다. 그 고요한 시간이 두 사람의 얼굴에 그림자를 드리우기 직전, 윤석훈이 말했다.
“오랜만에 인혁이네랑 식사나 합시다. 태서도 인혁이 얼굴 보면 기분이 나아지겠지.”
“그럴까요? 그 김에 아직 결혼 생각이 있는지도 물어보면 좋겠어요.”
태서가 오메가가 됐으면 하는 가장 큰 이유가 강인혁이었다. 태서를 위해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방법이 떠오르자 김미경의 입가에 처음으로 옅은 미소가 걸려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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