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롤로그 (1/7)

유리핀셋

안온

엄마는 남자 보는 눈이 최악이었다. 내 아버지 같은 남자를 만나 나를 가졌으니 그건 누구도 반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알코올을 입에 대고 주먹을 휘두르면 주정뱅이라고 욕을 할 텐데, 맨정신으로 주먹을 휘두르니 그냥 그건 아버지나 남편이라기보단 인간말종의 정신병자였다. 아버지의 그늘에서 급급하게 살아오다, 내가 나이를 먹고 나서야 폭력 흔적을 증거로 모아 경찰에 신고했다. 아버지는 아들 새끼가 아비를 죽인다고 길길이 날뛰었다. 경찰이 보는 앞에서도 몇 대 얻어맞고, 죽인다는 협박에 석 달을 내리 시달리다 겨우 이혼에 성공했다. 짐을 싸서 나오는 날까지 아버지는 얼굴을 벌겋게 물들이고 너희를 패 죽이니 하는 말을 지껄여 사람 얼굴을 팔리게 하였다.

그때가 겨우 내가 중학교 3학년 때 일이다. 고등학교를 실업계로 갔다. 얼른 졸업하고 군대에 가기로 했다. 군대는 개같은 곳이었지만 세끼 밥 주고 쥐꼬리만한 월급도 주니까 내 한 몸 건사하는 건 문제가 아니었다. 엄마는 근처 식당에서 밑반찬 만드는 일을 계속 하고 있었다. 사회로 다시 튕겨져 나오자마자 고등학교 때 딴 자격증을 들고 일자리를 구하기 시작했다. 구직 사이트를 뒤져 고졸을 뽑는 회사에 이력서를 밀어 넣고 아르바이트를 가기를 반복했다. 사람 두 명이 동시에 돈을 쥐고 있으니 밥 걱정을 할 일은 없었다.

연봉은 형편 없었지만 일 하러 오라는 회사도 한 두 곳이 있었다. 이제 좀 살 만하다, 생각했더니 한다는 말이 이거였다.

“엄마 재혼하면 안 될까?”

가난에 허덕여 대학도 못 갔다. 군대에서 제대한 지 얼마나 되었다고, 아르바이트 한다고 밤에 잠자는 것 말곤 아무것도 못 하는 아들에게 하는 말이 재혼, 재혼이라. 나는 기가 막혔다. 불쌍한 어머니를 노려볼 수 없어 이를 꽉 물고 숨을 다듬었다. 뾰족하게 조각난 말이 엄마를 찌르기라도 할까 봐 최대한 다정하게 물었다.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 줄 알고?”

“괜찮은 사람이야, 으응, 좋은 사람이야. 너 있는 것도 알고, 잘해준다고 말하고…”

어머니의 눈이 점점 바닥으로 내려갔다. 내 눈이 좁혀졌다. 어머니는 거짓말을 할 때면 늘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또 뭐야?”

“아니이, 엄마는 정말 그 사람이…”

“자꾸 그렇게 거짓말할 거면, 나 이제 엄마도 안 봐.”

엄마는 겁쟁이다. 버리겠다고 엄포를 놓자 핼쑥하게 질린 얼굴이 가련하다.

“여, 여자가 한 명 필요하다는 거야. 그런데 으응, 엄마는 외가도 없고 그러니 딱 좋다고.”

“여자가 필요해?”

목에 핏대가 섰다. 벌써부터 혈압이 올라 핏줄기가 울렁거렸다. 내 부릅뜬 눈을 보고 엄마가 황급히 시선을 피했다. 젊었을 적부터 고생을 너무 많이 해, 제 나이보다도 늙어 보이는 엄마를 도대체 누가 데려간다는 말인가.

“이제 결혼 이야기도 없을거고, 집에서 일해줄 사람도 필요하고….”

“뭐야?!”

고함을 질렀다. 홧김에 발로 걷어찬 주전자가 좁은 거실을 가로질러 굴러갔다. 폭력이 짓눌렸던 엄마의 눈이 벌겋게 변했다. 눈물이 맺혀 글썽거리는 얼굴을 보고 나는 길길이 날뛰었다. 어릴 때부터 보고 자란 것이 아버지의 폭력이다. 엄마도 나도 순간적인 분노와 폭력성을 배웠다. 수치스러웠지만 이 순간 감정은 해갈할 수가 없었다.

“아예 식모를 하라고 해! 가정부로 들어간다고 그래! 그게 무슨 개소리야!”

아버지라는 사람이 뺨을 치고 뜨거운 국그릇을 머리에 뒤집어 씌웠을 때도 이것보다 치욕스럽진 않았다. 엄마가 내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무릎을 꿇었다.

“이소야, 한 번만. 한 번만 참자. 너 거기 가면 공부해도 되고, 일 안 해도 되고. 엄마는 괜찮아, 응?”

“뭐가 괜찮아. 뭐가!”

아들에게 무릎을 꿇고, 비굴하게 매달리는 엄마를 보면 수치스럽고 어지러운 감각이 들었다. 나는 엄마를 붙들고 눈물을 한 방울 떨어트렸다. 왜 우리가 이런 일을 당해야 하지. 행복이 공평하지 않다면 불행이라도 공평했으면 좋겠다. 공평한 것 하나 없는 세상에 왜 불행은 좀 더 불행을 끌어들이는 것일까.

막연한 불안감이 뒷덜미를 누른다. 결혼, 재혼. 엄마의 재혼 상대를 만나야겠다는 생각이 막연히 마음속에 물안개처럼 피어났다. 나는 엄마의 주름진 손을 잡고 말했다.

“…좋아, 그럼 내가 그 사람 만나볼게.”

“뭐?”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만나보기나 하자. 그러고 나서, 허락해줄게.”

냉정한 내 말에 엄마는 반 토막 난 시체 같은 얼굴을 했다. 미안한 것도 절반이었다. 겨우 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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