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종장 신문사는 오늘도 평화롭습니다 (9/13)

종장 신문사는 오늘도 평화롭습니다

‘처음 한 달은 평범했거든요. 그리고 갑자기 미친 듯이 마법학 공부를 하는 거예요. 그러더니 온갖 마법학 교수들과 애들을 쫓아다니면서 모르는 걸 배우고, 안 가르쳐주면 화장실까지 쫓아다니더니 다음 학기에 마법학부에 편입하더라고요. 걘 천재예요. 어릴 때부터 일리드 가문의 삼남이 천재라는 소문은 들었거든요. 그런데 아카데미 와서 보니까 그냥저냥 평범하더라고요. 그런데 갑자기 자지도 먹지도 않고 공부를 하더니 아카데미 최초로 학부 편입에 성공했어요. 솔직히 그게 가능하다는 생각도 안 해봤었거든요.’ 

‘부러웠나요, 일리드 씨의 천재성이?’

‘전혀요. 전 천재가 아니어도 좋으니 미치지 않은 채로 살고 싶거든요.’

줄리안 일리드의 왕립 아카데미 시절 룸메이트였던 A씨의 증언이다. 이 증언은 다른 학생에게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룸메이트…… 라고 말하기에는 좀 어폐가 있네요.’

‘어째서죠?’

‘걘 자기 방에 들어온 적이 없거든요. 전 독방을 썼어요. 줄리안은 도서관에 미쳐 있었어요. 샤워는 체육관 옆에 있는 공용 샤워실에서 하고 세수와 양치는 도서관 화장실에서 했어요.’

줄리안 일리드의 왕립 아카데미 시절 또 다른 룸메이트였던 B씨 또한 줄리안 일리드의 다소 괴팍한 학창 시절을 증언하고 있다.

“재밌는 기사야.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 부관?”

“예, 뭐, 재미있긴 합니다, 각하.”

제이미가 기묘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클로드 스토메어, 아리스트 공작은 코웃음을 치며 신문을 팔랑팔랑 넘겼다. 그 건너편에서 신문사 사장인 존 맥러리가 달달 떨리는 손으로 커피 잔을 들었다. 커피가 출렁거리며 사방으로 튀었다.

클로드는 신문을 읽다 말고 ‘줄리안 일리드의 전 애인 목록’이라는 부분에서 신문을 구겨 바닥에 던졌다. 존 맥러리의 어깨가 펄쩍 뛰었다. 클로드의 겨울 하늘 같은 청회색 눈동자가 싸늘하게 빛났다.

“하, 내 마누라가 무슨 동네 영화관 초대권이야? 개나 소나 내 마누라 이름으로 밥벌이를 해먹게. 안 그런가, 부관?”

클로드의 부관 제이미 블레서는 “지당하신 말씀입니다”라고 말하며 흘끗 존 맥러리에게 시선을 주었다. 삼류 신문사면 무사할 줄 알았던 모양이다. 거대 신문사들이 찍소리도 못하는 꼴을 보면 눈치를 챘어야지. 속으로만 혀를 차는데 클로드가 쾅, 커피 테이블을 발로 찼다.

“언론이면 좀 언론다운 일을 해봐. 남의 마누라 갖다 팔아먹기는. 야, 나도 닳을까 봐 조심조심 만지는 마누라야. 네가 뭔데 줄리안으로 돈을 벌어?”

존 맥러리는 에 하고 고개를 들었다가 살벌한 시선에 놀라 다시 고개를 숙였다.

사실 줄리안 일리드에 대한 기사는 3부작으로 준비되어 있었다. 그가 어떤 성장 과정을 거쳤는지가 1부라면 2부에서는 그와 대공의 러브 스토리가 주요 내용이었다.

그들이 취재한 것에 의하면 시종인 줄리안 일리드와 대공 사이에는 사랑이 없었다. 거기에는 강제, 강간, 집착, 고문 같은 질척하고 어두운 것들만 가득했다. 백작가는 천재지만 괴짜로 유명했던 막내아들을 대공에게 갖다 바쳤고 그 대가로 뭔가를 챙긴 듯했다.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아리스트 대공은 유명한 미친놈이었다. 그의 전과는 눈부셨지만 그의 행적은 캄캄한 어둠뿐이었다. 놈은 전쟁을 이기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고, 놈의 군대는 늘 피 냄새를 몰고 다닌다고 했다. 아름다운 남자. 그러나 피가 없이는 하루도 잠들 수 없다는 살인광. 전장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자란, 시대를 잘못 타고난 야만의 전사.

……가 이 남자라고?

존 맥러리는 클로드를 흘끔거렸다. 야만의 전사라고 하기에 남자는 너무나 반짝거렸다. 군복을 입고 있는데도 그 옷이 수제품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몸에 잘 피트된 옷, 손질된 머리, 그리고 왼손 약지에 낀 여성용 반지. 어디를 봐도 도살자나 전쟁광처럼은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나도 닳을까 봐 조심조심 만지는 마누라’라는 말에는 애정이 가득했다. 그 발랄한 말 어디에 집착과 고문 같은 것이 있단 말인가.

“특히, 이 사진.”

클로드가 신문을 집어 던졌다. 신문은 존 맥러리의 얼굴에 맞고 툭 떨어졌다. 고작 종이뭉치로 맞은 건데도 벽돌로 맞은 것마냥 아파서 눈물이 찔끔 났다. 존은 울지 않으려고 이를 악물며 신문을 확인했다.

줄리안 일리드의 사진이었다. 그의 동급생이 준 사진으로 아마 몰래 찍은 듯했다. 마법학부로 편입했을 무렵으로 줄리안은 손바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손바닥에서 올라오는 푸른 불을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는 옆모습이 찍혀 있었다. 평범한 외모인데 아른거리는 불빛이 어우러져 독특한 분위기를 내고 있었다.

얼마나 고심한 사진인데.

존 맥러리는 사진을 보며 입을 다물었다. 왕족의 연인이다. 신문이 나가면 난리가 날 텐데 가능한 한 예쁜 사진을 써서 조금이라도 왕궁의 항의를 줄여야 했다. 그래서 가장 보기 좋은 사진만 엄선해서 실었는데……. 역시 그 정도로는 안 되나. 존은 한숨을 삼키며 클로드와 그의 부하들과 신문을 번갈아 보았다. 부수를 올리고 싶은 욕심에 확 실어버렸는데 역시 그러면 안 되었나 보다. 군화를 신은 클로드의 발이 쾅, 커피 테이블을 걷어찼다. 그리고 테이블이 폭삭 무너져 내렸다. 존의 심장이 산산조각 나는 것 같았다. 존이 제대로 숨도 못 쉬고 있을 때였다.

“사진 전부 내놔.”

“예?”

“사진 내놓으라고, 내 마누라 사진. 니들이 돈벌이에 써먹은 내 마누라 사진 말이야.”

존이 멍하니 클로드를 보는 사이 직원이 재빨리 사진을 가져왔다. 사진을 USB에 담아온 직원이 “이, 이것 외에는 다 지웠습니다”라고 눈치 빠르게 대답했다. 클로드는 흘끔 USB를 내려다본 뒤 제 가슴에 달린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기사 보니까 3부작이라고 썼던데 2부 나오면 이 정도로 안 끝납니다, 어?”

클로드가 일어나며 눈을 부라렸다.

“예, 예. 예, 그럼요. 절대 안 쓰겠습니다. 절대로.”

존이 바로 고개를 저었다.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았다. 클로드는 잠시 존을 내려다보다 그의 마른 어깨를 도닥거렸다.

“잘 생각했어요. 착하기도 하지.”

“예에.”

클로드의 손이 존 맥러리의 어깨를 강하게 움켜쥐었다.

“다신 보지 맙시다, 평생?”

“예, 예.”

어깨가 망가질 것 같았다. 존이 오만상을 찌푸리며 다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몇 번이고 고개를 끄덕인 다음에야 클로드는 그를 놔주었다. 피식. 머리 위에서 실소하는 소리가 들렸으나 존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

“이야, 귀엽네. 오물거리는 입술이 아주 깜찍해.”

그리고 클로드는 신문사에서 삥 뜯은 사진을 보며 즐겁게 키들거렸다. 차로 이동하는 내내 태블릿으로 사진을 감상 중이었다. 귀엽네, 귀여워. 뭐가 그렇게 재밌는지, 상관이 하도 즐거워 보여서 제이미도 흘끔 사진을 곁눈질했다.

평범한 남자애가 찍힌 평범한 사진이었다. 찍힌 대상보다 차라리 그 대상이 입은 교복이 더 특별해 보였다. 왕립 아카데미의 클래식한 교복이 훨씬 더 눈에 띄었는데 클로드는 줄리안의 얼굴을 보며 불한당처럼 킥킥 웃고 있었다.

“애새끼들은 딱 질색인데 우리 애는 귀엽네. 그래도 애라서 그런지 색기는 없다, 응?”

“저한테 의견을 물어보시는 겁니까?”

제이미가 물었다. 자신에게 묻는 거라면 매우 단호하게 대답해줄 생각이었다. 줄리안은 좋은 사람이지만 섹시하지는 않습니다. 전혀요. 색기? 줄리안에게 그런 게 어디 있습니까.

그러나 당연히 클로드는 그에게 질문한 것이 아니었다. 

“혼잣말이야, 멍청아.”

그는 픽 비웃더니 다시 태블릿으로 시선을 내렸다. 손가락을 움직여 사진들을 넘겼다.

클로드가 모르는 시절의 줄리안이 거기 있었다. 고집스러워 보이는 입매, 다 크지 않은 미숙한 얼굴, 그리고 두 팔에 안은 산더미 같은 책. 그 얼굴이 클로드를 바라보고 있었다. 누가 자신을 바라보는지도 모르는 채로 사춘기 소년 특유의 결벽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누군가가 자신을 사랑하게 된다는 걸 상상도 못 하는 얼굴로 교복을 입고 있는 모습을 보니 입술이 바짝 말랐다.

“집으로 가자.”

클로드는 그렇게 말하고 시트에 몸을 파묻었다. 멀리 해가 지고 있었다. 기다리는 사람에게로 갈 시간이었다.

<연애적 이국정서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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