Ⅲ
현경은 아주 신중한 표정으로 카메라를 움직였다. 강한이 보기에는 다 거기가 거기 같은데, 한마디 말이라도 했다가는 곧바로 핀잔이 날아올 분위기였다. 그래서 그녀가 카운터 여기저기에 카메라를 가로로 두었다 세로로 두었다 하며 각을 재는 동안, 강한은 가만히 앞치마를 만지작거렸다.
“점장님, 히터도 빵빵한데 안 더워요? 셔츠 좀 걷어 보세요.”
“왜. 이상해?”
“화면으로 보니까 좀 갑갑해 보여서 그래요. 그, 팔꿈치 위까지 아예 접어 보세요.”
이번에는 아예 이해하기 어려운 요구 사항이 떨어졌다. 화면으로 보면 갑자기 날씨가 추워 보이기라도 한다는 건지, 강한은 황당했지만 잠자코 소매를 걷었다. 단추 푸른 흰 와이셔츠가 꾹꾹 접혀 올랐다.
“이 위로는 안 접히겠는데.”
그러나 현경의 요구만큼은 도달하지 못했다. 두터운 팔뚝 탓에 접힌 섬유가 불편하게 살을 눌러 댔다.
“에이, 그럼 팔꿈치까지만 하죠 뭐. 다음에는 반팔 가져오세요. 그때는 달고나 커피 만들 거니까.”
불편해 찌푸려진 인상을 본 현경이 한 수 물러 주었다. 강한은 팔꿈치 언저리에 접어 올린 셔츠 단을 정리했다.
“달고나 커피는 유행 다 지나지 않았어?”
“뭔 상관이에요, 점장님 팔뚝이 있는데. 자! 이제 다 됐어요.”
그러게, 정말 무슨 상관일까. 강한은 묻고 싶었지만 현경이 한발 빨랐다. 재빠르게 녹화 버튼을 누른 그녀가 턱짓을 했다.
강한은 아주 크게 숨을 들이켰다가 느리게 내쉬었다. 카메라 앞에 서는 일은 낯설고 다소 두렵기도 하지만, 그나마 얼굴이 나오지 않으니 용기를 낼 수 있었다.
“안녕하세요. 오늘은……. 저희 카페 루나의 시그니처 메뉴인 살구 에이드를 만들어 보겠습니다. 살구 철이 아니라 상태가 별로 좋지는 않은데요. 음…. 그래도 미리 보여 드려야 여름에 살구가 맛있을 때 해 보실 수 있으니까. 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현경은 강한의 말문이 막힐 때마다 카메라 뒤에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흰자가 한가득 보이게 뜨인 눈이 마치 위협하는 듯해, 강한은 여차저차 긴 오프닝 인사를 끝낼 수 있었다. 맨살로 드러난 팔뚝을 어색하게 계속 만지작대기는 했지만.
그래도 현경은 확실히 현명한 여자였다. 도대체 왜 팔뚝을 걷으라는지, 때 지난 달고나 커피는 왜 만들자는 건지. 의문으로 가득했던 지점이 모두 셀링 포인트가 되었다. 그 덕에 채널은 세 달 만에 구독자 수 10만 명이라는 기록을 세우고 말았다.
처음 영상을 올린 이유에는 현경의 압박이 반, 정원고등학교 학생들의 ‘채널 만들어 주시면 안 돼요?’ 하고 조르는 말이 반이었다. 한사코 거절할 만한 이유도 없거니와 졸라 대는 학생들이 귀여워서. 그런 단순한 이유로 영상을 찍을 때 강한은 안이했다. 영상이 올라가도 정원고 학생들이나 이 동네 주민, 혹은 제 지인들만이 보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덧 첫 영상의 조회 수는 백만이 넘어갔다. 말솜씨가 없어 느리고 어색한 진행에 얼굴도 나오지 않는, 그저 음료나 만드는 그런 영상이.
“한유일이 질투 안 해요? 댓글 대박이던데.”
오랜만에 찾아온 상수가 낑낑거리며 물었다. 그는 아까부터 직접 사 온 강아지 패딩을 무이에게 입히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뭐, 음.”
강한은 턱 끝을 긁적거리며 상수에게 다가갔다. 계속해서 발을 뻗대며 버티던 무이는 주인의 손길 한 번에 손쉽게 옷을 입어 주었다. 포근한 하늘색 패딩을 입은 하얀 털 뭉치가 한의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다리 사이로 파고드는 무이를 안아 올리자, 상수는 투덜거리면서도 얼른 카메라를 들었다. 상수가 핸드폰을 들이미는 방향과 반대로 무이 고개가 휙휙 돌아갔다.
“요즘 고민 중이야.”
“뭘요?”
“어떻게 해야 질투가 안 느껴질까, 뭐 그런 거.”
“어우, 뭐야……. 닭살. 맨날 사랑행, 보고 싶엉, 이런 거 해 주시든지요.”
몸을 부르르 떨며 꼬아 대는 상수를 따라 강한 역시 소름이 돋았다. 그런 방식을 선택했다가는 유일과 저 모두 제명을 다하지는 못할 것이다.
“근데 뭐 방법 없지 않겠어요? 그건 한유일이 알아서 해야죠.”
답지 않게 차갑게 응수한 상수가 무이의 간식을 꺼내 들었다. 그제야 카메라 방향으로 고개를 돌려 준 무이가 무심한 눈길을 쏘아 댄다. 찰칵, 찰칵, 요란한 소리가 연속으로 터져 나왔다.
신속하게 촬영을 마친 상수는 얼른 간식을 대령했다. 공중에 들린 채로도 챱챱챱 맛있게 먹던 무이가 버둥거리기 시작했다. 간식이 끝나 가니 상수의 비위를 맞춰 주기 싫은 모양이었다. 역시 바닥에 내려 주자 뒤도 돌아보지 않은 무이는 제 집 안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솔직히 그놈 성에 차려면 온 동네에 현수막이라도 걸어야 될걸요?”
상수는 아쉬운 입맛을 다시며 방금 찍은 사진들을 확인해 보았다. 그래도 오늘은 꽤 소득이 있는 편이었다. 에헤헤 웃은 그가 한의 얼굴 앞에 액정을 들이밀며 ‘잘 찍었죠?’ 하고 묻는다. 강한은 어쩐지 멍해진 얼굴로 한 박자 느린 반응을 했다. 천천히 주억거리는 낯을 흘깃 살핀 상수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하긴 뭐……. 형이 워낙 표현 없는 타입이니까. 좀 불안할 수도 있죠. 저라도 형처럼 생긴 애인 있으면 어우….”
아닌 척 은근히 유일을 두둔한 상수는 요란한 기지개를 켰다. 이제 가 보아야 한다는 그를 카페 바깥까지 배웅해 주고 오는 길. 강한의 머릿속에는 묘한 반성과 실마리가 피어올랐다.
***
검은 모자를 눌러쓴 한 남자가 빌딩 앞 벤치에 앉았다. 아이보리 니트와 검은 코트를 깔끔하게 매치한 남자는 한눈에도 시선을 끌었다. 바쁘게 지나던 사람들이 힐긋거렸으나 그의 얼굴은 무척 작고 갸름해서 모자 밑으로 하얀 코끝이 간신히 보일 정도로 가려져 있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모자라다는 듯, 그는 더욱 얼굴을 숙인 채 핸드폰을 내려다보았다.
「Cafe LUNA 공식 채널」
꼬아 올린 다리 위에 턱을 괸 남자의 심각한 얼굴이 액정을 노려보았다.
자동으로 재생이 시작된 동영상 속에서는 커피를 만드는 과정이 진행되었다. 하얀 셔츠 차림의 누군가 샷을 내리고 컵에 따르는 장면이 얼굴 밑으로만 담겨 있었다. 탄탄한 가슴팍과 팔뚝을 원수처럼 노려보던 남자가 액정을 밀었다. 어마어마한 댓글과 조회 수를 확인한 낯이 한 번 더 차갑게 굳었다. 특히 아이디 ‘choe_ce11’의 ‘여기 사장 누군지 알 것 같은데 인성 별로임ㅋㅋ’ 하는 댓글을 봤을 때는 입술이 달싹 움직였다. 쌍소리가 새어 나온 것도 같았다.
“…저, 혹시, 한유일…….”
그쯤 주변을 맴돌며 머뭇거리던 행인이 말을 걸었다. 멈칫 굳었던 남자는 금세 살벌한 표정을 지우며 고개 들었다.
“아, 네.”
친절한 미소로 화답하자 방금까지 소극적으로 웅얼거리기만 하던 남자의 음성이 확 커졌다.
“으악, 맞죠? 제가 완전 대박 팬이거든요!”
주변의 시선을 집중시킬 만한 데시벨이었다. 삼삼오오 거리를 걷고 있던 인파가 문득 멈춰 소곤거리기 시작했다.
한유일은 나긋한 미소를 유지한 채 빠르게 일어섰다. 이런 때에는 최대한 신속하게 자리를 피해야 했다.
“죄송한데 사진 한 장만 찍어 주심 안 될까요?”
하지만 옷깃이 잡히며 틈이 막혔다. 유일은 순식간에 구름처럼 몰려드는 인파 속에서 서둘러 핸드폰 액정을 잠재웠다. 이쯤 되면 잠자코 모든 사람과 사진을 찍어 주는 수밖에는 방법이 없었다.
“야, 한유일.”
그 순간 익숙한 음성이 인파를 갈랐다. 아주 분명하고 묵직한 음성이었다.
저마다 핸드폰을 들고 모여들었던 사람들이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며 틈이 생겼다. 그 사이로 한유일은 벽에 비스듬히 기대어 선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두꺼운 후드 티셔츠에 파란 더플백을 멘, 체격 좋은 남자였다.
“뭐 하냐?”
그가 아주 시원스럽게 웃으며 그렇게 묻는 순간, 유일은 먼 과거에 다녀온 듯했다. 인산인해를 이루던 매점. 새치기하는 친구들을 말리던 선배. 땀 냄새가 나쁘지 않게 느껴졌던 최초의 순간.
“가자.”
방금 운동을 마친 듯이 조금 젖은 앞머리를 털어 내며 그가 성큼성큼 다가왔다. 과거와 다르게, 직접 인파를 뚫고 다가온 그는 유일의 손목을 잡았다. 아주 저돌적이고 무례한 침입이었으나 사람들은 한마디 따지지도 못했다. 오히려 두어 걸음 물러서면서 ‘매니저인가 봐…….’ 하고 중얼댈 뿐이었다.
그 목소리에 힌트를 얻은 남자가 아예 유일의 어깨를 감싸며 걸었다. 유일은 장단을 맞춰 웃으며 고개를 꾸벅 숙였다. 사진을 찍어 주지 못한 데에 대한 짤막한 인사였다. 그에 우르르 몰려 있던 인파 사이로 아쉬운 한탄이 샜다.
“추운데 왜 밖에서 기다려.”
사람이 드문 골목으로 접어들자 평화가 찾아왔다. 발 맞춰 빠르게 걷던 걸음이 조금 느긋해졌다.
“사람들이 한이 몸 좋다고 댓글 다는 거 보니까 열이 나서 시원했어.”
대답은 웃음과 함께였지만 뒤끝이 가득 묻어 있었다. 덕분에 강한은 말을 잃고 걷는 데에 열중했다. 다른 화제를 찾느라 눈동자가 찬찬히 굴러갔다.
“운동 재밌었어?”
다행히 말머리를 돌려 준 것은 유일이었다. 강한은 얼른 받아치며 가까운 곳에 주차되어 있던 차 문을 열었다.
“어, 취미로 하니까 더 재밌어.”
“영상 업로드도 취미로 하는 거야? 아니면 계속해?”
“…현경이가 요즘은 그런 것도 좀 해야 된다고……. 조만간 무이 채널도 만들자고 하던데….”
돌아간 줄 알았던 화제가 도리어 더 깊숙이 파고들었다. 한은 어물쩍 말을 흐리며 차를 출발시켰다. 따끈한 히터 바람이 냉랭했던 차 안을 덥힐 쯤까지 유일은 말이 없었다.
침묵 속에서 가만 핸들을 돌리던 강한은 문득 억울해졌다.
“야, 너는 걸핏하면 키스 신 찍는 놈이 이런 걸로 질투를 해. 누가 할 말 더 많은지 해 볼까?”
특히 지난번 영화는 진득한 베드 신까지 있었다. 말을 뱉고 보니 더 억울해져 한의 눈썹이 잔뜩 찌푸려졌다. ‘누구는 질투 안 하나. 일이라고 참고 이해하는 거지.’ 중얼거리는 말에 유일은 아하하 웃음을 터트렸다.
“응, 할 말 해 줘. 나 아예 멜로 찍지 말까.”
“……아, 진짜.”
뻔뻔한 반응 탓에 판도를 뒤집지는 못했다. 이번에도 할 말을 잃은 쪽은 강한이었고, 유일은 조용히 핸드폰을 들었다. 끊겼던 영상이 다시 재생되는 소리가 차 안을 울린다.
“나도 이해해. 그냥 질투 나서.”
“…어엉.”
“댓글 하나만 쓸게.”
“아, 뭐라고 쓰려고!”
“여기 이 사람이 한이랑 혼인 신고 한다잖아.”
나지막한 대답이 또 한 번 말문을 막았다. 강한은 반쯤 자포자기로 ‘그래라.’ 하고 중얼거리며 핸들을 꺾었다. 말투는 투박했으나 입꼬리가 슬쩍 호선을 그렸다. 다른 때는 몰라도 이럴 때 보면 확실히 한유일이 연하 같기는 했다.
차는 고요히 도로를 내달렸다. 나무토막과 산산조각 난 핸드폰이 아직도 현관에 장식되어 있는 둘만의 집으로 향하는 길. 유일은 나지막이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댓글을 써 넣었다. 추천 수가 2,000개를 웃도는 혼인 신고 댓글 아래에 새로운 답글이 달렸다. 그를 닮아 아주 간결한 반박이 가장 위를 차지해 오른다.
The onlyone LUNA
안 돼요. 하나밖에 없는 제 애인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