Ⅱ
유일의 본가 앞 산책로에는 밤이면 가로등 불빛이 별처럼 빛났다. 주변 상가와 건물은 여럿 바뀌었으나 그 눈부신 행렬만큼은 그대로였다. 아직 고등학생이던 때, 유일과 함께 나란히 걸었던 그 길이 여전했다.
덕분인지 함께 본가를 다녀올 때면 항상 기분이 묘했다. 뒤숭숭하면서도 기쁘고 뭉클한 향수가 밀려들었다. 그 탓에 삼남이 주는 잔은 더더욱 거절하기가 어려웠다. 살아온 세월이 긴 그녀에게는 과거의 이야깃거리가 넘쳤고, 과거만큼이나 강한을 축축하게 만드는 것은 없었다. 술자리는 늘 빠른 속도로 길게 이어지곤 했다.
알딸딸하게 오른 취기가 눈앞 풍경을 한층 더 아름답게 만들었다. 강한은 실실 웃음을 흘리며, 흐드러진 꽃송이 같은 불빛들을 바라보았다. 그 은하수 한가운데, 네모나게 빛나고 있던 편의점 문이 벌컥 열렸다.
산책로와 멀지 않은 대로변. 원래는 강한이 처음으로 일해 본 카페가 있던 자리였다. 이제는 편의점이 된 그곳에서 가로등 불빛만큼이나 하얀 남자가 뛰어나온다. 얼마나 급하게 달리는지 숨마다 입김이 잘게 부서지고, 베이지색 코트 자락이 펄럭거렸다. 작고 하얀빛이 순식간에 내달리는 광경은 마치 별똥별 같았다.
금세 강한의 코앞에 선 유일은 숨을 고르기도 전에 유리병 두 개를 내밀었다. 숙취 해소제와 소화제였다.
“한아, 얼른 마셔.”
취기로 느릿해진 강한은 그제야 ‘어.’ 하고 손을 내밀었다. 병 하나를 건네준 유일은 나머지 하나는 제 손으로 따 주었다.
두 병을 단숨에 비우자 속은 오히려 더 불편한 기분이 들었다. 강한은 인상을 찌푸리며 윗배를 문지르다가, 제 옆자리를 툭툭 두드렸다. 여직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서 있는 유일을 앉히기 위함이었다.
“오늘은 정말 할머니가 주는 거 다 받아먹지 않기로 했으면서.”
“으음…. 근데 맛있어서, 또, 자꾸 며늘아기라고 하시니까. 거절하기가 좀…….”
변명처럼 늘어놓은 강한이 옆자리를 채운 유일의 어깨에 고개를 기대었다. 오늘은 기록적인 한파가 기승을 부리는 날이었고, 덕분에 산책로는 무척이나 한산했다. 덕분에 어떤 걱정 없이 그는 푸슬푸슬 웃음을 흘렸다.
“근데 할머님 연세가 있으신데도, 진짜, 눈이 반짝반짝하시고……. 너랑 정말 닮으셔서. 아, 아니, 네가 할머님을 닮은 건가. 아무튼. 매번 신기해.”
“그랬어?”
술에 취한 강한은 평소보다 솔직해진다. 특히 속으로만 쌓아 뒀던 잡생각을 모두 주절주절 털어놓는 버릇이 있었다. 그의 변화를 아주 잘 알고 있는 유일은 항상 부추기듯이 되묻기만 했다. 그러면 평소 듣기 어려웠던 말들이 줄줄 흘러나왔다.
“어, 솔직히. 나 처음에는 너 루나 닮았다고 하는 게 싫었거든.”
“왜?”
“뭐 생긴 건 존나 닮았는데……. 나는 그때 루나 엄청 좋아했으니까. 막 멋있고, 당당하고. 되게 어려운 상황에서 혼자 이겨 내는 그런…. 그런 애가, 너랑.”
이쯤에서 강한은 말을 멈추었다. 인상을 팍 찌푸린 채, 늘어져 있던 몸을 곧추세운 그는 한참 머뭇거렸다. 취한 와중에도 말을 골라내야겠다는 다짐이 엿보였다.
“그니까 내가 그때는 너를 잘 몰랐으니까. 너는……. 루나보다는 좀. 그냥 넌 존나, 좀……. 왕자님 같았으니까.”
한참 헤매던 말끝에 시원한 웃음이 매달렸다. 강한은 아주 적합한 단어를 찾아 후련하다는 듯이 박수까지 쳤다. 그 천진한 옆얼굴에 유일의 끈끈한 시선이 달라붙었다.
어쩌자고 밖에서 이렇게 귀여운 짓을 하는지. 왕자님이라니.
한유일은 기가 막히다는 듯 터진 웃음을 간신히 손등 위로 막아 냈다. 손끝이 빨갛게 얼어 가는 날씨였지만, 이 귀한 시간을 빨리 끝내고 싶지 않았다.
“근데 너를 알고. 나중에……. 진짜 나중에는.”
천천히 웃음이 사그라지며, 줄지어 늘어선 가로등 불빛이 강한의 눈 안에 모조리 담겼다. 이제 그는 조금 쑥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너만 루나 같았어.”
고개를 슬쩍 숙이고 취기에 붉어진 눈가를 쓸어 낸 그가 반복해 말했다.
“진짜 루나를 봐도 네가 생각이 나서. 나한테는 너만…. 네가 루나 같았어.”
천천히 속삭이는 그의 입술 새로 입김이 부서졌다. 유일은 그 하얀 고백을 홀린 듯이 바라보았다. 당장 거칠게 입을 맞추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저 고백이 모두 부서지기 전에 한가득 삼키고 싶었다. 입술을 맞붙인 채, 가능하다면 한의 숨결까지 다 빨아 당겨 취하고 싶었다.
“한아, 안 되겠다. 가자.”
흉포한 육욕 탓에 행동이 거칠어졌다. 유일은 답지 않게 포악한 손길로 한을 이끌어 앞장섰다. 휘청, 뒤따라온 강한은 눈을 끔벅거렸다.
“…나, 진상 짓 했어?”
급한 걸음을 따라 걷던 그가 불안하게 묻는다. 일순 정신이 일깨워진 듯했다.
그에 앞장서 걷던 유일은 웃음을 터트렸다. 어느덧 한유일의 입가에도 하얀 고백이 부서졌다.
“아니, 왕자님 같았어.”
***
숙취로 카페 문을 닫는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물론 숙취에 더해진 체기와, 그런 몸 상태로도 평소보다 훨씬 거친 섹스를 하고 만 데에 대한 자업자득이겠지만…….
“도대체 왜 그렇게 해 댔지. 보나마나 내가 덤볐을 텐데.”
점심때가 다 된 지금도 목소리가 다 갈려 나올 만큼 격렬한 밤이었다. 눈을 뜨기도 전에 온몸이, 특히 배 속이 욱신거렸고 눈가가 다 짓물러 버렸다. 탄탄한 복근이 봉긋해질 만큼 채워 넣었던 음식물은 이미 다 사라져, 빈속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간밤에 있던 열량 소비를 탓하는 듯 맹렬한 기세였다. 결국 강한은 여기저기 널브러진 콘돔을 그대로 둔 채, 유일이 차려 놓고 나간 아침을 먼저 해치웠다.
「늦잠 자서 청소는 못 했어. 내가 할 테니까 그냥 쉬어, 금방 올게.」
식탁 위에 놓인 메모를 졸린 눈으로 바라보면서 우적우적 음식물을 씹는 고요한 식사였다. 한참 밥을 먹던 중에야 정신이 또렷해져 강한은 뒤늦게 웃었다.
“콘돔 치울 시간도 없었으면서 내 밥은 차려 두고 갔네.”
그 깨달음이 왠지 모를 죄책감을 일으켰다. 아침 일찍부터 스케줄이 있는 애인을 부추겨 이렇게 많은 섹스를 하고 말다니……. 강한은 현관에서부터 거실, 식탁 아래까지 떨어져 있는 콘돔 껍질 수만큼 한숨 쉬었다.
오늘 한유일은 라디오 스케줄이 있는 날이었다. 그나마 옷을 갈아입을 필요 없는 일정이지만, 그래도 심란해진 강한은 문자를 써 넣었다.
「너 몸 괜찮아?」
이성을 잃고 덤빈 자신이 얼마나 많은 자국을 남겨 놓았을지 걱정이었다. 거실과 주방을 정리하는 동안, 강한의 얼굴은 내내 침울했다.
답을 기다리며 울적한 청소를 마친 그는 핸드폰을 쥔 채 욕실로 향했다. 유일에게 괜찮다는 답장을 받아야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아, 미친.”
그런데 문턱을 넘자마자 발밑으로 물컹한 감촉이 느껴졌다. 정사의 흔적이 여실한 욕실 내부에도 콘돔이 두 개나 묶여 뒹굴고 있었다.
「응. 한이야말로 몸 어때? 괜찮아?」
몸은 괜찮다 못해 아직도 열기가 남아 배 속이 근질거렸다. 이렇게 많은 섹스를 하고도 아주 파렴치한 몸이었다. 강한은 죄책감을 물씬 느끼며 유일의 문자에 괜찮다는 답장을 보냈다. 짐승 같은 애인을 도리어 더 걱정해 주는 유일에게 너무도 미안하고 고마운 날이었다.
청소를 모두 마친 후, 강한은 영화를 틀었다. 일종의 죄책감 상쇄를 위한 면죄부였다.
한유일이 의사 역할을 맡은 는 판타지 액션 장르 필름으로, 유일의 필모그래피 중 강한이 보지 않은 단 하나의 영화였다.
는 외국 배급사에서 투자하고 스트리밍 사이트와 동시 개봉을 진행하면서 큰 인기를 얻은 영화였다. 한유일은 조연을 맡았으나 서브 커플로서 비중이 컸고, 남성 파트너와 호흡을 맞추었다. 그 덕에 메인 헤테로 커플을 제치고 베스트 커플 후보에 오르기까지 했던 만큼, 웬만한 사람들이 모두 아는 유명한 작품이었다.
그러나 강한은 유일하게 그 영화만큼은 보지 않았다. 아니, 볼 수 없었다.
영화는 한 도시의 종말 위기로부터 시작한다. 초토화된 도시는 부서진 건물 잔해와 뿌연 연기로 가득하고, 사방에서 화염이 솟구치며 아비규환이다. 그 틈에서 마구 달리고 절규하던 사람들은 문득 멈추어 선다. 시야를 탁하게 가리는 먼지 너머 어떤 여성의 실루엣이 굳건히 서 있다. 그녀는 초능력을 가진 신인류로, 훗날 ‘태초’라는 이름을 얻었다.
그렇게 시작된 영화는 100년 뒤 신인류가 평범한 사람들처럼 교육받고 살아가는 과정을 그렸다. 그들은 염력이나 화염처럼 거대한 힘을 지닌 대신 신체가 무척 불안정했다. 능력을 쓴 만큼 파장을 관리받아야 했고, 그 파장을 가장 쉽고 빠르게 안정시키는 것은 스킨십이었다. 영화 속에서는 그 행위를 ‘가이딩’이라고 표현했는데, 그 때문에 베드 신은 필수적인 요소였다.
그동안 강한은 유일의 애정 신에 대해 왈가왈부한 적 없었다. 가볍게 몇 마디 툭툭 던진 적은 있어도, 유일이 정말 ‘안 찍을게.’ 하고 순순히 답하면 손사래를 쳤다. 일은 일이니까 상관없다고 당당하게 대답해 왔다.
그런데 유독 이 영화만큼은…….
소파에 길게 드러누운 강한은 고문을 견디는 사람처럼 숨을 참았다. 이제 막 시작된 유일의 베드 신은 여태까지보다 수위가 무척 높고 또 길었다.
“저건 다 연기다……. 가짜다.”
태연하게 굴고 싶지만 주먹이 자꾸 쥐어졌다. 강한은 힘 들어간 손을 탈탈 털어 내며 눈을 꾹 감았다. 상대와 헐벗은 몸을 겹친 채 입술을 맞대는 유일을 보자마자 반사적으로 선택한 일이었다.
[하아, 지엔……. 나 좀 봐요.]
그러나 눈을 감자 입술 부딪히는 소리와 거친 숨결이 더 선명하게 들려왔다. 그야말로 진퇴양난에 후다닥 몸을 엎드린 강한은 커다란 쿠션 밑에 머리를 숨겼다. 뒤통수에 쿠션을 꾹 누르자 소리는 조금 차단되었지만, 오히려 더 은밀해진 기분이 들었다.
[아직 가이딩 다 되려면 멀었어요. 허리 들어요.]
대사는 무척 정중하면서도 거침이 없었다. 평소 관계 중에 들어 볼 일 없던 존댓말이 묘하게 음심을 자극한다. 어느덧 고개가 스르륵 돌아가며 쿠션이 바닥에 툭 떨어졌다. 입을 헤벌린 채, 강한은 화면 속 유일의 얼굴을 감상했다.
[후우….]
땀이 맺혀 더 투명해 보이는 낯이 흥분으로 일그러졌다. 나른한 쾌락과 고통에 가까운 열기가 모두 거기 있었다. 강한은 느리게 침을 삼켰다.
[읏, 도망, 가지 말아요.]
[아아!]
마침내 자지러지는 상대의 신음이 터져 나가는 순간, 결국 강한은 일시 정지 버튼을 누르고 말았다. 자책하듯 소파 위로 이마를 쿡 박은 채 그에게서 침음이 흘렀다.
도저히 더는 볼 수가 없었다. 한유일이 낯선 사람의 이름을 부르고, 신음하고, 존댓말로 욕정을 드러내는 모습도 다 싫었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가장 싫은 것은 이 짤막한 베드 신에 반응하고 만 몸뚱이였다.
지난밤 그렇게 양심 없이 붙어 먹고도. 그 죄책감에 선택한 영화인데도.
끝까지 보지 못할 만큼 싫었던 와중에도 흥분하다니. 강한은 소파에 짓눌린 묵직한 앞섶을 탓하며 몸을 바로 누웠다.
새벽 내내 몸을 섞은 후에는 다음 날까지 미약한 전류가 남은 기분을 느꼈다. 아주 조그마한 접촉, 옅은 자극에도 금세 예민한 반응이 튀기 일쑤였다. 그래서인지 오늘도 겨우 몇 마디 신음으로 배 속이 달아올랐다. 손발 끝이 저릿저릿하고, 간밤 들쑤셔진 속이 근질거렸다.
“아, 진짜 변태같이…….”
두 손으로 붉어진 얼굴을 푹 가린 채 강한은 신음했다. 당장 바지를 끌어 내리고 아래를 쥐어흔들고 싶은 난잡한 욕망이 끓었으나, 파렴치한이라며 스스로를 욕하고 꾸짖어 참았다.
눈을 질끈 감은 그는 난데없이 ‘마트 가서 사야 할 품목’ 같은 리스트를 정돈하며 열기를 가라앉혔다. 아침은 얻어먹었으니, 유일이 돌아오면 맛있는 저녁을 해 먹일 생각이었다.
「맛있는 거 해 놓을게.」
문자를 작성해 넣으며 한 차례 더 마음을 가라앉힌 그는 재차 목록을 떠올렸다. 오늘은 최소한 소고기 정도는 준비해 놓아야 양심이 아프지 않을 듯했다.
***
“한아, 나 왔어.”
유일은 젖은 머리를 털며 현관에 들어섰다. 아침 일찍 시작한 라디오 스케줄은 금세 마무리했지만, 개인 운동이 잡혀 있는 날이었다. 어젯밤 엉엉 우는 강한을 끝의 끝까지 몰아붙인 터라 웬만하면 빨리 귀가하고 싶었지만 그렇다고 운동을 설렁설렁 할 수는 없었다. 아닌 척하지만 강한은 자주 유일의 가슴과 복근을 더듬어 댔다.
한의 더플백과 똑같은 모델로 맞춰 산 검정 가방이 거실에 묵직하게 놓였다. 그러나 그 뒤로는 어떤 소음도 없었다. 맛있는 것을 해 놓겠다던 문자와 달리 주방도 고요했고 아무 냄새도 나지 않았다. 그저 TV만이 할 일을 잃고 빛만 내는 중이었다.
고개를 갸웃 틀며 거실로 들어서자 침대에 늘어져 자고 있는 강한이 보였다. 티셔츠가 다 올라가 거의 가슴까지 드러낸 채로, 그는 복근을 문질거리며 신음했다.
“으, 으응…….”
어쩐지 야하고 끈적끈적한 음성이다.
한유일은 가늘게 뜬 눈으로 TV 화면을 확인해 보았다. 커다란 화면은 자신이 인상을 찌푸린 채 누군가의 살결을 무는 채 멈춰 있었다. 바로 의 베드 신 장면이었다.
“아, 유일…. 하….”
마치 화면 속 자신과 정사를 나누듯, 강한의 속삭임은 점점 더 뭉근해졌다. 아주 불분명하고 흐무러진 발음으로 유일을 부르며 헐떡이는 그의 아래가 빳빳하게 서 있었다. 고요하던 유일이 일순 낮은 웃음을 터트렸다.
“한아, 내 베드 신 보면서 혼자 했어?”
잠든 이에게 달콤한 질문을 쏟으며, 유일은 망설임 없이 강한의 다리 사이를 파고들었다. 무방비한 두 다리는 기다렸다는 듯 벌어졌고 어젯밤 혹사당했던 가슴이 곧장 물렸다.
“아응.”
잠결이라 그런지 신음은 더 솔직했다. 녹진녹진하게 녹아든 음성이 육욕을 부추겨, 유일은 금세 웃음을 잃었다. 잇새로 부은 유두를 잘근거리다 갈급하게 타고 올라와 귓바퀴를 물었다.
“지금 꿈속에서 나랑 하고 있으려나. 저 영화에서처럼….”
“흐응, 으….”
귓구멍을 마음대로 침입해 축축한 숨을 불어 넣으며 하체를 맞대었다. 단단해진 성기를 옷 위로 마찰시키다 결국 홈웨어를 끌어 내렸다. 서로의 좆이 비벼질 수 있을 만큼만 벗긴 채로, 유일은 느리게 허리를 쳐올렸다.
야한 꿈을 꾸는 동안 이미 젖어 있던 강한의 성기에서 프리컴이 뚝뚝 떨어졌다. 일부러 회음이며 고환을 찔러 올릴 때마다 움찔대는 반응에 유일은 갈증이 일었다. 붙어 있는데도 더 가까워지고 싶었다.
몸을 딱 붙이고 두 성기를 손에 쥐고 움직이자 소리가 달라졌다. 꿀쩍거리는 야한 소음 사이로 강한의 학학거리는 숨이 섞인다. 살짝 부어 뻐끔거리는 입술이 유일의 육욕에 더욱 불을 질렀다. 그 입술 새를 함부로 가르며 좆을 물려 주고 싶었다. 아마 그런대도 강한은 화내지 않을 터였다. 오히려 볼이 홀쭉해질 정도로 빨아 주며 좋으냐고 물어볼 대담한 애인이었다.
“후우, 아, 한아…….”
그러니까 대낮에 이런 선물을 준비했지. 유일은 고개를 뒤로 젖히며 속도를 높였다. 철떡거리는 소리와 더불어 한의 신음이 높게 솟구쳤다.
“흐아, 으, 읏…!”
“하아, 하…….”
손안에 서로의 정액이 터져 나오는 순간, 강한은 번뜩 눈을 떴다. 방금 뭍에 건져 올린 사람처럼 ‘허억!’ 숨을 들이마신 그가 밭은 숨을 쏟아 냈다.
“일어났어?”
유일은 자상하게 물으며 끈적한 손가락을 핥아 먹었다. 어젯밤 여러 번 사정한 바람에 묽고 옅은 점액질이 하얀 손가락 사이사이 엉겨 있었다. 혼몽한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던 강한이 더듬더듬 입술을 뗀다.
“하, 뭐…. 뭐야. 꿈, 아니었…. 야, 먹지 마.”
아직 꿈과 현실의 경계 위. 그는 혼란한 심정을 그대로 드러내며 허둥지둥했다. 유일의 손목을 쥐려다가 아예 하얀 점액질을 닦아 내 주려다가, 갈팡질팡 방황하던 손이 결국 제 배 위에 놓였다.
“어제 그렇게 하고도 모자라?”
그렇게 물으며 사정의 여파로 물결치는 뱃가죽을 꾹 눌렀다. 유일의 음산한 시선이 거기 붙었다.
“한이야말로 모자라서 저거 보고 있던 거 아니야?”
“아, 저…게.”
하필이면 화면은 유일의 느끼는 얼굴로 가득 차 있었다. 변명할 여지가 없어 눈을 슬쩍 굴린 강한은 유일을 당겼다. 부끄러운 이야기보다는 차라리 몸의 대화가 편했다.
“정지시켜 놓고 뭐 하다가 잤어? 야한 꿈 꾸던데.”
한유일은 그가 이끄는 대로 몸을 붙이면서도 자연스럽게 주도했다. 아직 허벅지 근처에 걸려 있는 속옷과 바지를 그대로 둔 채, 딱 붙인 다리를 제 한쪽 어깨로 걸쳐 눌렀다. 몸이 자연스레 비스듬하게 눌린 강한이 인상을 썼다. 몸뚱이가 반으로 접힌 묵직한 불쾌감 너머로 간지러운 쾌락이 밀려들었다. 유일의 젖은 손가락이 엉덩이 사이를 지분거리기 시작했다.
“야한 생각 한 건 맞는데. 으음, 생각만. 꿈도… 맞기는, 한데…. 아…….”
말랑한 주름을 열이 오르도록 문질거리며 눌러 대는 손길에 호흡이 가빠졌다. 유일의 어깨 위에 올라간 종아리가 움칠거렸다. 입구만 깔짝거리는 애무가 성에 차지 않을 만도 한데, 육욕이 순식간에 솟구쳤다. 질척한 꿈에서부터 이어진 감각이었다.
방금까지 강한은 꿈속의 낯선 세계관 안에서 ‘가이딩’을 받고 있었다. 배경은 폐허가 된 어느 도시의 벙커 안. 한유일은 현실과 달리 존댓말을 사용하고 제복을 입었다.
파트너로서 만난 그는 실제보다 냉담하고 성격이 급했다. 입술을 붙이는 동시에 옷을 찢어발기고 노골적으로 성기를 비벼 댔다. 메마른 구멍을 아무렇게나 문지르는 거친 애무에도 꿈속의 강한은 무척이나 흥분했다. 생경한 한유일이 너무나 혼란하고 두려운데도 좋아 죽을 것만 같았다. 애타는 마음에 몸이 절로 들썩거리며 삽입을 졸랐다.
그런데 구멍에 뜨거운 열감이 닿는 순간 정신이 송두리째 휘어잡혔다. 현실로 내쳐짐과 동시에 사정하는 바람에 몸은 더욱 녹아들었다. 열기와 혼란이 몽중에 그치지 않고 불어나기만 했다. 덕분에 자는 동안 풀어진 신체가 벌써 여러 번 사정한 듯 예민했다. 별것 아닌 접촉에도 전류가 흐르고 늘어진 몸이 파드닥 튀어 올랐다.
강한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숨기지 못한 채 유일을 붙들었다.
“하, 나 자는 동안, 뭐 했…어. 아, 읏…. 이상해.”
팔을 붙들어 보아도 열기가 멎지 않았다. 구멍 바깥을 집요하게 문질러 대던 유일이 고개를 내렸다.
“음, 가슴 깨물고….”
“흣….”
“여기 만졌어.”
부은 가슴을 유륜까지 한가득 물어 낸 그가 젖은 성기를 매만진다. 강한은 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헛숨을 들이켰다. 유일의 부드러운 입술이 잔뜩 팽창한 가슴팍을 지분거리며 올랐다. 맨살을 야금야금 맛보며 오른 입술이 단단한 턱을 물자, 한의 고개가 자연스레 넘어갔다.
“그런데 만지기 전부터 벌써 서 있던데.”
잘생긴 턱선을 따라 입술을 붙이며 축축한 좆을 흔들었다. 곧 사정할 듯이 강한의 배가 윤곽을 드러내며 불룩 솟았다.
“학, 그만…. 그냥 넣어….”
“한아. 영화 어땠어?”
턱을 타고 점점이 키스하던 입술이 귓불을 삼켰다. 서늘하고 음란한 소음이 강한을 온통 뒤흔들었다. 그는 간신히 헐떡거리며 손을 뻗었다. 성기를 흔들어 대던 유일의 손목을 간절히 부여잡은 채 숨을 골랐다. 과도하게 예민한 감각이 두렵고 피하고 싶은 동시에 몸이 달았다.
“…여기 만지지 말고 그냥 넣어.”
강한은 한 손으로 유일의 손을 그대로 쥔 채 남은 손을 뻗었다. 습하고 은밀한 서로의 사타구니 사이를 더듬거리며 스스로 삽입하려 했다. 그러나 다리가 잔뜩 들려 접힌 자세 덕분에 쉽지가 않았다. 무력하게 유일의 허벅지만 더듬거리던 그가 인상을 썼다.
“빨리.”
“영화 어땠는지 말해 줘.”
건수를 잡은 한유일은 만만하지 않다. 특히 이렇게 눈을 예쁘게 접어 웃을 때면 더더욱.
벌름대는 구멍 위를 꾹 누르는 성기가 뜨거웠다. 지난밤과 꿈의 여파로 벌써 받아들일 준비가 끝난 주름이 뜨거운 살덩이를 반겼다. 말랑하게 녹아 뻐끔거리는 뒤를 느끼며, 강한은 아주 뜨거운 한숨을 코로 내쉬었다.
객관적으로는 재미있는 영화였다. 신선한 소재, 입체적인 캐릭터, 흔하지 않은 러브 라인. 모든 것들이 호평을 받았다. 그러나 강한의 머릿속에는 온통 베드 신 장면밖에 남지 않았다. 다른 사람과 혀를 섞는 한유일, 낯선 말투를 쓰고 다른 방식으로 사랑을 나누는 한유일, 타인의 이름을 부르며 느끼는 한유일. 잘나서 더 열 뻗치는 얼굴들만이 가득이었다.
“……좆같았어.”
아주 길고 얕은 한숨 이후에야 답이 나왔다. 낮은 음성과 함께 눈썹이 물결을 쳤다.
“으응. 싫었어?”
유일은 제 좆을 잔뜩 반겨 주는 구멍을 흘깃 내려다보았다. ‘좆같다’는 말이 칭찬인지 욕인지 가늠하는 표정이었다.
“어, 싫었어.”
“질투했어?”
속삭여 묻는 유일의 낯이 상기되었다. 아주 설레고 기쁜 듯한 표정이 강한을 허탈하게 했다.
“그래. 존나 질투해서 꿈까지 꿨다, 왜.”
“응, 좋아서.”
“나는 무슨 질투 안 하는 줄 아냐? 존나 하는데, 나도, 읏……. 말, 자주 안 하는, 후웃….”
마침내 구멍을 눌러 대기만 하던 좆이 주름을 가르고 들어서기 시작했다. 뻑뻑한 내벽을 꾹 눌러 진입한 열기는 조금씩 나갔다가 또 그만큼 더 많이 진입하기를 반복하며 폭을 넓혔다.
“말을 왜 안 해? 나는, 아…. 듣고 싶은데.”
평소보다 어려운 삽입이었다. 오로지 서로의 체액과 육욕만으로 내벽이 벌어지고 열이 피어올랐다. 강한은 유일의 어깨를 바투 쥐었다가, 얼른 스스로 주먹을 쥐어 참으며 끙끙거렸다.
“허윽, 으….”
“우리 한이 질투했구나…….”
질끈 감은 한의 눈가에 입술이 붙었다. 입맞춤만큼이나 쏟아지는 속삭임이 달크무레했다. 연인이 베드 신을 질투했다는 어쩌면 당연한 사실이 그렇게도 기쁜 모양이었다.
“당연히 하지, 미친…. 아!”
“응, 더 해 줘.”
“흐윽, 아! 아윽…!”
마치 꿈속에서처럼 갈급한 삽입이었다. 내벽을 묵직하게 치받으며 기어코 끝까지 차오른 양감이 불덩이 같았다. 강한은 습관처럼 또 배를 쥐었다. 금세 치솟은 사정감으로 딱딱해진 뱃가죽이 잡히지를 않았다.
한유일은 좁은 내벽을 마구 짓이겨 댔다. 인상 쓴 강한의 낯을 음산하게 내려다보며, 봐주지 않고 허리를 밀었다. 아무리 할딱거리고 버둥대도 멈추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빡빡하던 점막은 그의 좆이 뱉어 낸 점액질로 부드러워지기 시작했다. 찔꺽찔꺽 야한 소음과 함께 속도가 붙었다. 이제 더는 참기가 어려웠다.
“허윽, 흣, 한유일…. 너…, 베드 신, 찍지 마, 이제…….”
한계까지 치솟은 흥분으로 머릿속이 하얗게 번졌다. 강한은 쾌락에 쫓기듯 헐떡거리며 그저 떠오른 말을 뱉어 냈다.
“응, 또?”
“키스도, 하, 아으! 흣!”
“그리고?”
“아읏, 아, 존댓말…, 헉, 해 봐, 존댓말…….”
엉덩이가 아릿하게 느껴질 만큼 거세게 치받던 움직임이 잠시 멎었다. 아주 찰나였다.
“존댓말 듣고 싶었어?”
아하하, 소리까지 내어 웃은 유일이 상체를 숙여 온다. 덕분에 몸이 재차 눌리며, 다소 느슨해졌던 압박이 심해졌다. 성기는 다시 처음처럼 거세게 안을 짓찧어 댔다. 이제 유일의 호흡도 잔뜩 흐트러지며 여유가 사라져 갔다. 아래가 턱턱, 둔탁하고 빠르게 부딪혔다.
“대답이 없네. 듣고 싶었어요?”
한유일은 아주 거칠게 안을 쑤셔 대며 물었다. 영화에서처럼 정중하되 조금은 냉담한 투였다. 강한은 찌릿한 전율을 느끼며 정신없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오래 참아 온 사정감이 마구 터져 나갔다.
“아! 아흑! 응, 으…, 듣고, 아아….”
“하아, 윽, 너무 조여요.”
“아! 흐, 응! 으읏!”
묽은 정액이 투두둑 떨어지는 와중에도 유일은 빠르게 허리를 치댔다. 밀어내거나 그만하라는 말을 할 만한 틈조차 주지 않은 채였다. 평소보다 여유가 없기로는 그도 마찬가지였다.
살이 맞붙었다 떨어지는 소리가 폭력적으로 느껴지는 움직임이었다. 흥분에 흉포해진 성기가 내벽이 다물어질 때를 주지 않고 쑤셔 댔다. 사정 직후에 쏟아지는 지나친 쾌락에 강한은 타액을 뚝뚝 흘리며 흐느꼈다. 아직도 꿈결인 듯이 온 감각이 비현실적이다.
“그렇게, 좋아요? 후읏….”
“우흣, 으, 좋…아, 아, 아읏.”
혀가 멋대로 굳고 발음이 뭉그러질 만큼 강한 환락이었다. 강한은 어쩌면 자신이 다시금 꿈속에 들어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눈을 질끈 감았다. 아무렇게나 손을 뻗고 끄덕이며 흐느꼈다. 미칠 것만 같았다. 별다른 애무 없이 오로지 쑤셔 대는 행위로 종용된 사정과 쾌감이 머릿속을 녹여 갔다.
“아흐, 저…, 아! 응! 좋아요….”
입 밖으로 줄줄 흐르는 말이 무엇인지도 몰랐다. 그저 나오는 그대로 중얼거리며 유일을 덥석 끌어안았다. 성기가 명치까지 차올랐다고 느낀 순간, 일순 배 안쪽이 한층 더 뜨거워졌다.
“흐으, 흣….”
“하아, 씹…….”
유일조차 예상하지 못한 사정이었다. 드물게 상스러운 신음을 뱉어 낸 유일이 상체를 일으켰다. 단번에 성기를 뽑아내자 강한은 그것만으로도 약한 절정을 느꼈다. 비어 버린 배를 웅크리며 바르르 떠는 모습이 유일을 자꾸 채근했다.
초조해진 하얀 손이 걸리적거리는 것들을 아무렇게나 치워 버리며 강한의 다리를 넓게 벌렸다. 아직 걸쳐져 있던 서로의 옷과 공간을 좁게 만들던 쿠션 등이 툭툭 바닥에 떨어져 내렸다.
강한은 몽롱한 눈을 끔벅거리며 숨을 색색 골랐다. 밤새 저지른 섹스 때문인지, 아니면 수면 속에서부터 이어진 쾌락 탓인지 평소보다 맥을 추리기 어려웠다. 고작 두 번의 사정으로 녹초가 되어 눈이 가물가물 감기고 있었다.
“안 되지. 자면 안 돼요.”
유일은 아주 다정한 입맞춤을 내리며 다리 사이를 재차 파고들었다. 두툼하고 뜨거운 귀두가 구멍 아래에서부터 무언가를 긁어 올렸다. 들어올 듯이 굴다가 다시 멀어져 살결을 문질러 대는 움직임에 애가 탔다. 엉덩이가 저절로 들썩이며 구멍을 맞추려 들었다.
“어, 읏…. 안 자. 안 잘게…….”
이미 반쯤 잠든 음성이 늘어진다. 묵직한 눈을 억지로 뜨려 애쓰는 연인이 무척이나 귀여워, 유일의 심술도 금세 녹았다. 그는 아주 만족스럽게 웃으며 허리를 밀었다. 두꺼운 성기가 자꾸 빠져나오던 정액을 구멍 안으로 밀어 올리며 진입했다.
잔뜩 벌어져 개폐를 반복하던 주름은 저항감도 없이 좆을 삼켰다. 더 들어오라며 성기를 씹어 대는 감각만큼, 평정을 잃은 강한의 낯이 유일을 흡족하게 했다. 잔뜩 흥분한 중에도 자국을 남길까 두려워 손을 갈무리하던 강한은 이제 없었다. 정신이 반쯤 날아간 그가 하얗고 각진 어깨를 꽉 쥐고 떨었다.
“읏, 아윽!”
천천히 내벽을 벌려 대던 좆이 한순간 깊게 처박히자, 아예 손톱이 박혔다. 유일의 입술이 호선을 그렸다.
“나 좀 봐요.”
영화 속 대사를 중얼거리며 안을 짓찧었다. 그에 초점 흐린 눈동자가 유일을 담는다. 생리적인 눈물이 자꾸만 쏟아져 일렁거리던 눈이 찌푸려졌다가, 힘없이 풀렸다가, 아예 눈꼬리를 늘어트리며 흐느꼈다.
“아, 힘들… 흐읏, 힘든데. 씨, 발…….”
“그렇게 힘들어요?”
강한은 기다렸다는 듯 끄덕였다. 그러나 멈칫 물러나는 허리를 잡아당기며 다시금 움직이기를 채근하는 사람 또한 그였다. 그는 아주 고통스러운 낯을 유일의 어깨에 비벼 대며 흐느꼈다. 신체가 한계에 도달한 듯 정신이 자꾸 깜빡인다. 호흡하는 것조차 버거운 쾌락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그럼에도 고집을 부렸다.
“빼지 마, 아으, 윽….”
“힘들다면서.”
느려지는 허리 짓을 채근하다 못해, 강한은 아예 유일을 밀어 올라탔다. 고집스럽게 성기를 삼키며 앉자마자 허리가 무너져 내렸다. 다 녹은 몸이 마음처럼 움직여 주지를 않았다. 그래도 그는 골반을 앞뒤로 움직여 보았다. 눈앞에 뿌연 살결을 마구 씹고 핥아 대며 짐승처럼 허리를 흔들어 댔다.
“한유일, 너…. 하아, 아, 너…….”
“응, 한아.”
유일은 그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게끔 두었다. 말리기는커녕 제 살결을 아프게 짓씹고 으르렁거리는 그를 쓰다듬으며 두둔했다. 들썩거리는 엉덩이와 허리, 품 안에서 비비적거리는 머리통을 상냥하게 매만졌다. 그럴수록 강한의 움직임은 난폭하고 초조해졌다. 젖은 하체에서 음탕한 소리가 울린다.
“너, 아, 읏…, 너는 나, 좋아하잖아…….”
그렇게 난잡한 행위 한복판. 생각지 못한 말이 유일의 손을 멎게 했다.
“한유일은, 후우, 읏…. 나 좋아하는데….”
베드 신의 뒤끝인가. 유일은 즐거이 생각하며 무릎을 세워 올렸다. 젖은 엉덩이를 꽉 쥐어 벌리며 안을 쑤시기 시작했다.
“응, 유일이는, 읏…. 한이 좋아해.”
“그, 아읏! 응!”
“한이만 좋아해.”
성숙한 애인이라면 질투에 눈이 먼 상대를 잘 달래 무리한 행위를 중단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한유일은 그렇게 착한 애인이지는 못했다. 그는 오히려 강한의 질투와 소유욕을 아주 즐겁게 받아들이며 더욱 강하게 밀어붙였다. 이틀 내리, 강한은 통째로 씹어 먹고 싶은 날이었다.
***
결국 카페는 하루 더 문을 닫았다. 는 다시 재생되지 못한 채 종료되었고, 남은 휴일은 종일 침대행이었다.
한유일은 알아서 침대를 덥히고 귤 한 바구니를 대령해 왔다. 침실 TV에 <루나 더 퀸> 첫 시리즈를 틀어 놓고, 퉁퉁 부은 강한의 눈가를 쓸어 주었다.
“관절이, 미친, 다 없어진 것 같다.”
강한은 유일의 무릎을 베고 누워 투덜거렸다. 예외 없이 불은 입술 새로 귤 한 조각이 밀려 들었다.
“한이가 질투해 주니까 좋아서 자제가 안 됐어.”
“참 나…….”
괜스레 말을 흐린 강한은 그저 귤만 우물거렸다. 몽롱하던 꿈결과 베드 신의 뒤끝이 사라지고 나니 스스로 벌인 짓들이 꽤 민망했다. 기억나지 않는 척 화면만을 고집스럽게 바라보던 그가 비식 웃었다.
“근데 한유일 너도 변태 다 됐어.”
“응?”
“아무리 그래도 잠든 사람을 건드려?”
그나마 혼자만 파렴치한이 되지 않을 수 있는 건수가 있었다. 놀리듯 웃은 강한이 몸을 돌려 누웠다. 정면으로 유일을 올려다보며 입을 아 벌린다. 귤을 더 먹고 싶다는 의미였다.
유일은 그처럼 따라 웃으며 귤 한 조각을 떼어 냈다. 조금 전 것보다 큰 조각을 일부러 그대로 밀어 넣자, 한의 볼이 불룩 솟았다.
“한이가 문자 보냈었잖아.”
입 안을 가득 채운 귤 때문에 ‘뭐를?’ 하고 되묻지 못했다. 강한은 의문스러운 눈만 들어 올리며 우물우물 귤을 씹었다.
“맛있는 거 해 놓는다고.”
“큿….”
예상치 못한 대답이 호흡을 턱 막았다. 새콤달콤한 과즙이 잘못 넘어가는 기분과 함께, 벌떡 일어난 강한은 쿨럭쿨럭 기침을 쏟았다. 침대 바깥으로 고개를 내밀고 엎드린 그를 유일이 아무렇지도 않게 안아 당겼다.
“맛있었어요.”
“아, 시발, 진짜 미친 새끼…….”
새빨개진 뒷목에 귤 향 묻은 입술이 연신 부딪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