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Part. 5-1 그럼에도 (6/12)

Part. 5-1 그럼에도

밤중에 호텔로 불려 나온 한유일은 한 시간 내내 잔소리를 들었다. 편을 얻어 기세등등한 상수가 삿대질을 해 가며 주도했고, 강한은 의외로 조용해졌다. 그가 따지고 싶은 내용은 상수 앞에서 말하기에는 모호한 것들이 많았으며 막상 유일을 마주하니 분노보다 억울함이 커졌다. 이를테면 ‘왜 범철이 같은 새끼는 멋대로 사는데 왜 우리는 그럴 수 없는지.’ 같은 슬픔이었다.

술에 취한 두 사람 앞에서 홀로 제정신인 한유일은 고문처럼 느껴질 법한 자리를 잘 견뎌 냈다. 오히려 즐기는 듯한 표정이었다. 시종일관 방긋방긋 웃으며 ‘응.’ 하고 대꾸하던 낯 그대로, 유일은 비틀거리는 한을 집까지 데려다주었다. 홀로 침묵에 빠져 허우적거리던 강한이 꾸벅꾸벅 졸기 시작한 무렵이었다.

“한아, 비밀번호는 눌러 줘야지.”

부축을 한사코 거절하던 몸이 어느덧 유일에게 한껏 기대어 있었다. 익숙한 현관문을 마주하고서야 술기운이 조금 날아간 한은 얼른 발에 힘을 주었다. 서둘러 무게 중심을 잡고 유일을 휙 돌아본다.

“아직도 웃고 있네…….”

열기 오른 눈이 슬며시 좁아진다. 흘겨보며 중얼거리자 유일은 아예 소리를 내어 웃었다.

“응, 기분이 좋아서.”

“욕만 처먹고도 뭐가 기분이 좋아.”

강한은 ‘저게 또 사람 속 터지게 하네.’ 생각하며 현관에 기대었다. 차가운 금속의 감각이 정신을 일깨우는 데 도움 되는 듯했다.

“한이가 내 걱정 해 주잖아.”

그러나 한여름에도 등골을 서늘하게 만드는 냉기보다, 유일의 말 한마디가 더욱 강했다. 일순 이성을 확 돌아오게끔 만든 범인은 여전히 맑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 정도 포상이면, 나 범철이 같은 애들은 매일도 볼 수 있어.”

덧붙여 얹힌 말이 결정타였다. 강한의 짙은 눈썹이 가파른 산을 그렸다.

느슨하게 기대어 서 있는 몸을 휙 돌려 선 그는 곧장 비밀번호를 눌렀다. 술기운이 다 날아간 손은 실수가 없었고, 덕분에 금세 문이 벌어졌다. 지체 없이 그 틈을 벌려 들어서는 등을 보며 한유일은 문전박대를 예상했다.

그러나 곧이어 커다란 손이 습격처럼 다가왔다. 순식간에 멱살이 휘어잡힌 유일은 현관 안쪽으로 거칠게 당겨졌다. 쾅! 문이 닫히자마자, 강한은 바싹 몸을 붙여 섰다.

“어떻게 웃음이 나오지…….”

당장 주먹을 올려붙일 듯한 표정으로 그가 중얼거렸다. 무척 고통스러운 얼굴로 숨을 고르는 강한을, 유일은 아주 가까이서 지켜보았다. 발끝에서부터 어떤 전율이 흐르기 시작했다.

“안 되겠다, 이렇게 하자. 너, 일단….”

한의 혼란스러운 눈동자 안에는 초조와 불안이 담겨 있었다. 그 기색을 따라 두서없이 흘러나오는 말이 유일에게는 여전히 달았다. 그래서 입꼬리가 재차 올라갔다. 승부수를 던질 때였다.

“한아, 나 정말 괜찮아.”

“씨발, 괜찮기는. 너는 받은 만큼 돌려주고 싶다는 생각도 안 들어?”

“음, 그랬으면 한이한테도……. 못 할 짓 많이 하지 않았을까.”

그 말 하나에 흔들리던 눈동자가 굳건해졌다.

강한에게는 갑작스레 모든 것이 선명해진 기분이었다. 분노와 함께 솟아오르던 초조함, 갈증, 조바심이 모두 올바른 방향을 찾았다. 한은 이제 더 이상 혼란하지 않은 얼굴로, 짓씹어 뱉듯 말했다.

“그래, 일단 나한테서부터 돌려받자.”

저 스스로에게 말하듯 중얼거리는 그의 눈매가 날카롭게 빛났다. 동시에 음산한 경고가 흘러나왔다.

“너 이제부터 내 앞에서 손해 볼 생각 마.”

협박은 거친 입맞춤과 함께 날아들었다.

벽에 밀쳐 놓은 유일을 제압하는 듯한 키스였다. 터져 나오는 서로의 갈급한 숨을 다시금 삼키고 핥아 내는 동안, 얽힌 다리가 방을 가로질렀다. 이사를 위해 이곳저곳에 늘어서 있던 박스들을 발로 밀어 치우며 두 사람은 금세 침대에 도달했다.

짙은 회색 이불 위로 풀썩 누운 강한은 무방비했다. 흐트러진 머리와 편하게 벌어진 다리, 스스로 제 셔츠 단추를 풀어내는 손가락이 유일을 궁지로 몰았다. 한유일은 뜨끈해진 숨을 코로 길게 내쉬었다. 단단한 몸 위를 아주 느리게 타고 올라 점령하며, 그는 달콤히 속삭였다.

“확인할 게 있어.”

숨처럼 속삭인 그가 볼 위로 입술을 누른다. 간지러운 입맞춤이 단단한 턱선을 타고 올라 귓불까지 이어졌다. 한은 취기가 미약하게 남은 숨을 훅 들이켜며 ‘뭔데.’ 하고 짓눌린 목소리로 물었다.

“우리가, 지금…….”

유일은 스스로 단추를 풀던 한의 손을 앗아 갔다. 그러면서 맞닿은 하체를 쳐올렸다. 팽팽해진 서로의 앞섶이 묵직하게 비벼지며, 강한의 귓구멍 속으로 뜨끈한 혀가 뱀처럼 밀려 들어간다.

“헉, 아… 미친, 귀를 왜… 하, 읏….”

“후우, 우리가…. 지금 몇 살이나 됐지, 한아.”

열 오른 숨과 음성이 귓속으로 여과 없이 쏟아지는 탓에 흥분을 고조시켰다. 귀에서부터 온 얼굴이 다 녹는 기분에 강한은 끙끙거리며 허리를 움직였다. 맞닿은 앞섶을 더 비비고 싶은 본능으로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헛소리, 말고, 후우, 빨리.”

“쉬이, 얼른……. 하아, 대답해 봐.”

축축한 귀를 놓아준 유일은 그대로 입술을 내렸다. 목선을 점점이 타고 내려간 온기가 쇄골을 문지른다. 마치 달래듯이 자상하게.

그 간질거리고 몽롱한 기분에 취해 있자면 바짝 맞물린 하체가 비벼지며 대답을 채근했다. 한유일은 마치 이미 삽입한 사람처럼 뭉근히 허리를 움직여 대고 있었다.

“서른 하, 아! 윽….”

답을 다 듣지도 않고, 그는 두툼한 가슴팍 위에 이를 세웠다. 셔츠가 흐트러진 틈을 마구잡이로 벌려 내 단단한 가슴을 빨고, 작은 유두를 벌주듯 깨물었다. 그러나 정작 고개를 들어 한을 올려다보는 얼굴은 무척 따뜻했다. 유일은 주변이 다 밝아지는 것만 같은 그런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응, 잘했어.”

타액으로 빛나는 유두 위를 쓰다듬으며 하기에는 지나치게 온화한 말이었다. 강한은 이상하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지만, 유일은 망설임 없이 손을 옮겼다. 단박에 바지 버클이 잡혔다.

팽팽해진 윤곽 덕분에 바지를 탈의하기가 쉽지 않았다. 결국 서로의 앞섶만 풀어 헤친 채 성기가 맞닿았다. 속옷 위로 단단한 양감이 비벼지는 느낌에 한은 입술을 꾹 물었다. 비현실적일 만큼 현실적인 흥분이 황당할 만치 빠르게 차오르고 있었다.

“너 경험 없… 헉, 읏, 없다면서….”

침대에 누운 즉시 가슴이 빨린 것도 모자라 벌써 버클이 내려갔다. 그동안 강한의 상상과 꿈속에서 벌어진 섹스와는 차원이 다른 속도였다. 그 점이 열기를 더 빠르게 데우는 동시에 묘한 불쾌감을 불러일으켰다.

한유일 이 새끼, 술 처음 마셔 봤다던 날처럼 혹시 이것도.

의심 가득한 눈초리 끝으로 입술이 닿는다. 웃음기 묻은 입맞춤을 남긴 한유일은 아예 속옷 바깥으로 서로의 성기를 꺼냈다. 한의 선단을 문질러 미끈한 점액을 옮겨 가더니, 이내 뜨겁게 달아오른 두 기둥이 마주 비벼지기 시작했다.

“메소드 연기랑 비슷한 이치야.”

열기 섞인 숨을 후우, 느리게 뱉어 내며 그가 상체를 일으켰다. 말간 얼굴과는 달리 아래를 맞잡고 제 두 손 안에 가두어 문지르는 행위는 무척이나 노골적이었다.

“흐, 읏….”

“수없이 많은, 하아, 상상을 반복해서……. 경험을 내면화하는 거지.”

낮게 속삭인 유일이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무언가 본격적인 움직임이 시작될 듯한 기세였다.

예상대로 그는 느리게 쳐올리던 골반에 속도를 붙여 갔다. 턱, 턱, 강하게 맞부딪히는 하체를 따라 성기 끝에서 끈끈한 액이 줄줄 흘렀다.

“음, 으, 그만, 아, 할 것… 같아.”

분명 더 묻고 싶은 말이 있었던 듯한데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강한은 눈을 질끈 감은 채 제 눈 위로 팔뚝을 얹었다. 숨을 참느라 부푼 가슴이 가파르게 오르내리고, 발끝이 시트를 어지럽히며 오므라든다. 참기 어려운 감각이 배 속에 뭉치고 있었다.

“응, 한아. 나도…….”

낮게 속삭인 유일이 다시금 상체를 숙였다. 훅 가까워진 그가 유두를 아프게 깨물고 곧장 올라왔다. 학, 밭은 숨을 뱉으며 움츠러든 한의 목과 귓가를 다시 타고 오른 입술이 ‘한아, 좋아.’ 하고 속삭였다. 성기를 추어올리는 감각보다 더 자극적인 말이었다.

“아, 씨…, 발, 귀에다 좀….”

아까부터 아래에서 울려 대던 질척거리는 소음을 무시하는 것만 해도 한에게는 충분히 힘든 일이었다. 그런데 이제 대놓고 귀 옆에 이마를 묻은 유일이 신음을 흘려 대고 있었다. 평소보다 거칠게 갈린, 낮은 숨소리가 한을 더욱 조급하게 만들었다. 허리가 저절로 들썩이고 발끝이 아프게 굽었다. 더는 참을 수가 없었다.

“응, 한아…, 나도 좋아.”

“하지, 읏, 아읏!”

만류조차 끝맺지 못한 채로 섬광이 튀었다. 들썩거리던 하체가 허공에 붕 뜬 채 굳고, 발끝이 바르르 떨렸다. 터져 나온 정액이 가슴과 턱 끝으로 솟구치고 있었다.

“아, 그만, 미친, 새끼야…, 아!”

그러나 여전히 아래를 치대는 한유일의 성기는 단단하게 선 채였다. 울룩불룩 핏줄이 불거진 성기가 축축한 한의 것을 짓누르며 또다시 속도를 높인다. 질척한 정액을 묻혀 아예 선단까지 문질러 대는 손길이 집요했다. 유일이 아래를 함부로 흔들어 대자 한껏 예민해진 성기가 금세 힘을 얻어 꺼덕이기 시작했다.

한계를 벗어난 쾌락에 강한은 저도 모르게 그의 팔뚝을 콱 쥐었다. 하지 마, 하지 말라고, 다급한 말이 음성보다는 호흡에 가까이 터져 나갔다. 하지만 유일은 멈추지 않았다. 도리어 더 야한 숨을 귓가에 쏟아 내며 자꾸만 이름을 불러 댔다.

“한아, 후읏, 한아…….”

흥분에 점철되어 지나치게 애틋하게까지 들리는 음성은 강한을 약하게 만들었다. 저도 모르게 힘이 풀린 틈을 타 한유일은 빠르게 속력을 높였다. 빠듯하게 조인 젖은 손안으로 두 성기가 마구 비벼지며 열기를 피워 올렸다.

“빨리 좀, 윽, 흣, 아, 으응!”

“윽……, 하아, 하….”

육욕이 목을 조르는 듯한 기분을 느낄 즈음, 아래에서부터 뜨거운 감각이 퍼져 나갔다. 그러나 강한은 제 배 위를 적시는 정액보다도 방금 뱉어 낸 소리가 신경 쓰였다. 그러니까 조금 전에……. 한유일이 제 귓바퀴를 콱 물며 사정하는 그 찰나에, 저도 모르게 너무 이상한 신음을 내뱉은 것 같았다.

얼굴이 새빨갛게 익은 강한은 뒤늦게 어금니를 꽉 문 채 버텼다. 덕분에 빠져나가지 못한 숨이 몸 안을 맴돌며 흉곽을 부풀렸다. 후욱, 훅, 경기를 마친 선수처럼 잔뜩 시근덕거리는 동안, 귓가로 달콤한 숨을 불어넣던 유일은 아주 천천히 일어섰다.

이제야 조금 여유가 생긴 듯 얕게 웃은 그가 천천히 제 셔츠 단추도 풀기 시작했다. 위에서부터 저를 내려다보는, 점령한 자의 시선이 호승심을 자극했다.

일순 발끈한 강한이 몸을 일으켰다. 상대의 공격에서 벗어날 때같이, 유일의 팔을 홱 잡아당겨 방향을 바꾸었다. 저돌적으로 달려들어 아무렇게나 흐트러진 바지를 벗겨 던지고, 저도 속옷까지 훌렁훌렁 탈의했다. 진회색 이불 위에 얌전히 누운 유일은 어느 명화를 감상하듯 꼼꼼한 눈길로 한을 훑었다.

“뭘 보고만 있어, 너도 벗어.”

스트립쇼를 벌인 듯한 민망함에 투덜거리자 유일은 씩 웃었다. ‘응.’ 늘 그랬듯 순순히 답한 그가 셔츠 밑단을 잡아 내리며 반쯤 일어나 앉았다. 침대 헤드에 느슨히 기댄 그는 금세 셔츠를 벗어 던졌다. 그러고는 자세를 바꾸는 동안 자연스레 올라갔던 드로어즈를 느리게 슬 내렸다.

자연스레 그 움직임을 따라 시선을 내리던 강한이 문득 굳었다. 완전히 발기하지도 않은 성기가 벌써 속옷 바깥으로 머리를 한참 내보이고 있었다.

사실 그동안 강한은 남의 성기 크기에 관심 갖는 놈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화장실에 가서 제 아랫도리를 힐긋거리며 ‘올.’ 하고 놀란 눈을 하는 태권도 동기들도, 군대에서 아예 자까지 가져와 순위를 매겨 보자고 난리를 치던 고참들도 다 희한하게만 생각했다. 남의 거기가 크든 작든 저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그런 태도를 누군가는 가진 자의 여유라며 매도했지만, 그저 강한은 그 호기심 자체를 공감할 수 없었다.

그런데 하필 오늘. 서로 짐승처럼 뒤섞이다 옷을 벗은 이 순간에야 강한은 그들의 심정을 공감할 수 있었다. 눈이 저절로 커지며 고개가 갸웃 틀어졌다.

“오늘 꼭 다 하지 않아도 돼.”

시선을 읽은 것처럼 유일이 속삭인다. 툭, 바닥으로 드로어즈 떨어지는 소리가 뒤이어 들렸다. 강한은 제 눈앞에 드러난 것을 애써 모르는 척하며 얼른 몸을 붙였다. 헤드에 기댄 유일 위로 겹쳐 앉으며 어깨를 쥐었다.

그러자 한유일은 무엇인가 인내하듯 눈썹을 구겼다. 그가 인상을 찌푸리는 일은 많지 않았으므로 한은 얼른 엉덩이를 떼어 냈다.

‘아, 무거우려나.’

확실히 그럴 만도 했다. 무릎에 체중을 실어 반쯤 선 강한은 잠시 갈등하며 그를 내려다보았다. 호기롭게 덤비기는 했는데 이다음 어떤 행위를 이어 가야 할지 난감했다.

“한아, 그날 밤에 말이야.”

이번 역시 난처한 눈길을 읽어 낸 유일이 한 박자 빨랐다. 느릿한 읊조림과 함께 엉덩이가 확 당겨진다.

“읏….”

한유일은 가까워진 가슴 언저리를 깨물고 핥으면서 강한의 올라붙은 엉덩이를 주물렀다. 손가락을 잔뜩 벌려 가득 쥐어 낸 탓에 얇고 긴 손가락이 구멍 주변을 간질거렸다. 강한에게는 무척 생소한 감각이었다. 본능적으로 솟구치는 거부감에 엉덩이가 움직거리자, 유일은 조금 더 세게 힘을 주어 당겼다.

“사실 우리 이 근처도 못 갔어.”

꽉 닫힌 구멍을 느리게 문질러 대며 유일이 속삭였다. 한은 밭은 숨을 내지 않기 위해 입 속 살을 꾹 문 채로 그를 내려다보았다. 예쁘게 볼을 붉힌 한유일은 한의 옆구리와 가슴 근처에 쉴 새 없이 입술을 쪼아 대다 시선을 마주했다. 기다란 속눈썹이 팔락거리는 모습을 구경하느라 사고 회로가 느리게 돌았다.

“그 자국들 다 한이가 남긴 건 맞아. 오늘처럼 나를 아주 거칠게 밀어붙였거든.”

수수께끼 같던 말의 뉘앙스가 점차 분명해진다. 얼굴 감상에 여념이 없던 한은 조금 멍하게 되물었다.

“뭐?”

“그런데 한이가 너무 인사불성이라 참았어.”

이성 밑에 미적지근하게 깔려 있던 술기운마저 모두 휘발되는 순간이었다. 강한은 입술을 감쳐물고, 눈 안에 칼날을 세웠다.

“안 했다고, 우리?”

신경질적인 물음에 유일은 가만 끄덕였다. 주눅 하나 들지 않은 뻔뻔한 낯이 한의 맨살에 애교 부리듯 비비적거렸다. 어금니를 으득 갈며, 강한은 그날 아침을 떠올려 보았다.

울긋불긋한 자국들과 어제 좋았다던 의미심장한 선언. 지난밤이 기억나지 않는다는 말에 짐짓 서운해 보이던 얼굴까지.

“내가 처음이라며.”

“응, 거기까지도 한이가 처음이었으니까. 어차피 정말 처음도 한이랑 할 생각이었고.”

뻔뻔한 대답이 하도 황당해 강한은 반듯한 이마를 꾸욱 밀었다. 약간 밀려난 유일은 무해한 눈동자 그대로 한의 결단을 기다리기 시작했다.

확실히 잘 곱씹어 보면, 한유일은 어느 것 하나 단정 지어 말한 바가 없었다. 다만 멋대로 정황을 오해한 자신을 정정해 주지 않았을 뿐.

일순간 유일에게 돌려줘야만 마땅한 밤이 사라졌다. 그럴듯했던 구실이 삽시간에 녹아 버린 지금, 강한은 기묘한 진실과 마주했다. 그만두고 싶지 않았다. 메소드를 운운할 만큼이나 여러 번 상상해 왔다는 한유일처럼, 아주 솔직히는 자신 또한 이 밤을 바라 마지않았다.

한유일을 갖고 싶다.

아무도 모르게 꽁꽁 숨겨 저 깊은 곳에 묻어 두고, 스스로도 찾기 어려울 만큼 짓눌러 밟았지만 11년이나 죽이지 못한 욕망이었다.

“차라리 속이고 하지. 눈치 없는 새끼…….”

탓하듯 중얼거리자 유일은 눈을 휘어 웃었다. 빠져나갈 구멍을 모두 차단한 자의 미소라기에는 지나치게 화사했다.

“그래서, 어떻게 할래?”

보란 듯이 입술을 벌린 유일은 내내 지분거리던 살결을 앙 물었다. 탄력 있는 살덩이가 깨물고 핥아질 때마다, 혈관 속으로 육욕이 내달리는 듯했다. 강한은 불길 번진 눈을 숨기지 않고 으르렁거렸다.

“이거나 어떻게 하고 여유 있는 척을 해라, 좀.”

침대를 디디고 있던 무릎이 흉흉하게 일어선 유일의 것을 지그시 눌렀다. 그에 곧바로 웃음소리가 터졌다. 하하, 맑은 웃음소리에 나름의 도발을 감행하느라 심장까지 쿵쿵 뛰어 대고 있던 강한은 심기가 불편해졌다. ‘시발, 진짜 그만둘까.’ 싶은 순간이었다.

“한 방이 있다니까, 항상…….”

허탈하게 중얼거리던 유일이 불쑥 팔을 뻗었다. 목을 감을 듯했던 그는 의외로 강한의 뒤통수를 잡아당겼다. 머리채를 잡듯 아픈 악력이었다.

“아.”

나지막한 신음이 터지는 틈을 타 가까워진 유일은 곧장 턱을 들었다. 조금 부푼 붉은 입술이 삽시간에 한을 잡아먹기 시작했다. 앞으로 벌어질 섹스를 다 일러 주는 듯한 그런 키스였다.

입술을 시작으로, 유일의 식사 같은 애무는 조금 더 집요하고 길게 이어졌다. 미끈하고 뜨거운 감각이 이곳저곳에 피어오르는 탓에 한의 숨은 더더욱 농밀해졌다. 조급한 호흡이 작게 씩씩거렸다. 한유일은 경험이 많은 사람처럼 자연스러운데, 저 혼자만 초보처럼 구는 것 같았다. 제대로 된 관계가 시작되기도 전에 사정해 버리면 어떡하나 싶었다.

일찍부터 앞서가지 않기 위해 강한은 필사적으로 다른 생각을 했다. 그래 봤자 ‘한유일은 입술도 부드럽다. 내 살이 거칠게 느껴지면 어쩌지. 그래도 아까 상수 숙소에서 샤워라도 해 둬서 다행이다.’ 같은 것들이었다. 지나친 쾌락을 막기 위해 선택한 생각들은 사실 별 도움은 되지 않았다. 유일이 입술을 옮길 때마다 한은 무기력하게 신음하고, 손에 닿는 대로 그를 어루만졌다. 나른하고 기분 좋은 쾌감이 빠른 속도로 차올랐다.

강한의 상상 속에서 이루어졌던 유일과의 섹스는 항상 두루뭉술했다. 갑작스레 장면이 전환된 청소년 관람 불가 영화처럼, 갈급한 키스부터 시작된 관계가 띄엄띄엄 이어졌다. 신체 어느 부위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애무하고 또 어떤 감각을 느끼게 될지, 그런 것들은 모두 모호하게 흐렸다. 제대로 된 경험이 없는 탓인지 상상은 늘 드문드문 편집된 선정적인 이미지의 연속이었다.

상상을 이끄는 장면은 오로지 짙은 키스만 나누는 클로즈업 신일 때도 있었고, 어떤 날에는 포르노처럼 들러붙어 허리를 흔들어 대는 두 나체의 롱 숏이기도 했다. 어차피 유일과 맨몸을 맞대고 흥분한 숨을 섞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반응이 왔으므로 다른 것들은 중요치 않았다.

때문에 아주 자연스럽게 몸이 돌려져 엎드렸을 때도 거부감은 없었다. 어느 성인 영화든 흥분에 차오른 두 사람이 엎드려 몸을 겹치고 있는 바스트 숏은 자주 볼 수 있었다. 당장은 그저 서로의 살결이 아무렇게나 맞닿아 뭉개지는 감각이 좋았다. 연이어 퍼부어진 짙은 키스로 숨이 가빴으며, 몰아치는 흥분을 감당하는 것만으로 머리가 핑 돌았다. 자세가 어떻다는 생각은 사치였다. 한은 시트 위에 이마를 문지르며 아주 잠시간 주어진 휴식을 만끽했다.

울룩불룩한 등과 어깨, 척추를 따라 잘게 입맞춤을 내리던 유일이 약간 멀어졌다. 조금 떨어져 무릎으로 선 그가 한의 엉덩이를 쥐며 중얼거렸다.

“아무래도 젤 같은 건 없겠고…….”

중얼거리는 말이 귓등을 스쳐 지난다. 강한은 그저 작게 헐떡이며 ‘엉덩이 존나 좋아하네….’ 같은 생각을 했다.

“한아, 차면 안 돼.”

유일이 무언가를 먼저 경고하는 일은 흔치 않았다. 덕분에 말을 다 해석하기도 전에 어떤 불안감이 강한을 엄습했다. 몸이 저절로 움칫하는 순간, 오금이 눌렸다. 유일의 매끈한 다리가 한쪽 무릎 뒤편을 제압하듯 누르더니 허리가 쑤욱 위로 당겨졌다. 동시에 엉덩잇살이 벌어진다.

“아! 씨, 발, 미쳤… 야!”

벌어진 엉덩이 사이로 느껴져서는 안 될 촉감이 닿았다. 강한은 기겁하며 다리를 뻗쳤지만, 오금을 누른 유일의 몸이 들썩이는 순간에 곧장 멈추었다. 함부로 움직였다가는 한유일을 다치게 할 것 같았다.

“거길, 왜, 흣, 비켜…….”

“안 하면 상처 날 거야.”

구멍에 대고 웅얼웅얼 대답한 유일은 혀를 내었다. 부드럽고 말캉한 무언가가 꽉 닫힌 구멍을 콕콕 누르고 핥아 댔다.

“아윽, 더러, 더럽다고…, 아, 흐윽, 또라이 새끼야.”

강한은 온갖 충격에 얻어맞은 몸을 떨었다. 생각지 못한 쾌감이 수치스러운 동시에 의문이 솟았다.

이게 이렇게 기분 좋아도 되나? 그리고, 왜 당연하게 내가 빨리고 있는 건데?

“아! 한…유일, 하아, 네가, 넣… 으읏!”

한이 고개를 비스듬히 틀어 어렵게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시트 위에 이마를 비비적거리며 등을 뒤틀어 대자, 의미를 알아챈 유일은 잠시 입술을 떼어 냈다. 강한은 붉어진 눈으로 그를 마주했다.

“네가, 하아, 넣는 거냐고.”

인간적으로 합의 정도는 해야 되지 않나 싶었다. 그 얼굴에 어울리지도 않는 걸 달고 있으면, 책임감이 있어야지. 강한은 비난하듯 눈길을 슬쩍 내렸다가 다시 불만스럽게 유일을 쳐다보았다. 여전히 엉덩이를 내놓은 채였다.

“싫어?”

유일은 젖은 구멍을 손가락으로 지분거리며 물었다. 날씨를 묻듯 간단한 어투로.

“음, 읏… 싫은, 건 아니고…….”

시야에 슬쩍 걸리는 제 성기가 바싹 서서 점액질을 뚝뚝 흘리고 있었으므로 거짓말은 하지 못했다. 강한이 어물쩍 말을 흐리자 유일은 가만 웃었다.

“나는 한이가 하고 싶으면 괜찮아. 그런데 지난번 자국도 되게 오래갔으니까 조심해 줄 수 있어? 내일은 촬영이 있는데.”

여상하게 읊는 유일의 낯은 무척이나 무해해 보였다. 해서 한은 입술을 문 채 딱 일 분을 고심했다. 어차피 모든 답이 정해져 있어 고민은 길지 않았다. 아플 것 같았지만 한유일이 아픔을 참는 것보단 나았으며 육체적인 후유증 역시 유일보다는 자신이 잘 견딜 수 있을 터였다. 게다가 오해였기는 하지만, 애초에 한 번쯤은 돌려주기로 결심하고 덤빈 것 아니던가. 다른 방식으로 얻어맞는다고 생각하면 어려울 것도 없었다.

훅, 숨을 한 번 짧고 세게 내뱉은 강한은 다시 고개를 돌렸다. 어차피 한 번쯤이야.

“그럼 그냥 해. 야, 근데 입으로 안 하면 안 돼?”

“다치니까 안 돼.”

나지막이 웃은 유일은 웃음기가 다 지워지기도 전에 다시 고개를 내렸다. 엉덩이 사이로 간지러운 바람과 미끌미끌한 혀가 닿는다. 잠시 식었던 살이 재차 덥혀지는 기분에 강한은 발가락을 오므렸다. 이상한 신음이 자꾸만 목 안쪽을 바글바글 끓어 댔다.

아예 한쪽 엉덩잇살을 꽉 쥐어 벌린 유일은 주름을 셀 것처럼 핥아 대고 이따금 잘근거리며 씹기까지 했다. 덕분에 참다못한 신음이 코끝으로 흣, 큿, 하고 샐 때마다 강한의 얼굴은 발갛게 달아올랐다. 엉덩이 사이를 빠는 소리가 부끄러워 죽을 것 같았지만 무던히 참았다. 꼭 해야 한다고, 한유일이 그랬으니까.

“한아, 신기해. 뻐끔거려.”

구멍이 빠끔거린다니 확실히 한에게도 신기한 일이었으나 어쩐지 이번에는 귀까지 붉게 달아올랐다. 차마 대답하지 못한 강한은 눈만 질끈 감았다.

유일은 그 뻐끔거리는 구멍 위를 혀로 몇 번 쿡쿡 찔러 대다가 상체를 일으켰다. 무릎으로 조금 더 올라온 그가 상체를 숙이며 침대 머리맡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 바람에 등 가까이로 느껴지는 인기척마저 한을 소름 돋게 했다.

“핸드크림 좀 쓸게, 한아.”

생각해 보니 협탁 위에 언젠가 선물로 받은 핸드크림이 있었다. 아니, 그게 있는 줄 알았으면…….

“읏! 크림, 씨ㅂ…, 핫, 윽….”

“응, 예뻐.”

애초에 크림으로 했으면 될 일을, 이 미친 새끼. 속에서부터 열불이 치솟았으나 따질 여력이 없었다. 기다란 손가락이 안을 찔러 댈 때마다 묘한 감각과 이물감이 신음을 불렀다. 기분이 좋다기보다는 무척 생소하고 이상했다.

강한은 아예 입술을 안쪽으로 말아 물고 눈을 감았다. 유일이 크림을 더 짜내서 입구를 지분거리고, 안을 마사지하는 것처럼 부드럽게 풀어내는 것을 순순히 방치했다. 방금까지 치솟던 열기가 오히려 약간 식은 듯했지만 차라리 생경한 쾌락보다는 이쪽이 견디기 쉬웠다.

유일의 손가락은 아주 느리게 부피를 늘렸다. 어느덧 세 개까지 늘어난 손가락이 안에서 가위질을 하듯 벌어졌다가, 내벽을 핥듯이 문질러 댔다. 그러더니 무언가 찾는 것처럼 손가락이 구부러지며 끝에 힘이 들어갔다.

속을 꾹꾹 눌러 대는 감각에 입술이 저절로 벌어졌다. ‘아.’ 미약한 신음이 멋대로 튀어 나가자, 유일은 확인하듯 재차 눌러 대기 시작했다.

“아, 아! 음, 으…….”

쾌락보다는 차라리 이물감이 견디기 쉽다고 생각하던 오만이 하얗게 부서졌다. 눈앞이 번뜩이는 감각에 강한은 서둘러 풀린 입술을 다시 콱 깨물었다. 다리가 저절로 바르작거리며 앞으로 나아가려 했다.

“한아, 미안. 나도 여유가 부족해서.”

마구 차오른 사정감이 넘치기 직전까지 몇 차례 내벽을 강하게 짓누르던 유일은 일순간 손가락을 빼냈다. 허억, 헉, 강한은 아쉬움과 충격이 가득 묻은 숨을 몰아쉬며 뒤를 돌아보았다. 성큼 다가온 한유일은 한의 머리채를 감싸듯 쥐고 입술을 맞췄다.

치열을 훑고 혀를 빨아 당기며 짙게 입맞춤을 이어 가던 그가 아주 자연스럽고 느긋하게 자세를 바꿨다. 공간을 내어 주며 몸을 미는 손길에 강한은 순종적으로 따랐다.

양쪽으로 무방비하게 벌어진 다리 사이에 유일이 자리했다. 그의 말마따나 벌름거리는 구멍에 달아오른 살덩이가 비벼진다. 무척이나 뜨겁고 단단한 것이 노골적으로 주름을 벌렸다가 빠져나가기를 반복하며, 주변을 부드럽게 자극해 댔다.

“다음에는.”

“흣…….”

“콘돔 한 박스 사다 놓을게, 한아.”

유일은 반쯤 농담처럼 말했지만 음성 가득 열기가 묻어 있어 장난처럼 들리지 않았다. 그 조바심을 증명하듯 선단이 금세 구멍을 밀고 들어섰다. 꾸역꾸역 힘을 실어 내벽을 가르고 들어서는 열감을 따라, 강한은 고개를 젖혔다. 숨이 쉬어지지 않는 압박감에 신음을 참는 것은 차라리 쉬웠다.

제법 풀려 있던 내벽이 무색하게도 전진이 쉽지 않았다. 유일은 후우, 신음 같은 한숨을 뱉어 내며 반도 넣지 못한 성기를 내려다보았다. 그러더니 느리게 상체를 숙였다. 그가 가까워질수록 삽입이 깊어지는 기분에 강한은 울음 토막 같은 신음을 간신히 삼켜 냈다.

“때려도 돼.”

소리 없이 고통을 인내하는 한의 귓가에 달콤한 목소리가 닿았다. 팔이 멋대로 이끌려 유일의 어깨 언저리에 놓이고, 맞닿은 아래가 움찔 튀었다. 무언가 시작되려는 듯했다.

“허윽! 읏, 아…….”

“한아….”

한순간 방심한 틈을 타 성기가 무지막지하게 밀려들었다. 강한은 눈을 번뜩 뜨고 저도 모르게 몸을 말았다. 본능적으로 엉덩이가 들리며, 유일을 밀어내려 버둥거렸다.

그러나 한유일은 오히려 체중을 실어 누를 뿐이었다. 그렇게 배 속을 아릿하게 짓눌렀던 성기가 다 빠질 것처럼 즈으윽 밀려 나갔다.

“아윽!”

두 번째 삽입은 더 깊고 거셌다. 한은 다급히 유일을 끌어안고 다리를 모았으나, 한쪽 무릎을 콱 벌려 낸 그는 봐주지 않고 밀어붙였다. 끝까지 밀려났다가 안을 가득 채우는 성기가 연신 어딘가를 긁어 댔다. 아픔과 이물감 밑에서 이상한 감각이 찰랑찰랑 차오르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움직임에 속도가 붙었다. 내벽을 다 뭉갤 기세로 퍽, 퍽, 들이치는 성기에 강한은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단박에 좋다는 말을 붙이기에는 너무도 낯선 감각이 배 속을 울렸다. 다리가 점차 허공에 들리며 손 또한 가만히 둘 수가 없었다. 강한은 유일의 미끈한 등과 어깨를 당겼다가 밀어내기를 반복하며 몸을 뒤챘다.

“으, 하악, 아! 그만! 그… 으흣….”

이제 도저히 소리를 참을 수 없었다. 조금만 이성을 놓으면 추태를 부릴 것 같은 기분에 애원이 터져 나갔다. 그러나 유일은 오히려 더 깊게 쿵, 성기를 박아 넣었다.

“으음…, 한아, 너무 조여서 아파.”

그러더니 한쪽 눈을 찡그리며 엄살을 부렸다. 밑이 다 벌어지고, 제가 다른 사람이 될 것만 같은 감각에 몸서리치던 강한을 황당하게 만드는 말이었다. 허, 한은 뜨끈한 숨을 허탈하게 뱉으면서도 은근히 힘을 풀려 노력했다. 엉덩이 구멍에 힘을 푸는 방법은 잘 알지 못하지만, 유일의 찡그린 얼굴이 신경 쓰였다.

노력으로 인해 정말 내벽의 힘이 풀렸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저 소리 없이 웃은 유일이 입술을 내리기 시작했기에, 한은 전보다 편안하게 눈을 감았다.

이마와 눈두덩, 턱 끝에 입맞춤을 남긴 유일의 손이 이제 가슴을 매만졌다. 바짝 선 작은 유두를 꾹꾹 누르고 문질거리는 손길에 강한의 배 속이 움찔거렸다.

“이쯤 왔을까?”

멈춰 있던 성기가 얕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다시 상체를 일으킨 유일은 탄탄한 뱃가죽을 문지르며 물었다. 강한은 혼몽한 눈동자를 내려 그의 손이 짚은 지점을 바라보았다. 명치에 가까운 윗배를 기다란 손이 짚어 내고 있었다.

“…그 비슷한, 읏, 것 같…은데.”

사실 기분으로는 목 끝까지 좆이 차오른 기분이었지만, 대충 윗배쯤으로 타협하기로 했다. 무덤덤하게 답하자 유일은 살포시 고개를 틀었다.

“그래…?”

찰나에 유일의 눈빛이 빛깔을 달리 했다. 악당이 결단을 내리기 직전의 모습이었다. 강한은 제 대답 속에 실수가 있었는지 복기해 보려 했지만 유일이 조금 더 빨랐다. 복근의 선을 가르듯 날을 세운 손가락이 배 위를 스윽 올라갔다. 날카로운 감각으로 다부진 몸이 움찔 튀었다.

“큰일이네. 다 넣으면 여기 오겠다.”

“뭐? 다 넣으면?”

“지금 해 볼까?”

음산하게 속삭인 유일이 한의 다리를 휙 들었다. 제 양쪽 팔에 하나씩 꿰어 허리를 숙이자 삽입은 훨씬 깊어졌다.

“아으읏…….”

강한은 창에 찔린 듯이 몸을 튀었다. 그러나 하체의 주도권을 모두 빼앗긴 마당에 도망갈 틈은 없었다. 우스꽝스러운 신음이 터지지 않도록 간신히 잇새를 꽉 무는 것만이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다.

방금 나눈 대화 탓인지 몰라도 성기가 정말 이상한 곳까지 들어온 기분이었다. 만약 좆이 장벽을 넘어서면 어떻게 되는 거지, 현실적인 고민에 답을 내리기도 전에 열기가 들이닥쳤다.

“수백, 번을… 하아, 상상했어.”

“읍, 음, 흐윽! 윽, 천천…힛, 아!”

잔뜩 벌어진 안쪽으로 뭉툭한 선단이 문질러진다. 닿을 때마다 눈앞을 점멸시키는 부분이 참을 수 없이 자극당하고 있었다. 결국 고집스럽게 닫혀 있던 한의 입술 새로 신음이 와르르 터져 나갔다.

“허윽, 씨, 흣, 천천…히 좀, 하라고…….”

강한은 낯설게 신음하는 제 목소리가 듣기 싫었다. 한유일이 내는 소리는 다 괜찮은데, 저만 이상하게 까뒤집힌 소리가 나는 듯했다.

“소리 더 듣고 싶어, 한아.”

수치와 두려움이 섞인 애원에 유일은 잠시 속도를 늦춰 주었다. 허리를 뭉근히 움직이며 울대뼈가 툭 불거진 목을 핥았다. 속살을 꽝꽝 울리던 벼락과는 다르게 간질간질한 온기가 배 속을 자르르 울려 댄다. 마음이 슬 약해지게 하는 애무였다.

“하아, 좋아…….”

누그러진 눈빛을 알아챈 유일은 마치 저를 보라는 듯 입술을 핥고 야한 숨을 내보였다. 흥분이 번들거리는 눈을 오만하게 내리뜬 채로, 그가 다시 힘을 싣기 시작했다. 안을 치받는 좆이 거칠어질수록 한유일의 말간 얼굴도 찌푸려졌다. 늘 예쁘게만 보이던 낯이 육욕에 번뜩이고 있었다.

그때부터 강한의 몸에서도 전신을 수축시켰던 긴장이 슬며시 빠져나갔다. 힘이 풀어지자, 불덩이 같은 성기는 더욱 쉽게 드나들었다. 찔걱거리는 야한 소리가 울릴 때마다 강한은 눈을 적셨다. 그렇게 하지 않으려 해도 배 속이 긁힐 적마다 저절로 눈알이 축축하게 젖었다. 아예 목을 놓아 울어 버리고 싶은 이상한 쾌감과 조바심이 뒤섞여 안달이 났다.

“아, 아, 허윽, 으! 읏, 한유일….”

내내 부르지도 않은 이름마저 대답해 주던 유일은 이제 고요했다. 그저 잔뜩 흥분한 숨을 헉헉 쏟아 내며, 바르작대는 한의 다리를 꽉 눌렀다. 아예 제 어깨 위까지 올려놓고 더 깊숙이 들어선 유일이 말없이 눈을 맞췄다. 마치 경고처럼 서늘한 눈빛이었다. 한은 저도 모르게 침대 시트를 꾹 쥐어 냈다.

“하아, 아! 아읏! 윽, 나올 것 같….”

“조금만…. 하아.”

확실히 경고였던 모양인지 안을 후비는 성기가 심상치 않았다. 강한은 확 치밀어 오르는 사정감에 멋대로 손을 내렸다. 아래를 쥐고 흔들고 싶었다. 하지만 유일은 성기를 쥐어흔들 틈을 내어 주지 않고 움직였다. 내벽이 얼얼할 만큼 자극적인 감각이 함부로 쏟아지는 바람에, 무릎이 저절로 모여들었다.

자꾸 오므라드는 무릎을 벌려 낸 유일은 급작스럽게 성기를 쑤욱 빼냈다. 한껏 달구어져 극도로 예민해져 있던 내벽을 단박에 긁어 나가는 감각에 강한은 숨을 헉 들이켰다. 무의식이 뱃가죽을 매만지게 했다. 그 어디쯤이 분명 잘못된 것 같았다.

“조금만 참아, 한아.”

한의 탁한 눈동자 안에는 자세를 바꾸는 유일이 아른아른 차올랐다. 뭐라 대답할 정신이 없어 강한은 그저 눈을 깜빡였다. 주룩, 결국 흘러나온 눈물이 시트에 스며들었다. 어느덧 유일의 손에 또 엎드려진 채였다.

제법 크고 무거운 몸을 쉽게 뒤집은 그가 뒤에서부터 들어서기 시작했다. 강한은 침대에 묻은 고개를 꺾어,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잠시 수그러들었던 제 성기가 유일의 진입에 맞춰 꺼떡거리고 있었다.

“하, 으읏! 아!”

골반이 턱턱 부딪히는 소리가 날 만큼 거센 힘으로 밀어붙여졌다. 어느덧 제 성기 따위를 살필 여력은 사라졌고, 울음 섞인 신음이 마구 튀어 나갔다. 잊고 있던 사정감이 조금 전보다 더 짙게 밀려오며 발바닥을 따끔거리게 만들었다.

엎드린 채 뒤로 좆을 받아먹는 자세는 도통 적응이 되지 않았지만, 그나마 손이 자유롭다는 장점이 있었다. 강한은 눈을 질끈 감으며 얼른 제 아래를 쥐었다.

“하아, 하읏…….”

“한아…, 후읏, 형.”

“으, 나 할 것, 같은데, 왜… 흣, 아!”

그러나 이번 역시 몇 번 추어올리기도 전에 손이 빼앗겼다. 유일은 한의 두 손목을 한데 그러쥐고 잡아당겼다. 등 뒤로 제압된 팔을 따라 상체가 들리자, 한은 주춤거리며 무릎으로 침대를 딛고 체중을 버티게 되었다.

그러기를 아주 잠시 기다려 준 유일이 금세 허리를 쳐올렸다. 꽉 쥔 손목을 잡아당기며, 동시에 안을 푹푹 쑤셔 박는 움직임에 강한은 눈앞이 핑글핑글 돌았다. 상체가 순식간에 무너져 자꾸만 아래로 고꾸라지려 했다.

“으욱, 미친, 너무 깊… 아!”

“응, 나도… 좋아…, 한아.”

“미, 친… 아아! 윽!”

묵직한 열기가 헛구역질이 일 만큼 깊게 쑤셔 대자, 숫제 눈물이 줄줄 흘렀다. 강한은 아예 목을 놓은 채 신음하며 도리질을 쳤다. 축축하게 젖은 얼굴을 시트에 마구 비벼 대는 감각으로 아래에서부터 솟구치는 쾌락을 잊어 보고자 했다. 그러나 사정감은 철퍽거리는 소리를 따라 점점 더 크게 번질 뿐이었다.

“하, 아윽! 읏…….”

아랫배로 뭉치던 감각이 하얗게 터져 나갔다. 강한은 간신히 입만 벙긋거리며, 아주 느리게 눈을 떴다. 소금기에 잔뜩 젖은 눈이 믿을 수 없다는 듯 흔들거렸다.

‘만지거나 흔들지도 않았는데…….’

혼몽한 눈동자 안에 여전히 정액을 픽픽 쏟아 내며 흔들리는 제 성기가 담겼다. 만지지도 않고 사정을 하다니. 얼굴 근처까지 마구 쏘아지는 점액질을 모조리 다 느끼고도 믿기 어려운 사실이었다.

하지만 한유일은 보지 않고도 모두 아는 것처럼 그제야 손을 놓아주었다. 수고했다는 듯 뻐근한 팔을 주물러 주며 어깨와 상박을 쪽, 쪽, 쪼아 대는 그를 따라 은근히 몸이 돌아갔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번에는 옆을 보고 누운 채였다. 다 끝난 마당에 왜 또 자세를 바꾸는지, 한은 이해 못 한 눈길을 슬 움직이다가 굳었다.

그러고 보니 아직 한유일의 좆은 빳빳하게 서 있었다.

“헉! 아, 잠깐, 아읏…!”

하체가 십자로 맞물린 채 또다시 철벅거리는 소음이 울렸다. 벗어나고 싶어도 다리 한쪽은 유일이 깔고 있었고 남은 하나는 그의 품에 안겨 있었다. 한계치를 벗어난 쾌락에 다리가 마음대로 솟구쳤다가도 그를 다치게 할까 두려워 몸이 굳기 일쑤였다.

결국 애꿎은 매트리스가 화풀이 대상이 된다. 감당키 어려운 쾌감을 표출할 데가 없어, 강한은 항복하는 선수처럼 침대를 두드렸다. 스프링이 손을 밀어낼 만큼 세게 주먹질하자 유일은 웃음기를 머금은 채 더욱 속도를 높였다.

“우리 한이는, 하아, 읏, 참는 것도 섹시하고……. 여기도 잘생겼네.”

장난을 흉내 낸 말에 조급한 기색이 엿보였다. 이제 그에게도 사정감이 몰려오는 듯했다. 한은 제 아래를 주물러 대는 손을 쳐 내며 애원했다.

“허윽, 아, 빨리 싸, 미친 새…, 흐, 으응, 읏, 미친 새끼야.”

물컹한 내벽을 연신 자극당하는 동시에 앞까지 만져지자 저절로 비음이 흘렀다. 달큼하게 녹기 시작한 신음에, 유일도 더는 여유를 부리지 못했다. 허벅지를 꽉 당겨 안은 흰 팔에 힘줄이 울룩불룩 불거졌다.

지금까지보다 훨씬 과격해진 추삽질에 한은 신음조차 뱉지 못했다. 호흡마저 잘게 토막을 내야만 간신히 토해 낼 수 있었다. 온 내벽이 다 물컹하게 녹아 곧 사라질 듯했다.

“읏……, 하아, 하….”

더는 일 초도 견딜 수 없다고 생각했을 때, 배 속이 뜨겁게 물들었다. 내벽 아주 깊은 곳을 꾹 누른 선단에서 뜨거운 점액질이 왈칵 쏟아져 나왔다.

하체를 빈틈없이 맞물린 채 하아, 거친 숨을 내쉰 유일이 아랫입술을 지그시 물었다. 절정을 견뎌 내는 그는 무척 위험한 유혹 앞에 흔들리는 신의 사도 같았다. 금욕적이고 예쁜 얼굴이, 몰아치는 쾌락을 무척이나 정적으로 견디고 있었다.

“야.”

그 낯을 감상하고 있으니 배 속이 자꾸 조이는 듯했다. 괜히 헛기침을 내뱉은 한이 거친 투로 유일을 불렀다. 이제 막 사정의 여운에서 벗어난 그는 조금 나른한 표정으로 ‘응?’ 하고 물었다. 내내 답도 없이 아래만 쳐올리던 놈은 사라진 모양이다.

“너 솔직히 내가 처음 아니지?”

“왜 안 믿어 줄까.”

“말이 안 되니까.”

강한은 무뚝뚝하게 답하며 유일의 허벅지를 밀었다. 그에 순순히 밀려난 한유일이 천천히 성기를 빼낸다. 빠져나가는 데만 한참이라, 한은 내내 입술을 꾹 물고 신음을 참아야 했다.

“말이 안 될 만큼 좋았어? 나도.”

뻔뻔한 질문에 곧장 응수하려던 강한은 입술을 다물었다. 벌름거리는 구멍에서 무언가 흘러내리는 감각으로 소름이 끼친 탓이다. 아무래도 곧장 씻어 내야겠다는 생각에 벌떡 일어나 앉았다.

“…놔, 좀 씻게.”

엉덩이를 슬쩍 물러 침대를 벗어나기도 전에 다리가 잡혔다. 유일은 발목 근처를 어루만지며 무릎에 입술을 문질러 댔다.

“왜 벌써.”

한유일은 나긋하게 유혹을 쏟아 내며 허벅지 안쪽 깊은 곳까지 타고 올랐다. 절정의 잔여로 미세하게 파르르 떨고 있는 살을 입술로 꾹꾹 누르다가 아예 성기를 지분거리기 시작했다. 여전히 발기해 있던 좆은 반갑다는 듯 꺼떡거렸다.

“……다고.”

이대로라면 또 시작이다. 그것만큼은 피하고 싶었으므로 강한은 차악을 택했다.

“응?”

“뒤에, 흐른다고!”

평생 제 입에서 나올 줄은 몰랐던 문장이 커다랗게 방을 울렸다.

3권에서 계속.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