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움길
장례식장 분위기는 음울했다. 여기저기서 참지 못하고 터져 나오는 오열에 선유는 잠시 눈살을 찌푸렸다가 다시 펴기를 반복했다. 한참 입구에서 망설이다 부조금을 다른 친척에게 전달하고 어색한 검은색 양복 자락을 툭툭 털면서 신발을 벗고 장례식장으로 들어섰다.
흰 국화가 잔뜩 장식된 단상 위에 영정 사진 두 개가 놓여 있었다. 실제로 얼굴을 본 적은 손가락에 꼽을 정도고, 그마저도 열 살 이전의 기억이라 그들이 제대로 기억도 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선유는 속이 조금 울렁거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선유는 갑작스럽게 교통사고를 당한 삼촌 부부의 장례식에 와 있었다. 미국에 있는 제 부모가 시간을 맞추지 못해 내일 새벽에야 도착할 예정이라, 지금은 그가 가족 대표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조금 더 몸가짐을 단정히 하게 되었다. 한국 장례식장에 오는 건 처음이라서 더욱 긴장한 상태였다.
손바닥에 살짝 배는 식은땀을 문질러 닦고 예식에 맞추어 분향을 하고 절을 한 뒤 상주와 마주 섰다. 그리고 선유는 놀란 눈을 뜰 수밖에 없었다. 조그만 남자아이가 상주 자리에 서 있었다. 왜 그때까지 생각하지 못했을까. 아들인 이 아이가 상주일 거라고.
삼 년 만에 다시 보게 된 아이는 그때보다는 컸지만, 여전히 작았다. 선유는 여기저기 검색해서 찾아본 장례식장 예절을 떠올리며 상주와 맞절을 했다. 눈을 조금 굴리자 상주 완장은 아이가 아닌 조부의 팔에 감겨 있었다. 아이가 너무 어려서 대행을 하는 듯했다.
“할아버지…. 뭐라 말씀을 드릴 수가 없네요….”
나이든 조부의 얼굴이 울긋불긋했다. 선유는 정말로 할 말을 찾지 못하고 한참 침묵했다.
“선유는 정말 오랜만에 보는구나. 한국에 들어와 있었어?”
“예. 사업 준비를 하느라요.”
“학교는 벌써 졸업했고?”
“예.”
“그래. 저기 친척들 있으니까 가서 밥 먹고 있다가 가렴.”
“가서 좀 도와드릴게요.”
“아니다. 와 준 것만 해도 고마운데.”
자리에서 물러나려다 선유는 눈가가 발간 아이를 한참 내려다보았다. 아이는 폐가 죄인 듯 숨을 들이켤 때마다 아래턱을 바르르 떨었다. 그리고 조금 비어 탁해진 동공 또한 같이 흔들리곤 했다.
“한주는… 밥 먹었나요?”
“아이구, 한주가 여기서 떠나려고 하질 않아서…. 다들 정신이 없어서 잘 봐주질 못했네.”
“그럼 제가 잠시 데리고 있을까요?”
“아이가 낯을 가려서 괜찮으려나 모르겠어.”
“삼 년 전에 미국에서 같이 지냈었어요.”
어울리지 않는 오지랖이었지만, 저 아이를 그냥 둘 수가 없었다. 선유는 살짝 무릎을 굽혀 한주와 눈을 맞추었다. 둥그렇고 커다랗던 눈, 선망하는 눈빛으로 저를 올려다보던 그 눈은 지금도 여전했다.
한주는 제 할아버지를 올려다보다 시선을 내려 선유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아이답게 뽀얀 뺨이 조금 부풀었다 꺼지길 반복했다. 흰 뺨은 마치 물에 퉁퉁 불어 버린 만두 같기도 해서 조금 안쓰러운 마음도 들었다.
무어라 더 말을 붙이기 전에 조심스럽게 뻗어 나온 손이 선유의 재킷을 잡았다. 잠시 그 자그만 손을 내려다보다 선유는 조용히 물었다.
“한주야, 밥 먹을래?”
한주는 조금 망설이는 듯 가만히 있다가 한참 시간이 흐른 후에야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밤늦은 시간, 장례식장에는 더는 손님이 올 것 같지 않았고 머무는 사람도 적었다. 친척이 많지 않은 데다 대부분이 해외에서 사는 터라 올 만한 사람이 사촌에 육촌까지 다 꼽아도 스무 명이 채 되지 않았다.
“…선유 형.”
선유는 제 이름을 아이가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에 조금 놀랐다. 한주는 삼 년 전 여름방학 때, 미국에 있는 선유의 집에 한 달간 머물렀던 적이 있었다. 형제가 없었던 터라 어린아이와 함께 지내는 게 어색하긴 했지만 그것도 오래가지 않았다.
선유는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한주와 꽤 잘 놀아 주었었다. 한주는 마치 선유를 어미 쫓는 새끼 오리처럼 따라다녔고, 선유는 그런 한주가 귀여워서 손을 꼭 붙들고 한적한 교외 마을을 헤집고 다녔다.
함께 해먹에서 자고, 커다란 강아지를 산책시키다 호수에서 수영도 하고, 자전거를 타고 매일 심부름도 하고. 공항에서 마지막으로 헤어지던 날 하늘이 무너진 것처럼 울어 댔을 정도로 한주는 선유를 잘 따랐고, 선유도 그 헤어짐이 무척이나 아쉬웠었다.
하지만 그때 한주는 겨우 다섯 살이었기에 선유는 그가 아직 저를 기억하고 있을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한주야, 가서 밥 먹자.”
“…예.”
대답하는 입술이 작았다. 선유는 그런 아이가 귀여워서 한 번 머리를 쓰다듬어 주기만 했다. 한주는 그때도 지금도 자기보다 어른인 사람에게는 꿋꿋하게 존댓말을 썼다.
장례식장에 준비된 음식은 냄새만 맡아도 매운 육개장으로 아이가 먹기에 적합하지 않을 것 같았다. 혹시나 해서 매운 거 잘 먹을 수 있느냐고 물었지만 한주는 한참 망설이다 고개를 저었다. 선유는 눈치를 보는 듯한 아이에게 잠깐 기다리라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혹 다른 메뉴가 없느냐고 주방에 대고 물었지만 역시나 좋은 답을 얻을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선유는 잠시 한주를 앉혀 놓고 1층에 있는 편의점에 가서 즉석 북엇국을 하나 사 왔다.
맑은 국물에 조금 마른 듯한 밥을 말아 주자 한주는 조금씩 밥을 먹기 시작했다. 선유는 아이가 그릇을 다 비울 때까지 한 숟갈 밥을 뜰 때마다 반찬을 하나씩 올려 주었다.
밥알을 꾹꾹 씹던 아이의 눈동자 위가 퉁퉁 부풀었다. 주르륵 뺨을 타고 흘러내린 것이 국그릇 안으로 뚝뚝 떨어져 내렸다. 하지만 한주는 씹는 걸 멈추지 않았다. 가만히 그것을 보고 있던 선유는 이따금씩 반찬을 한주의 숟가락 위에 얹어 주기만 했다.
“조금 더 먹을래?”
바닥을 거의 다 드러낸 그릇을 보며 묻자 한주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리고 제대로 한 숟갈 뜨지도 않은 선유의 밥그릇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형은요?”
“나? …아, 난 괜찮아. 저녁 먹었어.”
빙긋 웃어 주자 한주는 시선을 돌리며 다시 숟가락으로 그릇 바닥을 몇 번 긁었다. 밥을 더 먹고 싶은 건가, 잘 챙겨 주지 못했다던 조부의 말을 기억하며 선유는 제 밥그릇에서 크게 한 숟갈 밥을 떠내 한주의 그릇에 담아주고 남은 북엇국을 다 부어 주었다.
“조금 더 먹어. 오늘 밥 잘 못 먹었지?”
대답하진 않았지만 다시 숟가락을 놀리는 모습을 보니 여전히 배가 다 차진 않은 모양이었다. 조금씩 밥이 줄어들면서 한주의 숟가락질도 느려졌다. 이제 배가 부른 건가 싶었으나 아이의 얼굴을 보니 다른 이유가 있는 듯도 했다.
“한주야, 왜 그래?”
“…….”
“응?”
달싹거리는 작은 입술에서 말이 나올 듯 말 듯했다. 선유는 다시 물기가 차오르는 한주의 눈을 보면서 작게 숨을 삼켰다. 조막만 한 얼굴에 오밀조밀 자리 잡은 이목구비가 귀엽고 예뻤지만, 발갛게 달아오른 눈가와 헐어 버린 뺨이 안쓰러웠다.
“밥… 다 먹으면 갈 거예요?”
“…어?”
한주는 또 그릇 바닥만 긁어 댔다. 같이 있어 줬으면 하는 건가, 선유는 주변을 한 번 둘러보고 고개를 저었다.
“밥 다 먹어도 같이 있을 거야.”
“…진짜요?”
“응.”
원래는 빨리 밥만 먹고 돌아가려고 했지만, 저런 얼굴로 가지 말라고 얘기하는 아이를 두고 갈 정도로 선유는 모질지 못했다. 다른 어른들은 급작스러운 사고로 인한 뒤처리를 하기 바빴고, 낯을 가린다는 말이 맞는 듯 아이는 사람들이 다가올 때마다 몸을 움츠리며 고개를 숙였다. 심지어 제 할아버지도 그리 친근하게 여기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한주는 다가온 할아버지를 보자마자 선유에게 붙어 앉았다.
“선유야.”
“예?”
“밥 먹고 갈 거니?”
조부의 물음에 선유는 한주를 흘긋 한번 보고 고개를 저었다. 툭툭 등을 두드려 주자 한주는 흘긋 고개를 들었다가 다시 숙였다.
“조금 더 있으려구요.”
“그럼 혹시 내일 아침에 발인인데 관 들어 줄 수 있을까?”
“아….”
“사람이 좀 부족해서.”
“예.”
“고맙다. 내일 아홉 시까지 다시 와 주면 돼.”
지친 표정이 가득한 중년 남자는 몇 번이나 감사하다 말하곤, 고개를 푹 숙인 한주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 주고 다시 자리를 떴다. 한주는 숟가락을 내려놓고 선유의 옷자락을 꼭 붙들었다.
“씻고 와서 좀 잘까?”
친척 몇 명만 남은 장례식장을 둘러보고 선유는 한주를 일으켜 차가운 기운이 감도는 화장실로 데려갔다. 이를 닦게 하고 퉁퉁 불어 버린 얼굴을 깨끗하게 씻겨 나와 빈 곳에 잠자리를 만들었다. 아이를 재워 놓고 돌아갈 생각이었다.
“저기….”
“응?”
“…저기서 자도 돼요?”
한주가 가리킨 곳은 제단 앞이었다. 선유는 잠시 고민했다. 그도 이게 괜찮은 건지 아닌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죽은 부모 앞에서 그들의 작은 자식이 자겠다는데 그것을 말리는 것도 못 할 짓이라고 생각했다.
“그러자.”
아이의 재킷과 바지를 벗겨 눕히고, 선유도 재킷을 벗은 후 누웠다. 이렇게 바닥에 누워 자본 적이 거의 없어서 허리와 등이 다 배기는 기분이었으나 제 할아버지에게도 낯을 가리는 아이가 꼭 붙어 있는 것은 조금 기꺼운 기분을 들게 했다.
선유는 따끈따끈하게 달아오른 한주의 뺨과 이마를 매만지다 살짝 땀에 젖은 머리카락도 쓸어 넘겨 주었다. 느릿느릿하게 눈을 깜박이던 한주가 눈꺼풀을 완전히 내려 닫았고, 곧 고르게 숨을 내뱉기 시작했다.
조금 더 깊이 잠들면 돌아갈까. 선유는 제 셔츠 자락을 꼭 쥔 손을 내려다보다 이불을 조심스럽게 한주의 위로 덮어 주었다. 약간의 움직임에 반짝 눈을 떴던 한주가 눈을 다시 천천히 내리감았다. 마른 등을 쓸어 준 선유가 그냥 베개에 아예 머리를 기대고 누웠다. 돌아가기는 조금 힘들 것 같았다.
***
장례식장 방바닥은 무척이나 뜨거웠다. 조금 잠들었다 더운 기운에 깨어난 선유는 귀를 간질이는 말에 눈살을 찌푸렸다.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했는데 조금 들어 보니 전부 한주에 관한 이야기였다.
“애는 오빠가 데려갈 거지?”
“저 애 알파 아냐?”
“맞아.”
“알파를 어떻게 데려가. 우리 집은 전부 베타인데.”
“우리 집도 마찬가지야.”
“우리 친척 중에 알파나 오메가 아이 가진 집이 있어?”
“없지…. 알파 애는 힘이 세서 부모가 관리하기도 힘들고… 나중에 발정기 오고 그러면 어떡해. 좀 징그러운데.”
이 애 알파였구나. 선유는 여전히 곯아떨어진 한주를 쳐다보다 그저 한번 안아 주기만 했다. 아직 작은 어깨는 뼈까지도 연하게 느껴졌지만, 알파라는 말을 들으니 또래보다는 조금 단단한 듯도 했다.
알파고 오메가고 베타고 전부 같은 사람인데 발정기니 징그럽다느니 말이 너무 심하다. 눈살을 찌푸렸다가 선유는 다시 표정을 풀었다. 그들의 말이 이해가 가는 부분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선유네 집안은 평범한 베타뿐으로 알파나 오메가는 거의 태어나지 않았고, 다른 형질에 익숙하지 않았다.
“하필 알파를 입양해서는… 애초에 애 좀 없다고 입양을 하질 말았어야 했어.”
“알파인 줄 알고 입양한 것도 아니잖아.”
입양아였구나. 한국 친척들의 일에 크게 관심이 없었던 터라 선유는 한주가 입양아인 것도 이제야 알았다. 왠지 더 안쓰러워서 아이를 품에 꼭 넣어 안아 등만 토닥토닥 두드려 주었다.
형질 분석은 7살 이후로 시기가 엄격하게 지정되어 있었고, 한주는 이제야 8살이니 그의 부모는 형질을 모르고 입양을 했을 터였다. 입양아인데다가 알파라니, 친척들이 어려워할 법도 했다.
알파와 오메가는 베타와 성적으로 다른 점이 존재했고-베타에 남성과 여성이 있듯이, 알파와 오메가는 그것 자체가 젠더이기 때문에 서로 간에 이해가 힘든 부분이 있다- 히트와 러트가 있어서 2차 성징 시기부터는 상당한 주의를 요했다. 다만 선유는 가장 친한 친구가 알파라서 그들과 베타의 차이가 그리 크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누구든 데려가야 할 거 아냐.”
“사돈 쪽에서는 안 데려간대?”
“제수씨는 여동생 한 명뿐이잖아.”
“사돈어른 쪽은? …그냥 오빠가 데려가라니까.”
“이게 진짜….”
“그럼 나보고 데려가라고?”
하지만 그 어려움을 이해한다고 해서 아이를 짐짝처럼 취급해도 되는 것은 아니다. 선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날 뻔했으나 간신히 속을 가라앉히며 다시 몸을 뉘었다. 끼어들 상황이 아니었다. 어찌 되었든 저들은 이 아이의 거취를 어떻게 할 것인지 고민하고 있는 것이고, 그에 대한 정답을 주지 못하는 이상 참견은 금물이었다.
선유는 한숨을 쉬며 아이의 등만 쓸어 주었다. 데려가겠노라 말할 수도 없으면서 저들에게 무어라 한단 말인가.
삼촌과 고모의 언쟁은 계속되었고, 끝내 삼촌 쪽에서 데려가기로 결정한 듯했다. 사람을 외모로 평가하면 안 되겠지만, 너무 우락부락하게 생긴 사람이라 좀 걱정이 됐다. 가끔 튀어나오는 말투도 험했고.
잠이 오질 않았다. 선유는 눈을 뜬 채 아이의 얼굴만 바라보았다. 다섯 살이었던 한주는 무척이나 잘 웃던 아이였다. 정말 굴러가는 낙엽에도 웃던, 그저 저를 새끼오리처럼 따르며 제가 하는 일은 전부 다 같이 하고 싶어 하던 아이. 제 걸음을 쫓다 넘어져도 웃고, 또 넘어질까 걱정되어서 꼭 안고 걸으면 따끈따끈한 팔로 목을 감아오곤 했다. 그리고 돌아가는 날에는 정말 많이도 울었다. 하지만 그때는… 소리를 내면서 울었었다.
값싼 동정심을 부릴 순 없었다. 선유는 부드러운 뺨을 만지작거리다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창밖으로 서서히 햇빛이 드는 게 보였다.
조용히 이불을 빠져나온 선유는 세수를 하고 한참 숨을 몰아쉬었다. 그러다 또 한 번 찬물로 세수를 하고 대충 휴지를 뜯어 얼굴을 닦아 냈다.
다시 장례식장으로 들어오자 자리에 앉아 멀뚱멀뚱 주위를 둘러보고 있던 한주와 눈이 마주쳤다. 커다란 눈이 더 커다랗게 뜨여지는 것을 보자 왠지 더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한주의 얼굴에 스쳐 지나간 놀람과 반가움, 그리고 안도가 보여서 더더욱 그랬다.
“한주야, 씻을까?”
“…예.”
한주는 어설프게나마 이불을 정리하고 일어났다. 선유는 아이를 화장실로 보내고 이불을 다시 제대로 접어 안쪽 구석에 쌓아 놓았다. 그리고는 다 씻고 나온 아이에게 옷을 입혀 주고 밥을 챙겨 먹인 후, 아이를 상주 자리에 가만히 세워 주었다.
울멍울멍 물기가 차오른 눈동자는 마치 인력을 가진 듯했다. 당장이라도 뛰어와 옷자락을 잡아당기고 싶어 하는 얼굴을, 선유는 간신히 외면했다.
오늘 하루가 지나고 나면 다시 볼 일이 별로 없을 아이였다. 몇 년에 한 번씩 있을 큰 집안 행사, 누군가의 장례식이나 결혼식에나 가끔 스치듯 얼굴을 보게 되겠지. 제사를 지내는 집도 아니고, 명절이라고 모이지도 않으니 말이다.
다시 넥타이를 매고 재킷을 챙겨 입은 선유는 마지막 제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점점 마음이 무거워져서 빨리 이 자리를 뜨고 싶었다. 뒤통수를 따라다니는 눈빛이 애처로웠다. 눈을 마주치면 자기도 모르게 손을 뻗을 것 같아서, 선유는 간신히 그 눈빛을 무시했다.
선유는 이제 학업을 마쳤고, 한국에서 사업을 시작하는 단계였다. 부모의 도움도 바랄 수 없었고 지금은 자기 한 몸 건사하기 힘들었다. 안타까움에 입술이 다 마를 지경이었지만, 데려간다는 사람도 있으니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관을 들어 화장터로 향하는 버스에 실은 선유는 챙겨 두었던 코트를 바로 입었다. 부모님도 미국에서 도착하셨고, 두 분이 화장터에 가신다고 했으니 제가 거기까지는 따라가지 않아도 될 듯했다.
“…형.”
“…….”
“선유 형.”
무시하려 했으나 무시할 수 없었다. 선유는 숨을 한 번 삼키고 몸을 돌렸다. 혹시나 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한주의 눈동자는 깨끗했다. 빨갛게 헐어 버린 뺨은 그대로였지만.
가만히 선유를 올려다보던 한주가 조금 더 다가와 섰다. 허리에 간신히 정수리가 닿는 아이가 조금 매달리듯 선유의 허리를 안았다. 재킷 틈으로 뜨거운 체온이 흘러들어 와서 선유는 자기도 모르게 아이의 등과 작은 머리통을 쓰다듬어 주었다.
“한주야. 버스 타야 한다!”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도 한참 그대로 매달려 있던 한주는 곧 팔을 풀고 몸을 돌렸다. 잠시 그 모습을 보던 선유가 재킷 안주머니에서 수첩과 볼펜을 꺼내 자신의 핸드폰 번호를 휘갈겼다. 그리고 다급히 몇 번 접어 조그만 손에 쥐여 주었다.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해.”
“…….”
“전화기 쓸 줄 알지?”
“…예.”
한주는 한참 종이를 손에 쥐고 있다가 조심스럽게 펴보았고, 한동안 종이를 내려다보기만 했다. 또 한 번 누군가의 외침을 듣고서야 다시 곱게 접어 주머니에 꼭 집어넣었다. 그리고 선유를 일별하곤, 뒤돌아보지도 않고 걸어 버스에 탔다.
바로 출발하는 버스를 잠시 쳐다보던 선유도 뒤를 돌았다. 무언가 발목을 진득하게 잡아 오는 것 같아 한 번 더 돌아보았지만 그 뒤엔 아무도, 아무것도 없었다. 한 발 두 발 내딛고 나서야 조금 발이 가벼워졌다.
잘 지내란 말도 해 주지 못해 미안했지만, 차마 할 수 없는 말이었다. 차오르는 한숨을 내뱉고 선유는 고개를 흩어 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