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외전 1. (9/13)

외전 1.

12월. 창밖에서 부슬부슬 눈비가 내렸다. 연말이 코앞이었다.

예전 생에서부터, 태오에게 연말은 두 가지를 의미했다. 하나는 연말 시상식, 다른 하나는 시즌 그리팅. 둘 중에서 고르자면 당연히 시즌 그리팅이 더 중요했다.

“형, 그게 다 뭐예요?”

“시그……. 만지지 마, 구겨져.”

“이걸 왜 사요? 내가 눈앞에 있는데.”

“너는 너고 시그는 시그지. 아니, 그렇게 들면 손자국 나잖아!”

화보집을 덥석 집어 드는 유채의 손등을 찰싹 때렸다. 유채가 금세 서러운 눈을 했다.

“나보다 내 시그가 더 중요해요?”

“그건 좀 다른 차원의 문제라니까.”

“나한테도 이거 선물로 다 들어왔는데 굳이 또 사고.”

“너한테 온 거는 소장용이고 이건 꺼내 놓고 쓸 거야.”

태오가 지난 생에서, 멋모르고 래디언스의 새 앨범 천 장을 주문했다가 결국 앞집 예리네 초등학교에 기부했을 때였다. 앨범 천 장을 맨입으로 받은 예리가 거만한 얼굴로 시즌 그리팅의 존재를 알려 주었다.

시즌 그리팅은 연말이 되면 판매되는 굿즈 모음집이었다. 주로 탁상 달력과 포스터, 다이어리 같은 굿즈가 포함되었는데 탁상 달력 뒷면이 통째로 유채의 고화질 사진이었다. 태오는 달력 하나를 조심스럽게 거실 테이블 위에 올려 두고, 다른 달력들은 어디에 배치할지 고심하면서 집 안을 두리번거렸다.

“왜 내 달력만 둬요? 형 것도 많은데. 나도 형 달력 매일 보고 싶어요.”

“내가 여기 있는데 뭐 하러 내 달력을 집 안에 둬.”

“지금 내로남불인 거 알아요?”

유채는 투덜거리면서도 태오가 가리키는 곳에 제 달력을 놓아두었다. 거실 곳곳이 금세 유채의 사진으로 가득 찼다. 태오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집 안이 꽃밭이다.”

“…….”

불평만 늘어놓던 유채가 입을 합 다물었다. 갈색 눈동자가 갈피를 못 잡고 이리저리 흔들거렸다. 태오는 뒤꿈치를 슬쩍 들고 따끈따끈하게 열이 오른 유채의 귓불에 입을 쪽 맞췄다.

“이제 나갈 준비하자.”

씩 웃으면서 말랑한 뺨에 볼을 비볐다. 유채가 말간 얼굴로 눈을 깜빡거린다. 표정은 청순하기만 한데 태오의 몸에 밀착한 아랫도리의 사정은 안 그랬다. 묵직한 부피감을 느낀 태오가 난처한 듯 미간을 좁혔다.

“지금? 이렇게 맥락도 없이?”

“형이 뽀뽀해 줬잖아요.”

“아니, 뽀뽀도 못 하냐…….”

“꽃밭이라고 하면서 막 유혹하고.”

“유혹한 거 아니고 사실을 말한 건데.”

“이거 봐. 또 유혹한다. 왜 맨날 이래 놓고 모른 척해요? 그거 아주 나빠요. 진짜 나쁜 거예요.”

유채는 정말로 부당한 대우를 당했다는 듯 울먹울먹했다. 아주 어처구니가 없었다.

태오는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면서 유채의 뺨을 꾹 잡아 늘렸다. 말랑한 찹쌀떡 같은 뺨이 쭉 늘어난 채로 유채가 웅얼거렸다.

“아프게 안 할게요. 살살…….”

“그러다 우리 늦어. 종방연인데 주인공이 늦으면 어떡해.”

“으응, 조금만.”

“무슨 조금만이야. 조금만이 어딨어? 조금만 한 적이 있긴 하냐고.”

“안 늦어요. 안 늦게 할게…….”

“이따가 다녀와서 해. 착하지?”

“형아…….”

유채가 불쑥 팔을 뻗어 태오를 당겨 안았다. 말끝을 귀엽게 늘어뜨린다. 뻔한 수를 쓴다는 걸 알면서도 유채가 이럴 때마다 태오는 마음이 몽글몽글 풀려 버렸다. 태오의 뺨에 제 볼을 바르작대며 빽빽한 속눈썹을 파드득 떨면 도저히 당해 낼 수 없었다. 유채를 밀어내려던 팔에 힘이 빠졌다.

“너 정말.”

“으응…….”

한풀 꺾인 기색을 눈치챈 유채가 긴 눈매를 휘면서 눈웃음을 쳤다.

벽시계를 올려다보면서 시간을 가늠해 보니, 숍에 들렀다 가는 것을 포기하면 두 시간 정도는 여유가 있었다. 빤히 잘 아는 드라마 촬영 팀과의 회식인데 굳이 숍에 들를 필요는 없다고 속으로 변명하면서, 태오는 유채에게 몸을 맡겼다. 목덜미에 유채의 입술이 내려앉았다.

도톰한 입술은 따뜻했지만 까슬하게 튼 채였다. 유채가 태오의 셔츠를 벗겨 내면서 드러난 어깨로 입술을 움직일 때마다 살갗에 닿는 감촉이 간지러웠다. 태오는 웃음과 걱정이 반반쯤 섞인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입술이 텄어, 유채야.”

“응? 따가워요?”

유채는 작게 대꾸하면서 입술 대신 혀끝으로 태오의 쇄골 부근을 할짝거렸다. 태오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연말은 시상식과 시즌 그리팅뿐만 아니라 행사의 계절이기도 했다.

래디언스는 AMJ 엔터와의 계약이 종료되면서 아직 소속사를 정하지 않았다. 그래서 래디언스 멤버들은 공식 일정이 잠시 비어 있었다. 그러나 유채의 상황은 달랐다. 유채는 메인 모델로 계약된 브랜드의 각종 관련 행사에 참여하면서, 드라마 막바지 촬영까지 함께하느라 요즘 들어 얼굴 보기 힘들 정도로 바빴다.

태오는 유채의 동그란 뒤통수를 쓰다듬으면서 중얼거렸다.

“너 피곤한 거 같아서. 요즘 잠도 잘 못 잤지?”

“잘 잤어요. 머리만 대면 자는데.”

“맞아, 너 진짜 그러더라. 가뜩이나 얼굴 보기 힘든데, 눈뜬 얼굴 보기는 더 힘들어.”

그렇잖아도 억울한 게 많았던 터라, 태오는 걱정하던 것도 잊고 투덜거렸다. 여전히 태오의 어깨에 입술을 묻은 채 유채가 푸시시 웃었다.

유채가 몇 년이나 불면증에 시달렸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다. 요즘 들어 유채는 눈뜨기를 오히려 힘들어했다. 일정을 마치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이미 꿈나라에서 헤매고 있는 태오 곁으로 뛰어들었다. 기척에 놀란 태오가 눈을 떠 보면 자신을 애착 인형처럼 끌어안은 유채가 그새 깊게 잠들어 있었다. 아무리 밀어내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

덕분에 태오만 온몸이 유채의 팔다리로 칭칭 감긴 채 움직이지도 못하고 매일 밤을 보냈다. 다행히 유채는 매일 밤 숙면한 덕분에 아침마다 피부에서 빛이 났다. 일정이 바쁜 탓에 수면 시간이 늘 짧았으니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래도 얼굴을 많이 못 봐서 섭섭한 건 사실이었다. 유채가 미안한 듯 대꾸했다.

“으응, 연말만 지나면 계약 거의 다 끝나니까 형 옆에 붙어 있을 거야. 미안해요.”

“새 소속사랑 계약하고 나면 어차피 스케줄 또 몰릴 텐데?”

“아냐……. 광고도 줄이고, 당분간 작품도 안 할 거예요.”

“응? 웬일로?”

태오가 없었던 동안 유채는 증여세를 갚기 위해 정신없이 일했고, 이제는 대출금을 거의 다 갚았다. 태오도 우주가 졌던 빚을 이주혜의 아파트를 압류해 받은 돈으로 모두 해결했기 때문에 더 이상 빠듯하게 일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러나 증여세나 대출금과 관계없이 유채는 태오의 생전에도 강박적으로 일을 늘리곤 했다. 덕분에 태오 혼자 심심하게 지내느라 어쩔 수 없이 래디언스 덕질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 시절을 떠올리면서, 태오는 그 덕질을 절대로 하고 싶어서 했던 게 아니라고 습관처럼 자기변명을 했다.

그렇게 일중독처럼 보였던 유채가 작품도 하지 않고, 광고도 줄이겠다고 한 것은 뜻밖이었다. 태오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의아한 얼굴을 했다.

유채가 가만히 눈을 내리깔았다. 자신을 바라보는 태오의 시선을 피한 채 입 안으로 중얼거렸다.

“형이랑 있고 싶어요.”

해사한 뺨과 긴 목과 귀 끝까지 온통 울긋불긋했다. 유채는 저 혼자 부끄러워하더니, 눈을 깜박거리면서 수줍게 덧붙였다.

“앞만 보고 달리는 것보다…… 형이랑 같이 걷는 게 더 좋아요.”

포장은 그럴듯했는데, 그러니까 태오도 일을 쉬엄쉬엄 받으라는 거였다. 깜찍한 소리가 귀여워서 태오는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뚫어져라 태오의 웃는 얼굴을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유채는 어쩔 줄 몰라 하더니, 태오의 뺨을 두 손으로 답삭 쥐고 혀끝으로 길게 훑었다. 말캉한 혀가 태오의 볼에 움푹 팬 보조개를 간지럽게 할짝거렸다.

“유채 진짜, 내 보조개 되게 좋아해.”

“응, 응.”

“왜 진작 말 안 했어? 예전에는 보조개 얘기 한 번도 안 했었잖아.”

“그냥……. 부끄러워서.”

“별게 다 부끄러워. 나한테 솔직했던 게 뭐야? 하나도 없지?”

“그런 거 아닌데.”

“아니긴 뭐가 아니야, 이 욕쟁이야. 어디가 아기새야?”

태오를 알아보지 못했던 시절의 유채를 떠올리면서 키득거렸다. 유채가 서운한 눈으로 고개를 들었다.

“아기새 맞는데.”

볼멘소리를 툭 뱉더니, 쓸데없는 소리를 한다는 듯 태오의 목덜미 안쪽 연한 살갗에 이를 세웠다. 따끔한 감촉이 갑작스러워서 태오는 짧게 신음을 뱉었다.

“으…….”

“맞아요, 아니에요?”

“입만 열면 욕부터 하고 보는 아기새도 있어?”

“그때는 불면증이 심해서 그랬던 건데…….”

“불면증이랑 욕이 무슨 상관이야?”

요즘도 유채는 되지도 않는 내숭을 시도하려고 들었다. 태오가 우주로 지냈던 몇 달간 평상시의 모습을 모두 들켰는데도, 여전히 지치지도 않고 어떻게든 태오 앞에서 예쁘게 보이려고 애썼다. 그게 귀여워서 모른 척 받아 주다가도 가끔 놀리고 싶었다. 태오는 유채에게 목덜미가 깨물린 채로 웃음을 삼켰다.

“너 다 들켰어. 그렇게 제멋대로인 줄 예전부터 알았으면 내가…… 아흐, 읏!”

말하는 순간 커다란 손에 다리 사이가 콱 잡혔다.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뜬 태오를 비스듬히 내려다보면서, 유채가 눈꼬리를 샐쭉하게 늘어뜨렸다.

“예전부터 알았으면, 뭐요? 나 안 만나려고 했어?”

태오를 바라보는 눈가가 어느새 붉었다. 형형하게 달아오른 눈빛을 정면으로 받은 태오는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그럴 리가 있겠어? 머릿속에서 혼자 대꾸했다. 질풍노도의 사춘기 소년처럼 구는 유채나, 태오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바둥거리는 유채나 어느 한쪽도 모자람 없이 귀여워서 태오야말로 애가 달았다.

“왜 대답 안 해……. 윤태오.”

귓가에 속삭이는 목소리가 바닥을 긁어내는 쇳소리 같았다. 한 손으로 태오의 등을 받치고, 다른 손으로 태오의 벨트를 풀어내는 손길이 다정했지만 다급하기도 했다. 손놀림은 이내 거칠어졌다. 긴 손가락에 태오의 바지와 브리프를 한꺼번에 걸고 단번에 끌어 내렸다. 태오의 하체가 금세 걸친 것 없이 훤하게 드러났다. 목울대가 꿀렁 움직이면서 신음이 샜다.

“……흐, 으…….”

“시작도 안 했는데 이렇게 적셨으면서. 나 안 만나려고 했다고요?”

“내가 어, 언제…….”

언제 적셨다는 항의인지, 언제 안 만나려 했냐는 것인지 불분명했다. 그러나 태오도 유채도 그 대답에 신경 쓸 여유는 없었다. 살집이 통통한 엉덩이가 유채의 두 손에 꽉 쥐어졌다. 둥근 살덩이가 양옆으로 끝까지 벌어지자 숨이 턱 막혔다. 숨어 있던 연한 살갗이 드러나면서 찬 공기가 느껴졌다.

“형, 그거 알아요?”

“하, 으…… 뭘?”

“여기…… 예전에 별자리처럼 점 세 개가 있었는데.”

긴 손가락이 회음부를 뭉근히 눌렀다. 차가운 감촉에 소름이 오스스 돋았다. 태오는 숨을 흡 들이켰다. 고개를 간신히 들어 시선을 맞췄다. 색소가 옅은 눈동자가 태오를 내려다보면서 상냥하게 웃었다.

“근데 얼마 전에 여기에도 생겼어요. 똑같은 위치에.”

“뭐? 거짓, 으흣, 말.”

“진짠데. 보여 줄까요?”

“뭘 보여 줘!”

‘예전에’라는 건 생전 태오의 몸을 말하는 거였다.

그 당시에도 태오는 제 회음부에 별자리 같은 점이 있든 말든 신경 써 본 적도 없었다. 그런데 같은 위치에 없던 점들이 생겨났다니. 이 몸으로 지내면서 예전과 같은 상태로 점점 변하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런 것까지 똑같아졌다는 걸 굳이 알고 싶지는 않았다. 어지간하면 안색이 변하는 일이 없는 태오도 목덜미가 달아올랐다.

“안 믿어요? 정말이라니까.”

유채가 눈을 새초롬하게 뜨면서 고개를 기울였다. 태오는 입이 말랐다.

“아니, 믿고 안 믿고 문제가 아니라…….”

“그럼 여기 봐 봐요.”

“……한유채!”

태오가 발버둥 치든 말든, 유채는 태오의 허리를 끌어안고 번쩍 안아 올리더니 거실 한쪽 면의 전면 유리창을 향했다. 태오는 놀라서 움직임을 멈췄다.

빛이 반사된 유리창이 유채에게 허리가 안긴 태오의 모습을 비추어 냈다.

거울 같은 유리 속의 자신과 눈이 마주쳤다. 맨허벅지와 엉덩이를 그대로 드러낸 채, 품이 큰 유채의 셔츠만 입은 태오가 이쪽을 보면서 눈을 깜빡이고 있었다. 따뜻한 물에 데워진 것처럼 뺨에 붉은 기가 돌았다. 그러나 유채가 호언장담한 것과는 달리, 엉덩이 사이에 감춰진 회음부까지 적나라하게 보이지는 않았다.

“뭐야, 내려 줘. 밖에서 보면 어떡하려고.”

“이거 밖에서 안 보이는 유리잖아요. 그리고 28층 밖에서 누가 안을 봐요?”

“아, 그래도. 하지 마. 내려놓으라고.”

“안 보이네요. 아쉽다.”

“뭐가 아쉬워!”

티격태격하는 동안 태오는 유채의 팔에 안긴 채 소파로 옮겨졌다. 얼마 전 유채가 새로 들여놓은 거대한 소파에 몸을 뉘었다. 이러려고 소파를 새로 샀는지, 작은 침대 사이즈인 이 소파에서 이미 수십 번 관계를 가졌다. 침대까지 갈 시간도 부족할 때가 많았던 탓이다.

“……으흡.”

엉덩이 주변을 배회하던 유채의 손가락이 회음부를 꾹 누르면서 문질러 왔다. 저도 모르게 허리가 떨렸다. 끝이 둥근 검지가 입구 주변에서 한 바퀴 원을 그리자, 저절로 구멍이 조여들었다.

유채가 태오의 귓불을 가볍게 물었다. 아프지는 않았지만 따뜻한 숨결이 훅 다가온 탓에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너…… 너도 벗어.”

색색 숨을 몰아쉬던 태오가 힘겹게 말했다. 그때였다.

당연히 옷을 훌훌 벗어 던질 줄 알았던 유채가 무언가를 깨달은 듯, 퍼뜩 난처한 표정을 했다.

“아, 그게…….”

유채는 아차 하는 얼굴로 제 아래를 내려다보더니 눈을 굴렸다. 태오의 허벅지 사이를 지분거리던 손길에 순간적으로 힘이 빠졌다. 묘한 기색을 눈치챈 태오가 눈을 가늘게 떴다. 태오의 아랫도리를 다 벗겨 놓고 저 혼자 옷을 다 입고 있을 셈인 것 같았다. 하지만 대체 왜?

“뭔데? 입고 하려고? 입고 어떻게 해?”

“음……. 지퍼만 내려서?”

“그게 지퍼 사이로 나와?”

지퍼만 내린다고 그 물건이 다 나올 리 없었다. 태오는 눈에 힘을 주면서 유채의 벨트로 손을 뻗었다. 유채의 안색이 살짝 창백해졌다. 제 벨트를 움켜쥐고 놓으려 하지 않았다. 어차피 벗어야 할 텐데 이상한 고집을 부렸다.

저 안에 뭔가 있다. 태오의 감이 번뜩거렸다.

태오는 입꼬리를 당겨 올렸다. 혀끝으로 아랫입술을 축이자 유채의 눈이 커졌다. 태오는 유채의 허리에 댔던 손을 놓았다.

그리고 벗은 다리를 크게 벌렸다.

밤새 시달려서 살짝 부어오른 채 붉은 기가 선연한 입구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유채의 목울대가 크게 움직였다.

“올라와, 유채야.”

유채를 향해 손을 까닥했다. 유채는 입을 벌렸지만 아무 소리도 내지 못했다. 태오를—정확히는 태오의 허벅지 사이를—노려보는 눈에 핏발이 섰다. 태오는 눈을 접으면서 쌕 웃었다.

“대신, 그거 벗고.”

턱 끝으로 유채의 바지를 가리켰다. 유채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길고 섬세한 손가락이 벨트와 바지 버클을 풀었다. 지퍼가 내려가는 소리가 작게 울렸다.

유채는 귓불도, 뺨도, 목덜미도 따끈따끈하게 달아올랐다. 안에 뭐가 있길래 저렇게 부끄러워하는 건지. 태오는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아랫배가 뻐근해졌다.

바지를 내리려던 유채가 주춤하면서 태오의 눈치를 봤다. 이내 아래로 미끄러진 시선이 태오의 벌어진 다리 사이에 닿았다. 파르르 흔들리는 눈매가 붉었다. 태오는 흥미진진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별거 아니에요.”

이윽고 유채가 힘겹게 대꾸했다. 태오는 눈 끝을 휘고 웃었다. 마침내 바지를 벗어 내는 유채의 손가락이 희미하게 떨렸다. 그러나 탄탄하게 근육이 잡힌 허벅지를 바라보는 순간, 태오도 여유를 잃고 눈이 커다래졌다.

“너…….”

유채는 사진 촬영까지 함께하는 인터뷰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그래서인지 오늘따라 매무새가 단정했다. 흰 셔츠는 구김 하나 없이 반듯하게 펴졌고, 넓은 어깨에서 잘록한 허리까지 이어진 슈트 핏이 맵시 있었다. 그러나 그 완벽한 슈트 핏 아래에서, 까만 가터가 매끈한 허벅지를 바짝 조이고 있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한유채, 이리 와.”

방만한 자세로 소파에 등을 기댄 채 비스듬히 누워 있던 태오가 몸을 벌떡 일으켰다. 모양 좋은 눈썹이 와락 구겨졌다. 유채는 눈을 굴리면서 태오 앞에 다가와 섰다.

불쑥 팔을 뻗어 내는 태오의 손길이 거칠었다. 손자국이 날 만큼 힘주어 유채의 맨허벅지를 움켜쥐었다. 유채가 숨을 들이켰다. 태오는 그의 다리 사이에서 눈길을 떼지 않은 채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 처음부터 빳빳하게 고개를 세우고 있었던 성기를 꽉 잡았다.

“아, 으.”

유채가 앓는 소리를 내며 고개를 뒤로 젖혔다. 볼록 튀어나온 목울대가 크게 움직였다. 한 손에 쥐기도 힘든 물건을 애써 주물거리면서 태오가 이를 갈았다.

“이게 뭐야. 이러고 인터뷰하고 사진 찍었어?”

“아니, 그게…….”

유채가 숨을 할딱이면서 우물거렸다.

내리깐 눈매 위의 숱 많은 속눈썹이 축축하게 젖어 들었다. 가여운 표정이었지만 머리끝까지 열이 오른 태오는 분이 사그라지지 않았다. 침실에서조차 한 번도 보여 주지 않았던 가터를 차고 나간 것까지는 백번 양보해서 봐줄 수 있었다. 그러나 브리프조차 입지 않고 맨살갗에 가터 하나만 걸친 채 남들 앞에서 촬영을 했다. 아무리 좋게 봐주려고 해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약이 바짝 오른 태오가 손아귀에 힘을 주면서 쏘아붙였다.

“이렇게 다 벗고 돌아다녔다고?”

“흐으……. 바지, 입었는데…….”

“저 잠자리 날개 같은 정장 바지? 저거 입으면 티 안 날 거 같아?”

“잠자리 날개라니……. 겨울 정장이라 두꺼워요…….”

“우리 유채. 말대꾸하니?”

“아뇨…….”

탄탄한 상체를 조이듯 감쌌던 셔츠는 단추 몇 개가 풀어진 채 흐트러졌다. 유채는 말간 뺨을 발긋하게 물들인 채, 까만 가터만 감긴 벗은 하체를 드러내고 태오의 손길을 따라 신음을 흘렸다. 손놀림이 거칠어질 때마다 갈색 머리카락이 깨끗한 이마 위에서 부드럽게 흔들거렸다. 색소가 옅은 눈동자는 물기가 차오르는 듯 조금씩 젖어 들었다.

“왜 그랬는데?”

태오가 따져 물었다. 일부러 더 거칠게, 급한 손짓으로 움켜쥔 물건을 흔들어 댔다. 유채의 숨이 점점 더 가빠졌다. 한껏 부피를 부풀린 물건 끄트머리에서 희끄무레한 액이 질금질금 샜다.

유채가 힘겹게 입술을 달싹였다.

“불편해서……. 핏 때문에 꼭 입어 달라고 요청 받았는데 같이 입으니까 답답했어요.”

목적어는 죄다 빼먹었지만 요약하면 가터가 답답해서 브리프를 벗어 던졌다는 얘기다. 태오는 눈을 갸름하게 떴다. 그래서? 카메라와 사람들 앞에서 다 벗고 돌아다녀 놓고 잘했다는 건가? 아무래도 그동안 너무 받아 주기만 했다.

“아, 형. 잘못했어요. 그러니까 이것 좀, 흐, 으…….”

“가만있어. 혼나는 중이잖아.”

자극을 이기지 못한 유채가 허리를 비틀면서 신음했지만 태오는 손아귀에서 힘을 풀지 않았다. 오히려 귀두 끄트머리를 엄지로 콱 막은 채로 손놀림에 속도를 더했다. 유채의 눈이 금세 그렁그렁해졌다. 한껏 달아올랐는데 마음대로 갈 수도 없고, 지은 죄가 있으니 태오에게 덤벼들 수도 없어 애가 달은 얼굴이 애처로웠다. 그 얼굴에 태오는 마음이 조금 약해졌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역시 제대로 주의를 줘서 다시는 이런 짓은 못 하게 해야 했다. 태오는 잠시 고민하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유채가 긴장한 얼굴로 태오를 바라보았다.

태오는 입꼬리를 씩 끌어당겼다.

“뭐, 가터 해 달라고 요청받았으면 어쩔 수 없고. 브리프까지 입으면 답답했을 것이고. 할 수 없긴 했겠네.”

“어……. 네.”

아랫도리에서 밀려오는 흥분을 참아 내려는 듯, 유채가 눈썹을 찡그리면서 대답했다. 태오가 나른한 얼굴로 유채를 바라보면서 슬쩍 웃었다. 시선을 받은 유채가 흠칫 놀랐다.

“불편했을 거 같아. 나도 그렇게 생각해.”

“……형?”

“좋은 방법이네. 겨울이라 티도 안 날 텐데 굳이 속옷 입을 필요 없지. 나도 벗고 다녀야겠어.”

“…….”

“가터 하니까 예쁘네. 나도 이따 종방연 갈 때 그렇게…… 아, 윽!”

그러나 태오는 작정하고 이어 가던 말을 미처 마치지 못했다.

순식간에 천장이 한 바퀴 돌았다. 눈만 깜빡이다가 정신 차려 보니 어느새 유채가 제 위에 올라타고 있었다. 아까부터 줄곧 붉었던 눈꼬리가 사납게 위로 치켜 올라갔다. 조금 전까지도 유채의 물건을 움켜쥐고 있던 손조차, 다른 손목과 함께 겹쳐진 채 머리 위로 들어 올려졌다.

유채가 태오의 손목을 한 손에 쥐고 힘주어 눌렀다. 바짝 붙은 유채의 하체에서 느껴지는 묵직한 것이 태오의 아랫배를 찔렀다. 그리고 태오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숨결이 닿을 거리까지 가까이 다가온 얼굴은 분을 못 이기고 달아오른 채였다. 뭘 잘했다고 화내지? 태오는 순간적으로 당황한 채 생각했다. 유채가 어금니를 꽉 물고 씨근덕댔다.

“어딜 벗고 가요? 미쳤어요?”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었다. 태오는 놀란 눈으로 유채를 올려다보다가 목소리를 높였다.

“뭐? 이게 무슨 내로남불이야? 너 지금 혼나는 중이야.”

“꼭 그런 식으로 혼내야 해요? 다 벗고 나가겠다고?”

“아니, 그게……. 다 벗는다는 게 아니잖아. 겨울옷이라 두껍고…….”

어째서인지 유채가 했던 변명을 똑같이 늘어놓고 있었다. 태오는 더듬더듬 대꾸하면서도 어이가 없었다. 벗고 나간 적도 없는데 난 왜 혼나지? 하지만 그렇게 따지고 들기엔 유채의 반응이 너무 격렬했다. 태오가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유채가 먼저 몰아붙였다.

“내가 잘못했어요. 이렇게 기분 나빠할 줄 몰랐어요. 다시는 안 그럴 거예요. 그래도, 말로 해도 알아들어요. 형 너무해요.”

“응……?”

“내 앞에선 한 번도 가터 안 입었으면서 어떻게 맨몸에 가터만 차고 나가겠다고 해요?”

“어?”

내가 할 말 아닐까? 태오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눈만 깜빡거렸다. 노팬티로 가터만 차고 촬영하고 온 게 유채가 아니라 태오인 분위기였다.

하지만 반박할 틈이 없었다. 서러운 눈으로 태오를 바라보는 유채의 속눈썹이 물기에 젖어 가닥가닥 갈라져 있었다. 붉고 도톰한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그 순간 태오는 이번에도 내가 졌구나, 하고 실감했다.

태오는 예전부터 유채의 얼굴에 약했다. 색소가 옅은 눈동자가 똑바로 바라보면서 울먹거리면 이겨 내지 못했다.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져서, 내가 잘못했나 보다, 하고 넘어가게 되는 것이다. 결국 태오는 조금 떨떠름해진 채, 그래도 유채의 등을 부드럽게 토닥이면서 달래고 말았다.

“알았어……. 내가 잘못했어.”

“진짜요?”

“어, 뭐. 그래.”

여전히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지만 이대로 울릴 수는 없었다. 한숨을 쉬면서 대꾸했더니, 틈을 놓치지 않은 유채가 울먹울먹 물었다.

“그럼 나한테 혼날 거예요?”

“응?”

“안 혼나요?”

“아, 아니. 혼날게.”

당황한 태오는 제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고 져 주겠다면서 고개를 끄덕여 버렸다. 하지만 져 주겠다는 건, 지은 죄도 없이 유채에게 혼나겠다는 뜻은 분명히 아니었다.

“아, 유채야…….”

태오는 허리를 비틀었지만 온몸을 짓누르는 커다란 몸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날카롭게 치뜬 눈매에 짤막한 웃음이 스쳤을 뿐이다.

“이거라도 풀어 주고, 흐으, 읏.”

유채의 매끈한 허벅지를 조였던 가터는 어느새 풀어져 다른 용도로, 즉 태오의 손목을 한데 묶는 데 쓰였다. 유채는 손목이 묶인 팔을 머리 위로 들어 올린 태오의 귓가에 숨결을 훅 불었다.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채 벗은 어깨에 소름이 돋았다. 태오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혼나는 중인데 이걸 풀면 안 되죠.”

“아흐, 윽, 흣.”

귓불의 여린 살갗이 콱 물렸다. 어깨를 움츠리면서 숨을 삼켰더니 귓가에 나지막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달아오른 귀 끝에도, 감은 눈가와 동그란 코끝과 힘없이 떨리는 입술에도 쪽 소리와 함께 입맞춤이 퍼부어졌다. 그러나 사랑스러운 몸짓과는 달리, 유채의 왼손은 태오의 허리가 접히도록 맨다리를 들어 올린 채, 다른 손으로 훤히 드러난 허벅지 사이를 지분거렸다. 차가운 젤을 듬뿍 묻힌 손가락이 회음부를 진득하게 쓸어내렸다. 발가락이 저절로 구부러졌다.

“나가야 하니까…… 살살 하기로 했잖아.”

“그거야 형이 혼나기 전이죠.”

“아니, 그러니까 내가 왜…….”

여전히 의문이 풀리지 않은 채 항의하려는 순간 회음부를 문지르던 손가락이 갑작스레 방향을 바꿨다. 태오의 두 다리를 크게 벌려서 넓은 어깨로 받치고, 두 손으로 엉덩이를 틀어쥔 채 크게 벌렸다. 강한 악력에 저절로 앓는 소리가 났다. 흘긋 내려다본 아래는 온통 빨간 손자국이 얼룩덜룩 나 있었지만, 감춰져 있다가 이제 막 모습을 드러낸 입구에 더 먼저 시선이 갔다.

밤새 유채의 물건이 드나든 입구가 도톰하게 부어오른 채 옴찔거렸다. 치덕치덕할 정도로 잔뜩 펴 바른 젤이 구멍 위를 끈적하게 흘러내렸다. 적나라한 제 모습에 태오의 뺨이 확 붉어졌다. 유채가 그런 태오를 흘긋 바라보면서 입꼬리를 부드럽게 휘었다. 허리를 움직여, 뻣뻣하게 솟은 채 투명한 액을 뚝뚝 흘리고 있는 두툼한 귀두를 아래 구멍에 맞췄다.

“아플까 봐 손으로 먼저 풀어 주려고 했는데, 벌써 이렇게 벌어졌어요.”

“흐, 으읏…….”

익숙한 물건을 마주한 구멍은 기다렸다는 듯, 몇 번 문지른 것만으로도 제멋대로 빠끔거렸다. 곧 다가올 자극을 기다리면서 아랫배가 후끈 달아올랐다.

그러나 온몸을 관통하는 쾌감은 찾아오지 않았다. 태오는 질끈 감았던 눈을 느릿하게 떴다. 유채가 못 견디게 사랑스럽다는 눈으로 태오를 내려다보다가 뺨에 입술을 꾹 눌렀다. 몸이 밀착되면서 잔뜩 부피를 키운 두툼한 물체가 입구를 찔러 댔다. 그것은 당장이라도 구멍을 쑤셔 댈 듯한 기세였지만 정작 유채는 태오를 꽉 끌어안고 입을 맞추느라 바빴다.

눈가에 뜨끈하게 열이 올랐다. 태오는 진저리를 쳤다.

“형, 진짜 너무 예뻐요…….”

홀린 듯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면서, 유채는 키스를 이어 나갔다. 나비가 날갯짓하듯 다정하고 간지러운 입맞춤이었지만 이 순간에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 태오는 저도 모르게 입을 벌린 채 숨을 할딱거렸다. 발끝이 오므라들고 애가 달았다. 뻣뻣해진 제 물건이 꺼덕거리면서 유채의 아랫배를 쳤다. 태오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지르려고 했다.

“한유…… 흐윽!”

그 순간, 젖어 든 입구를 줄곧 지분거리던 단단한 것이 단숨에 입구를 꿰뚫었다. 태오는 순간 숨을 멈췄다.

물리적으로 풀어 주려는 시도를 조금도 하지 않았는데 구멍은 부드럽게 풀려 있었다. 수치스러울 정도로 흐물흐물해진 말캉한 내벽이, 제 안을 비집고 들어온 뜨거운 성기를 녹진하게 삼켰다. 그 열기에 반응하듯, 좁은 입구를 파고든 물건이 내벽 안에서 한층 더 크기를 키웠다. 유채는 좁다란 내벽을 샅샅이 헤집으려는 듯, 제 성기를 안쪽의 모든 곳에 문질러 댔다. 거친 몸짓 탓에 내벽이 온통 뭉그러질 것 같았다. 태오의 고개가 뒤로 넘어갔다. 목울대가 크게 움직일 때마다 비명이 샜다.

“유채야, 사, 살살, 으흐, 흐윽……!”

“으응, 살살. 살살 하고 있어요.”

“아냐, 아, 아흐, 흐으…….”

빤히 보이는 거짓말을 속삭이면서 유채는 허리를 거칠게 움직였다. 쿠퍼액과 젤이 범벅된 액을 질질 흘리고 있는 아랫구멍을 쾅쾅 쳐 댔다. 성기에 거세게 박힐 때마다 태오의 몸은 위로 밀려날 것처럼 흔들거렸다. 그러나 그의 좁은 골반은 유채가 두 손으로 콱 움켜쥔 채였고, 태오는 뒤가 꿰뚫린 채 덜컹거리며 온몸으로 고스란히 충격을 받아 냈다.

“하, 으으, 유채야…….”

흉기에 가까운 묵직한 것이 태오의 안을 들쑤셨다. 충격과 통증이 서서히 가시고 익숙한 쾌감에 온몸이 잠식되고 있었다. 태오는 저도 모르게 들뜬 신음을 흘리면서 성기를 졸랐다. 내벽 깊은 곳에 숨겨진 지점을 짓이기고 들쑤셔 주길 바랐다. 쾌락을 이기지 못한 흐느낌이 거실에 울려 퍼졌다.

“어, 흐, 거기, 유채야. 세게, 더 세게 박아…….”

“씨발…….”

유채는 점점 더 거칠게, 급한 몸놀림으로 구멍을 박아 댔다. 안쪽은 발작적으로 수축과 이완을 반복하면서 유채의 성기를 꼴깍대며 삼켰고, 그의 물건은 태오의 안을 헤집고 쑤셨다가, 내벽 깊은 곳에 톡 튀어나온 스팟을 그 두꺼운 것으로 뭉근히 누르고 비벼 대면서 집요하게 공격해 댔다. 눈앞에서 불꽃이 튀었다. 태오는 입을 벌렸다. 그러나 아무 소리도 내지 못했다.

투명한 타액이 입술을 적셨다가 질질 샜다. 정신없이 허리를 움직여 아래를 쳐 대던 유채가 그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혀끝으로 길게 타액을 핥아 올리고, 태오의 입술을 단번에 삼켰다.

아랫배가 유채의 성기로 가득 차 볼록해졌는데도 물건은 끝을 모르고 자꾸만 커졌다. 구멍이 한계까지 늘어나는 느낌이 났다. 그동안에도 성기는 내벽 깊이 숨겨진 스팟을 찍어 누르며 안쪽을 박아 댔다. 집요하게 괴롭혀지는 동안 몇 번이나 눈앞이 까마득히 점멸했다가 하얗게 되살아났다. 지나치게 느낀 탓에 온몸이 흐물흐물 녹아내리고 있었다. 기어코 태오가 울먹거렸다.

“아, 찢어, 찢어져…….”

“……윤태오.”

유채가 이를 문 채 으르렁댔다. 그리고 내벽의 도톰하게 솟은 곳을 끈질기게 공격해 댔다. 태오가 느끼는 곳을 태오 자신보다 더 잘 알았다. 내벽 끝까지 압박해 오는 성기가 갈수록 흉흉해졌다. 자지러지면서 몸부림치던 태오의 시선 끝에 퉁퉁 부어오른 제 성기가 걸렸다. 유채의 아랫배에 짓눌린 그것은 진작부터 빳빳하게 고개를 세우고 꺼덕거렸다. 당장이라도 백탁액을 쏟아 낼 것 같았다. 시각이 주는 자극이 유혹적이었다. 뺨이 화끈하게 달아올랐다. 태오는 저도 모르게 입구를 콱 조였다.

유채의 단정한 이마가 찌푸려졌다.

“……좁아. 끊어 먹으려고, 후, 이래요?”

동시에 탄탄한 허벅지가 태오의 엉덩이 사이를 쾅, 때렸다. 태오는 자지러지는 듯한 신음을 흘렸다. 머릿속이 까맣게 꺼졌다. 손끝 하나 대지 않았는데도, 기어코 태오의 성기가 백탁액을 뿜어냈다. 유채의 단단한 배에 반투명한 액이 마구 튀었다.

“흐으, 윽……!”

정액을 흘려 대고 있는 태오의 성기를 유채가 조심스레 감싸 쥐면서 허리를 숙였다. 입술이 작게 벌어지고, 말캉한 혀가 태오의 입 안을 부드럽게 훑었다. 다정한 온기가 온몸을 감쌌다. 유채가 눈을 길게 접으면서 웃었다. 가슴 안쪽이 저릿할 만큼 사랑스럽고 달콤한 미소였다.

태오는 저도 모르게 홀린 듯 따라 웃었지만, 다음 순간에는 신음 섞인 욕설을 뱉어 내고 말았다. 그의 하반신이 허리를 찍어 대며 태오를 몰아붙이고 있었다.

“그만, 나가야, 흐으……. 유채야…….”

할딱거리면서 간신히 말을 뱉었다. 그러나 내벽을 가득 채운 물건이 자꾸만 커져서, 벌어진 구멍이 정말로 찢어져 버릴 것 같아 왈칵 겁이 났다. 이미 끝까지 가 버렸는데도 태오는 쉴 수 없었다. 두꺼운 물건에 구멍이 꿰뚫린 채, 맞물린 아래가 떨어질 줄 몰랐다.

잠시 사그라들었던 소음이 다시 시끄럽게 울렸다. 유채가 허리 짓을 시작했다. 태오는 두 다리가 눈앞으로 올 정도로 몸이 말린 채 그를 받아 냈다. 구멍 안쪽이 얼얼할 정도로 화끈거렸다.

“흐, 으윽…… 읏……. 흐아앗.”

내벽 깊숙한 곳이 또다시 한껏 찔렸다. 아래의 구멍에서 내벽으로, 안쪽에서 전신으로 쾌감이 찌르르 퍼졌다. 유채의 움직임이 더 빠르고 거칠어질 때마다, 단단한 복부와 허벅지 근육이 태오의 둔부를 철썩거리고 때렸다. 끈적한 액들이 질퍽대는 야릇한 소리가 났다. 유채의 눈가가 흥분으로 붉게 물들었다.

“태오, 형……. 태오야.”

태오야.

도톰한 입술이 달싹이며 태오를 부르는 순간 눈앞이 까맣게 물들었다.

“아흐으, 으흑……!”

태오는 고개를 젖히면서 비명을 질렀다.

아랫배가 또다시 젖어 들었다. 동시에 유채가 신음을 삼켰다. 태오를 단단히 끌어안은 몸이 파르르 떨렸다. 구멍 안쪽이 뜨거워졌다. 미끄덩한 액이 단번에 퍼져서 내벽 안으로 파고들었다. 아랫배가 액으로 가득 차 묵직하게 부푼 기분마저 들었다.

성기를 꽉 조여 낸 구멍 주변으로 왈칵거리며 정액이 쏟아졌다. 엉덩이 아래가 흥건해졌다.

***

다행히 종방연에는 늦지 않았다. 태오는 삐걱삐걱 차에서 내렸다. 한 걸음씩 옮길 때마다 골반이 징징 울렸다. 저도 모르게 인상을 썼는지, 유채가 바투 붙어 서면서 태오의 허리를 잡았다.

“하지 마. 사진 찍잖아.”

“그래도…….”

“떨어져. 빨리.”

“괜찮은데……. 아무도 그렇게 생각 안 해요.”

유채는 시무룩하게 뺨을 부풀렸지만, 순순히 태오의 허리를 놓아주었다. 태오는 어색하게 웃으면서 연신 터지는 플래시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웃는 표정 그대로 입 모양을 움직이지 않은 채 소곤거렸다.

“안 하긴 누가 안 해. 요즘 래디언스에서 우유즈가 제일 핫해. 다들 우리만 본다고.”

“그거야 그냥 관계성으로 좋아하는 거죠.”

“그래도 조심해서 나쁠 거 뭐 있어?”

“우리가 붙어 있으면 다들 더 좋아한다고요.”

유채가 투덜거리는 말도 일리는 있었다. 유채와 관계성으로 얽히면서 태오의 인기가 더 치솟은 것도 사실이었다. 태오도 유채가 정말 친구였다면 즐겼을 것이다. 그러나 삼십 분 전까지 유채에게 아래가 꿰인 채 흔들리다가 가까스로 지각을 면한 상황에서, 이 친분을 대놓고 드러내기에는 제 발이 저렸다.

“우주 씨, 이쪽 봐 주세요. 우주 씨!”

“유채 씨랑 어깨동무 한번 해 주세요!”

그러나 태오의 심정과는 상관없이, 기자들은 높은 클릭 수를 유도해 낼 만한 사진을 찍어 대기 바빴다. 태오는 짧게 한숨을 쉬었다. 그 와중에 유채가 속닥거렸다.

“형, 손잡으면 안 돼요?”

“안 돼.”

“웅…….”

단호하게 거절했더니 유채가 눈꼬리를 늘어뜨리면서 풀 죽은 척을 했다.

기자들에게 둘러싸여 가게 안으로 향했다. 종방연 장소는 예전에도 종종 회식하곤 했던 ‘경희궁’이었다. 태오나 유채에게는 의미가 깊은 곳이기도 했다. 태오는 새삼스러운 눈으로 가게를 둘러보다가, 유채에게 몸을 기울이며 물었다.

“나 궁금한 거 있어.”

“뭔데요?”

“우리 여기서 첫 회식 했을 때. 네가 유리잔 깼잖아.”

“어……. 네.”

유채는 수줍은 듯 눈을 내리깔았다. 금세 뺨을 붉히는 게 귀여워서 유채의 손에 깍지를 낄 뻔했다가, 경희궁의 복도를 걷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흠칫 놀라 손을 거뒀다. 가게를 통째로 빌린 덕분에 기자들은 내부로 들어오지 못했지만 곳곳에 직원들이 있었다.

“그때 확신한 거야? 나라는 거.”

“음.”

유채가 미간을 좁히면서 기억을 더듬는 표정을 했다. 태오도 문득 그 무렵의 일을 떠올렸다.

그날 태오는 홍두와 화민이 따라 주는 술을 연달아 들이켜다가 일찌감치 취해 버렸다. 그래서 무심코 유채와 있었던 예전 일들을 줄줄이 늘어놓았다. 유채가 좋아하는 캐러멜 팝콘을 먹으면서 함께 모니터링했던 일이나, 경희궁에서 처음으로 데이트하면서 태오가 좋아하는 오징어튀김을 먹었던 기억. 모두 둘만이 알고 있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유채는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제법 길어진 머리가 이마 위에서 가볍게 찰랑거렸다.

“아뇨, 확신은 연습실에서 형이 ‘Hush, hush’ 부를 때 했어요. 근데 처음부터 계속 의심했어요.”

몇 번이나 태오를 다그쳤으니 줄곧 의심하긴 했을 것이다. 태오는 무심코 고개를 끄덕이다가 또다시 물었다.

“언제부터?”

“그냥…… 처음부터요.”

“처음?”

“병원에서, 형이 처음 눈떴을 때부터.”

“뭐? 정말로? 어떻게?”

그때 유채는 굳은 얼굴로 태오를 내려다보기만 했다. 단정한 이목구비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었고, 표정은 차갑기만 했다. 막 깨어났던 태오도 상황 파악이 되지 않았고, 어떤 증거도 없을 때였다.

놀라서 묻는 태오를 향해 유채가 눈을 부드럽게 휘었다. 작은 웃음소리가 태오의 귓가에 퍼졌다. 조곤조곤 대답하는 목소리가 달콤할 만큼 다정했다.

“목소리가 달랐어요.”

“목소리?”

“절 부르는 목소리가…….”

태오는 불현듯 유채가 자신을 다그쳤던 일을 떠올렸다. 태오와 비슷하게 행동하는 우주로 인해 유채가 한창 혼란스러워했을 때, 그는 태오의 멱살을 잡고 그렇게 말했다.

-태오 형처럼 불렀잖아.

-너무 사랑해서 애타 죽을 것처럼…… 그렇게 불렀어.

너무 사랑해서 애타 죽을 것처럼 부르는 게 어떻게 부르는 거냐고 혼자 투덜거렸던 기억이 났다. 태오는 웃음을 삼키고, 유채의 손을 꾹 쥐었다가 놓았다. 유채의 귓바퀴가 슬쩍 달아올랐다. 태오는 고개를 기울이면서 상냥하게 물었다.

“아 그래? 그래서 그렇게 눈만 마주치면 욕했어?”

“아, 형!”

해사하게 웃고 있던 유채가 인상을 팍 썼다.

투닥거리면서 걸음을 옮기는 동안 회식 장소에 닿았다. 벌써 대부분 도착한 듯, 문밖까지 들려오는 소리가 시끌벅적했다.

***

첫 화부터 화제가 되었던 ‘타이 브레이크’는 마지막 화에서 종편 역대 최고 시청률을 경신하며 성공적으로 종료되었다. 덕분에 지난달 말에 끝나기로 했던 드라마는 4화 분량이 더 연장되었다. 초반에 사망하는 역이었던 태오의 캐릭터 ‘성해인’은 마지막까지 살아남았을뿐더러, 주인공인 이준희와 거의 비슷한 분량으로 화면에 등장했다. 이준희와 김소현의 청춘 드라마가 아니라 이준희와 성해인의 브로맨스 드라마가 아니냐는 의견이 촬영진 사이에서도 농담처럼 돌았다.

마침 연말 시상식 시즌이었다. 이제 막 종영한 ‘타이 브레이크’는 다양한 분야에서 후보에 올랐다. 배우 중에서는 유채가 최우수상 후보, 홍두가 인기상 후보였다. 태오는 신인상 후보 명단에 이름을 올렸는데, 유채가 무척 불만스러워했다. 우주의 필모에서 눈에 띌 만한 작품은 ‘제왕’밖에 없었고, 드라마 쪽에서는 조연으로 몇 번 등장하다가 하차한 게 대부분이었으니 태오도 대상이나 최우수상 같은 것을 기대하지는 않았다. 신인상 후보가 된 것으로 넘치게 기뻤는데, 유채는 영 못마땅한 기색이었다.

“아니, 형님이 신인상이라는 게 말이 됩니까? 대상이죠, 대상! 아닙니까, 유채 선배님?”

시상 후보 명단을 두고 불평한 것은 유채만이 아니었다. 술이 잔뜩 오른 홍두가 분한 얼굴로 외쳤다. 홍두 옆에서 나란히 취한 쥬니퍼가 빨개진 얼굴로 열심히 끄덕거렸다. 다들 모처럼 유채와 장단이 맞았다.

“당연하지. 불공정 심사 같은데 시상식 보이콧할까?”

유채가 한술 더 떴다. 눈을 빛내면서 말하는 표정이 사뭇 진지했다. 언제 말을 놓았는지 홍두를 대하는 태도가 제법 편했다. 쥬니퍼가 오른팔을 번쩍 들어 올리며 환호했다.

“보이콧! 쥬니는 보이콧할 거야!”

“홍두도! 홍두도!”

태오 주변엔 온통 제 이름을 삼인칭으로 부르면서 귀여운 척하는 사람들만 있었다. 태오는 케빈을 떠올리면서 고개를 저었다.

“무슨 보이콧이야. 너희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술이나 마셔.”

그래서 유채와 홍두와 쥬니퍼를 한꺼번에 타박했다가,

“아니다, 그만 마셔.”

하고 유채에게서 술잔을 뺏었다.

유채는 술에 취하면 밤에 잠을 안 자려고 들었다. 태오에게 달라붙어 지치지도 않고 밤을 새웠다. 덕분에 유채에게 시달리느라 태오만 불면증이 올 지경이었다. 잘 마시던 술을 뺏긴 유채가 눈을 사납게 치켜떴다.

“유채야. 눈 내려라.”

“응.”

그러나 이내 얌전히 눈을 내리깔았다.

“유채 씨! 차기작 계획은 있어? 우리랑도 술 한잔해요.”

스태프들이 모여 앉은 건너 테이블에서 술잔을 기울이던 조연출이 유채를 불렀다. 유채는 난처한 듯 태오를 돌아보았지만, 태오는 인사라도 나누고 오라면서 유채를 보냈다. 유채는 촬영 중반부부터 부쩍 태오 곁에만 매달려 있느라 다른 스태프들과 도통 얘기를 나누지 않았다. 훈훈하게 마무리 짓는 게 좋았다. 유채는 아쉬운 얼굴로 자리를 옮겼다.

호시탐탐 태오 곁을 노리던 화민과 주형이 술잔을 들고 찾아와 유채의 빈자리에 슬그머니 끼어들었다. 넷이 앉던 자리에 다섯이 비좁게 몰려 앉았다.

“형, 또 유채 선배 괴롭히세요? 술도 못 마시게 하시네.”

오자마자 주형이 핀잔을 준다. 태오는 한쪽 눈썹을 치켜뜨면서 어이없는 얼굴을 했다.

“내가 언제?”

“손에 든 건 뭐예요?”

“아니, 이건……. 유채가 너무 많이 마시니까.”

“많이 마시면 안 돼요?”

“유채 취하면 나만 힘들어.”

지금도 허리가 지끈거리는데 술에 취해 반쯤 정신을 놓은 유채에게 또다시 밤새 시달릴 수는 없었다. 내일 온종일 앓아눕고 싶지는 않았다.

유채가 취하는데 왜 태오가 힘든지 주형이 구체적으로 알 리는 없지만, 태오는 조바심에 덧붙였다.

“그게, 우린 같이 사니까……. 얘 덩치를 내가 어떻게 옮겨.”

그러자 화민이 의아한 듯 고개를 갸우뚱했다. 주형이 떨떠름하게 대꾸했다.

“뭘…… 유채 선배를 형이 왜 옮겨요?”

“그럼 애가 인사불성인데 누가 옮겨?”

신나서 떠들던 홍두와 쥬니퍼도 입을 합 다물더니 눈을 느리게 끔뻑거렸다. 넷이서 서로를 향한 시선을 빠르게 교환했다.

“그…… 유채 선배가 왜 취해요?”

말을 꺼낸 죄가 있는 주형이 대표로 입을 열었다. 물으면서도 대답을 듣고 싶지 않은 듯, 석연찮은 표정이었다. 나란히 앉은 넷의 구겨진 표정을 눈치채지 못한 태오가 무심코 대꾸했다.

“우리 유채 술 약하잖아. 이제 그만 마셔야지. 벌써 많이 마셨어.”

이번에는 쥬니퍼가 중얼거렸다.

“이 여우 새……가 진짜.”

아무래도 분위기가 수상쩍었다.

미심쩍은 얼굴로 홍두를 다그쳤다. 넷 중에 가장 단순하고 입이 가벼운 홍두가 쩔쩔매면서 당부를 했다.

“저 유채 선배한테 혼납니다. 아는 척하시면 안 돼요?”

“뭔데. 유채 술 잘 마셔? 취한 척하는 거야?”

“그…… 평소엔 얼마나 마시고 취하십니까?”

“글쎄. 소주 반병?”

“헛, 참.”

주형이 어처구니없어하면서 혀를 찼다.

홍두는 뒷머리를 긁적거렸고, 화민은 난처한 듯 웃고 있었다. 쥬니퍼가 술잔을 테이블 위에 탕, 내려놓으면서 화를 냈다.

“반병 같은 소리 하네! 사발로 들이켜도 눈 한 번 깜짝 안 할 텐데요?”

태오는 느릿하게 눈을 깜빡거렸다. 화민이 웃음을 삼키려는 듯 헛기침을 했다.

“우리 넷 다 죽어도 혼자 살아남아서 계산 다 하고 대리 불러서 우리 다 태워 보내고 운동한다면서 혼자 집에 뛰어가는 건 어디 사는 누구예요?”

주형이 따지듯 물었다. 태오는 입이 있어도 할 말이 없었다. 주형이 언성을 높였다.

“그 여우 새…… 유채 선배죠! 형은 왜 아직도 모르냐고요!”

“그렇구나…….”

태오가 신음을 흘렸다.

유채가 아직도 태오 앞에서 숨기는 게 있었다. 지치지도 않고 여우 짓을 했다. 술이 약한 척해서 귀여워 보이고 싶었나 보다. 아니면…….

‘취해서 할 때는 좀 더 거칠긴 했지.’

침대에서 유난히 태오를 몰아붙이던 해사한 얼굴이 떠올랐다. 술 핑계를 대고 이런저런 요구를 다 해 놓고 다음 날 일어나면 기억이 끊긴 척했다.

‘하여간 수작은. 그냥 해 달래도 해 줄 텐데 귀엽게 굴고 그래.’

표정을 숨기려고 술잔으로 입매를 가렸다. 그래도 어쩐지 부끄럽고 간지러운 기분이 가시지 않았다. 홍두가 소리를 꽥 질렀다.

“또 무슨 생각을 하길래 귀가 빨개집니까! 아 진짜!”

“또 귀엽다고 생각하고 있죠? 형이 이러니까 그 여우 새…… 가 숨 쉬듯 수작질하는 거예요!”

“여우 새끼가 뭐가 귀엽냐! 쥬니가 더 귀엽지!”

“홍두도! 홍두도!”

“뭘…… 내가 언제 그랬어.”

두 손으로 귀를 감싸 쥐면서 발뺌했더니 야유가 쏟아졌다. 아무래도 다들 유채와 태오의 관계를 알고 있는 게 아닌가, 의심이 들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