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Chapter 2. (6/13)

Chapter 2.


★ K-POP TALK

BEST! [잡담] 래디언스 존나 귀여운 사녹후기 푼다ㅠㅠ

일단 난 유채픽이라 사심 감안해줘

그동안 애들 슈스길 걷는건 당연히 좋지만 그래도 완전체 못본지 오래돼서 속상했는데 드디어 컴백ㅠㅠ

다같이 무대 딱 올라오는 순간 눈물나더라.. 다들 웃고 소리지르는데 혼자 통곡하는 귀신머리 한 여자 봄? 그거 나야;;

무대 진짜 쩔었고 애들은 더 쩔었고ㅠㅠㅠㅠ 대기할 때도 애들이 근처에 있어서 실물영접 실컷하고 눈호강 제대로 하고옴ㅠㅠㅠㅠ 아 아직도 흥분해서 먼소리 하는지 모르겠네;; 암튼 기억나는대로 대충 풀어봄 ㅠㅠ

이신 – 최리더ㅠㅠㅠㅠ 예능에선 맨날 막내캐라 귀염둥이엿는데 오랜만에 나타난 든든한 리더형아때매 내 맘이 따뜻해짐.. ㅠㅠ 애들 하나하나 다 챙기고, 애들도 최리더한테 의지하는거 티나서 보기 너무 좋드라 ㅠㅠ

특히 유채가 엄청 기대는 듯ㅠㅠ 유채 비활기에도 스케줄 많아서 가뜩이나 힘든데 몇 년동안 불면증 심하고 계속 울적해한다고 다들 걱정했었잖아.. 대기할 때 팬들이 유채 좀 어떠냐고 물어보니까 최리더 엄청 스윗한 표정으로 요즘 완전 살아났다고ㅋㅋㅋ 너무 살아나서 시끄러워 죽겠다고 불평함ㅋㅋㅋㅋ 유채가 막 내가 언제 시끄러웠냐고 따지니까 최리더 진짜 다정하게... 지금도 시끄럽게 굴고 있다고ㅋㅋㅋㅋㅋㅋ 아 진짜 상냥한 동아리선배같았어ㅠㅠㅠㅠ 동아리에 그런 선배 없어 나도 알아

라윤 – 이번 앨범 타이틀곡에 수록곡 거의 다 라윤이 곡인거 다들 알지 ㅠㅠㅠㅠ 라윤이 작곡한다고 활동 잘 안해서 진짜 오랜만이라 ㅠㅠㅠㅠ 그저 눈물만 줄줄 흘렸음 울 막둥이ㅠㅠㅠㅠ

팬들이 라윤이 얼굴 좀 보고 살자고ㅋㅋㅋㅋ 예전처럼 예능도 하고 드라마 오슷트도 부르자니까 라윤이 정색하면서 그럼 작곡은 누가 합니까? 형들한테 맡기면 망합니다 이럼ㅋㅋㅋㅋㅋㅋㅋㅋ 아앀ㅋㅋㅋㅋㅋㅋㅋ 전문 작곡가도 있잖아 누가 형들 시키랬냐ㅋㅋㅋㅋㅋ 근데 라윤이가 만드는 곡마다 갓작이고 대히트쳐서ㅋㅋㅋ 나도 다른 작곡가 섭외하는거 싫긴 함ㅠㅠㅠ 라윤이의 하루가 48시간이었으면ㅠㅠㅠ!!!

케빈 – 케빈이는 예능에서 하도 봐가지고 걍 옆집애 같음ㅋㅋㅋㅋ큐ㅠㅠ 요즘 진짜 채널 돌릴때마다 케빈나와서 숨도 안쉬고 떠들던데 직접보니까 진짜… 숨도 안 쉬고 떠들더라…ㅋㅋㅋㅋㅋㅋ 저렇게 떠들어대는데 한국어는 대체 왜 몇 년째 늘지도 않음?ㅋㅋㅋㅋㅋ 케빈식 브로큰 코리안에 적응돼서 이제 멀쩡한 한국어가 이상하게 들릴 지경임ㅋㅋㅋㅋㅋ 암튼 애들 하나씩 다 건드리면서 치대고ㅋㅋ큐ㅠ 애들은 다 귀찮아하고ㅋㅋㅋㅋㅋㅋㅋㅋ

심지어 객석근처까지 쫓아와서 우리한테까지 치댐ㅋㅋㅋㅋㅋ 우리한테 잠 잘자고 밥도 잘 먹었냐고ㅋㅋㅋㅋ근데 애들 본다고 들떠서 잠설치고 새벽부터 줄서고 대기했는데 우리가 잠자고 밥먹을 정신이 어딨겠음ㅠㅠ 다들 아니 못자고 못먹었어ㅠㅠ 하니까 케빈놈ㅋㅋㅋㅋㅋㅋ 케빈은 잘 잤다! 잘 먹었다! 케빈은 괜찮다! 하는데 ㅅㅂㅋㅋㅋㅋㅋㅋㅋ 누가 물어봤냐? 니가 우리한테 물어본거잖아 물었으면 대답 좀 들어줘;;;; 뭐가 괜찮다는거야;;;; 개씹덕… 귀여워… 귀여워!!!!! 쾅!!!!!!!!

아근데 좀 신기했던 거;;; 케빈이가 그분한테도 달라붙어서 치댐;;; 케빈이가 유일하게 안 건드리는게 그분이었는데… 근데 더 신기한거;;; 그분도 케빈이 다 받아줌;;;; 이렇게 말하면 누가 믿어줄까 싶은데ㅠ 나 얼마전에 라식해서 시력좋거든 진짜임ㅠㅠㅠㅠ 그분에 대한 놀라운 소식은 이게 끝이 아님 아래에서 이어짐…

유채 – 후 일단 심호흡하고 시작한다… 나 분명 경고했다 유채픽이라 사심잇다고…

나 유채 실물 이렇게 가까이서 본거 처음이거든… 늦덕인데 유채가 제왕 히트치고 완전 슈스된 뒤에 입덕해서 기회가 없었어ㅠㅠ 그래서 진짜 심장 나대다가 찢어져서 실려갈 뻔했음ㅠㅠㅠㅠㅠㅠ 와 실물 쩔어… 카메라샛기들 유채 입체감을 일프로도 못 표현한다;; 쌍커풀도 없는데 눈 진짜크고 콧날 우뚝하고 턱에는 존나 손벨거같은데 통통한 명랑젓 입술 어떡할거야ㅠㅠㅠㅠ 이목구비 쩔게 자기주장해ㅠㅠㅠㅠㅠ 개존잘이야 진짜 눈부셔서 나 라식까지 해놓고 장님될뻔했잖아ㅠㅠㅠㅠㅠㅠ

아 그리고 나 원래 반깐단이었거든? 근데 유채 오늘 완깐이었는데 ㅅㅂ;;;; 이마까지 대리석 조각인거 실화임?;;; ㅈㄴ앞으로 유채는 무조건 완깐이다 반깐채 덮채 다 금지다 세상에 유채의 아름다움을 머리카락 한올로도 감춰서는 안된다 무조건완깐 알았지;;

유채하면 무대얘기도 빼놀수 없다;; 미안 다른멤들은 내가 무대에서 못봤어 유채한테 눈이멀어서ㅠㅠㅠㅠ 다들 알다시피 유채가 센터된지 꽤 됐잖아ㅠㅠㅠㅠㅠ 오늘도 센터에서 날라다니셨다 진짜 아시아 댄스왕 아니냐??? 어????!!!!(미안)

무대매너도 쩔어서 글케 날라다니다가도 카메라에 대고 계속 삿대질하는데 하악ㅠㅠㅠㅠㅠㅠ 나도 삿대질당하고 싶다 카메라는 좋겠다ㅠㅠㅠㅠㅠㅠㅠㅠ

아니 근데 무대하니까 말인데 원래 그분이 센터였는데 2집부턴가 밀린 거잖아… 그거야 당연해 당연하긴 한데 오늘 뭔가… 그분이 뭐 대단히 잘한건 아닌데 엄청??? 열심히???? 땀 뻘뻘흘려가면서??? 추더라???? 오죽하면 유채담기도 바쁜 내눈에까지 그분이 들어왔다??? 오늘 좀 되게… 이상한 하루였음… 이상한게 한두개가 아님 아래에서 이어짐…

그분 – 위에서도 좀 얘기했지만 음…

오늘 사녹갔던 사람들은 내가 무슨 얘기 하는지 알거야 음;;;;;;

일단 대기할 때부터 되게 이상했는데… 그분이 사이좋은 사람이 이 우주에(ㅅㅂ) 하나라도 있겠냐만 특히 유채랑 안 좋았잖아 다들 쉬쉬하지만 먼주알지… 그나마 그분은 유채한테 가끔 말걸어도 유채 대꾸도 안했었는데… 오늘 유채가 먼저??? 그분 옆에 붙어서???? 귓가에 대고 계속 소곤거림;;; 심지어 다정해보였음;;;;

아니 게다가 그게 끝이 아님;;; 그분은 시큰둥한줄 알았는데… 좀 있다 보니까 막 진실의 귀 되더라…? 귓바퀴 시뻘개져서 대꾸하는데 좋으면서 표정관리하는거 다보이고;;; 쓰면서도 내가 더 소름돋는데;;; 이거 진실임 말했잖아 나 라식했다고…

그러더니 케빈도 끼어듬;;; 케빈이가 계속 장난치고 그분 팔에 매달리고????????? 그분은 그걸 또 받아주고????????? 근데 애들이 아무도 안 놀라는거야!!! 되게 자연스럽게 막… 마치 그게 있을 수 있는 일이라는 듯… 웃고 떠들더니 유채가 또 그분 귓가에 뭔가 소곤소곤… 그분은 또 표정관리 안되시고… 뭐뭐뭐뭐라고 한거야 어????? 나도 알려줘;;;;

근데 그게 또 끝이 아님;;; 내가 아까 무대 얘기 했잖아… 너무 당황스러워서 수록곡 무대 할때는 그분을 좀 자세히 봤거든? 근데 와시바 미쳣나??? 시작 전에는 긴장하는 거 같더니(근데 이것도 좀 미친거 아닌가? 그분이? 무대한다고 긴장을? 어떻게 무대망칠까만 고민하면서 사시는 거 같던 분이??? 그분 무대 영접하고 존나 먹먹문 쓰면서 우수수 탈덕한 팬들 눈물이 마르지도 않았는데???) 스태프가 와서 긴장하지 말라고 머라머라 해주니까 고개 꾸벅 숙여서 폴더인사를… 감사하다고… 씨바, 야 내말이 거짓말같아? 어 나도 거짓말같아 근데 진짠데 어쩔거야;;; 같이 있던 팬들 죄다 입 쩍벌어지고 심지어 스태프 입도 쩍벌어졌어…

그러더니 무대 막상 시작하니까;;; 아니씨바 얼마나 열심히 추든지 나중엔 인이어가 빠졌어;;; 카메라에 나름… 삿대질도 시도하고… 카메라를 잘 못 찾아서 헤매긴 했지만 어쨌든;;; 비슷하게 흉내는 냈다 내가 본 래디언스 역사에서 처음보는 그분 삿대질이었다;;; 그러더니 하… 하트… 이걸 내 손으로 쓸래니까 심장이 벌렁거리는데 암튼 손가락 하트… 도 했다;;;; 사실 그거 첫 번째 무대에서도 하는거 같았는데… 난 그때 내가 잘못본줄 알았단말이야 백퍼 라식 부작용인줄 알았다고;; 근데 내 라식한 눈은 멀쩡했다고 한다… 거짓말이라고 하지마 이건 방송 나갈거니까 움짤 찔 준비나 해 다들;;;

암튼 그랬다 충격적인 사녹이었다ㅠㅠㅠㅠㅠㅠ 우리 애들 귀엽고 유채 존잘이고 그리고…

씨바 유채보다 그분 후기가 더 긴거 실화냐

[댓글(410)]

▶ 너 신우주 악개지

↳ 그분 이름 부르지마 끔찍

↳↳ 22222

↳↳↳ 33333

▶ 아 후기에 그분 묻었어;

↳ 좀 너무 많이 묻었네

↳↳ 이거 왜 베스트임?

↳↳↳ 하도 어이없어서 그런가봄…

▶ 야 너 라식수술 잘못됐나보네 병원가서 따져;;;

▶ 유채가 다정하게 소곤거렸대;; 시력 무슨일이야 ㅋㅋㅋㅋㅋㅋ 짜증나게 굴지마 이런 소리나 했겠지 ㅋㅋㅋㅋㅋ

↳ 유채는 그런말 안해;;

↳↳ 뭐래 한유채 착한얼굴 안착한 조동아리 모르는 사람도 있냐;;

↳↳↳ 맞아 유채 지옥의 조동아리 진짜ㅋㅋㅋㅋㅋㅋㅋ 천사얼굴이랑 넘 안어울려서 웃겨 ㅋㅋㅋㅋ

↳↳↳↳ 예능나오면 맨날 입다물고 있길래 디게 수줍고 얌전한줄 알았잖아 근데 입여는순간 와장창 ㅋㅋㅋㅋㅋ

↳↳↳↳↳ 근데 유채가 미는 본인 캐해: 아기새

↳↳↳↳↳↳ ㅋㅋㅋㅋㅋㅋ이건 또 먼소리임? ㅋㅋㅋㅋㅋㅋㅋㅋ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미친 ㅋㅋㅋㅋㅋㅋㅋ아기새 ㅋㅋㅋㅋㅋㅋㅋ누가글케불러줌? 지가 부름?

↳↳↳↳↳↳↳ 한 사년전인가 유채가 예능나와서 지 별명 아기새라고 함;;

↳↳↳↳↳↳↳↳ 귀야웤ㅋㅋㅋㅋㅋㅋ 근데 유채야 아기새는 좀 아니지않니 니 복근을 봐……

↳↳↳↳↳↳↳↳↳ 복근이 왜나와; 성희롱좀 하지마;

↳↳↳↳↳↳↳↳↳↳ (유채복근.JPEG) (chocolate.JPEG) (six_pachage.JPEG)

↳↳↳↳↳↳↳↳↳↳↳ 츄룹… ㅇㅠㅇ

↳↳↳↳↳↳ 맹세코 유채한테 아기새 드립치는 간큰팬 단한번도 본적이업슴 ㅋㅋㅋㅋㅋㅋ 지 혼자 미는 캐해임ㅋㅋㅋㅋㅋㅋ

▶ 나도 사녹 갔는데… 너희들 다 못믿고 이러는거 이해하는데;;; 왜냐면 나도 못 믿겠거든ㅋ큐ㅠㅠㅠ 근데 난 라식도 안했어ㅠㅠㅠㅠ 이 후기 찐이야ㅠㅠㅠ;;; 너무 놀래고 당황해서 나 심지어… 심지어 그분이 막 잘생겨 보이더라 뭔가 얼굴에서 빛이 났어;;;

↳ 뭐 얼굴이야 원래 잘났었지 속에 든 게 문제지

↳↳ ㅇㄷ인데 그런 뜻이 아니라 뭔가 인상이 달랐어 되게 환하고 건강한;; 해사한????? 그런 분위기;;; 그 누구지 옛날에 닮았다고 했던.. 엄청 존잘이고 느낌 좋은 배우 있잖아ㅠ 그 배우 생각나더라

↳↳↳ 누구??? 윤태오????

↳↳↳↳ 난 윤태오팬도 뭣도 아니지만 어디 그분을 윤태오한테 비비냐;; 첨 나왔을 때나 소속사에서 언플한다고 짭태오거렸지 하나도 안 닮음;;;

↳↳↳↳↳ 소속사가 짭태오거렸겠냐 리틀태오 거렸겠지ㅋㅋㅋㅋㅋㅋㅋㅋ

↳↳↳↳↳↳ ㅇㄷ) 어어어 윤태오ㅋㅋ큐ㅠㅠ 아니 나도 예전엔 하나도 안닮았다고 생각했어;; 근데 오늘은 그분 활짝 웃는데 뺨에 보조개 패는데 갑자기 엄청 닮아보이더라 윤태오 살아돌아온줄;;;

↳↳↳↳↳↳↳ 아 윤태오보조개 유명했지ㅋㅋㅋㅋㅋ 울언니 윤태오팬이었는데 맨날 보조개에 빠져죽고싶다고 했었음ㅋㅋㅋㅋㅋ 근데 그분은 보조개 없지않았나?

↳↳↳↳↳↳↳↳ 다시 짭태오되고싶어서 수술했나봄ㅋㅋㅋㅋㅋ

↳↳↳↳↳↳↳↳↳ 보조개도 수술있어?? 나도할까,, 그분 보조개 이쁘든데… 어디서했는지 병원 출처좀…

↳↳↳↳↳↳↳↳↳↳ 저거 자연발생일걸?? 수술로 저렇게 예쁘게 안돼,, 막 했을땐 잘된거 같이 보여도 쫌만 지나면 주름진 것처럼 처져ㅠㅠㅠㅠ 어케알았냐면… 나도 알고싶지 않았다…

↳↳↳↳↳↳↳↳↳↳↳ 헐 신기하다,, 없던 보조개가 생기기도 함?;;

↳↳↳↳↳↳↳↳↳↳↳↳ 갑분 보조개 수술논의 머선일이야ㅋㅋㅋㅋㅋㅋㅋㅋ 윗윗댓.. 토닥토닥,,,

↳↳↳↳↳↳↳ 윤태오 살아돌아온줄이라니ㅋㅋㅋㅋㅋㅋ 누가보면 윤태오 죽었는줄 알겠다ㅋㅋㅋㅋㅋㅋ

↳↳↳↳↳↳↳↳ 뭐야 이댓 빨리 지워;;;

↳↳↳↳↳↳↳↳ 헉 야;;; 윤태오 진짜로 죽… 돌아가셨…

↳↳↳↳↳↳↳↳ 고인에 대한 예의좀;

↳↳↳↳↳↳↳↳↳ 뭐 진짜야?? 미미안;;; 나 몰랐어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 그래서 이 후기 찐이라고 아니라고?

↳ 찐이겠냐?

↳↳ 찐이겠냐?

↳↳↳ 찐이겠냐?


***

컴백 주간에는 숨 돌릴 틈도 없을 정도로 일정이 몰아쳤다. 예전에도 유채가 활동하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에 짐작은 했지만, 어깨너머로 구경하는 것과 직접 몸으로 뛰면서 겪는 것은 차원이 달랐다. 게다가 우주의 체력은 정말로 엉망이라서, 활동 기간이 끝나기 전에 제가 먼저 병원에 실려 갈 것 같았다.

그리고 정말로 병원에 실려 가고 말았다.

“아이고, 라윤아. 이게 무슨 일이냐?”

명태가 병실로 허겁지겁 달려와 물었다.

“연습실에서 어지럽다고 눕더니 그대로 못 일어났습니다.”

“케빈 깜짝 놀랐어! 새 우주가 쓰러질 만큼 연습했다!”

“우주가 오랜만에 활동하느라 힘들었나 봐요. 검사해 봤는데 과로래요.”

“과로……. 우주가 정말 과로였다고?”

명태가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태오를 바라보았다.

아무리 우주의 자질이 뛰어나다고 해도 노래를 부르고 춤추는 사람이 태오다. 무대에 오를 때마다 멤버들보다 뒤처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태오는 영화나 드라마를 찍을 때면 언제나 극을 이끄는 역할만 해 왔기 때문에, 래디언스의 구멍이 된 상황이 익숙하지 않았다. 어떻게든 민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무리해서 노력한 결과가 지금이었다.

“아니, 그러게 왜 안 하던 짓을 합니까……. 그냥 적당히 하시지.”

“응, 그러게…….”

결과적으로 실력은 나아진 게 없는데 몸만 축난 것 같아서 조금 억울해졌다. 태오는 한숨을 쉬면서 라윤에게 대꾸했다.

“아, 뭐. 근데 괜찮아. 그냥 잠깐 어지러웠던 건데.”

“그래도 쓰러졌잖아요. 우리 다 진짜 깜짝 놀랐습니다. 유채 형까지 놀랐다니까요?”

“어! 유채가 업어서 데려왔잖냐. 운전도 했다!”

“유채가?”

우주라면 거품부터 무는 유채가 우주를 업기까지 해서 병원에 데려왔다니. 유채와의 관계를 반쯤 포기하고 있었는데, 그래도 희망이 전혀 없지는 않았나 보다. 태오는 다소 밝아진 얼굴로 물었다.

“유채는 어디 갔어?”

“네? 유채 형을 왜 찾습니까?”

“고맙다고 인사라도 해야지.”

“진짜요? 인사하면 기분 나빠할 텐데요?”

“유채는 우주 묻었다고 샤워하러 숙소 간댔다!”

“으응…….”

유채는 말도 참 예쁘게 한다. 태오는 며칠 전에 찾아보았던 커뮤니티 후기 글에 달린 댓글을 떠올렸다.

-한유채 착한 얼굴 안 착한 조동아리 모르는 사람도 있냐?

그래도 후기를 쓴 팬은 우주에게 다정한 얼굴로 속삭였다고 생각한 것을 보면 유채 얼굴이 착하긴 한 모양이었다. 그 잘생긴 얼굴로 상냥하게 뭐라고 속삭였더라?

‘눈앞에서 식은땀 흘려 대면서 짜증 나게 굴지 말라고 했지…….’

그러고 보니 짜증 나게 굴지 말고 꺼져, 이런 소리나 했을 거라고, 예리하게 짐작한 팬들도 있었다. 어쩌면 유채를 세상에서 제일 순한 아기새라고 생각했던 건 착각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오늘 팬 사인회는 우주 없이 저희끼리 갈게요, 명태 형.”

“응, 그래야겠다. 오늘은 푹 쉬어, 우주야.”

태오가 풀이 죽은 채 유채에 대해 생각하고 있을 때, 명태와 이신이 오늘의 일정을 정해 버렸다. 태오는 눈을 크게 떴다.

“팬 사인회는 다 같이 하는 거잖아요? 제가 빠져도 돼요?”

“응? 너 가려고? 쓰러졌는데?”

어쩐 일이냐는 얼굴로 명태가 가장 먼저 입을 쩍 벌렸고, 이신도 당황한 표정이었다. 케빈이 발랄하게 끼어들었다.

“와! 케빈 진짜 감동했다. 우주가 부상 투공 한다!”

“부상 투혼입니다. 그리고 우주 형 부상 안 당했습니다.”

“응? 그럼 부상 투공 아니고 뭐야?”

“글쎄요. 음, 링거 투혼?”

“너희들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나가서 담당 간호사한테 우주 깼다고 전해. 근데 뭐가 됐든 우주랑 되게 안 어울리기는 하네.”

“그렇죠? 역시 병원 온 김에 우주 형 뇌파 검사부터 해 보는 게…….”

“뇌에 혹 같은 거 생긴 거 아니냐? 우주 죽냐? 케빈은 우주 좋은데! 죽지 말아라!”

“아, 진짜. 내 뇌 멀쩡하다니까. 팬 사인회 가겠다는 게 그렇게 이상해?”

결국 울컥한 태오가 소리를 지르고 나서야 케빈과 라윤이 조용해졌다.

예전 기억을 더듬어 보면, 유채는 팬들이 가장 기대하는 행사라면서 언제나 팬 사인회를 신경 썼다. 스케줄에 치여서 한숨도 못 잔 뒤에도 밴에서 영양제 링거를 맞으면서 이동해 기어코 참여할 정도였다. 래디언스를 보기 위해서 몇백 장씩 앨범을 구매하거나, 멀리서 오랜 시간이 걸려 서울로 올라오는 팬들이 많아서 실망하게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래서 명태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팬들이 많이 기대하지 않겠어요?”

“응? 무슨 기대?”

“팬싸 오려면 돈도 시간도 많이 쓴다고 하던데. 너무 실망하면 어떡해요.”

“실망을 왜 하지?”

정작 명태는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이번에는 이신을 쳐다보았더니, 이신이 난처한 얼굴로 우물거렸다.

“아냐, 우주야. 실망은 아마 안 할 거야…….”

“우주 웃기다. 농담 잘해!”

“케빈아. 무슨 말을 그렇게 해, 우주 앞에서.”

“응? 케빈 뭐 잘못했냐?”

저희끼리 떠드는 모습을 보면서 태오는 문득 깨달았다. 태오는 팬 사인회를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한 줌 남아 있는 우주 팬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대부분은 우주를 보러 팬 사인회에 오지 않는다. 이 몸 상태로 팬 사인회 참석할 생각에 걱정스러웠는데 그나마 다행이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우주가 팬들 실망할까 봐 걱정도 하고. 난 좀 뭉클하다.”

명태는 상당히 감동받았는지, 연신 태오의 어깨를 토닥이면서 감동받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태오는 조금 머쓱해졌다.

“……뭘 또 뭉클까지 해요.”

“아니다! 케빈도 뭉클…… 했다! 맨날 팬 미팅 되게 되게 귀찮아했잖냐!”

“그러게 말입니다. 우주 형 진짜 변했습니다.”

“응. 우주도 너무 기죽지 말아라! 팬들도 새 우주로 변신한 거 알면 오늘 못 간 거 슬퍼할 거다! 아직 다들 잘 몰라서 그래.”

“기 안 죽었어……. 변신은 또 뭐야. 나 변신했어?”

“어! 변신 아니냐?”

“맞습니다. 완전 영혼 바뀐 수준이지 뭡니까?”

케빈과 라윤이 태오에게 바투 붙어서 떠드는 동안, 이신이 명태를 채근했다. 늦지 않게 도착하려면 슬슬 출발해야 할 시간이었다.

“형, 우리 이제 가야죠. 시간 빠듯하겠어요.”

“어어. 준비해야겠다. 우주야, 끝나고 데리러 올 테니까 그때까진 여기에서 쉬어. 알았지?”

“음, 네.”

“우주 잘 있어! 팬들한테도 새 우주 보여 주고 싶었는데 아쉽다!”

“그러게 말입니다. 아니 글쎄, 제가 우주 형이랑 셀카 찍어서 인별에 올렸더니 협박당하고 있냐고 하지 뭡니까?”

“어어! 케빈 봤다. 댓글 달았는데!”

“아, 그거 말고요. 우주 형이 보컬 연습 도와 달라고 해서 연습실에서 찍었거든요.”

“뭐? 또 케빈 빼놓고 둘이 놀았냐!”

“논 게 아니고 연습한 건데…….”

“얘들아. 그만 좀 떠들고 서둘러. 숍에 들렀다 가려면 늦겠어.”

명태가 여전히 시끄러운 멤버들을 채근해 데리고 나갔다. 케빈과 라윤이 한 번씩 손을 흔들고, 이신이 고개를 까닥하면서 떠난 뒤에야 조용해졌다. 태오는 그제야 한숨 돌리면서 병실을 둘러보았다.

여름이 한창인 늦은 오후였다. 일인실의 한쪽 벽면을 채운 유리창 너머에서 햇볕이 비껴들었다. 태오는 이전 생에서도, 우주의 몸으로 살게 된 현재의 생에서도 병실과 인연이 많다는 생각을 했다. 한 가지 다른 점이라면, 그때는 언제나 유채가 함께 있었다.

‘마지막엔 결국 헤어졌지만.’

제 입으로 상처 주어 유채를 쫓아냈던 일이 생각나 태오는 씁쓸하게 웃었다.

깨어난 후 처음으로 여유로웠지만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차라리 정신없이 바쁠 때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러나 텅 빈 시간과 공간을 맞닥뜨리자, 어쩔 수 없이 유채가 떠올랐다.

처음 만났던 날, 유채는 겨우 열여섯이었다.

그날은 부슬비가 내렸다. 유채를 빙 둘러싸고 섰던 연습생들을 쫓아 보낸 후, 태오는 옥상 바닥에 주저앉은 유채를 향해 손을 뻗으면서 물었다.

-괜찮아?

유채는 눈을 크게 떴다가, 작게 웃었다가, 수줍은 듯 눈을 내리깔았다. 느릿하게 깜박거리는 눈꺼풀 아래로 숱 많은 속눈썹이 팔락거렸다. 투명한 나비 날개 같은 움직임을 따라서, 태오의 가슴 안쪽 어딘가가 간지러웠다.

-아무렇지도 않아요.

-씩씩하네.

태오는 그 애의 하얗고 반듯한 이마를 먼저 눈에 담았다. 그리고 옅은 갈색의 동그란 눈동자와, 형, 부르면서 달싹거리는 도톰한 입술을 바라보았다. 이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아서, 태오가 잃어버린 과거의 소년이 기억 속에서 활짝 웃었다. 끄트머리가 순하게 휘어진 짙은 눈썹 아래의 긴 눈매가 반달처럼 부드럽게 접혔다. 태오는 그 모습을 한 번도 잊어 본 적이 없었다. 지난 생에서도, 우주의 몸에서 다시 깨어난 뒤에도.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허전했던 마음이 조금씩 채워졌다. 태오는 느긋하게 생각하자고 마음먹었다. 어떤 말을 하든 유채는 유채였다. 간혹 유채가 얄밉고 때려 주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그런다고 유채가 바뀌는 것은 아니었다.

그때, 병실 문이 열렸다.

들어온 사람은 뜻밖에도 유채였다. 샤워를 하러 숙소로 돌아갔다더니, 드라이도 제대로 하지 않았는지 반쯤 젖은 머리가 이마를 덮고 있었다.

태오가 놀란 내색을 하기도 전에, 유채가 먼저 어이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말을 뱉었다.

“뭐야, 벌써 깼어? 진짜 아팠던 거 맞아?”

태오는 조금 전까지 했던 생각을 정정했다. 간혹이 아니라 자주 얄밉긴 했다.

“팬싸 가기 싫어서 기절한 척했냐? 가지가지 한다, 씨발.”

사실은 매번 볼 때마다 때려 주고 싶었다……. 태오는 불쑥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가라앉히려고 애쓰면서 가까스로 웃었다.

“피곤했나 봐.”

“뭘 했다고?”

“……조금 무리하긴 했어.”

“자랑이냐? 그동안 얼마나 연습을 안 했으면.”

그냥 때릴까?

태오가 고민하는 동안, 단정한 얼굴이 눈앞으로 훅 다가왔다. 갑작스러운 긴장감에 태오는 잠시 얼어붙었다.

갓 샤워를 마치고 나온 유채의 몸에서는 향긋하고 달콤한 향이 났다. 태오와 같은 샤워 젤을 쓰는데도 유난히 청량한 느낌이었다. 메이크업도 하지 않은 말간 뺨이 발긋했다. 심장이 빠른 속도로 뛰었다.

“왜, 왜 왔어?”

저도 모르게 말을 더듬고 말았다. 그러자 유채가 눈을 가늘게 떴다.

“물어볼 게 있어서.”

“뭔데…….”

비웃는 듯한 웃음이 해사한 얼굴을 스친다. 팽팽하게 당겨진 입술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가 여느 때보다 한층 더 차가웠다.

“너, 요즘 왜 그렇게 수상하게 굴어?”

“내가 뭘?”

“안 하던 연습을 하지 않나, 무대에서 열심히 뛰지 않나.”

“아니, 그거야 당연히 해야 하는 거지…….”

“아 그래? 그래서 이제까지는 항상 개판 쳤어?”

“무슨 말이 하고 싶은데? 병실까지 쫓아와서.”

숨결까지 느껴지는 거리가 지나치게 가까웠다. 미친 듯이 뛰는 심장 박동 소리가 유채에게 들릴까 봐 겁났다. 적당히 불퉁한 목소리로 겨우 대꾸하는 게 고작이었다. 태오는 나풀거리면서 느릿하게 움직이는 유채의 긴 속눈썹을 멍하게 바라보았다. 시선을 눈치챈 듯, 유채가 눈매를 길게 접으면서 눈웃음을 쳤다.

“내가 생각을 좀 해 봤어.”

“어……. 무슨 생각?”

“연습은 그렇다 쳐. 갑자기 신우주가 미쳐서 열심히 살아 보고 싶어졌나 보지. 죽다 살았더니 빚 갚는 게 겁났을 거 같기도 하고.”

“으응.”

열심히 살아 보기로 한 것도 사실이었고, 빚이 겁났다는 것도 맞는 얘기라서 태오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유채가 자꾸 화사하게 웃어 대서 정신이 없기도 했다.

“뭐, 중범죄자도 개과천선하지 말란 법은 없으니까, 그것만이면 그러려니 했을 텐데…….”

뭐라는 거야. 내가 중범죄자야? 태오는 넋을 놓은 와중에도 잠깐 화가 났다.

“꼬마한테까지 잘 보이려고 수작 부리는 건 수상하잖아.”

“뭐? 내가 언제 수작 부렸어?”

뒤집어씌우는 게 수준급이었다. 말도 안 되는 혐의에 태오가 발끈했다. 그러나 유채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게다가 보조개.”

“응?”

“보조개는 어떻게 만든 거야. 수술이라도 했어?”

“뭐? 무슨 수술?”

이번에는 어이가 없다 못해 어리둥절해졌다. 난데없이 보조개 얘기가 왜 나오는지 모를 일이었다.

그러자 유채의 입술이 비틀어졌다. 투명한 눈동자가 서늘하게 빛났다.

“분명히 죽겠다고 수면제 처먹을 때까지만 해도 없었는데. 설마 회복하려고 입원했을 때 시술한 거야? 왜 그런 짓까지 해?”

“야, 내가 언제?”

우주가 수면제를 먹은 뒤라면 태오가 깨어난 이후였다. 시술은커녕 연습에 치여 잠잘 시간도 없었다. 그제야 정신이 든 태오가 억울한 얼굴로 따지듯 물었다.

“내가 왜 그런 걸 하겠어?”

“그럼 없던 보조개가 이렇게 갑자기 생겼다고? 잡아떼면 내가 속아 줄 것 같냐?”

“너 지금 나랑 대화하는 거 맞아? 알아듣게 얘기해.”

“갑자기 그룹 활동에 열 올리고, 꼬마랑 잘 지내려고 하고, 보조개까지 생기고. 그러고도 모를 줄 알았냐고. 내가 병신인 줄 알아?”

“나 지금 벽 보고 떠들어? 뭐라는 거야, 도대체?”

“너, 아직도 나 포기 안 한 거잖아. 그 스토커 새끼랑도 그래서 결국 안 사귄 거지.”

“어……?”

태오는 황망한 얼굴로 입을 벌렸다. 어떻게 알았지?

그러나 유채를 포기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었지만, 유채가 생각하는 내용과는 세부 사항이 상당히 달랐다. 유채가 말하는 ‘스토커 새끼’는 전에 들었던 서한준일 것이다. 그러나 얼굴도 모르는 서한준과 만나려고 했던 사람은 태오가 아니라 예전의 우주다.

어쨌든 유채에게 이렇게까지 미움받고 있는 상황에서 난 너를 되찾으려고 되살아났다면서 매달릴 수는 없었다. 태오는 난처한 표정으로 말끝을 흐렸다.

“아니 뭐, 그런 거 아닌데.”

“아니라고?”

“네가 나 싫어하는 거 아는데 왜 그러겠어…….”

그러자 유채의 눈이 까맣게 가라앉았다. 그는 불쑥 팔을 뻗어서 태오의 어깨를 꽉 끌어안았다. 뜨거운 숨결이 잡힐 듯 가까이서 닿았다. 순간적으로 뻣뻣하게 굳은 태오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다정한 목소리가 태오의 귓가에 소곤거리듯 부드럽게 내려앉았다.

“근데 왜 자꾸 태오 형을 따라 해. 짝퉁 새끼야.”

목뒤가 써늘해지면서 온몸이 오싹했다. 태오는 아무런 반응도 하지 못한 채, 눈만 부릅뜨고 허공을 노려보았다.

유채가 태오를 향해 손을 뻗었다. 태오의 목덜미를 훑어 내리는 손가락 끝이 얼음장처럼 찼다.

“태오 형 죽은 걸로 부족했나 봐. 아예 태오 형이 되고 싶었어?”

산뜻한 음성이 연달아 이어졌지만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태오는 한꺼번에 쏟아져 들어오는 정보들을 처리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게 무슨…….”

“내가 모를 줄 알았어? 네가 그때.”

유채는 손이 컸다. 가늘고 긴 태오의 목 정도는 한 손으로 잡을 수 있었다. 이내 손아귀에 단단히 힘이 들어갔다. 순식간에 목이 졸렸다.

“태오 형 찾아가서 개소리 지껄였던 거.”

우주가 태오를 찾아왔던 일은 한 번밖에 없었다. 아파트에 쳐들어왔던 우주는, 유채가 주인공 역할을 맡을 수 있게 해 달라면서 유채의 발목을 잡지 말고 물러나라고 했다.

그러나 벌써 사 년이나 지난 일이었다. 태오는 유채가 여전히 그 일을 마음에 담아 두고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유채야, 그때는…….”

입을 열었지만 변명할 말이 없었다.

우주가 찾아왔던 것은 태오가 유채의 등을 떠미는 계기가 되었지만,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것은 아니었다. 태오는 이미 그 전부터 무너져 있었고, 우주에 대해서는 악감정조차 잊었을 만큼 오래된 일이었다.

그러나 유채는 흐릿하게 웃었다.

“너만 아니었어도 형은 그렇게 안 됐어.”

“……유채야.”

“알아. 네 잘못만은 아니긴 하지.”

그 미소가 슬퍼 보였고, 그래서 안쓰러웠다.

“내 탓이야……. 내가 이세현만 안 했어도 형은 나랑 안 헤어졌을 거야. 내가 제왕 하차했으면 형은 안 죽었다고.”

“…….”

그렇지 않았다.

유채가 어떤 선택을 했든 바뀌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태오의 심장에는 사고 당시에 이미 충격이 왔다. 유채에게는 알리지 않았지만 심장 문제는 언제든 터질 수 있는 시한폭탄이었고, 태오 또한 살아가기엔 이미 지쳐 있었다.

태오는 가까스로 입술을 달싹거렸다.

“아냐, 유채야. 나…… 아니, 윤태오는 심장 마비였잖아. 그게 어떻게 네 탓이야.”

유채의 탓도 아니고, 우주의 탓도 아니었다. 그냥 그렇게 되었을 뿐이다. 태오는 그걸 말해 주고 싶었다.

그러자 유채가 눈을 들었다. 똑바로 바라보는 시선이 서늘했다.

“내가 그렇게 부르지 말랬지.”

“뭐?”

“태오 형처럼 부르고 태오 형처럼 행동하고.”

“아니 난, 그게 아니라.”

“신우주.”

태오의 말을 가로막는 유채의 입매가 팽팽했다. 감정이 억눌린 목소리가 무심히 흘러나왔다.

“그거 알아? 네 뺨에서 보조개 보일 때마다 파 버리고 싶어.”

“그건…… 정말로 수술한 게 아니야.”

우주에게는 없던 보조개가 왜 생겼는지는 태오도 몰랐다. 영혼이 바뀌면서 신체도 영향을 받는 게 아닐까 짐작할 뿐이다. 앞으로도 그런 변화가 계속 생길 수도 있었다.

그때마다 유채가 우주의 얼굴에 태오를 겹쳐 보면서 상처받을 것을 생각하니 입 안이 바싹 말랐다.

“갑자기 몸치 흉내에, 음치 흉내에.”

이건 좀 억울했다. 태오가 몸치나 음치이고 싶었던 것도 아니고, 우주가 기본적으로 재능이 있어서 그나마 나은 거였는데. 태오는 목이 졸리는 와중에도 조금 샐쭉해졌다.

“언제부터 내 이름을 그렇게 불렀어?”

“내가 뭐 어떻게 불렀는데. 그냥 형 소리 안 했다고 이래? 몇 살 차이도 안 나면서 형 대접해 주기 싫어서 그랬다, 왜.”

그래서인지 저도 모르게 불퉁한 소리가 나왔다. 그러자 유채가 피식 웃었다.

“태오 형처럼 불렀잖아.”

“윤태오처럼 부르는 게 어떤 건데?”

“다정하게…….”

먼 곳을 바라보는 것처럼, 유채의 눈동자에서 문득 초점이 사라졌다.

“너무 사랑해서 애타 죽을 것처럼…… 그렇게 불렀어.”

태오는 유채가 우주를 보는 걸까, 아니면 태오, 저를 바라보는 걸까, 그런 생각을 했다.

아주 가끔씩, 유채가 우주의 몸이 아니라 자신의 영혼에게 말을 건다고 느낄 때가 있었다. 지금이 그랬다.

“그럼 나는 정말로 네가 형인 거 같아서…….”

유채의 눈가가 발갰다. 물기에 젖은 연갈색 눈동자가 그림자 속에서 번들거렸다.

태오는 울지 말라고 말하고 싶었다. 한 품에 제대로 들어오지 않는 유채의 어깨를 어떻게든 끌어안고, 단단한 등을 쓸어 주면서 네 잘못은 아무것도 없다고 얘기해 주고 싶었다. 그것이 윤태오로서 죽는 순간에 마지막으로 빌었던 소원이었다.

하지만 유채는 울지 않았다. 눈가를 여전히 붉힌 채, 태오를 노려보는 시선이 형형하게 빛났다. 감정이 모두 지워진 얼굴이 무겁게 굳었다.

“한 번만 더 태오 형 흉내 내면 죽여 버릴 거야.”

태오는 유채가 자신을 알아보길 바랐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상처받는 것을 원한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

차분한 시선이 유채의 눈길과 마주쳤다. 태오는 자신에게 다짐하듯 중얼거렸다.

“흉내 내지 않을게.”

***

하지만 그게 마음대로 될 리 없었다.

‘내가 나인 척 안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해?’

얼떨결에 알겠다고 했지만, 태오는 유채가 어느 지점에서 ‘흉내 낸다’고 느꼈는지도 정확히 몰랐다. 게다가 생각할수록 억울하기도 했다.

태오는 우주가 된 이후, 제게 시비를 못 걸어서 안달인 유채가 얄미워서 때려 주고 싶은 마음을 언제나 억누르면서 불렀다. 그걸 ‘너무 사랑해서 애타 죽을 것처럼’ 불렀다고 멋대로 오해하다니. 너무 자의식이 강한 게 아닐까?

‘대체 어떻게 부르는 게 ‘너무 사랑해서 애타 죽을 것처럼’ 부르는 건데?’

있는 보조개를 없애는 수술을 할 수도 없고(그런 게 있긴 한지조차 모르겠다), 몸치나 음치가 아니게 될 수도 없고, 달려드는 꼬마에게 쌀쌀맞게 굴 수도 없었다. 사람이 어떻게 강아지에게 그런 짓을 한단 말인가? 결국 유채가 지적했던 일 중에서 태오가 손쓸 수 있는 부분은 하나도 없는 셈이었다.

애초에 태오는 유채가 자신의 보조개를 의식하고 있는 줄도 몰랐다. 그러고 보니 이전 생에서, 제 뺨을 빤히 바라보는 유채의 시선을 간혹 느끼곤 했던 기억이 났다. 다만 그때도 유채는 태오의 보조개가 좋다든가 예쁘다는 언급은 한 번도 하지 않았다.

‘몰래 좋아한 거였어? 귀엽기는…….’

태오는 한숨을 푹 쉬면서 웃어 버렸다.

아무래도 유채는 제가 태오라는 걸 믿어 줄 생각이 전혀 없는 모양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사실은 내가 윤태오라고 고백한다면 감동의 해후 대신 주먹세례가 날아올 게 뻔했다. 당분간은 유채와 잘 지내기가 요원해 보였다. 시간이 지나간다고 해서 나아질 것 같지도 않아 더욱 암담했다.

그래서 태오는 괜히 유채 생각에 빠져서 답 없는 고민만 하는 대신 팬 사인회 분위기나 둘러보기로 했다. 우주의 이미지가 조금이라도 나아져야 개인 활동도 슬슬 시작할 수 있을 텐데, 하필이면 이미지 개선을 해 보려고 노력하던 중에 팬 사인회에 빠지게 되어 신경 쓰였다.

‘다들 괜찮다고 하긴 했지만…….’

태오는 SNS와 커뮤니티 몇 군데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정말 괜찮았네.’

괜찮은 정도가 아니었다. 태오는 우주가 안 왔다고 기뻐하면서 신나게 우주 욕을 하는 후기를 몇 개나 밟고 말았다. 우주 못 본 지 오래됐는데 안 와서 슬펐다는 댓글이 아주 드물게 보이긴 했다. 생명이 꺼져 가는 작고 소중한 불씨를 보는 느낌이었다. 기분이 더 울적해졌다.

모르는 번호에서 연락이 온 것은 그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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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오는 눈을 느릿하게 깜빡거렸다. 우주를 잘 알고 있는 듯한 말투에, 묘하게 느글거리는 내용이었다. 혹시 예전에 들었던 우주의 스토커인가 싶어서 차단 목록을 다시 살펴보았지만 번호가 달랐다.

메시지는 계속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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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이거. 협박이야?”

태오는 핸드폰을 툭 떨어뜨렸다. 메시지를 보낸 사람은 우주의 스토커인 서한준이 맞았다.

그 와중에도 메시지는 연달아 쌓였다. 화면에 떠오르는 미리 보기 내용은 점점 더 협박성이 짙어지고 있었다. 멤버들이 서한준과 만나지 말라고 말리면서 위험하다고 걱정했던 것이 떠올랐다. 유채는 심지어 ‘스토커 새끼’라고 불렀다. 이렇게 스토킹까지 할 만큼 우주에게 빠져 있는 팬이 있다니, 그건 그것대로 놀라운 일이었다.

서한준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까 싶어서 태오는 인터넷을 이리저리 뒤져 보았다. 그러나 팬카페와 커뮤니티와 SNS에서 아무리 검색해 보아도 결론은 같았다.

어딜 봐도 우주의 다양한 행적에 대한 욕이 나왔다. 까도 까도 새로운 양파처럼 다양한 인성 논란과 태도 논란이 튀어나왔고, 적은 수였지만 우주를 옹호하는 댓글들이 뒤섞여 댓글창이 엉망이었다. 이런 이미지로 과연 개인 활동까지 할 수 있을까 싶어져서 머리가 아팠다.

그사이에 메신저가 잠잠해졌다. 태오는 우선 스토커의 연락처를 차단했다. 명태에게 부탁해서 새로운 번호를 만들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 피한다고 될 일은 아니었다.

‘며칠 뒤에 또 팬싸가 있는데.’

서한준은 래디언스의 팬 사인회가 있을 때마다 꼬박 참석한다고 들었다. 경호원이 촘촘하게 배치된 사인회 현장에서 소동을 일으키진 못하겠지만 마주칠 가능성은 있었다. 얼굴이라도 알면 나을 텐데 아는 게 없으니 답답했다.

“신우주, 나한테 얼마나 더 똥을 줄 거야…….”

태오는 앓는 소리를 내면서 이불을 뒤집어썼다. 갚아야 할 빚도 산더미인데, 세상 모든 사람들로부터—특히 유채에게서—미움을 받고 있는 데다, 협박을 일삼는 스토커까지 붙어 있다. 이 몸에 들어온 이후 우주에 대해 미안함과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지만, 이럴 때는 한숨밖에 나오지 않았다.

***

태오가 아찔해하건 말건 두 번째 팬 사인회 날짜는 금세 다가왔다. 그동안 태오는 명태에게 서한준의 협박 메시지를 보여 주었고, 명태는 태오의 핸드폰을 바꾸어 준 후 경호 인력을 늘렸다.

“서한준은 입장시키지 말라고 얘기해 놨어. 너 그 사람 얼굴은 기억 못 한다고 했지? 혹시 뚫고 들어오면, 우리가 얼굴 아니까 바로 가드 붙일게. 겁먹지 말고. 알았지, 우주야?”

행사장이 있는 건물에 마련된 임시 대기실에서 메이크업을 수정받는 동안, 명태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당부했다. 멤버들도 다소 긴장한 표정이었다.

“그래! 케빈이 지켜 줄게. 케빈 양궁 배웠다!”

“양궁이 무슨 소용 있습니까? 활도 없으면서 서한준한테 화살을 어떻게 쏩니까?”

케빈이 법석을 떨면서 끼어들었다가 라윤에게 핀잔만 들었다. 코디의 손길에 얼굴을 맡기고 있던 이신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라윤아. 활이 있어도 쏘면 안 되지.”

“그래! 라윤이는 알지도 못하면서! 양궁할 만큼 케빈 팔 힘이 세다는 뜻이다!”

“케빈아. 팔 힘 세도 폭력은 안 돼. 가드에게 맡겨야 해.”

“아이, 농담이다!”

“아닌 거 같은데.”

셋이서 서한준 얘기를 주고받는 동안 태오는 거울 너머로 유채를 흘긋 살폈다. 유채는 핸드폰을 들여다보면서 고개를 들지 않았다.

그날 이후 유채는 줄곧 태오를 투명 인간 취급했다. 한동안 마주치기만 하면 시비를 걸던 일이 꿈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그렇게 아예 태오를 무시하기로 작정했으면 마음이라도 편히 지내면 좋을 텐데, 그 뒤로 유채는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는 듯했다. 유채의 불면증이 심해졌다면서 케빈이 걱정하는 목소리가 종종 들렸다.

일찌감치 메이크업을 마쳤는데도 유채는 눈 밑이 거뭇했다. 말갛고 매끄러웠던 뺨이 해쓱해 보였다. 태오가 없었던 지난 삼 년간 유채는 줄곧 저런 얼굴로 지냈을 것이다.

가슴 안쪽이 지끈거렸다.

‘차라리 시비를 걸어…….’

이제는 정말로, 유채가 어떻게 속을 긁어도 괜찮을 것 같았다. 저런 얼굴만 하지 않는다면 뭐든지 참아 줄 수 있었다.

태오는 울적한 기분으로 눈을 내리깔았다.

***

행사장은 팬들의 함성으로 가득했다. 특히 유채가 들어섰을 때는 귀가 찢어지는 듯한 기분이 들 정도였다.

태오의 생전에도 래디언스는 이미 자리 잡은 톱 그룹이었지만 멤버들의 인기는 비등했다. 그때는 심지어 우주도 개인 팬덤이 있었다. 그러나 삼 년이 지나고 보니 상황이 크게 달라져서, 우주의 이미지는 바닥인 반면 유채의 위상은 예전과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높아졌다는 것을 쉽게 체감할 수 있었다. 유채는 ‘제왕’으로 단번에 주연급이 된 이후, 드라마와 영화를 연달아 성공시키면서 흥행 보증 수표로 입지를 굳혔다고 들었다.

태오는 무대 위로 올라와서 제 자리를 찾아 앉는 유채를 뿌듯한 기분으로 바라보았다.

태오에게 배정된 자리는 유채의 왼쪽 옆이었다. 시선을 느낀 유채가 이쪽을 돌아보았다. 줄곧 유채가 태오를 피했기 때문에, 이렇게 가까이서 마주 본 것은 병실에서 만난 이후로 처음이었다.

눈길이 마주치자 단정한 미간이 찌푸려진다. 싫은 티를 내는 것을 보니 그나마 기운을 차린 듯해서 안심이 되었다. 태오는 저도 모르게 입꼬리를 말아 올려 슬쩍 웃었다. 속을 긁고 시비를 걸어오는 게 오히려 기뻤다.

“하……. 재수 없게. 형, 나 자리 바꿔 줘.”

기쁨이 0.5초를 못 갔다.

태오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었다. 이신이 태오를 흘긋 곁눈질하더니 유채를 타일렀다.

“지금 어떻게 자리를 바꿔. 너무 눈에 띄잖아. 그냥 앉아.”

“눈에 띄면 어때. 이 자리에서 몇 시간을 어떻게 버텨. 형, 빨리…….”

“야, 넌 사람 코앞에 두고 왜 그렇게 무례하게 굴어? 내 귀가 막혔는지 알아?”

참다못한 태오가 언성을 높였다. 유채의 얼굴이 팍 일그러졌다. 날 선 시선이 허공에서 팽팽하게 맞닿자, 이신이 한숨을 쉬면서 이마를 짚었다. 경직된 분위기를 눈치챈 팬들이 무대 아래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유채는 아랑곳하지 않고, 고개를 한쪽으로 기울이면서 입꼬리를 당겼다. 비웃는 듯한 표정이 조각 같은 얼굴에 얄밉게 걸렸다.

“누가 누구한테 무례라는지 모르겠네. 삼 년만 기억 못 하는 거 아니었어? 그 전에 이십일 년 동안 개새끼였던 것도 까먹었냐?”

“내가 개새끼였다고 해서 지금 네가 하는 짓이 무례한 게 아니게 돼?”

“신우주, 진짜 맞고 싶지?”

“하다 하다 손버릇까지 안 좋아? 너 왜 이렇게 됐어? 세상에 사연 없는 사람 없어. 아무리 사연 있어도 폭력 쓰면 범죄야.”

“입 안 다무냐?”

“네가 먼저 시작했잖아. 네가 시비 안 터는데 내가 입 여는 거 봤어?”

“이제 곧 시작하니까 둘 다 그만해. 팬들 앞에서까지 그러지 말고.”

“이신이 형! 둘 다가 아니라 유채가 나쁘다! 가만있는 우주 자꾸 괴롭히고 쿡쿡 찌른다. 쿡쿡!”

“그래, 유채야. 그만 좀 해. 우주 몸도 안 좋은데.”

“내가 뭘 잘못했는데. 이 새끼가…….”

“너 말버릇 진짜 안 고칠래? 안 그러던 애가 진짜 왜 이래?”

태오는 유채가 자신에게 시비를 거는 것보다 험한 말버릇이 더 신경 쓰였다. 태오가 죽은 후 상처를 너무 크게 받아서 성격이 완전히 변해 버렸나 싶어서, 싫은 소리를 하면서도 안쓰러웠다.

그러자 케빈이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우주 전부터 자꾸 이상한 소리 한다. 유채가 언제 안 그랬냐?”

“뭐?”

“우주 형이 삼 년만 까먹은 게 아닌 거 같습니다. 가끔 보면 기억 되게 못 해요.”

“맞아! 우주 진짜 모르냐? 유채는 원래 지옥에서 온 동이잖아!”

“조동이요. 지옥에서 온 조동이. 아니면 조동아리.”

“으응. 비슷한 거 아니냐?”

“안 비슷합니다.”

라윤과 케빈이 티격태격하는 것은 예사로운 일이었지만, 오늘의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태오는 얼굴을 굳힌 채, 더듬거리면서 입을 열었다.

“그럼 유채가 원래 저렇다고?”

“뭘 그렇게 모르는 얼굴로 말합니까? 한 번도 욕 안 먹어 본 사람처럼.”

“아니다. 우주는 유채한테 욕 안 먹었다! 유채가 욕할 시간도 아까워서 상대 안 한댔었다!”

“아, 맞네요. 확실히 요즘 유채 형이랑 우주 형 사이좋아졌잖아요? 유채 형이 우주 형한테 시비도 걸고 욕도 하고.”

“응, 새 우주라 그렇다. 케빈도 새 우주가 좋아!”

“……사이가 좋아진 거라고, 이게?”

되묻는 목소리가 파르르 떨렸다. 케빈과 라윤은 신난 얼굴로 고개를 끄덕거렸고, 태오는 아연해졌다.

이제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동안 부인하려고 애썼던 의심이 사실인 모양이었다. 유채는 태오가 지켜 줘야 하는 순하고 착하고 사랑스러운 소년이 아니었다. 툭하면 성깔을 부려 대는 입이 험한 남자애였다…….

생각해 보면 증거는 여기저기 많았다. 태오는 커뮤니티에서 발견한 이후 줄곧 찝찝하게 여겼던 팬의 댓글을 떠올렸다.

-한유채 착한 얼굴 안 착한 조동아리 모르는 사람도 있냐?

여기 있었다. 모르는 사람.

‘너 설마 나한테 내숭 떤 거야? 설마설마했는데. 설마 진짜로?’

설마가 사람 잡았다.

‘……칠 년 동안 내숭을 떨어 댔다고?’

연기가 대단했다. 곧 남우주연상도 탈 것 같았다.

태오가 충격에 빠져 허우적대건 말건, 이내 팬 사인회가 시작되었다. 대기하던 팬들 중 앞 번호인 사람들이 무대 위로 올라와 한 줄로 섰다. 첫 번째 자리에 앉은 이신이 다정하게 웃으면서 그들을 맞았다.

내내 인상만 쓰고 있던 유채도 표정을 폈다. 활짝 웃으면서 눈을 쌕 접는 그 옆얼굴을, 태오는 샐쭉한 눈초리로 노려보았다.

“저기, 우주야?”

“아, 네.”

“여기 사인 좀…… 아니, 안 해 줘도 돼.”

오늘도 기분 나빠 보이네. 태오의 앞에 선 팬이 주눅 든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제야 태오는 아차 싶었다. 유채에게 신경 쓰느라 팬 사인회 현장인 것도 잊고 표정 관리를 못 했다.

아이돌로서는 처음이지만 배우로서의 윤태오는 수많은 사인회를 경험했다. 좋아하는 배우를 코앞에서 맞닥뜨린 팬들은 하고 싶은 말도 제대로 못 하고 얼어붙었다가, 시간이 끝나 자리를 뜰 때가 되어서야 울상을 하곤 했다. 그때마다 안타까웠던 기억이 나서, 태오는 눈앞의 팬을 향해 고개를 살짝 숙이면서 싱긋 웃었다. 팬의 표정이 순식간에 멍해졌다.

“미안해요. 잠깐 다른 생각 했어요.”

“……으응? 미안? 미안하다고?”

“여기 사인하면 되죠? 이름이 뭐예요?”

“뭐? 이름? 나?”

검지로 자신을 가리키면서 되묻는 팬을 향해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녀는 ‘유…… 윤주.’ 하고 대답하면서도 얼떨떨한 얼굴이었다.

태오는 그녀가 손을 덜덜 떨면서 내민 사인지 위에 우주의 사인을 그려 넣었다. 손가락에 쥐가 날 만큼 연습한 보람이 있었는지 완성된 모양이 제법 그럴듯했다. 태오는 종이를 만족스럽게 바라보다가 윤주의 이름을 적으려고 펜을 들었는데, 어떻게 불러야 할지 문득 난처해졌다.

‘누나라고 하기도 하고, 이름으로 부르기도 하던데.’

유채의 개인 팬 경력이 몇 년이나 되다 보니 래디언스 사인회에 참석해 본 적은 없어도 돌아가는 상황을 대충은 알았다. 연상인 팬에게는 주로 누나라고 써 주는 듯했지만, 눈앞의 팬은 태오보다 어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태오는 한참 망설이다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태오를 빤히 바라보고 있던 그녀가 화들짝 놀라면서 먼발치를 두리번거리는 시늉을 했다. 긴장이 역력한 표정이었다.

그 모습이 귀여워서 태오는 슬쩍 웃었다. 그러자 팬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뭐라고 쓰면 돼요? 윤주 씨…… 윤주야? 저보다 어리신 거 맞죠?”

“응…… 뭐?”

이번에는 입도 커졌다. 그녀가 떨떠름한 얼굴로 더듬거렸다.

“아니, 당연히 누나지……. 내가 결혼했으면 너만 한 아들이 있어.”

“네? 아들이요? 아니, 무슨 말씀 하시는 거예요. 말도 안 돼.”

“진짜야. 맨날 너희들 사진 보면서 잠들었으니까 너 닮았을지도 몰라.”

“저 닮았으면 안 되죠. 저보다 훨씬 착해야죠.”

태오를 닮았다면 몰라도, 팬이 말하는 사람은 우주일 것이다. 우주 닮은 아들이라니. 생각만 해도 아찔해서 태오는 고개를 저었다. 팬의 표정이 점점 더 혼란스러워졌다.

“으응, 그렇긴 한데 그래도 네 얼굴은 소중하니까…….”

“하하, 네? 얼굴만 밝히면 어떡해요, 사람은 성격이 제일 중요하다고요.”

“그건 네가 그 얼굴이니까 할 수 있는 얘기야.”

놀라서 당황한 와중에도 주접을 시도하는 팬이 재밌었다. 태오는 무심코 손사래를 치면서 소리 내 웃어 버렸다. 다른 멤버들 앞에 서 있던 팬들과 무대 아래의 사람들이 웅성거리면서 이쪽을 흘끔거렸다.

“이동해 주세요!”

경호 요원이 목소리를 높였다. 태오와 농담을 주고받던 팬이 아쉬우면서도 석연찮은 얼굴로 자리를 떴다. 다음으로 나타난 팬은 태오와 시선이 마주치자마자 대뜸 그랬다.

“너 되게 잘생겨졌다!”

신선한 반응이었다. 태어나서 한 번도 ‘안 잘생겼다’는 소리를 들어 본 적 없었던 태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 원래는 안 잘생겼었어요?”

“어? 아니, 원래도 예쁘긴 했지만…….”

팬은 잠시 말문이 막힌 표정이더니, 이내 단호한 얼굴로 결론을 내렸다.

“되게 산뜻해졌어! 보조개도 너무 예뻐!”

“아…… 그래요? 감사합니다.”

또 보조개 얘기다. 태오는 저도 모르게 긴장해서 옆자리에 앉은 유채의 눈치를 살폈다. 아니나 다를까, 유채의 눈썹이 단번에 구겨지는 모습이 보였다. 아니, 이미 생겨 버린 보조개를 어떡하라고. 태오는 내심 투덜거리면서 다시 팬을 향해 눈을 들었다.

“이름 어떻게 써 드릴까요?”

“태옥이 누나라고 써 줘. 나도 너만 한 아들 있어!”

“네? 갑자기요?”

“뭐야, 내 말은 믿는 거야?”

“하하, 당연히 안 믿죠.”

“미쳤다, 보조개 봐. 존나 이뻐. 돌았다!”

“네?”

“내가 지금 소리 내서 말했어?”

“지금 저랑 대화하시는 거 맞죠?”

“왜 자꾸 웃어? 너 우주 맞지? 정말 우주 맞아? 아니, 그만 웃어. 으아, 나 어떡해!”

“지, 진정하세요…….”

이번 팬은 어떻게 달래도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큰 소리로 혼잣말을 했다. 발까지 구르는 모습에 태오도 연신 웃음이 났다. 오른쪽 옆자리에서 케빈이 키득거렸다.

“다들 새 우주가 신기한가 보다!”

“새 우주? 그게 뭐야?”

그사이에 케빈 앞으로 이동한 팬이 궁금해했다. 케빈이 뻐기면서 대꾸했다.

“우주 새로 태어났다. 새 우주로!”

“정말? 어쩐지 이상하더라!”

“사람 앞에 두고 이상하다니요…….”

“저거 봐라! 요! 옛날 우주면 벌써 난동 부리고 나가 버렸다!”

“어어어, 그러게. 우주 진짜 영혼이 바뀐 수준이다. 진짜 몸 뺏겼니? 굿해야 하는 거 아냐?”

“굿 뭐예요?”

“그런 거 있어. 우주 몸 차지한 악령 퇴치하고 우주 영혼 다시 불러오는…….”

“싫어! 케빈은 악령 좋아!”

“사람 앞에 두고 악령이라니요…….”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듣는 악령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잠시 쉬는 시간이 되었을 때, 팬에게서 똑같은 토끼 머리띠 두 개를 받은 케빈이 기회를 틈타 태오를 불렀다. 나란히 토끼 귀를 쓰고 셀카를 찍자는 거였다.

몸은 스물네 살의 우주였지만 태오가 살아 있다면 벌써 서른하나다. 만기 전역한 삼십 대 남자가 토끼 귀를 뒤집어쓰고 귀여운 척할 수는 없었다. 태오는 몸을 부르르 떨면서 질색했다.

“내가 이 나이에 무슨……. 싫어. 절대 안 해.”

“우주, 라윤이랑은 셀피 찍었다! 치사해!”

“그때는 토끼 귀 안 썼어.”

“아이이이이이! 케빈도 우주랑 셀피 찍을래!”

“그럼 그냥 셀카만 찍어. 토끼는 안 해.”

“토끼가 귀엽다! 케빈 귀엽고 싶다!”

“그럼 혼자 쓰면 되잖아!”

“우주 미워!”

“아, 진짜…….”

케빈이 떼쓰기 시작하면 당할 수가 없었다. 몇 분에 걸친 실랑이 끝에, 태오는 결국 케빈이 내민 토끼 머리띠를 받아 들고 말았다. 벌레 씹은 얼굴로 머리띠를 쓰면서 귀 한쪽을 접어 내렸더니 무대 아래에서 환호성이 들렸다.

“지금 우주가 케빈 말 들어준 거야?”

“진짜 귀신 들린 거 아냐?”

“우주가 토끼 머리띠 썼어……. 미쳤다…….”

“헉, 셀카 찍는다. 그것도 케빈이랑…….”

“그럼 그때 라윤이랑 셀카 올린 거, 라윤이가 협박당한 게 아니었던 건가?”

환호성이 아니라 모함이었다. 태오는 케빈에게 끌려가 핸드폰을 향해 손가락 하트를 만들면서—예전 생에 유채에게 배웠다—불퉁한 얼굴로 투덜거렸다.

***

팬 사인회가 끝난 후, 태오는 만기 전역한 삼십 대 남자가 귀여운 척할 수는 없다는 생각을 취소했다. 사연을 말하자면 길었다.

초반에는 팬들이 다가올 때마다 말 한마디 상냥하게 건넸을 뿐인데 돌아오는 반응이 격렬했다. 머리를 다친 게 아니냐는 질문이 쏟아졌고, 믿을 수 없다는 듯한 웅성거림이 이어지면서 무대 아래까지 소란스러워졌다.

“너 오늘 진짜 달라 보인다…….”

태오의 앞에 선 팬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태오는 익숙하게 말을 받았다.

“이제까지 사춘기였거든요. 오래 겪었으니까 저도 이만하면 정신 차릴 때가 됐죠.”

“뭐? 사춘기……?”

사춘기를 스물네 살까지 겪는다는 얘기는 들어 본 적도 없었다. 둘러대는 태오도 당연히 농담으로 던진 말이다.

그런데 눈앞의 팬은 놀랍게도 수긍하는 기색이었다. 그녀는 아랫입술을 꾹 물고 비장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되지도 않는 변명이지만 믿어 주겠다는 의지가 엿보였다.

“그래, 우리 우주가 이제까지 사춘기였구나.”

“네? 아니, 그게 아니고요.”

이번에는 태오가 당황했다. 대충 던진 얘기라는 것을 태오도 알고 팬도 아는데 갑자기 진실이 되어 버렸다. 케빈과 유채 앞에 서 있던 팬들까지 심각한 얼굴로 거들었다.

“벌써 사춘기도 끝나고, 이제 완전 어른이네!”

“우주 다 컸네, 다 컸어!”

다 큰 지 좀 됐는데. 태오가 난처한 얼굴로 생각하는 동안, 팬들의 반응에 신난 케빈이 끼어들어 수다를 늘어놓았다.

“아이, 그거 아니라니까. 우주 몸에 악령 들어와서 바뀌었다!”

“케빈아. 그냥 사춘기로 하자. 악령 빙의는 좀 그래.”

“맞아. 나도 귀신 들린 건 좀 꺼림직해. 사춘기 설이 제일 나은 거 같아. 우리 그거로 하자.”

친구인 듯한 팬들과 케빈이 합심해서 떠들어 대는 얘기에 태오만 머리가 아팠다.

그 후로 다른 팬들이 다가올 때마다 악령 빙의냐 사춘기냐는 질문이 이어지긴 했다.

그러나 여기까지는 태오도 짐작했던 바였다. 멤버들이나 스태프들도 처음에는 비슷한 태도를 보였던 탓이다. 다만 예상하지 못했던 것은 그 뒤에 이어진 반응이었다.

“우주야. 우주야, 나는 네가 사실 착한 애라는 거 알았어. 난 계속 네 팬이었어!”

“아앗, 네…….”

우주에게 아직도 남은 팬이 있었다. 태오는 자신의 두 손을 꼭 맞잡고 울먹이는 팬 덕분에 제가 더 감동하고 말았다.

“노래 한 소절만 불러 줄 수 있어? 아무 곡이나 좋으니까 네 파트로.”

“네, 노래요…….”

그래서 눈물까지 글썽이는 팬의 요청을 거부할 수 없었다. 태오는 순간적으로 래디언스 곡 중에서 가장 익숙한 ‘Hush, hush’를 부르려다가, 자신이 음치라는 것을 깨닫게 해 주었던 종방연의 아픈 추억을 떠올리면서 부르르 떨었다. 그래서 대신 이번 활동곡을 불렀다.

“……우주 노력하는 모습 보기 좋아. 자, 잘하는 것보다 노력이 중요한 거지!”

최선을 다했는데 평가가 박했다. 여전히 음정이 불안하다는 건 태오도 인정했지만 서운했다.

“제 팬이신 거 맞죠?”

“응? 어어, 그럼…….”

아닌 것 같다. 태오는 저도 모르게 부루퉁해져서 볼을 부풀렸다. 그러자 무대 아래에서 비명이 터졌다.

“미쳤나 봐, 왜 저렇게 귀여워!”

“신우주 맞아? 정말 악령 씌었나 봐.”

“사춘기 끝나서 철들었대요.”

“돌았다. 오늘 신우주 레전드다, 진짜.”

뭘 했다고 그새 레전드가 되었나 싶어서 태오는 또다시 당황했다. 분명히 사인회를 시작할 때만 해도 다들 태오에게 뾰족한 눈길을 보냈는데, 태세 전환 속도가 엄청났다.

예전 생에서도 태오는 팬이 많았다. 우주의 팬덤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배우 윤태오의 팬덤 규모가 컸다. 다만 팬들과 직접적으로 교류할 일은 드물었고, 그래서 혼신을 다해 열연해도 눈앞에서 레전드 소리를 들어 본 적은 없었다. 그런데 이제는 입술만 조금 삐죽거려도 앓는 소리와 함께 과한 칭찬을 받았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태오는 기분이 조금 좋아졌다.

“저기, 이, 이거 써 줄 수 있어요? 싫으면 안 해도 되는데…….”

교복을 입은 어린 팬이 부들부들 떨면서 내민 화관을 흔쾌히 집어 든 것은 그래서였다. 머릿속에서 ‘나잇값’이라는 단어가 점점 희미해지고 있었다. 그러자 어린 팬은 태오가 보인 긍정적인 반응에 힘입어 조금 더 용기를 냈다.

“보, 볼하트도 해, 해 주세요!”

“볼하트? 그게 뭐예요?”

“이렇게…… 소, 손 이렇게 동그랗게 해서 뺨에다가 대고 하트 만드는…….”

“이렇게?”

팬의 손동작을 따라서 볼에 대고 하트를 만들면서 웃었더니 무대 아래에서 또다시 앓는 소리가 한바탕 파도쳤다. 눈앞의 팬은 뺨이 새빨개진 채, 거의 기절할 듯한 얼굴로 덜덜 떨었다.

“너무…… 귀여워요……. 어떡해, 진짜 애기야…….”

“…….”

평생 배우로만 살아온 태오는 십 대의 어린 팬에게 애기 소리를 들을 날이 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민망하고 창피한 기분에, 귀 끝에 열이 올랐다. 하지만 나이 서른하나에 귀여움받는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솔직히 꽤 좋았다.

그때부터 태오는 상당히 들떴다. 케빈이 조르고 졸라서 억지로 썼던 토끼 머리띠 정도는 이제 아무것도 아니었다. 원숭이에 고양이, 강아지까지, 태오가 평생 봤던 동물 머리띠보다 더 다양한 종류의 머리띠를 썼다 뺐다 하면서 새로 배운 볼하트를 만들었다. 연신 터져 나오는 팬들의 비명이 태오를 부채질했다. 이렇게 대중의 호의적인 관심을 받아 본 게 대체 얼마 만인지 기억도 나지 않아서 가슴이 벅찰 지경이었다.

그 와중에도 우주에게 이렇게 선물이 많이 들어온다는 게 신기했는데, 얼핏 들어 보니 다른 멤버를 위해 준비한 머리띠나 화관까지 모두 태오에게 쏠린 모양이었다. 멤버들 중에서 가장 관심을 많이 받은 셈이었다. 그것을 깨달은 태오의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역시 국민 첫사랑이자 천만 배우였던 윤태오는 죽지 않았다. 아니, 죽긴 했지만…….

“케빈 이럴 줄 알았다! 다들 새 우주 좋아할 거라고 그랬지?”

마지막 팬까지 모두 행사장을 떠난 뒤, 케빈이 태오의 등을 팡팡 내리치면서 요란하게 웃었다. 라윤이 옆에서 거들었다.

“새 우주 형이 점점 더 업그레이드하는 것 같습니다. 오늘 완전 날아다니던데요? 제 팬도 저한테 주려던 선물 몽땅 다 우주 형 줬습니다.”

“으응, 내가 괜히 미안하네. 네 팬을 뺏으려던 건 아니야, 라윤아.”

“예? 아, 당연히 안 뺏으셨습니다. 우주 형 반응이 너무 신기해서 줬다고 그랬습니다.”

“어! 내 팬도 선물 우주한테 주고 싶어 하는 거 같더라! 케빈도 궁금해서 우주 줘 보라고 했다!”

케빈과 라윤은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웃어 버렸지만, 여전히 들떠 있는 태오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윤태오로서 살 때는 이런 인기가 너무 당연했기 때문에 귀한 줄 몰랐다. 그러나 우주의 몸으로 지내는 동안 줄곧 미움만 받다가, 오랜만에 제대로 느껴 본 인기와 관심이 지나치게 짜릿했다. 태오는 자신의 뼈와 영혼에 새겨진 관심 종자로서의 기질을 실감했다. 그는 대중의 관심이 좋았다. 그렇지 않았다면 열다섯에 배우가 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태오는 서른한 살에도 귀여운 척해도 된다고, 조금 머쓱한 기분으로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태오는 지난 삼 년간 죽은 상태였으니 나이를 먹지 않았다고 봐도 될 것 같았다. 그렇다면 여전히 스물여덟 살이었다.

‘스물여덟 정도면 아직 애교 부릴 나이지 뭐.’

태오는 변명을 늘어놓으면서, 테이블 위에 어수선하게 쌓인 머리띠들과 화관을 소중하게 챙겼다.

행사장에서 빠져나와 밴에 올라탔을 때는 벌써 사위가 컴컴했다. 피곤했지만 모처럼 즐거운 하루였다고 생각하면서 태오는 뿌듯해했다. 여전히 뺨은 다소 상기된 채였다.

입가에 저절로 기분 좋은 웃음이 맺혔다. 그때, 미리 안쪽에 혼자서 앉아 있던 유채와 시선이 딱 마주쳤다.

바로 옆자리라는 것을 의식했던 게 무색할 만큼 사인회 내내 태오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으면서, 이제 와서 태오를 빤히 바라보는 눈길이 서늘하고 날카로웠다. 태오는 저도 모르게 긴장해서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

유채의 반듯한 미간이 천천히 찌푸려졌다. 귓가를 긁는 듯한 목소리가 나지막하게 들려왔다.

“그렇게 웃지 말라고 했지.”

의미를 알아차리기는 어렵지 않았다. 태오는 흠칫 놀라면서 손바닥으로 제 뺨을 감쌌다. 깊게 팬 보조개가 느껴졌다.

“뭘 잘했다고 실실 웃어, 재수 없게.”

유채는 이내 창가 쪽으로 고개를 팩 돌렸다.

차라리 평소처럼 기세등등하게 시비를 걸어왔다면 태오도 받아쳤을 것이다. 그러나 차창 밖에서 희미하게 비치는 가로등 불빛을 받아 희게 빛나는 옆얼굴을 마주한 순간 입술이 떨어지지 않았다.

유채는 상처받은 표정이었다. 그것은 아마도 예전 생의 태오가 남긴 흔적일 것이다. 그래서 태오는 대꾸할 말을 잃었다.

보조개 없애는 시술을 정말 알아봐야 하나, 생각하면서 유채에게서 멀찌감치 떨어진 의자로 향했다. 조금 전까지도 들떴던 마음이 순식간에 무거워졌다. 불편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잠시 후, 주변이 소란스러워지면서 다른 멤버들과 함께 명태가 밴에 탔다. 사인회를 무사히 마친 덕분인지 다들 기분이 좋아 보였다. 그러나 유채도, 태오도 그들의 시끌벅적한 대화에 끼지 않았다. 밴은 금세 도로 위에서 미끄러졌다.

“우주야……. 너 혹시 들었어?”

태오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고 느꼈는지, 명태가 룸 미러를 통해 이쪽을 흘긋거리다가 결국 입을 열었다. 줄곧 창밖만 바라보고 있었던 태오가 의아한 얼굴로 눈을 들었다. 명태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덧붙였다.

“걱정할까 봐 일부러 얘기 안 했는데, 가드한테 들었구나? 너무 걱정하지 마. 앞으로 경호에 더 신경 쓸게.”

알 수 없는 설명이었다. 태오가 무심코 미간을 좁히자, 그의 눈치를 살피던 이신이 조심스럽게 말을 보탰다.

“서한준이 결국 왔었다며, 우주야. 밖에서 가드한테 막혀서 돌아갔다고 하던데. 너한테 따로 연락은 안 왔지?”

“아…….”

사인회 내내 정신이 없어서 우주의 스토커 구남친을 잊고 있었다. 태오는 황급히 핸드폰을 꺼내서 메신저 기록을 훑어보았다. 다행히 모르는 번호로부터의 연락은 없었다.

“어, 바꾼 번호는 못 알아냈나 봐.”

“다행이네. 명태 형이 신경 써 주실 테니까 넌 너무 걱정하지 마. 가드나 다른 멤버 없이 혼자 다니지 말고.”

“그래! 케빈이랑 꼭 붙어 다녀라. 케빈이 지켜 줄게!”

“케빈아. 넌 사고 치지 말고 너나 잘해.”

“네!”

한 손을 번쩍 들면서 대답하는 케빈의 모습에 슬쩍 웃음이 났다. 태오는 아까보다 다소 가벼워진 마음으로 유채를 흘끗 바라보았다. 그는 여전히 창밖으로 시선을 고정한 채, 갸름한 옆얼굴만을 보이고 있었다.

내리깐 눈매에 빼곡한 속눈썹이 물기에 젖은 듯 가닥가닥 갈라져 있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표정이었다.

***

이제 막 컴백한 아이돌은 태오의 예상보다 훨씬 더 바빴다. 태오는 비인기 멤버였기 때문에 유채나 케빈에 비하면 한가한 편이었고, 그룹 스케줄만 소화할 뿐이었는데도 체력이 달렸다. 배우로서 생활할 때는 일 년, 혹은 거의 이 년에 하나씩 작품 활동을 했기 때문에 더 벅차게 느껴졌는지도 모른다. 연달아 몇 개의 팬 사인회를 돌고 난 후에는, 인기와 관심에 취해서 줄곧 구름 위를 떠다니는 기분으로 사인회에 참석했던 태오도 다소 진이 빠졌다.

그러나 한숨 돌릴 틈도 없이 바로 예능 일정이 잡혔다. 태오에게는 빚이 많았고, 개인 활동은 전무했으니 그룹 활동이라도 꾸준히 할 수 있다는 게 다행이긴 했다. 모두 래디언스가 인기 그룹인 덕분이었다. 불평할 입장이 아니라는 것은 잘 알았지만, 태오는 이렇게까지 치열하게 살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다.

게다가 예능이라니. 태오는 캐릭터가 아닌 자신으로서 카메라 앞에 서는 것을 늘 어색해했다. 그래서 배우였을 때도 예능 출연은 거의 하지 않았다. 기왕 그룹 활동이라면 예능보다는 팬 사인회 쪽이 만 배쯤 더 좋았다. 태오는 다소 울상이 되어서 이신에게 투덜거렸다.

“팬 사인회는 이제 없어?”

“벌써 여러 번 했잖아. 너 갑자기 팬 사인회를 왜 이렇게 좋아해?”

“원래 좋아했는데…….”

“응? 아니다! 우주 맨날 인상 구겼다! 사인회 할 때마다 팬카페가 얼마나 난리 났었는데?”

“그때는 내가 사춘기였어서.”

“사춘기 드립 언제까지 칠 겁니까? 재미없습니다…….”

“왜? 팬들은 재밌댔어. 엄청 귀엽대.”

“그거야 팬들이니까요…….”

“와, 우주 이제 팬도 생겼냐?”

“어. 나 팬 좀 많아진 거 같아. 착각 아니야.”

“근데 저도 검색해 보면 우주 형 입덕 후기가 가끔 보이지 뭡니까?”

“거봐, 그렇다니까.”

태오가 어깨를 으쓱하면서 대꾸했다.

행사를 할 때마다 인기가 수직으로 상승하는 것을 체감할 수 있었다. 서치를 돌려 보면 태오에 대한 호감 가득한 후기와 요란한 주접이 심심찮게 눈에 띄었다. 애초에 기대치가 없었기 때문에 효과는 더 극대화되었다. 태오는 눈을 접으면서 웃기만 해도 천재 아동 소리를 들었다.

여전히 우주의 과거 행적을 언급하면서 의심과 원한에 가득 차 있는 게시물도 많았지만, 사실 비율로 따지면 그쪽이 압도적이었지만, 태오는 워낙 긍정적이고 낙천적이었다. 선플 하나면 악플 백 개 정도는 여유롭게 잊었다.

그러나 예능은 경우가 조금 달랐다. 뭘 해도 귀엽다고 해 주는 팬 한 명도 없이 카메라 앞에서 애교 있게 행동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벌써부터 온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그러자 이신이 위로하듯 말했다.

“리얼리티니까 그냥 하던 대로만 하면 돼. 예전에 하던 대로 말고……. 요즘 하는 대로.”

“리얼리티라고?”

안타깝게도 이신의 노력은 효과가 없었다. 그나마 스튜디오에서 촬영하는 예능에는 한두 번 출연해 보았는데, 리얼리티 쇼 경험은 정말로 전무했기 때문이었다. 태오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대본 같은 건 없겠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물어보았다. 이신이 눈을 크게 떴다가, 놀란 얼굴로 대꾸했다.

“우리끼리 하는 거라 구체적인 대본은 없고, 전체적인 방향성은 작가님이 잡아 주실 거야. 근데 리얼리티는 전에도 많이 했잖아. 기억 안 나?”

“아, 그게 내가 삼 년 치 기억 상실증이라…….”

“삼 년 전에도 리얼리티 몇 번 했는데! 그냥 기억하기 싫은 건 다 까먹어 버렸냐?”

“하긴, 기억하기 싫을 만도 합니다. 리얼리티 할 때마다 우주 형이 얼마나 깽판을 쳤…… 아, 아니, 난동을 부리셨는지, 저도 기억하기 싫습니다.”

“……내가 또 그랬냐.”

당연히 그러셨겠지. 태오는 놀랍지도 않다고 생각하면서 한숨을 쉬었다.

***

그러나 촬영장의 모습은 태오가 예상했던 것과 다소 달랐다.

“우리끼리 촬영하는 거라고 하지 않았어요?”

아연한 목소리가 저절로 흘러나왔다. 명태는 멋쩍은 듯 볼을 긁적거리더니 태오의 시선을 슬그머니 피했다.

태오가 다시 따지듯 물었다.

“그냥 우리끼리 캠핑 가는 거니까 휴가라고 생각하면 된다고 했었잖아요?”

“으응……. 캠핑 가는 거 맞아, 응.”

“‘우리끼리’요.”

명태는 또다시 말이 없었다.

태오는 한숨을 쉬면서 시선을 내리깔았다. 정수리가 태오의 허리께에나 겨우 닿을 듯한 어린애 세 명이 그를 말똥말똥한 눈으로 올려다보고 있었다.

이번 예능이 ‘우리끼리 캠핑 가서 편하게 촬영’하는 콘셉트라는 명태의 설명은 틀리지 않았다. 다만 조금 부실했을 뿐이다. ‘캠핑 가서’와 ‘편하게 촬영’ 사이에, ‘모처럼 놀러 온 연예인 가족들의 아이들을 베이비시팅 해 주면서’라는 구절이 빠져 있었다.

“너무 중요한 설명을 빼먹은 거 아니에요?”

“으응, 그런가?”

우주로 지낸 지 한두 달 만에 제가 벌써 만만하게 보여 버렸다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촬영장에서 가장 힘든 촬영 상대가 강아지와 아이들이다. 그들 중에서도 아이들 쪽 난이도가 훨씬 더 높았다. 우주처럼 성질을 부려 댔다면 이런 콘셉트의 예능 촬영은 회사에서도 시도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예전의 우주라면 아이들을 상대로도 얼마든지 난폭해질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활동 내내 태오는 회사가 어떤 요구를 하든 흔쾌히 따랐고, 모두가 태오의 바뀐 태도에 만족해했다. 그 결과가 촬영 현장에 도착해서야 맞닥뜨린 대여섯 살짜리 어린애 세 명이었다.

“우주야, 화났어? 갑자기 콘셉트가 바뀌었어. 너희들끼리 하는 건 많이 봐서 조금 루즈한 것 같다고들 하시더라고. 그래도 다들 연예인 가족이라서 육아 프로그램도 해 봤고, 카메라 앞에 많이 서 본 애들이라 익숙해서 크게 힘들게 하진 않을 거야…….”

줄곧 굳은 얼굴이 풀리지 않는 것에 긴장했는지 명태가 눈치를 보았다. 아이들을 좋아하는지 신난 기색이었던 케빈과 라윤도 이쪽을 돌아보았다. 태오는 다소 난처한 얼굴이 되어 다시 한번 아이들을 향해 눈길을 주었다. 완두콩처럼 생긴 작은 얼굴 셋이 일제히 태오를 올려다보면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호기심과 기대가 가득한 그 얼굴에 대고, 싫다는 얘기는 차마 할 수 없었다.

“아뇨, 그런 건 아니고요.”

배우 윤태오는 자신의 스케줄을 제법 깐깐하게 관리하는 편이었지만 아이돌이 된 지금에 와서도 회사가 하는 일을 트집 잡을 생각은 없었다. 인기 그룹의 비인기 멤버인 태오로서는 그럴 주제가 아니기도 했다. 태오는 회사가 사전 언질 없이 콘셉트를 바꾸었다는 점에는 불만이 없었다.

다만, 그 바뀐 콘셉트가 문제였다. 태오는 이렇게 어린아이들을 다루는 법을 몰랐다. 어색하기도 했고 자신도 없었다. 역시 우주처럼 가끔은 성질도 부리고 난동도 피웠어야 했나 보다. 태오는 진심이 2.5% 정도 섞인 생각을 하면서 천천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어쩔 수 없죠. 이미 촬영하러 와 버렸는데.”

“와아!”

그러자 아이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지르면서 법석을 떨었다.

손바닥 안쪽에서 땀이 옅게 배어났지만 말 그대로 어쩔 수 없었다. 신 대표는, 태오가 아이들과 하루 종일 지내는 것은 자신 없다고 버틴다면 그를 촬영에서 아예 빼 버릴 사람이었다. 태오는 우주가 남긴 빚더미를 되새기면서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아이, 별일 아니야. 그냥 애들이랑 좀 놀아 주면 된다! 괜찮아, 괜찮아.”

“애들도 우주 형 좋아할 겁니다! 아마…….”

케빈과 라윤이 번갈아 위로했지만 그다지 도움은 안 됐다.

태오는 외아들이었고, 동생들과 지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어린애를 대할 줄 몰랐다. 유일하게 대해 본 어린애가 처음 만났을 무렵의 유채였다. 그러나 유채는 대여섯이 아니라 열여섯 살이었고, 그 당시에도 형·동생처럼 지냈다고 하기에는 이미 무리가 있는 사이였다.

게다가 문제는 그것 말고도 또 있었다.

“뭐요? 신우주랑 같은 팀을 하라고요?”

몇 걸음 떨어진 곳에서 유채의 목소리가 들렸다. 거친 음색에서 신경질이 묻어났다.

유채는 프로그램 총연출을 맡은 정 PD와 대화를 나누는 중이었다. 정 PD는 유채가 스포츠 예능에 고정 출연 하던 시절에 오랫동안 함께 일했던 프로듀서로, 그 무렵 유채와 제법 친하게 지냈던 것을 태오도 기억했다. 그래서인지 그녀는 짜증 난 기색도 없이 친근하게 유채를 달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태오는 이번에야말로 앓는 소리를 내면서 한숨을 길게 쉬었다. 팀 배정 문제로 정 PD에게 투덜거리고 있는 게 뻔했다. 두 그룹으로 나누어 촬영하기로 했는데, 유채와 태오가 한 팀, 이신과 케빈, 라윤이 다른 팀이라는 얘기를 태오도 이곳에 도착하고서야 들었다.

태오는 당연히 유채와 같이 묶인 게 좋았다. 하지만 아무리 유채를 사랑한다고 해도 태오만 보면 질풍노도의 청소년처럼 구는 유채를 끌어안기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무엇보다 일박 이 일 동안 이어질 촬영 기간 내내 평정심을 유지할 자신이 없었다.

카메라 앞에서 유채를 때리기라도 하면 유채의 개인 팬덤과 태오의 팬들 사이에 전쟁이 벌어질 것이다. 태오의 개인 팬이 몇 명이나 될지는 모르겠지만.

태오가 혼자 고민하는 동안에도 유채의 불평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촬영하지 않겠다고 버티는 것 같았다.

“그럼 여기 모인 스태프들 다 헛걸음하고 집에 돌아가게 할 거야?”

그들을 지켜보던 명태가 끼어들어 타이르듯 말했다. 그를 내려다보는 유채의 긴 눈매가 삐죽 솟았다.

“저 빼고 넷이 찍으면 되죠.”

“너 빠지면 대표님이 촬영 접으라고 하실걸.”

“그럼 이신이 형이랑 같이 하면 안 돼요? 매번 그랬는데 왜 갑자기 바꿔요.”

“매번 그랬으니까 이번엔 새롭게 가자는 거지. 이신이랑은 데뷔 때부터 묶여서 벌써 오래됐잖아.”

“데뷔한 지 몇 년 차인데 이제 와서 새 시도를 해요? 이신이 형이랑 하는 게 제일 인기 있어요.”

유채는 주로 이신과의 관계성으로 묶이는 듯했으니 틀린 얘기는 아니었다. 유채와 촬영하게 되는 게 꺼려지는 마음 한구석에, 그래도 일박 이 일 동안 함께 지내 보고 싶은 기대감이 슬쩍 섞인 심정이었던 태오는 착잡한 기분으로 유채와 명태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의외로 유채의 주장에 반박한 사람은 이신이었다.

“어? 아니야. 그 조합 인기 없어.”

태오와 유채의 시선이 그에게 쏠렸다. 이신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웃으면서 손사래를 쳤다.

“너랑 나랑 둘 다 말이 별로 없잖아. 전에도 우리끼리 촬영하면 너무 조용해서 지루하다고들 하더라고. 케미가 하나도 없대.”

“그래, 맞다! 케빈도 모니터링할 때 이신이 형이랑 유채만 나오면 넘긴다!”

“진짜 졸립니다. 뭐 시켜 놓으면 진짜 딱 그것만 하고.”

이신과 유채가 한 화면에 나오면 재미가 너무 없으니 안 되겠다는 소리였다. 의외의 평가가 이어지자 태오의 표정에 흥미로운 기색이 스쳤다.

돌이켜 보면 유채는 예능에서 하도 입을 열지 않아서 태오의 속을 태운 적이 많았다. 다행히 스포츠 예능에서 발군의 몸놀림으로 두각을 드러냈고, 이후에는 배우로 자리 잡으면서 예능에 출연하는 일 자체가 많이 줄었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는 않았지만 예능감이 없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런 유채와 점잖고 유순한 이신을 붙여 놓는다면 지루할 만도 했다.

예전과 같은 사이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태오는 유채와 오랜 연인이었다. 멤버들 중에서 유채를 가장 잘 다룰 수 있는 사람도 아마 태오일 것이다. 그러니 역시 제가 유채를 잘 달래서, 나름대로 시선이 갈 만한 화면을 만들어 봐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입을 열었다.

“유채야, 그냥 우리…….”

“명태 형.”

그러나 유채를 설득하려던 태오의 목소리는 낮게 잠긴 유채의 음성에 의해 뚝 잘렸다.

유채가 태오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무표정한 얼굴로 물었다.

“이거랑 같은 팀 하면 재밌다고 누가 그래요?”

“…….”

명태와 멤버들의 표정이 어색하게 굳었다. 태오의 눈썹도 순간적으로 일그러졌다.

“이거라니?”

“피디님도 계시는데 이 새끼라고 욕할 수는 없잖아.”

“야, 한유채.”

촬영 현장까지 와서 사람을 눈앞에 두고 이거라니. 태오는 유채가 자신의 오랜 연인이고, 그 애의 곁에 있고 싶어서 살아 돌아왔고, 그러니 유채를 되찾는 것이 소원이라고 다짐하듯이 외워 댔던 것을 잠깐 잊고 발끈해 버렸다.

“너 또 말 그따위로 할래?”

“이분과 같은 팀 하면 씨발, 재밌다고 어떤 분이 그러셨어요?”

“분 자 붙여서 꾸민다고 씨발이 예쁜 말 되는 거 씨발 아니지, 유채야?”

“지금 네가 한 말은 씨발, 그럼 예쁜 말이냐?”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도 곱지 않겠냐?”

날 선 시선이 허공에서 오갔다. 멤버들과 명태는 이제 말릴 생각도 없는지 그들을 멀뚱하게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때 정 PD가 손뼉을 딱 쳤다.

“이거 봐, 우주가 많이 변한 것 같더라니 역시 내 예상대로다. 둘이 케미가 좋아.”

그 말에 유채가 그녀를 향해 고개를 홱 돌렸다. ‘아니 씨발 대체 어디가요?’라고 묻고 싶은 얼굴이었다.

***

유채의 반항은 오래가지 못했다. 나긋한 듯했던 정 PD의 성격이 보기보다 만만치 않았던 탓이다. 유채는 결국 저보다 머리 하나는 작은 그녀에게 멱살이 잡힌 채, 태오와 함께 사용하도록 배정받은 캠핑카를 향해 질질 끌려갔다. 나머지 멤버들은 아이들 두 명과 함께 글램핑용 텐트를 차지했다.

그 뒤에서 여섯 살짜리 남자아이가 태오를 빤히 올려다보고 있었다. 시선을 의식한 태오가 어색하게 웃으면서 말을 걸었다.

“……우리도 차로 갈까?”

“네에.”

얌전한 대답이 돌아왔다. 어린 시절의 유채처럼 귀엽고 예뻤다. 유채는 저렇게까지 어리진 않았고, 저렇게 어렸다면 정말로 큰일이었겠지만, 눈을 치켜뜨고 욕만 뱉어 대는 유채에게 시달리다 보니 모처럼 예전 생각이 났다.

그대로 등을 돌려 걸음을 옮기자 아이가 허둥거리면서 태오를 따랐다. 통통거리는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오른뺨에 시선이 따갑게 꽂혀서, 태오는 어색한 눈길로 그 애를 곁눈질했다. 마침 이쪽을 흘긋거리고 있었던 아이와 시선이 딱 마주쳤다. 작은 눈이 동그래졌다가, 이내 반달처럼 접히면서 배시시 웃었다. 통통한 뺨이 발긋하게 달아오른 모습이 인형 같았다. 또다시 열여섯 살의 유채가 떠올랐다. 태오의 입가가 무심결에 허물어졌다.

카메라가 돌아가기 시작하기 전에 미리 친해 두는 편이 좋을 것이다. 다행히 아이는 자신을 무서워하거나 불편해하지 않는 듯했다. 태오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아이를 향해 손을 뻗었다. 아이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손잡고 갈까?”

“응!”

주춤거리면서 물었더니 아이가 냉큼 대답하면서 힘차게 끄덕거렸다. 고개가 떨어질 것 같았다. 단풍잎 같은 손이 냉큼 다가와 태오의 손을 잡아 온다. 붙임성이 좋은 것 같아 그나마 다행이었다.

캠핑카는 넓지 않았지만 답답할 만큼 좁지도 않았다. 더블 사이즈 정도는 되어 보이는 침대와 함께 작은 소파가 눈에 띄었고, 공간이 분리된 곳에 부엌과 화장실까지 갖추어져 있었다. 다만 간이 식탁과 의자는 캠핑카 바깥의 공간에 놓였다. 식탁까지 두기에는 공간이 부족했던 모양이었다.

“오늘은 나랑 같이 여기서 지낼 거야. 점심 먹고 근처에서 오후에 놀다가, 저녁때 엄마 아빠 계신 곳으로 데려다줄게.”

“우와! 집 되게 좋다!”

일정을 설명해 주었지만 제대로 알아듣긴 했는지, 아이는 마냥 신나 보였다. 간이 가구들 사이를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면서 와다닥 소리 내어 뛰어다녔다. 당황해서 말리려고 다가갔지만 번번이 놓치는 바람에 태오까지 이리저리 뛰어야 했다. 여섯 살짜리 남자애는 기운이 넘쳤다. 캠핑카에 도착한 지 십 분 만에, 태오는 소파에 늘어진 채 지친 기분으로 아이의 밤톨 같은 뒤통수만 노려보게 되었다.

“우주야. 와 있었네?”

유채를 데리고 근처를 돌아보고 왔는지, 그제야 캠핑카로 들어온 정 PD가 반색하면서 태오를 불렀다. 그녀의 뒤를 카메라맨과 스태프가 따랐고, 이내 유채가 허리를 숙이면서 안으로 들어왔다. 서늘한 시선이 실내를 둘러보다가 태오에게 닿았다. 그러나 눈길이 마주치는 순간 고개를 홱 돌려 버렸다.

못 볼 꼴을 보았다는 듯한 반응이었다. 기분이 순식간에 상했다.

‘성질머리 진짜…….’

아기새는 대체 어디 갔어? 태오는 유채의 옆얼굴을 향해 눈을 부릅떴다.

그러나 이내 한숨을 내쉬면서 마음을 고쳐먹었다.

유채는 태오로 인해 크게 상처받았다. 여전히 불면증에서 완전히 회복하지도 못한 상태였다. 그러니 심한 충격을 받은 탓에 일시적으로 성격이 변한 것일 수도 있었다. 언젠가 우주가 태오 자신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충격에서 회복된다면 다시 태오의 아기새로 돌아올 것이다. 아마도…….

돌아오겠지?

이게 진짜는 아니겠지, 설마?

“형아! 우리 이제 뭐 해?”

눈을 가늘게 뜨고 유채의 옆모습을 뜯어보던 태오의 허리에 아이가 답삭 달라붙었다. 만족할 만큼 실컷 뛰어다녔나 보다. 이제야 시작되었을 뿐인데, 혈기 왕성한 여섯 살을 데리고 하루를 보낼 생각을 하니 아찔했다. 태오는 기운 없이 손을 뻗어 아이의 뒤통수를 쓰다듬었다.

유채의 옷깃에 마이크를 설치해 주던 스태프가 그 모습을 돌아보면서 흠칫 어깨를 떨었다. 정 PD도 잠시 놀란 얼굴로 태오와 아이를 바라보았다가 짧게 웃었다.

“우주 변했다는 소문은 많이 들었지만 직접 보니까 정말 신기하네. 은형이랑 그새 친해진 거야?”

“은형이요?”

“애기 이름, 은형이잖아. 아직도 몰랐어? 한시운 씨 알지? 시운 씨 조카야.”

연예인 가족이라고만 들었는데 배우 한시운의 조카였나 보다. 그러고 보니 예쁜 얼굴에서 아는 모습이 보였다. 이름도 묻지 않았다는 걸 깨닫고 민망한 얼굴을 하는 태오를 향해, 은형이 작은 얼굴을 반짝 들고 항의했다.

“그래! 아직도 몰랐어?”

“그럼 너는 내 이름 알아?”

“몰라!”

“너도 똑같이 모르면서 뭐가 이렇게 당당해?”

“나는 아기잖아!”

“여섯 살이 뭐가 아기야?”

여섯 살도, 열여섯 살도 아니고 스물여섯 살인 유채를 아기새 취급하고 있었던 태오가 대꾸했다. 은형이의 작은 얼굴이 금세 울 것처럼 일그러졌다. 애를 울릴 생각은 없었던 태오는 또다시 당황하고 말았다. 어쩔 줄 모르고 아이를 향해 팔을 뻗는데, 머리 위에서 나지막한 목소리가 불쑥 들렸다.

“애랑 똑같은 수준으로 싸우냐?”

아기새…… 가 아니라 유채였다. 태오는 고개를 뒤로 젖혀서, 언짢은 얼굴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네 수준도 크게 다르진 않아 보인다.”

“내 수준이 뭐가 문제야. 내가 지금 애랑 싸우고 있냐?”

“어. 나랑 싸우고 있지. 엄청난 차이네.”

“당연히 엄청난 차이지. 너랑 애가 같아?”

“아, 그래? 너랑 애는 되게 똑같아 보이는데.”

“형아들 싸우지 마! 일하러 온 거잖아!”

셋 중에서 제일 어른스러운 사람은 은형이 같았다. 아이는 소파 위에 까치발을 뜨고 올라서더니 폴짝 뛰어오르면서 짧은 팔다리를 파닥거렸다. 정 PD가 카메라맨을 향해 손짓하는 모습이 보였다. 이 꼴을 촬영하고 있는 건가 싶어서 가슴이 철렁했다.

“피디님, 지금 찍고 계시는 거 아니죠…….”

“응? 아니, 나는 신경 쓰지 마. 너희들 하던 거 해. 괜찮아, 괜찮아.”

“아니, 뭐가 괜찮아요?”

정 PD는 툴툴거리는 태오를 신경 쓰는 시늉조차 하지 않고, 카메라맨과 스태프들에게 몇 가지 지시만 내린 후 캠핑카 밖으로 나가 버렸다.

일하러 온 형들이 다짜고짜 싸워 대는 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티를 팍팍 내면서 작은 얼굴을 찌푸린 여섯 살짜리 꼬마와, 그 꼬마보다 인상을 더 잔뜩 쓴 유채를 앞에 둔 채, 태오는 오늘 하루가 아득해져서 깊은 한숨만 나왔다.

***

“이제 뭐 하면 되나요…….”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벌써 지친 태오가 스태프를 향해 힘없이 물었다. 카메라맨이 숨죽여 웃는 소리가 들렸다.

“이제 점심 만들어서 드시면 돼요. 재료는 여러 가지 있으니까 하실 수 있는 거로 아무거나요.”

간단한 요리 정도는 해야 할 거라는 안내는 미리 받았다. 태오는 미리 외워 둔 레시피 몇 개를 머릿속에서 가늠해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유채는 밖에서 고기를 구우라고 시키고, 태오는 캠핑카 안에 있는 주방에서 파스타를 만들 생각이었다. 한 번도 해 본 적은 없었지만 레시피가 어려워 보이지는 않았다. 태오는 계획을 얘기해 줄 생각으로 유채를 돌아보았다. 아이스크림 통을 소중하게 품에 안은 유채와, 그와 함께 소파에 나란히 앉은 은형이 보였다.

‘점심 먹어야 하는데 언제 또 아이스크림은 꺼냈어.’

달콤한 군것질거리를 좋아하는 유채의 입맛을 잠시 잊고 있었다. 태오는 미간을 좁힌 채 혀를 쯧, 찼다. 이제 곧 식사해야 하니 지금은 먹지 말라고 말리려 했을 때였다.

유채가 아이스크림을 한 스푼 크게 떠서 은형의 입 안에 밀어 넣었다. 아이의 표정이 금세 사르르 풀렸다. 한껏 좋아하는 작은 얼굴에서, 캐러멜 팝콘을 쥐여 줄 때마다 행복해하던 유채의 예전 모습이 보였다. 그래서 태오는 잠시 멈칫하고 말았다.

“진짜 맛있다!”

“그치.”

입 안 가득 아이스크림을 밀어 넣고 우물거리는 유채의 뺨이 통통했다. 찐빵처럼 부푼 새하얀 볼을 보자 태오도 괜히 입맛이 당겼다.

유채가 먹여 준 아이스크림 한 입에 홀랑 넘어간 은형이 유채에게 바투 달라붙으면서 물었다.

“형아.”

“응.”

“나는 은형이야. 형아는 이름이 뭐야?”

이제야 통성명을 하는 모양이었다. 유채가 여상하게 대꾸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유채.”

“우와! 이름도 형아처럼 대따 이쁘다!”

“그래? 예뻐?”

“응!”

“그런 소리 많이 들어.”

“응! 당연하지!”

“더 먹을래?”

“응!”

은형이 입을 크게 벌렸다. 고작 여섯 살짜리가 아이스크림을 얻어먹는 수법이 제법 훌륭했다. 게다가 붙임성 있게 말을 붙여 오는 은형을 무덤덤한 얼굴로 받아 주는 유채가 오랜만에 귀여워 보였다. 태오는 아이스크림 통을 뺏으려던 것도 잊고 그들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형아는 우주 형아랑 친구야?”

그러나 역시 진작에 말려야 했었나 보다. 툭 끼어든 은형의 질문에 태오는 긴장하고 말았다. 태오와 유채, 정확히는 우주와 유채가 친구라고 부를 만한 사이는 결코 아니었지만 카메라 앞이다. 되도록 말을 조심해야 하는데 유채는 아무 생각이 없어 보였다.

역시나 되는대로 툭 뱉은 게 분명한 대답이 들려왔다.

“뭐? 미…….”

미쳤냐, 라는 대꾸가 유채의 입술까지 튀어나왔다가 삼켜진 것 같았다. 태오는 여기서 유채가 더 성질을 부리기 전에 끼어들려고 했다. 그러나 은형은 틈 없이 조잘거렸고, 태오는 입을 열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

“친구야? 아니야? 그러면 뭐야?”

뭐긴 뭐야, 남자 친구지. 태오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이미 헤어진 사이이긴 했지만, 그래도 태오가 생각하기에 유채는 제 남자 친구가 맞았다. 그렇지 않았다면 매번 참아 주지도 않았을 것이다. 요즘 들어 유채를 걷어차고 싶은 기분이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으니까.

“직장 동료.”

유채가 아무렇지 않은 목소리로 대꾸했다. 저도 모르게 ‘남자 친구’라는 대답을 기대했는지, 평범한 대답이 나오는 순간 태오는 맥이 탁 풀렸다. 유채가 그런 대꾸를 할 리 없었다. 욕이나 안 나오면 다행이었다.

하지만 ‘직장 동료’도 정답이 아닌 것은 마찬가지다. 태오는 불안한 눈으로 카메라를 흘긋 바라보았다. 아이돌은 그룹 내의 분위기가 중요하다고 들었다. 우주의 성격이 엉망이라고 알려져 있긴 해도, 카메라를 앞에 둔 채 친구 사이가 아니라고 부인하는 것은 적절한 처신이 아니었다.

“직장 동료가 뭐야?”

단어를 알아듣지 못한 은형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줄곧 아이스크림에 집중하느라 건성이었던 유채가 그제야 눈을 들었다. 시선이 태오에게 닿았다가 카메라를 스쳤다. 반듯한 미간이 슬쩍 찌푸려졌다. 그래도 수습해야 한다는 생각은 들었나 보다.

“……일하면서 만난…… 친구라는 뜻이야.”

“아아, 그러면 친구 맞네! 그치?”

“응……. 맞아, 친구…….”

정말 억지로 쥐어짜 낸 듯한 목소리였지만 노력이 가상했다. 불안감이 사라진 태오는 피식 웃고 말았다. 유채가 눈을 부릅뜨고 태오를 노려보았다. 도톰하고 붉은 입술이 달싹거리면서, ‘뭘 웃어, 이 새끼야.’ 하는 입 모양을 만들어 냈다. 태오는 그 눈길을 무시하고 은형에게 말을 붙였다.

“이제 점심 준비하자. 은형이 고기 좋아해? 유채 형이랑 같이 고기 구울까?”

“응! 엄청!”

은형이 한 손을 번쩍 들면서 씩씩하게 대답했다. 태오는 은형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 주고, 유채에게 눈짓을 했다. 유채가 한쪽 눈썹을 사납게 치켜떴다.

“나보고 하라고? 애까지 데리고?”

“그럼 여기서 나랑 같이 파스타 만들까?”

“……고기 구우러 간다.”

유채가 벌떡 일어나서 성큼성큼 문가로 향했다. 한쪽 팔로 은형을 번쩍 안아 들어서, 아이가 그의 옆구리에 대롱대롱 매달린 채였다. 은형이 신난 얼굴로 팔다리를 바둥거리면서 외쳤다.

“가자! 고기한테!”

***

파스타 만들기는 확실히 어렵지 않았다. 스파게티 면을 삶고, 야채 몇 개만 썰어서 시판 소스에 넣고 끓이는 게 다였다. 그러나 아무리 좋게 봐 줘도 저는 칼질을 잘하는 편은 아니었으니 신중해야 했다. 태오는 물을 올려놓은 뒤 침착하게 칼을 들었다.

“야.”

“아, 씨!”

캠핑카 문이 벌컥 열리는 바람에 집중력이 깨졌다. 태오는 식칼의 날에 검지 끝을 살짝 베고 말았다. 따끔한 정도였지만 피가 배어났다.

“아, 뭐야? 놀랐잖아!”

태오는 손가락을 입에 물고 쪽 빨면서 인상을 썼다. 기세등등하게 쳐들어올 땐 언제고, 유채는 태오의 입술 근처를 말없이 바라보기만 했다. 자신 때문에 다쳤으니 당황한 것 같았다. 양심은 있는 모양이었다.

“괜찮아. 살짝 벤 거라 안 아파.”

태오가 먼저 위로하듯 말했다. 줄곧 멍한 얼굴이었던 유채가 그제야 퍼뜩 정신을 차렸다. 눈빛이 또렷해진 뒤에는 이내 눈썹이 구겨졌다.

“어쩌라고? 누가 물어봤냐?”

“아니. 안 물어봤지…….”

그냥 당황한 채로 내버려 둘 걸 그랬다. 태오는 오늘만 몇 번째인지 모를 한숨과 함께 대꾸했다.

“왜 왔어?”

우주라면 질색하는 유채가 스스로 태오를 찾아왔으니 용건이 있을 터였다. 필요한 게 있나 싶어서 물었지만 유채는 묵묵부답이었다. 태오는 의아해졌다.

“뭐 필요해? 찾아 줄게.”

“…….”

유채가 침묵했다. 찌푸려진 미간 아래에서 길고 빽빽한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유채와 오랫동안 함께 지냈던 태오는 이런 표정을 잘 알았다. 유채가 뭔가 사고를 쳤다.

불안해진 태오가 다시 다그쳤다.

“안 혼낼 테니까 말해 봐. 뭐 했어?”

“네가 뭔…….”

‘—데 씨발 혼내고 지랄이야.’라고 유채의 입 모양이 말했다. 소리는 내지 못하고 카메라의 눈치를 보면서 입술을 달싹이는 모습이 고소하기도 하고 귀엽기도 했다. 이 와중에도 귀엽다니, 몇 년에 걸쳐 두꺼워진 콩깍지의 힘이 위대하긴 한 모양이다.

태오는 다소 너그러워진 기분으로, 이번에는 상냥하게 물었다.

“왜 그러는데, 유채야. 응?”

“그게…… 아…….”

유채가 제 뒷머리를 매만졌다. 예쁜 얼굴에 확연히 난처한 표정이 떠올랐다. 왜 저러지, 하고 궁금해하면서, 태오는 물이 끓기 시작한 냄비에 스파게티 면을 넣었다.

한우와 함께 파스타 먹을 생각을 하니 입 안에 군침이 고였다. 조합이 조금 이상하긴 하지만, 고기를 대충 스테이크라고 생각하면 어울릴 것 같았다. 어차피 한우가 스테이크보다 더 맛있다.

“고기 다 구웠어? 소고기라 너무 오래 구우면 질겨.”

그러고 보니 유채가 여기 들어와 있으면 은형이 혼자 불판을 보고 있다는 얘기다. 문득 걱정이 된 태오가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유채는 점점 더 안절부절못하는 기색이 되었다. 태오가 한쪽 눈썹을 치켜떴다.

유채는 카메라를 흘긋 바라보았다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방금 또 욕을 삼킨 게 분명했다.

“……태웠어.”

마침내 유채가 웅얼거렸다. 미국산 고기도 아니고 한우를 태웠다는 말을 들은 것 같아서 태오는 고개를 갸웃했다. 귀가 안 좋아졌나?

“응? 지금 뭐라고?”

“태웠다고…….”

유채의 목소리가 조금 더 작아졌다. 눈을 이리저리 굴려 대는데, 뺨이 창백했다. 모처럼 웃으면서 유채를 대하던 태오의 얼굴에서 표정이 차츰 사라졌다.

강원도 근처라서 한우 질이 끝내준다며, 이참에 실컷 먹으라고 큰소리치던 정 PD의 호탕한 목소리가 떠올랐다. 태오는 컴백 준비 때문에 우주의 몸으로 지낸 이후 줄곧 다이어트를 했다. 게다가 지난 삼 년간은 물론이고, 예전 생에서도 사고 난 이후에는 소화를 제대로 못 시켰던 탓에 고기는 구경도 못 했다. 숯불에 직접 구운 한우를 먹는 게 몇 년 만인지 몰랐다. 태오는 예능을 핑계 삼아 오늘 배가 터져 죽을 생각이었다.

“그 많은 걸 전부 다?”

목소리가 저절로 낮아졌다. 유채의 넓은 어깨가 움찔 떨렸다.

“절반은 은형이랑 장난치다가 숯불에 떨어뜨렸고…….”

“나머지 절반은?”

“불에 올려서 굽고 있었는데…… 은형이랑 장난치다가 너무 오래 둬서.”

“애 보면서 고기 구우라고 했지 애랑 똑같은 수준으로 놀라고 했어?”

“아니, 놀아 주다 보면 그럴 수도 있는 거지…….”

“그래서 다 태웠다고? 고기를?”

“그럼 뭐 고기 말고 딴 거도 줬냐?”

코너에 몰린 유채가 기어코 발끈했다.

태오는 유채가 하는 일이라면 뭐든 용서할 수 있었다. 매번 질풍노도의 사춘기 소년처럼 시비를 걸어도 참아 줄 만했다. 하지만 세상에는 아무리 예쁜 얼굴로 눈을 내리깔면서 처연한 척한다 해도 봐줄 수 없는 일들이 있다.

태오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뭘 잘했다고 이렇게 기세등등하지?”

유채를 향해 한 걸음 다가서면서 물었다. 유채가 뒷걸음쳤다. 떨리는 시선이 태오가 손에 든 식칼에 닿았다. 유채가 더듬거리면서 대꾸했다.

“자…… 잘못한 건 또 뭔데?”

“정말 전부 다 태웠어?”

“…….”

“한유채. 대답해.”

“왜 같은 말 자꾸 반복시켜? 절반은 떨어뜨렸고 절반은 태웠다니까?”

“그거 한우야.”

“……끝나고 서울 가서 내가 한우 한 마리 잡아다 주면 되잖아.”

“오늘 안 먹으면 기약 없어. 우리 아직 활동 중이야. 나 다이어트해야 돼.”

“고기 좀 먹어서 뭐 얼마나 찐다고…….”

“이 몸은 찌더라고. 넌 처먹어도 다 근육으로 가서 좋겠다?”

“아, 쫌, 일 절만 해.”

“그래서 고기가 없다고? 그럼 우리 뭐 먹어? 네가 다 엎어 버렸는데 뭐 먹지, 유채야? 그냥 다 같이 굶을까?”

“아 무슨 헛소리야, 파스타 한다며.”

“사이드로 먹으려고 하는 거라 일 인분도 안 돼. 그리고 내가 만든 게 맛이나 있을 거 같냐?”

“주제 파악은 할 줄 아나 보네…….”

“뭐라고 했냐?”

“……아니 아무 말도 안 했는데?”

“뭐, 그리고 한우 대신 파스타? 장난해?”

“네가 먼저 뭐 먹냐고 물어봤잖아. 대답한 건데 왜 지라…… 화내고 그래…….”

태오가 다가갈 때마다 한 걸음씩 밀려난 탓에, 유채의 등이 어느새 문가에 쿵 소리를 내며 닿았다. 그제야 정신이 조금 돌아왔다.

태오는 눈을 질끈 감고 호흡을 골랐다. 화낸다고 될 일은 아니다. 어쨌든 한우는 사라졌고, 태오는 아기 하나와 아기새 하나를 데리고 점심 식사를 해결해야 했다.

사고만 칠 줄 아는 아기새가 주눅 든 목소리로 물었다.

“우리 뭐 먹어?”

“…….”

“난 그냥 파스타만 먹어도 괜찮은데.”

“…….”

“야……. 난 파스타만 먹어도 괜찮다니까?”

“입 다물어라, 한유채.”

“응.”

지은 죄가 크긴 했는지 유채가 얌전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순순히 말을 들은 것은 태오가 우주의 몸에서 눈뜬 이래로 처음이었다.

태오는 일단 식칼을 내려놓고 가스레인지 불을 껐다. 살릴 수 있는 고기가 조금이라도 있는지 살펴볼 생각이었다. 정 구할 수 있는 게 한 조각도 없다면 냉장고 속에 든 다른 재료들을 살펴보아야 했다. 그러나 할 줄 아는 요리라고는 떡볶이밖에 없었던 탓에 내심 난감해졌다. 한우를 못 먹게 된 것은 둘째 치고, 이러다 파스타 일 인분을 남자 셋이 나눠 먹게 생겼다.

오후에 혈기 왕성한 여섯 살짜리를 데리고 놀아 주려면 든든하게 먹어 두어야 한다. 태오는 눈썹을 잔뜩 구기면서 캠핑카 밖으로 나섰다. 유채가 우물쭈물 따라 나왔다.

간이 식탁과 숯불 근처에 새카맣게 탄 한우가 잔뜩 흩어져 있었다. 미약한 희망을 안고 꼼꼼히 뒤적거렸지만 건질 수 있는 고기는 한 점도 없어 보였다. 태오는 기운이 빠졌다.

“못 먹겠지……?”

졸졸 따라 나온 유채가 등 뒤에서 풀 죽은 목소리로 웅얼거렸다.

“…….”

“…….”

태오는 침묵했다. 대답할 기운도 없었다.

그런데 문득, 이게 중요한 게 아닌 기분이 들었다. 사위가 이상하게 조용했다. 어쩐지 등골이 오싹해졌다.

유채가 등 뒤에서 풀 죽은 목소리로 투덜거렸다.

“한우 못 먹어 죽은 귀신 들었냐.”

“어. 나 한우 못 먹고 죽었다.”

틀린 말도 아니었기 때문에 태오는 싸늘하게 긍정했다. 유채는 조금 더 기가 죽은 듯했지만, 거기까지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왜 계속 위화감이 드는지 모를 일이었다. 태오는 묘하게 거슬리는 느낌의 정체를 찾기 위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리고 불현듯 깨달았다.

“애기는 어딨어?”

“어? 무슨 애기?”

유채가 맹하게 되물었다. 태오는 짜증이 팍 났다.

“은형이. 어디 갔냐고! 너랑 같이 있었잖아!”

“아, 은형이? 여기에 있으라고 그랬는…… 데…….”

“그래서 어딨냐고!”

유채의 뺨이 창백해졌다. 은형이가 보이지 않았다.

***

“대체 할 줄 아는 게 뭐야. 어? 고기를 구울 줄 알아, 애를 볼 줄 알아! 촬영 시작한 지 하루가 됐어, 이틀이 됐어? 이제 겨우 한 시간이야! 대체 사고를 몇 개나 치는 건데!”

“아오……. 애가 사라질 줄 내가 알았어? 일부러 그랬겠냐?”

“데리고 들어왔어야지. 여섯 살짜리를 왜 혼자 둬? 제정신이야?”

“나도 아니까 그만하라고!”

캠핑장 곳곳에 스태프들이 있으니 별다른 일은 없을 것이다. 카메라맨 하나가 은형에게 따라붙었을 가능성이 컸다. 그래도 걱정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태오는 유채에게 소리를 버럭버럭 지르면서 은형을 찾아 나섰다. 유채는 줄곧 기죽은 얼굴이었지만, 그 와중에도 한 마디도 지려 들지 않아서 더 얄미웠다.

“은형이 저쪽으로 갔어요. 다른 스태프가 따라갔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다행히 캠핑카 밖에서 대기 중이었던 스태프가 웃으면서 방향을 알려 주었다. 가까스로 안심한 태오가 걸음을 서두르는데, 뒤에서 따라오던 유채가 지치지도 않고 툴툴거렸다.

“거봐. 여기 사람이 몇인데.”

“뭘 보라는 거야? 그래서 잘했다는 거야?”

“아니, 잘했다는 게 아니라 별일 없을 거라는 거지.”

“너 입 안 다무냐?”

“내가 내 입도 마음대로 못 하냐?”

은형이 안전하다는 걸 깨닫는 순간 유채가 되살아났다. 태오는 더 상대하기 싫다는 얼굴로 입을 다물어 버렸다. 그때, 멀찌감치에서 계곡 앞에 쪼그리고 앉은 은형이 보였다. 태오는 간신히 숨통이 트였다.

“은형아!”

“형아!”

그러자 태평한 얼굴로 핸드폰 게임을 하고 있던 은형이 고개를 반짝 들었다. 잽싸게 달려와서 태오의 허리를 두 팔로 감싸고 바르작거리는데, 은형을 찾기까지 이십 분 남짓 속을 끓였기 때문에 마냥 기쁘게 맞아 줄 수 없었다. 태오는 은형을 품에서 떼어 내면서 다그쳤다.

“너 왜 혼자 사라졌어? 유채 형하고 같이 다녀야지. 둘 다 혼날 줄 알아!”

“웅? 유채 형아 혼냈어?”

“또 혼자 다닐 거야, 안 다닐 거야?”

“많이 혼냈어? 유채 형아 울리지 마아.”

“한 번만 더 이러면 너희 부모님께 다 이를 거야. 알았어?”

“유채 형아 안 혼낼 거지? 응?”

“……한은형!”

옆에서 작게 쿨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신경이 날카로워진 상태로 휙 돌아보니 유채가 헛기침을 하고 있었다. 입꼬리 끝이 슬쩍 위로 올라가 있다.

“웃냐? 뭘 잘했다고 웃냐?”

유채는 태오를 흘긋 내려다보더니 입매에 힘을 주어 표정을 고쳤다. 머쓱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누가 뭐 잘했댔냐?”

“아이참, 유채 형아 혼내지 말라니까아. 유채 형아가 가만히 있으랬는데 은형이가 말 안 듣고 잘못한 거잖아!”

“넌 아기니까 그럴 수도 있어. 근데 쟤는 다 컸으니까 그러면 안 돼.”

“아닌데? 유채 형아 아기새랬어.”

“아기새가 다 죽었……, 됐어, 그만하자. 너 잘못했어, 안 했어.”

급기야 아기새까지 부정할 뻔한 태오가 황급히 말을 돌렸다. 미간을 좁히면서 은형을 채근했더니, 말랑한 뺨이 불만스럽게 빵빵해지면서 입이 나온다. 손가락 두 개로 은형의 입술을 잡고 꾹 눌렀다.

“빨리 대답 안 해? 혼난다.”

그제야 기어드는 목소리로 우물우물 대답이 흘러나왔다.

“잘모테써…….”

“꼼짝하지 말고 유채 형이나 내 옆에 붙어 있어. 알았어?”

“우웅…….”

시무룩하게 대꾸하는 은형의 한쪽 손을 잡고 캠핑카로 향했다. 은형이 뻗은 다른 손을 유채가 잡아 주었다. 은형은 금세 기분이 좋아진 듯, 태오와 유채 사이에서 기운차게 깡충깡충 뛰었다.

유채가 은형을 잃어버리는 대형 사고를 쳐 버린 탓에 잠시 잊은 일이 있었다. 이미 점심시간이 훌쩍 지났고, 그들에게는 식사할 만한 음식이 없다는 거였다.

“형아, 나 배고파…….”

태오는 까맣게 불탄 한우의 잔해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칭얼거리는 은형의 손을 움켜쥔 손이 파르르 떨렸다. 유채가 고개를 푹 숙인 채 운동화 코끝으로 바닥을 툭툭 찼다. 한마디 더 해 주고 싶었지만, 유채를 더 잡는다고 불타 버린 한우가 되살아나는 것은 아니었다.

“많이 배고파? 조금 기다려야 할 거 같은데 어떡하지.”

태오는 미련을 버렸다. 그리고 유채를 구박하는 대신 은형을 토닥거리면서 달랬다. 태오나 유채는 그럭저럭 참을 수 있겠지만 어린아이가 허기를 참기는 힘들 것이다. 일 인분 만들어 놓은 파스타라도 일단 먹이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은형을 데리고 서둘러 캠핑카 안으로 향했다. 기운 없이 뒤따라오는 유채의 발걸음 소리가 타박타박 들렸다.

“은형아, 일단 파스타부터 먹…….”

그러나 부엌에서 태오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뜨거운 물이 담긴 냄비 안에 그대로 팽개쳐 두어서 퉁퉁 불어 터진 스파게티 면발이었다.

굳어 버린 태오의 어깨 너머에서 유채가 기웃거렸다.

“너 사고 쳤네.”

“…….”

“못 먹겠다, 이거.”

“……입 다물어라…….”

태오는 주먹을 콱 움켜쥐었다. 카메라 앞이다. 유채를 때려서는 안 된다. 아니, 카메라 앞이 아니더라도 때릴 수는 없었다. 왜냐면 태오는 유채를 사랑하니까…….

“우리 밥 못 먹어?”

“어. 쟤가 사고 쳐서 못 먹어.”

“힉! 형아가 사고 쳤어?”

“어, 이거 봐. 면이 다 퍼져 버렸어.”

그냥 때릴까?

***

태오는 다급하게 냉장고를 뒤졌다. 몇 가지 재료들이 쏟아졌지만 선뜻 손댈 만한 게 없었다. 애초에 태오는 요리를 할 줄 몰랐다. 떡볶이만 몇 번 해 보았을 뿐이다.

“비켜 봐. 내가 할게.”

“네가 뭘 해?”

무슨 자신감인지, 유채가 끼어들었다. 태오에게만 요리를 맡겨 놓기가 미안했던 건가, 싶은 생각이 잠깐 스쳤다.

그러나 이내 헛웃음이 나왔다. 이제는 태오도 확실히 알았다. 유채의 다정함은 태오에게만 한정된 거였다. 유채는 태오 외에는 모든 사람들에게 시큰둥했다. 요리를 전담시켜서 미안한 게 아니라, 신우주가 만드는 요리를 먹기 싫은 게 뻔했다.

‘내가 윤태오다, 바보야.’

눈앞의 태오도 못 알아보고 시비를 걸기 바쁜 (구) 남자 친구를 향해 마음속으로만 빈정거리면서, 태오는 냉장고를 향해 뻗은 유채의 손을 탁 쳐 냈다.

“뭘 할 줄 아는데?”

“재료 보고 인터넷 레시피 찾아서 하면 돼.”

“또 태워 먹으려고?”

“그러는 너는 뭘 잘하냐? 면발 다 퍼진 파스타?”

“야, 이건 네가 은형이 잃어버려서 찾아다니느라 내가 깜빡…… 하, 됐다.”

반박하다 말고 제가 한심해져서 이마를 짚었다. 자꾸 수준이 유치해지는 것 같았다. 이럴 시간에 뭐라도 찾아보고 만드는 게 나았다. 은형이의 표정이 실시간으로 울상이 되고 있었다.

“형아, 그럼 우리 굶어?”

“아냐, 은형아. 잠깐만. 빨리할 수 있는 거로 해 볼게.”

“배고프다아…….”

“응, 미안. 십 분만 기다려. 착하지?”

“우웅.”

정 안 되면 케빈네 팀으로 도움이라도 청할 각오로 냉장고 안쪽까지 샅샅이 뒤졌다. 다행히 손끝에 걸리는 게 있었다.

“가래떡이네. 고추장이랑 파도 있고. 유채야, 찬장에 물엿이나 설탕 있나 봐.”

“어……. 있어.”

은형이도 보채는 데다, 저도 슬슬 배가 고파졌는지 유채가 고분고분했다. 뭐라도 빨리 먹고 싶어진 눈치였다. 그러나 태오도 심사가 단단히 틀어진 채였다. 유채가 모처럼 얌전한데도, 한눈 안 팔고 제대로 고기를 구웠으면 벌써 한우로 가득 채운 배를 두드리면서 야외 의자에 늘어져 있었을 거라는 생각만 들면서 머리에 열이 올랐다.

그래서 말투가 저도 모르게 딱딱해졌다.

“다 되면 부를 테니까 나가서 은형이 데리고 놀고 있어. 간단한 거라 금방 해.”

“뭐 하려고?”

“가래떡이랑 고추장 갖고 뭐 하겠어? 떡볶이밖에 더 있냐?”

“……떡볶이?”

계속 붙어 있으면 또 화내게 될 것 같아서 쫓아내려고 했는데 유채가 선뜻 나가지 않았다. 단정한 미간이 슬쩍 찌푸려졌다.

“떡볶이? 갑자기?”

혼잣말하듯 입 안으로 중얼거리는 하얀 얼굴에 알 수 없는 표정이 떠올랐다. 멍한 것 같기도 했고, 다소 혼란스러워 보이기도 했다.

“우와, 떡볶이! 떡볶이!”

그때 은형이 손을 번쩍 들면서 환호했다. 한우를 구워 준다고 했을 때보다 더 열렬했다. 여섯 살이면 강원도 특산 한우보다 떡볶이가 더 좋을 나이다. 순진하고 귀여운 반응에, 유채 때문에 날이 섰던 신경이 스르륵 풀렸다. 태오가 한결 누그러진 목소리로 은형을 달랬다.

“응, 떡볶이 해 줄게. 은형이 기다릴 수 있지?”

“응! 기다릴래! 떡볶이 해 줘!”

“그럼 유채 형 데리고 나가서 놀고 있어. 다 되면 부를게.”

“어! 은형이가 유채 형아랑 잘 놀아 줄게!”

“그래, 착하다.”

처음부터 은형이에게 당부하는 편이 빠를 뻔했다. 똑같은 얘기를 했는데도 심통만 부리던 유채보다 은형 쪽의 반응이 야무졌다. 떡볶이가 욕심났는지 유채와 놀고 싶은 마음이 컸는지는 모르겠지만, 은형은 재빠르게 유채의 손을 답삭 잡았다. 부엌에서 버티고 섰던 유채가 은형에게 질질 끌려 나갔다. 태오는 그제야 한숨을 돌리면서 조리대로 눈길을 돌렸다.

떡볶이를 만들어 보는 것은 정말 오랜만이다. 마지막으로 했던 게 사 년도 훌쩍 더 전이었다.

***

오랜만이라서 허둥대긴 했지만, 태오는 어렵지 않게 떡볶이를 완성했다. 다 되었다고 은형과 유채를 부르려던 차에 간이 식탁과 의자가 바깥에 있다는 것이 기억났다. 태오는 따끈한 김이 올라오는 프라이팬을 통째로 들고 캠핑카 밖으로 향했다.

“얘들아, 점심 먹…….”

그리고 우뚝 멈춰 섰다.

유채가 은형이를 어깨에 들쳐 메고 허공에서 빙글 돌리고 있었다. 은형은 비행을 하는 자세로, 주먹 쥔 양손을 앞으로 뻗은 채 자지러지는 소리를 내면서 까르르거렸다.

“우와아아! 형아, 더! 더 높게 해 줘! 위로 던져 줘!”

“진짜로 던진다? 날 수 있지?”

“어! 은형이 날 거야!”

“하나, 둘…….”

유채가 은형이를 허공에 던지려고 했다.

태오는 기겁해서 유채의 뒤통수를 프라이팬으로 후려칠 뻔했다. 안에 든 게 마지막 남은 식량이 아니었다면 정말로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가까스로 이성의 끈을 잡고, 팔을 휘두르는 대신 비명을 질렀다.

“한유채, 당장 안 그만둬? 그러다 다쳐!”

유채가 동작을 뚝 멈췄다.

은형이를 던지려다가 만 유채가 의아한 듯 태오를 돌아보았다. 땀 한 방울 흘리지 않은 채 청량한 얼굴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하는 게 정말 뻔뻔해 보였다. 그의 옆구리에 낀 은형이는 통통한 뺨이 발긋하게 달아올라서 할딱거리면서도, 팔다리를 바둥거리며 계속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은형이 날 거야! 빨리! 빨리!”

“한은형. 빨리 안 내려와?”

“싫어! 더 할래! 더 놀 거야!”

“한유채. 당장 은형이 내려놔.”

“왜? 애가 좋아하는데…….”

“빨리!”

저도 모르게 언성이 높아졌다. 유채의 어깨가 움찔하더니, 짙은 눈썹 끄트머리가 슬쩍 아래로 처졌다. 유채가 태오를 쳐다보지 못하고 눈만 굴렸다. 태오는 두통이 올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애가 해 달란다고 다 해 줘?”

“별거 안 했는데.”

“던지려고 했잖아. 그렇게 던졌다가 못 받으면 어떡할 건데? 큰일 난다고!”

“받을 수 있어.”

“다시는 하지 마.”

“정말로 받을 수 있…….”

“하지 말라고.”

“…….”

“하지 마.”

“……응.”

은형이가 커다란 눈을 도르르 굴리다가 기어드는 목소리로 물었다.

“은형이 못 날아?”

“어. 못 날아. 또 날려고 하면 떡볶이 안 줄 거야.”

“힝…….”

공중에서 대롱거리던 짧고 통통한 팔다리가 기운 없이 축 처졌다. 유채가 태오의 눈치를 보면서 은형이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손 씻고 와서 떡볶이나 먹어.”

저절로 목소리가 차가워졌다. 유채와 함께 애를 돌보는 게 아니라 어린애 둘을 감시하는 기분이었다. 은형과 유채가 주춤거리면서 움직이는데, 끈이 다 풀려 버린 은형의 운동화가 눈에 띄었다. 저러다가 끈을 밟고 넘어져서 다칠 것 같았다.

태오는 한숨을 쉬면서 은형을 손짓해 불렀다.

“이리 와 봐. 운동화 끈은 왜 또 이렇게 다 풀렸어?”

“우웅, 놀다가…….”

“뭘 어쩌고 논 거야? 온몸이 흙투성이네. 유채랑 또 뭐 했는데?”

“아니야아. 유채 형아는 얌전하게 놀았어. 은형이가 혼자 한 거야!”

“너 혼자 흙에서 뒹굴었다고?”

“아이……. 진짠데…….”

태오는 은형이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서 아이의 통통한 뺨을 살짝 꼬집었다. 끈을 적당히 매 주려던 차에,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매듭 모양을 배워 둔 것이 생각났다. 기억을 더듬어서 묶어 보았더니 예쁜 꽃 모양이 되었다. 은형이가 감탄하면서 손뼉을 쳤다.

“우와, 꽃이다!”

“예쁘지?”

“응! 유채 형아, 이거 봐. 은형이 운동화에 꽃이 폈어!”

기껏 예쁘게 묶어 주었더니 유채에게 냉큼 달려가 버린다. 유채의 허리에 매달리는 은형이의 뒤통수를 바라보면서 태오는 고개를 흔들었다. 어릴수록 더 예쁜 얼굴을 좋아한다더니 정말로 그랬다. 태오는 배나 채워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식탁에 식기를 세팅하기 시작했다.

“이게 뭐야?”

그때, 등 뒤에서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려 보았더니 유채가 자신을 묵묵히 응시하고 있었다. 옅은 색이었던 눈동자에 새카만 그림자가 졌다. 잘 놀다가 또 왜 저러나 싶어서 태오는 당혹스러웠다.

“뭐가 뭐야?”

“운동화 끈. 왜 저렇게 묶었어?”

“뭐? 이건 또 무슨 소리야.”

이제는 시비 거는 방법도 가지가지였다. 태오는 유채를 언제까지 이렇게 봐줘야 할지 고민이 됐다. 열여섯 살이었던 유채를 만나서 나름대로 잘 키웠다고 생각했는데 왜 이렇게 제멋대로가 됐는지 모를 일이었다. 정말 태오로 인해 충격받아서 변한 건지, 원래 이랬는데 태오 앞에서만 내숭을 떨었던 건지……. 태오는 유채와 재회한 이후 끊이지 않고 떠올랐던 의문을 다시 한번 곱씹어 보았다.

“뭘 왜 저렇게 묶어. 운동화 끈도 네 허락 받고 묶어야 해? 애가 좋아하니까 됐잖아.”

피곤해서인지 대꾸가 까칠하게 나왔다. 말을 뱉어 버리고 나서야 카메라 앞이라는 게 떠올랐다. 태오는 조금 난처한 얼굴로 카메라 쪽을 흘긋거렸다. 그러고 보니 촬영하는 내내 유채와 싸우기만 했다. 우주야 워낙 밉상으로 알려져 있으니 더 떨어질 인기도 없다지만 유채의 이미지가 걱정이 됐다.

“내 말은, 그게 아니라…… Y튜브에서 배웠어. 저렇게 꽃 모양으로 묶어 주면 애기들이 좋아하더라고.”

태오는 더듬거리면서 수습을 시도했다. 그러나 태오의 노력이 보이지도 않는지, 유채는 여전히 미간을 구긴 채 버티고 서서 태오를 노려보았다. 긴 눈매 끝이 날카로웠다. 표정이 무섭게 굳어 있었다.

“너.”

모양 좋은 입술이 할 말을 담은 듯 달싹거렸다. 평소처럼 시비를 걸어오는 줄 알았는데 느낌이 달랐다. 반응이 심상치 않은 것 같아서 태오도 의아해졌다.

“왜 그러는데?”

“대체…….”

유채가 뭔가 말하려고 했을 때였다. 어느 틈에 저 혼자 벌써 간이 의자에 올라앉은 은형이가 작은 손바닥으로 식탁을 탕탕 쳤다.

“형아들! 떡볶이 안 먹을 거야? 은형이 굶어 죽겠다!”

안타깝게도, 태오가 공들여 만든 떡볶이는 인기가 없었다. 은형이가 신난 얼굴로 떡 하나를 찍어서 입 안에 넣고 나서야 태오는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우아아아앙! 이게 뭐야! 매워! 매워!”

“아…….”

태오는 어쩔 줄 몰라 하면서 허둥지둥 은형에게 물을 먹였다. 여섯 살짜리가 먹기에는 지나치게 맵고 달게 되어서 자극적이었을 게 뻔했다. 요리하기 시작할 때는 분명히 은형이를 의식해서 안 맵게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급하게 손을 놀리다 보니 오랜 습관대로 유채의 입맛에 맞춰 버렸다.

이게 다 시판용 떡볶이에서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엄청나게 맵고 단 떡볶이 맛을 추구하는 유채 탓이다.

“은형아, 물에 헹궈 줄게. 미안. 미안해, 응?”

“히잉. 몰라! 떡볶이 해 준댔으면서. 형아 미워! 이게 뭐야아. 우앙!”

물에 헹구어 낸 떡볶이가 맛있을 리 없었다. 아무래도 은형이는 맵지 않게 만든 궁중 떡볶이 스타일을 기대했는지, 잔뜩 실망한 얼굴로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태오는 난처한 얼굴로 유채에게 눈짓을 했다. 은형이가 유채라면 좋아 죽으니 어떻게든 달래 보라는 거였다.

그러나 유채는 뜻밖에도 조용했다.

떡볶이도 몇 입 먹다가 만 채였다. 말간 뺨에 핏기가 없었다. 긴 눈매 아래로 속눈썹이 만들어 내는 그림자가 그물처럼 흔들렸다. 재회한 이후 가끔 마주했던, 인형처럼 표정이 사라진 얼굴이었다.

괜히 걱정스러운 마음이 불쑥 솟았다.

“유채야?”

유채의 팔 위에 손을 얹으면서 가만히 불렀다. 그제야 유채가 천천히 눈을 들었다.

연갈색 눈동자가 투명했다. 언제나처럼 별다른 감정이 실리지 않은 눈빛이었다. 그러나 어쩐지 그 눈가가 젖어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럴 이유가 아무것도 없는데도 그랬다.

태오는 결국 아무 말도 할 수 없어서, 가만히 손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

어떻게든 점심을 먹어 보려는 마지막 시도는 그렇게 불발로 끝났다. 결국 태오는 서럽게 울어 대는 은형이를 데리고 케빈네 텐트에 찾아가 신세를 졌다.

그쪽 텐트는 어린애를 두 명이나 데리고 있었다. 은형이 하나로도 복잡한데 둘이나 되었으니 정신이 하나도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이신은 아무런 문제 없이 식사를 마치고 정리까지 해치웠다면서 남은 재료들로 금세 새 음식을 만들어 주었다. 태오는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이신이 자리를 비우기가 무섭게 라윤과 케빈이 태오의 양쪽으로 달라붙었다. 일러바칠 일이 한가득한 듯, 이신이 무섭게 다그쳤다면서 하소연을 늘어놓았다.

“이게 무슨 캠프냐? 재미 하나도 없다! 군대 온 거 같다!”

“맞습니다. 훈련소 들어온 기분입니다.”

“군대는 무슨. 둘 다 군대 구경도 안 해 봤으면서 웬 약해 빠진 소리야?”

육군 병장으로 만기 전역한 태오가 혀를 끌끌 찼다. ‘하여간 요즘 애들은…….’ 하는 소리가 혀끝까지 튀어나왔다.

“형도 군대 아직 안 갔으면서 무슨 예비역 같은 소리를 합니까?”

“맞다! 우주도 군대 가야 된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얘기가 튀어나왔다. 삼겹살을 잘게 잘라서 은형의 접시에 덜어 주던 태오의 움직임이 그대로 굳었다. 오늘따라 이상한 말이 많이 들렸다. 한우를 모두 태웠어요, 보다 심한 말을 들은 기분에, 태오는 삐걱삐걱 고개를 들었다.

“지금 뭐라고?”

“응? 뭐가 뭐냐?”

“방금 군대…… 뭐라고 하지 않았어?”

“군대 가야 한다는 거요? 형 면제입니까? 아닐 텐데.”

“어, 면제 아니다! 팬들 사이에 우주 입대 기원 모임도 있댔다!”

“……뭐?”

태오는 손에 들고 있던 집게와 가위를 툭 떨어뜨렸다. 은형이 놀란 얼굴로 삐악거렸지만 들리지 않았다. 피가 식는 기분이었다.

뭐? 나 군대 또 가야 돼?

***

생각지도 못했던 통보를 받은 태오는 완전히 풀이 죽었다. 우주의 몸으로 살아가게 된 이상 당연히 입대를 다시 해야 했다. 이 문제를 이제껏 깨닫지 못했다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태오는 마음을 다잡으려고 애썼다. 건강한 몸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되었으니 그 정도 대가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러나 생각할수록 아무것도 아니지 않았다……. 자꾸 눈물이 핑 돌았다.

태오가 시무룩해진 것을 눈치챈 은형이 손을 꼭 잡아 왔다.

“형아, 슬퍼?”

은형이 갸웃거리면서 물었다. 나름대로 위로를 해 주려고 애쓰는 얼굴이 귀여웠다. 덕분에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좋게 생각해 보면, 어차피 유채도 군대에 가야 할 테니 그때 맞춰서 동반 입대를 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운이 좋으면 같은 부대에 배치될 수도 있었다. 유채는 질색하겠지만.

태오는 표정을 펴고 고개를 저었다.

“아냐. 괜찮아. 은형이 점심 맛있게 먹었어?”

“응! 이신이 형아가 해 준 떡볶이 맛있었어!”

“으응…….”

동글동글한 떡으로 맵지 않고 적당히 달게 만든 간장 떡볶이가 아이의 입맛에 맞았던 모양이다. 태오는 약간 머쓱해졌다.

태오가 만든 떡볶이는 은형을 울려 버렸고, 유채는 뭐가 마음에 안 들었는지 몇 입 먹다 말고 울적해지더니 갑자기 캠핑카 안에 틀어박혔다. 이신에게 가서 뭔가 얻어먹자고 해도 요지부동이어서 결국 은형이만 데리고 둘이서 올 수밖에 없었다. 제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었다. 방송이 어떻게 나갈지가 걱정이었다.

“유채도 배고플 텐데. 이건 좀 먹으려나 모르겠다.”

이신이 챙겨 준 음식을 손에 든 태오가 혼잣말하듯 중얼거렸다. 은형이 기운차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응, 은형이가 챙겨 줄게!”

“응? 은형이가?”

“응! 이거 먹어야 내가 놀아 준다고 하면 먹을 거야!”

“뭐? 왜?”

“유채 형아는 나랑 노는 거 좋아하니까.”

당연하다는 듯 대꾸하는 은형이의 음성이 자신만만했다. 가만히 듣고 있었더니 착각이 대단했다. ‘유채 형아’도 과연 그렇게 생각할까?

“유채 형아한테 물어는 봤어?”

“그런 걸 뭐 물어봐야 아나?”

콩알만 한 게 혼자서 자신감만 넘쳤다. 할 말이 없어서 입을 다물었더니, 태오가 수긍했다고 생각했는지 은형이 신난 목소리로 덧붙였다.

“형아랑 둘만 놀면 심심하잖아. 나랑 노는 게 유채 형아도 훨씬 좋을걸?”

“나랑 놀면 심심하다고 누가 그래?”

“그럼 아니야?”

“아니거든? 유채도 너보다 나랑 있는 걸 더 좋아해.”

“거짓말! 유채 형아가 은형이 얼마나 좋아하는데!”

“너보다 날 더 좋아한다니까! 유채가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데.

태오는 말하다 말고 퍼뜩 정신이 들어서 입을 다물고 말았다.

어린애를 상대로 이기려고 들다가 발끈해서 언성을 높였다. 발끈할 일이기는커녕, 진지하게 상대할 필요도 없는 대화였을 뿐만 아니라 사실도 아니었다. 유채가 태오를 사랑했던 것은 전생의 일이다. 농담처럼 던지는 얘기가 아니라 사전적 의미 그대로였다.

여섯 살짜리와 같은 수준이 된 기분에 귀 끝이 달아올랐다. 그러나 태오가 한발 물러섰는데도, 은형이는 여전히 분이 풀리지 않은 얼굴로 쌔근거렸다.

“아니야! 나를 더 좋아한단 말이야!”

“그래. 알았어.”

“진짜야? 진짜 알았어?”

“알았다니까. 유채는 진짜로 나보다 널 더 좋아해.”

그럴 리가 있겠냐. 태오는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그래도 수긍하는 척 져 주었더니 기분이 좋아진 모양이다. 은형이는 신난 얼굴로 연신 종알거렸다.

“그러니까 왜 거짓말해!”

“거짓말이 아니라……. 됐다. 네 말이 다 맞아.”

“맞아.”

“근데 유채가 왜 그렇게 좋아? 얼마나 봤다고.”

잘 놀아 주는 게 그렇게 좋았나 보다. 여섯 살짜리라도 꽤 묵직한 은형이를 번쩍 들어 올려서 빙그르르 돌려 대던 유채가 떠올랐다. 이해가 가긴 했지만, 처음에는 태오에게도 관심을 보였으면서 냉큼 유채에게 흥미가 옮겨 간 것이 조금 섭섭했다.

하지만 은형이는 전혀 다른 이유를 들었다.

“유채 형아 너무 예뻐.”

“뭐?”

“너어무 예뻐. 은형이는 유채 형아하고 결혼할 거야.”

“…….”

은형이는 두 손으로 제 볼을 감싸면서 수줍은 표정을 했다. 찹쌀떡처럼 토실토실한 뺨이 발그레했다. 태오는 어이가 없어서, 유채가 너랑 결혼을 왜 해 주느냐고 면박을 줄 뻔했다가 혀를 깨물어서 겨우 참았다. 요즘 애들의 머릿속은 정말로 따라갈 수 없었다.

“누가 누구랑 결혼한다고?”

뒤에서 불쑥 목소리가 들렸다. 은형이 반색하면서 돌아보았다.

“유채 형아!”

청바지 주머니에 손을 꽂아 넣은 유채가 버티고 서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새 기운을 차렸는지, 태오를 바라보는 표정이 아주 못마땅했다.

“형아, 형아!”

폴짝거리면서 유채에게 달려간 은형이 그의 허리를 스스럼없이 끌어안고 뺨을 바르작댔다. 유채는 아이에게 잡힌 채로 동그란 뒤통수를 쓰다듬었다.

“형아, 은형이랑 결혼해. 응?”

“안 돼.”

이미 여러 번 청혼했다가 차인 듯, 단박에 거절이 돌아왔지만 은형이는 상심한 얼굴조차 하지 않았다.

다행히 유채는 이신의 텐트에서 가져온 음식을 별말 없이 받았다. 아까보다 기운이 없어 보여서 걱정됐지만, 깨끗이 먹어 치우는 것을 보니 기분이 나아진 듯했다. 다만 그때부터는 어딘지 태오를 피하는 기색이었고 말수도 부쩍 줄었다.

태오는 유채의 태도가 마음에 걸렸지만, 오후 내내 은형이를 챙기느라 잊고 말았다. 무엇보다 계곡에서 여섯 살짜리를 데리고 물놀이를 했더니 힘에 부쳤다. 그러나 은형이를 함께 돌보았던 유채는 지친 티도 없이 줄곧 말끔한 얼굴이었다. 태오는 조금 약이 올랐다.

“가기 싫어어…….”

사위가 어둑해질 무렵, 은형이는 부모님에게 돌아갔다. 떠나는 순간까지도 미련을 못 버리고 유채의 다리에 매달려서 칭얼거렸다. 유채와 떨어지기 싫은 기색이 얼굴에 가득했다.

“형아도 같이 가면 안 돼?”

“안 돼.”

“히잉.”

결국 유채가 아이를 번쩍 들어 올려 품에 안았다. 은형이는 반색하면서 그의 목덜미를 끌어안았다. 통통하고 짧은 다리가 유채의 허리춤에서 바둥거렸다.

“안 돼?”

다시 한번 묻는 목소리에 유채가 짧게 웃었다.

“그럼 나중에 우주 형아랑 같이 은형이 보러 올 거야?”

포기하지 않은 은형이가 재차 물었다. 이번 대답은 태오도 궁금했다. 태오는 은형이를 말리던 손길을 멈추고 유채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조각처럼 단정한 유채의 얼굴에 슬쩍 난감한 표정이 스쳤다.

“……나중에.”

한참 뜸 들인 끝에 뱉어 낸 대답이 놀라웠다. 미쳤냐, 쟤랑 왜 같이 가냐, 가도 혼자 간다, 하는 대꾸를 생각하고 있었던 태오는, 그래도 카메라를 제법 의식한 대답을 한 유채를 마음속으로만 기특해했다. 입 밖에 내서 칭찬했다가는 무슨 대답이 돌아올지 몰랐다.

“히잉, 그게 뭐야. 나중에가 언제야?”

그래도 은형이는 유채의 대꾸가 만족스럽지 않았는지, 줄곧 치대면서 울상을 했다. 유채가 아이를 바닥에 내려놓고 엉덩이를 토닥거렸다.

“부모님 기다리신다. 나중에 또 봐. 보러 갈게.”

“진짜지? 은형이랑 약속했어…….”

“그래, 약속.”

은형이는 새끼손가락을 걸고 도장까지 찍고 나서야 걸음을 옮겼다. 아이는 눈썹을 팔자로 내린 우울한 얼굴로, 작은 손을 흔들흔들하면서 멀어져 갔다.

***

저녁은 케빈네 텐트에서 다 함께 먹었다. 케빈이 밖에 나와서 숯불을 지피고 있었다. 태오는 저녁 메뉴로 한우가 나오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한우는 점심때 이미 배 터지게 다 먹어 치웠다면서 케빈은 소시지나 구웠다.

유채가 줄곧 조용한 게 여전히 신경 쓰였다. 그러나 다른 멤버들이 워낙 요란했기 때문에 오디오가 비지는 않았다. 태오는 부대찌개와 계란말이, 베이컨, 소시지로 배를 채운 뒤 유채와 함께 다시 캠핑카로 향했다. 이제 잠자리에 드는 모습만 찍고 밤에는 카메라를 끈다고 들었다. 긴 촬영도 거의 막바지였다.

“어? 비 오네.”

저녁 먹는 내내 하늘이 흐리더니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져 내렸다. 은형이를 데리고 놀 때는 그래도 날이 좋아 다행이었다고 생각하면서 태오는 발길을 서둘렀다. 여전히 입술을 꾹 다문 유채가 뒤에서 천천히 따라오는 소리가 났다.

이래도 괜찮을까, 싶을 정도의 침묵 속에서 캠핑카에 도착했다. 유채가 줄곧 무게를 잡았기 때문에 묻지도 않고 태오가 먼저 씻었다. 말을 붙여 볼까 하다가 시비조로 욕이 돌아올까 봐 그만두었다. 둘이었다면 개의치 않았겠지만, 카메라 앞에서 자꾸 안 좋은 모습을 보여서 유채의 이미지를 깎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이내 지옥의 주둥아리를 운운하던 팬들의 댓글이 떠올라서 태오는 조금 시무룩해졌다.

‘팬들도 다 알고 있었나 보네…….’

유채의 천사 같은 껍데기에 속았던 건 세상에 태오 하나였던 것 같다.

샤워를 마치고 나와 보니 유채가 멍한 얼굴로 소파에 앉아 있었다. 아까부터 정신을 어디에 빼놓고 있는지 모를 일이었다. 유채의 눈앞에 손을 흔들흔들해 보였더니 그제야 눈을 들었다.

“안 자? 씻고 와야지. 먼지에 땀에, 비까지 맞아서 난리 났다.”

무슨 상관이냐든지, 알아서 할 테니 닥치라는 대답을 각오하고 말을 건 것이 무색하게도 유채는 대꾸가 없었다. 물끄러미 태오를 바라보는 눈빛에 힘이 하나도 없었다. 그리고 이내 천천히 일어나서 터벅터벅 화장실로 향했다. 어깨가 축 처진 뒷모습이 절인 배추처럼 시들시들했다. 태오는 기분이 점점 더 언짢아졌다.

‘대체 또 왜 저래?’

비위 맞춰 주기가 사춘기 소년보다 더 힘들었다.

한동안 끊겼던 대화가 다시 시작된 것은 유채가 씻고 나온 후였다.

뜨거운 김이 새어 나오는 욕실을 등진 유채가 머리에 남은 물기를 한 손으로 툭툭 털면서 나왔다. 무감한 눈길이 침대 등받이에 기대앉아 있는 태오에게 닿았다가 못 볼 것을 본 것처럼 금세 멀어졌다.

‘그래, 뭐……. 언제까지 버티나 보자.’

그즈음에는 괘씸한 마음마저 들기 시작한 태오는 눈을 가늘게 뜨고 유채를 지켜보았다. 어차피 잠시 후면 유채가 입을 안 열고는 못 버틸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편한 트레이닝팬츠 위로 흰색 반팔 티 하나만 걸친 채, 넓지도 않은 캠핑카 안을 돌아다니던 유채가 갑자기 우뚝 멈춰 섰다. 그리고 고개가 천천히 태오를 향했다.

시선이 태오를 잠깐 스치고, 태오가 덮은 이불을 응시했다가, 침대 위를 바라보면서 이리저리 흔들린 끝에 다급하게 눈이 커졌다. 모르고 있었던 사실을 맞닥뜨린 모양새였다. 드디어 눈치를 챘나 보다. 태오는 입꼬리를 말아 올리면서 씩 웃었다.

“이리 와, 유채야. 이제 자야지.”

유채의 눈빛이 희미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태오가 나긋하게 덧붙였다.

“여기 침대 하나밖에 없어. 이불도 하나니까 같이 덮고 자자.”

유채가 입술을 벙긋거리면서 소리도 없이 욕했다.

씨바아아알!

유채는 기운을 완전히 회복했다. 눈빛이 생기 있게 살아나다 못해 형형하게 번뜩일 정도였다. 캠핑카 곳곳에 아직 카메라가 켜져 있는 게 분해서 견딜 수 없는 듯한 표정이었다.

“나 혼자 잘 거야…….”

돌았냐? 나오지 못한 욕이 유채의 도톰한 입술 근처에서 흩어졌다. 태오는 놀라는 척하면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럼 소파에서 자게? 이불도 없는데.”

유채의 잘생긴 눈썹이 팍 구겨졌다. 유채가 이를 악물고 태오를 노려보았다.

“왜 네가 당연하게 침대 차지하냐? 소파에서 자.”

“응? 싫은데? 내가 왜 소파에서 자?”

“그럼 어쩌라고, 씨…….”

발.

태오는 차마 뱉어 내지 못한 유채의 욕을 입 모양으로만 완성해 주면서 싱긋 웃었다. 유채의 눈동자가 불안하게 흔들렸다.

“난 너랑 같이 자도 상관없어. 어차피 침대도 더블 사이즈고 이불도 큰데, 뭐.”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수작…… 소리야.”

“왜 말이 안 돼. 멤버인데 그럴 수도 있지.”

“그래서 뭐, 같이 자기라도 하자고?”

“그러라고 더블 침대 하나 있는 거 아니야?”

“너 진짜 돌…… 내가 너랑 미쳤…… 아니…….”

“유채야, 말을 해. 왜 자꾸 얘길 하다가 말아?”

유채의 뺨이 새하얘졌다가, 발갛게 달아올랐다가, 창백하게 질려 버렸다. 태오는 상냥한 얼굴로 제 옆자리를 손으로 탕탕 쳤다.

“오늘 비 와서 날도 쌀쌀한데 고집부리지 말고 빨리 들어와.”

싫으면 소파에서 떨면서 혼자 자든가.

태오는 캠핑카 안의 불을 모두 껐다. 카메라도 모두 전원을 내렸다. 빗소리가 점점 더 요란해졌다. 기온이 급격히 떨어졌는지, 침대로 올라가 이불 속에 쏙 파묻혔는데도 몸이 으슬으슬 추웠다.

유채는 긴 다리를 구깃구깃하게 접은 채 일인용 간이 소파 위에 구겨져 있었다. 여름옷만 몇 개 챙겨 왔기 때문에 덮을 만한 겉옷도 없었다. 갑자기 날씨가 싸늘해지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맨살갗이 드러난 팔다리가 추워 보여서 태오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어린애처럼 구는 게 얄미워서 놀리긴 했지만 감기라도 걸릴까 봐 걱정이 됐다. 그러나 챙겨 줘도 유채는 화만 낼 게 뻔했다.

신경 쓰지 말아야지, 생각하면서도 입이 제멋대로 움직였다.

“너 진짜 그러고 잘 거야? 안 건드릴 테니까 침대로 와.”

“말 가려서 안 하냐? 건드리긴 뭘 건드려? 토 나오게, 진짜.”

“말을 가려야 하는 게 누구 같냐, 지금…….”

태오는 한숨을 쉬면서 나지막하게 대꾸했다. 카메라가 꺼지기가 무섭게 유채의 말투가 험해졌다. 그래도 춥긴 추운지, 어둠 속에서도 유채의 풍성한 속눈썹이 파드득 떨리는 모습이 보였다. 태오는 제가 덮은 푹신한 이불을 만지작거렸다. 두 사람이 함께 덮으라고 내준 것이라서 사이즈가 넉넉하게 컸다. 그냥 하룻밤만 눈 딱 감고 옆에서 자면 될 텐데 고집을 부려 대는 게 답답하기만 했다.

“네 마음대로 해. 아프면 네 손해지.”

“저주하냐? 하루 대충 잔다고 안 아프니까 신경 꺼.”

재수 없다고 투덜거리는 소리가 어둠을 뚫고 들렸다. 태오는 눈을 질끈 감고 등을 돌렸다. 안 보이기라도 하면 속이 편할 것 같았다.

유채는 피곤했는지 금세 잠이 들었다. 고른 숨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불면증이 심하다고 멤버들과 팬들이 그토록 걱정했는데 태오가 보기엔 매번 잘만 자는 것 같았다. 아니면 태오가 너무 꼴 보기 싫은 나머지, 태오 옆에서만 잘 자는 것일 수도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기분이 또 언짢았다.

정작 태오는 잠이 오지 않았다. 유채와 한 공간에 있는데 같이 잘 수 없는 게 속상했고, 유채가 저 꼴로 구겨져 있는 것도 싫었다. 그냥 제가 소파로 갈 걸 그랬다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다. 유채를 약 올리는 데 너무 심취했던 게 후회됐다.

예전 생에서는 이런 일이 없었다. 유채는 언제나 사랑스러웠고 태오는 늘 다정했는데, 요즘은 누가 더 유치한지 가늠하기도 어려운 수준이었다. 유채만 나무랄 게 아니다. 그 시절의 유채와 태오는 대체 누구였는지 모를 지경이었다.

‘하루 종일 밥도 제대로 안 먹었고 물놀이까지 했는데 잠이라도 푹 자야지. 소파에서 저게 뭐야.’

결국 불편한 마음을 못 이기고 고개를 길게 빼서 바라보았더니 유채가 몸을 뒤척이고 있었다. 소파 팔걸이에 걸쳤던 긴 다리 한쪽이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반바지 아래로 흰 살결이 드러났다. 이불이라도 가져가서 덮어 줄까. 태오가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검은 유리창 너머에서 번개가 번뜩였다. 이내 귀 고막을 찢을 듯한 천둥소리가 사방을 뒤흔들었다. 폭우가 요란하게 쏟아져 내렸다. 태오의 뺨에서 핏기가 가셨다.

뭉쳐진 소음이 귓가에서 웅웅거렸다. 목 안쪽이 꽉 막혀 드는 기분이었다. 저도 모르게 몸이 굳었다.

***

유채는 꿈을 꾸었다. 오래전 태오가 살아 있던 시절이 눈앞에 펼쳐졌다.

자주 태오의 꿈을 꾸었지만 밝게 웃는 모습의 태오를 만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전의 꿈에서 태오는 언제나 외롭게 죽어 갔고, 유채는 그 모습을 반복해서 끊임없이 지켜봐야만 했다. 눈물로 뺨이 흠뻑 젖은 채 깨어난 뒤에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 자신에 대한 구역감이 찾아왔다. 그런 날이면 유채는 그대로 고꾸라져서, 시큼한 위액이 나올 때까지 울면서 토했다.

그런데 오늘은 달랐다. 태오는 열여섯 살의 유채에게 한 손이 잡힌 채 난처한 듯 눈썹을 늘어뜨렸다. 귀 끝과 목덜미가 붉어진 모습에 유채는 기분이 들떴다.

유채는 태오에게 잘 보이고 싶었다. 연습생 친구들 앞에서는 숨 쉬듯 욕설을 뱉어 내던 입버릇도 싹 고쳤다. 어린애라고만 생각할까 봐 언제나 의젓하고 상냥하려고 애썼다. 노력은 성과가 있었고 태오는 유채를 좋아해 줬다.

그래도 가끔은 울적해졌다. 태오가 자신의 본모습을 알게 되면 실망할 것 같아서였다.

유채는 제가 열 몇 살짜리치고도 유치하고 거친 남자애에 불과하다는 걸 잘 알았다. 태오는 유채가 뭘 해도 쉽게 잘 해내는 천재인 줄 알았지만 그것도 사실과 달랐다. 유채는 태오와 어울리는 사람이 되기 위해 죽도록 노력했을 뿐이다. 그리고 그런 일들을 숨기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했다.

가끔은, 태오에게 뭔가를 사 주고 싶어서 안달이 날 때가 있었다. 그러나 유채가 뭘 해 줘도 태오에겐 별게 아닐 터였다. 그래서 유채는 얼마 안 되는 용돈을 아껴서 사 두었던 몇 가지 선물을 끝내 태오에게 주지 못했다.

한 송이씩 샀던 빨간 장미들은 시들어서 버렸다. 언젠가는 커플링을 맞추고 싶었는데, 태오의 긴 손가락에 잘 어울릴 것 같았던 은색 반지는 유채가 사기에 많이 비쌌다. 배우와 아이돌 연습생 신분이었으니 사 준다 해도 끼고 다니지는 못할 것이었다. 유채는 스스로에게 그런 핑계를 대면서 쇼윈도에 진열된 반지를 구경만 했다.

언젠가 그 반지가 팔렸는지 진열장에서 사라졌을 때는 조금 울었다. 반지 때문에 운 것만은 아니고, 그날 발표된 데뷔조에서 또다시 밀려나서 그랬다.

그래도 그 무렵의 태오는 언제나 웃고 있었다. 봄볕처럼 다정했고 늘 여유로웠다. 유채는 꿈속에서도 그게 꿈이라는 걸 알았지만 행복했다. 태오는 유채가 좋아하는 엄청나게 맵고 단 떡볶이를 해 주었고, 유채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서 꽃 모양으로 운동화 끈을 매 주었다.

“Y튜브에서 보고 배웠어.”

듣기 좋은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유채는 긴 보조개가 움푹 팬 태오의 웃는 얼굴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영원히 깨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장면은 금세 바뀌었다. 유채는 태오가 사라졌다는 것을 알았다. 그가 혼자서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직후였다. 변호사는 유채 앞으로 증여된 재산 목록이 나열된 서류를 내밀었다.

태오는 유산 일부를 장학 재단에 기부했고, 유채에게 아파트와 빌딩 세 채를 남겼다. 유채가 가진 돈을 모두 긁어모아도 증여세를 내기에 턱없이 부족했다. 아파트나 건물 일부를 매각하면 되었지만 유채는 태오가 남긴 그 어떤 것도 없앨 수 없었다. 언젠가 태오에게 돌려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비정상적인 생각이라는 건 유채도 알았다. 유채가 기다리는 ‘언젠가’는 영원히 오지 않을 것이었다.

그래도 유채는 대출을 받았고, 스케줄을 늘렸다. 시간이 정신없이 흘렀다.

“유채야.”

유채는 두 눈을 비볐다. 믿을 수가 없어서 그랬다. 다시 고개를 들었는데, 눈앞에서 태오가 싱긋 웃었다. 볼이 쏙 들어가는 긴 보조개가 예뻤다.

“유채야, 이거 음정 좀 잡아 줘.”

태오가 새 앨범의 타이틀곡 악보를 가리키면서 난처한 얼굴을 했다. 여전히 음치였다. 그래도 이번에는 제대로 가르쳐 줄 수 있어서 뿌듯했다. 진작 이렇게 알려 줄걸. 태오에게 싫은 소리를 도저히 못 해서, 음치인 채로 내버려 두었던 게 후회가 됐다.

“너 진짜 씨발, 말버릇 안 고칠래?”

제 버릇 개 못 주고 태오 앞에서 욕을 퍼부었더니 호통이 돌아왔다. 유채는 어깨를 움찔했다. 태오에게 미움받을까 봐 겁났다. 그런데 태오도 유치했다. 자신과 똑같이 구는 게 웃겼다. 유채가 보기엔 자신보다 더 유치한 것 같았다.

그래서 자꾸 더 못살게 굴고 싶었다. 유채는 괜히 태오를 쿡쿡 찔렀다. 그때마다 질색하면서 반응하는 모습에 생기가 넘쳤다.

태오가 살아 있었다. 웃고 화내고 인상을 썼다. 그럴 때마다 유채는 가슴속이 간질거려서 웃음이 터질 것 같았다. 꿈이 분명한데, 꿈이 아닌 것 같았다.

웃고 있는 태오를 향해 한 발짝 다가갔다. 꿈속의 유채가 입술을 달싹여 그를 불렀다.

“신우주.”

유채는 그대로 굳었다. 제 입에서 나온 이름을 믿을 수 없었다.

그게 누구지?

왜 태오 형을 그렇게 불렀어?

“왜 자꾸 태오 형을 따라 해. 이 짝퉁 새끼야.”

꿈속의 유채가 계속해서 말했다. 유채는 그제야 알았다.

이것은 행복한 꿈이 아니다. 또 다른 악몽이었다. 눈앞에서 두 눈을 길게 접고 활짝 웃고 있는 사람은 태오가 분명했는데 동시에 태오가 아니었다. 깨닫는 순간 발아래가 푹 꺼지는 기분이었다.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유채는 경악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태오 형이 아니라면, 넌 누구야?

그러자 그가 씩 웃었다.

내가 누구냐면…….

“아, 으으…….”

어디선가 들려오는 신음 소리에 유채는 눈을 퍼뜩 떴다. 그 순간 창밖에서 천둥이 쳤다.

“유채, 유채야…….”

누군가 유채를 부르면서 비명을 질렀다.

***

태오는 그 일이 기억으로서도 잊힌 지 오래인 과거일 뿐이라고 생각했었다. 창밖에서 벼락이 칠 때마다 숨이 멎는 기분을 느끼고, 공포에 질려서 꼼짝도 하지 못했던 것은 말 그대로 전생의 일이었다.

이제 심장은 건강했고, 얼굴과 다리에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태오는 새로운 삶에 착실히 적응해 나갔다. 트라우마가 남아 있을 이유는 없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순간 천둥 번개를 맞닥뜨렸을 때, 그 모든 상황이 아무 의미 없어졌다. 태오의 기억은 단번에 사 년 전의 과거로 돌아갔다. 얼굴 절반이 사라졌다. 다리에는 감각이 느껴지지 않았다. 커다란 아파트에 혼자 남아서, 눈물이 줄줄 흐르는 뺨을 닦을 생각도 하지 못한 채 숨만 꺽꺽거렸다.

번개가 거칠게 떨어질 때마다 눈앞이 번쩍거렸다. 이대로 천둥소리에 잡아먹힐 것 같았다.

“유채…… 유채야…….”

사 년 전의 언젠가처럼, 몇 번이나 입술을 달싹인 끝에 가까스로 유채를 불렀다. 갈라진 목소리가 버석거렸다. 그러나 태오는 알고 있었다. 유채는 오지 않을 것이다. 태오가 그를 쫓아내 버렸다.

“형, 정신 차려요. 나 여기 있어요, 형.”

아파트에서 혼자 지내는 동안 수없이 들었던 환청이 또다시 귓가에 울렸다. 다급하게 자신을 부르는 유채의 목소리였다. 태오는 또다시 눈물을 왈칵 쏟았다. 유채를 생각하면 언제나 가슴이 짓눌린 듯 아팠다. 지금보다 조금 더 어렸던 유채가 눈앞에 환영처럼 떠올랐다. 유채는 스물, 혹은 스물한 살 때의 모습이었다.

이제 막 몸을 겹치고 난 뒤였다. 가쁜 숨을 할딱이다가 가까스로 호흡이 잦아들었을 때, 태오의 침대에서 그를 맨가슴에 끌어안고 그때 유채가 그랬다.

-형이 내 첫사랑인 거 알아요?

도톰하고 붉은 입술이 달싹거리면서 그렇게 귀여운 소리를 했다. 열여섯에 태오를 만났으니 첫사랑이 아니라고 했으면 태오가 더 놀랄 일이었다. 그러나 긴 눈꼬리를 아래로 접어 내리면서 수줍은 듯 웃는 얼굴이 말갛고 해사해서 태오는 아무 대꾸도 하지 못했다. 귀 끝에 열이 올랐다.

태오는 말없이 유채의 등을 꽉 끌어안았다. 유채가 소리 내 웃으면서 태오의 이마에 입술을 꾹 눌렀다.

“유채야, 살려 줘…….”

그 순간을 잃어버리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대로 영원히 유채를 만나지 못할까 봐 겁났다. 죽고 싶지 않았다.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사실은 한 번도 태연했던 적이 없었다. 태오는 살고 싶었다. 유채와 함께, 가능하면 영원히.

어린 애인 옆에서 머리가 하얗게 변할 때까지 딱 붙어 있다가 백스물세 살쯤 되었을 때 유채보다 하루만 먼저 눈감는 것이 태오의 계획이었다. 그런 얘길 할 때마다 유채는, 죽는다는 얘기는 입에도 올리지 말라면서 드물게 화난 얼굴을 했다.

“형, 제발……. 눈 좀 떠 봐요.”

이번에는 목소리가 조금 더 크게 들렸다.

태오는 이를 악물었다. 귀가 먹먹할 정도로 큰 소리로 비가 내렸다. 천둥이 칠 때마다 몸이 튀었다. 그러나 눈을 뜨려고 애썼다.

유채가 원했으니까.

“눈 좀 떠 봐, 응? 형. 나 여기 있어요. 제발.”

긴 손가락이 태오의 뺨을 조심스레 쥐었다.

그리움이 만들어 낸 환상이 분명했는데도 체온이 느껴졌다. 목소리는 아득히 멀게 느껴졌지만 부드럽고 절박했다. 태오는 그 저음의 목소리에 의존해 뻣뻣한 팔다리를 버둥거렸다. 덜덜 떨리는 손을 뻗어서 안간힘을 다해 유채의 옷자락을 움켜쥐었다.

“눈 떠 줘요, 형. 나 봐 줘요. 한 번만. 꿈이어도 좋으니까…….”

유채가 차갑게 식은 태오의 입술에 제 입을 맞대고 비볐다.

그때 또다시 번개가 쳤다. 태오는 또다시 움츠러들었다. 그러자 조금 더 낮아진 유채의 음성이 귓가에 울렸다.

그의 숨결이 목덜미에 부드럽게 달라붙었다가 흩어지길 반복했다. 이번에는 눈꺼풀에 힘을 주려고 어떻게든 애를 썼다. 눈가가 움찔거리면서 조금씩 움직여지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가까스로 숨을 토했다.

천천히 눈꺼풀을 밀어 올렸다. 마침내 눈을 떴을 때, 유채와 시선이 마주쳤다. 그의 연갈색 눈동자가 물기로 젖어 있었다.

“형, 보고 싶었어요. 정말 보고 싶었어요.”

유채가 그를 바라보면서 희미하게 웃었다. 환영도, 그림자도 아니었다.

“유채야.”

신음하듯 그를 불렀다.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사 년 전의 아파트인지, 그보다 더 전인지, 꿈인지 현실인지 알 수 없었다. 빗줄기가 여전히 거칠게 차창을 때렸다. 그러나 소리는 점점 멀어진 끝에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눈앞에 유채가 있었다. 그게 전부였다.

유채가 태오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또다시 입술이 맞닿았다. 입맞춤이 길고 달았다.

유채의 숱 많은 속눈썹이 흠뻑 젖은 채 파르르 떨렸다. 눈가에 맺혔던 눈물이 그의 뺨을 타고 흘렀다.

“형, 일어나기 싫어요. 이대로 영원히 안 깨고 싶어.”

귓가에 울먹이는 목소리가 가득했다.

“꿈에서 깨기 싫어요…….”

“꿈……?”

“일어나고 싶지 않아요.”

아아 그래, 이것은 꿈이구나.

그러나 꿈이라도 좋았다.

태오도 깨어나고 싶지 않았다. 이 순간을 얼려 두어서라도 영원히 붙잡고 싶었다.

그래서 다시 눈을 감았다. 조금 더 오래 잠들어, 좀 더 오랫동안 유채와 함께하고 싶었다. 태오는 유채의 가슴팍에 뺨을 기댔다. 옅게 내뱉는 숨결을 따라 유채의 가슴 근육이 오르내렸다. 그의 심장 박동 소리가 자장가처럼 울렸다.

유채의 품에 파묻히듯 안긴 채 그대로 잠이 들었다. 긴 밤이었다.

아침이 다가왔다. 태오가 눈을 떴을 때 침대는 비어 있었다. 차갑게 식은 옆자리에서는 온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분명히 유채에게 안겨 잠들었던 기억이 있었다. 그러나 꿈이었는지 현실이었는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태오는 캠핑카 안을 잠시 돌아보았다. 유채는 보이지 않았고, 아침 여덟 시부터 자동으로 켜지도록 설정되어 있었던 카메라에 빨간 불이 들어온 것이 눈에 띄었다.

밤새 내렸던 비는 이미 그친 뒤였다. 날이 맑게 개었다. 차창 너머로 쏟아지는 아침 햇볕에 눈이 부셨다.

***


★ Radiance TALK

[불판] 16713626672459.jpg오프 더 레코드: 드램핑! 같이 달리자!16713626672459.jpg

왜 아직도 불판 없냐 어?16713626672469.jpg

그래서 내가 슬그머니 몰래 만든다 헤헤

가치 달리자!! 꺄오!!! (๑و•̀Δ•́)و

*** 타 연옌 언급 금지 ***

[댓글(2548)]

▶ 하시발;;; 떨려;;; 완전체 리얼리티 대체 얼마만이야

↳ ㅋㅋㅋㅋㅋㅋㅋ뭐야 왜떨렼ㅋㅋㅋㅋㅋㅋ

↳↳ 그래서 넌 안떨린다고?

↳↳↳ 아아니;;; 나도떨려시발;;;

▶ 아나 광고 왤케 길어

↳ 글게 광고 엄청 붙었다ㅋㅋㅋ

▶ 헙 유채 틴트 광고!!!

↳ 헐 갑자기 유채 얼굴공격ㅋㅋㅋㅋㅋ

↳↳ 입술 진짜 젓갈이다 ㄷㄷㄷㄷ

↳↳↳ 명란젓깔이다 ㄷㄷㄷㄷ

▶ 한다한다한다한다한다

▶ 유채 개잘생겻다 얼굴 머선일 ㅇㅠㅇ

↳ 불면증 한참 심할 때는 해쓱했는데 요즘 마니 나졋는지 얼굴에서 광나드라고ㅠㅠㅠㅠ

▶ 헉 우주랑 같은팀?

↳ 뭐?

↳↳ 뭐?

↳↳↳ 머야 존나시러;;; 왜 하필 그분이랑;;;

▶ 팀배정 왜이래ㅠㅠ 유채 당연히 최리더랑 할줄 알았는데ㅠ

↳ 근데 그 조합은 솔직히 넘 재미없어..

↳↳ 으응...

↳↳↳ 으응2222

↳↳↳↳ 으응3333

▶ 뭐야 우주 왜 애기랑 싸워;

↳ 역시 신우주...

↳↳ 근데 애기 대따귀엽다 자기는 아기래 ㅋㅋㅋㅋㅋㅋㅋ

↳↳↳ 아씨 신우주도 쫌 귀엽다ㅋㅋㅋㅋ 여섯 살이 뭐가 아기녜ㅋㅋㅋㅋㅋㅋ

↳↳↳↳ 헉 너지금 그분 귀엽다고 한거야?

↳↳↳↳↳ 헉 나지금 그분 귀엽다고 한거냐?;;;;;

▶ 유채도 끼어들어서 싸운다ㅋㅋㅋㅋㅋ

▶ 뭐야 유채랑 그분,,, 친해보이는데... 난시가 심해졌나

↳ 내 눈에도 친해보이는데.. 노안왔나봄;;

▶ 아뭐야 피디가 찍고있다고 말 안해주고 찍었나봐ㅋㅋㅋㅋㅋ 지금 찍고잇는거 아니녜ㅋㅋㅋ

↳ 하던거 하래ㅋㅋㅋㅋㅋㅋㅋ

↳↳ 뭐야 이분위기;;; 당황스럽네;;;

▶ 애기가 유채한테 반했어 ㅋㅋㅋㅋㅋ 이름도 형아처럼 이쁘다닠ㅋㅋㅋㅋ 플러팅 무슨일이야

↳ 그런소리 많이듣는대ㅋㅋㅋㅋㅋㅋ 좋앗어 유채 철벽 자연스러웠다

▶ [속보] 래디언스 유채, 팀 결성 n년만에 우주와 사이 인정… ‘직장동료’

↳ 와진짜 장족의 발전 아니냐ㅋㅋㅋㅋㅋㅋㅋㅋ 둘이 전에는 대화도 안하지않앗어?

▶ [2보] 래디언스 유채, 우주요? ‘일하면서 만난 친구’죠

↳ 친구…… 친구……?

↳↳ 유채 부들부들 떨고있엌ㅋㅋㅋㅋㅋㅋㅋ

↳↳↳ 아 존나 시러보옄ㅋㅋㅋㅋㅋㅋ 근데 왤케 웃기지ㅋㅋㅋㅋㅋㅋㅋ

▶ 헐 유채,, 애기 한팔로 들어서 옆구리에 끼는거 봐 애기 1그램인줄...

↳ 존나 섹시한 애아빠같애 ㅇㅠㅇ

▶ 이 분위기 뭐지,, 혼전 임신으로 애기 생긴 어린 신혼부부 컨셉임…?

↳ 뭐그래… 좋아… 조은데 왜 그분이랑 이런걸……?

↳↳ 우주도 멤버야;;; 여기서 이딴 얘기 하지마;;;

▶ 근데 나만 우주 오늘 좀 달라보여?

↳ 얌전해지긴 했다,, 저번에 본 사녹후기 진짜였나 얘 되게 변했다든데

↳↳ 팬싸후기 못봄? 애교 장난아니었음…

↳↳↳ 뭐 애교??;;;; 우주 얘기하는거야? 소름;;;

↳↳↳↳ 그럼 유채얘기겠냐궁,,, 유채 애교가 더 소름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아앀ㅋㅋㅋㅋㅋㅋ 상상하고 터졌다

↳↳ 얌전해진게 문제가 아니라 얼굴이 좀 달라진거 가튼데..

↳↳↳ 어 나도... 손댔나? 왤케 잘생겨졌지,,

↳↳↳↳ 쟤 키 컸어? 유채랑 키차이가 원래 저거밖에 안 났나?

↳↳↳↳↳ 깔창 깔았나보지;; 스물네 살에도 키크냐

↳↳↳↳↳↳ 좀 훌쩍 커진거같은데…?

▶ 헉 유채 사고친거같음;;;

↳ 유채 표정 뭔뎈ㅋㅋㅋㅋㅋㅋㅋㅋ 기여워어어어

▶ 방금 뭐란거야? 태웠다고한거 아니지? 내가 잘못들었지?

↳ 존나… 자막에 태웠다고 써있다…

↳↳ 한우를?

↳↳↳ 한울,ㄹ를???

↳↳↳↳ 한우ㅇ를????????

▶ 어떠케 우주빡쳤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시바 웃는얼굴 존나무서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유채야 미안하다 이건 나두 용서가 안된닼ㅋㅋㅋㅋㅋㅋㅋㅋ

↳ 나도;;; 우주 편 들어줄 날이 올줄이야 근데 이건 너무나갔따 유채야;;;;

▶ 아나 지금 진심으로 꿈틀했어

↳ 어… 저 많은 한우를… 웃음이 안나와… 이거 예능 아니었어?

↳↳ 존나 피폐물인줄

▶ 이 와중에 먹는거 죄다 근육으로 가는 유채 왤케좋냐;;

▶ 헉 애기잃어버렸어!!!!!!!

▶ 헉 찾았어!!!!!!!!!!!

↳ 시바 놀래라;; 존나 1초컷;;;

↳↳ 아씨ㅋㅋㅋㅋㅋㅋㅋ제작진 뭐야 큰일 난 줄 알았잖아 존나 낚였다ㅋㅋㅋㅋㅋ

▶ 아어떡해 유채 형아는 아기새래ㅋㅋㅋㅋㅋㅋㅋ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 한유채 돌았낰ㅋㅋㅋㅋㅋㅋㅋㅋ 애기한테 지입으로 지가 아기새라고 했냐곸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아무도 글케 안불러주는데 진짜 꿋꿋햌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아진짜 이제 공식별명 해주자 저렇게 원하는뎈ㅋㅋㅋㅋㅋㅋㅋㅋ

↳↳↳ 헤… 시른데?ㅎ

↳↳↳↳ 시른데?ㅎ

▶ 우주가 수습한다 이거 어케댄 일이야ㅋㅋㅋㅋㅋㅋ 내눈으로 보고있는거 실화냐ㅋㅋㅋㅋㅋ

↳ 유채가 사고치는 롤이고 우주가 수습롤일줄은 상상도 못했음;

↳↳ 의외로 케미 괜찮네ㅋㅋㅋㅋ 존나 배틀홈… 배틀… 친구… 배틀직장동료네,,

▶ 말하는 순간 신우주도 사고침

↳ 파스타 면발 불어터진거밬ㅋㅋㅋㅋㅋㅋ 아씨ㅋㅋㅋㅋㅋ 얘네 점심 먹을 수 있냐고;;ㅋㅋㅋㅋ

▶ 유채 신났어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너 사고쳣넹 (๑‵ᴗ′๑)”

↳↳ “쟤가 사고쳐서 못머거 ๑• ₃ •๑”

↳↳↳ 아 얄미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우주 잘참는닼ㅋㅋㅋㅋㅋ 나가트면 뒤통수 후려쳤다

↳ 우주가 참는꼴을 다보고;;; 오래살고 볼일이다 진짜;;;;;

▶ 헉 유채야 애를 그렇게 위로 던지면!!!!!

↳ 휴 안던졌다;;;;

↳↳ 존나 조마조마하네 진짜 누가 애야ㅋㅋㅋㅋㅋㅋㅋ

↳↳↳ 우주 속터진닼ㅋㅋㅋㅋㅋ

↳↳↳↳ 와 쟤가 누구 속터띠는게 아니라 지 속 터지는 걸 보다니;;;

▶ 말대꾸하지마 유채야,,,

↳ 멀 잘했다구,,,

↳↳ 우리유채 아기새 맞네,,, 철딱서니가,,,

↳↳↳ 앵그리버드 아기새다..

▶ 우주 욀케 쏘스윗;; 애기 신발끈 묶어주는거 뭔데 설레냐;;

▶ 켁;;; 갑자기 우주 얼빡;;;

↳ 얼굴 공격 당해서 존나놀람ㅠㅋㅋㅋㅋㅋㅋ

↳↳ 우주 오늘 살벌하게 잘생겼다;;;;;

↳↳↳ 저렇게 잘생겼다고??? 우주가??? 아닌데 아니었는데;;; 어디 손댔지;;;

↳↳↳↳ 일단 보조개는 존나 확실히 한 듯

↳↳↳↳↳ 시술로 저런보조개 안나와;;

▶ 우주 진짜로 키 큰 듯

↳ 플필에 키 몇이지?176? 7?

↳↳ 177이라고 우겼는데 실제로 보면 5정도 돼보였었음

↳↳↳ 어 저게 어딜봐서 177이냐,, 180 확실히 넘어보임

▶ 저 떡볶이 뭐냐… 보기만 해도 살떨리게 매워보임,,,

▶ 유채가 떡볶이 못 먹지 않어? 우주 뭐야;; 일부러 떡볶이 한거 아니냐;;;

↳ ㅇㅇ 유채 떡볶이 먹기만하면 토한댔었음,, 리더피셜임

↳↳ 우주가 또 우주했네ㅎ

↳↳↳ 우주는 몰랐나보지; 우주 밉상인건 알겠는데 생트집은 잡지마; 혼자 만든다고 고생했구만

↳↳↳↳ 뭐래; 그 얘기할 때 걔도 같이 있었거든;;

↳↳↳↳↳ 유채 지금 떡볶이 먹고있는데?

▶ 헉 애기운다

↳ 보기만해도 살벌하게 맵더니ㅠㅠㅠㅠㅠ 저런걸 만들면 어카냐 우주야ㅠㅠㅠㅠㅠㅠ

↳↳ 우주 당황했엌ㅋㅋㅋㅋㅋㅋ 귀엽다ㅋㅋㅋㅋㅋㅋㅋ

▶ 결국 최리더 등판ㅋㅋㅋㅋㅋ 그래 첨부터 그 텐트가서 먹지 그랬어..

▶ 애들이 우주 좋아하는 분위기인거 가튼데;;; 내 착각임?

↳ ㅇㅇ 착각임

↳↳ 내눈에도 글케보이는데;;

↳↳↳ 그러네…… 사이 좋아보이네……

↳↳↳↳욀케 아련해 너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애기가 드뎌 실토했다ㅋㅋㅋㅋㅋㅋㅋ 유채랑 결혼할거랰ㅋㅋㅋㅋㅋ

↳ 사유: 예뻐서

↳↳ 진짜 투명한 얼빠임ㅋㅋㅋㅋㅋㅋㅋㅋ

↳↳↳ 애기가 눈이 높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앗… 애기 유채한테 차였어

↳ 앗,,, 애기 신경도 안써

↳↳ 애기 쿨내나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애기 갔다… 쟤네 이제 무슨얘기 하냐;;;

↳ 근데 쟤네 둘이 대화하는거 진짜 이번에 첨본다;;;

▶ 우주 뭐냐,,, 같이 자자고……?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유채 방금 촬영 때려치고 뛰쳐나갈 뻔했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

▶ ㅋㅋㅋㅋㅋㅋㅋ날도 추운거 같은데 유채 기어코 소파에서 꾸겨져 자는거 봐ㅋㅋㅋㅋ

↳ 유채 완전 초딩;;;ㅋㅋㅋㅋㅠㅠㅠㅠ

↳↳ 침대도 대따 커서 손끝도 안 닿을거 가튼데 걍 같이 자지;;

↳↳↳ 그분이랑 같이 자고 싶겠냐고;

↳↳↳↳ 오늘 우주 완전 귀엽고 잘생기고 다하는데? 뭐가 문제임?

↳↳↳↳↳ 신우주 성공했네.. 이런소리도 듣고..

▶ 카메라 끈당,, 아쉽

↳ 아쉬울게 뭐있냐 저자세 고대로 아침에 일어날텐데..

▶ 카메라 켜졌당

▶ 헙,,,????????

▶ 엥????????????

▶ 지금 뭐본거임?????? 유채 왜 저깄어??? 쟤네 왜 저러고있어????

▶ 지금 유채가 침대에서 우주 끌어안고 자는거 맞아??????????

↳ 어어어어어어어………………

↳↳ 어마즘……. 맞아 맞는데……...

▶ 시발이거 미쳣나 미쳣나 존나 우유즈 떡상하는 소리 들린다 돌았다;;; 이런날이 오는구나;;;;;;;

↳ 우유즈가 머임?

↳↳ 우주x유채

↳↳↳ 그런말 첨들어본다;; 니가만듬?;;;

↳↳↳↳ 지금 만들었다 왜

↳↳↳↳↳ 아냐 데뷔때부터 있었어 존나 온갖 구박 설움 다당하던,, 한줌단,,,

↳↳↳↳↳↳ 진짜 그런거 있었음?ㅋㅋㅋㅋㅋ 전혀몰랐넼ㅋㅋㅋㅋㅋ

↳↳↳↳↳↳↳ 나도 알고싶지 않앗거든 시바..ㅠㅠㅠ,,,ㅠㅠㅠㅠㅠ근데 내가 어쩌다 사약을 마셔서..

↳↳↳↳↳↳↳↳ ㅋㅋㅋㅋㅋㅋㅋㅋ울지말고 천천히 말해봐

↳↳↳↳↳↳↳↳↳ 왜울어ㅋㅋㅋㅋㅋ 존버 성공했네 야ㅋㅋㅋㅋㅋㅋㅋ 와 이게 무슨일임;;

▶ 얘들아 그만하고 우리 아침햇살받은 유채 잠든얼굴 보자

↳ 미쳣다… 존나 청량해 도른;;

↳↳ 백설곤쥬님이네,,,

↳↳↳ 으아아아아 존좋ㅠㅠㅠㅠㅠㅠㅠㅠ 개이쁨ㅠㅠㅠㅠㅠㅠㅠㅠㅠ

↳↳↳↳ 눈꼽도 안뗀 부은얼굴이 저지경이어도 되냐ㅠㅠㅠㅠㅠㅠ

▶ 헉 우주얼굴봐

↳ 깜짝이야;; 얜 또 욀케잘생겻는데;;;

↳↳ 자면서 얼굴공격하네

↳↳↳ 와 일케보니까 진짜 윤태오닮았다

↳↳↳↳ 어어어어 나도,,, 짭태오시절엔 닮았다고 생각 안했었는데 지금 보니까 존똑임

↳↳↳↳↳ 옛날보다 더똑같음...

↳↳↳↳↳↳ 타연옌 언급금지야;;;

▶ 유채깼다

↳ 아앀ㅋㅋㅋㅋㅋㅋ 혼자 뭐라고 하는거야 계속 효과음 삐삐거려ㅋㅋㅋㅋㅋ 설마 욕한거냐구욬ㅋㅋㅋㅋㅋㅋ

↳↳ 아 유채 자다 추워서 잠결에 기어들어갔나봨ㅋㅋㅋㅋㅋ 완전 당황했어 지금ㅋㅋㅋㅋㅋㅋ

↳↳↳ 존나 당황해서 저도모르게 튀어나왔나봄ㅋㅋㅋㅋㅋㅋㅋㅋㅋ

↳↳↳↳ 그럴만도 하지 자다 깼는데 직장동료랑 꼭 끌어안고 자고 있으면…

↳↳↳↳↳ ㅅㅂ그놈에 직장동료ㅋㅋㅋㅋㅋㅋㅋㅋ

↳↳↳↳↳ ㅋㅋㅋㅋㅋ존나 로맨스영화 인트로 상황 같은데 전혀 아닌 분위기… 넘웃곀ㅋㅋㅋㅋㅋㅋㅋ

▶ ㅋㅋㅋㅋ근데 유채 우는거같애 눈가가 반짝반짝해ㅋㅋㅋㅋ

↳ 왜 울고그래 아기새ㅋㅋㅋㅋㅋㅋ 너무놀랬냐ㅋㅋㅋㅋ

↳↳ 아기새 시바ㅋㅋㅋㅋㅋㅋㅋ

↳↳↳ 아 진짜운다 너무 놀래서 우나봐 도른ㅋㅋㅋㅋㅋㅋㅋ

↳↳↳↳ 아씨 계속 효과음 삐삐거려ㅋㅋㅋㅋㅋ 울지 말라고 유채야 ㅋㅋㅋㅋㅋ 귀여워 미쳐버리겠네 진짜

↳↳↳↳↳ 그니까ㅋㅋㅋㅋ 계속 눈물닦으면서 중얼거리는거봐ㅋㅋㅋㅋㅋㅋ

▶ 유채 도망간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시바 왜 도망가는뎈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아기새 도라와~~~~~~


***

래디언스는 음악 방송에서 5관왕을 차지했다. 음원 순위도 1위에 안착하면서 성공적으로 활동을 마무리했다. 그동안 태오는 멤버들과 함께 한 주에도 몇 개씩 잡힌 음방에 출현하면서 팬 사인회에 참석했고, 연이은 예능 촬영과 라디오 생방송을 소화하면서 각종 행사까지 뛰었다.

태오는 일 년, 혹은 이 년에 한 번 작품 활동을 하는 기간을 제외하면 유채의 백수 애인이 주된 직업이었다. 이렇게 바빠 본 것이 얼마 만이었는지 몰랐다. 제대로 잠잘 틈도 없이 몰아친 스케줄에 정신없이 떠밀렸다가, 눈떠 보니 어느새 활동 기간이 끝나 있었다.

다른 멤버들은 비활기에도 개인 활동을 하느라 바빴다. 태오만 유일하게 일이 없었다. 그게 서글프긴 했지만, 숨 돌릴 시간이 생겨서 다행이었다. 컴백이 뜸한 래디언스 특성상 앞으로 일 년 가까이 숨만 돌리게 생겼다는 점이 문제였지만 일단 당장은 기뻤다.

멤버들이 각자의 일정을 소화하느라 숙소를 비운 어느 오후에, 혼자서 한가했던 태오는 소파에 길게 누운 채 태블릿PC를 켰다. 꼬마가 태오의 옆구리에 착 달라붙어서 새근새근 숨소리를 내면서 자고 있었다. 출연했던 예능 프로그램들을 모니터링할 생각이었다. 그동안은 일정이 많아서 도저히 틈이 없었다. 그러나 몇 가지 예능 제목들을 훑어보면서, 어느 프로그램부터 먼저 볼지 결정하지 못해 고민에 빠졌다.

리얼리티가 가장 궁금하긴 했지만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래디언스는 멤버 전원이 함께 찍었던 리얼리티 외에도, 둘씩, 혹은 셋씩 묶여서 몇몇 예능에 초대되었다. 줄곧 개인 스케줄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예능 쪽으로는 기대하지 않았는데, 태오도 의외로 몇 건의 섭외를 받았다.

다만 모두 유채와 함께 출연해 달라는 요청이었다. 태오 자신이 섭외되었다기보다는 유채의 원 플러스 원인 셈이었다. 어쨌거나 태오로서는 인지도를 높이고 그동안의 불호 이미지를 바꿀 좋은 기회였다. 예능에 여전히 자신이 없었지만, 그래도 섭외에 적극적으로 응하려고 했다.

그런데 유채가 어깃장을 놓았다. 태오와 단둘이서는 죽어도 예능에 나가지 않겠다는 거였다. 명태가 설득하고 멤버들이 아무리 달래도 요지부동이었다. 결국 케빈이나 라윤, 혹은 이신이 한 명씩 끼어서 셋이 출연하는 것으로 합의를 봤다. 그렇게 태오는 제법 인지도 높은 예능 몇 군데에 간신히 출연할 수 있었다.

리얼리티가 방송된 후, 프로그램 PD들이 우유즈의 케미를 눈여겨봤다고 들었다. 그게 PD들에게 미운털이 박혀 있었던 우주가 유채의 원 플러스 원이라도 될 수 있었던 이유였다. 태오는 우주와 유채를 묶어서 부르는 이 새로운 이름이 꽤 마음에 들었다. 유채보다 태오의 이름이 더 앞 순서로 오는 것도 좋았다. 태오가 아니라 우주의 이름을 쓰는 게 조금 아쉬웠지만, 윤태오와 한유채를 어떻게 조합해도 우유 커플보다 더 마음에 드는 명칭은 없었으니 상관없었다. 다만 아직 아무도 우유 커플이라고까지 불러 주지는 않아서, 태오 혼자 불렀다.

그러나 막상 촬영은 PD들의 기대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우유즈의 케미가 돋보이기는커녕 유채는 태오와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유채를 탓할 수는 없었다. 그즈음 유채의 불면증이 다시 심해지면서 말수가 줄었던 탓이다. 태오뿐이 아니라 누구와도 대화를 안 했다.

유채는 무대 위에서만 반짝 살아났다. 덕분에 활동은 어찌어찌 마무리할 수 있었지만, 모두가 유채를 걱정했다. 태오의 경우에는 더 심했다. 유채가 잠을 못 자고 거실에서 서성이는 날은 태오도 잠들 수 없었다.

유채가 갑자기 힘들어하는 이유에 대해서 짐작 가는 일이 있었다.

리얼리티 촬영 날, 태오가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캠핑카는 텅 비어 있었다. 늦은 오전에 다시 마주친 유채는 이미 표정이 없었다. 밤에 잠들기 전까지는 줄곧 태오에게 시비를 걸어 댔으니 간밤에, 혹은 유채가 일어난 후에 뭔가 일이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높은 확률로, 태오가 줄곧 꿈이라고 생각했던 간밤의 일이 꿈이 아니었을 수 있었다.

태오는 손에 쥔 태블릿PC 화면을 노려보면서 아랫입술을 잘근거렸다. 리얼리티 속에 뭔가 증거가 남아 있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확인해 봐야겠다고 줄곧 생각하면서도 바쁘다는 핑계로 미루어 왔다. 그 밤의 일을 알게 되는 것이 겁났다.

만약 꿈이 아니었다면, 정말로 유채가 천둥 번개에 트라우마가 있는 태오를 끌어안고 달래 주었다면, 유채가 그를 우주가 아니라 ‘태오’라고 불렀다면…….

유채는 그 일을 꿈으로 생각하고 있을까?

아니면, 우주가 태오라는 것을 눈치챈 걸까?

눈치챘다면 왜 아무런 말이 없지?

우린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거야?

막연한 상상은 언제나 그쯤에서 끝났다. 태오는 혼란스럽게 떠오른 의문들에 대한 대답을 알 수 없었다.

답을 찾으려면 상황부터 알아야 했다. 태오는 심호흡을 하고, 주춤거리던 손끝을 움직여 영상을 틀었다.

가만히 화면을 지켜보던 태오는 카메라에 잡힌 유채와 자신의 모습을 보고 조금 놀랐다. 유채는 190센티에 가까웠고, 우주의 프로필상 키는 177센티였는데도 키 차이가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 아무래도 제 키가 부쩍 자란 것 같았다. 생전에 태오는 182센티였는데, 당시와 비슷할 만큼 컸기 때문인지 유채와 나란히 선 모습이 우주라기보다는 예전의 태오처럼 보였다.

그러고 보니 어쩐지 밤마다 무릎이 아팠다. 성장통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태오는 십오 년쯤 전에나 겪어 보았던 느낌을 다시 맞닥뜨린 것이 조금 당황스러웠다.

‘어린 게 좋긴 하네. 근데 스물네 살까지도 키가 클 수 있는 거였나?’

그렇다 해도 두 달 남짓한 단기간에 키가 이 정도로 크는 것은 확실히 의아한 일이었다.

화면은 캠핑장에서 있었던 일들을 보여 주었다. 연기가 아니라 날것의 모습을 내보인 것은 처음이라 머쓱했다. 빨리 감기로 넘겨 버리고 아침 장면만 살펴볼까 싶은 생각이 언뜻 들었다.

그러나 이런저런 상념은 유채가 다시 등장했을 때 모두 사라져 버렸다. 예전 생에서도 태오는 유채가 나오는 영상을 모니터링하기를 즐겼다. 이후 두 시간 동안, 태오는 애초의 목적도 잊고 정신없이 화면을 들여다보기만 했다.

카메라가 집요할 정도로 유채를 훑었다. 특히 물놀이하는 장면에서 심했다. 흰 티셔츠가 몸에 달라붙어 복근이 고스란히 도드라졌다. 이렇게까지 가까이서 잡을 필요가 있냐고 투덜거리면서도 태오는 유채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꼭 복근 때문만은 아니었다.

영상 속의 유채가 생기 있어서 좋았다. 색소가 옅은 눈동자가 줄곧 투명하게 빛났다. 태오에게 시비 걸고 있는 장면이 아니었더라면 더 좋았을 뻔했다.

그리고 마침내 밤이 되었다. 기억대로 태오는 침대에서, 유채는 소파에서 각각 잠을 청했고 이내 암전되었다.

내내 넋을 놓고 있다가 이제야 긴장이 되는지 손끝이 굳었다. 태오는 마른침을 삼켰다.

곧이어 화면이 밝아졌다. 유채가 태오를 끌어안은 채 침대에서 함께 자고 있었다. 그것을 확인한 순간 눈앞이 아찔했다. 울먹이던 유채의 목소리가 귓가에 생생하게 울렸다.

-형, 보고 싶었어요. 정말 보고 싶었어요.

-형, 일어나기 싫어요. 이대로 영원히 안 깨고 싶어.

-꿈에서 깨기 싫어요…….

“……꿈이 아니었구나.”

태오는 무심코 중얼거렸다.

영상은 계속 이어졌다.

화면 속의 유채가 잠에서 깼다. 뒷머리가 아무렇게나 뻗친 채, 뺨이 잔뜩 부었다. 멍한 표정이 귀여웠다. 스물두셋이었을 무렵, 태오의 침대에서 부스스 깨어나던 시절의 유채와 똑같아 보였다.

한동안 초점 없는 눈으로 인형처럼 앉아 있던 유채가 퍼뜩 고개를 돌렸다. 다급해 보이기도 했고, 놀란 것 같기도 했다. 유채는 침대를 더듬어 이불을 걷어 냈다. 가려져 있던 태오의 얼굴이 드러났다. 아침 햇살을 받은 뺨이 환하게 빛났다.

화면 안의 태오를 내려다보면서, 유채가 누군가를 불렀다.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대신 태오는 그의 입술 모양을 읽었다.

형. 일어나요.

그 순간 태오는 벼락을 맞은 기분이었다.

그러나 천천히, 유채의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졌다. 믿을 수 없다는 듯한 눈빛이 잠든 태오를 내려다보았다. 희게 질린 도톰한 입술이 달싹거렸다.

[신우주……?]

유채는 그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이내, 긴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눈가가 반짝거렸다.

[삐이—.]

내뱉은 목소리가 효과음에 가려졌다. 우스꽝스러운 자막이 화면에 떴다. 잠에 취한 유채가 저도 모르게 우주의 침대에 기어들었다가, 정신을 차린 뒤 놀란 나머지 엉겁결에 당황한 말을 뱉으며 눈물까지 보인 코믹한 상황으로 보였다. 그러나 태오는 웃을 수 없었다.

태오는 손으로 입가를 틀어막았다. 신음이 샐 것 같았다.

그날 밤의 일은 꿈이 아니었다. 유채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린 것은 그때였다. 발걸음 소리가 나고 누군가 태오의 앞으로 다가와 그림자를 드리울 때까지, 태오는 뻣뻣하게 굳은 채 움직이지 못했다. 시야에 긴 다리가 들어왔다.

느껴지는 기척이 익숙했다. 이전 생에서도, 현재의 삶에서도, 죽어서 사라졌던 동안에도 잊어 본 적 없는 목소리가 태오를 불렀다.

“태오 형.”

심장이 곤두박질쳤다.

태오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갈색 눈동자가 텅 빈 채 태오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유채에게서는 진한 술 냄새가 났다. 말캉한 입술이 다시 한번 부드럽게 움직였다.

“태오 형.”

그러나 다시 내뱉은 발음에는 온기가 없었다.

“……태오 형.”

그들이 서로 사랑했던 때의 다정함이 완전히 사라진 목소리였다. 그런 음성으로, 믿지 못하겠다는 듯 몇 번이나 태오의 이름을 곱씹고 되뇌었다. 태오는 그것을 견딜 수 없었다.

“유채야.”

그래서 유채를 향해 팔을 뻗었다. 옷자락을 움켜쥐자 그의 어깨가 움찔 떨렸다. 태오를 응시하던 동공이 초점을 잃고 흔들렸다.

태오는 몇 번이나 입술을 달싹거렸다. 목이 꽉 잠겨서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이 말을 해야만 했다.

“그래 유채야, 나야.”

혀끝에서 발음이 형편없이 뭉그러졌다.

“내가 태오야.”

속눈썹이 물기에 젖는 게 느껴졌다. 그러나 태오는 눈을 깜빡여 억지로 눈물을 참아 냈다. 생기가 모두 사라진 인형 같은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유채 앞에서 울어 버리고 싶지 않았다. 유채를 이해시켜야 했다.

“내가…… 눈을 떴는데, 우주의 몸이었어.”

침착하게, 태오는 아주 천천히 입을 열었다. 한 마디씩 할 때마다 가슴이 저렸다.

“바로 말하려고 했는데 네가 믿지 못할 것 같아서…….”

유채의 손을 힘주어 잡았다.

태오를 가만히 바라보는 유채의 눈매가 붉었다. 그의 손에 겹친 태오의 손등에 유채의 눈물이 떨어져 닿았다. 지난번의 병원에서, 태오 흉내를 내지 말라면서 울 것 같은 얼굴로 다그치면서도 끝내 울지 않았던 유채가 이번에는 소리도 없이 눈물을 떨어뜨렸다. 태오는 다른 손을 뻗어서 그의 뺨을 닦아 주었다.

“그래서 기다렸어. 네가 믿어 줄 수 있을 때, 말하려고 했어.”

유채의 뺨을 매만지는 손끝이 떨렸다. 연한 밤색 눈동자는 흠뻑 젖은 채 미동도 없었다.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유채야……. 뭐라고 말 좀 해 봐.”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기억과 과거가 있다. 태오에게는 유채와의 시간이 그랬다.

울림이 풍부한 저음의 목소리. 눈썹 위에서 흔들리는 옅은 갈색 머리카락. 또렷하게 태오를 올려다보았던 시선. 그리고 어느새 훌쩍 자라서, 태오를 가만히 내려다보다가 긴 눈매가 반달처럼 휘면서 웃던 하얗고 말간 얼굴.

모든 순간이 여전히 생생했다. 그 시간 속에 있을 때는 눈을 감아도 눈앞이 밝았다.

되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유채가 믿어 준다면.

마침내 유채가 입술을 움직였다. 갈라진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태오 형…….”

“어, 유채야.”

나야.

태오는 그렇게 말하려고 했다. 그러나 유채가 빨랐다. 감정이 휘발된, 서늘한 목소리가 태오에게 물었다.

“이렇게 부를 줄 알았어?”

그 순간 머릿속이 정지했다.

태오는 말문이 막힌 채 유채를 올려다보았다.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가까스로 움직인 입술이 기계적인 대꾸를 만들어 냈다.

“……뭐?”

유채의 눈가에 물기가 가득 고여 있었다. 뺨이 흠뻑 젖은 채로, 유채는 태오를 내려다보면서 처연한 얼굴로 웃었다. 붉은 입술이 부드럽게 열렸다.

“이제 그만해. 미워하지도 않고 시비 걸지도 않을 테니까…….”

심장이 불안하게 뛰었다. 유채는 이런 말을 해서는 안 되었다. 태오를 믿어 주고 그의 이름을 불러야 했다. 조금 전처럼 차갑게 식은 목소리가 아니라, 예전처럼 다정한 음성으로 불러 줄 줄 알았다.

“제발 태오 형인 척하지 마.”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내가 미친 것 같아. 네가 자꾸 태오 형으로 보여.”

유채의 목소리가 축축했다. 그가 말을 이을수록 태오는 숨이 막혔다. 사방이 물기로 가득 차서, 익사해 버릴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이제 만족해?”

“유채야……. 그만해.”

더 들을 수 없어서 간신히 입을 열었다. 돌려받지 못할 제 마음이 아팠다. 그러나 완전히 조각난 유채의 마음 때문에 더 아팠다.

유채는 태오의 말에 신경 쓰지 않았다. 그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시선은 더 이상 태오에게 닿지 않았다. 어딘가의 허공을 멍하니 응시하면서 부유했다. 색을 잃은 음성이 나지막하게 이어졌다.

“그래도 내가 태오 형을 배신하는 일은 없을 거야. 내가 완전히 미쳐 버려도 그런 짓은 안 해.”

“…….”

“네가 아무리 태오 형으로 보여도…… 너는 안 돼. 넌 형이 아니잖아…….”

내가 지금 뭘 하는 거지.

유채의 손등을 덮었던 태오의 손가락에 힘이 풀렸다.

태오는 유채를 괴롭히고 있었다. 한계까지 몰아붙여서 무너지게 했다.

유채에게서 묻어나는 술 냄새에 머리가 아팠다. 속이 울렁거리고 눈앞이 빙글 돌았다. 그래도 태오는 눈을 부릅뜨고 정신을 차리려고 애썼다. 유채를 위로하고 싶어서, 몇 번이나 입을 벌리고 벙긋거렸다.

그러나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해야 할 말을 몰랐다.

<3권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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