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장 (19/28)

10장

일곱 살 때였다.

원장 선생님이 남자앤지 여자앤지 구분도 안 되는 비쩍 곯은 말라깽이를 데리고 왔다. 앞으로 같이 있을 친구라며 친하게 지내라는데, 앞머리가 너무 길어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아서 첫인상은 최악이었던 것 같다.

새로 온 아이에게 관심도 없어서 그렇게 며칠이 지났다. 아침을 먹고 오랜만에 모래성이나 지으려고 놀이터에 가는데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하하하!”

“푸하하하!”

이상한 일이었다. 분명 웃음이 더 큰데 구역질 소리가 더 크게 들려왔다. 건물 모퉁이를 돌자 놀이터 근처에서 왜소하고 작은 아이가 흙바닥에 쓰러져 구역질을 하며 토하고 있는 게 보였다. 별로 먹은 게 없었는지 나오는 건 그저 희멀겋고 진득한 액체뿐이었다.

서너 명쯤 되는 아이들이 토하는 아이 주변에서 손가락질하며 웃고 있었다.

“야, 칼싸움 하자.”

그때 동욱이가 내 어깨를 툭툭 건드리며 말했다. 나는 인상을 찌푸리고 물었다.

“쟤네 왜 저래?”

“누구? 아, 쟤 며칠 전에 새로 온 애잖아.”

“그건 아는데…….”

“혜원이가 원장 선생님이 하는 얘길 들었는데, 새로 온 저 애가 자기 엄마 시체랑 같이 있었대.”

무슨 소리야, 그게? 나는 의아한 표정으로 동욱이를 보다가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 말라깽이는 여전히 헛구역질을 하고 있었다. 더러운 오물이 옷이며 손에 다 묻어 있었다.

“푸하하! 이 새끼 지금 토하고 있어!”

“으하하하!”

“악, 드러워!”

삐걱삐걱, 그네 흔들리는 소리가 들렸다.

“저 새끼, 자기 엄마 시체랑 같이 산다고 그랬어!”

거센 바람이 불어 삐걱삐걱 소리는 더욱 커졌다.

그때 누군가가 토하고 있는 애를 발로 차는 게 보였다. 머리카락이 길어서 얼굴도 잘 보이지 않던 애가 자기가 토한 토사물 위로 철퍼덕 엎어졌다.

“야, 더 밟아! 때려!”

“이 더러운 새끼가! 더 토해 봐!”

으하하하하하!

저건 좀 심한 거 아닌가. 이맛살을 찌푸리는데 바람을 타고 역한 냄새가 내가 있는 곳까지 나기 시작했다.

더러워.

나는 인상을 팍 쓰고 등을 돌렸다.

* * *

동욱이랑 싸웠다.

그 자식이 내가 만든 모래성을 무너뜨렸다. 그래 놓고 미안하다는 말도 없이 쳐웃기만 했다. 화가 나서 밀쳤는데 동욱이가 주먹질을 했다. 먼저 맞은 건 난데 원장 선생님한테 나만 혼났다.

물론 내가 더 많이 때려서 그런 거겠지만.

친구랑 싸웠다고 원장 선생님이 저녁도 안 줬다.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지금쯤이면 다른 애들은 다 밥 먹고 있을 텐데.

훌쩍거리며 창밖으로 시선을 돌리는데 어둠 속으로 동욱이가 보였다. 나는 이를 갈며 놈을 노려봤다. 그러다가 문득 동욱이가 맞은편에 있는 다른 애랑 분위기가 이상하다는 걸 알아차렸다. 저놈이 혹시 또 다른 애랑 싸우는 건가?

나는 신이 나서 원장 선생님에게 이르러 갔다.

“선생님!”

“선생님이 뛰면 어쩐다고 했지?”

“아니, 동욱이가……!”

“얼른 들어가서 자렴.”

원장 선생님은 내 말은 듣지도 않고 등을 휙 돌렸다. 어찌나 세게 등을 돌렸는지 찬 바람이 일 정도였다. 그 차가운 뒷모습에 눈물이 찔끔 나려는 걸 참고 나는 다시 씩씩거리며 동욱이에게 갔다.

“네가 그랬잖아!”

멀리서 동욱이가 앙칼지게 소리치는 게 들려왔다.

“네가 내 거 가져갔잖아!”

“…….”

“이 도둑놈!”

“…….”

“내 색종이 내놔!”

동욱이 맞은편에 있는 건 그 토하던 말라깽이였다. 말라깽이는 고개를 푹 숙이고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그저 동욱이가 뭐라고 하든 듣고만 있었다.

그보다 색종이라면……. 나는 주머니에 양손을 찔러 넣고 빽빽 소리치고 있는 동욱이에게 갔다.

“야.”

내 부름에 동욱이도, 말라깽이도 날 쳐다봤다. 그 비쩍 마른 놈은 암만 고개를 쳐들어도 머리카락이 워낙 길어 눈이 잘 보이지 않았다. 보는 내가 더 갑갑해 확 머리카락을 치워 버리고 싶었지만 너무 기름지고 떡이 져서 더러웠기에 만지고 싶지도 않았다.

“뭔데.”

동욱이 화가 난 표정으로 물었다. 가만 보니 입술도 찢어져 있었고, 눈가가 조금 찢어져 있었다. 팔뚝이랑 배엔 멍도 들어 있지 않을까?

나는 조금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말했다.

“네 색종이 내 방에 있는데.”

“뭐라고? 설마 범인은……!”

“어제 네가 두고 갔잖아.”

“내가 언제……!”

금방이라도 달려들 것처럼 소리치던 둥욱이가 아차 하고 입을 다물었다. 생각이 난 것 같았다. 나는 그 애를 비웃으며 말했다.

“네가 내 방에 두고 가 놓고 왜 괜한 애한테 화풀이야?”

“네가 무슨 상관이야!”

“네가 내 방에 두고 갔으면서 왜 쟤한테 소리 지르냐고!”

나는 그냥 동욱이랑 싸우고 싶을 뿐이었다.

오늘 저녁을 못 먹은 것도, 원장 선생님한테 혼이 난 것도, 그리고 지금 이렇게 억울하고 화가 나는 것도 전부 다 동욱이 때문이었으니까. 딱히 저 애 편을 드는 건 아니었다.

한참 말싸움을 하다가 결국 몸싸움으로 번졌다. 동욱이랑 치고받고 싸우고 있는데 원장 선생님한테 들켰다. 결국 둘 다 엄청 혼나고 독방에 갇혀 버렸다.

내일 아침을 굶으라는 소리에 세상이 무너지는 듯했다. 나는 저녁도 못 먹었는데. 결국 참다못해 울음이 터졌다. 내가 소리를 내어 울자 동욱이도 크게 울기 시작했다.

우는 와중에 날 빤히 쳐다보고 있는 말라깽이와 눈이 마주쳤다. 시커먼 머리카락 사이로 처음으로 나를 바라보는 새카만 눈동자를 볼 수 있었다.

독방에 갇혀 웅크린 채 잠이 들었다.

아침을 먹을 시간에 저절로 눈이 떠졌다. 밤새 울어서인지 눈이 팅팅 부어 제대로 떠지지 않았다. 잔뜩 낀 눈곱을 떼고 있는데 잠긴 문밖에서 사부작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혹시 원장 선생님일까? 어제저녁도 굶었으니 아침은 먹으라고 해 줄지도 몰랐다. 아직 잠이 덜 깨서 비몽사몽인 와중에도 나는 굳게 닫힌 문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하지만 내 기대와는 달리 문은 열리지 않았고 밖은 다시 조용해졌다.

“…….”

기대가 커다란 실망으로 바뀌는 순간,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나는 멋쩍은 표정으로 나무 바닥을 손톱으로 몇 번 긁다가 배를 부여잡고 웅크려 누웠다.

배가 고파서 죽을 것 같았다. 목이 말라서 입 안도 따가웠고, 원장 선생님한테 맞은 종아리도 너무 아팠다.

코끝이 시큰해지면서 눈가가 뜨거워졌다. 숨을 죽이고 있다가 견디지 못하고 훌쩍거리는데 드르륵 하는 소리가 들렸다. 화들짝 놀라 벌떡 일어서자 다시 조용해졌다.

뭐지? 귀신인가? 아닌데? 지금 아침인데?

혼란스러운 눈으로 문을 보고 있는데 다시 소리가 들렸다. 이번에는 탁탁 하고 뭔가 두드리는 것 같은 소리였다. 그러더니 문 위쪽에 네모나게 뚫려 있는 구멍으로 휙 뭔가가 올라왔다.

“악!”

그게 뭔지 확인하지도 못하고 나는 너무 놀라 짧게 비명을 지르며 뒤로 나자빠졌다. 양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엎드려서 부들부들 떨고 있는데 다시 소리가 들렸다.

나는 잔뜩 눈물이 고여서 슬쩍 고개를 들었다. 넓게 난 창살 너머로 시커먼 게 보였다.

“어?”

그 말라깽이였다.

무슨 의자를 밟고 까치발을 들고 있는지 얼굴이 보였다가 안 보였다가 했다. 얼이 빠져 있는데 창살 너머로 뭔가가 툭 떨어졌다.

그건 빵 봉지였다. 나는 바닥에 떨어진 빵을 멍청하게 쳐다봤다.

조금 전에 들렸던 것과 같은 드르륵 하는 소리가 났다. 그게 무슨 소린지 알 거 같았다. 이건 그 말라깽이가 의자를 끄는 소리였다.

“…….”

조용해졌다.

한참 기다려도 더 이상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나는 주춤주춤 문 쪽으로 가 떨어진 빵을 주웠다. 코끝이 찡해지면서 울컥 눈물이 났다. 나는 허겁지겁 봉지를 뜯어 빵을 먹었다.

* * *

계속 뒤에서 불편한 시선이 느껴졌다. 며칠은 눈이 마주치려 하면 후다닥 피하더니 얼마 전부터는 제발 좀 바라봐 달라는 듯 이제 눈이 마주쳐도 피하지도 않고 오히려 말 걸어 달라는 듯 불쌍하게 날 주시했다.

결국 하는 수 없이 물었다.

“왜 자꾸 쳐다봐?”

“…….”

내가 곁에 다가가 묻자 비쩍 마른 어깨가 움찔 떨렸다. 나무 꼬챙이 같은 팔과 툭 건드리면 부서질 것 같은 다리가 너무 애처롭게 보였다. 나는 인상을 팍 쓰고 다시 물었다.

“왜 자꾸 쳐다보냐고.”

푹 숙이고 있던 고개가 들렸다. 떡이 져 기름기가 흐르는 시커먼 머리카락 사이로 까만 눈동자가 보였다. 눈가 위로 그늘이 져서 그런지 엄청 암울해 보였다.

그러고 보니 아직 쟤 이름도 몰랐다. 이름이라도 물어볼까. 한 걸음 더 다가가 물어보려는데 순간 아까는 느껴지지 않던 악취가 콧속을 찔렀다. 나는 황급히 손으로 코와 입을 가리고 후다닥 뒤로 도망쳤다.

“아, 냄새!”

내가 빽 소리치자 그가 다시 고개를 푹 숙이고 어깨를 움츠렸다. 우물쭈물하는 게 좀 불쌍해 보였지만 진짜 냄새가 너무 나서 다가갈 수가 없었다.

원장 선생님은 더러운 거 진짜 싫어하는데. 나는 손가락으로 코를 막고 코맹맹이 소리로 말했다.

“야, 좀 씻어! 더러우니까!”

“…….”

“냄새나잖아!”

내가 말하면 말할수록 놈의 어깨는 점점 더 작고 왜소해져 갔다. 다시 고개를 팍 숙이고 몸을 웅크린 게 곧 죽을 작고 까만 병아리 같았다. 그때 우린 상관하지 않고 주변에서 이런저런 놀이를 하며 놀던 아이들이 우리 소리를 들은 건지 내 쪽으로 다가왔다.

“윽, 냄새!”

“와, 진짜 심하다!”

“더러워!”

몇몇 아이들이 내 쪽으로 서서 놈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비웃기 시작했다. 순간 아차 싶었지만 이미 늦었다. 이럴 생각은 아니었는데…….

나는 당황해서 말라깽이를 바라봤지만 푹 수그러진 고개는 들리지 않았다.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었는데 쪽팔려서 끝내 할 수가 없었다.

* * *

다음 날 아침, 다시 불편한 시선이 느껴졌다.

어차피 그놈일 게 뻔해서 그냥 무시하는데 어제 일이 떠올랐다. 좀 미안하기도 하고 민망하기도 해서 슬쩍 고개를 돌렸다.

“어!”

나는 놈을 보자마자 삿대질하며 크게 외쳤다. 내 외침에 그의 어깨가 다시 움츠러들었다. 나는 후다닥 놈에게 다가가 말했다.

“씻었네!”

“…….”

“거봐, 이젠 냄새 안 나잖아.”

내가 어깨를 팍팍 치며 말하자 놈이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 몰랐는데 자세히 보니 피부가 엄청나게 하얀 것 같았다. 혜원이보다 더 하얘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여기저기 살피는데 문득 놈이 의아한 표정으로 날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큼큼 헛기침을 하고 물었다.

“근데 너 이름이 뭐야?”

“…….”

“이름 뭐냐고, 이름. 네 이름.”

혹시 내 말 못 알아듣나? 귀가 안 들리나? 아님 말하기가 싫은 건가? 가만히 대답을 기다려도 끝내 입이 열리지 않아 나는 휙 돌아섰다.

그때 팔목이 덥석 잡혔다. 작은 떨림이 잡힌 살갗에 고스란히 느껴졌다.

“김우진…….”

작게 떨리는 목소리가 가느다랗게 흘러나왔다. 얼굴을 가린 머리카락 사이로 나를 쳐다보는 까만 눈이 보였다. 순간 기분이 이상해져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다가 문득 키도 덩치도 작고, 목소리도 작고 얼굴도 하얗고, 눈도 까맣고 머리카락도 긴 게, 꼭 여자애 같아서 그런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떨떠름한 얼굴로 김우진을 보며 물었다.

“야, 너 머리가 왜 그렇게 길어?”

“…….”

“어?”

내 말에 김우진이 우물쭈물 대답했다.

“엄마가…….”

“뭐?”

“안 잘라 줘서…….”

“너 몇 살인데?”

내가 어이없다는 듯 묻자 김우진이 내 팔목을 잡은 반대쪽 손을 들어 손가락 다섯 개를 폈다.

“다섯 살이야?”

“…….”

“너 바보냐? 어? 난 다섯 살 때 혼자 밥도 먹고 혼자 옷도 갈아입고 혼자 씻기도 했어!”

내 말에 김우진이 어깨를 움츠리며 고개를 푹 숙였다. 그리고 잡고 있던 내 손목을 스르륵 놓는데 벌벌 떠는 게 꼭 겁먹은 것처럼 보였다.

나는 아차 싶어 말했다.

“야, 내가 혼내는 게 아니라……. 그, 그러니까 우리는 이제 엄마도 없고 아빠도 없으니까 혼자 잘해야 된다고……. 그냥 그런 말인데…….”

더듬더듬 말하고 있는데 툭 하고 뭔가가 떨어졌다. 의아한 표정으로 허리를 굽혀 김우진의 얼굴을 바라봤다.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다시 당황하는데 말도 제대로 못 하던 김우진이 웅얼웅얼했다.

“엄마…….”

“…….”

“엄마아…….”

별로 큰 소리도 아니었다.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들리지도 않을 아주 작은 소리였다. 마치 숨을 쉬듯 엄마를 부르면서 눈물을 뚝뚝 흘리며 벌벌 떨고 있는데, 괜히 내가 울린 것 같아서 찝찝했다.

어쩔까 하다가 나는 김우진의 손목을 덥석 잡았다. 놀랐는지 김우진이 고개를 번쩍 들어 날 쳐다봤다. 복숭앗빛 뺨을 타고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따라와.”

나는 여자애 같은 김우진을 남자로 만들어 주리라 마음먹었다.

“…….”

“…….”

정말이었다. 진짜 나는 그냥 김우진을 남자로 만들어 주려고 했는데…….

“…….”

“…….”

김우진은 거울 속에 비친 제 모습을 멀뚱멀뚱 보며 그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들고 있던 가위를 뒤로 숨기면서 쭈뼛쭈뼛 뒷걸음치며 밤송이 같은 김우진의 눈치만 봤다.

땜빵이 하나, 둘, 셋…….

세 개나 있었다. 거기다 길이까지 들쭉날쭉해서 거지가 따로 없었다. 내가 계속 뒷걸음치자 김우진이 고개를 휙 돌려 날 쳐다봤다. 나는 화들짝 놀라 펄쩍 뛰며 가위를 놓쳤다.

미안하다고 해야 하나. 어떻게 말해야 하지? 그런 고민을 하다가 그냥 우겨 보기로 했다. 나는 김우진에게 다가가 뻔뻔하게 말했다.

“야, 이제 좀 남자 같네.”

“…….”

“워, 원래 남자들은 다 그런 거야! 그래야 사나이지!”

도대체 땜빵이랑 사나이가 무슨 상관이 있는 건지는 나도 모르겠지만 그냥 무조건 빡빡 우겼다. 그러자 김우진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다행히 별로 화가 난 것 같지 않아서 나는 김우진을 보며 활짝 웃었다.

“밥 먹으러 가자.”

내가 손을 뻗으며 말하자 김우진이 새카만 눈망울로 날 빤히 보다가 내밀어진 손을 붙잡았다. 보드랍고 작은 손가락이 내 손가락 사이로 꽉 얽혔다.

그 뒤로 우린 거의 매일 같이 놀았다. 밥도 같은 자리에 앉아서 먹고, 놀 때도 같이 놀고, 잘 때도 같이 잤다. 여전히 숫기도 없고 겁도 많았지만 그래도 처음보다는 많이 나아졌다.

동욱이랑도 친해졌고, 혜원이랑도 친해졌고, 다른 아이들과도 싸우지 않고 잘 지냈다. 그렇게 친구가 많이 생겼는데도 김우진은 나만 졸졸 쫓아다녔다. 김우진은 내가 없으면 아무것도 못했으니까. 밥도 먹지 않고 자지도 않고 놀지도 않았다. 다른 아이들과 이야기할 때도 옆에 내가 있어야만 했다. 귀찮을 때도 있었지만 좋을 때가 더 많았다.

다른 누군가가 날 필요로 해 준다는 느낌은 처음이었으니까.

“너 개구리 먹어 봤어?”

“아니…….”

김우진이 불안한 눈으로 도리질을 쳤다. 나는 악마처럼 크크 웃으며 개구리 몇 마리를 잡았다. 그리고 원장 선생님 몰래 부엌으로 가 냄비에 물을 받았다.

“이거 들키면 너랑 나랑 둘 다 죽어.”

“죽어?”

“그래, 원장 선생님이 부엌엔 절대 못 들어오게 하거든.”

나는 물을 받은 냄비 안에 잡은 개구리를 퐁당 빠트렸다. 그리고 뚜껑을 닫고 말했다.

“너 이거 다 먹어야 돼.”

“…….”

“어?”

“으응…….”

김우진이 울상을 지었다. 그 표정이 너무 웃겨서 나는 돌아서서 어깨를 움츠리고 소리 죽여 큭큭 웃었다.

곧 물이 팔팔 끓었다. 가스레인지를 끄자 김우진이 긴장한 듯 숨을 꿀꺽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대충 잘 익은 개구리 한 마리를 꺼내 식탁 위에 놓았다. 모락모락 김이 나는 개구리를 보며 김우진이 내 옷깃을 잡고 내 뒤로 숨어 버렸다.

뭐가 그렇게 무서운지 벌벌 떨고 있었는데 그게 또 그렇게 웃겼다.

“야, 빨리 먹어 봐.”

“형아…….”

“맛있다니까?”

“…….”

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끄덕이자 김우진이 입술을 꾹 다물고 슬금슬금 내 뒤에서 나왔다. 김우진은 벌벌 떨면서 개구리 쪽으로 손을 뻗었다.

“다리만 먹어야 해. 알겠지?”

“…….”

“응?”

“으응, 근데 형아…….”

할 말이 있다는 듯 울먹울먹한 얼굴로 김우진이 날 올려다봤다. 내가 ‘왜?’ 하고 묻자 가만히 날 보던 김우진이 울상을 짓더니 고개를 저었다. 기어이 개구리 뒷다리를 집은 김우진이 입을 벌렸다.

“흑…….”

그때 억눌린 울음소리가 들렸다. 김우진이 입을 벌려 혀를 쭉 내밀고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어찌나 서러워 보이던지 나는 화들짝 놀라 그의 손에서 개구리를 빼앗았다.

“야, 너 왜 울어?”

“으어엉…….”

“왜 그래? 어?”

“흐엉…….”

김우진은 대답도 안 하고 계속 울기만 했다. 꼬물거리면서 내 옷깃을 잡은 김우진이 펄럭거리는 내 옷에 얼굴을 묻었다. 나는 당황한 얼굴로 김우진을 내려다보다가 개구리 뒷다리를 잡아 뜯었다.

울다가 그걸 본 김우진이 화들짝 놀라며 잡고 있던 내 옷깃을 놓았다. 두어 걸음 뒤로 물러선 김우진을 보며 나는 보란 듯이 개구리 뒷다리를 입에 물었다.

“이거 봐. 진짜 맛있다니까? 어?”

“…….”

“이거 진짜 맛…….”

“끄아아아앙!”

김우진은 귀신이라도 본 듯 바닥에 엎어져 대성통곡을 했다. 처음엔 당황했지만 우는 김우진을 보고 나도 따라 눈물을 줄줄 흘리며 바닥까지 팍팍 치면서 박장대소했다.

* * *

며칠 뒤, 고아원에 사람들이 잔뜩 왔다.

봉사 단체라고 하던데 오기만 하면 우리를 길게 세워 놓고 단체 사진을 찍거나 모르는 사람에게 안겨서 사진을 찍어야 했다. 자꾸만 웃으라고 하고, 이쪽을 보라고 하는 게 귀찮아서 나는 김우진을 데리고 놀이터 미끄럼틀 밑으로 숨어 버렸다.

“저 사람들 갈 때까지 여기에 숨어 있자.”

“왜 숨어?”

“자꾸 귀찮게 하잖아. 사진도 찍고.”

내가 기분 나쁘다는 듯 말하자 내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김우진이 우물쭈물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기분이 나빠져 물었다.

“너 설마 가고 싶어?”

“아니, 그게…….”

“거기에 가서 사진 찍고 막 웃고 그러고 싶어?”

내 물음에 김우진은 머리카락이 팔락거릴 정도로 세차게 고개를 흔들었다. 그 모습에 약간 마음이 누그러져서 아까보다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럼 왜?”

“아까 들었는데 과자 준다고 해서…….”

“과자?”

김우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걸 보니 저 사람들이 올 때마다 사탕이나 과자 같은 걸 가지고 왔던 게 떠올랐다. 나도 먹고 싶기는 했지만……. 그래도 거기에 가고 싶지는 않았다.

내가 아무 말이 없자 가만히 날 보던 김우진이 말했다.

“형아, 그럼 내가 가서 과자만 받아 올까?”

“네가?”

“응.”

살짝 마음이 흔들렸지만 김우진이 과자를 제대로 가지고 올 수 있을지 걱정이었다. 나는 불안한 눈으로 김우진을 보다가 물었다.

“너 혼자 못 가.”

“왜?”

“너는…….”

막상 말을 하려니 딱히 할 말이 없었다. 나는 한참 생각하다가 아, 하고 말했다.

“오다가 잡히면 어쩔래?”

“어……. 그러면 쉬하러 간다고 거짓말하고 오면 안 돼?”

“…….”

똑똑한데?

나는 조금 놀란 얼굴로 김우진을 보며 감탄하다가 고개를 흔들었다. 그래도 불안한 건 여전했다. 그냥 같이 갈까 고민하고 있는데 김우진이 벌떡 일어나더니 내가 잡을 새도 없이 앞으로 뛰어나갔다.

“나 갔다 올게!”

앞으로 후다닥 뛰어가는 걸 보다가 나는 김우진을 불렀다.

“야!”

내 부름에 김우진이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봤다.

“조심해!”

김우진이 활짝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더니 벽에 바짝 붙어서 그늘 아래로 조심조심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자기 딴에는 숨어서 움직이는 거라고 생각해서 그러는 것 같은데 하나도 숨겨지지는 않았다.

아무튼 불안한 마음으로 손톱을 물어뜯으며 김우진을 기다렸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모르겠지만 더 이상 기다리고만 있을 수가 없어서 나도 가려고 벌떡 일어나는데 멀리서 김우진이 보였다.

“형아!”

김우진은 품에 뭔가를 안고 헉헉 소리를 내면서 내게 뛰어오고 있었다. 나는 김우진을 마중 나갔고 놀이터 한가운데에서 만난 우리는 손을 잡고 다시 미끄럼틀 아래로 숨었다.

“안 들켰어?”

“응, 들어갔는데 안 받았다고 하니까 줬어.”

그러면서 김우진은 품속에 소중히 안고 온 초코파이 하나를 꺼냈다.

“형아, 이거 먹어.”

김우진이 내게 초코파이를 건넸다. 나는 두근두근하는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초코파이의 껍질을 까서 반으로 나눴다. 약간 한쪽이 더 크기는 했지만 어쨌든 최대한 부스러기가 떨어지지 않게 나눈 후 조금 큰 걸 김우진에게 주며 말했다.

“너도 먹어.”

“응.”

내가 한입 크게 먹자 김우진도 초코파이 반쪽을 크게 한입 물었다. 숨어서 먹어서 그런지 더 맛있었다.

“맛있다. 그치?”

김우진이 웃으며 내게 물었다. 나보다 입도 작으면서 벌써 다 먹은 건지 초코파이는 보이지 않았다. 얜 씹지도 않고 삼키나? 아니면 혹시 배가 고픈 건가 싶어서 물었다.

“너 벌써 다 먹었어?”

“응.”

“배고파?”

내 물음에 김우진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나는 조금 고민하다가 아까 한입 먹은 초코파이를 쳐다봤다. 반을 나누고 한입 먹어서 절반이 또 사라져 아주 조금밖에 남지 않은 초코파이를 보다가 김우진에게 내밀었다.

“이것도 먹을래?”

“형아는 안 먹어?”

“난 됐어.”

김우진이 머뭇거리면서 고민하는 듯하더니 초코파이를 받아 한입에 먹었다. 정말 배가 고픈 건지 몇 번 오물거리지도 않고 삼킨 김우진이 날 보며 웃었다.

“형아, 고마워.”

“…….”

별것도 아니라 민망해서 잠깐 시선을 피하는데, 김우진이 몇 번 입맛을 다시는 게 보였다. 아직도 배가 고픈 게 틀림없었다. 하지만 김우진이 다시 과자를 가지러 갔다 오겠다는 소리는 하지 않았다. 그냥 말없이 내 옆에 같이 쪼그리고 앉아서 눈만 깜빡거렸다.

“…….”

“…….”

맛있다. 그치?

조금 전 김우진이 웃으면서 하던 말이 다시 떠올랐다.

형아, 고마워.

또 웃으면서 했던 말도.

“…….”

나는 가만히 모래 바닥을 보다가 벌떡 일어났다. 그러자 김우진도 날 따라 일어나더니 내 옆에 섰다. 나는 고아원 건물을 노려보다가 말했다.

“가서 과자 더 달라고 하자.”

“우린 벌써 먹었잖아.”

“또 달라고 하면 되지.”

“하나씩밖에 못 먹는다고 하던데…….”

시무룩하게 하는 말에 나는 김우진의 손을 잡고 뛰었다.

“내 거는 아직 안 받았잖아.”

“형아 거?”

김우진이 되물었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 걸 받아서 주면 또 맛있게 먹으면서 고맙다고 말할 것이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는데 어쩐지 조금 들뜨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김우진의 손을 잡고 안으로 들어가자 처음 보는 사람들이 잔뜩 있었다. 아이들은 놀이방에 다 모여 한쪽에 서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너 아까 초코파이 어디서 받았어?”

“여기에서.”

김우진이 나를 데리고 조금 더 안쪽으로 갔다. 그리고 그때 누군가가 우리를 발견하고 물었다.

“너희 과자 받았니?”

“저 아직 안 받았어요.”

나는 얼른 손을 들고 말했다. 그러자 처음 보는 아줌마가 바구니에서 초코파이를 꺼내 내게 주었다. 초코파이를 보고 활짝 웃는데 아줌마가 김우진을 보며 물었다.

“너는?”

“아까 받았어요.”

솔직하게 말하는 김우진을 돌아봤다. 아줌마가 바구니에 다시 손을 넣는 게 보였다. 불안한 예감이 들어서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하나 더 먹어도 돼. 먹을래?”

“네!”

김우진이 초코파이를 받더니 고개를 들어 아줌마를 올려다보며 감사하다고 말했다. 나는 고개를 숙여 내 손에 있는 초코파이를 내려다봤다.

“…….”

“서주야!”

날 부르는 소리에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리자 원장 선생님이 내 쪽으로 오고 있는 게 보였다.

“너 어디에 있었니?”

“…….”

“어서 이리 와. 우진이도.”

원장 선생님 손에 붙잡혀 조금 빠르게 아이들이 있는 쪽으로 걸어가고 있는데, 김우진이 내 뒤를 쫓아왔다. 그때 우리를 발견한 다른 사람이 나와 김우진을 보더니 원장 선생님에게 물었다.

“얘는 머리가 왜 이래요?”

“머리요?”

우리는 동시에 김우진을 쳐다봤다. 갑자기 시선이 쏠리자 주춤거리던 김우진이 내 뒤로 와 옷깃을 붙잡았다. 얼마나 놀랐는지 들고 있던 초코파이도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아휴, 애들이 장난치다가 좀 잘랐나 봐요.”

“그럼 이 애는 그냥 여기에 두고……. 일단 얘만 좀 찍을게요.”

“네네, 그러세요.”

원장 선생님이 나를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밀었다. 떠밀려 걸으며 고개를 돌리자 김우진이 나를 따라오려고 하는 게 보였다. 하지만 원장 선생님에게 붙잡혀 오지를 못했다.

“우진아, 너는 저기에 가서 과자 먹고 있어.”

나는 떠밀려 가면서도 앞은 보지 않고 계속 김우진을 바라봤다. 고개를 끝까지 돌려서 쳐다보자 잠깐 나를 보던 김우진이 머뭇거리면서 바닥에 떨어진 초코파이를 줍는 게 보였다.

원장 선생님이 초코파이 껍질을 까서 김우진에게 건네주었다.

“여기에 서서 움직이지 말고 카메라 쳐다보면 돼. 웃으면서.”

“…….”

조금 전 우리에게 초코파이를 줬던 아줌마가 김우진에게 가더니 사탕도 몇 개 주는 게 보였다. 김우진은 사탕을 한참 보다가 고개를 들고 아줌마를 쳐다봤다.

“자, 여기 보고! 얘들아. 여기 보고, 여기! 김치. 웃자, 김치.”

너무 멀리에 있어서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들리지 않았다.

* * *

며칠이 지났다.

김우진은 내가 없이 혼자 떨어져 있으면 구석에서 잘 움직이지도 않았다. 누군가가 와서 말이라도 걸면 우물쭈물하느라 대답도 못 하고 울먹거리다가 나를 찾느라 고개만 여기저기 돌렸다. 그리고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날 발견하면 나에게 달려왔다.

며칠이 지났다.

김우진은 이제 혼자 있다가 나에게 달려오기 전에 아이들과 몇 마디 나눌 수 있게 되었다.

또 며칠이 지났다.

비가 아주 많이 오는 날, 천둥 번개가 쳤는데 김우진이 울었다. 원장 선생님도 있었고, 아이들도 많았지만 김우진이 내게 와서 안겼다.

며칠이 또 지났다.

원장 선생님이 고구마를 쪄 주셨다. 껍질을 까서 김우진에게 주려고 했는데 원장 선생님이 먼저 줬다. 김우진에게 주려고 했던 고구마를 몇 입 먹다가 말았다.

다시 며칠이 지났다.

김우진이랑 크레파스로 그림을 그리고 놀았다. 아이들이 얼음땡을 하자고 불렀는데 가지 않았다. 아이들이 김우진을 데리고 가 버렸다. 혼자 스케치북을 들고 방으로 가 잠이 들었는데 김우진이 내 옆에서 자고 있었다.

그러고 며칠이 지났다.

감기에 걸려서 선생님이랑 병원에 다녀왔다. 주사를 맞고 돌아오자 김우진이 아이들과 놀고 있었다. 주사 맞은 곳이 너무 아파서 많이 울었다.

며칠이 지났다.

김우진에게 말하지 않고 뒷산 나무 아래에 숨었다. 한참 혼자 있다가 돌아가자 나를 본 김우진이 달려와 안겼다. 내가 없어져서 김우진이 혼자 훌쩍거렸다고 동욱이가 말해 줬다. 저녁에는 미끄럼틀 아래에 숨었다. 이번에는 김우진이 나를 찾았다.

며칠이 지나고, 다시 지나고 또 지나자 봉사 단체가 과자와 학용품을 잔뜩 사서 찾아왔다.

나랑 김우진은 이번에도 미끄럼틀 아래에 숨었다. 그리고 김우진에게 절대 나오지 말라고 여기에서 기다리라고 한 뒤 혼자 안으로 들어가 과자 두 개를 받았다. 하나는 다른 아이에게 주고, 하나만 들고 미끄럼틀 아래로 갔다. 나는 먹지 않고 과자 하나를 전부 주자 김우진이 웃었다.

김우진이 먹는 걸 보고 있는데 원장 선생님이 우리를 찾아냈다. 우리는 안으로 들어가 사진을 찍고 누군가에게 안겨서 또 사진을 찍고 학용품을 받는 모습도 찍고, 계속 감사하다고 말하며 행복하게 웃는 얼굴로 사진을 찍었다.

두 번째 봉사 단체가 다녀간 뒤, 원장 선생님은 매일 김우진만 세수를 했는지, 양치질은 했는지, 옷은 깨끗하게 입는지 확인했다. 머리카락은 예쁘게 자라서 땜빵은 사라진 지 오래였고 김우진은 더 이상 비쩍 곯은 말라깽이가 아니었다.

여자애들은 끝말잇기를 하고 색종이를 접을 때마다 김우진을 찾았고, 남자애들은 술래잡기를 하거나 칼싸움을 할 때마다 김우진을 찾았다. 원장 선생님은 밥을 먹을 때 종종 김우진을 불렀고, 아이들과 팀을 나눠 이어달리기를 할 때에도 우리는 같은 팀이 되지 않았다.

아주 가끔, 때때로 이렇게 혼자 있을 때마다 나는 구석에 웅크리고 나를 찾던 김우진이 생각났다.

그리고 어느 날, 꿈을 꿨다.

엄마랑 아빠가 나오는 꿈이었다. 우리는 같이 집에서 밥을 먹고 있었고 내 옆에서는 선풍기가 돌아가고 있었다.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노랫소리에 맞춰 숟가락으로 상을 치다가 혼났지만 엄마도 아빠도 나도 웃고 있었다.

사랑한다는 소리를 듣고 안기고 같이 놀고 그러다가 눈을 떴다.

잠에서 깨어나 내 옆에서 자고 있는 김우진을 바라보면서 나는 마침내 깨달았다.

나는 김우진이 너무 무서웠다.

* * *

나도 모르게 자꾸만 김우진을 피하게 되었다.

“형아, 나랑 그네…….”

“저리 가.”

김우진과 말을 섞는 날도 점점 줄어들었다.

처음엔 울먹거리던 김우진도 어느 순간부터는 담담해졌다. 다른 아이들과 가끔 어울리기도 했고, 내가 없어도 밥도 잘 먹고 잠도 잘 잤다. 김우진이랑 잘 지내면 원장 선생님이 잘해 줘서 아이들 사이에서 김우진은 인기인이었다.

그래도 김우진은 나에게 말을 걸고 싶어서 매일 내 주변을 서성거렸다. 그러면 다시 같이 놀기도 하고 밥도 같이 먹고 잠도 함께 잤다. 그러다가 또 다른 애들이랑 놀거나 뭔가 내가 알 수 없는 이야기들을 하기 시작하면 또 무시해 버렸다.

한겨울엔 혼자만 장갑을 끼고 목도리를 맸다. 원장 선생님이 준 것이었다. 처음엔 장갑과 목도리를 내게 줬던 김우진은 내가 그 장갑과 목도리를 바닥에 던져 버리자 두 번 다시 내게 건네지 않았다.

그런 걸 보면 먼저 변한 건 난데, 변한 김우진이 너무 싫었다.

김우진이 일곱 살이 되던 날, 그림 대회가 열렸다.

1등은 당연히 내가 할 줄 알았다. 나는 고아원에서 제일 그림을 잘 그렸고, 여태껏 한 번도 1등을 놓쳐 본 적이 없었으니까. 게다가 요즘엔 계속 방에서 그림 그리기만 해서 더욱 자신 있었다.

1등을 하면 초코파이도 받고 음료수도 받는데 반은 김우진한테 줄까? 문득 어떤 날의 기억이 떠올라서 고민했다. 초코파이를 주면서 오랜만에 같이 놀자고 해 볼까? 반만 주지 말고 전부 다 줘야겠다. 그렇게 다짐하고 잠이 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그림 대회가 열렸는데, 1등은 내가 아니라 김우진이 했다.

“형아!”

김우진은 보드라워 보이는 뺨을 발갛게 물들이고 내게 달려왔다. 한 손엔 초코파이와 음료수를 들고. 넋을 놓고 김우진을 보고 있는데 내게 초코파이와 음료수를 건넸다.

“형아, 이거…….”

수줍게 내미는 손가락 끝이 작게 떨리고 있었다. 식은땀까지 흘리며 긴장하고 있는 김우진을 보며 초코파이와 음료수를 받았다. 그걸 보며 김우진이 우는 것도 웃는 것도 아닌 이상한 표정으로 날 쳐다봤다.

뭐라고 하려는 듯 크게 숨을 들이켜는 걸 마지막으로 나는 등을 돌려 김우진에게 받은 초코파이와 음료수를 혜원에게 줬다.

“이거 너 먹어.”

“어? 진짜? 정말?”

웃는 혜원이를 보며 나도 따라 웃었다. 아니면 울 것 같아서.

* * *

김우진이 점점 더 미워졌다. 별것도 아닌 일에 짜증이 났고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상처 난 자존심이 아물지 않았다.

“형아.”

김우진은 언제부턴가 웃지 않게 됐다. 그냥 새카만 눈을 뜨고 하얀 얼굴로 날 쳐다볼 뿐이었다. 날 부르고 쳐다보고 처음 이곳에 왔을 때처럼 음습하고 왜소한 아이로 돌아갔다.

“나 다쳤어.”

하루하루 상처 입지 않은 날이 없었다. 김우진은 매일 다쳤는데 항상 피를 흘리며 내게 왔다. 내가 아무런 반응이 없자 이번엔 이상한 소리를 했다.

“매미 왜 죽이면 안 돼?”

내가 계속 무시해도 김우진은 끊임없이 물었다. 그러다 어느 날 김우진이 들고 있던 매미를 떨어뜨렸다. 잘못해서 바닥에 떨어진 매미를 밟은 김우진이 아차 하고 뒤로 물러섰을 때 이미 매미는 밟혀 죽은 뒤였다.

그걸 보며 내가 놀라 헉하고 숨을 들이켜자 김우진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날 쳐다봤다.

“형아, 매미 왜 죽이면 안 돼?”

다음 날에도 김우진은 똑같이 매미를 잡아와 물었다. 대답하지 않자 매미를 밟아 죽였다. 내가 움찔 놀라는 걸 보며 김우진이 다시 물었다. 왜 안 돼? 하루, 이틀, 김우진이 맴맴 우는 살아 있는 매미를 죽이는 일이 반복됐다.

결국 먼저 포기한 건 나였다.

“매미 왜 죽이면 안 돼?”

“그럼 매미가 아프잖아.”

내 말에 김우진이 죽다 살아난 사람처럼 숨을 내뱉었다.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벌벌 떨리는 손가락으로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내 옷깃을 쥐었다.

“형아, 나랑 같이 자자.”

“뭐? 갑자기 무슨 소리야?”

매미 얘기 하다가 갑자기 뭔 소리야. 내가 인상을 팍 쓰자 김우진이 마른 눈으로 날 올려다보며 말했다.

“무서운 꿈 꿨어.”

겁에 질린 김우진을 보다가 결국 같이 잤다.

하지만 그것도 그날뿐이었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나는 점점 김우진이 싫어졌다. 김우진이 싫은 게 아니라 이젠 내가 없어도 뭐든 다 할 수 있는 김우진이 싫었다.

시간이 흘러 이제는 내가 왜 김우진을 싫어하게 된 건지, 왜 그러려고 했는지도 잊히고 단순히 밉다는 감정만 남게 되었을 무렵 첫눈이 내렸다. 악에 받칠 대로 받친 나는 그날도 어김없이 김우진을 골려 줄 계획을 세웠다.

* * *

눈이 내리고 있었다. 소리도 없이 사박사박 눈이 쌓이던 날, 나는 누렇게 변색된 종잇조각에 글을 썼다. 악의에 가득 차, 이를 박박 갈면서, 너무 힘이 들어가 몇 번이나 연필심이 부러졌지만.

[여기서 기다려. 꼭 기다려야 돼.]

나는 끝내 문장을 완성했다.

* * *

뒷산 깊은 곳에는 여름에 개구리를 잡고 놀던 곳이 있었다. 그곳을 아는 건 나와 김우진뿐이었다. 나는 아무도 보지 않는 틈을 타 김우진에게 그곳으로 오라는 말을 전했다.

물론 그 전에 나무 밑동에 쪽지를 끼워 뒀다. 내가 먼저 말을 걸자 김우진이 눈물을 글썽거리면서 고개를 끄덕거렸다. 웃는 것 같기도 하고, 우는 것 같기도 한 그 이상한 얼굴을 보는 건 오랜만이라 마음이 약해졌지만 굳게 마음을 다잡았다.

날이 저물었다. 김우진은 보이지 않았다.

“우진이 못 봤니?”

“못 봤어요.”

“아까부터 없던데…….”

“자는 거 아니에요?”

“근데 걔 좀 이상한 거 같지 않아?”

“네가 더 이상하거든?”

금세 화제가 바뀌었다. 원장 선생님은 한숨을 내쉬며 식당을 나갔다. 나는 말없이 묵묵히 밥을 먹으며 태연히 앉아 있었다. 지금쯤이면 무서워서 벌벌 떨고 있겠지?

밥 다 먹으면 슬슬 데리러 가야겠다. 내가 데리러 가면 엉엉 울면서 ‘형아!’ 하고 달려올 게 분명했다. 그런 생각을 하자 늘 한구석이 텅 비어 있던 상실감이 조금은 없어지는 듯도 했다.

“얘들아, 지금 눈 많이 오니까 절대 밖에 나가면 안 돼. 알겠니?”

그때 원장 선생님이 엄하게 말했다. 나는 의아한 표정으로 선생님을 보다가 별생각 없이 마저 밥을 먹었다. 그리고 밥을 다 먹은 뒤 창밖을 보는데 온 세상이 하얗게 눈으로 뒤덮여 있었다.

“…….”

분명 조금 전까지만 해도 이렇지 않았다. 눈보라가 휘몰아쳐 사선으로 흩날리는 눈발을 보며 나는 당황했다.

“우진이 얜 도대체 어딜 간 거니.”

원장 선생님이 걱정스럽다는 듯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나는 고개를 휙 돌려 원장 선생님을 쳐다봤다. 식은땀이 뻘뻘 나기 시작했다. 심장이 두근두근 세게 뛰어서 숨이 차올랐다.

“왜 그러니?”

그런 날 보며 원장 선생님이 의아한 듯 물었다. 우진이가 산에 있어요. 나를 기다리고 있는데…….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어서 들어가서 씻고 자렴.”

혼날까 봐 말할 수가 없었다. 무서웠다.

다음 날 김우진은 죽기 직전에 발견됐다. 죽지 않은 게 기적이라고 했다. 김우진은 곧바로 병원으로 이송됐다.

그리고 며칠 뒤 김우진은 어느 돈 많은 부잣집으로 입양됐고, 나는 내가 김우진에게 했던 짓이 들켜서 몇 날 며칠을 혼나다가 다른 고아원으로 옮겨 갔다.

시체처럼 축 늘어져 앰뷸런스에 실려 가는 새파랗게 질린 창백한 그 모습이 내가 마지막으로 본 김우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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