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장 (6/28)

5장

그 애는 늘 어딘가 이상했다. 밥을 먹을 때도, 놀이터에서 흙장난을 할 때도, 그리고 잠을 잘 때에도.

매일 그림자처럼 내 곁을 맴돈다는 걸 모르지 않았다. 내 관심을 끌기 위해 이상한 짓을 하고 있다는 것도, 나와 친하게 지내던 다른 아이를 싫어한다는 것도 나는 전부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내가 그 이상한 애를 신경 쓰지 않고 무시했던 건 단순히 귀찮아서였다.

아니, 사실대로 말하면 귀찮았다기보다는 우쭐함이 더욱 컸다.

그 이상했던 애는 굉장히 예뻤다. 새카맣고 동그란 눈동자도, 백옥처럼 새하얀 피부도, 비단결처럼 고운 머리카락도, 그 애는 하물며 손가락 끝까지도 단정하고 아름다웠다.

나만 보면 혀를 차고 욕을 했던 불독 원장도 그 이상한 애에겐 과자를 줬고, 나이가 어림에도 불구하고 부모에게 버림받아서인지 마음의 벽이 높았던 아이들도 그 이상한 애에겐 웃어 줬다.

한겨울에도 장갑을 끼고 있는 건 고아원에서 그 이상한 애가 유일했다. 그런데 그 이상한 애가 내게 말을 걸었다. 내게 말을 걸고, 내 곁을 맴돌고, 내 뒤를 쫓고, 내 눈치를 살폈다.

오직 내게만 그랬다.

하지만 왜? 언제부터? 그 애가 처음부터 내게 그랬었나? 아니, 그건 아니었던 것 같다.

그럼 언제부터였지?

* * *

눈이 내리고 있었다. 소리도 없이 사박사박 눈이 쌓이던 날, 나는 누렇게 변색된 종잇조각에 글을 썼다. 악의에 가득 차, 이를 박박 갈면서 너무 힘이 들어가 몇 번이나 연필심이 부러졌지만.

[여기서 기다려. 꼭 기다려야 돼.]

나는 끝내 문장을 완성했다.

* * *

서서히 정신이 깨어났다. 하지만 눈을 뜨지 않았다. 머리가 깨질 것처럼 아파 왔다.

꿈속에서의 나는 아주 어린아이였다. 고아원에 있을 때의 꿈을 꾼 건 그곳을 나온 뒤로 처음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꿈속의 기억은 점점 바람 앞에 불씨처럼 사그라졌다. 조금 전까지 기억하고 있던 것도 기억나지 않았고, 내가 꿈속에서 뭔가를 했던 것 같은데 그것조차 이젠 잘 기억나지 않았다.

어쩌면 계속 이랬던 걸까? 어릴 적 꿈을 꾼 적은 많았지만 지금처럼 나는 늘 순식간에 잊어버렸던 걸지도 몰랐다. 어렸을 때의 일은 떠올리고 싶지 않으니까…….

그냥 어렴풋이 좋았던 기억이 단 하나도 없던 시절이라는 것만 생각하면서 무의식중에 계속 끊임없이, 부단히도 잊으려 애를 썼다.

그리고 실제로 이제 고아원에 있었을 때의 기억은 거의 없었다.

내가 무슨 꿈을 꾼 건지 완전히 잊고 의미 없이 한숨을 내쉬며 몸을 뒤척이는데, 다리 사이가 뜨겁다는 걸 깨달았다. 그게 무엇인지 깨닫기도 전에, 목덜미 쪽에 더운 숨결이 닿았다.

감고 있던 눈을 번쩍 뜨자 이제껏 들리지 않았던 소리가 들려왔다. 귓가를 어지럽히는 헐떡거림과 젖은 마찰음, 그리고 날 부르는 소리.

“흣……. 흑, 아으…….”

헐떡거리는 젖은 소리가 무엇인지 단박에 알 수 있었다. 뻣뻣하게 몸을 굳히고 슬그머니 고개를 돌리자 땀이며 눈물로 젖어 있는 정우진의 얼굴이 보였다.

정우진은 흐리멍덩한 눈빛으로 날 보더니 눈을 질끈 감았다. 다리 사이로 뜨겁고 끈적한 것이 퍼져 나가는 게 느껴졌다. 정우진은 커다랗게 숨을 내쉬며 몸에 힘을 쭉 뺐다. 그러더니 날 보며 눈꼬리를 사르르 접었다. 열려진 창틈으로 들어오는 햇빛과 함께 정우진이 빛나고 있었다.

“선배, 일어났어요?”

“…….”

“많이 피곤했나 봐요. 벌써 열 시 넘었어요.”

“…….”

“배 안 고파요?”

다리 사이가 끈적거렸다. 아직도 가시지 않는 열기가 내 몸에 끈적끈적하게 들러붙어 내 몸을 덥혔다. 놀라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있는데 엉덩이 쪽에 커다랗고 딱딱한 것이 슬슬 문질러지는 게 느껴졌다. 기다란 막대기 같은 게 엉덩이 사이를 문지르자 허리가 부르르 떨렸다.

“선배, 아직 잠 덜 깼어요?”

정우진이 기분 나쁘게 젖은 손으로 날 끌어안으며 내 등에 이마를 비볐다. 나는 그제야 숨을 헉 들이켜고 벌떡 몸을 일으켰다. 하반신만 겨우 가리고 있던 이불이 떨어지자 흉측할 정도로 커다란 성기에 엉망으로 얽혀 있는 정액이 보였다.

나는 사색이 된 얼굴로 고개를 숙여 내 다리를 내려다봤다. 구겨진 하얀 셔츠 사이로 붉게 달아오른 허벅지, 그리고 희뿌연 정액. 나는 잇새로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정우진에게 시선을 돌렸다.

“이 씨발…….”

“안 넣었어요.”

“뭐?”

“그냥 비비기만 했는데…….”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날 쳐다보는 정우진을 보며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저 씨발놈이 지금 무슨…….

나는 침대 밑으로 어기적어기적 내려왔다. 코끝을 찌르는 역겨운 냄새 때문에 속이 울렁거렸다. 내가 침대 밑으로 내려오자 정우진이 아직도 빳빳하게 서 있는 성기를 가릴 생각도 하지 않고 나를 따라 침대에서 내려왔다.

“선배, 어디 가요?”

신경 끄라고 욕이라도 퍼붓고 싶었지만 입을 꾹 다물었다. 이젠 대꾸하기도 싫었기 때문이다. 입술을 깨물고 어기적거리면서 욕실로 가는데 정우진이 내 뒤를 쫓아왔다.

그는 내 발자국을 밟으며 쉴 새 없이 떠들었다.

“제가 씻겨 줘도 돼요?”

“…….”

“선배.”

“…….”

“아직 화 안 풀렸어요?”

욕실 앞에 도착한 나는 정우진의 면전에서 문을 쾅 닫았다. 그리고 등을 돌려 샤워기를 트는데 달칵하고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제 면전에서 문이 닫혔는데도 잘만 들어온다. 나 같으면 존나 열 받아서 안 들어올 것 같은데.

씨발, 씨발. 속으로 욕을 하면서 다리 사이에 들러붙어 있는 정액을 씻고 있는데 정우진이 내 손에서 샤워기를 빼앗아 갔다.

“아직 화 안 풀렸어요? 그보다 손은 안 아파요?”

“…….”

손이 아픈 것보다 네가 좆같은 게 더 문제야. 내가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정우진은 조심스러운 손길로 내 허벅지를 쓸었다. 살갗에 붙어 있던 정액을 말끔하게 씻어 내고, 샤워기를 잠갔다.

샤워기 끝에서 물이 뚝뚝 떨어졌다.

“선배, 왜 아무 말도 안 해요? 아직 화 안 풀린 거예요?”

세수도 하고 머리도 감고 싶고 샤워도 하고 싶은데, 정우진은 도통 나갈 생각이 없어 보였다. 나는 그와 시선도 마주치지 않고 등을 돌렸다. 손을 뻗어 수건을 잡으려는데 정우진이 내 손끝을 낚아챘다. 젖어 있는 내 손가락 끝에 입을 맞추며 정우진이 다시 물었다.

“내가 잘못했어요.”

힘을 줘 손을 빼낼까 고민하다가 그냥 가만히 있었다. 어차피 이런 건 소모전일 뿐이었다. 내가 정우진에게 욕을 퍼붓는 것도, 그를 개 패듯 패는 것도, 전부 쓸데없는 소모전이었다.

“어제 일 때문에 그런 거예요, 아니면 아까 내가 선배 다리 사이에 좆 끼워 넣은 것 때문에 그런 거예요?”

“…….”

“선배 자는데 억지로 해서 그래요? 물어보지도 않고 멋대로 해서?”

나는 고개를 돌려 욕실 구석을 쳐다봤다. 아무것도 없는 구석을 멀거니 보며 정우진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고 있는데, 정우진이 잡고 있던 내 손을 끌어당겼다. 두어 발자국 그에게 다가가자 정우진이 내 어깨를 잡았다.

“선배.”

그는 내 턱을 쥐고 억지로 자기를 쳐다보게 했다. 정우진은 조금 전까지만 해도 평소와 다름없던 표정이었는데 지금은 얼굴이 차갑게 굳어 있었다. 그는 내 눈동자에서 뭔가를 읽어 내려는 듯 필사적으로 날 바라봤다.

“화났어요?”

“…….”

“화 많이 났어요?”

솔직히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다. 여기서 정우진을 자극하면 결국 나만 손해라는 걸 알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속에서 들끓고 있는 분노를 어떻게든 터뜨리고 싶었다.

정우진이 저렇게 필사적으로 매달리고 내 눈치를 보고 괴로워하면 조금은 화가 가라앉는 것도 같았다.

“나랑 말하기 싫어요?”

벌벌 떨리는 시커먼 눈동자를 보며 나는 어렴풋이 이게 저 씨발놈을 괴롭게 하는 최선의 방법이라는 걸 깨달았다.

내 턱을 잡고 있는 정우진의 손에 점점 힘이 들어갔다. 턱뼈가 부서질 것처럼 아팠지만 나는 무표정을 유지했다.

“이제 나랑 말도 하기 싫어요?”

하고 싶은 말은 많았다. 나는 정우진에게 욕도 하고 싶었고, 이쯤에서 그만하자고 그를 설득하고 싶기도 했다. 정우진이 내게 이 상황을 납득할 수 있게 설명해 줬으면 좋겠다. 그렇게 대화하고 싶었지만 우린 서로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

매번 똑같은 질문을 하고 매번 똑같은 대답을 하는데 무슨 대화가 될까.

근데 내가 너랑 무슨 말을 해?

나는 고개를 옆으로 틀어 그의 손아귀에서 벗어났다. 욕실을 나서려는데 다시 한번 팔목을 붙잡혔다. 정우진이 절박한 얼굴로 물었다.

“나랑 말 안 할 거예요?”

희게 질린 얼굴과 파랗게 뜬 입술, 그리고 떨리는 몸이 굉장히 추워 보였다. 정우진이 말을 할 때마다 그의 입에서 입김이 나오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그의 시커먼 눈동자를 응시했다. 내가 저 말에 대답하면 정우진은 안심하겠지. 내가 말하지 않겠다고 하든, 그건 아니라고 하든, 그런 것에 상관없이 단지 내가 대답했다는 이유만으로 안심할 거다. 지금까지의 패턴으로 봤을 때 정우진은 내가 무슨 대답을 하든 거기서 대화를 이어 나갈 거다.

나에겐 아무런 쓸모도 없는 불필요하고 쓸데라곤 쥐뿔도 없는, 대화라고 하기에도 좆같은 자기 생각을.

“선배, 뭐 때문에 화가 났는지 나한테 말을 해 줘야 내가 알 거 아니에요.”

나는 이미 수십 번도 더 말했다.

그만하라고, 하지 말라고, 싫다고, 여기서 날 내보내 달라고. 하지만 정우진이 내 말을 들어준 게 하나라도 있었나? 그걸 본인도 모르진 않을 텐데, 뚫린 입이라고 지껄이는 걸 보고 있자니 다시금 화가 치솟았다.

나는 무의식중에 고개를 돌려 세면대 쪽을 바라봤다. 늘 면도칼이 놓여 있던 그 선반을.

“아직 화 안 풀렸어요? 화 많이 났어요?”

하지만 선반 위에 늘 가지런하게 놓여 있던 면도칼은 보이지 않았다. 정우진이 치우기라도 했나 보다. 나는 속으로 혀를 차며 다시 고개를 돌려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노려봤다.

무기가 될 만한 걸 찾아야 할 텐데. 나중에 주방에 가면 과도나 식칼이 어디에 있는지 확인해 봐야겠다.

“선배, 나랑 진짜 말 안 할 거예요?”

“…….”

“입 다물고 그러고 있으면 내가 모르잖아요. 나도 내가 뭘 잘못했는지 알아야 고치든 말든…….”

짝! 하고 마찰음이 났다.

정우진의 손을 뿌리치려고 손을 휘두르다 내 손등이 그의 뺨을 후려쳤다. 나는 이를 악물고 정우진을 노려봤다. 다른 생각을 하고, 그의 목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해도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나는 터져 나오는 숨을 삼키며 씩씩거렸다.

뭘 잘못했는지 알아야 고치든 말든? 씨발, 지금 저걸 말이라고…….

나는 이를 물고 주먹을 꾹 쥐며 눈을 감았다. 미친 것처럼 뛰는 심장을 애써 진정시키고 천천히 눈을 뜨는데 정우진이 벌겋게 달아오른 뺨을 손가락 끝으로 천천히 쓸어내리고 있는 게 보였다.

입술이 터져서 피가 나 그렇지 않아도 빨간 입술이 더욱 붉어졌다. 정우진을 노려보다가 속으로 한숨을 내쉬고 등을 돌리는데 정우진이 다시 내 팔목을 잡았다. 나는 그의 손에서 손목을 빼내며 주먹을 쥐었다.

이번엔 손등이 아니라 주먹으로 저 면상을 후려갈기기 위해서였다.

“윽!”

하지만 나는 팔을 한 번 휘둘러보지도 못하고 벽에 밀어붙여졌다. 정우진은 내 양팔을 위로 올려 한 손으로 손목을 붙잡았다. 믿을 수 없게도 꼼짝을 할 수가 없었다. 몇 번 더 몸을 움직이다가 결국 안 되겠다 싶어 발을 드는데, 정우진이 나머지 한쪽 손으로 내 허벅지를 꾹 눌렀다.

붙잡힌 손목이 끊어질 것처럼 아파 왔다. 나지막하게 신음을 흘리는데 내 허벅지를 누르고 있던 손을 떼고 정우진이 내 입 속으로 엄지를 쑤셔 넣었다. 억지로 입이 벌어져 다물어지지 않았다.

“나랑 말 안 할 거예요?”

“으, 이어, 나! 아으윽!”

도리질을 치며 소리치다가 나는 비명을 질렀다. 손목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반사적으로 허리를 구부리려는데 여의치가 않았다. 정우진이 내 얼굴 쪽으로 제 얼굴을 바싹 들이밀며 다시 물었다.

“왜요? 왜 화가 났어요?”

“으……. 씨, 하윽!”

입 속을 꽉 누르고 있던 엄지가 쑥 빠졌다. 뭐라고 말을 하기도 전에 성기가 잡혔다. 정우진은 무자비할 정도로 거칠게 내 성기를 휘어잡더니 다시 물었다.

“왜 말 안 해요?”

“큭, 씹……!”

“또 대답 안 하면 나도 안 참을 거예요.”

참아? 씨발, 네가 뭘 참았는데? 나는 이를 물고 고개를 들어 정우진을 노려봤다. 화가 나서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화낼까 봐 선배가 싫어하는 건 안 하려고 참고 있는데, 선배가 이런 식으로 나오면 내가 참을 필요가 없잖아.”

“뭐? 이 씨발……!”

“내가 이러나저러나 어차피 선배는 날 싫어할 텐데.”

정우진의 표정이 어그러졌다.

* * *

미친 것 같다. 지금까지 정우진은 상종도 못할 미친놈이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틀렸다.

“윽, 하으! 아, 씨발, 잠……! 읏!”

지금껏 정우진은 지극히 정상이었다는 듯 미쳐 날뛰고 있었다. 전부 제멋대로 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정우진이 진정으로 미친 지금에서야 그가 얼마나 참고 있었는지 깨달을 수가 있었다.

“자꾸 다리 오므리지 마세요. 안 보이잖아, 씨발.”

“하, 하지 마! 하지 마!”

“뭘 하지 마,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내가 날뛰고, 정우진도 날뛰고, 우리가 날뛰면 날뛸수록 서로의 몸에 상처가 생겨났다. 정우진은 발버둥 치는 날 붙들어 바닥에 눕혔다. 도망가려는 내 팔을 붙잡고, 내 다리를 붙잡고, 내 허리를 붙잡아 무작정 묶었다.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세면대 배수관에 왼팔이 묶였고, 오른팔은 오른쪽 발목에 고정되어 묶여 있었다. 정우진이 내 다리를 벌리려고 할 때마다 배수관에 묶인 팔목이 끊어질 것처럼 아파 왔다.

“씨발, 그만! 너 이 씨발, 미친 개자식, 으악!”

제 마음대로 날 묶어 놓고 정우진이 숨을 내뱉었다. 그의 단정했던 머리카락은 산발이 되어 헝클어져 있었고, 여기저기에 생채기가 나 핏방울이 맺혀 있었다. 정우진은 묶여 있는 날 내려다보며 피가 맺힌 입술을 끌어 올렸다. 입꼬리를 올려 웃는 정우진의 눈은 진심으로 미쳐 있는 것 같았다.

“이, 이거 풀어! 씨발 새끼가, 주, 죽여 버릴……!”

벌벌 떨면서 되는대로 내뱉고 있는데 정우진이 몸을 일으켰다. 흠칫 어깨를 굳히는데 내가 그러거나 말거나 정우진은 손을 뻗어 선반을 열었다. 그러더니 하얗고 기다란 통과 연두색의 둥그렇고 넙적한 통을 꺼내 다시 내 다리 사이에 자리 잡았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나는 유일하게 결박되지 않은 왼쪽 다리를 들어 그를 차려고 했지만 움직이기도 전에 잡혀 버렸다.

“이거 놔!”

“한 번만 더 놔 달란 소리 하면 뒷구멍 찢어 버릴 줄 알아요.”

광기마저 흐르는 그 번들번들한 눈에 흠칫 몸이 떨렸다. 날 가만히 보던 정우진이 흰색 통의 뚜껑을 확 열었다. 그게 뭐냐고 묻기도 전에 정우진이 내 다리를 높게 들어 올려 통을 거꾸로 들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끈적끈적한 액체가 내 성기며 엉덩이 골 사이로 줄줄 흘러내렸다.

“으윽!”

그 섬뜩한 감촉에 이를 악물고 눈을 감는데 정우진이 내 엉덩이 사이를 벌렸다. 헉하고 눈을 떴을 땐 이미 통의 입구가 내 항문을 비집고 들어간 뒤였다.

“으아아악!”

몸이 거의 반쯤 접혀 나는 내 엉덩이 사이에 주둥이를 처박고 있는 하얀 통과 접합부에서 허옇고 끈적끈적한 것이 줄줄 흐르고 있는 걸 고스란히 볼 수밖에 없었다. 내가 비명을 질러도 정우진은 날 보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내 항문에 꽂혀 있었다.

뿌직 하고 하얀 통에서 소리가 났다. 그 소리에 나는 통에 있는 내용물이 모조리 내 엉덩이 사이로 빨려 들어갔다는 걸 깨달았다. 배 속이 부글거려서 토할 것만 같았다. 내가 이를 악물고 고개를 젖히자 정우진이 하얀 통을 구석에 아무렇게나 내팽개쳤다.

“큭!”

그때, 머리채가 잡혔다. 정우진이 내 머리채를 잡고 억지로 고개를 들게 했다. 번뜩 눈을 뜨자 정우진의 얼굴이 코앞에서 보였다.

“입 벌려.”

좆이나 까라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그의 얼굴이 너무 흉흉해서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나는 다문 입에 꾹 힘을 주고 눈을 치켜떴다. 그런 날 보며 정우진이 작게 코웃음을 쳤다. 그때 배 속이 부글거리기 시작했다. 절대 입을 열지 않으리라 다짐했는데 나도 모르게 입술이 벌어지면서 숨을 토해 냈다.

“으읍!”

그리고 그때 벌어진 입술 사이로 뭔가가 들어왔다. 그의 혓바닥이었다. 정우진은 놀라서 눈을 크게 뜬 채 얼어 있는 날 똑바로 보며 내 입 안 구석구석을 핥았다. 이미 엉덩이 사이로 뭔지 알 수 없는 게 조금씩 흐르고 있었다. 나는 사지를 벌벌 떨면서 도리질을 쳤다. 내가 자꾸 고개를 흔들자 정우진이 손을 뻗어 내 입 속에 억지로 손가락을 쑤셔 넣었다.

“가만히 있어요.”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와 눈물을 줄줄 흘리는데, 그걸 가만히 보던 정우진이 내 눈가에 입을 맞췄다. 눈가를 쓰는 뜨거운 혓바닥에 소름이 끼쳐서 나도 모르게 입 안에 들어와 있는 손가락에 이를 세웠다. 으득 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과 동시에 정우진이 내 머리카락을 잡은 손에 힘을 줬다. 고개가 위로 쳐들리자 눈가에 고여 있던 눈물이 관자놀이를 따라 주르륵 흘렀다.

그걸 모조리 핥아 마신 정우진이 내 골반을 틀어쥐었다. 설마설마하는 생각에 눈을 부릅뜨기도 전에 뒤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아직 풀어지지 않은 항문을 비집고 성기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크……!”

죽을 것 같았다. 살면서 이렇게 고통스러웠던 적은 단연코 이번이 처음이었다. 나는 내 뜻대로 숨도 쉴 수가 없었다.

“선배, 힘 좀 푸세요. 좆 끊어지겠네.”

“흑……. 아, 아읏!”

퍽 하고 성기가 완전히 안으로 들어왔다. 정신이 깜빡깜빡하더니 곧 눈앞이 컴컴해졌다. 다시 퍼뜩 정신을 차렸을 땐 정우진이 안쪽을 쑤시고 있었다.

“읏, 윽! 흐, 아!”

얼마나 세게 쑤시는지 그만하라는 말도 내뱉을 수가 없었다. 감각이 없는 내벽을 그의 성기가 쑤시고 찌를 때마다 허리가 빠질 것 같았다. 다리도 아팠고, 팔도 아팠다. 조금이라도 덜 아프고 싶어서 나는 온 힘을 다해 그의 목에 팔을 두르고 바짝 몸을 붙였다. 짧은 간격으로 정신을 잃었다가 다시 차리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흔들리고 또 흔들리다가 어느 순간 다시 기절했다.

“선배.”

뭔가가 내 뺨을 툭툭 건드렸다. 눈이 뻑뻑하고 시려서 잘 떠지지 않았다. 눈도 뜨지 못하고 끙끙거리고 있는데 눈 위로 뜨겁고 물컹한 게 닿았다. 나는 그게 곧 혀라는 걸 알았다. 속눈썹 하나하나를 혀끝으로 건드리고 눈가를 샅샅이 핥던 정우진이 내 뺨에 입을 맞췄다.

천천히 눈을 뜨자 숨이 터져 나왔다. 숨을 내쉬고 다시 들이마시고, 그렇게 한참 동안 가슴을 들썩이며 힘겹게 숨을 내쉬던 그때, 순간 머리부터 발끝까지 날카로운 쾌감이 날 덮쳤다.

“으아아앗!”

“일어났으면 눈 좀 떠 보세요.”

“응……. 힉, 아응!”

찌걱찌걱. 젖은 소리가 귓가를 점령했다. 입을 벌리고 천천히 눈을 떠 봤지만 시야는 뿌옇기만 했다.

-응, 아응, 힉! 으아앙! 앙, 아, 아, 아아!

그때, 귓가로 천박한 신음이 들려왔다. 눈에 힘을 주자 커다란 텔레비전이 보였다. 그리고 그곳에 개처럼 엎드려 헐떡거리고 있는 내 모습이 보였다. 정우진이, 내 뒤에서, 날 붙잡고 짐승이 교미하듯 날 강간하고 있었다.

“뭐, 아으으응!”

“일주일 동안 있었던 일, 기억 못 해서 화났던 거 맞죠?”

정우진이 손톱을 세워 내 가슴을 긁었다. 마치 장난감을 가지고 놀듯 내 젖꼭지를 빙빙 돌리고 손끝으로 꾹 눌렀다가 다시 슬슬 긁었다. 다시 시야가 흐려졌다.

-아, 아으, 하윽! 앙, 아, 아앙! 우, 우진아, 우진아아, 아아앙!

“내가 다 찍어 놨어요.”

“흑, 히익……. 앙, 아!”

-흑, 흐어엉! 우진, 힉! 아, 싸, 싸 줘, 안에 싸 주, 흐아앙! 아, 으앙, 거기, 거기 이상해, 이상, 아! 뜨거, 뜨거워, 자지 뜨겁, 히이익!

“저거 보면 기억날 거예요. 선배가 기억하지 못하는 일주일 동안 우리가 뭘 했는지.”

“아앗! 아, 그만! 아파, 아프, 응……!”

젖꼭지가 홧홧하고 뜨거워진다. 자꾸만 뜨거워져서 무서울 지경이었다. 정우진이 손가락으로 내 젖꼭지를 잡고 죽 잡아당길 땐 정말이지 머릿속이 하얗게 비는 것 같았다. 화면 속의 내가, 그리고 지금의 내가 개처럼 헐떡이고 있는 소리가 점점 멀어져 갔다.

“저거 보세요. 내가 선배 안에 사정하기 전엔 못 싼다고 했더니 저렇게 애처럼 엉엉 울었잖아요.”

“윽……. 아, 흑, 아, 아앙!”

찌걱, 하고 깊게 박혀 있던 성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다시 뭉근하게 돌리고 얕게 추삽질을 하면서 정우진이 내 목덜미를 이로 물었다.

“일주일이면 168시간이죠? 그거 다 녹화해 뒀어요. 지금부터 천천히 보면서 다 기억해 보세요.”

그 끔찍한 말에 숨이 막혀 왔다. 이미 엉망이 된 뺨 위로 눈물이 흐르자 정우진이 입꼬리를 비틀어 올리며 내 뺨을 핥아 올렸다.

영상 속의 나는 쾌감에 잠식되어 우는 게 아니었다.

-힉, 히익. 아, 으아아……. 아, 우으읏! 흐앙, 아! 사, 살려, 으아앙!

저건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생존 본능에 의한 몸부림이었다. 나는 추한 몰골로, 애처럼 울면서, 끊임없이 빌고 또 빌었다.

-흑, 흐엉, 아, 히이익! 으아! 살려, 응, 아, 우, 우진아, 우진아, 아으으읏! 큭, 흐아아! 뒤, 뒤에 찢어지, 으아!

-안 찢어져요. 지금 선배 안쪽 얼마나 미끌거리는지 알아요? 완전 다 풀려서 말랑말랑해요.

-아파, 아프, 윽! 아, 으아앙! 아, 시, 싫어, 싫어, 거기 싫, 응! 그만, 힉! 아파아아, 흐아앙!

-아파요? 아닌데, 쑤실 때마다 물이 줄줄 흘러서 별로 안 아파 보이는데. 안에 한 번 더 싸 줄까요? 그럼 정액 때문에 미끌거려서 안 아플 거예요.

-싫어어어, 싫어, 안에, 싫어, 응, 아! 싫, 힉! 아, 그, 그만, 그만, 으아앙, 앙, 아, 아!

끔찍했다. 살면서 나는 이토록 끔찍하고 두려운 상황에 직면해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도저히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선배, 눈 떠요. 궁금한 거 아니었어요?”

“흑, 흐…….”

“저때 선배 진짜 귀여웠어요. 안에 싸 달라고 조를 때 코피 날 뻔했거든요. 너무 귀여워서.”

정우진이 손가락 끝으로 내 성기를 문질렀다. 너무 조심스럽고 세심한 움직임이라 오히려 더욱 견딜 수가 없었다. 온몸이 벌벌 떨리고 식은땀이 나고 목구멍에서 앓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정우진이 내 성기 끝을 문지를 때마다 항문에 힘이 들어갔다. 내가 그렇게 엉덩이를 조일 때마다 정우진은 뜨거운 숨을 내쉬며 내 귀며 입이며 볼이며 눈가, 그리고 목덜미에 입을 맞췄다.

-흑, 흐어어엉! 흐엉, 흐어어엉!

영상 속의 나는 마치 나라를 잃은 사람처럼 비통하고 원통하게 울부짖고 있었다. 그건 사람의 울음이라기보다는 짐승의 그것과 닮아 있었다.

“선배, 저때 왜 저렇게 울었는지 기억나요?”

“흑……. 흐윽.”

정우진이 내 눈가에 입을 맞추고 흘러나오는 눈물을 핥아 마셨다.

“내가 안 싸 줘서 저렇게 운 거예요. 자꾸, 안에 싸 달라고 조르는데 제가 안 싸 줬거든요. 저거 보세요.”

정우진이 내 턱을 붙잡고 억지로 화면을 보게 했다. 나는 엎드린 채 엉덩이를 높게 들고 있었다. 우는 소리가 환청처럼 끊임없이 이어진다.

초점이 바뀐 화면 속의 나는 여전히 엉덩이를 높게 든 채 울고만 있었다. 다른 점은, 내가 내 성기를 양손으로 붙잡고 있는 게 보인다는 것이었다.

-미, 미안해, 미안, 흑, 흐어엉, 자, 잘못, 흑, 흐어어엉! 우진아, 우진아, 잘못했어, 미안, 아으으으!

-뭐가 그렇게 미안해요? 울지 마세요, 선배는 잘못한 거 없어요.

-흐어어엉!

화면 속의 정우진이 다정한 손길로 날 보듬었다. 나는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채 정우진이 내민 손에 뺨을 비볐다. 마치 개가 주인에게 애교를 부리는 듯한 꼴이었다.

-자꾸, 자꾸 질질 싸서, 읏, 흐으으! 흑, 흐윽, 흐어엉!

-자꾸 질질 싸서 미안해요? 그건 선배 잘못이 아니에요. 제가 더 꽉 잡아 줬어야 했는데. 제가 더 미안해요.

-으응, 힉! 아, 안 돼, 안, 으, 으아, 그만, 그, 아아!

-씨발, 이건 잘못한 거예요. 참을성 없는 건 괜찮은데 안 된다고 말하는 건 나쁜 거예요. 안 된다, 싫다, 그만해라, 이딴 소리 한 번만 더 하면 안에 안 싸 줄 거예요.

정우진이 다시 허리를 흔들었다. 그의 성기가 내 엉덩이 사이로 보이지 않았다, 보였다, 반복할 때마다 알 수 없는 액체들이 사방으로 튀어 댔다.

-이번엔 안에 싸 줄 테니까 사랑한다고 말해 보세요.

-응, 아, 아……. 아흑! 크, 으앙!

-빨리.

-사, 사랑, 사랑해, 사랑, 으히익!

-누굴?

-큭, 흐아! 아, 우진이, 사랑, 으으응!

-누가?

-흑, 흐어어엉! 나 죽을 거 같, 힉! 아, 으앙! 내, 내가, 내가 우진이 사랑, 으읏!

-얼마나?

정우진은 끊임없이 물었다. 정신없이 흔들리면서 스스로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를 것같이 엉망으로 울어 대는 내게, 묻고, 묻고, 또 물었다.

-선배, 날 얼마나 사랑해요?

-흐어어엉!

나는 멍청한 얼굴로 화면 속의 비참해 보이는 날 보다가 눈을 질끈 감았다. 화면 속의 모든 것들이 너무 이상하고 기괴해서 오히려 공포심까지 들었다. 꾹 다문 잇새로 억눌린 울음소리가 흘러나왔다. 내가 소리 없이 목으로만 울어 대자 나와 같이 화면을 보던 정우진이 내 입술에 입을 맞췄다. 그러더니 뭉근하게 허리를 돌리기 시작했다.

허리 밑으론 감각조차 제대로 느껴지지 않았는데, 정우진이 허리를 돌리는 순간 마치 열꽃이 퍼지듯 쾌감이 퍼지기 시작했다.

“아으, 아……!”

“다시 저렇게 울고 싶어요?”

“흐, 아……. 아응!”

“울면서 나한테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어?”

꽉, 목덜미에 이를 박으며 정우진이 마치 세뇌하듯 내게 속삭였다. 내가 아무런 말이 없자 정우진이 다시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허리 짓이 너무 느리고 얕아서 마치 장난을 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실제로 그의 표정도 장난을 치는 꼬마 같았는데, 내가 괴로워하든 울든 그런 건 전혀 상관없다는 듯했다.

눈을 감으면 눈을 뜰 때까지 집요하게 눈가를 핥았고, 입을 다물면 입을 열 때까지 입술을 빨았다. 전립선 근처를 뭉근하게 문지르며 귓가에 속삭이는 다정한 목소리와 화면 속에서 비명을 지르듯 애원하며 신음하는 내 목소리가 겹쳐 들려왔다. 이제는 뭐가 진짠지도 헷갈릴 지경이었다.

“선배 멍하게 있을 때마다 창틀에 있던 화분 쳐다본 거 알아요?”

정우진이 뜬금없이 말했다. 주욱 성기가 빠지자 내벽의 살이 전부 딸려 빠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배 속의 내장이 전부 딸려 나가는 듯했다.

“아윽!”

“저도 몰랐는데 가만 생각해 보니까 매일 선배는 그 화분만 쳐다보고 있더라고요. 밥 먹을 때도 그렇고, 멍하게 있을 때도, 나랑 대화할 때도.”

“흐윽, 아, 응……!”

정우진이 내 발목을 잡아 위로 치켜들었다. 보이진 않았지만 아까 안에 넣었던 미끌거리는 액체와 정우진이 싸질러 놓은 정액으로 엉망이 되어 있을 테다. 뼈마디가 비명을 질러 입술을 콱 깨무는데 정우진이 내 항문을 손가락으로 쓸었다.

“안쪽이 퉁퉁 부었네.”

“흣!”

그는 낮게 혀를 차며 내 다리 사이로 고개를 숙였다. 온갖 액체로 엉망이 되어 있는 내 다리 사이로. 손가락 하나 움직일 힘도 없었는데 내 안의 초인적인 힘이 깨어나기라도 한 듯 나는 온 힘을 다해 발버둥 쳤다.

“하지 마! 하지 말라고!”

“선배 입학하자마자 이다영이 고백한 거 기억나죠?”

그 말에 죽을 것 같던 와중에도 다영 선배의 얼굴이 얼핏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안 본 지 너무 오래돼서 정확히 기억나진 않았다. 그녀가 내게 호감이 있다고 고백을 했는데 그 뒤로 흐지부지되어 그냥 가끔 만나면 눈짓으로 인사만 주고받는 사이가 됐으니까.

“으으읏!”

정우진이 내 항문을 길게 핥아 올렸다.

“선배한테 길바닥에 난 꽃 꺾어다가 줬던 적도 있잖아요.”

“하, 하지 마! 하지 마, 정우진! 씹, 흐윽!”

“나도 몰랐거든요.”

“히이익!”

정우진은 소리가 나게 핥고 빨며 끊임없이 뭔가를 말해 댔다. 하지만 내 비명에 묻혀 무슨 소릴 하는지 제대로 들을 수가 없었다.

“창틀 화분에 있던 꽃이요. 그때 그 꽃이랑 똑같은 거더라고요. 색깔만 다르고.”

“으, 으윽, 아! 힉, 시, 싫, 잠……! 아!”

“그래서 버렸어요.”

입을 뗀 정우진이 다시 내 다리를 제 어깨에 걸쳤다. 녹진녹진하게 풀린 항문에 단단한 성기가 닿았다.

“선배가 자꾸 그 화분만 쳐다본 건 우연이겠죠. 어쩌면 그냥 허공을 본 것뿐이었는데 제가 오해한 건지도 모르고요.”

“크윽!”

이미 다 풀려서 흐물거리는 항문이 다시 천천히 벌어지기 시작했다. 머리가 아플 정도로 꽉 감고 있던 눈을 뜨자 정우진이 내 코앞에서 보였다. 뚝, 그의 턱 끝에서 떨어진 땀이 내 볼로 미끄러졌다.

“나랑 있을 땐 나 보세요.”

“흐으윽!”

“그럼 내가 그 화분 안 버렸을 수도 있잖아.”

엉덩이 골 사이로 까슬한 음모가 닿았다. 정우진이 상냥한 얼굴로 나를 책망하며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