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푸하하! 이 새끼 지금 토하고 있어!”
“으하하하!”
“악, 드러워!”
삐걱삐걱 그네가 흔들리는 소리가 들린다.
“저 새끼, 자기 엄마 시체랑 같이 산다고 그랬어!”
거센 바람이 불어 삐걱삐걱, 소리는 더욱 커졌다.
“야, 더 밟아! 때려!”
“이 병신 새끼가! 더 토해 봐!”
으하하하하하!
나는 숨을 헉 들이켜며 번쩍 눈을 떴다.
“왜 이렇게 식은땀을 흘려요.”
“헉, 헉…….”
“이리 와요.”
귓가로 악의에 가득 찬 웃음소리가 떠나질 않았다. 벌벌 몸을 떨면서 숨을 몰아쉬는데 정우진이 빈틈없이 날 껴안았다.
“더 자요.”
“헉. 흑, 흐윽…….”
정우진이 다정하게 내 머리를 쓰다듬고 천천히 내 등을 토닥거린다. 그 믿을 수 없이 보드랍고 다정한 손길에 몸이 움츠러들었다. 하지만 이상하게 눈물은 멎었다.
“많이 아파요? 미안해요, 내가 잘못했어요.”
“흐으…….”
“선배, 내가 잘못했어요. 울지 마요, 내가 잘못했어요.”
벌벌 떨리고 있는 내 손을 붙잡고 정우진이 끊임없이 중얼거렸다. 내 손에 깍지를 껴서 손등에 입을 맞추고, 내 손바닥을 핥고 깊숙이 키스한다. 그것에 성적인 의도는 조금도 없었다. 정우진은 내 손을 잡고 제 뺨에 내 손바닥을 댔다. 그러더니 매달리듯 천천히 문질렀다. 순식간에 손바닥이 축축해졌다.
“나 좀 봐주세요.”
흐느끼는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점점 정신이 아득해져 가는 걸 느꼈다.
* * *
아파 죽을 것 같다는 말의 의미를 비로소 깨달았다.
“한 숟가락만 더 먹어요. 네?”
온몸이 불타오르고 있었다. 가진 거라곤 건강한 몸과 건강한 정신뿐이었는데, 요 며칠 사이에 난 내 모든 걸 잃었다. 내 눈앞에 있는 저 새끼 때문에.
“선배.”
열이 올라서 눈앞이 가물가물했다. 머리도 아프고 눈깔도 아프고 몸도, 거시기도, 그리고 거기도. 씨발, 안 아픈 데가 한 군데도 없었다. 조금만 몸을 비틀어도 삭신이 쑤신다. 물 한 모금만 마셔도 토할 것 같았지만, 나는 정우진과 입씨름을 할 여력이 없어서 잠자코 입을 벌렸다. 내가 천천히 입을 벌리자 정우진이 조심스럽게 내게 죽을 떠먹여 줬다.
“……미안해요.”
“…….”
저 미안하다는 말도 이젠 진저리가 났다. 나는 천천히 죽을 씹다가 이내 씹는 것도 귀찮아져서 그냥 꿀떡 삼켜 버렸다. 내 목울대만 보고 있던 정우진이 시무룩한 표정으로 다시 숟가락을 들이밀었다. 나는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돌렸다. 나지막하게 숨을 내쉬자 정우진이 몸을 일으켰다.
“알았어요. 약 가지고 올 테니까 잠시만 기다리세요.”
쟁반을 들고 나가는 정우진의 뒷모습을 가만히 보다 나는 눈을 감았다.
“…….”
달칵.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다급하게 이불을 젖히고 몸을 일으켰다. 바닥에 발바닥이 닿자 몸이 반으로 쪼개지는 것 같은 고통이 엄습해 왔다. 나는 이를 악물고 창문을 열었다. 웬일인지 정우진이 내게 옷까지 입혀 놨다. 비록 바지는 없고 셔츠 한 장뿐이었지만. 이건 나 도망가라는 배려인가.
“씨팔.”
나는 창문을 뛰어넘으며 비틀거렸다. 떨어지면서 뾰족한 돌멩이를 밟은 건지 발바닥이 아파 왔다. 하지만 지금 그딴 게 문제가 아니었다. 나는 비틀거리며 산길을 따라 걸었다. 처음 도망칠 땐 밤이라 몰랐는데 낮에 보니까 풍경이 끝내줬다. 공기도 좋고 풍경도 좋고 씨발, 정우진만 없었으면 무릉도원이 따로 없었겠네.
“헉.”
몸이 정상이 아니라 그런지 금방 숨이 찼다. 오르막길이라 더욱 힘들었다.
처음 도망쳤을 땐 바다 쪽으로 도망가서 금방 잡혔었다. 이번엔 위로 올라가야지. 밑으로 가나 위로 가나 도망칠 수 없다면 숨어 버리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여긴 어차피 섬이라 숨어 봤자 거기서 거기였지만 시간을 벌 수는 있을 거다.
난 지금 몸도 마음도 넝마처럼 찢어져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숨어서 하루 정도만 심신을 안정시키면 이 좆같은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방법이 떠오를지도 몰랐다. 나는 힘겹게 산길을 따라 올라가다가 멈춰 섰다.
슬쩍 뒤로 돌아봤다.
“…….”
아무도 없다. 아무도 없긴 한데, 발자국이 남았다. 나는 정우진이 내 발자국을 따라왔다는 말을 떠올리며 입술을 깨물었다. 주변을 훑다가 이파리가 듬성듬성 달린 나뭇가지를 발견했다. 나는 그걸로 발자국을 지우며 풀이 우거진 산속으로 더욱 깊이 들어갔다.
최대한 흙길로 가지 않고 돌멩이와 나무를 밟으며 한참 올라가고 있는데 멀리서 시커먼 구덩이가 보였다. 나는 혹시라도 정우진이 내 숨소리를 들을까 봐 이를 악문 채 숨소리 하나 내지 않고 코로만 숨을 쉬었다. 심장이 터질 것 같고 머리가 어지러웠다. 땀이 자꾸만 흘러 눈에 들어갔다. 앞이 가물가물해서 나는 흙바닥에 몸을 눕혔다.
억지로 몸을 욱여넣고 잔뜩 몸을 웅크리니 그제야 좀 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여기까지 왔으니 정우진도 쉽게 날 찾을 수는 없을 거다. 지금쯤 또 그 시커먼 눈을 벌겋게 물들이며 눈물이나 흘리고 있겠지. 씨발 새끼.
축축한 흙냄새를 맡으며 속으로 욕지거리를 내뱉고 있는데, 문득 한 장면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저 새끼, 자기 엄마 시체랑 같이 산다고 그랬어!’
나는 퍼뜩 눈을 떴다. 낯선 목소리가 자꾸만 메아리처럼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도대체 이게 뭐지? 몸이 고단해서 환청까지 들리는 건가? 나는 멍청하게 앞을 보다가 손을 뻗어 나뭇가지와 젖은 잎사귀를 끌어모았다. 내 모습이 보이지 않게 잘 가리며 인상을 썼다.
‘저 새끼, 자기 엄마 시체랑 같이 산다고 그랬어!’
도대체 이 기억은 누구의 것인가. 웃으면서 악담을 퍼붓는 저 애새끼들은 또 누구고.
‘형아.’
시커먼 눈동자. 시커먼 머리카락. 귀신처럼 새하얀 얼굴.
‘형아, 살려 줘.’
솜털이 쭈뼛 설 정도로 소름이 돋았다. 주체할 수도 없을 정도로 공포가 밀려와 움직이지도 못하고 있는데 바스락 소리가 났다. 웅크리고 있던 몸에 힘을 풀고 고개를 들자 내가 가려 놓은 잎사귀 사이로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선배, 여기서 뭐 해요?”
정우진이었다.
나는 숨을 쉬는 것도 잊고 굳어 버렸다. 정우진이 날 일으켜 온몸에 덕지덕지 묻은 흙을 털어 줄 때까지 한마디도 할 수가 없었다.
“몸도 안 좋으면서 어떻게 여기까지 올라왔어요.”
“…….”
“아까보다 열 더 나네. 빨리 가서 약 먹어야겠다.”
정우진이 날 업었다. 내가 힘겹게 올라온 산을 정우진은 날 업은 채 내려가고 있었다.
“집에만 있기 답답하면 저한테 말하세요. 신발 신겨서 데리고 나와 줄 테니까.”
난 답답한 게 아니라 너한테 도망치고 싶은 거야.
“창문 말고 문으로 다니고요.”
“…….”
“그리고 나갈 땐 나한테 말 좀 해 주세요.”
“…….”
“선배 없는 거 보고 심장이 떨어질 뻔했어요.”
몸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흔들렸다. 나는 고개를 숙여 그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어떻게 해야 하지.
도대체 어떻게 하면 여기서 나갈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정우진이 날 찾을 수 없는 곳으로 갈 수 있을까.
아니, 그 전에 난 집으로 돌아갈 수 있긴 한 건가.
이 새끼는 도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 거지.
“어제 선배가 제 머리 쳤잖아요.”
“…….”
“죽 그릇으로.”
나는 슬쩍 눈을 떴다. 새벽에 이슬비가 내린 건지 흙이 젖어 있었다. 시퍼런 나뭇잎과 돌멩이, 그리고 부러진 나뭇가지. 새하얀 정우진의 발등.
“저 이마 찢어졌어요.”
“…….”
왼쪽 발등이 어딘가에 긁힌 건지 붉게 생채기가 나 있었다. 왼발, 오른발, 번갈아 가며 보이는 새하얀 발등을 보며 착잡한 기분이 들었다.
“아직 약도 못 발랐고, 밴드도 못 붙였어요.”
“…….”
“선배가 해 주면 안 돼요?”
불쌍한 목소리로 말하는 게 너무 가증스러워서 갑자기 눈물이 났다.
지금 명백한 피해자는 난데, 이 새끼는 왜 이렇게 자꾸 우는 걸까? 왜 정신 나간 미친 새끼처럼 불쌍한 척을 하는 걸까? 차라리 날 욕하고 때리면 그냥 또라이 새끼라고 이해라도 하겠는데, 납치 감금 강간범 주제에 툭하면 울고 사랑을 구걸하고 좆같을 정도로 친절하고 다정해서 기분이 더욱 더러워졌다.
그게 꼭 용서받지 못할 범죄자 새끼가 용서해 달라고 구걸하는 것처럼 보여서.
“아파서 그래요.”
씨발 새끼.
“아파서 죽을 거 같아.”
사랑한다는 말이 면죄부인가. 개좆같은 새끼.
“선배, 나 이마 찢어진 거 아파 죽겠다고요.”
비록 보이진 않았지만 정우진이 울고 있다는 걸 알았다.
* * *
이 좆같은 무인도에 감금된 지도 벌써 4일이나 지났다.
내가 또 도망갈까 봐 걱정이라도 돼서 그런 건지, 아니면 그저 자기 말대로 나랑 같이 있고 싶어서 그런 건지, 이유는 모르겠지만 정우진은 하나부터 열까지 내 수발을 들었다. 밥을 먹여 주고 옷을 갈아입혀 주고 씻겨 주고, 화장실까지 날 따라왔다.
다정한 눈으로 정우진이 나만 바라보고 있을 때면 소름이 끼치고 덜컥 무서워졌지만 내가 이곳에서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사람이라곤 정우진과 나밖에 없는 무인도에서 내가 뭘 할 수 있겠나. 정우진은 이 좆같이 작은 섬의 지리도 전부 꿰뚫고 있었고, 내가 조금이라도 밖에 나갈라치면 귀신처럼 알아채고 내 뒤를 쫓는데.
“점심 뭐 먹을까요?”
“…….”
정신이 점점 황폐해져 가는 걸 느꼈다. 나는 하루가 다르게 말라 죽어 가고 있었다. 이대로는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나는 굳게 다물고 있던 입을 열었다.
“정우진.”
오랜만에 말을 해서 그런지 목이 잠겨 있었다. 몇 번 헛기침을 하자 정우진이 내 뒷목을 가볍게 주물러 줬다. 그러고 싶지 않았지만 몸이 절로 움츠러들었다.
내가 산속으로 도망쳐 깊은 굴에 숨어 있다가 잡혔던 이후로 정우진은 내게 성행위를 강요하지 않았다. 그건 참 다행이었지만, 내게 강요하지 않다뿐이지 정우진이 내 앞에서 날 부르고 날 쳐다보면서 제 거시기를 잡고 흔드는 건 똑같았다.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 거야?”
내가 힘없이 묻자 정우진이 내 손바닥에 제 머리를 문질렀다. 눈동자만 내려 시커먼 머리통이 흔들리는 걸 바라봤다. 정우진은 내게 끊임없이 애정을 갈구하고 구걸하면서 소리 없이 애원했다.
“죽을 때까지요.”
“…….”
“여기서 선배랑 같이 죽고 싶어요.”
진심 어린 목소리에 다시 물기가 묻어 나왔다.
정우진이 이럴 때마다 황당해서 죽을 것 같았다. 지금 울고 싶은 게 누군데 이 새끼는 자기 왜 지가 쳐울고 있는 건지.
내가 조금만 뭐라고 해도 울고, 날 보면서 원숭이 새끼처럼 자위할 때도 쳐울면서 하고, 새벽에 잠시 깬 적이 있는데 정우진이 그때도 자고 있던 나를 보며 울고 있었다.
정말 정신이 온전치 못한 미친놈이었다.
정우진은 내 손바닥에 제 뺨을 문지르다가 또 뭐가 그렇게 슬픈지 눈물을 흘렸다. 손바닥이 점점 축축하게 젖어 드는 게 느껴졌다.
“넌 왜 자꾸 울고 지랄이야. 짜증 나게, 씨발.”
결국 참다못해 묻자 정우진이 고개를 들었다. 눈물로 엉망이 된 얼굴은 이 와중에도 추하다기보단 처연함에 가까웠다.
“선배는 모를 거예요.”
“뭘.”
“난 선배만 생각하면 눈물이 나요. 너무 좋은데 안타깝고 자꾸만 벅차올라서 숨도 잘 못 쉬겠어요.”
그딴 걸 내가 왜 알아야 하냐는 말이 목구멍 끝까지 올라왔다. 안타깝고 자꾸만 벅차올라서 숨도 잘 못 쉬겠으면 그냥 숨 쉬지 말고 뒈지든가, 씨발. 그러면 나도 좋고 이 새끼도 편할 텐데 왜 이 지랄병을 떨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화병이 날 것 같은 마음에 정우진을 빤히 보다가 시선을 돌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솔직히 말하면 처음 이곳에서 눈을 떴을 때처럼 정우진을 때려눕히고 도망치고 싶었다. 아직까지도 난 그러고 싶었다. 하지만 그래 봤자 소용이 없다는 걸 안다.
여긴 무인도였고, 난 수영도 못하는 맥주병이고, 또 정우진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치밀하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정신병이 심각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내가 죽을힘을 다해 필사적으로 도망쳐도 그런 날 비웃기라도 하듯 정우진은 아주 쉽게 날 찾아냈다. 그리고 마치 소풍이라도 다녀온 양 다정하게 웃으며 이제 집에 가자고 손을 내민다.
나는 그게 너무 말이 안 통하는 정신병자처럼 보여서 무서웠다.
“난 선배가 한숨 쉬면 무서워요.”
“…….”
“내가 귀찮아요?”
귀찮은 게 아니라 네가 싫어.
말은 하지 않았지만 내 속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정우진이 힘없이 웃었다.
“미안해요. 제가 많이 노력할게요.”
“…….”
노력을 한단다. 지가 노력을 한단다. 진짜 미친 새끼 아닌가? 이제는 황당해서 말도 안 나왔다.
저걸 도대체 어떻게 설득시키지. 내 말이 통하기는 할까. 난 정말 여기서 늙어 죽을 때까지 갇혀 살아야 되나.
나는 멍하게 허공을 보다가 지겨운 질문을 했다.
“너 도대체 나한테 왜 이래?”
“사랑해요.”
“사랑한다고 모두가 너처럼 상대방을 감금하고 강간하진 않아.”
“미안해요.”
언제나 도돌이표다. 무슨 말을 해도 항상 끝은 똑같았다. 지겹고 짜증이 나서 내 손을 잡고 있는 정우진의 손을 뿌리쳤다.
“언제부터 날 그렇게 존나게 사랑했는데? 날 사랑한다고 깨닫자마자 나한테 좆질 하고 싶었냐?”
“…….”
“그럼 여기에서 이럴 이유가 없잖아. 알았어. 씨발, 내가 여기서 나가면 정기적으로 너한테 대 줄게. 지금 이러는 것처럼 너희 집에 가서 같이 밥도 먹고 잠도 자고, 씻고 좆질 하는 거 다 받아 줄 테니까 이제 그만해. 이제 제발 그만하고 정신 좀 차려. 너 이거 범죄야. 알아? 내가 왜 네 좆같은 사랑 때문에 희생해야 되는데? 내가 왜 그래야 되냐? 어?”
말하다 보니까 진짜 너무 좆같아서 눈물이 다 났다. 내가 왜 이러고 있어야 하지? 내가 왜? 정우진은 왜 날 강간하고 가둬 두는 거지? 내가 그 장단에 왜 놀아나야 되는 거지? 내가 왜? 내가 왜 저 좆같은 사랑을 받아 줘야 되는데?
“노력? 그럼 나는? 나도 너랑 같이 노력할까? 이 좆같은 상황에서 어떻게든 적응해 보려고 존나게 노력할까? 네 좆같은 사랑 받아들이려고 노력할까? 여자도 아니고 남자한테 강간당한 이 씨발 좆 병신 같은 상황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려고 노력해? 서울도 아니고 제주도도 아니고 바다 구석에 처박힌 무인도에 갇혀 있는 것도 씨발, 내가 존나게 노력해서 받아들일까? 어?!”
나는 소파에 앉아 있고, 정우진은 바닥에 앉아 날 올려다보고 있었는데, 내가 비명을 지르듯 악을 쓰자 정우진이 손을 뻗어 내 다리를 껴안았다. 그는 내 무릎 위에 얼굴을 묻고 혼나는 애처럼 잘게 몸을 떨고 있었다. 거머리처럼 내 다리에 붙어 있는 정우진을 떼어 내고 뒈지게 밟아 버리고 싶었지만 솔직히 그럴 힘도 없었다.
“좋게 말할 때 이제 그만해. 서울 가서 넌 일단 정신 병원부터 가 보고, 씨발놈아.”
나는 소파에 등을 기대고 천장을 바라보며 숨을 골랐다. 내 호흡이 점점 안정되어 가자 고개를 숙이고 있던 정우진이 슬쩍 고개를 들었다. 눈물이 그렁그렁한 게 진짜 존나 후려갈기고 싶게 생긴 얼굴이었다.
“선배.”
“부르지 마.”
“여기서 계속 나랑 같이 있어 주면 선배가 싫어하는 거 아무것도 안 할게요.”
그 짜증 나는 말에 나는 시선을 내려 정우진을 바라봤다. 저 씨발놈이 지금 무슨 개소리를 지껄이고 있는 거야? 정우진은 필사적인 얼굴로 내 다리를 껴안은 팔에 힘을 줬다.
“진짜, 아무것도 안 할게요.”
“…….”
“선배가 싫다고 하면 섹스도 안 하고 건드리지도 않고 말도 안 걸고 부르지도 않을게요.”
그렁그렁하게 맺혀 있는 눈물은 신기할 정도로 계속 차올랐다. 떨어질 것 같으면서도 눈물은 떨어지지 않고 계속, 계속 차오르기만 했다.
“자고 싶어서 좋아한 거 아니에요.”
“…….”
“사랑한다고 깨닫자마자 좆질 하고 싶었던 게 아니라…….”
형편없이 떨리던 목소리가 멎었다. 정우진은 소리도 내지 않고 몇 번 입술을 달싹이다가 입을 꾹 다물었다. 영원히 떨어지지 않을 것 같던 눈물이 수도꼭지가 터진 것처럼 줄줄 흘렀다.
“불안해서 그랬어요.”
“…….”
“초조하고 불안하고 무서워서 그랬어요. 미안해요.”
눈물을 흘리는 정우진이 불쌍한 건 사실이었다. 오히려 그런 점 때문에 이 상황이 더 짜증 나고 좆같았다. 잘못은 지가 해 놓고 왜 지가 쳐우냐고. 왜 불쌍해 보이는 행동을 하냐고. 씨발, 왜 쳐울면서 사과를 하냐고. 풀어 줄 것도 아니면서.
자기 연민에 빠져 있는 강간범 씨발 새끼랑은 말도 존나 안 통하고 피곤하기만 했다.
난 여기서 언제쯤 나갈 수 있을까.
욕밖에 나오지 않았다.
씨발.
* * *
나는 식탁에 차려진 음식을 보며 한기가 올라오는 걸 느꼈다.
저 새끼 혹시 내 스토커였나? 식탁엔 전부 내가 좋아하는 것만 있었다. 가만 생각해 보면 요 4일 동안 전부 그랬다. 음식은 내가 좋아하는 것들만 내왔고, 욕실에 가도 내가 대충 손에 잡히는 걸로 사 와서 쓰던 샴푸와 바디 워시, 그리고 건성이라 한여름에도 보디로션을 발랐는데 그 보디로션까지 내가 쓰던 것과 똑같은 제품이었다.
너 이 씨발놈, 존나 소름 끼친다고 욕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그러면 뭐 하겠나 싶어서 나는 한숨을 내쉬며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또다시 한숨을 내쉬며 젓가락을 드는데, 정우진이 손을 뻗어 새우 껍질을 능숙하게 까서 내 앞 접시에 놔 줬다. 정우진 앞에는 숟가락도 젓가락도, 그리고 밥그릇도 없었다.
“하지 마. 존나 소름 끼쳐.”
내 말을 듣고도 정우진은 귀가 먹었는지 계속 새우 껍질만 깠다. 평소에 새우라면 환장할 정도로 좋아했지만 정우진이 까 준 걸 넙죽 받아먹고 싶진 않았다. 나는 밥을 퍼서 입에 욱여넣은 뒤에 숟가락으로 장조림을 퍼먹었다. 으적으적 씹다가 문득 떠올랐다.
여긴 무인도였다. 섬. 그러니까 바다 가운데 둥둥 혼자 떠 있는 섬. 새우는 그렇다고 쳐도 장조림은 어디서 난 거지? 가만 생각해 보면 며칠 전까지만 해도 난 갈비찜을 먹었다. 여기에 갈비가 어디 있어?
“…….”
그래, 여긴 섬이다. 섬인데, 씨발. 도대체 저 음식 재료는 어디서 난 거지? 누가 가지고 오는 건데? 배가 들어오나? 아니, 음식 재료도, 생필품도 정우진이 이곳에 오기 전에 미리 준비를 해 둔 걸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 뒤엔? 그 뒤엔 어쩌려고?
만약 이곳에서 살려면 나가서 필요한 걸 사 오거나 누군가가 이곳에 들어와 우리에게 생필품과 음식을 줘야만 했다. 뭐가 어찌 됐든 배가 들어온다는 뜻이었다.
“정우진.”
“네?”
“…….”
손이 떨리는 게 느껴졌다. 나는 숟가락을 쥐고 있는 손에 힘을 주며 애써 태연한 척 물었다.
“오늘이 며칠이냐?”
오늘은 7월 14일. 여기 온 뒤로 4일이 지났으니까 14일이 분명했다. 내가 이곳에 와서 하루 동안 기절해 있었다고 해도 15일. 하지만 내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21일이요.”
“……뭐?”
“7월 21일. 새우 더 까 줄까요?”
정우진이 말간 얼굴로 물었다. 나는 멍청한 얼굴로 눈도 깜박이질 못했다.
“7월 21일이라고?”
“네.”
“…….”
학교에서 정우진이 내게 밥을 사 준다고 했던 게 7월 10일이었다. 내가 이곳에 감금된 건 오늘이 4일째. 약을 먹고 기절했다고 해 봤자 길어야 하루.
나는 일그러진 얼굴로 입을 열었다.
“내가 여기에 오고 얼마나 지났는데?”
“열흘 정도 지났어요.”
“…….”
접시에 있는 새우를 다 깐 정우진이 손을 닦으며 고개를 들었다. 시커먼 눈동자가 날 쳐다본다. 다시 소름이 끼쳤다.
“……내가 여기서 눈을 뜬 건 며칠이었는데.”
“4일 전이니까 17일이요.”
“내가 네 차에 탄 건.”
“10일이요.”
씨발. 나는 들고 있던 숟가락을 떨어뜨렸다.
“비는 일주일 동안 그럼 난 뭘 했는데?”
손이 덜덜 떨렸다. 내 맞은편에 앉아 있던 정우진이 몸을 일으켜 떨어진 숟가락을 주웠다. 그러더니 숟가락을 싱크대에 놓고 새 숟가락을 들고 와 내 손에 쥐여 주며 말했다.
“저랑 섹스 했잖아요.”
“우웩!”
나는 아까 먹었던 밥 한 숟가락과 장조림을 그대로 토해 냈다.
처음 말곤 아무리 헛구역질을 해도 나오는 게 없었다. 정갈하게 차려진 식탁 위를 뒤덮은 더러운 토사물도 신경 쓰지 않고 정우진은 내 등을 토닥였다. 그러더니 내 헛구역질이 좀 잠잠해지자 날 일으켜 세웠다.
“이거 놔!”
난 그의 팔을 뿌리치고 욕실로 뛰었다. 정우진이 날 쫓아오고 있을까 봐 뒤도 돌아볼 수가 없었다. 재빨리 욕실로 들어가 문을 쾅 소리가 나게 닫고 잠그자 곧바로 철컥하고 문고리 돌아가는 소리가 났다. 밖에서 정우진이 한숨을 내쉬는 소리가 들려왔다.
입 안에 맴도는 역겨운 냄새에 다시금 속이 울렁거렸다. 나는 벽을 짚고 고개를 숙여 허공에 몇 번 더 헛구역질을 했다. 정신이 없어서 사방 천지가 빙빙 돌기만 했다.
“선배, 괜찮아요?”
똑똑, 노크 소리가 들렸다. 평소와 다름없는 그 태연한 목소리에 눈물이 핑 돌았다. 나는 세면대에 물을 틀어 입 안을 헹군 뒤에 구석에 세워져 있는 행거를 끌고 와 문 앞을 막았다. 지푸라기로 호랑이를 막는 격이었지만 내겐 그 외에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몸을 벌벌 떨면서 문만 노려보고 있는데 다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문 좀 열어 주세요.”
나는 얕게 숨을 끊어 쉬며 세면대에 놓여 있는 1회용 면도칼을 노려봤다.
“제가 열기 전에 그냥 선배가 열어 주세요.”
정우진이 애원하듯 속삭였다.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나는 번들번들하게 날이 서 있는 면도칼을 손에 쥐고 문 앞으로 다가갔다. 벽에 등을 기대고 심호흡을 하고 있는데 다시 정우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잘못했어요.”
“…….”
“미안해요. 다음부턴 절대 안 그럴게요.”
쉽게 말하는 것 같았지만 그 말은 정말 진심 같았다. 하지만 저게 진심이라고 한들 그게 무슨 소용일까. 정우진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짓을 저질렀다.
“정우진.”
목이 따끔거렸다. 그새 목소리가 쉬었나 보다. 내가 나지막하게 부르자 문 반대편에서 정우진이 대답했다. ‘네.’ 하고 대답하는 목소리는 풀이 죽어 있었다.
“미안하다고?”
“미안해요. 잘못했어요.”
“날 여기에 가둬 두고 네가 나한테 미안하다고 한 게 몇 번이나 되는 줄 아냐?”
그러고 싶지 않았는데 자꾸만 목소리가 떨려 왔다. 마치 울먹이듯 떨리는 목소리를 진정시키며 나는 말을 이었다.
“네가 나한테 미안하다고, 잘못했다고, 두 번 다신 그러지 않겠다고 한 게 지금이 몇 번짼 줄 알아?”
“선배, 일단 문 열어 보세요.”
“내가 도망가는 것도 존나 짜증 날 텐데 톱으로 다리 썰어 버리고 그냥 미안하다고 하지, 왜?”
“…….”
면도칼을 쥐고 있던 손에 힘이 들어갔다. 따끔하고 날이 손바닥을 파고들어 왔다. 슬쩍 고개를 숙이자 면도칼을 쥐고 있는 손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는 게 보였다.
“내가 이 문 안 열면 어쩔 건데? 네가 열고 들어와서 나 존나게 팰 거 아니야?”
“제가 어떻게 그런…….”
“그리고 약 발라 주면서 미안하다고 하면 되잖아.”
안 그래도 뭔가 이상했다. 그래서 나는 내가 타고난 줄 알았다. 그게 아니면 강간당하면서 그렇게 자지러지게 좋아할 수는 없었을 테니까. 정말, 정말 진짜 너무 이상했지만 그때 그 일을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아서, 계속 모른 척했다.
내가 그때 왜 그렇게 소리를 지르면서 좋아 환장을 했는지, 왜 그렇게 울면서 좋아했는지. 도대체 왜. 왜. 왜.
그런데 뭐?
일주일 동안 섹스를 해? 일주일? 일주일이라고?
그럼 정우진은 그 일주일 동안 날 그렇게 만든 건가? 문득 정우진이 다음부터 약은 안 쓰겠다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설마 약을 먹여서 했나?
아니, 씨발…….
“하.”
나는 웃음이 터져 나오는 걸 막을 수가 없었다.
“일주일 동안 섹스를 했다고?”
“선배, 문 좀 열어 주세요.”
“너 섹스가 뭔지 모르냐? 섹스는 서로 합의하에 하는 걸 섹스라고 하는 거야. 너랑 내가 한 건 섹스가 아니라 강간이야, 이 씨발 새끼야.”
“문 열어요.”
“안 열어. 그냥 네가 열고 들어와서 지금까지 계속 그래 왔던 것처럼 행동해.”
“문 열어.”
한 번만 더. 한 번만 더 도발하면 정우진이 문을 부수든 열쇠로 열든 열고 들어올 거다. 나는 면도칼을 쥐고 있는 손에 더욱 힘을 줬다.
“너 존나 열 받으면 나한테 좆질 하면서 화 풀잖아.”
쾅! 커다란 굉음이 온몸을 때렸다.
그리고 계속 쾅, 쾅, 쾅! 몇 번이나 커다란 소리가 연속해서 들려왔다. 소리가 날 때마다 움찔움찔 어깨를 떠는데 잠시 후, 소리가 멎었다.
부서질 줄 알았는데 의외로 튼튼한 건지 문은 멀쩡하기만 했다. 나는 눈을 부릅뜨고 문고리만 노려봤다. 이제 존나 열 받은 정우진이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올 거다. 면도칼로 찔러 봤자 치명상을 입히긴 힘들다. 목, 목을 크게 베자. 목젖이 튀어나온 곳을 깊게 베면 한동안 못 움직일 거야. 면도칼이 내 손바닥을 자꾸만 파고드는 것도 잊은 채 나는 온 정신을 정우진을 상처 입히는 데만 쏟아부었다.
뚝, 하고 턱 끝에 맺혀 있던 땀이 떨어지는 순간,
“선배.”
숨이 멎었다. 너무 놀라서였다.
문은 열리지 않았고, 정우진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날 불렀다. 그제야 나는 내 손바닥에 면도칼이 반쯤 박혀 있다는 걸 깨달았다. 느껴지지 않던 고통이 물밀 듯 밀려왔다. 나는 속으로 신음하며 욕실 바닥에 주저앉았다. 손을 펴서 바닥을 향해 펼쳐도 깊숙이 박힌 면도칼이 손바닥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주방 치우고 있을 테니까 머리 좀 식히고 나오세요.”
발걸음 소리가 점점 멀어져 갔다. 그 소리가 완전히 멀어져 이젠 들리지도 않을 때, 손바닥에서 느껴지는 고통이 정점을 찍었다. 나는 이를 악물고 반대쪽 손으로 면도칼을 뽑았다.
울컥울컥 시뻘건 피가 터져 나왔다.
“씨발…….”
손바닥이 아파서 죽을 것 같았다. 나는 바닥에 엎드려 소리도 내지 못하고 울기만 했다.
정신이 없어서 미처 느낄 수 없었던 고통과 공포, 절망, 모든 마이너스적인 감정들이 파도처럼 나를 덮쳐 왔다. 단순히 숨을 마셨다가 뱉는 것조차 너무 힘들었다.
온몸이 젖은 수건처럼 무거웠다. 계속해서 아래로 추락하는 기분이었다. 분명 가만히 있는데 몸이 울렁울렁, 제멋대로 흔들리고 있었다.
그 뒤로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도 모르겠다. 계속 바닥에 엎어져 소리 없이 우는데 어느 순간 손바닥의 고통이 점점 희미해져 가는 걸 느꼈다. 숨을 내쉬며 고개를 들자 앞이 부옇게 흐렸다. 눈알이 빠질 것처럼 아파 왔고, 머리도 터질 것처럼 아파 왔다. 아프지 않은 곳이 한 군데도 없었다.
피딱지가 굳은 건지 손바닥에선 더 이상 피가 나지 않았다. 검붉게 굳어 있는 끈적한 핏물을 멀거니 보다가 욕실 바닥을 기었다. 제대로 설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겨우 바닥을 기어 세면대 앞으로 가 몸을 일으켰다. 부들부들 떨리는 다리를 퍽퍽 치면서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다리가 굳어 버리기라도 한 건지 힘이 하나도 들어가질 않았다. 세면대에 거의 기대다시피 몸을 지탱하고 물을 틀었다. 찬물로 세수를 하니 정신이 번쩍 드는 게 느껴졌다.
물이 차가워서가 아니라 손바닥이 존나게 아파서.
“이런 씨발.”
손바닥에서 다시 피가 나고 있었다. 콸콸 흐르는 물에 손바닥을 대자 분홍색 핏물이 세면대 구멍에 빨려 들어가는 게 보였다. 새하얀 수건으로 피가 나는 손을 둘둘 말고 문을 막아 놨던 행거를 치웠다. 바짝 귀를 가져다 대 봤지만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도대체 시간이 얼마나 지난 거지? 정우진은 뭘 하고 있을까, 아직도 주방에 있는 건가? 정우진이 만약 주방을 다 치운 거면 다시 이쪽으로 와서 날 불렀을 거다. 인기척이 들리지 않는 걸 보니 분명 정우진은 아직 주방에 있는 거다.
정우진이 오기 전에 나가서 방문을 잠그자.
“…….”
나는 문고리를 잡고 한참을 망설였다. 나갔는데 만약에, 혹시라도 만약에 정우진이 있으면…….
나는 바닥에 내팽개쳐져 있는 피 묻은 면도칼을 쓰레기통에 던져 넣고 깨끗한 면도칼을 다시 쥐었다. 이번엔 상처가 나지 않게 살살 쥔 뒤에 다시 문고리에 손을 댔다.
이 씨발 새끼, 나한테 오기만 해 봐.
이를 악물고 몇 번 심호흡을 한 뒤 문을 열었다. 잠겨 있던 문이 소리도 없이 열렸다. 천천히 문을 열고 고개를 내밀어 봤지만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욕실에서 나왔다.
그리고 한 발자국, 딱 한 발자국을 내딛다가 들고 있던 면도칼을 떨어뜨려 버렸다.
“…….”
정우진이다.
정우진이 욕실 문 바로 옆에서 양 무릎을 모으고 얼굴을 묻은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마치 엄마 배 속의 태아처럼, 잔뜩 몸을 웅크리고. 무릎을 잡고 있는 그의 손에서 피가 뚝 떨어졌다.
숨도 쉬지 않고 웅크리고 앉아 있는 정우진의 뒤통수만 쳐다보고 있는데 그의 고개가 들렸다. 도대체 얼마나 운 건지 얼굴은 창백하게 질려 있었고, 눈가가 빨갛게 부어 있었다.
엉망으로 젖어 있는 얼굴로 날 보던 정우진의 새카만 눈에 다시 물기가 차올랐다.
“선배, 내가 잘못…….”
정우진이 말을 끝마치지도 않고 입을 다물었다.
천천히, 마치 슬로비디오처럼 천천히 떨어지는 시선을 따라 고개를 숙이자 새하얀 수건으로 둘둘 말려 있는 내 손이 보였다. 정우진은 마치 믿을 수 없는 뭔가를 보듯 얼빠진 얼굴로 숨도 쉬지 않고 손을 뻗었다. 점점 내 쪽으로 다가오는 그의 손에서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정우진의 양손은 마치 피에 젖은 걸레 같았다.
“씨발, 이거 왜…….”
“…….”
“다쳤어요?”
“…….”
“다쳤냐고 묻잖아!”
정우진이 화가 난 듯 버럭 고함을 질렀다.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정우진이 흰 수건을 풀어냈다. 그새 피가 말라붙은 건지 수건이 손바닥에 철썩 들러붙어 있었다. 내가 낮게 신음하자 그의 눈에서 다시 왈칵 눈물이 터져 나왔다.
“어쩌다 다친 거예요? 왜 그랬어요? 많이 아파요?”
“…….”
“씨발, 선배 미쳤어요?”
수건이 떨어지자 길게 생채기가 나 있는 손바닥이 드러났다. 정우진은 걸레처럼 퉁퉁 붓고 피멍이 든 양손으로 내 손을 조심스럽게 잡았다. 아까 주먹을 쥐고 문을 쳐서 그런 건지, 주먹을 쥐었을 때 툭 튀어나오는 뼈가 전부 까져서 피가 나고 있었다. 그의 손에서 피가 흘러 피딱지가 굳어 있는 내 손바닥에 고였다.
“나 때문에 화가 났으면 날 때려야지 왜 선배가 다쳐요!”
내 손을 붙들고 정우진이 애처럼 울었다. 이제 아주 작정이라도 한 건지, 그의 울음소리는 점점 커져만 갔다.
“어, 어떡……. 어떡해, 이거 어떡…….”
안절부절못하면서 벌벌 떨고 있는 모습이 마치 엄마를 잃은 애처럼 보이기도 했다.
“내가 뭐랬어요? 내 허락 없이 다치면 내가 분명 침대에 묶어 둘 거라고……. 내가, 씨발…….”
나는 그 모습을 멀거니 쳐다보기만 했다. 어째서인지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 서서 나는 그냥 울고 있는 정우진을 계속 쳐다보기만 했다.
저렇게 불쌍하고 애처롭게 우는 사람을, 어디선가 본 것 같기도 했다.
* * *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내 손바닥을 소독하는 정우진을 보면서 머리가 싸늘해지는 걸 느꼈다. 분명 조금 전까지만 해도 정신이 하나도 없어서 속이 울렁거렸는데.
손바닥의 상처는 그리 깊지 않았다. 그저 면도칼에 살갗이 조금 베였을 뿐이다. 오히려 내 상처보다 정우진의 상처가 더 심각했다. 발등엔 생채기가, 입술은 짓물러 너덜거렸고, 찢어진 이마는 제때 치료하지 않아 이미 흉한 상처가 남아 있었고, 하얗고 가느다랬던 그의 손은 흉측하게 붓고 피멍이 들어 있었다.
솜에 소독약을 묻혀 내 손바닥을 소독하고 있었지만 핏물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의 손에서 자꾸만 피가 흘러 내 손바닥을 적셨기 때문이다. 소독을 하나 마나 소용도 없는 짓이었지만 나는 굳이 말리지 않았다.
피곤해서 죽을 것 같았다. 눈알이 뻑뻑해서 눈을 감는데 시커먼 시야 사이로 언뜻 형체가 생겨났다가 사라졌다.
다시 눈을 떴을 땐 정우진이 내 손바닥에 약을 바르고 있었다. 희뿌연 연고와 핏물이 뒤섞여 분홍빛이 돌았다. 손바닥에 피가 흐르고 눈물이 떨어졌다. 자꾸만, 계속 그게 반복됐다.
“미안해요.”
입술을 깨물고 있던 정우진이 꺼질 듯 위태로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 말에 정신이 깨어났다. 두어 번 눈을 깜박이다가 손을 빼냈다. 내가 하는 게 훨씬 더 빠를 것 같았다.
“선배.”
정우진이 손을 뻗어 내 손목을 잡았다. 상처를 치료할 때와는 달리 억센 손길이었다. 나는 내 손목을 붙잡고 있는 그의 손을 바라봤다. 잡힌 건 내 쪽인데 정우진의 손이 훨씬 더 아파 보였다. 나는 고개를 들어 눈물로 젖어 있는 그의 얼굴을 쳐다봤다.
“넌 도대체 나한테 원하는 게 뭐야?”
정우진이 내게 무슨 대답을 할지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이 말 말곤 그에게 할 말이 없었다.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질문과 대답이 나는 지겨워 죽을 것 같은데, 정우진은 그렇지도 않은 것 같았다.
“사랑해요.”
“…….”
사랑. 사랑. 그놈에 사랑.
나는 정우진이 내 손에 약을 바르고 반창고를 붙이고 붕대를 감을 때까지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정우진은 피딱지가 굳은 제 손으로 날 안아 들고 침대에 눕혔다.
몸이 천근만근처럼 무거웠다. 이불을 끌어당겨 벽을 보고 돌아눕는데 정우진이 내 옆에 누웠다. 일단 한숨 자야겠다. 그렇게 생각하고 눈을 감는데 정우진이 이불 밑으로 내 허벅지를 만졌다. 성적인 의도는 느껴지지 않는 단순한 접촉이었다. 미적지근한 손길은 내 허벅지에서 무릎 안쪽, 그리고 종아리로 내려갔다. 마치 벌레처럼 내 다리를 기어 다니던 손끝이 마지막으로 닿은 건 발목이었다.
정우진은 내 발목을 두어 번 쓸다가 말했다.
“선배.”
“…….”
“미안해요.”
내 등 뒤에 바짝 붙은 정우진이 또다시 울먹였다. 울음기가 잔뜩 섞인 목소리로 날 부르며 정우진이 내 목덜미에 얼굴을 박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조금씩 잠에 빠져들고 있었다.
거의 반쯤 잠들었을 때, 귓가로 희미하게 목소리가 들려왔다.
“발뒤꿈치나 발가락을 조금만 자를까요?”
“…….”
정신 나간 말을 하고 있는데 목소리는 겁먹은 것처럼 벌벌 떨리고 있었다. 목덜미로, 어깨로 뚝뚝 떨어지다 못해 줄줄 흐르는 차가운 눈물이 선뜩했다.
천천히 눈을 뜨자 새하얀 벽지가 보였다. 내 발목을 배회하던 손가락 끝이 발꿈치에 닿았다. 느리게 눈을 감았다가 뜨자 정우진이 다시 내 귀에 입을 대고 젖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다 자르면 모양이 이상하니까 조금만요.”
“…….”
발뒤꿈치나 발가락을 자른다는 말을 들었는데도 별생각이 들지 않았다. 무섭지도 않았고 두렵지도 않았다.
“마취하면 하나도 안 아파요.”
“싫어.”
손바닥만 조금 베여도 저 지랄병을 떠는 새끼가 내 몸의 일부를 자를 것 같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정우진이 내게 저 말을 한 건 어쩌면.
“왜 싫어요?”
“입 닥쳐.”
“왜 싫은지 말해 주세요. 그럼 안 할게요.”
“말 시키지 마, 씨발 새끼야.”
어쩌면 내 목소리를 듣고 싶어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배, 진짜 미안해요. 이제 안 그럴게요.”
“말 시키지 말라고, 씨발.”
“그러니까 선배도 다신 그러지 마세요.”
왜지? 왜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든 건지?
‘형아, 매미 왜 죽이면 안 돼?’
그때 정우진의 목소리가 기억 속의 앳된 목소리와 겹쳐 들렸다. 나는 다시 눈을 감으며 이를 사리물었다.
‘매미 왜 죽이면 안 돼?’
‘그럼 매미가 아프잖아.’
‘형아, 나랑 같이 자자.’
‘뭐? 갑자기 무슨 소리야?’
‘무서운 꿈을 꿨어.’
깡말라 뼈밖에 없던 이상한 애가 하나 있었다.
자꾸 쓸데없는 소리를 하는 게 귀찮아 내가 무시하면 그 아이는 도저히 대답하지 않으면 안 될 거 같은 질문을 하면서 결국엔 내가 대답하게 만들었다. 그땐 그저 이상하다고만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까 알 것도 같았다.
“미안해요. 다신 안 그럴게요. 진짜 안 그럴 거예요.”
“…….”
그 이상했던 애는 그냥 내 관심을 끌고 싶어서 그랬던 게 아니었을까. 매미를 왜 죽이면 안 되는지 몰랐던 게 아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