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장 (3/28)

2장

목이 껄끄러웠다.

뭔가 걸린 것처럼 갑갑해서 마른기침이 나왔다. 힘겹게 콜록거리고 있는데 이마에 서늘한 손바닥이 닿는다. 내 이마와 머리카락을 매만지는 손길에 마음이 편안해졌다.

다시 잠이 들려던 찰나에 나는 퍼뜩 눈을 떴다. 갑자기 눈을 떠서 그런지 현기증이 일었다.

“선배, 일어났어요?”

어디서 많이 보던 장면이었다. 이랬던 적이 또 있었던 것 같은데. 눈을 감고 끙끙거리다가 떠올렸다.

욕실에서 내가 무슨 짓을 하면서 기절했는지…….

온몸에 땀구멍이 죄다 열리는 느낌을 받으며 천천히 눈을 떴다. 가장 먼저 보인 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정우진이었다. 눈이 마주치자마자 갈 곳 없는 수치심과 분노가 동시에 일었다.

“왜 이렇게 많이 자요? 그렇게 힘들었어요?”

“…….”

아직도 나는 이 상황을 전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상황을 이해하든 말든 이젠 그런 건 중요한 게 아니었다.

가만히 정우진을 보던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눈가가 짓무른 것처럼 따갑고 아팠다. 머리도 좀 아프긴 했지만 심한 건 아니라 그럭저럭 견딜 만했다. 몸에는 여전히 힘이 잘 들어가지 않아 팔을 들어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고 있는데, 정우진이 내 손을 잡았다.

“배 안 고파요?”

“정우진.”

“선배, 그냥 우진이라고 불러도 된다니까.”

“손 놔.”

충분히 그의 손을 뿌리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정우진을 똑바로 보며 차갑게 말했다. 내 서늘한 목소리에 그의 표정이 변했다. 정우진은 표정이 없는 얼굴로 가만히 날 보다가 물었다.

“화났어요?”

“좆같은 소리 하지 말고 손 놔.”

정우진은 한숨을 내쉬며 내 손을 놨다. 나는 천천히 상체를 일으켜 주변을 살폈다. 아까 기절하기 전에 정우진은 이곳이 제주도라고 했다. 아니, 제주도 근처 별장이라고 했던가. 잘 기억이 나지 않는 걸 억지로 떠올리려고 하자 다시금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 왔다.

내가 낮게 신음을 흘리자 정우진이 다시 내 손을 붙잡았다.

“선배, 많이 아프…….”

“놓으라고, 씨발 새끼야.”

“…….”

“내 옷이랑 핸드폰 가져와.”

여기가 정말 제주도 근처든 아니든 그런 건 상관없었다. 나는 그냥 한시라도 빨리 집에 가서 다시 잠들고 싶었다. 정우진이 내게 왜 이런 짓을 한 건지, 날 왜 이곳에 데리고 온 건지는 나중 문제였다.

“선배.”

“같은 말 반복하게 하지 마라, 아가리 찢어지기 싫으면.”

할 수만 있다면 지금 당장 저 좆같은 면상을 죽사발로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몸에 힘이 잘 들어가질 않았다. 허리 밑으론 감각이 없어서 내가 제대로 설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잠시 눈을 감았다가 떴을 때도 정우진은 그 자리에서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나는 힐끗 그를 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옷. 핸드폰.”

“…….”

정우진은 입을 꾹 다물고 날 쳐다보기만 할 뿐이었다. 그의 새카만 눈동자가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아 낼 것처럼 형편없이 흔들리고 있는 게 보였다. 그걸 보며 나는 황당해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왜 저렇게 상처 받은 사람처럼 청순가련해 보이는 얼굴을 하고 있는 거지? 그 모습이 개좆같기 그지없어서 나는 손을 들어 정우진의 면상을 후려쳤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얼굴이 옆으로 돌아갔고, 새하얀 밀가루 반죽 같던 뺨이 금방 붉게 부풀어 올랐다.

“옷이랑 핸드폰 가져오라고.”

옆으로 돌아갔던 고개가 다시 천천히 제자리로 돌아왔다. 예의 그 새카만 눈동자가 나만 올곧게 쳐다보고 있었다. 열불이 터질 것 같은 나와는 달리 그 모습이 너무 정적으로 보여서 머리끝까지 화가 치솟았다.

“씨발아, 내 옷이랑 핸드폰 가져오라고!”

“없어요.”

“뭐?”

“없어요. 선배 옷도, 핸드폰도.”

저 씨발놈이 지금 뭐라고 지껄이는 거야. 내 어이없다는 표정을 보며 정우진이 손을 뻗어 다시 내 손을 잡았다.

“선배 어제부터 아무것도 안 먹었어요. 일단 밥부터…….”

씨발, 저 새끼가 아까부터 왜 자꾸 밥 타령이야?

“지랄 염병하고 있네. 너 진짜 뒈지게 터지고 싶냐? 상황 파악이 안 돼? 씨발, 네가 지금 무슨 짓을……!”

“선배 잘 때 전복죽 끓여 놨어요. 빈속이니까 일단 죽부터 먹고 나중에 밥 먹어요.”

정우진이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천천히 문을 나서는 정우진의 뒷모습을 얼빠진 표정으로 쳐다보기만 했다. 달칵 하고 문이 닫히는 소리에 퍼뜩 정신이 들었다.

나는 더 생각할 것도 없이 이불을 젖히고 바닥에 똑바로 섰다. 발바닥이 바닥에 닿자마자 허리가 찌릿하고 아파 왔다. 팬티 한 장 걸치지 않은 알몸이라 이불을 몸에 둘둘 말고 힘겹게 걸음을 옮겼다.

두꺼운 커튼을 젖히자 밖은 어두컴컴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흔한 불빛도 하나 없었다.

나는 앞뒤 가리지 않고 그대로 창문을 열어 밑으로 뛰어내렸다. 너무 어두워서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맨다리에 닿는 풀도 따갑고, 얼굴을 스치는 나뭇잎도, 발바닥에 밟히는 돌멩이도 죄다 아프기만 했다.

하지만 멈출 수가 없었다. 누구든 좋으니 사람 한 명만 만나면 모든 게 해결된다. 가정집이나, 가게도 괜찮다. 경찰서가 있으면 제일 좋은 거고. 나는 미친 듯이 비탈길을 내려갔다. 넘어질 뻔한 적이 수십 번도 더 됐지만 다행히 꼴사납게 구르진 않았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올라 눈앞이 어질어질해졌다. 한참 헉헉거리면서 뛰어 내려가고 있는데 드디어 널따란 평지가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화색을 띠고 더욱 빠르게 뛰었다.

“헉, 헉…….”

하지만 평지에 다다를수록 내 표정은 점점 일그러질 수밖에 없었다. 뭔가 이상하다. 이건 이상해. 아무것도 없다. 모든 게 암흑이었다. 발바닥에 밟히는 보드라운 모래와 아까부터 희미하게 들려오는 거슬리는 파도 소리. 눈앞은 온통 거대한 암흑뿐이었다.

“선배.”

“…….”

그때 환청처럼 들리는 소리에 나는 절망적인 얼굴로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멀끔한 모습의 정우진이 날 쳐다보고 있는 게 보였다.

난 땀에 젖어 헉헉거리고 있는데, 정우진은 숨소리 하나 흐트러지지 않은 모습이었다. 정우진을 비추고 있는 가로등 하나가 고장 난 것처럼 치지직거린다. 어두워졌다가 다시 밝아질 때마다 정우진은 점점 더 내게 다가와 있었다.

“산책은 해 뜨면 해요. 밤에 나가면 위험하니까.”

“…….”

“다쳤네.”

그는 내 앞에 다소곳한 모습으로 무릎을 꿇었다. 그러더니 제 무릎 위에 내 발을 올려놓고 상처를 유심히 살피며 낯을 찌푸렸다. 그 모습이 너무 비현실적이라 이 모든 게 꿈만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천천히 시선을 돌려 거대한 암흑을 쳐다봤다.

귓가를 때리는 파도 소리.

발바닥에 밟히는 보드라운 모래.

숨을 쉴 때마다 느껴지는 익숙한 짠 내.

“…….”

그건 바다였다.

바다…….

“…….”

저건 바다고 이곳이 섬이라는 걸 알고 있는데도 그 사실을 믿을 수가 없어서 혼잣말 같은 소리가 계속 나왔다.

“여기가 어디…….”

“제주도 근처 별장이라고 했잖아요. 안 되겠다. 선배, 저한테 업혀요.”

내 발목을 잡는 정우진을 가만히 보다가 나는 그에게 발길질을 했다. 정우진은 날렵하게 피했지만, 내 발목을 놓쳤다. 나는 뒤를 돌아 있는 힘껏 암흑을 향해 뛰어갔다. 하지만 몇 발자국 움직이지도 못하고 그의 손아귀에 잡혀 버렸다.

“선배, 나중에 해 뜨면…….”

“이거 놔!”

“다쳤으니까 일단 들어가서 치료 좀 하고…….”

“놓으라고, 이거 놔! 씨발, 놔!”

파르르 하고 가로등의 불빛이 떨렸다. 잠시 세상에 어둠이 찾아왔다. 다시 가로등의 불빛이 켜졌을 때, 나는 정우진의 밑에 깔려 있었다. 그는 입술이 터져 피를 흘리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꼭 영화 속에 나오는 미친 연쇄 살인마 같았다.

“씨발, 가만히 좀 있어요.”

귓가로 고저 없는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렸다. 정우진의 눈동자는 어둡게 일렁이고 있는 바다보다 더욱 새카맸다. 날 짓누르고 있는 그의 무게가 천근만근 같다. 꼼짝도 하지 못하고 숨을 멈추고 있는데 정우진이 내 무릎 뒤쪽에 손을 넣었다.

“멀쩡한 길 내버려 두고 왜 길도 없는 산에서 내려와요? 저기 계단 있으니까 앞으론 저기로 다니세요.”

“…….”

“나올 땐 신발 신고. 부드러워 보여도 모래에 조개가 많아서 다칠 수도 있어요. 이거 봐, 발바닥 다 까졌잖아.”

정우진이 내 발을 든다. 그는 모래와 흙, 그리고 피로 엉망인 내 발바닥을 천천히 쓸었다. 그러더니 복숭아뼈에 난 생채기를 보며 혀를 찼다. 그리고 고개를 숙여 내 복숭아뼈를 길게 핥았다.

“문 열려 있으니까 창문으로 나가지도 말고요.”

“…….”

그는 내 눈가에 입을 맞추더니 몸을 일으켰다. 나와는 정반대로 침착하기만 한 정우진을 보며 나는 조금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뻣뻣하게 굳어 있는 날 보던 정우진이 날 소중한 유리 인형처럼 안아 들고 천천히 다리를 움직였다.

“몸 좀 괜찮아지면 수영할래요? 낮에는 너무 더우니까 밤에 해도 괜찮고. 선배, 낚시는 할 줄 알아요? 낚시해도 되는데.”

“……정우진.”

“그냥 우진이라고 부르라니까.”

“여기 어디…….”

천천히 계단을 오르던 정우진이 고개를 숙여 날 내려다봤다. 그의 표정은 지나칠 정도로 다정하고 해맑았다.

“섬이에요. 제주도 근처에 있는 섬. 우리 둘밖에 없으니까 다음엔 밖에서 해 볼래요?”

“…….”

“섹스요. 밖에서 해도 아무도 못 봐요.”

헤실헤실 웃는 정우진을 보고 있자니 속이 메슥거려서 입 안에 잔뜩 침이 고였다. 토할 것 같아서 얼른 고개를 돌리고 입을 꾹 다물고 있는 사이 집에 도착한 정우진은 날 소파에 내려놓고 구급상자를 가져왔다.

그는 엉망이 된 내 발을 뜨거운 수건으로 닦아 주더니 상처가 난 곳을 제 혀로 죄다 핥았다. 보드라운 혓바닥이 상처를 지나칠 때마다 나는 발버둥을 쳤고, 욕지거리를 내뱉었지만 그는 조금도 동요하지 않고 내 양 손목을 묶어서 어딘가에 고정시켰다.

“하지 말라고, 씨발 새끼야!”

정우진의 입 속으로 내 엄지발가락이 들어갔을 때 나는 그의 면상에 발길질을 했다. 하지만 정우진은 쉽게 내 발목을 잡더니 발가락 사이를 혀로 핥았다.

도대체 이게 다 무슨 일인지 알 수가 없었다. 저 새끼가 왜 내 발을 빨고 있는 거지? 이게 현실인가? 꿈이 아니라? 뭐지? 도대체 뭐야?

답답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고함을 지르면서 욕하는 것밖에 없었다.

“선배.”

“씨발, 이거……. 이거 놔! 놓으라고!”

“상처 치료할 때만이라도 좀 가만히 있으면 안 돼요?”

치료? 이게 치료냐?

내가 버럭 소리치려고 할 때, 정우진이 내 발바닥을 길게 핥았다. 나는 몸을 부르르 떨고 눈을 감았다. 밑에서 웃는 소리가 들렸다. 다시 눈을 뜨자 정우진이 날 보며 웃고 있는 게 보였다. 머리 꼭대기까지 화가 치솟았다. 정우진은 바닥에 앉아서 내 양 무릎을 끌어안고 내 무릎 위에 얼굴을 묻었다. 어찌나 힘이 센지 나는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선배.”

“너 도대체 이러는 이유가 뭐야? 씨발, 나한테 왜!”

“앞으로 한 번만 더 내 허락 없이 다치면 침대에 묶어 둘 거예요.”

“뭐?”

그는 안타까운 눈으로 내 다리에 난 상처를 쳐다봤다. 아까 면봉으로 약을 발랐는데 그런 것 따윈 조금도 개의치 않는다는 듯 다시 혀로 핥기 시작했다. 나는 이를 사리물고 주먹을 쥐었다.

“다치지 마요. 속상하니까.”

“씨발, 환장하겠네.”

“선배, 사랑해요.”

정우진은 내게 구걸하고 있었다.

그의 눈빛이, 손짓이, 몸짓이 그걸 증명해 주고 있었다. 화도 내지 않고, 단지 애원하고 다정하게, 애처롭게 날 바라보는 정우진을 보며 나는 그제야 무언가 잘못됐다는 걸 깨달았다.

* * *

정우진은 날 묶어 둔 채 주방으로 갔다.

손목을 비틀어 빼 보려고 했지만 아프기만 할 뿐, 풀어지지 않았다. 나는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이를 갈았다. 등 뒤에서 양손이 교차되게 묶여 있었는데, 끈이 소파까지 연결되어 있어서 나는 마음대로 일어설 수도 없었다. 몸을 이리저리 뒤틀다 보니 발바닥이 따가워지기 시작했다. 뺨도 아팠고, 상처가 난 다리도, 그리고 손목도 아프다. 사실 지금 몸살이 걸린 것처럼 온몸이 아프긴 했다.

“선배.”

그는 네모난 쟁반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죽 한 그릇과 물 한 컵을 가지고 다가왔다. 소파 앞 탁자에 쟁반을 내려 둔 정우진이 내 옆에 앉았다. 저 허연 면상만 봐도 속에서 천불이 올랐다.

“사랑? 사랑 같은 소리 하고 앉아 있네, 씨발 새끼가.”

뜬금없는 내 비아냥거림에도 정우진은 눈도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그는 숟가락으로 전복죽을 떠서 후후 입김을 불었다. 그러더니 제 입술에 대고 적당히 식은 걸 확인한 후에 내 입가에 가져다 댔다.

“먹어요.”

“치워.”

나는 고개를 휙 돌리고 차갑게 말했다. 정우진은 끈질기게 내 입술에 숟가락을 갖다 댔다. 내가 계속 고개를 돌리고 입을 꾹 다물자, 정우진이 반대쪽 손으로 내 턱을 움켜쥐었다.

아픈 건 아니었지만 더 이상 고개를 돌릴 순 없었다.

“입 벌리세요.”

욕을 하고 싶었지만 그럼 정우진이 내 입 속으로 숟가락을 처넣을까 봐 차마 그럴 수도 없었다. 내가 이를 악물고 도끼눈을 뜨자 정우진이 한숨을 내쉬었다.

“왜요? 죽 먹기 싫어요?”

“…….”

“아니면 뭐 독이라도 들어 있을까 봐 그래요?”

정우진이 피식 웃으며 숟가락을 제 입에 넣었다. 그는 전복죽을 오물오물 씹더니 꿀꺽 삼키며 말했다.

“독 없어요. 나도 먹었잖아요. 고집 그만 부리고 빨리 먹어요. 선배 어제부터 아무것도 안 먹었잖아요.”

저 씨발 새끼 얼굴은 꼴도 보기 싫은데 턱이 잡혀 있어서 고개를 돌릴 수가 없었다. 차선책으로 눈알만 옆으로 굴려 시선을 돌리자 턱을 잡고 있는 손에 힘이 들어갔다.

곧 꾹 다문 입술 사이로 엄지가 비집고 들어왔다. 나는 이때다 싶어 콱 하고 엄지를 물었다. 온 힘을 다해 씹어서 그런지 찝찔한 피 맛이 느껴졌지만 정우진은 소리도 하나 내지 않고 태연히 말했다.

“고집 센 건 여전하네.”

한숨을 내쉬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는 말에 나는 순간 의아한 얼굴로 정우진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여전하다는 그 말이 마치 우리가 예전부터 알고 있는 사이라는 것처럼 들려서 인상을 찌푸렸다. 도대체 그게 무슨 말이냐고 물어보려고 하는데, 정우진이 내 입 속에 엄지를 넣은 채 반대쪽 손으로 다시 숟가락을 들었다. 설마 억지로 먹일 셈인가? 나는 온 힘을 다해 사지를 비틀었다. 아니, 비틀려고 하는데 정우진이 다시 숟가락을 제 입 속에 넣었다.

갑자기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정우진은 몇 번 입을 오물거리더니 내 턱을 들어 입을 맞췄다. 벌어진 입 속으로 미적지근한 전복죽이 흘러들어 왔다. 놀라서 굳어 있다가 나는 파드득 몸을 떨었다. 정우진이 내 혀뿌리를 꾹 눌러 억지로 전복죽을 삼키게 했기 때문이다.

“큭! 쿨럭!”

“계속 이렇게 먹을래요? 난 상관없는데.”

“이 씨발 새끼야!”

“죽 한 그릇 다 먹는 데 한 시간은 걸리겠네.”

“이거 놔!”

“다 먹으면 놔줄게요. 좀 먹어요.”

“이 좆같은 새끼가 더럽게!”

“알았으니까 좀 처먹으라고요, 씨발. 굶어 죽을 거예요?”

정우진이 다시 숟가락을 들어 제 입에 처넣는다. 나는 반사적으로 빽 소리쳤다.

“손 풀어! 씨발, 내가 먹을 거니까 손 풀, 읍!”

다시 입 속으로 전복죽이 흘러들어 온다. 나는 악을 쓰며 혓바닥으로 전복죽을 밀어내려고 했지만 여의치가 않았다. 정우진의 입술과 혀가 빈틈없이 내 입을 막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다시 내 혀뿌리를 누르려고 하는 정우진의 혓바닥을 있는 힘껏 깨물었다. 잠시 정우진이 움찔하고 몸을 떨었다. 하지만 나는 결국 전복죽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내 입술을 핥고 떨어지려는 정우진의 입술을 다시 한번 깨물었다. 정우진은 피가 철철 나는 제 입술을 혀로 핥으며 말했다.

“선배 싱겁게 먹는다고 해서 따로 간은 안 했어요. 입에 맞아요?”

“……하.”

사람 같지 않은 그 모습에 나는 부들부들 떨며 정우진을 노려봤다. 이 새끼는 통각이 없나? 개 씨발, 드러워 죽겠네.

정우진은 내가 노려보든 말든 다시 숟가락을 들었다. 나는 이를 악물고 나지막하게 말했다.

“팔 풀어.”

“이거 다 먹으면 풀어 줄게요.”

“내가 먹을 테니까 풀라고.”

“싫어요.”

“씨발, 풀어!”

“싫어.”

시커먼 눈동자는 화가 난 듯 일렁이고 있었다. 정우진은 가만히 날 보기만 하다가 숟가락을 내 입가에 가져다 댔다. 다시 고개를 돌리려고 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내가 고개를 돌리면 정우진이 또 무슨 좆같은 짓을 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나는 부들부들 떨면서 입을 열었다.

“입에 맞아요?”

“존나 맛없어, 씨발 새끼야.”

“미안해요, 다음엔 더 맛있게 할게요.”

나는 거의 씹지도 않고 죽을 삼켰다. 그러자 정우진이 손을 뻗어 내 입술을 훑었다. 내가 깨물어서 피가 나는 손가락이었다.

“손 치워.”

“선배가 물었잖아요. 아파요.”

“더러우니까 치워.”

“무섭네.”

정우진은 피식 웃고 다시 얼굴을 들이밀어 내 입술을 핥았다. 재빨리 고개를 돌렸지만 그의 혓바닥이 이미 내 입술을 할퀴듯 스치고 지나간 후였다.

“정우진.”

“진짜 말귀 되게 못 알아듣네. 그냥 우진이라고 부르라니까요.”

“너 도대체 나한테 왜 이래?”

“죽 먹기가 그렇게 싫어요? 그럼 그냥 갈비찜 먹을래요?”

“이 씨발! 좆 까는 소리 하지 말고 똑바로 대답해!”

아까부터 자꾸 헛소리만 하는 게 답답해서 고함을 치자 정우진이 한숨을 내쉬었다.

“이러는 이유가 뭐야?”

“선배랑 같이 있고 싶어서 그랬어요.”

“뭐?”

“같이 있고 싶어서.”

나는 허탈하게 웃었다.

같이 있고 싶어서 지금 날 여기에 이렇게 묶어 두고 있는 거라고? 저게 무슨 개소리야? 저 씨발 새끼가 한두 살 처먹은 애새끼도 아니고. 역시 그냥 정신병자가 맞는 거 같았다.

내가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돌리자 정우진이 다시 전복죽을 뜬 숟가락을 내 입술에 댔다. 나는 신경질적으로 입을 벌리고 숟가락을 콱 물었다.

“다칠 수도 있으니까 살살 좀 먹어요.”

“나랑 왜 같이 있고 싶은데?”

나는 다시 전복죽을 씹지도 않고 삼켰다. 내 질문에 열 받을 정도로 잘만 대답하던 정우진이 입을 다물었다. 나는 저 입에서 나올 말들을 생각했다. 아까처럼 또 사랑한다는 말을 지껄이려고 저러나? 아니면 다른 거? 도대체 저 새끼가 나한테 왜 이러는 거지?

“선배.”

“말해.”

“선배는 연상이 좋아요?”

“뭐?”

갑작스러운 질문에 나는 이맛살을 찌푸렸다. 갑자기 저게 무슨 개소리야?

“연하는 싫어요? 난 어때요? 나 진짜 잘할 수 있는데……. 난 선배가 싫어하는 거 아무것도 안 할 거예요. 선배가 하라는 거 다 할게요.”

나는 당황해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정우진을 쳐다보기만 했다. 그는 숟가락을 내려놓고 내 어깨를 붙잡았다. 필사적인 손길이었다.

“사랑해요. 나만큼 선배 사랑하는 사람 세상에 아무도 없어요. 진짜 좋아하는데……. 너무 사랑하는데 어떻게 표현할 방법이 없어서 짜증 나 죽겠어요. 진짜 사랑해요. 믿어 주세요.”

“…….”

“선배, 나 싫어요? 내가 어떻게 하면 돼요? 내가 어떻게 하면 나 좋아해 줄 거예요?”

이게 도대체 무슨…….

나는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숨을 내뱉었다. 장난을 치고 있는 게 아니라 정말 진심이 느껴지고 있었다. 표정도 말투도 목소리도 손짓도 어느 것 하나 진심이 아닌 게 없어 보였다.

그 사실이 더욱 날 혼란스럽게 했다.

그러니까……. 사랑해서 그런 거라고?

“…….”

미친 새낀가? 정신 나갔나? 대가리가 돌아 버렸나?

그게 아니면 나한테 이딴 말을 지껄일 리가 없었다. 정우진과 나는 아무런 접점이 없었다. 우리가 처음 본 건 고작 1년 전이었고, 그 뒤로도 만난 적은 없었다. 따로 만난 적도 당연히 없었고, 스치듯 지나가면서 얼핏 본 것도 몇 번 되지 않았다. 근데 사랑?

나는 애처로운 표정으로 내 대답을 기다리는 정우진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니까 넌 지금 날 사랑해서 이딴 짓을 했다는 거냐?”

“그건 미안해요. 진짜 잘못했어요. 다음부터는 안 그럴게요.”

그 말에 다시 반사적으로 욕을 하려다가 숨을 삼켰다. 정우진이 미친놈이라고 해서 나까지 거기에 장단을 맞출 필요는 없었다. 정신병자 또라이 정우진과는 달리 나는 지성인이라는 걸 되뇌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정우진, 난 게이가 아니야.”

“내가 잘할게요.”

“…….”

씨발 새끼가 게이 아니라니까 잘하기는 뭘 잘해. 돌았나, 진짜.

하지만 정우진이 말을 한마디, 한마디 내뱉을 때마다 겨우 가라앉힌 마음이 다시 들불처럼 가슴을 태웠다. 그래도 참는 수밖에 없었다. 일단 대화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욕하고 화내 봤자 아무것도 내게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

게다가 지금 정우진은 처량 맞은 개새끼처럼 굴고 있어서 어쩌면 말이 통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게 말하면 알아듣지 않을까? 차근차근 좋은 말로 설득하면 내 말을 들어 줄 것 같기도 했다.

“일단 손부터 풀어.”

“싫어요, 그럼 나 때릴 거잖아.”

“…….”

정우진이 겁먹은 표정으로 불쌍한 척을 했다. 진짜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 사람을 납치해서 가둬 둔 게 누군데 지금 이따위로 구는 건지……. 얼굴에 침이라도 뱉고 싶었지만 나는 인내심을 발휘했다.

“안 때릴 테니까 풀어.”

“……진짜예요?”

“그래. 빨리 풀어. 일단 이것부터 풀고 우리 대화를 좀 해 보자.”

“…….”

정우진은 불안한 눈빛으로 가만히 날 쳐다보기만 했다. 그렇게 한참 시간이 지났다. 나는 일부러 그동안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똑바로 정우진을 바라보기만 했다.

그의 새카만 눈동자가 갈등하는 마음을 대변하기라도 하는 듯 형편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결국 정우진은 결심했는지 고개를 푹 숙이고 내 손을 풀어 주기 시작했다.

“미안해요.”

“…….”

아주 조심스러운 손길이었다. 그걸 빤히 바라보고 있는데 정우진이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정말 사랑해요. 난 일곱 살 때부터 선배밖에…….”

그리고 손이 풀리는 순간 나는 고민하지도 않고 탁자 위에 놓여 있는 전복죽 그릇으로 손을 뻗어 있는 힘껏 정우진의 머리를 내려쳤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정우진이 소파 위로 쓰러졌다. 그릇은 산산조각으로 부서졌다.

나는 소파 밑에 나뒹굴고 있는 얇은 담요를 주워 들고 현관문 쪽으로 뛰어갔다. 그리고 문을 나서기 전에 정우진을 돌아봤다. 죽은 건지, 기절을 한 건지 쓰러진 채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다. 소파 밑으로 피가 흐르는 걸 잠깐 보다가 나는 현관문을 쾅 닫고 미친 듯이 달렸다.

설득은 개뿔. 씨발, 그냥 토끼고 경찰서에 신고하는 게 상책이지.

나는 손에 쥐고 있던 담요를 몸에 둘둘 말고 신발도 신지 않고 맨발로 조금 전 올라온 계단을 정신없이 뛰어 내려갔다.

그러다가 깨달았다.

“이런 씨발.”

이곳이 섬이라는 사실을.

대책 없이 나온 건 사실이었지만 개좆같은 헛소리를 들어 주면서 그곳에 계속 있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사랑은 씨발, 염병하고 있네.

그래도 혹시나 싶어 어두컴컴한 해안가를 따라 무작정 달렸다. 통통배라도 한 척 있으면 좋으련만 보이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 흔한 나뭇조각 하나도 보이지 않는 해안가를 한참 달리고 있는데 멀리서 불빛이 보였다.

뭐지? 웬 불빛? 뭐야? 혹시 사람인가? 아닌데, 여긴 우리 둘밖에 없다고 했는데. 혹시 정우진이 구라를 친 건가?

불안한 마음 뒤로 조금씩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겨우 보이는 희망을 차마 놓을 수가 없었다. 나는 정우진이 내게 거짓말을 한 게 분명하다고, 이곳에 우리 둘밖에 있을 리가 없다는 생각을 하며 기뻐했다. 어쩌면 여기가 섬이라는 것도 거짓말일 수도 있다고.

하지만 불빛이 점점 가까워질수록 다시 불안이 고개를 들었다.

저 불빛의 주인이 정우진이면 어쩌지?

“…….”

나는 그 자리에서 멈춰 섰다.

아니다. 정우진은 대가리가 빠개져서 기절했다. 살았는지 뒈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렇게 빨리 날 찾을 리가 없어. 제발 그래야만 했다. 나는 끄트머리가 젖어서 축 늘어진 담요를 꾹 부여잡고 조금 더 앞으로 나아갔다. 어느새 불빛은 내 지척까지 다가와 있었다.

나는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누구세요?”

불빛이 다가온다.

부옇게 흔들리는 불빛이 점점, 일정한 속도로 천천히.

혹시나 싶은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저건 정우진이 아닐 거야. 만약 저 불빛의 주인공이 정우진이라면 이렇게 천천히 다가올 리가 없어. 저게 정우진이었더라면 눈에 불을 켜고 달려왔겠지.

나는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누구…….”

말을 채 끝마치지도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불빛 사이로 피로 칠갑된 정우진의 얼굴이 보였기 때문이다. 나는 뒤로 철퍼덕 넘어졌다. 다리에 힘이 풀려서 서 있을 수도 없었다.

“신발 좀 신고 나오라니까.”

정우진은 내 앞에 쪼그려 앉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이마에서, 볼을 지나 턱 끝으로 피가 뚝, 떨어졌다. 나는 숨도 쉬지 못하고 덜덜 떨었다.

“어, 어떻게…….”

“발자국 따라 왔어요. 어서 일어나요, 감기 걸리겠다.”

정우진이 피로 칠갑이 된 얼굴로 다정하게 손을 내밀었다. 순간 걷잡을 수 없이 밀려오는 공포와 절망감에 눈앞이 캄캄해졌다.

나는 그의 손을 뿌리치고 벌떡 일어서 바다를 향해 뛰었다. 수영이라도 해서 이곳에서 벗어나야 한다. 수영은 못하지만 그래도 해야 한다. 잡히면 죽는다. 잡히면 죽을 것만 같았다.

허우적거리며 바다를 향해 뛰면서 뒤도 돌아보지 못했다. 뒤를 돌아보면 피를 뚝뚝 흘리는 거대한 손아귀가 날 따라오고 있을 것만 같았다. 어느새 물이 가슴께까지 차올랐다. 여름이지만 밤바다라 그런지, 아니면 내가 너무 무서워서 그런지 몸이 미친 것처럼 떨렸다.

힘겹게 한발 한발 내딛는데 몸이 뒤로 기우뚱 넘어갔다.

정우진이 내 머리채를 잡았다.

“큭! 쿨럭, 으아, 읍!”

코로, 그리고 입으로 짠 내 나는 바닷물이 들어왔다. 정우진은 내 머리채를 잡고, 반대쪽 손으론 내 목을 조르고 있었다. 숨이 막혀서 팔다리를 허우적거렸지만 정우진의 손은 떨어질 줄을 몰랐다.

진짜 죽겠다 싶을 때 촤악 하고 물에서 끌려 나왔다. 나는 사지를 축 늘어뜨린 채 내 머리채와 목을 쥐고 있는 정우진의 손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슬쩍 눈을 뜨자 어두운 시야 사이로 정우진의 얼굴이 보였다. 그는 내 코앞에서 물었다.

“수영도 못하면서 왜 이렇게 깊은 데까지 들어와요?”

“으, 으아, 쿨럭, 쿨럭! 큭, 이, 이거, 으브븝!”

정우진이 다시 내 얼굴을 물속에 처박았다. 숨이 막혀서 숨을 마실 때마다 바닷물이 입과 코로 들어왔다. 죽을 것 같다고 느끼는 순간 다시 물 위로 끌려 나왔다.

차가운 바닷물이 얼굴을 비껴 아래로 큰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큽, 쿨럭! 으학!”

“수영은 가르쳐 주면 안 되겠네.”

“쿨럭, 쿨럭! 쿨럭!”

“집에 가요. 씻어야겠다.”

“놔, 이, 이거 놔! 이거……!”

다시 물에 처박혔다. 이번엔 아까보다 훨씬 더 오랫동안.

발버둥을 쳐도 내 머리를 누르고 있는 정우진의 손은 떼어지지 않았다. 결국 바닷물을 한껏 들이켠 뒤에야 정우진이 날 물속에서 꺼내 줬다.

“으하아! 헉, 허억! 쿨럭!”

“자꾸 놔달란 말 하지 마요. 진짜 죽여 버리고 싶으니까.”

“으아아아! 씨발, 으, 큭! 큽, 쿨럭! 헉, 흐억!”

나는 짐승처럼 괴성을 질렀다. 숨이 막혀서 죽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눈도 따갑고 코도 따갑고 목구멍도 따가웠다. 배 속에 바닷물이 그득하게 찬 것만 같았다.

다급하게 숨을 토해 내고 들이마시고 있는데, 정우진이 거칠게 내 입술을 물었다. 안 그래도 숨이 막혀 죽겠는데 정우진은 내가 숨 쉴 틈 따윈 주지도 않았다.

혀를 휘어 감고, 치열을 훑고, 혀 밑의 여린 살을 쿡쿡 쑤셨다. 내 입 속에 있는 짠물과 침을 모조리 빨아 마시고, 그는 억지로 내게 제 침을 삼키게 했다.

정신이 아득해졌다. 나는 사지를 축 늘어뜨리고 눈을 감았다. 태어나서 기절해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정우진을 만난 뒤론 기절만 하는 것 같았다.

내 정신이 완전히 끊어질 때까지 정우진은 집요하게 내 입 안을 핥고 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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